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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끄는 흥겹고도 낯선 멜로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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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히어 위 고 어게인'이다. 뮤지컬에 이어 스크린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맘마미아!> 이후 10년 만의 후속작 <맘마미아! 2>는 전 세계 25개국 박스오피스 정상에 오르며 월드와이드 7678만 불(870억)의 수익을 올렸다.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경과 'Dancing Queen', 'Waterloo' 등 불멸의 아바(ABBA) 곡을 곁들여 국내서도 큰 성공을 거뒀던 전편에 이어, 이번 속편에서는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세 아버지 등 기존 출연진은 물론 젊은 시절의 '도나'를 맡은 제임스와 더불어 '팝의 여신' 셰어(Cher)가 특별 출연하며 더욱 화려한 화합의 파티를 장식한다.

 

곡명만 들어도 '그 노래!'를 대번에 알 수 있던 1편과 달리 <맘마미아! 2>의 선곡은 다소 생소하다. 아무리 히트곡 많은 아바라 해도 뮤지컬과 영화를 통해 숱하게 소비되어온 곡들을 다시 겹칠 수는 없었던 듯, 속편의 플레이리스트는 새로운 스토리라인 형성과 숨겨진 명곡의 발견에 더 의의를 두는 모습이다. 'Fernando'와 'Knowing Me, Knowing You'같은 유명한 곡들 대신, <맘마미아! 2>를 이끌어가는 흥겹고도 낯선 아바 멜로디를 소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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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e been waiting for you < ABBA > (1975)


그룹 이름을 전면에 내세운 < ABBA >는 'Mamma Mia'와 'S.O.S', 'Bang-A-Boomerang' 등의 히트곡을 통해 아바의 인기를 공고히 했다. 뿌연 신디사이저로부터 출발해 편안한 어쿠스틱 밴드 팝으로 귀결되는 'I've Been Waiting For You'는 베니와 비요른의 아름다운 프로듀싱, 프리다와 아그네사의 코러스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멋진 곡이다. 1977년 아일랜드 팝 밴드 지나, 데일 헤이즈 앤 더 챔피언스(Gina, Dale Haze and the Champions)가 이 노래를 리메이크해 아일랜드 차트 톱 텐에 들며 곡의 완성도를 또 한 번 증명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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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did it have to be me < Arrival >(1976)


아바의 최고 명반으로 손꼽히는 < Arrival >의 수록곡. 'Dancing Queen', 'Knowing me, Knowing You', 'Money, Money, Money' 등의 메가 히트곡들이 쏟아진 앨범에서 다소 가리는 감이 있지만, 여성 멤버들의 가창을 주로 끌고 가는 아바의 음악 세계 속에서 기타를 치는 비요른의 보컬이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Why Did It Have To Be Me'는 분명 독특한 곡이다. 블루스 리듬의 경쾌한 기타 리프와 익살스러운 후렴부 색소폰 연주로 오래 기억에 남는 이 노래는 <맘마미아! 2>에서 조시 딜런과 릴리 제임스의 낭만적인 선상 데이트를 장식한다.

 

My Love, my life < Arrival > (1976)


'Monsieur, Monsieur'로도 알려진 'My love, My Life'는 < Arrival >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녹음된 곡이다. 신비로운 도입부 코러스와 우아한 종교 음악적 색채는 리드 보컬 아그네사의 맑은 목소리를 더욱 청명하게 빚어내기 위한 비요른의 장치다. <맘마미아! 2>에 채택된 버전은 영화 스토리 전개를 위해 베니와 비요른이 새 가사를 썼는데, 가슴 아픈 이별의 이야기가 메릴 스트립과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애잔한 모녀간의 사랑으로 개사된 지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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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onder(Departure) < ABBA : The Album >(1977)


정규 앨범에 수록되어 있지만 뮤지컬 스코어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I Wonder'는 실제로 뮤지컬을 위해 만들어졌다. 1977년 아바의 유럽 & 호주 투어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미니 뮤지컬 <금발의 소녀>가 바로 그 주인으로, 단순한 히트곡 메들리 대신 콘서트에서만 선보일 수 있는 특별한 요소를 찾던 메인 작곡가 베니와 비요른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실현된 기획이다. 비록 뮤지컬은 빠르게 잊혔지만, 종반부에 벅찬 감동을 분출하는 이 곡은 1977년 아바의 모든 투어 마지막 순서를 장식했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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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es of fire < Voulez-Vous >(1979)


디스코 대유행의 1970년대 말을 시의 적절히 녹여낸 < Voulez-Vous >는 아바의 또 다른 명반이다. 경쾌한 디스코 'Voulez-Vous'와 'Does Your Mother Know', 'Gimmie! Gimmie! Gimmie!' 등의 일렉트로닉 디스코 리듬으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이 앨범의 텐션을 유지하는 곡이 바로 'Kisses of Fire'다. 잔잔한 출발로부터 급격한 분위기 전환을 거쳐 업템포 댄스 디스코로 변신하는 이 노래는 코러스와 신스음, 기타 리프의 완급 조절이 매우 수려하여 프로듀서 베니&비요른의 재능을 입증한다. 영화 속에선 코믹한 백밴드의 연주로 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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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ante, andante < Super Trouper > (1980)


국내에는 제법 이름이 알려진 'Andante, Andante'는 세계적으로 엘살바도르와 아르헨티나, 두 나라에서만 싱글 공개된 곡이기에 생소하다. 청초한 피아노 선율과 기타 솔로로부터 아그네사와 프리다의 부드러운 목소리, 친숙한 멜로디와 후렴구 풍성한 코러스로 수놓아진 이 고급 발라드는 싱글 릴리즈되지 않았기에 차트 성적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천천히'라는 뜻의 안단테라는 단어는 남녀 간의 깊은 밤을 은유하는 성적인 단어. 릴리 제임스의 원숙한 보컬이 가장 빛나는 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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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y before you came < The Visitors >(1982)


아바의 마지막 정규앨범 < The Visitors > 수록곡이다. 전체적으로 어두워진 앨범 커버와 그에 맞게 음산한 신디사이저와 긴장감 넘치는 리듬 진행은 당시 이혼과 갈등을 겪으며 극에 달한 팀 내 불화를 배경으로 한다. 아그네사의 단독 가창을 들을 수 있는 이 곡은 영국과 유럽에서는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두었으나 미국에선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 내에도 들지 못하면서 아바의 미국 싱글 중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이 곡 역시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자유로운 음악집단 서치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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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간의 일본 대중음악신엔 이제껏 본적 없는 격렬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중이다. 흔히 갈라파고스라고 일컬어지는 흐름과 대비되는, 월드와이드 지향의 팀들이 주변인물에서 벗어나 주인공으로서 신의 중심을 조금씩 점거해가고 있는 것. 그 중심에는 여섯명으로 이루어진 자유로운 음악집단, 서치모스가 위풍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

 

힙합과 소울 등의 블랙뮤직과 애시드 재즈, 록과 같은 여러 음악적 기반에 자신들의 취향을 섞고 흔들어 일종의 문화현상을 만들어 가는 그들. 그러고 보면 '시티 팝 리바이벌'이라는 용어만큼 이들을 얕보는 말이 또 있을까 싶다. 대중이 예상하는 지점보다 훨씬 앞선 곳에서 가이드를 자처하는 일본의 대표 트렌드세터들을, 커리어 첫 해외공연인 <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 본 무대에 앞서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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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인 내한은 처음인데, 한국에서 공연하게 된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YONCE : 타국의 스테이지에 오르게 된 것이 아직 믿기지 않고요. 불러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단지 밴드가 좋아서 해온 건데, 해외에서 라이브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정말 행복하고 기쁘게 다가오네요. (해외공연 자체가 처음이냐고 묻자) 네, 처음입니다.

 

한국에서도 서치모스의 내한을 데뷔 때부터 손꼽아 기다려온 팬들이 많습니다. 해외에서의 인기를 실감하는지요?


HSU : 가끔 한글로 적혀있는 코멘트를 보곤 합니다.


YONCE : 일본에서 라이브 할때 “한국에서 왔어요!” 라고 해주시는 분들도 때때로 있고요.

 

'First Choice Last Stance'라는 문장의 앞 자를 딴 레이블 < F.C.L.S >을 설립한 지 1년 4개월 정도가 지났습니다.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레이블을 만들었다고 들었는데, < F.C.L.S >의 정확한 뜻과 설립 목적, 레이블 설립 이전과 이후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2.jpgYONCE : 밴드 자체에 관한 것만은 아닌데요. 뭐랄까... 좀 어렵네요. '꿈을 이루기 위해'라는 표현이 비교적 적확한 것 같다고 생각되네요. 레이블의 의미는 방금도 말씀해주셨지만, 일본어로 하면 초지관철(初志貫徹 : 우리나라 말로는 초지일관)입니다. 대체적인 의미는 같습니다만, 저희가 처음에 결정했던 것들을 마지막까지 관철하자는 스탠스. 그것을 유지해나가고 싶다는 의미를 담고 있죠.

 

레이블 설립 후 첫 EP인 < The Ashtray >(2018)에서 확실히 많은 변화가 느껴집니다. 장르라는 테두리를 넘어서 보다 자유로워진 느낌인데, 어떤 작품인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TAIHEI : 자연스럽게 몸에 변화해가듯이, 저희들의 음악도 자연스럽게 변해왔습니다. 그러한 스탠스를 유지한 결과물이 담긴 작품입니다.


YONCE : 매번 같은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네요.(일동 웃음) 변화해가는 그 상황이 곡들에 반영되었다고 할까요. 다음 작품에 대해서도 아마 같은 말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웃음)


OK : 이런 사실 자체가 저희들로서는 굉장히 기쁜 일입니다. “이전하고는 다른데?”라는 말 자체가 우리가 이 상황 자체를 정말 즐기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죠.  

                                        

3.jpgEP 타이틀이 < Ashtray >인데, 어떤 듯을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HSU : 저희들 모두 담배를 피우는데요. 앨범 제작기간 중에 피운 담배의 양... 많았지요.(일동 웃음) 재떨이에 쌓인 재처럼, 제작 과정 중에 크리에이티브한 소울을 불태운 직후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재떨이뿐만이 아닌, 거기에 쌓인 재와 꽁초를 포함한 그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시면 될 것 같네요.

 

< The Bay >(2015)가 본인들이 영향을 받은 음악의 규칙과 틀 안에서 움직였고, < The Kids >(2017)가 자신들의 오리지널리티를 구축하는 과정이었다면, < The Ashtray >(2018)는 그 오리지널리티를 확장시켜 나가는 앨범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서치모스의 음악'이 가지는 이미지가 명확해졌고, 수록곡들의 구성이 보다 복잡해지고 치밀해진 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는데, 이 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YONCE : 말씀하신 대로입니다.(웃음) (특별히 영향을 받은 것이 있냐고 묻자) 각 작품을 만들 당시 멤버들 사이에서 트렌드가 되는 것들이 있어요. 무브먼트라던가 음악, 독특한 인물의 발견 같은 것들이요. 역시 저희들한텐 선도(鮮度)가 중요하죠. 그때그때 형성되는 저희들끼리의 트렌드가 저희도 모르는 사이에 강하게 반영되곤 합니다. EP의 수록곡들도 열거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의 모티브가 있는데요. 그런 것들을 가지고 여섯 명이 직접 해보면, 처음 생각했던 대로는 절대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다른 방향으로 향해가는 과정 속의 재미, 그것이 저희 밴드의 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면들이 이번 작품에도 밀도 있게 들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들 취향이 굉장히 다를 거 같은데요.


YONCE : 겹쳐지는 부분도 있는 반면, 완전히 다른 부분도 있죠. 중요한 건 그것을 무리해서 하나로 만들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섯 명이 모여 있는 것 자체가 오히려 즐거운 부분이지요.

 

'Volt-age'는 '밴드로서의 힘'을 보여주는 강렬한 곡이라고 생각합니다. CD로 들을 때와 라이브로 들을 때 차이가 큰 곡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서치모스의 진짜 매력은 라이브에서 알 수 있다는 얘기도 많이 나오는데, 라이브의 킬링파트, 하이라이트를 노리고 만든 곡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4.jpgOK : 이 곡은 세션을 하면서, 리얼타임으로 좋은 것들을 겹쳐가면서 만들었죠. 음원은 음원대로 다른 데다가 라이브에서는 인상이 조금 달라질지 모르지만, 라이브에서 하는 쪽이 확실히 좋은 것 같아요.


HSU : 개인적으로, 라이브를 통해 '이 곡은 에너지가 있는 곡이구나'라는 사실을 재확인하게 되었습니다.


OK : 라이브를 통해 저희들 사이에서도 인상이 바뀌는 곡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게 확실히 재미있어요.

 

전작 < The Kids >(2017)과 비교하면 리듬의 역동성이 줄고, 이를 대신해 사이키델릭 사운드의 비중이 커졌습니다. 때문에 'Stay tune'을 듣고 팬이 된 이들이 < The Ashtray >에 적응하기까지엔 시간이 좀 걸렸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지금의 서치모스는 일반 대중들에게 < The Kids >, 혹은 'Stay tune'으로 대표되는 느낌이 있는데, 자신들의 음악을 어떻게 받아들여줬으면 하는지 궁금합니다.


OK : '이런 식으로 들어줬으면 좋겠다' 보다는, 이런 변화를 즐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Stay tune'같은 곡을 계속 만들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그럴 생각은 없고, 그게 바로 < F.C.L.S >를 설립한 이유이기도 하죠. 하고 싶은 것들을 자유롭게 하고픈 밴드의 방향성을 참고하시어 여러 서치모스의 면들, 다양한 서치모스의 성장을 지켜봐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근 출연했던 후지 록 페스티벌과 라이징 선 록 페스티벌에서는 'Stay tune'을 세트리스트에서 찾아볼 수 없었는데, 다른 면을 보아주었으면 하는 밴드의 의도가 담긴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YONCE : 스테이지에서는 항상 최신의 서치모스를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stay tune을) 직접 라이브에서 듣고 싶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귀가 아플 정도인데요.(일동 웃음) 하지만 저희들은 저희들을 만나러 온 사람들을 믿고 있기 때문에, 지금의 이런 노선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HSU :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관객들에게 성실히 임하는 자세이기도 하고, 단지 저희들 안에 있는 솔직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죠.

 

2013년 라이브하우스를 거쳐 2014년 후지 록 페스티벌의 루키 어 고고에 출연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근 3년 만에 정상급 밴드로 빠르게 성장한 셈입니다. 작년에는 록 인 재팬의 글래스 스테이지, 올해는 후지 록 페스티벌의 그린 스테이지에 섰던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런 큰 무대에서 공연할 때 어떤 기분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YONCE : 엄청 컸어요.. 정도일까.(웃음)


OK : 그렇게 큰 장소이니 진짜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해보자라는 의욕에 차 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HSU : 솔직히 록 인 재팬보다는 후지 록 쪽이랄까요. 처음에 후지 록의 화이트 스테이지에 섰을 때가 진짜 기분이 좋았었죠.


YONCE : 록 인 재팬 때도, 후지 록 때도 그랬지만 무대 크기가 어떻다는 것보다는 이런 곳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 좋았다고 할까요. 무대 규모에 맞게 행동하는 것도 큰일이네..(웃음) 하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즐길 수 있어서 좋았어요. 큰 무대인데.


HSU : 우리들의 무대를 그렇게 보아주신다는 사실에 오히려 놀랐습니다.

 

아디다스와 콜라보레이션 유니폼을 내기도 했고, 반응 또한 좋았습니다. 서치모스를 이야기할 때 많은 팬들이 '핫하다, 앞서간다, 멋지다'라는 얘기를 하는데요. 멤버들의 패션감각이 주목받는 이유도 그런 것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밴드의 스타일에 있어서 고집하는 부분이 있으신지요.
 

5.jpgTAIKING : 없어요.(모두 웃음) 우리들 스스로는 없어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는 분들이 있는 거죠.


YONCE : 그냥 있는 그대로예요. 다들 그렇게 잘 챙겨입는 타입이 아니라서...(멤버분들이 스케이트 보드를 좋아하지않냐고 묻자) 네, 몇 명은 꽤 열심히 했죠. 근데 다치고 상처 입고 그래서 그만뒀어요.

TAIHEI : 이제 스케이트 보드도 없어.(웃음)

 

방금 질문과 같은 흐름에서, 많은 이들에게 서치모스라는 팀은 단지 음악이 아닌, 생활과 삶의 방식, 태도 등과 같은 라이프스타일 전반으로 받아들여지는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본인들은 서치모스를 어떤 집단으로 개념 짓고 활동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OK : 음... 그건 제작 중에 생각해본 적이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멤버 다들 옛날 음악을 좋아해서 계속 듣고 있고, 요즘 음악은 요즘 음악대로 역시 대단하구나 하면서 들어요. 우리가 기분 좋다고 느끼는 음악은 생활에서 나오는 거고, 생활하다보면 또 음악을 하고 싶다는 저 자신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안에 좋은 점은 어디 있을까라고 생각해보면 역시 '리얼타임으로 자신에게 통하는 것'. 그리고 정답은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기분 좋은 것을 제공하고 싶다는 것. 그런 것들이 전부가 아닐까 생각해요.

 

음악이 좋다는 부분도 있지만, 팬들이 서치모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다 다릅니다. 초기부터 좋아했던 분들도 있고, 'Stay tune'부터 좋아했던 분들도 있고, 음악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이미지, 스타일을 보고 팬이 된 분들도 많죠. 서치모스를 음악 그룹만으로 한정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OK : 우리가 아주 자연스럽게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다들 유치원 때부터 친구라서 어릴 때 같이 놀기도 했고 그게 연장선이 되어서 밴드라는 모습이 되었기 때문에, 음악 외의 부분도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HSU : 무리 안에서 끼리끼리만 통하는 속어를 쓴다거나 하는 '우리들만의 놀이'를 세상에 내놓았는데, 그걸 보는 사람들이 '재미있다'고 해석하는 것 아닐까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렇게 보면 서치모스는 모두의 관계로부터 만들어진 결과네요.


HSU : 만들려고 해서 된 게 아니라 '저절로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느낌이고, 그것이 관객들의 여러 가지 반응을 가져다준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일본의 자미로콰이'라 불리면서 큰 관심을 받기도 했는데, 동시에 일본 밴드의 음악 같지가 않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국내에서도 서치모스를 통해 일본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사람들도 많고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6.jpgYONCE : 오히려 제이팝이 일본의 음악이 아닌 것 같아요(다들 웃음). 반대로 저희가 서양음악에 우리들, 일본인밖에 할 수 없는 감성을 담는 그런 작풍을 갖고 있는데, 그게 일본음악 같지 않다고 하면 어쩔 수 없다고 해야 할까요. 언젠가 알아준다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긴 해요. 어떤 의미로 멤버 모두 수행 중이니 앞으로 이런 장점을 담아서 더 나아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아예 '일본음악도 아니고 서양음악 같지도 않네. 잘 모르겠어' 이런 음악이 될지도 모르고요. 요즘 세대는 인터넷 등 여러 방법으로 많은 나라, 그리고 다양한 시대의 음악에 접촉할 수 있으니까 그런 테두리는 별로 의식하지 않아요. 중요하게 여기고 싶은 건 내가 태어난 나라의 문화라든지, 오래된 전통적인 것이라든지. 그걸 지키거나 이미지화하면서 쓰는 것이죠. 현재는 그런 것에 관심이 있어요.

 

여담인데, '일본의 자미로콰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시나요?


OK : DNA에 새겨져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들은 자미로콰이의 음악을 들으면서 자라왔으니까요. 좋다 나쁘다 하는 생각은 특별히 없어요. 아마 우리들 안에 있을 테니까.. 그냥 '영광입니다' 싶은 느낌? (웃음)

 

서치모스는 보통 시티 팝 리바이벌을 대표하는 밴드로 불리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YONCE : 같은 세대 밴드 중에 일명 '일본 시티팝 리바이벌'을 얘기할 때 거론되는 친한 팀들이 꽤 있는데, 펜타포트에 같이 나가는 네버 영 비치, 그리고 요기 뉴 웨이브스죠. 데뷔도 거의 같은 시기에 했고, 활동영역도 초반에는 거의 비슷했어요. 같은 카테고리에, 같은 신으로 묶였는데, 다들 각각 '딱히 그런 건 아니다'라고 그때부터 얘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에 소속되었다는 느낌은 없어요. 하지만 같은 세대기도 하고 서로 '재미있는 거 해보자', '같이 이벤트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하나의 큰 단어로 뭉쳐지는 것 자체는 별로 의미가 없어요. 시티팝으로 단정 지어 버리면 음악은 재미없어지는 것 아닐까요. 딱히 좋거나 나쁘다는 생각은 없는데... 솔직히 어떻게 불려도 상관은 없어요.(웃음) 그런 신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의 기분도 이해하고요. 그냥 우리 음악을 듣는 사람이 좋다고 여기는 쪽으로 이야기한다면 그걸로 괜찮지 않을까요.

 

작년의 한 인터뷰에서 함께 공연하고 하고 싶은 팀이 오아시스라고 YONCE씨가 이야기 했습니다. 지금은 어떠신지요. 그리고 콜라보레이션 하고 싶은 한국 팀이 혹시 있으신가요.
 

7.jpgYONCE : 동세대 한국 밴드 중에 좋은 팀이 많다고 친구에게 들었는데, 한국에서 라이브했던 밴드들도 입을 모아서 같은 얘기를 하더라고요. 힙합의 인기가 뜨겁다는 얘기도 들었죠. 그런데 아직 우리들이 직접 한국 팀을 만나보지는 못해서 앞으로의 일은 전혀 모르겠어요. 만약 재미있는 형식으로 뭔가 할 수 있게 되면 해보고 싶어요. (케이시상은 어떠세요? 라는 질문에)


KCEE : 매시브 어택이요. (다들 웃음)

 

곧 무대에 서실 텐데, 어떤 무대를 만들고 싶은지, 또 어떤 추억을 남기고 싶으신지,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YONCE : 일본에서 많은 노력을 거쳐 한국 관객 앞에 설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치모스를 모르는 분도 많이 올 거라 생각하는데 '옆 나라에 재미있는 팀이 있네'라고 생각해 주신다면, 그렇게 우연한 만남도 좋을 것 같아요.


HSU : 이렇게 가까운데 길도 다르더라고요. 가까이 있는데도 너무 다르다는 게 신기해요. 오는 것도 2시간이면 되니까... 우리 무대를 보시고 '다시 오면 좋겠다'는 목소리를 들려주신다면 또 올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도 오고 싶거든요. 서울에도 가보고 싶은데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요. 마을도 정말 보고 싶고, 다시 오고 싶으니 꼭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OK : 이번에는... 이런 표현이 실례가 될지도 모르겠는데, 어떤 의미로 '맛보기'랄까요. 솔직히 우리들이 한국의 땅,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제대로 보고 담고 스테이지에 오르는 게 아니라서, 다음에 무대에 설 때에는 좀 더 많은 곳에 가서 여러 음식도 먹어도 보고, 쇼핑도 해보고, 역사적인 것들을 보러도 가고 싶어요.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오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 상태에서 다시 무대에 오르면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취재, 정리 : 조아름, 황선업
사진 : 김도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앤드류 로이드 웨버, 브로드웨이 혁신의 씨앗을 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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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브로드웨이 뮤지컬 씬은 제2의 전성기다. 지난 시즌 브로드웨이 뮤지컬 씬은 33개의 작품으로 17억 달러(1조 7천억 원)의 역대 최고 수익을 기록했다. 화려한 무대와 스타 라인업, 새로운 스토리텔링 3박자는 비싼 티켓 가격에도 불구하고 매 해 여름마다 전 세계의 뮤지컬 마니아들을 뉴욕으로 불러 모으는 새 시대의 히트 공식이다. 규모로 보나 형식으로 보나 지금의 브로드웨이는 가장 거대하고 가장 파격적인 무대가 올라오는 곳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50여 년 전에도 혁신은 존재했다. 그 파격은 도발적인 재해석과 다양한 장르, '메가 뮤지컬' 스타일을 확립하며 현대 브로드웨이의 흥행 공식을 미리 정립한 천재 작곡가의 손에서 탄생했다. 제 72회 토니 어워즈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작곡가, 56세의 '남작' 앤드류 로이드 웨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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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앤드류 로이드 웨버 하면 <오페라의 유령>, <캣츠>와 같은 메가 히트작을 처음 떠올지만, 또 한 명의 전설 팀 라이스(Tim Rice)와 함께했던 그의 초기 작품들은 당대 시각에선 이단이었다. 예수와 그 제자들을 록 스타와 팬덤으로 치환했던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아르헨티나의 영부인 에바 페론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에비타>는 젊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혁신으로 가득한 1970년대 뮤지컬계 최고의 문제작이다.

 

클래식 기반의 기존 관행 대신 과감한 록 사운드로 무장한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는 종교계엔 그야말로 불경이었다. 제자들로 둘러싸인 슈퍼스타 지저스와 그를 경계하는 유다, 그리고 내가 왜 죽어야 하냐며 아버지 신에게 절규하는 'Gesethmane'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충격이었다. 록 뮤지컬, 록 오페라를 설계한 음반은 많았으나 록의 문법을 전면에 내세운 뮤지컬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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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드웨이 입성 소식에 종교계는 즉각 반발했고 그 여파는 뮤지컬 계를 넘어 대중문화 전반에 논란을 불러왔다. 뮤지컬 속 '지저스'는 죄 있는 자들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성서 속 인물이 아닌, 1960년대 말 히피 무브먼트와 함께 피어난 록의 황금기 시절의 비틀스, 롤링 스톤즈처럼 수많은 추종자들 속 가혹한 운명에 고뇌하는 슈퍼스타였다. 대중문화와 시대적 흐름을 정확히 짚고 있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너른 시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해석이다.

 

이와 같은 종교에의 도전은 2011년 초연하여 지금까지 인기 뮤지컬로 자리매김한 <북 오브 몰몬>을 낳았다. 미국 솔트레이크 시티의 독특한 종파 몰몬교 선교사가 아프리카 우간다로 보내져 고초를 겪는 이 이야기에서 종교는 희화화되고, 해학적으로 묘사되며 거침없는 욕설까지 퍼부어진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핵심 주제는 인간에게 종교가 왜 필요하며, 종교가 어떤 식으로 삶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다. 입체적인 해석으로 오히려 거부감 없이 현대의 종교 의미를 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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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 <에비타>는 한발 더 과감한 발을 디뎠다. 아르헨티나의 국모, 민족의 태양으로 칭송받던 에바 페론을 관찰자 '체(che)'(체 게바라를 의도했다.)를 통해 꼬집는다. 밑바닥부터 출발해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까지 입지전적인 위치에 오른 그의 삶을 다채로우면서도 웅장하게, 다양하게 담아낸 <에비타>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 콤비가 본인들의 최고 작품으로 인정하는 작품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정통 클래식 뮤지컬 넘버와 록은 물론 라틴 아메리카의 탱고와 룸바, 팝 등 다양한 장르를 녹여냈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이어지는 극은 길이 역사에 남을 'Don't cry for me Argentina'와 함께 록 넘버 'A New Argentina', 박수 리듬과 함께 이어지는 콩가의 'Buenos Aires'를 각인시켰다. 뮤지컬뿐 아니라 1996년 영화로도 개봉된 <에비타>에선 '팝의 여왕' 마돈나가 새로운 에바 페론의 탄생을 알린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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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한 역사극과 다양한 장르는 현재 브로드웨이의 최고 히트작 <해밀턴>의 모체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초대 재무 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생을 그린 이 작품은 놀랍게도 최초의 힙합 뮤지컬이다. 푸에르토리코 출신 작곡가 린 마누엘 미란다(Lin Manuel Miranda)는 18세기 독립 전쟁을 시작하던 미국을 '자유와 독립을 위해 함께 뭉친 이민자들의 국가'로 상정하여, 유색 인종 배우들을 대거 기용하고 최고의 인기 장르인 힙합을 적극 도입하여 '신세대의 역사극'을 설계했다. 작품 그 자체로도 훌륭한 <해밀턴>은 빌보드로부터 '켄드릭 라마의 <To Pimp A Butterfly>보다 대단한 힙합 앨범'이라는 극찬을 수여받았다.

 

이후 앤드류 로이드 웨버는 거대한 규모의 <오페라의 유령>과 <캣츠>를 통해 최고의 스타 작곡가 자리에 오르며 현대의 화려한 무대 장치와 다양한 볼거리의 초석을 닦았다. 그러면서도 1985년의 록 뮤지컬 <스타라이트 익스프레스>를 작곡하고 최근에는 영화 원작의 <스쿨 오브 록>을 맡는 등 록에 대한 애정을 견지하고 있다. '가장 성공한 상업 작곡가'라는 영예의 바탕에 도발적인 메시지와 폭넓은 장르 포용의 파격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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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2회 토니 어워즈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한 70세의 거장은 눈물을 글썽이며 '뮤지컬은 나의 작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줬다'는 헌사를 바쳤다. 뮤지컬 씬에 과감한 시선과 대중음악의 넓이를 더한 앤드류 로이드 웨버. 그의 '스타라이트'를 따라 브로드웨이는 역사상 가장 역동적인 전성기를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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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생명을 얻은 산울림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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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악은 영원히 산다. 시간을 뛰어넘어 젊은이들의 심장을 울리는 밴드 산울림의 음악도 그렇다.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창성과 누구나 따라 부를 수 있는 대중성을 고루 갖춘 전설의 그룹! 한국 음악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산울림의 음악이 뮤지컬로 다시 한 번 재탄생한다. 써미튠즈의 창작 뮤지컬 <창문너머 어렴풋이>는 산울림의 맏형 김창완의 음악을 재료로 감성을 복구하는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써미튠즈는 둘째 김창훈과 블랙스톤즈의 음반 제작을 맡기도 했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장점은 명곡들을 스토리텔링과 함께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창문너머 어렴풋이> 또한 세대를 아우르는 산울림의 음악에 새로운 옷을 입히며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작품이 될 것이다. 가을의 감성을 한껏 충전해 줄 주옥같은 사운드트랙을 미리 훑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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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벌써! 이런 음악이?


김창완, 김창훈, 김창익. 서울 흑석동 출신 삼형제의 시작은 취미 밴드였다. 그러나 삼형제의 불타는 창작열은 골방에 가둬둘 수 없었다. 1977년 예선 1위를 했으나 김창완의 졸업으로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던 제1회 MBC 대학가요제, 그 대회의 최종 1위곡인 샌드 페블즈의 '나 어떡해'까지도 둘째 김창훈의 작품이었다니 말 다 했다.

 

엄청난 다작(多作)을 아깝게 생각한 멤버들은 바로 그해에 첫 앨범 <산울림 새노래 모음>을 발표했다. 한국 대중음악계는 그야말로 뒤집어졌다. 시대를 한참 앞서가는데 귀에는 친숙한 이 묘한 음반은 4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익살스러운 분위기로 모두의 귀에 박힌 '아니 벌써', 사이키델릭 록 '아마 늦은 여름이었을 거야'가 이 앨범에 수록되어 있다.

 

<창문너머 어렴풋이>에서는 산울림의 풋풋한 시절이 그대로 담겨 있는 초창기 명곡들을 새롭게 만나볼 수 있다. 앞의 두 곡과 함께 흥겨운 록 '노래 불러요', 쓸쓸하고 비장한 '둘이서'도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록밴드 산울림의 팬이라면 절대로 잊을 수 없는 대곡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도 있다! 김창완의 주술적인 기타와 중독성 있는 베이스라인으로 중무장한 이 곡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되살아날지 기대해도 되겠다.

 

 

한국 음악의 백두대간! 굵직한 명곡 한가득


두 동생(김창훈, 김창익)의 군 입대, 취업 등으로 멤버 변동이 있었지만 산울림은 건재했다. 중~후기 산울림은 더욱 대중적이고 친근하며 성숙한 명곡들을 발표한다. 한번 사로잡은 사람들의 마음을 밴드는 결코 놓아주지 않았다. 뮤지컬이 제목을 따 온 '창문너머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가 이때 나온 곡이다. 컨트리 풍 기타 반주와 김창완의 나긋나긋한 보컬, 친숙한 멜로디로 대중의 귀에 '착붙'한 전국민 애창곡의 재등장이 반갑다.

 

아이유가 리메이크해 젊은이들의 귀에도 익숙할 '너의 의미', 잔잔한 발라드 '그대 떠나는 날에 비가 오는가'도 만날 수 있다. 산울림 특유의 익살과 해학을 짙게 느낄 수 있는 동요 시리즈에서는 '개구쟁이'가 출전했다. '우리 같이 놀아요!' 한 줄로 설명되는 그 노래 맞다.

 

산울림 중에서도 맏형 김창완에 집중한 <창문너머 어렴풋이> 팀은 그의 솔로 곡도 놓치지 않았다. TV 광고에 수록되어 더 유명해진 '어머니와 고등어', 쓸쓸함이 녹아있는 '그래 걷자', 전혀 다른 두 감성의 대비가 재미있다. 두 동생이 팀에 복귀하며 다시 삼형제 밴드가 된 후기의 곡에서는 시원시원한 록 명곡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가 나온다. 충실하게 뽑아낸 산울림과 김창완의 디스코그래피, <창문너머 어렴풋이>가 올 가을 음악적으로 가장 기대되는 작품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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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산울림


산울림의 음악은 지금까지도 후배 가수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새로운 생명을 얻고 있다. 장기하와 얼굴들, 갤럭시 익스프레스, 3호선 버터플라이 등 인디 진영에서는 산울림의 '적자'임을 드러내는 뮤지션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장범준과 아이유 등 젊은 가수들도 아낌없는 존경을 보낸다. 음악 경연 프로그램에선 이미 '단골 출제' 파트다. 무슨 의미일까? 한 마디로 정리하자. 산울림을 빼놓고 오늘날 한국 음악을 이해할 수는 없다!

 

지금 다시 산울림을, 김창완을 만나는 것은 그래서 더욱 유효하다.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산울림만의 감성은 여전히 이 나라 대중음악에 영원한 메아리를 울리고 있으니 말이다. 한국 음악 역사에 우뚝 솟은 봉오리! 산울림 맏형 김창완의 음악을 이야기와 함께 만나보자. 누군가는 '가버린 날들'과 반가운 재회를, 누군가는 '잊혀지지 않을' 소중한 곡과 새로운 만남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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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보면 재밌을 관람 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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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들리 쿠퍼, 레이디 가가 주연의 <스타 이즈 본>은 1937년에 개봉된 영화 <스타 탄생>의 세 번째 리메이크작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주디 갈랜드 버전 외에도 세계적인 팝 싱어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와 배우 겸 싱어송라이터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열연한 <스타 탄생>(1976)은 주제곡 'Evergreen'을 히트시키며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게 아카데미 <주제가>상과 그래미 <올해의 노래>상을 안겨주었다.

 

<스타 이즈 본>은 유명 록스타가 음악에 재능이 있는 한 여성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그를 팝 스타로 만들어준다는 전작의 스토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물론 내용을 모르고 봐도 좋지만 디테일한 설정과 플롯 그리고 무엇보다 음악 영화에서 중요한 층위를 차지하는 오리지널 사운드트랙을 비교하며 관람하는 묘미도 제법 쏠쏠하다. 1976년의 <스타 탄생>과 현재의 간극에 초점을 맞춰 <스타 이즈 본>의 관람 포인트를 짚어보았다.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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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존 노먼 (우)잭슨 메인

 


<스타 탄생>의 존 노먼은 <스타 이즈 본>의 잭슨 메인보다 조금 더 거칠다. 손에서 술을 놓지 않는 이 망나니(?) 록커의 등장과 함께 'Watch closely now'가 흘러나오며 강렬한 로큰롤 사운드가 무대를 장악한다. 공연 중에 옷을 벗어 던지고 후렴을 부르다 말며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가갈 때 노먼은 항상 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의 'Fortunate son'이 바로크 버전으로 재탄생한 듯, 건반과 관악기로 구현된 웅장한 하드록 사운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의 괄괄한 블루스 창법이 만난 'Watch closely now'는 존 노먼 하워드가 누구인지 단번에 보여주는 그의 주제가다.

 

한편 잭슨 메인의 'Black eye'는 더 끈적하고 쇳소리도 강하며 세련됐다. 노먼의 거친 로커빌리 음악이 크리던스 클리어워터 리바이벌과 닮았다면 약 4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훨씬 무거운 메탈 사운드를 겸비하게 된 잭슨의 노래는 잘 포장된 블랙 키스(The Black Keys)에 가깝다. 컨트리 계의 거장 윌리 넬슨의 아들인 루카스 넬슨이 작곡했지만 힐빌리보다 블루스의 색이 진한 'Black eye'의 잘 빠진 밴드 사운드는 고도로 발전된 현대의 음향 장비 덕분에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하며 실제 콘서트장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브래들리 쿠퍼의 섹시한 저음은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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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에스더 (우)앨리


 

1976년의 존 노먼과 2018년의 잭슨 메인이 블루스라는 접점을 가진 데 비해 영화의 진짜 주인공 에스더와 앨리의 음악 스타일은 판이하다. 데뷔부터 영화의 피날레까지 어덜트 컨템포러리와 블루스, 펑크(Funk), 소울에 기반한 1970년대 팝 사운드를 들려주는 <스타 탄생> 속 에스더는 뛰어난 가창력을 겸비한 싱어송라이터다. 진한 블루스곡 'Queen bee'에서 에스더의 진가를 알아본 존 노먼은 바로 뒤에 이어지는 'Everything'을 듣고 그녀에게 그만 홀딱 반하고 만다.

 

반면 잭슨 메인이 사랑에 빠지는 순간은 앨리가 자신의 곡이 아닌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라비 앙 로즈(La Vie en rose)'를 부르며 그를 응시하던 찰나다. 앨리가 이전까지 어떤 음악을 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주차장에서 앨리가 들려준 'Shallow'의 진실된 이야기는 잭슨의 록스타일 편곡을 만나 빛을 발한다. <스타 탄생>의 에스더와 존의 듀엣, 에스더의 데뷔 무대에 삽입된 서너 곡을 'Shallow' 하나로 '퉁친' 감이 없지는 않지만, 'Shallow'는 'Evergreen'에 이어 <스타 이즈 본>이 낳은 최고의 테마곡이다.

 

에스더는 'The woman in the moon'과 'I believe in love'로 이루어진 데뷔 무대부터 존 노먼을 향한 사랑과 이별의 슬픔을 유쾌하게 승화한 필라델피아 사운드의 찬가 'With one ore look at you', 'Watch closely now'의 마지막 무대까지 일관된 음악으로 성공을 거두지만, 앨리는 스타의 반열에 오르자 댄스 팝으로 전향한다. 가사와 음악 스타일이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그의 모습은 <스타 이즈 본>의 중요한 분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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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이즈 본>에서 사운드 트랙이 갖는 위치는 상당히 특이하다. 노래 전체를 온전히 들려주는 <스타 탄생>과 달리 <스타 이즈 본>의 삽입곡은 앨리와 잭이 느끼는 순간의 감정을 드러내는 하나의 사운드 이펙트처럼 활용된다. 각 노래가 처음부터 끝까지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18곡이 짧고 빠르게 지나간다. 특정 곡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아마 이런 연유일 터. 음악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는 노래가 많지 않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스타 이즈 본>만의 메시지

 

<스타 이즈 본>은 현재 음악 시장에 대한 불만족을 은연중에 내비친다. 잘나가던 잭슨과 밴드가 커다란 무대를 뒤로하고 시골 멤피스에서 작은 협회의 축하 공연을 위해 자리를 채우는 신이나 그래미에서 노래를 부르기로 한 록스타 잭슨이 비쩍 마른 햇병아리에게 로이 오비슨 트리뷰트 무대를 내주며 'Pretty woman' 반주를 위해 한 발 물러나는 모습은 록의 쇠퇴를 정확하게 짚고 있는 장면이다. <스타 탄생>에서도 존 노먼의 추락을 새로운 음악의 부상으로 짧게 보여주지만, 이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그칠 뿐 <스타 이즈 본>만큼 노골적으로 장르의 몰락을 묘사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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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브래들리 쿠퍼는 록 신이 상실한 지위를 EDM이 대표하는 댄스 팝이 가로챈 듯 연출했다. 스타가 된 앨리가 부끄럽다며 화를 내는 잭은 마지막까지 댄스 음악을 싸구려 취급하면서 '너를 망쳐 미안'하다고 한다. <스타 이즈 본>이 댄스 팝을 바라보는 시각은 SNL 촬영 신에서도 나타난다. 카메라는 '레이디 가가'같은 옷을 입고 자극적인 춤을 추며 'Why did you do that'을 부르는 앨리를 잭슨의 시선으로 그린다. 재미있는 점은 레이디 가가도 받지 못한 그래미 신인상을 앨리가 이 노래로 받는다는 것이다. '왜 그런 엉덩짝을 갖고 내 주위를 어슬렁거려' 따위의 질 낮은 가사를 연신 외쳐대는 앨리의 SNL 무대와 그래미 수상 장면이 이어지며 영화는 가장 권위 있다고 알려진 음악 시상식마저 조롱하는 듯하다.

 

록과 댄스에 대한 이분법적 시선이 불편할 수도 있다. 어쩌면 고리타분한 생각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실제로 'Why did you do that'은 꽤 듣기 좋은 팝송이니 말이다. 하지만 댄스와 힙합 음악이 점령한 메인스트림을 향해 불만 정도야 토로할 수 있지 않은가. 어쨌거나 이 영화의 본질은 앨리와 잭의 불타는 로맨스다. 실제 상황에 버금가는 연출로 스타들의 일분일초와 백 스테이지를 함께하고 싶다면 <스타 이즈 본>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사진 제공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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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스미스 내한공연의 모든 전율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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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대로 '모든 전율(The Thrill of It All)'이 있었다. 9일 고척스카이돔을 꽉 채운 2만 관객이 은혜롭고도 충만한 샘 스미스의 목소리를 통해 120분 동안 느낀, 경건한 황홀 말이다.

 

'더 스릴 오브 잇 월드 투어(The Thrill of It World Tour)'로 첫 내한 공연을 가진 이 젊은 싱어송라이터는 힘 있는 노래와 진중하고도 쾌활한 매력으로 쌀쌀해져 가는 가을밤을 가득 채웠다.

 

오후 7시 15분쯤 공연장의 모든 불이 꺼지고 하늘색 수트를 입은 샘 스미스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쳤다. 넘실거리는 리듬의 'One last song'으로 상냥한 인사를 건넨 그는 곧바로 'I'm not the only one'으로 한국의 '떼창 문화'를 경험했다. 해맑은 웃음과 함께 곡을 마친 샘 스미스는 '이틀 동안 서울을 구경하며 한국이 아주 아름다운 나라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단어와 모든 문장을 여러분과 함께 부르고 싶습니다'며 감격에 찬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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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를 뚫고 찬란히 빛나는 샘 스미스의 목소리는 '하늘로부터 받은'이라는 수식어 외 다른 단어가 필요치 않았다. 여린 피아노 선율 위 고뇌하는 'Lay me down'의 애절함, 영화 <007 스펙터> 주제가 'Writing on the wall'의 웅장함, 2013년 EP 수록곡 'Nirvana'의 환희 등 인간의 거의 모든 감정이 있었다. 팔세토 고음과 웅장한 저음을 자유자재로 표현해내는 그의 재능은 경탄 그 자체였다.

 

공연 중간 샘 스미스는 '제가 슬픈 노래를 많이 부릅니다.'라 농담을 던졌다. 진중한 소울 음악을 주로 하는 아티스트다 보니 공연도 정적이지 않을까 하는 편견이 있었는데, 실제 공연은 그런 편견을 깨트리는 다채로운 구성으로 빛났다.

 

이번 월드 투어를 함께하는 거대한 삼각 구조물은 곡마다 형형색색 빛을 내뿜으며 시선을 사로잡았고, 그중 'Writing on the wall'에서는 차가운 달빛과 함께 천천히 갈라지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했다. 영국의 하우스 듀오 디스클로저(Disclosure)와 함께한 히트곡 'Omen'과 'Latch', 흥겨운 디스코 리듬의 'Restart'으로 아기자기한 댄스 실력을 뽐내기도 했다. 팬들도 객석에서 일어나 흥겹게 박수를 치고 리듬을 타며 젊은 가수의 열정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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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곡들로 꾸린 전반부를 거쳐 후반부는 지난해 발매된 정규 2집 < The Thrill of It All >의 수록곡들이 주를 이뤘다. 흥겨운 'Baby, you make me crazy'와 조곤조곤한 'Say it first', 블루지한 기타 연주와 보컬, 코러스 간의 호흡이 빛난 'Midnight train'은 차분한 1집으로부터 더욱 확장된 그의 음악 세계를 친절히 소개했다.

 

'HIM'은 샘 스미스의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용감하게 전달한 무대였다. 한 편의 뮤지컬을 방불케 했던 조명과 댄서들 앞에서 샘 스미스는 여느 때보다 힘찬 목소리로 신 앞에 자신의 동성애 지향을 고백하는 노래를 불렀고, 정점의 순간에서 자랑스럽게 외쳤다.

 

'여러분들께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사랑은 사랑일 뿐입니다!'

 

'Too good at goodbyes'와 앵콜곡 'Palace', 'Stay with me'의 합창을 거쳐 'Pray'로 두 시간짜리 공연이 막을 내렸다. 사이드 스크린에 올라오는 긴 크레딧은 월드 투어 최초의 스타디움 공연, 최초의 내한 공연이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완벽한 공연을 위한 스태프들의 노고를 대변했다. '언젠가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귀갓길 조심하시고 감사합니다!'라는 샘 스미스의 멘트 하나하나에서 마지막까지 섬세한 배려가 묻어났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계절에 더더욱 듣고 싶은 목소리. 공연 내내 환한 표정으로 재능과 배려, 용기와 감동을 노래한 샘 스미스의 무대는 아름다웠고 또 열정적이었다. 고척돔 특유의 음향 한계가 못내 아쉬웠지만 하늘이 내린 목소리 하나만으로도 진한 감동이 있었다. 청년의 진실되고도 맑은 목소리는 2만 관객의 가슴속 깊은 울림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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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퀸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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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얼 서스펙트>(1995)와 '엑스맨 시리즈'(2000/2003/2014/2016)의 명장 브라이언 싱어가 연출한 전기(傳記)성 음악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과연 그룹 퀸(Queen)과, 퀸의 전설적 싱어 프레디 머큐리의 진면모를 재확인, 재조명하는데 성공한다. 올드 보이&걸들에게는 프레디 머큐리로 대표됐던 퀸의 위대함을 새삼 환기시키며, 크고 작은 노스탤지어, 감동을 두루 선사한다. 영 보이&걸들에게는 그들의 거대한 존재감을 각인시키기 모자람 없을 성싶고.

 

주지하다시피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는 퀸의 최절정기적 기량이 맘껏 발휘, 구현된, 서구 대중음악사에 빛나는 명곡이다. 1972년 결성 후 데뷔 앨범 《퀸》(1973)과 《퀸 Ⅱ》,《쉬어 하트 어택》(Sheer Heart Attack, 1974)에 이은 네 번째 앨범 《오페라의 밤》(A Night At The Opera, 1975)에 실렸다. “국내에서는 외국 차트와 무관하게, 아름다움 선율과 발군의 프레디 머큐리의 보컬이 담긴 '내 일생의 사랑'(Love of My Life)이 절대적인 사랑을 받았”(『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임진모, 창공사, 1994))는 바, 이 명곡도 이 명반에 수록돼 있다. 드러머 존 디콘이 작곡한 '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You're My Best Friend), 기타 브라이언 메이의 '39년'('39)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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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스터피스로 퀸은 “마침내 록계의 여왕(혹은 왕?)으로 우뚝 섰다”(『365일 팝 음악사(개정증보판)』(정일서, 돋을새김, 2009)). 무엇보다 “앞선 3장의 전작들에 일관된 하드록의 경향에서 벗어나 덜 시끄럽고 우아한 사운드로 전향, 대중성을 기했기 때문이다. 초기 퀸의 음악은 데이비드 보위가 깃대를 꽂은 글램 록의 흔적이 있는 데다 특화된 하드록도 아니어서 비평가나 수요자들로부터 시선을 끌지 못했”었는데, “충격요법을 동원한 전무후무한 사운드의 음악을 선보이기로” 마음먹고 “자신들의 기존 하드록에 보컬 하모니를 살린 '오페라틱 터치'를 가미”(이하 『시대를 빛낸 정상의 앨범』)해 록 음악 사상 손꼽히는 명반을 빚어낸 것이다. 그 명반의 결정체가 다음 아닌 6분에 달하는 기념비적 거(巨)곡 '보헤미안 랩소디'였다.

 

'보헤미안 랩소디'에 쏟아진 대중적 열광과 나란히, 크고 작은 지탄, 비난도 따랐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대로다. 펑크 록 진영에서 “나약한 내용의 노랫말, 오만한 진행, 순수함을 억누른 과장된 곡조 등”으로 인해 “소탕해버려야 할 모든 것을 안고 있는 사이비 록”이라고 퍼부은 공격이 대표적이다. 적잖은 대중음악 전문가들도 그와 같은 부정적 견해에 동조해온 것으로 보인다. 가령 '퀸 죽이기'(?)에 앞장서다시피 해온 미국의 저명 연예 전문지 『롤링스톤』은 '보헤미안 랩소디'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노래 500곡'(The 500 Greatest Songs of All Time) 중 166위에, 《오페라의 밤》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반 500'의 230위에 위치시켰을 따름이다. 비틀즈, 엘튼 존 등과 더불어 지난 40여 년간 퀸을 그 누구 못잖게 좋아해온 내게는, 수긍키 쉽지 않은 홀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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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그동안 퀸과 프레디 머큐리를 (상대적으로) 무시, 폄하해온 이들을 향한 일종의 카운터펀치로 손색없다. 영화는 퀸과 프레디 머큐리를 둘러싼 사연들은 물론 그들의 적잖은 히트곡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탄생했고, 어떻게 세계의 수많은 대중들을 사로잡았는지 그 드라마틱한 드라마를 힘차면서도 섬세한 시선ㆍ호흡으로 보여주고 들려준다.

 

2시간이 넘는 짧지 않은 상영시간이 짧게 느껴질 정도로, 극적 흐름이 설득력 있고 매끄럽다. '보헤미안 랩소디'와 '내 일생의 사랑'를 비롯해 '위 아 더 챔피언', '위 윌 락 유', '돈 스톱 미 나우', '어나더 원 바이츠 더 더스트', '썸바디 투 러브', '크레이지 리틀 씽 콜드 러브', '언더 프레셔', '쇼 머스트 고 온' 그리고 <라이브 에이드>공연에서 광채를 발한 '라디오가가' '해머 투 폴' 등 20곡 이상의 명작을 음미하는 재미만으로도 영화는 놓치기 아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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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파록 버사라/프레디 머큐리 역의 라미 말렉을 비롯해 브라이언 메이(귈렘 리), 로저 테일러(벤 하디), 존 디콘(조셉 마젤로)까지 네 배우들과 실제 퀸 멤버들 간의 싱크로(일치)율에 감탄하지 않을 도리 없다. 배우들이 연기한 라이브 시퀀스들이 안겨주는 감흥이 어찌나 큰지 그 여운이 삼삼하다. 특히 1985년 7월 13일, 약 7만 2,000명 이상이 운집한 가운데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펼쳐진 콘서트 <라이브 에이드(Live Aid)>―위성중계로 150개국의 약 19억 명이 시청했단다― 퀸 시퀀스는 그야말로 압권이다. 기획자 밥 겔도프와 엘튼 존이 “퀸이 쇼를 훔쳤다!!”고 말했다던데 결코 과장이 아니다.

 

오죽하면 퀸의 기념비적 커리어로 간주되는 이 라이브 에이드 무대가 대중문화 콘텐츠매체 <워치모조>(Watchmojo)의 <가장 위대한 라이브공연 톱10>(Top 10 Greatest Live Musical Performances)에서 비틀스의 1965년 쉬 스타디엄 공연(4위), 레드 제플린의 1970년 로열 앨버트 홀 공연(3위), 지미 헨드릭스 1969년 우드스탁 공연(2위) 등 전설적인 라이브들을 제치고 당당 1위로 꼽혔겠는가. 또한 동 매체는 <음악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 톱10(Top 10 Most Important Moments In Music History)에서도 이 공연을 5위로 선정하기도 했다. (참고삼아 밝히면 1위는 비틀즈의 에드 설리번 쇼 출연)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다소의 과장을 허락해준다면, 세계 영화계는 훗날 2018년을 휘트니 휴스턴(<휘트니>)과 더불어 그룹 퀸의 휴먼 드라마 <보헤미안 랩소디>를 선보인 유의미한 해로 기억할 법도 하다.

 

 

 

 


전찬일 (jci196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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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을 빛낸 올해의 가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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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결산의 현장은 치열하고도 즐겁다. 숨 가쁘게 지나온 지난 1년을 복기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들을 돌려 듣고, 설레는 송년회 선물처럼 리스트를 채워나간다. 특히 긴 호흡으로 아티스트 정체성을 각인하는 앨범은 그 목록이 더욱 풍성하게 느껴진다. 거두절미하고, 올 한 해를 빛낸 10장의 국내 앨범을 선정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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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 < Love Yourself 轉 'Tear' >

 

한국 뮤지션으로서는 두 번째로 세계 진출에 성공했지만 자만하지도, 균형감각을 잃지도 않았다. 해외 음악의 트렌드를 수용하면서 우리 것에 대한 애정도 놓치지 않고 있으며, 글로벌 인기의 진원지인 해외 아미 팬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표하면서 한국 젊은 세대의 고민도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빈틈을 남기고 싶지 않은 멤버들의 겸손한 욕심과 겸손하지 않은 자신감이 앨범에 스며있다. 말하고 싶은 것을 11곡으로 축약해 통일성을 구현한 것 역시 이들이 준비된 아티스트라는 점을 웅변한다. 해외 차트를 노리고 급조한 음반이 아니고 준비되어 있었기에 앨범의 빠른 발매와 농밀한 농도를 추출할 수 있었다. 2018년은 방탄소년단에게 돌아간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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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민 - < Your Home >

 

수민은 올 한 해 여성 싱어송라이터 중 가장 과감하고 너른 역량을 펼쳐 보였다. 얼터너티브 알앤비의 자유로움에 케이팝의 장르 교배와 구조 변화를 받아들인 < Your Home >은 좋은 일렉트로닉 앨범이기도, 좋은 알앤비 앨범이기도, 좋은 케이팝 앨범이기도 하다. '설탕분수'의 무지갯빛 찬란함과 '너네 집'의 명료한 선율, '통닭'의 통통 튀는 메시지 등 형형색색 음악 팔레트는 조금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았다.

 

방탄소년단, 레드 벨벳, 진보를 거쳐 보아까지 닿은 메이저 시장과의 접점, 술탄 오브 더 디스코 같은 밴드와도 이질 없이 융합되는 범용성 역시 긍정적이다. 레트로부터 혁신까지 어느 틀에 맞춰도 본연의 색을 발하는 재주는 꾸준한 히트를 기대케 한다. 탄탄한 짜릿함으로 가득한 '너네 집'에서 자꾸만 살고 싶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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뱃사공 - < 탕아 >

 

탕아에겐 거짓이 없다. 쌓아올린 돈다발이 래퍼의 멋이 되는 시대에 오히려 돈이 없음을 밝히는 그는 힙합 등용문 프로그램에 가짜 표정을 지으며 출연할 생각이 추호도 없어 보인다. 또한 쉽게 인기를 가져다줄 수 있는 트렌드에 무관심하여 미국산 'aye'와 'skrt'을 연발하거나 실속 없이 'swervin' 또는 'flexin'하지 않는다. 다른 이들이 프로그램 출연을 준비할 때 조용히 출항을 알리며 좋은 작품들을 선보인 뱃사공은 다분히 한국적인 랩과 뽕끼 그윽한 밴드 사운드로 무장한 두 번째 음반으로 근래 느끼지 못했던 색다른 쾌감을 선사한다.

 

훌륭한 래핑과 캐치한 훅, 빈티지한 멋을 살린 프로듀싱 사이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낭만에 대한 뱃사공의 진솔한 태도다. '탕아'와 '부재중', '로데오' 등 대다수의 트랙에서 절대 꺾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그의 낭만이 '외롭지만 괜찮아'와 '진심'에선 비현실적인 환상으로 비추어지는 순간은 음반을 더욱 인간적이고 친근하게 한다. 이 점이 유독 < 탕아 >에 손이 많이 갔던 이유. 올 한해 번쩍번쩍한 외제차 같은 힙합 음반은 많았지만 '우리집'처럼 기댈 수 있었던 음반은 < 탕아 >가 유일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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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수미 - < Where We Were Together >

 

부산 출신의 밴드가 서프 록과 개러지, 포스트 록 흐름을 마구 뒤섞은 영미 인디 신의 음악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데뷔 앨범 < We've Sobered Up >의 거친 질감은 소포모어에 들어 부드럽게 울리는 리버브 효과에 자취를 감췄지만, 대신 하드코어 언저리에 다가간 'B Lover'로 세이수미만의 펑크를 선보이며 앨범의 전반부에서 형성한 그리움의 감정을 과감히 해체한다.

 

1집의 'Long Night & Crying'에서 분노의 질주처럼 들리던 노이즈 사운드는 'I just wanna dance'의 밝은 기조로 탈바꿈했다. 주저앉아 우는 대신 일어나 춤추기를 택하면서 2집은 긍정의 미학을 전한다. < Where We Were Together >의 그리움을 이겨낼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향수에 사무치다가도 모종의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음악 내적, 외적으로 모두 성장한 세이수미에게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미신에 불과하다는 것을 밴드 스스로 증명했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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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 - < Sound Doctrine >

 

'바람기억'은 나얼을 대표하는 곡이 되었고 그가 가진 재능을 발휘해 더 큰 성과를 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대중을 위한 노래는 '기억의 빈자리' 한 곡에 몰아둔 채 이번에도 만족스러운 소울 앨범을 만드는데 충실했다. 완성도를 자신하며 타이틀도 소리의 교리(Sound Doctrine)라 지었다. 직접 매만진 곡들은 파고들수록 관심을 넘어 탐미와 정석을 추구했음이 느껴진다. 5분간 반주로 밀어붙이는 인트로 'Soul walk'를 비롯해 음반 곳곳에는 1970년대 소울의 질감이 세밀하게 담겨있다.

 

나얼의 최대 강점인 화려한 가창을 즐길 수 있을뿐더러 선명한 선율 덕에 장르성이 짙은 노래도 어렵지 않게 흡수된다. 그 매력은 'Baby funk'와 'Stand up' 두 곡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이후 부드러운 필라델피아 소울과 가스펠 같은 흑인음악을 이루는 갈래들이 목소리를 타고 재현된다. 나얼하면 여전히 보컬 실력이 먼저 거론되지만 그는 브라운 아이즈 시절부터 오랜 기간 블랙뮤직에 꾸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차트에서 환영받는 가수가 한편으로 자신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그런 집요한 노력과 책임감이 이 앨범을 있게 했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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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디스 & 팔로알토 - < 4 The Youth >

 

상다리가 휘어져라 차렸는데, 다 맛있다. 붐뱁, 트랩, 래칫, 퓨처 베이스 등 힙합의 여러 문법이 트랙 리스트를 풍성하게 꾸며준다. 한 줄로 요약하자면 'My life is so bright'의 올드스쿨 향수와 'Avy'의 트렌디함 사이를 꽉꽉 채웠달까. 두 래퍼의 호흡도 훌륭하다. 패기 넘치는 저스디스와 중후한 팔로알토가 청춘이라는 교집합 위에서 하나가 된다.한 손에 세기도 힘든 쟁쟁한 참여진 또한 이 앨범의 묵직한 무게감을 방증한다. 올해 리스너들의 최대 기대작으로서, 이 정도면 모두의 기대는 넘치도록 충족시켜준 셈이다.

 

그러나 < 4 The Youth >가 이 리스트에 오른 가장 큰 이유는, 이 앨범이 오늘날의 청춘에게 힙합이 줄 수 있는 가장 가깝고 또 적확한 위안이라는 데 있다. 브루스 웨인을 꿈꿨지만 어느새 예정된 사회생활을 달력에 적게 된 이들. 동메달을 아쉬워하는 나라에서 자란 이들. 그들을 위한 두 래퍼의 해답은, 사회를 향한 비판과 삶에 대한 애정 사이에 절묘하게 걸쳐 있다. 비관과 낙관의 틈을 정확히 파고드는 젊음의 소리! 올해 말도 탈도 많았던 한국 힙합이지만, 이런 앨범이 나오는 한 기대를 접을 수 없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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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는 집시였다 - < 언어 >

 

지난 두 편의 비정규, 정규 음반과 거의 동일하다. 듀오 히피는 집시였다는 두 번째 정규 앨범 < 언어 >에서도 서행으로 일관한다. 빠르게 변속하는 구간은 단 한 차례도 나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습기를 잔뜩 머금은 상태도 똑같다. 이 두 요소의 조합으로 앨범은 음울함과 황량함을 한껏 분출한다.

전반을 지배하는 음침한 기운은 사랑을 갈구하거나 화자의 불안정한 심리, 또는 눈에 보이는 주변 풍경을 정적으로 묘사한 가사를 타고 멋스럽게 다가온다. 프로듀서 제이플로우(Jflow)가 제작한 고즈넉한 비트는 안정감을 보조하며, 가성이 특히 매력적인 셉(Sep)의 보컬은 몽환적인 느낌을 배가한다. 듀오는 얼터너티브 R&B와 드림 팝을 줄타기하는 야릇한 작품을 또다시 내왔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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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체어샷 - < IGNITE >

 

올 한해를 돌아봤을 때 가장 눈에 띄는 하이브리드 그룹이었다. 한국의 악기, 장단을 비롯하여 굿판, 시위 현장에서 영감받은 것들을 에너지 넘치고 강렬하게, 또 섬세하며 감성적으로 담아냈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이들이 날 것의 감정을 꾸밈없이, 주도적으로 품어냈기 때문이다. 타이틀 '빙글뱅글'의 재고 따짐 없이 달려나가는 박진감, '꿈'의 허무맹랑한 선율과 사이키델릭한 분위기 속에서 타 그룹의 잔향을 느낄 수는 없다. 오직 아시안 체어샷만의 음악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잠정적 해체는 아쉽지만, 마지막까지 훌륭한 음반을 선사했다. 이 안에 담긴 혁명가 스타일의 '친구여'는 남, 여 성악으로 예상치 못한 변주와 뜨거운 울림을 전했으며, 첫 곡 '뛰놀자'는 기타를 태평소 질감으로 표현하고 '무감각'은 더할 나위 없이 새로운 한국형 멜랑꼴리 이별가이자 사랑가였다. 다양한 장르의 배합과 라디오 친화적인 짧은 러닝타임의 수록곡 하나 없이 자신들의 입맛을 제대로 보여줬던 음반. 앨범 명 그대로 불을 붙일 열기가 숨 쉰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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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심야와 손대현 - < Moonshine >

 

이것은 패배의 기록이다. 야망으로 가득했던 젊은 래퍼가 (< KYOMI >) 현실의 무관심에 좌절한 후, < Language >로 격렬한 분노를 쏟아내 보았지만 끝내 공허한 황무지에서 구도의 길을 걸어가는 작품이다. 저항과 언더그라운드를 외쳤던 한국 힙합은 거대한 연예 기획사가 됐고, 유명하지 않은 래퍼, 제도권에 목매지 않는 래퍼는 '팔리지 않을 앨범'을 만든다.

 

XXX의 김심야와 TDE 레코즈의 손대현(D.Sanders)는 자본과 미디어에 종속된 한국 힙합 씬에서 철저히 이방인이다. '안 먹히는 음악을 왜 할까나? / 그것밖에 못하니까'라는 자조와 푸념은 '지금 은퇴해도 내 위치는 Locked and good'처럼 굳은 자신감과 실력이 가능하기에 정당성을 확보한다. 고요함 속 이따금의 분노를 내비치는 손대현의 비트와 누구도 말하지 않는 메시지를 거칠고 유려한 플로우로 선보이는 김심야의 랩은 영화 <매트릭스> 속 한 장면처럼 진실의 빨간약과 순응의 파란 약을 교차 제시한다. < Moonshine >은 오래도록 화자 될 패배의 기록이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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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OY - < Love >

 

이스턴 사이드 킥과 스몰오 출신의 로커 오주환이 좇은 새 시대의 밴드 사운드는 신시사이저 맨 지(ZEE)를 만나 형체를 잡았다. 어디서 들어본 듯, 설령 지구상 최초는 아니더라도 매우 독자적으로 구축한 아도이의 '신스팝' 프레임은 꽤 높은 감화력을 자랑한다. 아마도 그 신스팝은 베이스(정다영)과 드럼(박근창) 그리고 오주환의 기타에 의한 '전통의' 록 질감과 융(融)한 덕분에 오히려 더 든든한 '힙' 프로듀스가 가능했을 것이다.

 

수록 곡 여섯의 EP지만 'Wonder' 'Blanc' 'Bike' 'It doesn't even matter' 등 제각각 다른 것은 록이 똬리를 틀고 있어서라고 풀 수밖에 없지만 모두 흡입력을 발하는 것은 '흘려듣든 집중해서 듣든 음악은 들려야 한다!'는 팀 비전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고막OST'가 먹히는 시절을 응시한 멤버들의 '시대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대중적 시선은 부진한 가운데서도 주목할 인디의 출현을 만들어냈다. 때를 알아야 때가 되는 결과물을 얻는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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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떤 곡으로 2018년을 기억하게 될까. 올해도 셀 수 없이 많은 싱글이 발표됐고 그 중 히트한 곡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 곳곳에서 누군가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울고 웃고, 분노하면서도 공감하며 즐거움을 선사한 2018년의 싱글 10장을 선정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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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미손 '소년점프'

 

누군가 케이팝의 미래를 묻거든 고개를 들어 마미손을 보라!

'소년 점프'가 힙합이라고? 무슨 소리. 팝도 힙합으로 대체된 마당에 케이팝의 종합 컨텐츠 적 성격까지 고려하면 '소년 점프'는 단연코 올해의 '가요'다. 공원 운동기구 위에서 좀비처럼 흔들리는 마미손, VHS 방식의 비디오 프레임, 1980년대 청춘 드라마와 스포츠 만화를 떠올리게 하는 각종 효과, 노래방 배경화면, 한국 특유의 광적인 기독교 문화 등 뮤직비디오는 대한민국 그 자체다.

 

이뿐만이 아니다. 김장을 하면서 "돌 맞은 개구리처럼" 울부짖고,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며 김성모 만화의 유명한 대사를 외치는 마미손의 가사는 한국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밈(meme)으로 가득 차 있다. 쇼맨십, 엔터테인먼트, 여기에 < 쇼미더머니 > 탈락 서사까지, 마미손이 준 아이돌이 아니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배기성의 유쾌한 마초이즘과 강렬한 록 사운드가 만난 '소년 점프'는 한국의 런 디엠씨 타이틀을 노리는 마미손의 큰 그림일지도 모른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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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후 '이방인'

 

인생이 힘들고 슬프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수록 느끼는 삶의 진리다. '이방인'은 이 사실을 진실로 일깨워주는 빛나는 싱글이다. 절망을 희망으로, 좌절을 용기로, 어둠을 광명으로 인도하는 '이방인'은 오늘도 힘든 우리를 다시 분기탱천하게 만든다. 슬프고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발현되는 긍정과 용기는 록 밴드 뷰렛과 다른 음악을 하고자 했던 문정후의 결단과 맞닿아 있다. 힘들고 슬플 때 들어야 하는 '이방인'은 씻김굿 같은 노래다.(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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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 'April Fools(0401)'

 

'히트하는 음악보다 나만의 음악으로 감정을 공유하고 싶다'는 박지민의 다짐이 담겼다. 긴 공백기에 조급하지도, 새로운 시도에 대한 강박으로 과하지도 않았다. 차분한 감정선으로 출발해 특유의 탄력적인 보컬 역량을 선보인 'April fools(0401)'는 '좋은 음악'을 고민하는 젊은 아티스트의 절제가 인상적이다. 폭발적 고음과 가창력을 쏟아내던 어린 소녀가 '참아내는' 매력을 깨친 것이다.

 

본인의 경험을 소재로 삼아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한 이 곡은 제목의 '만우절 농담'과 배치 되는 깊은 잔향으로 빛난다. 퓨처 알앤비의 유행을 수용하면서도 마니아적 감성에 치우치지 않고, 대중성을 확보하면서도 오디션 프로그램의 고정 관념을 자연스럽게 허문다. 무엇보다 '박지민의 음악'이란 점이 고무적이다. 성장과 가능성을 본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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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미 '사이렌'

 

'사이렌'으로 자신의 역량을 발산한 선미는 올해 가장 인상적인 여성 솔로 가수로 남았다. '가시나'로 경고 3부작의 시작을 화려하게 열었던 그는 '주인공'에서 표절 논란을 겪자 작곡가가 만든 곡을 받는 대신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한 곡으로 대중의 마음을 잡는 데 성공한다. 선미 특유의 무심하면서도 파워풀한 색깔이 묻어난 이 곡으로 퍼포머로서, 가수로서, 하나의 아이콘으로서 독보적인 위치에 오르게 됐다.

 

복고 콘셉트가 중심이던 원더걸스 활동 당시 써둔 이 곡은 1980년대 유행 장르였던 디스코, 신스팝의 향기를 머금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유혹의 요정과 경고를 알리는 '사이렌'을 뜻하는 제목답게 경고음의 배치, 극적 전개가 돋보이는 비트, 레트로 스타일의 신시사이저와 같은 세밀한 사운드 설계가 뮤직비디오 속 퍼포먼스와 만나자 더욱 빛을 발했다. 거부할 수 없는 매혹으로 많은 이가 '사이렌'에 빠져든 2018년이었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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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도미닉 '데몰리션 맨 (Feat. 김종서)'

 

7년 만의 정규앨범 < Darkroom >이 음악 커뮤니티의 댓글 창을 수놓았던 '일해라 정기석'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되지 못했을지라도, 수록곡 '데몰리션 맨'은 기대감만큼이나 강렬한 인상을 남긴 트랙이다. 긴장감이 흐르는 비트에 올라선 그는 신랄한 테크닉을 갖춘 래퍼 혹은 유쾌한 연예인이 아닌 인간 정기석의 내면을 가감 없이 꺼내 보인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처절한 서사를 토하듯 쏟아내는 곡은 한 아티스트에 감정에 대해 몰입하게 되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가 겪었던 정신적인 고통에 대한 충격적인 묘사와 연기에 가까운 래핑이 훌륭한데, 그중에서도 시퍼런 목소리로 노래하는 김종서의 피처링은 2018년의 신의 한수라 할 정도로 압권이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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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 '나'

 

발라드는 두 가지가 없으면 힘을 쓰지 못한다. 하나는 다수의 공감을 창출하는 가사 그리고 그것을 듣는 이에게 전달하는 앰프의 성능, 스피커의 질이다. 먼저 스피커로서 박원은 이력을 축적해 획득한 표현력, 이를테면 음색과 음량의 조절 그리고 그 선택이라는 앰프의 충실한 기능에 기저한 발현이라는 점에서 여느 R&B 발라드부류보다는 진실하고 우월하다.

 

그래서 두 번째인 여전한 불평등과 소외라는 고단한 현실 속에서 '몇 번을 깨져도 같은' 젊은 세대의 자기불신과 회한을 담은 서러운 노랫말이 즉각적 동의를 구하는 것이다. 하루를 정리하며 '내가 왜 이렇지?' 해본 사람이라면 가사가 마치 아교처럼 가슴에 달라붙는다. 넋두리와 고백이 수놓은 절실 언어의 개가, 실감나는 가창력의 승리라할 2018 발라드의 정점.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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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Good boy twist'

 

오늘날 청춘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나 옛 거장들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 독특한 밴드는 'Good boy twist'로 시대적 고민을 그려낸다. 1992년생 원숭이(잔나비)띠 멤버들로 구성된 이들은 비틀스와 브릿팝, 트위스트 열풍을 간직한 1960년대 당시 경쾌함을 밴드 고유의 작법으로 여기에 풀어냈다. 부담 없이 다가오는 서정적인 선율, 유행과 거리가 있을지라도 좋아하는 장르를 밀고 나가는 끈기도 갖췄다.

 

2018년에는 '대충 살자',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는 외침이 유독 많았다. 굶주림, 치열함,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춤을 추는 자를 따라갈 것인가, 미련하게 보일지라도 이전 삶의 양식을 유지할 것인가. 옳다고 여긴 가치관이 과거의 유산임을 깨달았을 때 그 허무함. 밴드는 그들의 정체성과 현세대가 마주한 번민을 이 곡으로 응축해낸다.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는 것만으로도 올해의 싱글이 되기에 충분하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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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월 '로맨스'

 

선율에 굶주리고 언어에 굶주린 사람들에게 김사월은 오아시스다. 그래서였을까. 2018년은 그야말로 '사월의 해'였다. 그 중심에 '로맨스'가 있었다. 시간을 한참 뛰어넘은 고전적인 블루스 사운드 위로 나른하게 읊조리는 보컬은 우리를 전혀 다른 세상으로 데려간다. 달콤한 몽롱함 속에서 한층 따뜻해진 언어가 반짝인다. '너무 많은 연애' 너머의 로맨스는,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우리를 돕자는 따뜻한 연대의 손길로 나아간다. 여기에 탁월한 선율과 고혹적인 음색을 더하니 공명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옷을 걸쳐도 자신만의 향기를 잃지 않는 감각에 놀라고, 그 독창성이 굉장히 편안하게 다가온다는 데서 또 놀란다. 뚜렷한 개성과 넓은 확장성이 만나는 그 지점에 김사월 음악의 힘이 있다. 음악에서도 언어에서도, 치열할 정도로 김사월은 아무도 내쫓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고 모두를 품기 위해 자신을 속이지도 않는다. 진솔함에서 우러나온 가장 안온한 위로. 그렇게 그는 올해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고요히 열었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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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정화 'Ending credit'

 

제2의 누군가가 아닌 제1의 엄정화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준다. 건강상의 이유로 장기간 활동을 접고 목소리 사용을 일절 금하던 그가 들고나온 노래는 그 어느 때보다 진솔하고 솔직했으며 그래서 더 멋있었다. 레트로 신스팝 장르에 '너와 나의 영화는 끝났고', '관객은 하나둘 퇴장하고', 엔딩 크레딧만이 영화관을 가득 채우는 이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사랑으로, 이별로, 그리고 인생으로 자리한다.

 

정규 10집 기준,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타이틀 'She' 대신 이 곡을 올해의 싱글로 선택한 것은 'Ending credit'이 퍼트리는 반짝임 덕택이다. 소소한 반응을 일으킨 뮤직비디오 속 여전히 화려한 춤사위와 당당한 스탠스는 다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여성 뮤지션의 주체성을 드러낸다. 언제나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엄정화의 이 곡은 복고 성향이지만 절대 퇴행이 아니다. 잘 짜인 구성과 완벽히 맞아 들어가는 무대 매너가 빛을 발한 올해의 대표 싱글.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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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온(HAON) '붕붕' (Feat. Sik-K)

 

꿀벌 옷을 입고 무대 위로 등장한 그는 멋쩍은 웃음을 짓다 이내 입을 열었다. '안녕, 나를 소개하지. 이름 김하온, 직업은 traveler' < 고등래퍼 2 >를 통틀어 가장 큰 인상을 남긴 장면이다. 가사에서 증오를 뺀다는 독특한 캐릭터의 등장, 타이트한 랩과 뛰어난 전달력까지 겸비한 18살 소년 김하온은 '매운 맛'으로 점철되던 힙합 씬에서 보기 드문 '순한 맛'으로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자신과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 래퍼 빈첸과 함께한 '바코드'도 큰 주목을 받았지만, 김하온의 지향점을 잘 표현한 곡은 '붕붕'이다. 작년에 이어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있는 프로듀싱팀 그루비룸의 트렌디한 비트와 긍정적인 바이브를 내뿜는 김하온의 래핑, 식케이의 훅 등 '붕붕'의 매력은 다채롭다. 신예의 탄생을 강력하게 어필한 2018년의 히트 넘버!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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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여름가을겨울 전태관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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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진과 전태관의 팀 '봄여름가을겨울'은 처음으로 재즈 록을 가요에 이식하려 했고 연주곡으로 가요 영토의 확장을 꾀했던, 문화다양성의 실천주의자였다. 당시론 제작하기 까다로운 라이브 앨범에도 덤벼들었다. 그들의 이력 30년은 '실험과 돌파'였다. 드러머 전태관의 암투병소식을 전하면서도 그들은 끊임없이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음악에 헌신했다. 고 전태관의 명복을 빌며 SSAW의 사시사철 명작 10곡을 뽑았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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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지긴 정말로 싫어 (1988)


봄을 청각화한 연주곡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에 이은 두 번째 곡이다. 잔향을 머금은 신시사이저와 블루지한 일렉트릭 기타 선율이 봄의 새로움과 겨울의 끝, 즉 한 해의 종착에서 오는 아쉬움을 동시에 포착한다. 정규 1집 < 봄여름가을겨울 > 그중에서도 첫 시작을 밝고 긍정적인 기조로만 채우기보단 한 걸음 뒤에서 관망하고 관조한, 삶의 양가적 모습을 들려주는 이 트랙은 먼저 떠난 전태관과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곡이 아닐까? “떠날 때는 아쉬움이, 보낼 때는 허전함이 남아” 당분간 놓지 못할 가사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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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1988)


사람들은 모두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회한 가득한 목소리로 '변한 우리'를 가만히 곱씹으며 봄여름가을겨울은 노래한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 너도나도 변했으니까.” 변해 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변치 않음의 소중함. 봄여름가을겨울이 우리에게 선물해준 건 그런 위안이었다. 우리는 이 노래와 함께 쓸쓸해했고, 이 노래와 함께 이겨냈다. 참 고맙고 따뜻한 사람. 변하지 않는 그곳에서 변함없이 행복하길.(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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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친구 (1988)


정규 1집은 사계절을 특징으로 잡아 서술된다. 그중에서도 '보고 싶은 친구'는 어딘가 서글프고 향수 어린 선율만치나 가을을 담당한다. 담백한 피아노 반주 위로 재지한 베이스가 더해지며 확장되는 이 곡은 결성 당시 잠시나마 함께했던 故 유재하를 그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대가 갈라선 요즘 대중음악 신에서, 혹은 퓨전 재즈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던 당대에 그룹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감정이라도 사로잡을 수 있는 서정성과 곁을 내어주고 기대게 되는 노랫말. 더는 그들을 듀오로 만날 수 없지만, 음악은 계속 남아 기억될 터이다. 이 곡이 가진 생명력과 에너지처럼 말이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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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의 꿈 (1989)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어떤 이의 꿈'을 연주하는 전태관의 모습은 누군가의 꿈이었으리라. 밴드의 이름을 널리 알린 '어떤 이의 꿈'은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리메이크되는 명곡. 섹시한 펑크(funk) 리듬, 김종진의 보컬이 뿜어내는 카리스마 등 곡의 이모저모가 모두 멋지지만 특히 귀에 강렬히 박히는 건 전태관의 드럼이다. 기본적이고 쉬운 리듬에 기반한 그의 연주는 드럼을 시작한 이들에게 한 번쯤 거쳐 가야만 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비록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누군가의 손에 드럼 스틱을 쥐여 주는 어떤 이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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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오후 (1989)


항상 듣던 음악도 기분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지금처럼 말이다. 다시 찾아 듣는 '쓸쓸한 오후'는 쓸쓸하다 못해 우울함이 넘쳐흐른다. 전주부터 구슬픈 트럼펫과 애잔한 기타 연주가 흐르더니 이내 담담한 목소리가 퍼진다. 귀에 들려오는 음악을 따라 우리 곁을 떠나간 그의 뒷모습을 떠올려본다. '지금은 텅 빈 마음과 / 슬픈 추억들 고독만 남았네'라는 가사가 진하게 다가온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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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품에 안기어 (1989)


밴드 같지 않게 참 신사답고 젠틀한 팀이라 생각했다. 유쾌하고 희망적인 노래 'Bravo, My Life!'의 영향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인자한 인상, 특히 드러머의 무뚝뚝함과 먼 전태관의 선한 웃음이 기억난다. '내 품의 안기어'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면이 담긴 발라드이자 느릿한 리듬 속에서도 전태관의 연주를 명확히 들을 수 있다. 후렴이 아닌 비가 오는 날이면 창밖을 바라보며 행여 내 님 오실까 이 도입부를 더 좋아한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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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1992)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10년 전 일기를 펼쳐본다는 건 참 설레는 일이다. 전태관의 드럼 연주를 들을 때도 그렇다. 은은히 퍼지는 신시사이저를 드럼으로 섬세히 감쌀 때면 음악을 대하는 상냥함이 묻어 나온다. 세상은 그리 어둡지 않고, 어제의 힘든 일은 모두 지나갈 뿐이라 말하는 낙천적 외침은 그의 미소와 닮아있다. 미국으로 직접 나가 공들여 작업한 앨범에 수록된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는 특유의 소박한 온기로 많은 이의 마음을 지금도 위로해주고 있다. 기뻐하며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 그에게 이 곡을 부친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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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또 다른 안녕 (1992)


30년이 넘도록 한국 음악의 한 축을 묵묵히 떠받쳐 왔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두 멤버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평생의 동지다. 남은 이의 크나큰 슬픔 앞에 감히 어떤 말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다만 오래전 가없는 쓸쓸함을 들려준 어느 노래의 한 구절을 떠올려본다. “헤어져도 소중하니까.” 김종진에게 더없이 소중했던 친구 전태관. 우리에게도 그는 '헤어져도 소중한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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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를 위하여 (1992)

 

'친구라는 이름이 너무 거창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에게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

봄여름가을겨울의 실험이 절정에 달했던 네 번째 정규 앨범 < I Photograph To Remember >의 수록곡이다. 7분에 달하는 재즈 넘버로, '노래여 퍼져라'나 '영원에 대하여'만큼의 인기를 얻은 곡은 아니었다. 이 곡을 선정한 이유는 유려한 색소폰 연주나 비유로 가득한 가사 때문이 아니다.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낸 한 남자가 '소중한 그대여 다시 내게로 돌아와 / ... / 영원한 축복 함께 하기를'이라 노래하는 장면이 그려졌고, 많이 서글펐던 탓이었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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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vo, my life (2002)


학창 시절 내 담임 선생님은 항상 조례시간에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틀어놓으셨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짧지 않은 시간을 달려왔고, 또 앞으로 달려야 할 우리를 위해 기꺼이 말씀을 아끼시고 노래로 그 마음을 대신하곤 하셨다. 드러머 전태관. 그는 30년의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리고 그의 바통은 이제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삶의 굴곡이 담긴 거친 손으로 등을 떠밀어준 그 덕분에 나 또한 이 긴 여로에 오를 용기를 얻었으므로. 전태관은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남기고 자신의 여정을 마쳤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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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봄여름가을겨울 전태관, 그의 인터뷰로 보는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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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채 한달이 되지 않은 2018년 12월 27일, 봄여름가을겨울의 드러머이자 ‘뮤지션들의 뮤지션’ 전태관이 오랜 투병을 마치고 하늘로 돌아갔다. 한국을 대표하는 드러머였던 전태관, 이제는 먼저 간 동료들과 하늘에서 합주를 하고 있을 테지만 그의 음악은 언제나 우리 마음에 남을 것이다. 그를 기리기 위해 2009년 이즘이 봄여름가을겨울과 진행한 인터뷰를 싣는다.


2008년 발표된 중견 그룹 봄여름가을겨울의 신보 <아름답다 아름다워>는 마니아, 뮤지션, 평론가를 중심으로 반향을 얻었다. 20주년 기념음반으로서 세월, 경력, 다소 고집스러울 정도의 '기본 추구'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 자신들도 “타임리스(timeless) 앨범을 만들려는 욕구가 강했다”고 말했다.

 

중견으로서의 관록을 보여준 그들을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났다. 마실 것을 주문하고 테이블을 모아 자리를 정리하는 동안, 안부 겸 소담스럽게 데뷔 시절을 환기했다. “88년 이 무렵에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가 나왔지 아마?” “벌써 20년이네..” 지난 2004년에 인터뷰를 위해 한 번 만났던 것을 회상하며 다시 한 번 인사를 나눈 뒤,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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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만드는 앨범이고, 사실 이제 나이도 좀 들었습니다. 고참 밴드로서, 형님 밴드로서 뭔가를 던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을 것 같습니다.

 

전태관 : 녹음 방향은 어쿠스틱으로 잡았어요. 그리고 어쿠스틱 내에서도 복고적으로 가보자 했어요. 지금 사람들이 너무 자극적인 걸 선호하는데 우리는 그런 것 자체가 싫어요. 히트는 고려 안 했어요. 해주면 좋긴 한데, 음악이라는 게 히트시킨다고 작정해서 만든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최선을 다해서 그냥 복고적으로 가는 거였어요.

 

김종진 : 결론적으로 시작점은 간단해요. 요새 너무 다들 힘들다고 하는데 우리는 사실 몰랐어요. 왜냐 음반 안 내고 있었으니까. 근데 다들 힘들다고 그러는 것이 그리 좋아보이진 않았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이 왜 그냥 본분 지켜서 음악 하면 되지, 왜 자꾸 힘들다고 그러고 제작비가 안 빠진다고 그러고 그러는 거야. 안 빠지면 제작비를 줄여서라도 하면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얘기했어요.

 

김종진 : 자꾸 짧아지더라고요. '앨범' 중심에서 '곡' 중심으로 가고, 곡도 전에는 2달을 활동했는데 이젠 2주 만에 다른 곡으로 가고. '아... 완전 그냥 수렁으로 빠져가는 구나', '니들이 완전 맛이 가고 있구나..' 그 생각이 딱 들면서 '음악은 20년 들으려고 만들어야 되거든?' 그런 걸 딱 한 방 던져주고 싶었어요.

 

싱글로 커트되진 않았지만, '사랑은'과 '그대는 나의 평화'가 정말 좋았습니다. 특히 이른바 '뽕' 멜로디가 아닌 바에야 '사랑은' 같은 멜로디가 멜로디로서는 가장 상급이 아니겠는가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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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관 : '사랑은'은 방송국 PD나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이 얘기하세요.

 

김종진 : 아주 심혈을 기울였고, 자부심을 갖고 있는 곡이에요. 완성품이 나왔을 때 '우리는 해냈다', '이 정도면 기존에 존재하지 않던 멜로디고, 그러면서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 그러면서 하이 파이프를 쳤어요. 악상은 이미 2000년에 나왔어요. 피아노 테마를 떠올렸는데 마음에 들었어요. 그런데 멜로디 전개를 못 시키겠는 거예요. 그러다가 가사가 나오면서 곡이 밝아졌어요. 그 후로 시간이 가면 갈수록 다들 '사랑은'을 꼽으세요.

 

'사랑은'의 가사는 아내인 이승신 씨가 썼던데요.

 

김종진 : 와이프는 가사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었어요. 제가 얘기를 하다가 기억에 남은 걸 메모했어요. 와이프는 자기가 말해놓고도 자기가 한 말인지도 몰라요. 음반이 나오고 모니터를 할 때쯤에, 자기는 이 노래가 최고래요. 그 때 고백을 했죠. “바보야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거 아니야?”했더니 처음 듣는대요. “네가 한 말이야” 그랬더니 막 울더라고요.

 

김종진 : 와이프가 해준 놀라운 얘기들이 많아요. 방송에서 '4차원 주부'라고 하는데, 정말로 굉장히 대단해요. 실제로 그렇게 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나는 당신하고 결혼했을 때 결혼식장에서 기분이 덩크 슛을 했을 때의 기분이야”, 어느 날은 침대 위에 올라 와서 갑자기 생각난 듯이 “지금 나는 내 인생의 상쇄기에 와 있어”, 그럴 때 제가 망치로 꽝! 맞는 거예요. 내가 작사가라고 하는 사람이 깨지 못했던 벽을 깨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노랫말로 쓴 거예요.

 

김종진 : 맨 처음엔 잘 몰랐는데 나는 알고 보니까 사람들의 것인 거예요. 음악가의 인생이라는 게 운명이잖아요. 재능을 하늘에서 준 거고, 그건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라고 준 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광대 노릇하면서 위로하라고 주신 재능이라고 절대 믿어요. 그래서 저는 항상 사람들의 노래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연예하고 결혼을 하면서 와이프가 “어머 오빠 이번에 음반 내면 우리 사랑 노래 하나 들어있는 거야?” 그러는 거예요. 그게 엄청 부담인 거예요. 그 사람은 나의 이런 걸 잘 모르잖아요. (웃음) 그걸 극복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어느 날 하루는 냉정하게 얘기를 했어요. “나는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내 노래를 하면은 사람들은 그 때 동을 돌린다” 그런데 다행히 이해를 해주더라고요. 태관한테 제안을 했어요. 우리 이번 음반은 철저하게 세상 사람들의 얘기를 하자. 그랬더니 좋다고 하더라고요.

 

'순이야'를 들으면서는 이게 원래는 '신이야'(이승신)일거란 생각도 해봤습니다.

 

김종진, 전태관 : 새로운 학설이 또... (웃음)

 

전태관 : 그 노래는 진짜 재밌는 스토리가 있어요. 최백호 씨 노래 중에 '낭만에 대하여'가 있어요. 종진이가 되게 좋아하거든요. 노랫말 가사 중에 '지금 고향에 두고 온 순이는 뭘 하고 있을까'가 있는데, 그 순이가 이 순이인 거예요. 근데 사실은 그 가사가 '순이'가 아니라 '소녀'인데, 자기는 여태까지 계속 잘못 듣고 '순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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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 선생한테 가서 얘기도 못 하겠네요 이거. (웃음)

 

김종진 : 태관이는 또 “이 노래가 타이틀이다!”하면서 자기가 제일 좋아한대요. (웃음) 태관이도 감동 무지 받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가사를 보고 오더니 “야.. 이상하다 이거 순이가 없는데?” 가사 올리려고 봤다가 그 때 알았어요. 그래서 최백호 선배님에게 바치는 곡으로 하려다가 빠졌어요.

 

타이틀곡을 '슬퍼도 울지 않을 거야'로 가는 이유는 뭔가요?

 

전태관 : 우리가 유일하게 취한 상업적인 액션이 바로 이건데, 우리가 타이틀을 정하지 않았어요. 그냥 “사람들마다 좋다는 것들이 다르고 그랬으니까 우리가 정하지 말자” 했어요. 철저하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로 밀자 했어요.

 

전에 2004년에 인터뷰했을 때 봄여름가을겨울의 문제점 중 하나는 김종진 씨의 보컬 문제라고 얘기한 적이 있습니다. 전태관 씨가 보기엔 어떤가요.

 

전태관 : 김종진 씨 보컬이 잘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굉장히 매력 있어요. 어느 정도 어눌하고 그렇지만 느낌만큼은 다른 사람이라면 못 살리는 것 같아요

 

이번 앨범은 코러스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80년대 말과 90년대 통했던 김종진 씨의 보컬이 지금 그대로 가져오면 생경한 게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도 스윗 소로우를 잘 활용했어요. 혹시 스윗 소로우를 참여시킨 것이 보컬에 대한 고민이 아닐까 했는데요.

 

전태관 : 스윗 소로우를 이번에 쓴 거는 괜찮은 아이들이라고 생각해서에요. 라디오를 4년 동안 할 때 2년 정도 스윗 소로우가 계속 게스트를 해서 친해졌어요. “음반 내시면 저희도 좀 도와 드릴게요” 해서 약속을 했었어요.

 

오르간 주자 김효국의 연주도 주효했다고 봅니다. 김효국은 어떤 이유에서 참여했고, 어느 정도 음반에 영향을 주었습니까.

 

전태관 : 이번 앨범의 방향은 옛날 사운드, 그 중에서도 1960, 1970년대 쪽으로 가자 였어요. 그래서 이 오르간 소리를 끌고 온 거예요.

 

김종진 : 매우 중요했죠. 이 음반은 베이스 기타, 키보드, 우리 둘(보컬, 드럼) 이렇게 '4명의 밴드'라고 생각하고 만들었어요. 효국 형은 2집 때부터 역할이 크셨던 분이에요. '어떤 이의 꿈'에 무그 베이스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에요. 계기는 송홍섭 형의 추천이에요. 키보드 연주자로서 다 사람들은 개성이 있지만 효국이 형은 굉장히 독특하다고요. 이 사람은 그냥 녹음실 딱 가면 미리 소리 잡고 있고, 뭐가 안 되면 될 때까지 한대요. 그렇게 집요한 거예요. 그런데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집요하게 해서 완성도를 높이는 사람이 맞다고 봐요. 그런 면에선 효국형 같은 분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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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은 김종진 전태관 2인조가 아니라, 4인조 밴드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전태관 : 4, 5곡 정도는 오케스트라를 넣었어요. 그런데 다 넣어 보니까 안 나오더라고요. 맛도 안 나요. 그냥 돈만 내고, 녹음 다 해놓고 다 지워버렸어요.

 

김종진 : 우리는 오케스트라를 써도 옛날 필라델피아 사운드처럼 멜로디가 딱 나와야 되는데, 이상하게 자꾸 코드로 가려고 하더라고요. 웅장하게 가려고 하고.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건 그게 아니거든요. 오케스트라가 주가 되고 노래는 부가 되고 그래서. 한 1500만 원 이상 썼는데 빼자고 하니까 태관이도 딱 놀래더라고요. (웃음)

 

어떤 곡들에 들어갈 예정이었나요.

 

김종진 : '그대는 나의 평화', '사랑은', '슬퍼도 울지 않을 거야', '자줏빛 와인과 그녀의 웃음'도 들어갔어요.

 

전태관 : 대중들은 딱 알잖아요. 오케스트라 들어가고 안 들어가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귀에 잘 들어오냐 안 들어오냐가 중요한 거니까.

 

지난 인터뷰 때 제가 봄여름가을겨울은 기본적으로 '외로움'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김종진 씨가 그게 '경쟁력의 요체'라는 말까지 했는데요. 그런데 이젠 두 분이 나이가 40이 넘어서 그런지 (웃음) 낙관적이고 관조적이고 수용하고, 긍정하는 느낌으로 노랫말이 바뀌었습니다. 물론 약간 남아있긴 한데... (웃음)대체로 그렇게 바뀐 건 나이 탓인가요 아니면 사고의 조정인가요.

 

김종진 : 환경이겠죠. (웃음) 지금 행복해요. 그리고 행복하니까 사람들한테 좀 나눠주고 싶었나 봐요.

 

행복함이라면 가정적인 것도 포함되나요?

 

김종진 : 네. 그게 저를 위로해주고 있거든요. 일본에 게스트로 갔다가 TV에 나갔던 때 일인데, 사잔 올스타즈의 케이스케 쿠와타라는 뮤지션이 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무대에서 내려오기만 하면 완전히 공황증에 걸린 사람처럼 '하이', '하이' 그것밖에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팀에 키보드 치는 여자 분이 부인인데, 부인이 옆에서 손을 딱 잡아 주면 조금씩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걸 보고서 '정말 저 커플은 대단하다...' 굉장히 성스러워 보였어요. 재능이 있는 어떤 사람을 부인이 서포트해주면서, 컨트롤해주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게요. 약간 제가 그런 부인을 만났어요.

 

김종진 : 스스로 그런 식으로 위로를 받아요. 음악가로서 저는 늘 위로되지 않는 스스로의 고민을 계속 했었거든요. 표현은 못 했지만. 굉장히 속에서 독설이 흐르고 있었어요. 누가 무슨 음반을 냈다고 하면 잠깐 들어 보고서 '그래 너 이따위로 밖에 못하는구나' 진짜 막 던지고 그랬어요. 연주하는 재즈 후배들도 외국에 재즈 음반 나오면 지금도 죽이거든요. 과거를 뛰어넘으려고 하는 노력들도 보이고. 그런데 우리는 아무도 음반도 안 내고 구석으로만 숨고. 그런 것들이 싫고 밉고 그랬어요. 화가 났어요. 고통스러웠고. 내가 힘들게 고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와이프를 만나고 나서, 와이프가 지혜로운 위로를 많이 해요. 적어도 위로가 안 될 때는 '괜찮아 여보' 그리고서 '이리 와' 그리고 마치 엄마처럼 저를 확 안아줘요. 안기잖아요? 그러면 뭔가 안도가 돼요. 그러니까 세상 사람들로부터 약간 격리되어 있던 그런 것이 약간 누그러지는 그런 경험을 했어요. 그러면서 음반이 나왔어요.

 

이번 앨범에 대해서 이렇게 들었으면 좋겠다 한마디 해주세요.

 

김종진 : 음질에 있어서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어떤 사람들은 “소리가 너무 부드러워요. 봄여름가을겨울 변했어요” 그러시기도 하는데, 억대 오디오를 갖고 있는 선배님들은 “야 이 시끼들 진짜 해냈다” 그러면서 이걸 LP로 내라고 해요. 한국에 이런 음악이 있다는 걸 오디오 시장에 던져 보자고 해요. 음질도 굉장히 좋다라는 걸 알고 좋은 오디오로 한 번 들어주시기 바래요.

 

두 사람은 다음 스케줄이 바로 있어 자리에서 빨리 일어나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직 대화의 여운이 가시질 않아 여러 주제의 짧은 대화가 오고 갔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을 여기에 적어본다. 요지는, 앨범에 대한 좋은 평가가 고맙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이 날 대화의 분위기를 가만히 되새기다가 이 말이 결국은 지금의 음악계에 대한 반작용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얘기하면서 느꼈지만 선배님 같은 분들이 있어서 저희가 보람을 느낍니다. 열심히 연습해서 무대에서 딱 했을 때 와~~ 하면 보람이 있잖아요. 그런데 연습 열심히 했는데 사람들이 뭔지 몰라서 멍하게 있으면 자꾸 연습을 안 하게 돼요”

 

전태관씨를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인터뷰 : 임진모
정리 : 이대화
사진 : 서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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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화이트’ 그래미, 이번에는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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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아니 몇십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화이트' 그래미의 칭호는 더 이상 예사의 것이 아니다. 근래만 보더라도 지난 59회 시상식에서는 '아델 밀어주기'로, 작년 60회에는 '브루노 마스 몰아주기'로 여러 음악 팬들의 인상을 찌푸리게 했던 그래미의 행보는 이제 단순히 '백인 우월주의'란 비난을 넘어, '권위'를 잃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시청률 회복을 위해 상당 기간 LA에서 진행하던 시상을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으로 옮겨 더 화려한 무대를 도모했으나 그럼에도 시청률이 전년 대비 21% 하락한 작년의 사례가 그 반증이다.

 

혁신과 퇴행의 갈림길 앞에 선 그래미에 변화가 감지된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1. 여성 2. 유색인종 3. 39세 이하의 900여 명의 선거인단을 대폭 수용하고, 4개 본상 부문 후보를 기존 5에서 8로 늘리며 '다양화' 수거에 열을 올렸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작년 로드, 줄리아 마이클스를 제외하고 본상(신인상 미포함)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여성 뮤지션의 이름이 올해는 카디 비,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자넬 모네로 늘어났고, 마찬가지로 지난해 3명에 머물던 여성 신인상 후보가 이번에는 8석 중 6개의 자리를 채우며 어깨를 폈다. 그 어느 때보다 분주히 준비를 마친 제61회 그래미가 올해에는 달라질 수 있을까.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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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 Of The Year

 
그래미는 지난해 고배를 마신 켄드릭 라마의 이름을 3개의 제너럴 필드에 모두 (신인상 제외) 올렸다. 그가 진두지휘한 'All the stars'와 레이디 가가, 브래들리 쿠퍼가 부른 컨트리 포크 'Shallow'까지 영화 OST만 두 개인 셈이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가 <스타 탄생>의 삽입곡 'Evergreen'으로 제20회 그래미에서 '올해의 노래' 상을 받았기에 'Evergreen' 서사가 재현된다 한들 그리 놀랍지는 않다. 장르적으로는 비슷한 계열의 포크 아티스트 브랜디 칼라일의 'The Joke'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두 영화 음악의 대결 구도 외에도 주목할 만한 후보들이 있다. 도널드 글로브(차일디시 감비노)는 'This is America' 뮤직비디오를 통해 총기 소지와 인종차별 등 미국의 아킬레스건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This is America'가 사회, 정치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곡임에는 분명하지만, 과연 그래미의 입맛에 맞을지는 의문이다. 제이스 할리의 노래 'American Pharaoh'와의 표절 문제도 중요한 변수다.

 

상업적 성취를 이룬 후보군도 보인다. 드레이크의 < Scorpion > 앨범과 'God's plan'을 비롯한 싱글들이 줄줄이 차트 기록을 갈아치웠고 신예 엘라 마이의 'Boo'd up' 역시 크게 주목받았다. 제드와 마렌 모리스의 'The middle'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The middle'은 컨트리 아티스트가 EDM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그래미의 사랑을 받을 여지가 충분하다. 장르적 균형을 위한 숀 멘데스의 'In my blood'까지 후보에 오르며 후보군의 스펙트럼은 넓어졌다. 수상 후보를 8명으로 늘렸기에 그나마 이 정도라는 찜찜함은 남았지만,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여느 때보다는 풍성해 '보이는' 후보 목록이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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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 Of The Year

 
최근 몇 년간 이 부문에서는 그래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상업적으로 성공한 뮤지션이 상을 받았다. 대표적으로 브루노 마스와 아델이 있다. 이번에는 어떨까. 가장 미국적이면서 그래미 취향에 가까워 보이는 'The joke'가 유력한 후보일까? 브랜디 칼라일이 주로 진보적 메시지를 노래해 왔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겠다. 그가 아니면 'The middle'을 부른 컨트리 가수 마렌 모리스의 편을 들어줄지도 모른다. 라틴 열풍을 이어가는 'I like it', 빌보드 차트 장기 거주자 드레이크의 'God's plan', 힙합 신의 새로운 스타로 주목받는 백인 뮤지션 포스트 말론의 'Rockstar'도 흥행 측면에서는 만만치 않은 경쟁자들이다.

 

지난번에도 리스트에 오르긴 했으나 본상에서 고배를 마신 뮤지션들의 이름도 보인다. 'This is America'로 오늘날 미국 사회를 보여준 차일디시 감비노의 수상을 이번에는 기대해도 되는 걸까. 2018년 화제의 영화에 삽입된 2곡도 눈길을 끈다. < 스타 이즈 본 >에서 활약한 레이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의 'Shallow', < 블랙 팬서 > 앨범으로 대중의 마음을 흔든 켄드릭 라마는 작년 신인상 후보에 오른 시저와 함께 'All the stars'로 또다시 부름을 받았다. 이제는 그래미가 대중음악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시상식에 맞는 품격을 갖출 때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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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Of The Year

 
최근 그래미의 '몰아주기' 경향을 고려했을 때 노래나 레코드 부문의 수상자가 앨범 부문 역시 거머쥘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자넬 모네와 케이시 무스그레이브스, 허(H.E.R)는 탈락이다. 유력한 후보는 드레이크와 켄드릭 라마, 카디 비와 브랜디 칼라일인데, 가장 무난한 결정은 지난해 브루노 마스와 'Finesse'로 합을 맞춘 바 있으며 다수의 히트 싱글을 보유한 카디 비가 될 것이다.

 

아무리 변했다 한들 그래미가 드레이크와 켄드릭 라마에게 영예를 선사할 것 같진 않다. 둘 중 하나를 정해야 한다면 < Scorpion >보단 < Black Panther >다. 오히려 아까 탈락하긴 했지만 젊은 컨트리 스타라는 슈퍼 패스를 가진 케이시 무스그레이브스, 다관왕을 노리는 브랜디 칼라일의 수상이 현실적으로 보인다. 아예 '노래 가가, 레코드 브랜디 칼라일, 앨범 케이시 무스그레이브스'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건 어떨까? 내년 시상식은 뉴욕을 떠나 컨트리 본고장 내슈빌에서 하면 되겠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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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st New Artist

 
역대 최다 후보가 맞붙게 된 신인상. 작년에 비해 백인 아티스트가 많이 올라왔고, 다른 부문과 달리 힙합 후보가 없다. 대신 팝과 록, 알앤비, (그래미가 사랑하는) 컨트리가 고루 분포해 있다. 우선 한국에서도 유명한 두 팝 가수가 눈길을 끈다. 두아 리파는 'New Rules'의 히트 이후 차근차근 성과를 쌓아 마침내 이 자리에 이르렀다. 프로듀싱과 피처링으로 이름을 날린 비비 렉사는 2018년 < Expectations >로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록에서는 레드 제플린의 후계자를 노리는 10대 밴드 그레타 밴 플릿이 출전했다. 삼형제( 1) 록커에 맞서 비욘세의 지원사격을 받는 자매 알앤비 듀오 클로이 앤 할리도 신인상에 도전한다. '어른'도 있다. 페미니즘의 메시지를 노래하는 마고 프라이스, 2016년 'Hurricane'으로 '대박'을 친 루크 콤즈가 컨트리 장르를 대표해 등판했다.

 

가장 주목을 끄는 매치는 2019 브릿 어워즈 3개 부문에도 이름을 건 조자 스미스와 '신비주의 알앤비 디바' 허(H.E.R)의 대결이다. 조자 스미스는 작년 브릿 어워드에서 평론가상을 받고, 켄드릭 라마가 지휘한 영화 < 블랙 팬서 > OST에서 'I am'을 불렀다. 작년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앨범상을 받은 허는 올해 그래미 4개 부문에 이름을 올렸다. 예사롭지 않은 격돌! 그러나 유색인종에 인색한 그래미는 언제나 '영원한 변수'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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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우여곡절 끝에 출발한 제61회 그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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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뮤지션들의 연이은 공연 보이콧과 본 시상식을 며칠 앞두고 번진 아리아나 그란데 퍼포먼스 무산 등 갖은 잡음 속에서 우여곡절 끝에 출발한 제61회 그래미는 나름대로 괄목할 만한 성과와 훗날 여러 번 회고될 지점을 만들어 내며 끝이 났다. 편향성에 대한 우려를 걷어내려는 듯 여성 뮤지션 알리샤 키스를 메인 MC로 내세웠으며, 시작부터 레이디 가가, 미셸 오바마, 제니퍼 로페즈 등이 함께 나와 '누가 세상을 지배하는가' 반문한 장면은 한쪽만 바라봐 왔던 그래미 시선이 조금 더 넓어졌음을 시사한다.

 

이 외에도 전보다 대폭 늘어난 여성 음악가의 무대와 무엇보다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차일디시 감비노의 본상 2개 부문 수상은 그래미 변화의 변곡점을 찍는다. 조금 더 날이 선, 개혁적인 메시지를 담은 자넬 모네, 카디 비 등의 수상 불발은 아쉽지만, 광막하게 퍼진 우려를 잠식시켰다는 점에서는 만족스럽다. 유명세와 인지도를 겸비한 아티스트로서 당당하게 시상자로 참여한 방탄소년단의 등장과 더불어 여러모로 인상 깊은 순간들을 만들어낸 제61회 그래미. 새바람을 향해 안정적 첫 스타트를 끊은, 그래미 결산 편을 공개한다! (박수진)

 

● Best New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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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a Lipa

대중적 인지도가 결정적이었다. '평생 한 번의 상' 신인상의 영예는 다른 후보들보다 상대적으로 널리 알려진 두아 리파에게 돌아갔다. 물론 그 인지도는 거저 얻은 게 아니다. 'Blow your mind (Mwah)'로 이름을 알리고 션 폴, 마틴 개릭스와의 협업 등으로 꾸준히 자신을 증명했다. 그런 그의 노력이 'New rules'의 대박을 낳고, 이번 신인상 수상까지 이어진 셈이다.

 

신인상뿐 아니라 실크 시티(마크 론슨과 디플로의 프로젝트 그룹)와 함께 부른 'Electricity'로 최우수 댄스 레코딩을 수상하기도 했다. 쟁쟁한 다른 후보들만큼 두아 리파도 영광의 자리에 오를 자격이 충분하다는 그래미의 공인이랄까. 조자 스미스가 개인적으로 아쉽긴 하지만, 두아 리파라면 어느 정도는 납득이 된다. 그러고 보니 이번 그래미도 여러모로 'New rule'을 보여주려 한 것 같다.(조해람)

 


 Song Of Th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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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ish Gambino 'This is America'

올해 그래미는 퍼포먼스 면에서나 후보 면에서나 유독 다양했다. 대중의 요구와 사회적 시선 그리고 원로들의 입맛을 모두 충족하려다 보니 그래미답지 않게 '재미있는' 축제가 탄생한 것이다. 흑인, 랩, 사회적 메시지. 그래미가 싫어하는 세 가지가 모두 들어간 차일디시 감비노(도널드 글로버)의 'This is America'는 선거인단 교체를 비롯한 그래미의 쇄신전략이 낳은 수혜자 중 하나다.

 

도널드 글로버는 힙합을 도외시하고 차별 정책을 펼치는 그래미에 반대해 (59, 60회 그래미를 참고하시라) 올해 모습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흑인이 랩으로 미국 사회에 일갈하는 'This is America'는 올해의 노래 상을 받음으로써 주요 부문을 수상한 최초의 랩 송 타이틀을 얻었다. 그래미가 조금만 일찍 정신을 차렸더라면 후보에 오른 아티스트들이 공연 제의를 거절하거나 수상자가 불참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너무 늦었다. (정연경)

 


Record Of Th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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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ildish Gambino 'This is America'

차일디시 감비노가 받긴 했지만, 왠지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가장 핵심적인 부문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 올해의 앨범 >에서 컨트리 가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가 수상하기 전까지만 해도 상황은 괜찮았다. 그래미가 대중음악 트렌드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데는 성공한 듯 보였으니까. 어쨌든 아무리 좋은 영화라 해도 결말이 주는 인상이 지배적인데, 그래미의 이러한 용두사미 배치가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알다가도 모를 선정 기준 때문에 삐딱한 시선이 생겨서일까. 이 곡의 독보적 화제성을 인정해 상을 준 것이지, 힙합 자체와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에 그래미가 완벽히 동의해 수여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차일디시 감비노를 포함해 불참 선언을 하는 뮤지션이 하나둘씩 생기자, 이를 잠재울 비장의 카드로 'This is America'의 손을 들어준 건 아닐까? 미국 사회에 깊이 남아있는 인종차별과 범죄를 노래한 이 곡은 다른 의미로 지극히 미국적이기에 선정되었을 수도 있겠다. 후보의 다양화 및 예상을 뒤엎는 행보를 보여주며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 그래미 시상식. 보여주기식 변화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정효범)

 


 Album Of The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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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cey Musgraves < Golden Hour >


갑자기 분위기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 길고 긴 시상식의 대미를 장식하는 결과가 또다시 컨트리 앨범으로 선정되자 일부 팬들의 격앙된 반응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미에 관심 있는 음악 팬들이라면 별로 놀라지 않았겠지만, 노미네이트 특집에서 언급했던 '젊은 컨트리 스타라는 슈퍼 패스'가 예상외로 유효했던 셈이다.

 

납득은 간다. 컨트리 사랑으로 비판받는 그래미지만 미국의 시상식에서 미국의 음악 컨트리를 보존하겠다는데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장르 이름을 떼고 봐도 < Golden Hour >는 과감하고 편안하며 잘 만들어진 수작이다. 다만 수상 과정이 묘하다. 세부 부문 수상 후 카디 비와 허는 본상을 구경하지 못했는데 케이시는 최고의 앨범을 거머쥐었다. 자넬 모네와 블랙 팬서의 투쟁보다 '안전한 저항'이 고평가 받을 것인지도 의문이다. 언제까지 미국 음악은 컨트리일 것인가. 당분간은 '갑분케'일 것 같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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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춤은 하나다, 댄스 영화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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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춤은 운명 공동체다. 가무(歌舞)라는 단어가 증명하듯 음악이 있는 곳에 춤이 있고 춤이 있는 곳에 음악이 있다. 대중음악의 태동기에도 춤은 항상 함께였다. 래그타임, 폭스트롯, 재즈, 탱고로부터 트위스트, 힙합 댄스 등 역동적인 몸짓은 대중을 열광케 했고 이는 영화와 뮤지컬 등의 매체를 통해 그 시대를 대표하는 한 장면으로 영원히 존재한다.

 

최근 영국 웨스트엔드 오리지널 팀이 내한하여 공연을 펼치고 있는 뮤지컬 <플래시댄스>를 통해 1980년대 쏟아졌던 댄스 영화들에 대한 재발견이 이뤄지고 있다. 이즘은 어떤 이에게는 과거의 추억으로, 어떤 이에게는 화려한 열정의 기록으로 다가올 인상적인 댄스 영화 11편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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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밤의 열기 (Saturday Night Fever)> (1977)

 

1970년대 후반 대중문화를 흔들어버린 <토요일 밤의 열기>는 집안에서 찬밥 신세지만 디스코텍에서는 인정과 환호를 받는 평범한 주인공 '토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영화다. 도입부에 등장하는 'Stayin' alive', 라인 댄스 장면을 빛낸 'Night fever', 토니 역을 맡은 존 트라볼타(John Travolta)의 독무 신에서 흘러나온 'You should be dancing'이 유명한 댄스곡으로 꼽힌다. 디스코를 소수의 것에서 대중의 영역으로 올려놓은 비지스(Bee Gees)의 'Stayin' alive', 'Night fever' 등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했으며 앨범 역시 1위를 기록했다. 보수적인 그래미도 1979년 <올해의 앨범> 수상자로 OST 음반을 호명했다.

 

우리나라도 영화의 영향권 안에 있었다. 국내에서는 1978년 개봉되어 패션, 음악, 춤을 비롯한 디스코 문화를 흩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반짝이는 단면과는 달리 영화의 내부는 그리 즐겁지 못하다. 페인트 가게 점원으로 일하며 받은 급료를 디스코텍에서 몽땅 써버리는 토니는 미래를 계획하라는 어른들의 말에 '주말이 나의 미래'라고 답한다. 불안한 청춘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지극히 공허한 영화. 그럼에도 '디스코'를 대변하는 '의미 있는 영화'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때를 살아보지 못한 오늘날 젊은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안겨준 디스코 종합사전.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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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임(Fame)> (1980)

 

1980년대 뉴욕 예술 학교에 모인 혈기왕성한 청춘들은 무대 위의 화려한 영생을 꿈꾸며 치열한 4년 간의 학창 시절에 돌입한다.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의 아들, 전자 음악을 꿈꾸는 이탈리아 학생, 숫기 없는 모범생 소녀, 뉴욕 이스트사이드의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흑인 소년 등, 예술과 명성을 향한 구도의 길엔 인종과 성별이 없다. 오직 재능과 열정만이 존재할 뿐이다.

 

유래 깊은 영화사 MGM의 마지막 뮤지컬 영화인 <페임>은 1980년대의 댄스 영화 유행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방불케 하는 뮤지컬 씬과 명감독 알란 파커의 능수능란한 편집은 <플래시댄스>, <풋루스>, <더티 댄싱>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영화의 인기는 1982년부터 1987년까지 방영된 동명의 TV 시리즈로 더욱 연장되었으며 이는 <내일의 스타>라는 제목으로 한국에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다. 한국에선 영화보다 드라마가 먼저 들어왔다.

 

영화는 예술의 길을 낭만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발레, 재즈, 아프리칸 댄스, 탭 댄스, 힙합, 프리스타일 등 종류를 불문하는 자유로운 몸짓은 고단하고 내일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을 벗어나고픈 아이들의 처절한 투쟁이다. 'Flashdance'를 부른 아이린 카라의 노래 'Fame'에 맞춰 뉴욕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 저마다의 댄스파티를 벌이는 1980년대의 명장면은 그 역설의 정점을 상징한다.

 

'페임! 난 영원히 살 거예요. 높이 나는 법을 배울 거예요. 사람들은 나를 보며 울게 될 거예요.’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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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시댄스(Flashdance)> (1983)

 

1980년대 이후의 댄스 영화는 대부분 <플래시댄스>의 영향권에 있다. 제니퍼 빌즈 주연의 작품은 그 자체로 청춘 댄스 영화의 교범이 되었고, 나아가 MTV 뮤직비디오 스타일 영화의 시초가 됐다. <플래시댄스>의 계보는 <풋루스>, <더티 댄싱>, <세이브 더 라스트 댄스>, <스텝 업>으로 이어졌고, <퍼플 레인>, <탑 건>처럼 음악과 영상미를 강조한 영화가 탄생했다. 제시카 알바의 영화 <허니>, 이효리의 'Anymotion', 보아의 'Eat you up', 제니퍼 로페즈의 'I'm glad' 뮤직비디오는 아예 <플래시댄스>를 대놓고 패러디한 결과물이다.

 

인기몰이의 핵심은 단연 음악이었다. 조르조 모로더가 음악을 맡아 고감도 댄스곡으로 채운 사운드트랙 앨범은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돌풍을 뚫고 2주간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했고, 그해 미국에서만 600만 장이 넘게 팔렸다. 이듬해 아카데미상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한 아이린 카라의 'Flashdance... What a feeling'과 마이클 샘벨로의 'Maniac'은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랐다. 한국에서도 약 23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는 잊지 못할 청춘스타와 애청곡을 남겼으며, 현재는 동명의 뮤지컬을 통해 추억을 재생산하고 있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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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킹(Breakin')> (1984)

 

브레이크댄스는 춤이 아니라 신기한 묘기였고 아슬아슬한 곡예였다. 아크로바틱과 기계체조를 바탕으로 한 브레이크댄스는 디스코나 트위스트처럼 아무나 출 수 없기 때문에 영화 <브레이킹>에는 전문 춤꾼 샤바 두와 부갈루 슈림프를 내세웠고 여기에 루신다 디키라는 무명 배우가 가세해 90분짜리 브레이크댄스 뮤직비디오가 탄생했다.

 

자신의 꿈을 쫒는다는 줄거리는 <플래시댄스>를 그대로 따랐고 출연한 사람들의 연기도 안쓰럽지만 초기 힙합문화를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로 세세한 묘사와 현란한 브레이크댄스 그리고 사운드트랙에 삽입된 노래들은 <브레이킹>에게 컬트적 역사성을 부여한다.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또 다른 브레이크댄스 무비 <Beat Street>보다 좋은 흥행 성적이 웅변한다.

 

영화는 국내에 개봉하지 않았지만 사운드트랙은 라이센스로 발매됐다. 빌보드 싱글차트 탑 텐에 오른 올리 & 제리의 주제가 'Breakin... there's no stopping us'와 소울 음반의 명가 스택스 레이블에서 세션맨들로 구성된 소울/Funk 밴드 바케이스의 'Freakshow on the dance floor', 샤카칸의 'Ain't nobody'가 수록되어 있으며 현재는 배우로 활동 중인 초기 갱스타 래퍼 아이스 티의 살벌한 랩도 감상할 수 있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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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루즈(Footloose)> (1984)

 

아이들을 탈선으로부터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춤과 로큰롤 음악을 금지한 보수적인 시골마을이 영화의 배경이다. 어처구니없지만 역사적으로 기성사회의 보수적 정서는 실제로 늘 그랬다. 영화가 개봉한 1984년의 한국 사회를 생각해보라.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한국에서 개봉하지 못했다. (한참이 지나 “자유의 댄스”란 제목으로 소개된다) 영화의 제목인 “Footloose”는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로움을 의미한다. 어감이나 의미 모두 멋진 단어이다. 그렇게 자유는 발의 자유에서 출발한다. 영화 속 아이들은 춤출 수 있는 자유를 위해 투쟁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사유와 언어와 집회의 자유를 위한 민주화 투쟁의 서막인 셈이다.

 

댄스영화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영화 속의 댄스는 전혀 현란하지 않다. 도무지 족보를 알 수 없는 아마추어들의 막춤에 가깝다. 그래서 그들의 춤이 더 자유롭게 보이는지도. 이 영화의 성공은 OST에 크게 빛지고 있다. 다이나믹한 기타연주로 시작해 질주하는 타이틀곡 "Footloose"는 케니 로긴스를 80년대 최고의 OST 스타로 만들었다. 또 다른 히트곡 “I'm Free"에서 케니 로긴스는 절규하듯 자유를 선언한다.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보니 타일러의 허스키한 록큰롤 창법이 돋보이는 "Holding out for a Hero"가 더 큰 사랑을 받았다. 이 노래의 성공이 이후 소찬휘나 서문탁을 낳았는지도. 하트의 리드싱어 앤 윌슨과 러버보이의 마이크 리노가 부른 러브 테마 ”Almost Paradise", 데니스 윌리암스의 “Let's hear it for the boy" 등 앨범에 수록된 거의 모든 곡들이 사랑받았다. 80년대 최고의 OST 앨범이라 해도 무방할 듯. (윤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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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White Nights)> (1985)

 

우선은 영화 마지막에 흐르는 라이오넬 리치의 'Say you say me'가 전한 신곡특수와 대중적 감화력의 환희, 하지만 정작 영화 OST 앨범에는 빠진 것에 대한 배신감이 떠오른다. 슈퍼흥행을 창조한 전작 <Can't Slow Down> 이후 새 노래를 영화 사운드트랙으로 할 수 없어서 그랬다니 할 말은 없다. 이 곡은 나중 라이오넬 리치의 다음 독집 <Dancing On The Ceiling>에 수록되었다. 당대 또 다른 빅 스타 필 콜린스가 마릴린 마틴과 호흡을 고른 빌보드 넘버원 송 'Separate lives'가 그나마 분노를 좀 삭혀주었다.

영화는 '댄스 원더'를 제공한다. 미국에 망명한 구소련 무용수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발레와 그레고리 하인스의 탭댄스는 당대의 파퓰러 댄스 영화에 나오는 춤과는 클래스가 달랐다. 발레의 그 무한 섬세함과 부드러움.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의 놀라운 점프는 입이 떡 벌어지게 했고 턴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로봇의 정확한 반복을 연상시킨 그레고리 하인스의 경이로운 탭댄스 또한 삼매경의 마술을 부렸다. 춤 영화의 끝판 왕!

 

그리고 이걸 빼놓을 수 없다. 바리니시코프가 춤 출 때 살짝 흘러나온 소련의 국민가수 블라디미르 비초스키의 '야생마'는 짧지만 굵게 영화관객들의 청각을 파고들었다. 막걸리 같은 그 텁텁한 탁성의 호령은 비록 적성국가의 음악이라 금지되었지만 음악마니아들과 운동권 사이에서는 관심이 폭증했다. 이후 비초스키는 당대 우리 민중음악의 확장에 일부분의 영향력을 행사한다. 댄스 특급이었지만 음악이 여전히 필살기임을 영화는 증명하고 있다. 하긴 가무(歌舞)를 어찌 떼어놓고 얘기하랴.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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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댄싱(Dirty Dancing)> (1987)

 

여름 캠프장에 가족과 함께 휴가 온 순진한 아가씨, 베이비(제니퍼 그레이)가 춤 잘추는 멋쟁이 오빠 쟈니(페트릭 스웨이지)의 대타 파트너로 멋진 공연과 사랑을 이룬다는 진부하고 전형적인 이야기. 하지만 베이비가 처음 춤을 접하며, 음악이 끝났지만 계속 허우적대며 휘청거리는(?) 장면에서 관객들도 이들의 스텝에 함께 빠져들었음을 직감하게 될 것이다. 이 영화가 관객을 시종일관 빨아들인 것은 멋진 맘보 댄스뿐 아니라 올드팝과 신곡을 적절히 배열한 탁월한 OST 덕분이다. 음악은 이 영화의 배경이 된 1963년과 영화가 개봉한 1987년을 연결해주는 마법같은 매개로 영화 전반에 펼쳐지고,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싱그럽다.

 

오프닝에 흐르는 더 로네츠의 “Be my Baby”(1963)와 모리스 윌리암스의 “Stay”(1960)같은 흥겨운 리듬앤불루스 명곡들도 다시 주목 받았고, 주인공 커플이 연습에 매진할 때 흐르는 에릭 카멘의 “Hungry Eyes”와 주연배우 페트릭 스웨이지가 직접 부른 “She's like the Wind”는 80년대 트랜디한 팝의 감성을 느낄 수 있는 히트곡들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와 OST의 백미는 마지막 공연 장면과 그 배경으로 등장하는 빌 메들리와 제니퍼 원스가 부른 “(I've had) the Time of my Life"이다. 6분여 동안의 완벽한 기승전결이 어울어진 춤과 노래는 댄스 영화의 가장 극적인 엔딩으로 기억될 것 같다.

 

영화에서 남녀가 신체를 밀착하고 끈적하게 흔드는 동작은 수위가 낮지 않다. 그럼에도 이들의 춤은 에로틱함보다 싱그러운 젊음과 건강함을 맘껏 드러내기에 전혀 더티하지 않다. 최근 클럽들의 소문들에 비한다면 순수해보이기까지 한걸. (윤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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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마의 람바다 - 금지된 춤(Lambada The Forbidden Dance)> (1990)

 

람바다[lambada] : 파트너끼리 다리를 감은 채 몸을 밀착해서 추는 춤. (지식백과)

 

말 그대로 남녀가 몸을 밀착해 추는 '야한' 춤이다. 보수적인 한국 땅에 브라질의 이 외설적인 춤이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을까. 프랑스의 혼성 팝 밴드 카오마(Kaoma)가 1989년 발표한 'Lambada'라는 곡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하면서 람바다 춤 열풍이 불었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0년 <블레임 람바다>, <카오마의 금지된 춤-람바다>, <열정의 람바다> 세 편이 국내에 개봉되었으며 그중에서도 <금지된 춤>이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금지된 춤>의 내용 자체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아마존 밀림에 살던 니사와 부잣집 아들 제이슨이 람바다 춤으로 댄스경연대회에 나간다는 내용이 영화의 전부지만(심지어 아마존 원주민 니사 역은 히스패닉계 배우 로라 해링이 맡았다), 쉴 새 없이 'Lambada'가 흘러나오는 덕분에 <금지된 춤>은 경쟁작 <블레임 람바다>를 누르고 국내에서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2011년 제니퍼 로페즈는 카오마의 'Lambada'를 리메이크한 'On the floor'를 발표해 빌보드 싱글 차트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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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몬티 (The Full Monty)> (1997)

 

1970년대 영국. 경제 불황으로 일자리를 잃고, 자신감마저 잃어버린 (남자) 어른들의 역발상 한탕 벌이를 다룬 영화 <풀 몬티>는 말 그대로 벗는다. 그것도 홀딱! 우연히 본 남성 스트립쇼에 수많은 여성이 기꺼이 입장료를 내는 광경을 본 뒤, 갖은 우여곡절 끝에 일생일대 가장 홀가분한, 본연의 모습으로 공연을 펼치는 그들의 일화는 답답한 현실에 유쾌한 반란과 잠깐의 해방감을 선사한다. 1997년 개봉작으로 당대 영국 영화 사상 최고 관객 수를 모은 데 이어, 1998년 아카데미 작곡상을 받았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총 3번 벗는다. 디스코의 여왕 도나섬머의 'Hot stuff'가 울려 퍼지는 와중, 처음으로 남성 스트립쇼를 봤을 땐 마음으로 벗었고, 글램 록 뮤지션 게리 글리터의 'Rock and roll, part 2'를 틀어놓곤 본격적으로 벗었다. 실제 무대에 앞서 모니터링 단을 모집해 연습을 펼친 것인데 결국 경찰에게 걸려 시련의 쓴맛을 맛본다.

 

그리고 마지막. 1970년대 미국 싱어송라이터 랜디 뉴먼의 원곡이자 우리나라에서는 화끈하게 굳이, 열어둔 셔츠 단추와 그사이 보란 듯이 튀어나온 가슴 털로 큰 인기를 끈 톰 존스가 부른 'You can leave your hat on'을 배경으론 남김없이 벗었다. 삶이 주는 퍽퍽함을 다소 엉뚱한 스트립쇼를 통해 재밌게 풀어낸 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도 제법 큰 인기를 끌었으며 2003년 국내 뮤지컬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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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0)

 

199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라면 <빌리 엘리어트>라는 영화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가난과 편견을 딛고 발레로 꿈을 찾는 내용이 청소년의 귀감이 돼 학생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했던 영화다. 1980년대 대처의 영국 보수 정권에 파업으로 저항하며 우울한 분위기가 흐르던 탄광촌의 소년 빌리. <빌리 엘리어트>는 그런 빌리가 스승과의 듀엣, 분노의 탭댄스 등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그 몸짓이 끝내 한 마리 백조로 비상하는 훌륭한 댄스 무비다.

 

오프닝에서 글램 록의 대표인 티-렉스(T-Rex)의 'Cosmic dancer'가 나온다. '어릴 때 춤을 췄다'는 가사가 무용 신과 잘 맞는다. 이외에도 밴드는 OST의 반을 차지하며 발레와 글램 록의 공통점인 화려한 분장과 관능미, 중성적 매력을 말없이 표현한다. 빌리의 형이 시위에서 경찰 진압을 피해 도망치는 장면에서 섹스 피스톨스와 함께 영국 펑크 록을 상징하는 클래시(Clash)의 'London Calling'이 흐른다. 영국 경제 위기에서 탄생한 펑크와 폭력적인 경찰을 언급한 가사까지 신 자체가 다시 보인다. 이렇게 음악만 이해해도 영화는 전과 사뭇 달라진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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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텝 업(Step Up)> (2003)

 

춤 잘 추는 불량배 타일러. 어느 날 사고를 치고 봉사활동으로 간 예술학교에서 그는 발레 전공생 노라를 만난다. <스텝 업>은 타일러가 쇼케이스를 앞둔 노라의 댄스 파트너가 되어 꿈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찾아가는 하이틴 드라마다. 한마디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스텝 업>의 탄탄한 스토리라인은 갈수록 화려한 볼거리에 치우치는 '스텝 업 시리즈' 후속작들과는 결이 다르다. 시리즈의 올드 팬들이 이 영화를 첫손에 꼽는 이유다.

 

당시 최신 팝과 힙합으로 가득 채운 OST도 흥행에 한몫했다. 2006년 기준 가장 '핫'한 디바였던 시애라('Get up')는 물론 션 폴과 키샤 콜('(When you gonna)Give it up to me'), 힙합 듀오 영블러즈('I'mma shine') 등 당대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원 리퍼블릭의 라이언 테더는 작곡가로 참여해 드류 시도라가 부른 ''Til the dawn' 등을 썼다. 격정적인 춤과 그에 꼭 어울리는 최신 음악은 2000년대 청춘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순수하게 희망을 꿈꿨던 '그때 그 감성'을!(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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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스트리밍 시대의 대중음악을 이해하는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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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음악을 소유하지 않는다. 레코드판, 컴팩트 디스크(CD)의 물리적인 형태는 물론 파일의 형태 다운로드조차 뒤떨어진 방식이 됐다. 스크롤, 클릭, 엄지 손가락의 움직임 몇 번만으로 수백, 수천만 노래들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

 

미 음반 산업 협회(RIAA)가 작년 9월 출간한 2018년 음악 산업 리포트에 따르면 75%의 미국인들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소비한다. 디지털 다운로드는 12%, 피지컬 소비는 고작 10%에 그쳤다. 최대의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 스포티파이(Spotify)를 필두로 애플 뮤직, 아마존 등의 주요 플랫폼이 음악 소비의 핵심이자 일상으로 자리를 굳혔다.

 

소비 형태의 변화는 생산의 변화로 연결된다. 최근 몇 년 간 빌보드, UK 오피셜 차트로 대표되는 영미권 주요 음악 차트의 모습은 오랜 팬들에겐 다소 생경하다. 기존의 '팝송'이 라디오에 자주 플레이되는 노래를 의미했다면, 근래 차트를 점령한 노래들의 스타일은 스포티파이와 아이튠즈 차트에서 강세를 보이는 스트리밍 팝으로 새로운 대중성의 기준을 세운다.

 


나날이 짧아지는 인트로와 러닝 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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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하이오 대학의 음악학자 르빌 고빈은 1986년부터 2015년까지 303개의 톱 텐 송을 조사하며 흥미로운 결과를 도출해냈다. 1980년대 중반의 히트송들은 평균적으로 20초에서 25초가량의 도입부를 갖고 있었던 반면, 2015년 히트곡의 평균 인트로는 5초에 불과했다. 인트로만 없는 것이 아니라 이렇다 할 훅(Hook)도 자취를 감추는 스트리밍 시대 팝송이다.

 

손가락으로 좌우되는 스트리밍 시대에서 음악의 성패는 몇 초만에 갈린다. 사용자의 음악 감상 패턴을 분석하여 제공되는 맞춤 플레이리스트는 음악의 일회성을 더욱 부추긴다. '재미없는 곡'은 순식간에 다음 노래에게 순서를 내주고 만다. 온라인 뉴스지 <쿼츠>의 통계&경제 전문 기자 댄 코프의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8년까지의 차트 히트곡을 조사한 결과 인트로뿐만 아니라 전체 곡 길이 역시 줄어드는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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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곡 리스트. 드레이크가 압도적이다.

 

 

작년 최고의 히트 가수 드레이크의 앨범 <Scorpion>은 2016년 <Views>보다 트랙 수는 많지만 전체 러닝 타임은 11%나 줄었다. 현재 빌보드 싱글 차트 톱 텐에 오른 노래 중 4분을 넘는 노래는 트래비스 스캇의 'SICKO MODE' 뿐이다. 후크 송의 위력은 갈수록 줄어들고 평탄한 구조의 곡이 대세가 됐다.

 

이는 싱글보다 앨범, 그 앨범을 만든 아티스트가 더욱 주목받는 결과로 연결된다. 지난해 드레이크와 미고스가 보여준 '음원 줄 세우기'가 좋은 예다. 따로 싱글 발매를 하지 않아도 앨범 수록곡 전체가 고루고루 싱글 차트를 점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자연히 앨범 트랙 수는 늘어나고 개별 러닝 타임은 줄어든다. 빌보드 싱글 차트 1,2,3위를 동시 점령한 아리아나 그란데의 <thank u, next>에서도 이런 경향이 보인다.

 

 

과시와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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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점점 슬퍼진다.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캠퍼스가 1985년부터 2015년까지 영국에서 발표된 50만 곡을 분석한 결과, '행복(Happiness)'과 '밝음(Brightness)'의 키워드는 감소한 반면 '슬픔(Sadness)'의 빈도는 증가했다. 슬픔의 테마가 반드시 성공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나 슬픔을 노래하는 곡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모바일 기반의 개인적 기술 발전과 소셜 미디어는 이와 같은 우울의 경향을 더욱 부추긴다. 미국을 분석하는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음악의 주 소비층인 미국 십 대들이 최근 설문 조사에서 '우울과 불안(Depression and Anxiety)'을 가장 큰 이슈로 생각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신인 빌리 아일리시와 XXX텐타시온의 성공은 가장 좋은 예시다. 2001년 생 빌리 아일리시의 최신 히트곡 'bury a friend'를 보자. 어둡고 미니멀한 비트는 단 한 줄기 희망도 주지 않을뿐더러 '유리를 밟고, 혀를 스테이플러로 찍고, 친구를 묻어버려 / 난 나를 끝장내고 싶어'라는 가사는 음울의 극단이다. 이런 노래가 빌보드 싱글 차트 14위에 올랐다.

 

끔찍한 범죄자라는 현실이 무색하게도 지독한 자기혐오를 표현했던 텐타시온은 스트리밍 시대의 감성을 파고들었다. 그의 방종하고도 무절제한 우울은 '거장' 카니예 웨스트부터 최신 스타 드레이크, 트래비스 스캇을 비롯한 수많은 래퍼들에게 영감을 제공했다.

 

 

이유 있는 복고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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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건 이 '과거'에서 20세기의 음악들은 예외다.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새 생명을 얻은 1980년대의 뉴웨이브와 1990년대 얼터너티브는 십 대들에게 전혀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느낌을 제공한다. 위저가 토토의 1983년 히트곡 'Africa'를 커버하게 된 계기는 그 시대를 살았던 장년층의 편지가 아니라,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를 본 십 대 소녀의 간곡한 트윗 덕분이었다.

 

디지털에 서툰 기성세대보다 각종 기기들을 능숙히 다루는 틴에이저들이 옛 음악을 즐겨 듣는다는 건 꽤 흥미로운 모습이다. 스트리밍 시대엔 트랩 아이돌 릴 펌의 'Gucci gang?과 1970년대 레드 제플린을 능숙하게 카피하는 그레타 밴 플릿이 공존한다. 전자는 후자의 음악을 '구리다'며 조롱하고, 후자 집단은 '진짜 음악을 들어봤냐'며 요즘 음악을 '가짜'라 공격한다.

 

 

앞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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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스트리밍 지배 구조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경향을 도출한다. 디지털의 지배에 염증을 느낀 마니아들이 LP 수집에 열을 올리면서 매 년 바이닐 판매고가 상승일로다. 곡 자체의 매력보다 댄스와 SNS 놀이를 유발하는 '챌린지' 노래들이 차트에 오르는가 하면, 복고를 스크린으로 소환한 <보헤미안 랩소디>와 <스타 이즈 본>이 큰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1887년 레코드의 발명을 이해하지 못하면 왜 대중음악의 초기 곡들이 3분을 넘지 않았는지도 이해할 수 없다. 아이팟(iPod)과 냅스터(Napster)를 이해하지 못하고 디지털 음악 시장을 논할 수 없고, 통신 기술의 발달을 빼놓고 스트리밍 기술의 실현을 말할 수 없다.

 

일상 속 기술을 이해하면 유행의 원인도 보인다. 스트리밍 시대의 음악은 새로운 형태로 유행을 반복하며 더욱 예측 어려운 형태로 진화 중이다. '플랫폼 시대'의 일상이 이끌어가는 2019년의 음악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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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우먼 파워’를 노래하는 여성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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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계는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열렬히 환영했다.  <빌보드>, <롤링 스톤> 등 대다수 음악 매체들이 이 날을 맞아 대중음악 역사 속 위대한 여성들과 현재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는 아티스트들을 집중 조명했다. 이미 우리는 2월 11일 음악계 최대의 축제 제61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돌리 파튼, 다이애나 로스 같은 전설들과 함께 '우먼 파워'를 노래하는 현세대 여성 가수들을 보며, 대중음악계 날로 커져가는 여성 아티스트들의 목소리를 지켜본 바 있다.

 

스트리밍 사이트 역시 여성의 날 맞춤 서비스를 제공했다. 스포티파이는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101곡'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했고, 애플 뮤직은 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1980년대 인기 그룹 유리스믹스의 에니 레녹스와 함께하는 '#글로벌페미니즘(GlobalFeminism)' 캠페인을 소개했다. 애플 뮤직은 여기에 카밀라 카베요, 카디 비, 브랜디 칼라일 등 현재 각 장르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여성 아티스트들이 직접 선곡한 플레이리스트를 공개하기도 했다.

 

2018년은 여성 아티스트들의 약진이 두드러진 해였다. 의례적으로 붙이는 수식이 아니다. 상업적 성공은 물론 훌륭한 완성도로 비평계의 호평까지 획득했다. 카디 비, 카밀라 카베요, 아리아나 그란데, 레이디 가가는 한 해 내내 굵직한 관심을 끌어모으며 스포트라이트 중심에 섰다. 그리고 이 흐름은 해를 넘긴 2019년 더욱 거대한 성공으로 이어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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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말부터 7주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마룬 파이브의 'Girls like you'부터 살펴보자. 카밀라 카베요, 제니퍼 로페즈, 메리 제이 블라이지, 엘렌 드제너러스, 클로에 킴 등 수많은 여성 셀러브리티들을 초청한 뮤직비디오가 화제를 불렀고, 편안한 비트 위 '너 같은 여자가 필요해'라는 구애의 메시지는 대중음악계 헤게모니가 남성 중심에서 여성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일종의 상징 같은 곡이었다.

 

이어 왕좌를 차지한 곡은 팝 디바 아리아나 그란데의 'Thank u, next'다. 전 연인들과의 추억을 소회 하며 단단한 자기애를 노래한 이 노래로 아리아나 그란데는 커리어 최초의 빌보드 차트 1위 곡을 갖게 됐다. 아리아나 그란데 열풍은 2019년 상반기까지 이어졌는데, 톱스타의 부와 명성을 은은히 과시한 '7 rings'로 2월 첫째 주부터 5주 연속 차트 1위를 차지한 것이 그 증명이다.

 

현재까지 2019년 빌보드 싱글 차트는 '여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 뉴 유니버스>의 주제가 'Sunflower', 조나스 브라더스의 'Sucker'를 제외하고 모든 1위 곡이 여성 아티스트들의 곡이다. 아리아나 그란데를 중심으로 싱어송라이터 할지(Halsey)의 'Without me', 레이디 가가와 브래들리 쿠퍼가 영화 <스타 이즈 본>에서 열창한 'Shallow'가 뒤를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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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단에서도 여성 아티스트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제61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제일 마지막 차례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한 이는 컨트리 싱어송라이터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다. 전원적인 풍경을 노래하던 그는 지난해 앨범으로 젠더 이슈와 여성 인권에 목소리를 내며 컨트리 장르에 새로운 흐름을 가져왔다. 그래미 신인상 역시 2017년부터 당당한 여성 싱어송라이터로 입지를 굳힌 두아 리파의 차지였다.

 

지난해 유수 매체의 '올해의 앨범' 리스트에서도 주인공은 여성들이었다. 쿼터제나 배려의 의미는 일절 없었다. 순위를 매기다 보니 대부분 여성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올라 있는 식이었다. 퀴어 이슈와 젠더 이슈를 도발적 음악과 메시지로 담아낸 자넬 모네, 아픈 과거를 담백하게 담아낸 베테랑 팝스타 로빈(Robyn), 정체성의 갈등 속 성장하는 자아를 우아하게 그린 크리스틴 앤 퀸즈(Christin and Queens)가 평단 상단을 장식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정체성과 성장기를 노래한 미츠키(Mitski)와 시크한 메시지의 유에스 걸스(U.S Girls)도 빼놓을 수 없는 이름이다. 힙합 씬에서는 이제 정상의 위치에 오른 래퍼 카디 비(Cardi B)를 필두로 시카고의 신예 래퍼 노네임(Noname),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모든 곡을 1분 내외로 맞춘 티에라 왝(Tierra Whack)이 주목을 받았다. 컨트리 씬의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와 그래미 노미니로 화제가 된 브랜디 칼라일 역시 빼놓을 수 없다.

 

국내에서도 여성 아티스트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예서, 민수, 수민, 시피카(Cifika), 재키와이(Jvcki Wai), 제이클레프(Jclef) 같은 패기 넘치는 아티스트들이 냉소적이고도 다채로운 색채를 펼쳐 보이며 의례 인디 씬에 횡행하던 '여신', '공주' 프레임을 거부했다. 17년의 마지막에 고고한 매력을 뽐낸 디바 엄정화의 컴백, 이를 계승한 청하와 선미도 인상적이었다. <나 혼자 산다>의 털털함과 <엠넷 아시아 뮤직 어워드>의 거침없는 매력을 한데 품은 화사는 단연 지난 한 해의 아이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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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뮤지션들의 독특한 언어와 과감한 표현은 대중음악의 전에 없던 새로운 활력을 제공하며, 2018년은 그 흐름이 주류로 치고 올라온 상징적인 한 해였다. 올해 '세계 여성의 날'이 여느 해보다 훨씬 성대하고 화려하게 기념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대세의 증명이다. 그러나 이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모든 일에 순서가 있고 역사가 있듯 대중음악의 역사에도 묵묵히 여성의 힘과 여성의 목소리를 노래하며 희망을 노래한 이들이 존재했다. 인종과 성 차별에 맞서 '존중'을 요구한 아레사 프랭클린, 아버지의 설교를 거부하며 스스로 독립적인 여성으로 거듭나고자 했던 마돈나가 있었기에 오늘날의 더 당당하고 더 과감한 아티스트들이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 2019/03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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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마블의 플레이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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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레일리아를 대표하는 가수 헬렌 레디는 1972년 여성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곡 'I am woman'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최우수 여성 팝 보컬 퍼포먼스를 거머쥐었다. 50 여년 전 여권 신장을 노래한 그의 메시지는 오늘날 음악에서 핵심이 된 '허스토리(Herstory)'를 상징한다. 대중음악계 여성의 발자취를 짚어나가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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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캘리포니아의 한 비디오 가게 옥상에 추락한 외계 전사 디버스(캐럴 덴버스). 낯선 행성에 불시착해 '통신 장비'를 구하려 차 창문을 두드리자 힙합 그룹 솔트 앤 페파의 'Whatta man'이 흘러나온다. 고향 행성 특공대원들과 교신을 시도하는 공중전화 부스 뒤 벽은 피제이 하비, 케이트 부시, 스매싱 펌킨스의 포스터로 빼곡하다. 드문드문 남아있는 기억의 파편을 발견한 디버스는 나인 인치 네일스 티를 훔쳐 입고, 가비지와 TLC의 히트 싱글을 들으며 모래바람을 헤쳐나간다.<캡틴 마블>의 대중음악은 시대 고증을 넘어 더 큰 의미를 갖는다. 1990년대를 수놓은 여성 아티스트와 밴드의 목소리로 채워진 이 영화의 플레이리스트는 젠더 고정관념과 '증명'에 맞서 싸우는 여성 슈퍼히어로, 캡틴 마블의 감정을 대변하고 또 증폭한다. 적재적소 장면에서 메시지를 각인하고 힘을 불어넣으며 강인한 여성상을 확립하는, 마블의 '페미니즘 선곡표'를 분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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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트(Heart) - Crazy on you(1975)

 

'넌 여자라서 안돼!' 상처로 가득한 캐럴의 어린 시절에 어렴풋이 스쳐가는 곡이다. 앤 윌슨, 낸시 윌슨 자매가 이끌었던 록 밴드 하트(Heart)의 멋진 데뷔 앨범 <Dreamboat Annie> 수록곡으로, 빌보드 싱글 차트 35위까지 오르며 팀을 상징하는 노래가 됐다. 레드 제플린 로버트 플랜트를 연상케 할 정도로 거친 앤 윌슨의 보컬과 하드록과 포크를 오가는 유연한 스타일은 후배 여성 로커들에게 상당한 영감을 제공했다. 2018년 앤 윌슨은 <롤링 스톤>과의 인터뷰를 통해 지난 40여 년 커리어를 총정리하며 1970년대 여성 로커의 삶을 회상했다. 라디오 디제이가 무례한 농담을 던지고 몸을 더듬어도 매니저는 쉬쉬하기 바빴고, 대중은 생소한 자매 밴드를 두고 '레즈비언 혹은 성적인 관계'라는 억측을 쏟아냈다.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음악 산업계에 맞서 그는 '이것은 젠더의 문제가 아니다. 존중의 문제이며, 힘의 문제다.'며 연대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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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비지(Garbage) - Only happy when it rains(1994)

 

과거의 기억을 찾아 사막 한가운데 고속도로를 오토바이로 질주하는 캐럴의 등 뒤로 이 노래가 흐른다. '난 비 내릴 때만 행복해 / 뭔가 잘못됐을 때 기분이 좋아 / 항상 슬픈 노래만 들어'라는 메시지가 쓸쓸하지만, 진짜라고 믿어왔던 세계를 전복해나가는 과정에서의 묘한 쾌감 역시 함께한다.1990년대 초반 세계를 거칠게 정복한 그런지와 너바나의 뒤에는 부치 빅(Butch Vig)이 있었다. <Nevermind>를 프로듀싱하고 소닉 유스와 스매싱 펌킨스의 사운드를 확립한 그는 1994년 커트 코베인이 산화하자 그 대안으로 4인조 밴드 가비지를 결성했다. 가비지의 음악은 성난 얼터너티브를 누그러뜨린 팝이었으나 프런트우먼 셜리 맨슨의 존재는 팀에 반항의 이미지를 각인했다. 학대와 구타로 얼룩진 십 대 시절을 보낸 그는 로커가 되기 위해 학교를 중퇴했다. 발랄과 무기력, 공격성을 오가는 짙은 화장과 헝클어진 머리로 한 시대를 풍미한 셜리 맨슨은 최근에도 여성 이슈에 과감히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할리우드 미투 운동에 대해 유보적인 입장을 보인 모리세이에게 'Fuck You'라 일갈한 건 유명한 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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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엘씨(TLC) - Waterfalls(1994)

 

TLC는 1990년대 알앤비 씬에 페미니즘을 심었다. 남성의 지배를 거부하고 여성의 권리를 주창하는 것을 넘어 젠더 구도를 역전시켰다. 활달하면서도 성숙했던 TLC는 과감한 메시지와 제스처를 통해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강조했고 당당한 태도를 통해 남성을 주도하는 여성의 언어를 확립했다. 비록 그들의 음악은 1990년대를 주름잡은 남성 프로듀서들과 작곡가들의 손에서 다듬어졌지만, 진취적인 캐릭터와 섹슈얼한 표현 능력은 온전히 멤버들의 공이었다.통통 튀는 데뷔 싱글에서 'Ain't 2 proud 2 beg'에서 멤버 레프트아이는 왼쪽 안경알에 콘돔을 끼고 등장했다. 후속곡 'Hat 2 da back'에선 배기팬츠, 야구모자 등 젠더리스 스타일을 선보이며 주체적이고도 재치 있는 여성상을 형성했다. 사랑의 아픔을 여성의 언어로 노래한 'Creep'과 'No scrubs' 역시 어리석은 남자들 위에서 감정을 주도하는 여성으로의 TLC를 공고히 했다. <캡틴 마블>이 기억하는 TLC는 레프트아이의 집행유예 선고 후 발표한 1994년의 <CrazySexyCool>로, 말괄량이에서 성숙한 여인으로의 성공적인 변신을 선보인 이 앨범은 전 세계적으로 1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가요계 정상에 이들의 이름을 올려놓았다. 비밀 공군 기지로 향하는 캐럴과 퓨리 국장이 'Waterfalls'를 선곡한 건 시대 배경으로도, 영화의 주제로도 매우 적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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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바나(Nirvana) - Come as you are(1991)

 

캐럴 덴버스의 무의식 속 레코드 플레이어에서 흐르는 노래. '넌 네 잠재력을 통제할 수 없다'며 굴복을 세뇌하는 외계 종족은 '이 노래 내 스타일이야'라며 춤을 춘다. '있는 그대로 와 / 너였던 사람 그대로 / 내가 원하는 대로'라 건조히 노래하는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는 캡틴 마블에게 부여받은 이름, 주입된 정체성을 거부할 것을 촉구한다. 너바나의 위대함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커트 코베인이 페미니스트였다는 사실은 유명하지 않다. 여자 친구 토비 베일로부터 페미니즘에 눈을 뜬 커트는 음악계 성차별적 행태와 가사를 고발하며 젠더 권력을 허물어왔다. 1992년<스핀>과의 인터뷰에서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동성 차별주의자들은 우리 공연장에 오지 마라'고 일갈한 건 널리 알려진 일화다. 말로만 페미니즘을 외친 것도 아니다. 'In bloom' 뮤직비디오에서 스스로 드레스를 입고 'Been a son'과 'Sappy'를 통해 젠더 역할을 교묘히 비틀었으며, 'Polly'와 'Rape me'의 적나라한 묘사로 강간의 추악함을 폭로했다. 당대 힙합 음악의 문란한 가사와 건스 앤 로지스 보컬 액슬 로즈의 동성애 혐오적인 가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에 커트는 1990년대 여성 펑크 로커들의 라이엇 걸(Riot Girrl) 씬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너바나가 201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때 커트 코베인의 빈자리를 채운 이들이 네 명의 여성 보컬 - 킴 고든, 조안 제트, 세인트 빈센트, 로드 -였다는 사실은 그가 남성이었음에도 여성 인권을 위해 투쟁한 페미니스트였단 사실을 증명한다. 너바나의 전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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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다웃(No Doubt) - Just a girl(1995)

 

모든 억압을 걷어내고 각성한 캡틴 마블은 가늠할 수 없는 힘을 뽐낸다. 외계 고위 전사들의 공격을 손쉽게 제압해버리더니 지구로 향하는 탄도 미사일을 맨몸으로 막아내고, 우주로 날아가 거대 우주 모함을 주먹으로 터트려버린다. 흥겨운 슈퍼 파워의 현장 위로 까칠한 기타 리프와 함께 이런 가사가 흐른다. '난 그냥 여자아이야 / 세상 어디에나 있는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고 / 갇힌 삶을 살고 있지 / 정말 화가 나!'캘리포니아에서 결성된 4인조 밴드 노 다웃은 우리에겐 명품 록 발라드 'Don't speak'로 기억된다. 이들은 팀의 홍일점 그웬 스테파니의 퇴폐적 매력과 스카/레게 리듬을 적극 차용한 펑크 록으로 얼터너티브 시대 큰 인기를 누렸다. <캡틴 마블>이 하이라이트를 맡긴 'Just a girl'은 1600만 장 판매고를 올린 1995년 <Tragic Kingdom>의 첫 싱글로, 빌보드 싱글 차트 21위에 오른 명실상부 히트곡이다. 그웬 스테파니의 자전적 이야기로부터 출발한 'Just a girl'의 메시지는 도발적이고 공격적이다. '많은 이유를 들며 도망치고 숨으라 말하지 / 난 아무것도 못할 거라고 / 왜냐면 착한 아이니까'라며 굴복의 젠더 정체성을 비꼬며, 결코 길들여지지 않겠다는 저항이 꿈틀댄다. 캡틴 마블을 통제하려 했던 외계 종족에게, 여자라는 이유로 많은 걸 통제하려 하는 권력자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Just a girl'은 1990년대를 대표하는 페미니즘 송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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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Hole) - Celebrity skin(1998)

 

대망의 엔딩 크레딧을 거친 기타 리프가 장식한다. 1990년대 라이엇 걸 무브먼트의 최전선, 커트 코베인의 동반자였던 코트니 러브의 밴드 홀(Hole)이다.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나 길바닥 인생을 전전하던 코트니 러브의 펑크 록은 경쟁자들보다 강력했고 거침없었으며 분노로 들끓었다. 1989년 결성된 홀은 코트니 러브의 기행과 너바나의 이름 아래 가십성 밴드로 취급받았지만 그런지 얼터너티브의 저항 정신을 충실히 구현한 팀이었다. 남성 지배 권력을 공격하며 보편적 메시지로 여성의 연대를 꿈꾼 코트니 러브는 X세대 여성들의 페르소나였으며 페미니즘의 아이콘이었다.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Celebrity skin'은 1998년 발표된 동명의 앨범 톱 트랙이다. 코트니 러브를 사랑했으나 커트 코베인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던 스매싱 펌킨스의 빌리 코건이 작곡에 참여하여 격렬하고 어두운 그런지를 보다 세련되게 다듬고 깔끔함을 더했다. 유진 오닐, 단테 가브리엘 로세티, 셰익스피어의 시로부터 영향을 받은 'Celebrity skin'은 '더 큰 힘을 위해 명성을 갈구하는' 인간 사회를 노래하며 21세기의 여성 슈퍼 히어로 서사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마블 시리즈의 전통대로, '캡틴 마블은 <어벤저스 : 엔드 게임>과 함께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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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코베인 25주기, 그의 업적을 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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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같은 삶을 살다 간 커트 코베인의 사망 25주기다.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우리는 그의 영향 아래 살고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른다. 1990년대의 상징이자 저항가들의 영원한 우상, 너바나와 커트 코베인의 업적을 5개의 키워드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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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 새로운 혁명의 시작

 

새로운 세대의 등장. 1980년대 대중음악은 화려하고 풍요로웠다. 펑크 록의 대를 이은 뉴웨이브는 세련된 전자음으로 몸을 휘감고 낭만적인 사랑 노래를 불렀다. 휘황 찬란 의상과 긴 머리를 휘날리던 헤비메탈 밴드들은 MTV에 출연해 방종한 삶을 노래했다. 음악은 듣는 것에서 보는 것이 되었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던 1980년대, 제도권의 비호 아래 아무 문제없어 보이던 1980년대. 그러나 같은 시기, 미국 북서부 우중충한 시애틀의 언더그라운드에선 희망 없는 'X세대'들이 처절한 음악 혁명을 계획하고 있었다.

 

커트 코베인과 너바나는 이 '음지의 게릴라'들을 대표하는 존재였다. 성난 분노와 모호한 메시지로 무장한 이들은 그들 스스로를 '거지 같은' 그런지(grunge)로 일컫었다. 불우한 백인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라온 커트 코베인, 크리스 노보셀릭, 데이브 그롤에게 빛나는 당대 대중음악은 거대한 위선이자 약자의 분노를 망각하는, 모순된 시스템이었다.

 

1991년의 <Nevermind>로 너바나는 마이클 잭슨의 <Dangerous>를 끌어내렸으며 게으른 공룡 헤비메탈 밴드들을 퇴장시켰다. 거친 폭발과 모호한 메시지의 'Smells like teen spirit', 마약 중독자의 무기력한 체념을 분노로 토해낸 'Lithium', 혼돈의 베이스 리듬과 절규로 들끓는 'Come as you are' 은 제너레이션 X가 기성 대중음악에 찬연히 들어 올린 가운뎃손가락이었다. '거지 같은' 그런지가 '주류 음악의 대안' 얼터너티브 록을 상징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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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멜로디, 그는 팝을 원했다

 

분명 너바나의 음악은 거칠었으나 그 속엔 대번에 귀를 사로잡는 필살 멜로디 라인이 있었다. 실제로 커트 코베인은 블랙 플래그(Black Flag)와 같은 강성 하드 코어 밴드는 물론 픽시스, R.E.M처럼 감미로운 멜로디를 뽑아내던 밴드들을 우상으로 섬겼다. '픽시스를 베끼고 싶다'는 커트의 바람은 공공연한 비밀이었으며 1994년 4월 5일 최후의 날 그의 마지막 앨범은 R.E.M의 1992년작 <Automatic For The People>이었다. 

 

너바나가 세계를 호령할 수 있었던 주요한 이유는 펑크 록의 간결한 구조를 계승함과 동시에 모두가 목놓아 소리칠 수 있는 뛰어난 멜로디 감각 역시 옮겨온 덕이다. 날 것 그대로의 언더그라운드 <Bleach>의 타이틀 싱글 'About a girl'부터 <Nevermind>의 빛나는 명곡들, 최후의 정규작 <In Utero>까지 너바나의 음악은 한순간도 대중을 놓지 않았다. 너바나는 미국에서 최초로 성공한 펑크 록 밴드였다. 분명 커트 코베인은 언더그라운드였지만 그의 문법은 '대중' 음악에 헌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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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코베인은 뛰어난 록 보컬리스트

 

고통스러운 절규와 무기력한 체념. 커트 코베인의 목소리는 내일 없는 X세대를 대표했다. 단돈 600달러로 만든 데뷔 앨범 <Bleach>의 조율 안 된 기타와 어수선한 연주 속에도 그의 보컬은 형형한 독기를 뿜어낸다. 커트 코베인이 훌륭한 록 보컬이자 1990년대를 대표하는 가수라는 사실은 수수께끼 같은 모호한 메시지, 수려한 외모에 밀려 흔히 간과되곤 한다.

 

 커트의 목소리엔 여러 인격이 있다. 'Come as you are'의 나른한 인물이 'Territorial pissing', 'Drain you'처럼 모든 걸 불태워버린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Lithium'의 완급 조절은 압도적이다. 거대한 명성에 지쳐버린 <In Utero>로 넘어가면 'Scentless apprentice'처럼 애끓다가도 쓸쓸하고 더욱 고독하다. 압권은 사후 발매된 <MTV Unplugged In New York>이다. 영영 사라져 버리기를 결심한 젊은 록 스타가 차분한 어쿠스틱 반주 위 삶의 회한과 고독, 견딜 수 없는 압박에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가슴 깊은 곳을 후벼 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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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편에 선 커트 코베인

 

커트 코베인은 불안했다. 섬세한 감성을 지니고 태어난 그에게 유년기의 가난과 부모의 이혼은 평생을 따라다닌 우울의 멍에를 씌웠다. 비단 커트뿐이 아니라 크리스 노보셀릭과 데이브 그롤, 시애틀의 언더그라운드 록 그룹들의 형편이 그러했다. 그러나 그는 '내일 없는 세대'의 불안을 약자 혐오로 풀어내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커트 코베인은 언제나 사회 소수자의 편이었고 이방인과의 연대를 꿈꿨다. 

 

2019년의 시선으로 본 커트 코베인은 놀랍도록 선진적인 인물이다. 로커, 그것도 언더그라운드 펑크 록 밴드의 리더가 'In bloom' 뮤직비디오에서 당당히 드레스를 입고 등장했다. 'Been a son'과 'Sappy'의 가사는 젠더 전복의 쾌감을 일깨우며, 'Polly'의 무기력한 강간 피해자는 'Rape me'에서 악을 품고 온몸을 바쳐 끔찍한 범죄를 고발한다. 

 

1990년대 남성 주도의 음악 시장에 반기를 들고 거친 록을 연주한 라이엇 걸(Riot Girrl) 운동은 커트 코베인에게 큰 빚을 졌고 실제로 커트 코베인은 이들 아티스트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마블 코믹스의 여성 히어로를 영화로 옮긴 <캡틴 마블>이 너바나의 'Come as you are'을 극 중 삽입하며 커트에게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커트 코베인의 사상은 1992년 <스핀>과의 인터뷰로 집약된다.

 

'성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들은 너바나 공연장에 오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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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의 신화

 

너바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위선과 거짓에 지쳐 희망을 포기한 젊은 세대가 정확히 원하던 밴드였다. 공고한 상부 구조에 반기를 든 청춘 세대는 너바나와 커트 코베인을 그들의 메시아로 삼았고 이들은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그러나 안티 록스타였던 커트 코베인에게 부와 명예는 그를 옥죄는 멍에요 굴레였다. 주류가 된 언더그라운드의 상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그 어마어마한 권력에 괴로워했다.

 

1994년 4월 5일, 27살의 커트 코베인은 재활원을 탈출한 후 저택에서 엽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신세대와 젊음, 저항과 언더그라운드의 정점에서 산화한 그는 결코 원하지 않던 록의 아이콘, 대중문화의 신화로 영생을 누리게 됐다. 강력한 대안을 제시하며 기성의 가치를 전복한 커트 코베인은 그럼에도 대표를 거부했으며 너바나가 거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1971년 싱어송라이터 돈 매클린은 히트곡 'American pie'에서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버디 홀리와 리치 발렌스, 빅 보퍼의 1959년 2월 3일을 '음악이 죽은 날(The day the music died)'로 선언했다. 돌이켜보면 1994년 4월 5일 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곧 '로큰롤이 죽은 날'이었다. 당시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2019년 현재 록은 저항 정신을 잃었고 주류에서 완전히 밀려나버렸다. 사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커트 코베인과 너바나의 신화는 공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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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코베인의 사망 25기를 맞아 그의 커리어에서 핵심적인 11곡을 선정했다. '록 역사의 마지막 성화봉송'을 일군 너바나의 역사적 의의, 그 속에서 연약한 개인으로 존재하며 괴로워했던 커트 코베인의 삶을 이해하며 오늘만큼은 거친 펑크 록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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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a girl (1989)

 

압도적인 춤을 선보인 폴라 압둘과 자넷 잭슨의 댄스 팝, 또래 청소년들의 감성을 노래한 데비 깁슨과 티파니의 아이돌 음악, 허세와 잘난 체로 록의 본질을 망각한 팝메탈이 대중음악을 지배하던 1989년, 초라하게 공개된 너바나의 데뷔 앨범 <Bleach>가 1990년대 록음악 계를 전복시킨 밀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상업적이고 겉멋에 찌든 대중음악에 대한 통렬한 카운터 펀치와 가멸찬 대안이 우중충한 기후의 시애틀에서 잉태된 것이 세기말을 앞둔 암울한 암시였다.

 

튜닝도 정확하지 않은 엉성한 커트 코베인의 기타, 아마추어리즘을 확인시켜주는 초대 드러머 채드 채닝의 순박한 드럼, 마구잡이로 섞인 엉망진창의 믹싱까지 'About a girl'은 정교함, 세련됨을 애써 외면하고 거부하나 그 안에는 분노, 허탈, 에너지라는 록의 핵심이 정좌한다. 이 곡을 만들기 전에 비틀즈의 앨범 <Meet The Beatles>를 반복해서 들은 커트 코베인은 'About a girl'에서 최상의 멜로디 주조 능력을 과시했다. 1994년에 공개된 언플러그드 음반에서는 생생함 대신 세련됨을 장착해 커트 코베인의 작곡 실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지만 무대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노래하는 커트 코베인의 모습을 보는 것이 이제는 고통스럽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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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ells like teen spirit (1991)

 

자주 인용해 상투적이긴 해도 본고장 평론가 앤서니 드커티스의 수사 이상은 없을 것 같다. "정치를 언급하지 않는 정치적인 노래, 가사를 이해할 수 없는 찬가, 상업주의를 비판한 거대한 상업적 히트곡, 개인 소외에 대한 집합적 아우성. 이건 새 시대와 새 불만족 청춘 세대를 위한 '(I can't get no) satisfaction'이다!" 만족할 능력 없음에 대한 만족스러운 선언? 그야말로 전형적 록의 저항 어법, '자이언트 퍽유' 아닌가. 그 충돌과 그에 따른 균열로 커트 코베인의 죽음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마치 뉴 키즈 온 더 블록이 펑크(punk)하는 듯한 매끄러운 와일드 사운드는 예술성을 구축하는 동시에 미국 최초의 펑크 록 히트라는 대중성도 부여했다. 축축한 1980년대를 보내고 마침내 1990년대는 '뉴 록', 그런지 얼터너티브 록으로 견인되었다. 메탈은 사실상 종언을 고했고 단숨에 기존 질서와 가치는 전복되었다. 언더와 인디로 표현된 강한 '아래'가 고개를 쳐들어 여전히 억압적인 '위'를 맹렬히 손가락질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만큼은 통쾌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건 록 역사의 마지막 성화봉송이었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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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bloom(1991)

 

'Smells like teen spirit'으로 거대한 분노를 표출한 커트 코베인은 다음 트랙 'In bloom'으로 조소의 대상을 구체화한다. 인트로 없이 곧바로 성난 기타 폭음으로 출발하는 곡은 간결한 베이스와 드럼 리프 위에서 '개화'를 읊조리다 거친 퍼즈 톤의 후렴부를 통해 '노래 부르기 좋아하고 / 총 쏘는 걸 좋아하지만 / 내가 말하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는' 이들을 비판한다. 훗날 커트 코베인은 이 곡을 백인 노동자 계급과 폭력적인 문화에 길들여진 남성들을 비판하는 곡이라 설명했다. 

 

이들은 '음식을 구하려 아이들을 팔아' 계절의 변화를 만끽하며 '자연을 창녀'로 여기는 탐욕의 화신이다. 그러면서도 '총을 쏘는 것'을 즐기며 폭력성을 과시하지만 자기가 어떤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다. 1980년대 상업화된 헤비메탈과 1990년대 거친 갱스터 랩에 불편함을 피력했던 커트 코베인의 사상이 그대로 묻어나는 곡이다. 그는 본능적으로 허세와 혐오를 꺼린 인물이었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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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e as you are (1991) 

 

폭발의 미학을 설파한 'Smells like teen spirit'과 커트 코베인의 선율적 감각이 돋보이는 'Come as you are'은 너바나의 유일한 빌보드 탑 40 히트곡들로 그중 'Come as you are'은 거칠게 내달리는 것만이 아니라 많은 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펑크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노래의 잠재력은 그도 잘 알고 있었으나, 문제는 더 댐드의 'Life goes on'과 킬링 조크의 'Eighties'의 기타 리프와 유사해 표절 사건이 일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이는 논란에서 그쳤고 그는 싱글 발매를 밀어붙여 차트 32위에 올리며 숨겨진 매력을 증명했다. 얼터너티브 록 밴드에서 나온 대중적인 얼터너티브 펑크다.

 

커트 코베인이 떠난 지 25주기가 된 지금 다시 이 곡을 추억하는 이유가 멋진 멜로디 때문만이 아니다. 그는 음악 속 화자가 꼭 실제 자신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지만, '너의 모습 그대로 와' '친구로' '난 총이 없어' 등 죽음 예견한 듯한 모호한 가사는 그의 총격 자살에 남은 타살 의혹을 더욱 지워질 수 없게 만든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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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hium (1991)

 

리튬(Lithium)은 정신과 의사들이 처방하는 양극성 장애, 즉 조울증 치료제다. 커트 코베인이 실제로 양극성 장애를 앓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Lithium'을 통해 그의 삶을 일정 부분 들여다볼 수는 있다."이 노래는 여자 친구가 죽고 난 뒤 종교로 귀의해 삶의 안식을 찾은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내 친구와 그의 기독교인 부모님에게서 영감을 받았다."커트 코베인은 여자 친구와의 이별 따위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Lithium'에 녹이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는 노래의 내용이 픽션이라고 했으나, 그의 절규는 진실하다.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신을 찾았다며 마지막 남은 안식처를 구하는 듯한 처절한 후렴은 사실 약을 통해 찰나의 구원을 꿈꾸던 커트 코베인의 진심일지도 모른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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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lly (1991)

 

잔잔하게 내뱉은 언어들이 때로는 분노의 대리인이 된다. <Nevermind>에서 'Something in the way'와 함께 정적인 노래로 기억되는 이 곡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1987년에 14세 소녀가 납치 및 고문, 강간을 당한 사건을 접하게 된 커트 코베인은 범죄자의 시점에서 가사를 썼다. 자신의 노래가 명확한 의미에 가둬지는 것을 기피했지만, 'Polly'에서는 끔찍한 상황을 숨김없이 표현해 사회 문제 고발의 역할을 했다. 특유의 우울한 정서와 어쿠스틱 기타가 들려주는 단순한 코드 진행은 감춰지고 소외된 이야기가 다른 소리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만들었다. 커트 코베인의 음악이 시간이 지나도 힘을 잃지 않는 이유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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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shaped box (1993)

 

트 코베인은 세상과 불화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아리송한 은유가 가득한 와중에도 불만 가득한 후렴만큼은 또렷하게 들린다. “이봐! 기다려! 새 불만이 있어!(Hey! Wait! I've got a new complaint!)” 기묘하게 꿈틀거리던 지저분한 기타도 이 대목에 이르러 야수처럼 포효한다. 시애틀 그런지 문법을 따르는 것 같으면서도 너바나만의 울퉁불퉁한 '날'이 확실히 살아있다. 서정적이면서 기괴하고, 폭발적이면서 아름다운 이 곡은 아슬아슬한 커트 코베인의 머릿속을 그대로 옮겨 그려냈다. 도무지 뜻을 짐작하기 어려운 뮤직비디오도 비슷하다. 죽음과 탄생, 신성과 불결의 이미지가 뒤섞이는 그로테스크한 뮤직비디오는 1994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최우수 얼터너티브 비디오와 최우수 아트 디렉션 부문을 수상했다. MTV를 그 무엇보다 싫어했던 커트 코베인이 세상을 뜬 지 다섯 달 뒤였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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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pe me (1993)

 

설의 역설이요, 권선징악의 메타포다. 'Rape me'의 화자는 자기를 강간하는 이를 향해 오히려 마음껏 유린하라는 식으로 거침없이 말한다. 그저 무력하게 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냐, 할 테면 어디 해 봐라. 내가 반드시 살아남아서 언젠가 제대로 복수해 주겠다.'는 독한 마음을 품고 범인을 응시하는 상황이 연상된다. 커트 코베인은 노래를 통해 성범죄 문제를 환기하고 그 희생자들을 향한 지지를 드러내고자 했다. 후렴 가사 "I'm not the only one."은 수많은 성범죄 피해자들의 연대를 청원하는 구호나 다름없다.

 

한편 'Rape me'는 미디어에 대한 반감 표출로 해석되기도 한다. 1991년 'Smells like teen spirit'이 미국을 비롯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히트함에 따라 커트 코베인은 하루아침에 젊은이들의 우상 같은 존재가 됐다. 이 때문에 방송과 신문, 잡지에서의 언급도 갑자기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커트 코베인은 매체의 과한 관심, 사생활까지 캐려는 것에 진저리를 쳤다. 따라서 'Rape me'가 'Smells like teen spirit'과 유사한 기타 리프를 지닌 것은 그 싫증을 음악적으로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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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pologies (1993) 

 

굵지 않은 디스코그래피 속 마지막 정규 음반의 끝 곡이다. 'All apologies'란 다분히 함축적인 제목에 첼로로 덧대 만든 아름다운 선율은 커트 코베인 사후 많은 팬에 의해 확대 해석됐다. 본 의미가 어떻든 간에 생전 그는 이 곡을 아내인 코트니 러브에게 헌정했다. '그녀의 적이 남긴 재에 숨 막혀하겠지', '결혼하고, 매장되겠지' 거칠게 포효하고 '사과할 뿐이다', '우리 속의 우리는 우리일 뿐이다' 읊조리는 보컬에는 그 어떤 성장 동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본연의 록 정체성으로 회귀한 3집 <In Utero>는 날 선 소음들을 두 팔 벌려 수용한다. 그중 유독 첼로와 기타의 질 좋은 선율로 호흡하는 이 곡은 너바나 사운드의 새 지평을 열었다. 수많은 그리운 얼굴이 떠오르는 4월, 음악 속에 살아있는 그를 만나고 싶다면 MTV 언플러그드 인 뉴욕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상업과 비상업. 사랑과 속박. 성공과 비(非) 성공 사이를 위태롭게 견뎌낸 커트 코베인의 음색과 양가적 감정이 이 곡에 녹아 있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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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ho sold the world (1994)

 

너바나가 MTV 언플러그드에서 선보인 이 곡과 라이브는 특이하다. 1970년 동명의 앨범을 발매한 글램 록의 수장 데이비드 보위가 원작자고, 커트 코베인의 기타 소리는 전기 없이 피아노 같은 어쿠스틱 악기로 스테이지를 꾸리는 콘셉트에 맞지 않게 전기 기타 톤이다. 'The man who sold the world'는 'Come as you are'처럼 단선율식 인트로를 위시한 그의 작법이 어디서 왔는지, 죽음과 자아를 담은 가사는 심신이 지친 상태로 공연장에 나타난 그의 상태가 쉬이 볼 수준이 아니었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준다. 동시에 그의 플러그드 무대는 세트리스트까지 히트곡으로 채우길 원했던 주류 시장에 대한 반발이자 펑크 정신을 행동으로 보여준 증거다. 

 

'The man who sold the world'가 다른 사람 거였어?'라고 생각하며 실망한 사람도 있겠지만, 원작을 뛰어넘는 표현력으로 곡에 새 생명을 부여한 커트 코베인에게 느낀 자부심까지 거둘 필요는 없다. 그도 또래와 같이 하드록과 팝 등 다양한 음악을 사랑했던 사람일 뿐이다. 아쉬울 것 없다. 그의 멋진 음악은 다른 노래들도 많으니까.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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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1994)

 

쓸쓸하고 불안정한 어쿠스틱 반주 위 너바나의 레퀴엠이 막을 올린다. 1870년대 미국 민요 '소나무 사이서(In the pines)'를 노래한 블루스 가수 리드벨리(Leadbelly)의 고전은 커트 코베인 사후 발매된 <MTV Unplugged In New York>의 마지막을 처연하게 장식했다. 

 

모든 것에 환멸을 느끼던 1993년의 커트 코베인은 금방이라도 삶을 포기할 것 같은 불안을 가림막 없이 표출해낸다. 위태로운 무대 위 촛불처럼 그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며 깊은 회한으로 갈라져있다. 이내 모든 것을 쏟아내는 최후의 1분은 노래라기보다 한 인간의 고통스러운 절규, 끝을 앞둔 존재의 무기력한 몸부림에 가깝다. 그리고 그 절정의 순간에서, 커트 코베인은 처음으로 형형히 눈을 뜨고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마치 자신을 짓눌렀던 모든 것들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듯. 곧 그는 열반(Nirvana)에 들었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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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첼라 페스티벌이 비첼라(Beychella)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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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끝나면 코첼라 페스티벌을 비첼라(Beychella)라고 불러야겠어요.”


2018년 4월 14일, 세계에서 가장 큰 음악 축제가 팝의 여왕에게 봉헌됐다. 퀸 비(Queen Bey) 비욘세의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 메인 스테이지는 미국 내 아프로 아메리칸들의 위대한 현대사를 기념하는 상아탑이요, 인종 차별에 맞서는 유색 인종 인구의 거대한 행진이었으며 억압된 여성들을 대변하는 페미니즘 선언문이었다.

 

그로부터 1년 후인 4월 17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다큐멘터리 <비욘세의 홈커밍(Homecoming : A film by Beyonce)>(이하 <홈커밍>)은 왜 이날의 퍼포먼스가 21세기 대중문화를 상징하는 순간인지를 역설한다. 영화 리뷰 종합 사이트 <로튼 토마토>는 100점 만점에 98점을 선사하며 '비첼라여 영원히(Beychella Forever)' 라는 찬사를 바쳤고, 평론지 점수를 종합하는 <메타크리틱> 역시 92점을 수여했다. 40곡짜리 라이브 앨범은 빌보드 앨범 차트 4위로 데뷔했고 평론지 <피치포크>로부터 10점 만점에 9.3점, <롤링 스톤>에선 5점 만점에 4.5점을 획득했다. 2018년의 '비첼라'가 2019년의 코첼라를 이겼다.

 

<홈커밍>으로 부활한 '비첼라'에 대해 <와이어드>지는 '세계 모든 이들이 즐기고 기념할 수 있는, 현존 최고의 아티스트들이 펼친 평생 단 한 번의 무대' 라는 격찬을 보냈다. 그러나 <홈커밍>은 비욘세가 무대 위뿐만 아니라 무대 아래에서도 비범한 아티스트임을 증명한다. 휘황찬란한 라이브 영상 사이사이 아티스트의 회고와 독백을 삽입해 미국 흑인 교육의 역사와 흑인 여성의 삶, 블랙 셀러브리티이자 세 아이의 어머니인 비욘세의 삶을 집약한다. 디지털 시대의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를 만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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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첼라'의 주제 홈커밍데이(Homecoming Day)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학이자 교육 기관 HBCU(Historically Black Colleges and Universities)로의 귀향과 존경을 집약했다. HBCU는 부유한 백인들과 교육을 갈망하던 흑인들이 힘을 합쳐 만든 교육 기관으로, 건국 1776년 이후 61년 만인 1837년에서야 펜실베이니아에 처음 설립되었으며 남북전쟁이 끝난 1865년부터는 노예제에 신음하던 미 남부 흑인들을 대상으로 그 수를 넓혀갔다. 남북전쟁 전까지 이른바 '남부 연맹'에선 흑인을 교육하는 행위 자체가 불법이었다.

 

다큐멘터리를 통해 비욘세는 'HBCU에 입학하는 것이 내 꿈이었다'라 고백하지만, 8살 때부터 연예계 생활을 시작해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와 솔로 커리어를 거친 탓에 그럴 수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2018년 코첼라를 아예 거대한 대학교 홈커밍 축제로 꾸몄다. 마칭 밴드(Marching Band)를 소개하는 솔로 드러머의 단독 퍼포먼스가 끝나고 나면, 200여 명에 달하는 백댄서, 연주자, 코러스 싱어들과 함께 프랑스 브랜드 발망(Balmain)이 디자인한 단체 후드 티를 입고 무대 중앙에서 'Crazy in love'를 열창하는 비욘세가 아프로-아메리칸 커뮤니티의 자랑스러운 졸업생으로서 인사를 건넨다.

 

아프로-아메리칸 커뮤니티에게 교육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역사상 수많은 기득과 기성 집단은 피지배층에게 배움의 기회를 박탈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앗아왔다. 배움과 습득, 비판과 토론의 장을 제공한 HBCU의 존재로 인해 아프로-아메리칸 커뮤니티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연대하며 기성의 사회 이데올로기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었다. 1960년대 흑인 민권 운동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때, 앞장선 시민 운동가들은 대부분 HBCU가 배출한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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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 중 등장하는 교육자 W.E.B. 두 보이스의 목소리를 주목하자. '교육은 단순히 일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삶을 가르쳐야 한다!'. 아프로-아메리칸들이 쟁취한 배움의 자유는 그들에게 씐 노역의 굴레를 절단했고, 창조적 사고와 평등의 가치를 심어주었다. 

 

비욘세가 그 정점의 순간을 '비첼라'로 선포한다. 동시에 그의 시선은 더 깊은 뿌리를 향한다. 현대의 민권 운동과 근대의 교육 과정을 퍼포먼스와 무대 장치 및 의상으로 구현했다면, 아프로-아메리칸의 문화적 자긍심을 표현하는 방법은 40곡의 플레이리스트로 완벽한 음악의 문법이다. 뉴올리언스의 재즈부터 가장 고도화된 현대의 팝, 남편 제이지(Jay-Z)가 대표하는 뉴욕 브루클린의 힙합과 자메이카의 댄스홀(Dancehall)이 무대 중간중간 가교 역할을 수행하며 스테이지에 역사적 숨결을 불어넣는다. 

 

나이지리아의 아프로비트 마스터 펠라 쿠티(Fela Kuti)의 'Zombie' 메인 리프를 빌려와 댄스 스테이지를 꾸미고 댄스홀의 고혹적인 리듬이 디플로가 프로듀싱한 'Hold up'의 포문을 연다. 2018년 라틴 팝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제이 발빈(J.Balvin)의 'Mi gente'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미국을 넘어 전 세계의 형제자매들과 함께하는 무대' 임을 천명한 비욘세는 노예를 해방한 링컨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며 발표된 시에 곡을 붙인 'Lift every voice and sing'을 열창했다. 이 곡은 '흑인들의 국가'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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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첼라'의 중심엔 이 모두를 관조하는 '여성의 시각'이 있다. 극 중 'Don't hurt yourself'와 겹쳐지는 흑인 민권 운동가 말콤 엑스의 성난 목소리를 들어보자. '미국 사회에서 가장 존중받지 못하는 계층은 흑인 여성이다. 가장 보호받지 못하는 것도, 가장 무시당하는 것도 흑인 여성이다!'. 이어 소개되는 미국 남부 미시시피주 최초의 흑인 여성 변호사 마리안 라이트 에델먼의 명언 역시 흑인 여성들이 겪어온 이중의 차별을 촌철처럼 묘사한다. '볼 수 없는 건 될 수도 없다!'

 

코첼라의 비욘세는 'Bowdown'을 부르며 '아름다운 여왕님들을 위한 곡'이라 선언하고, 공연 도중 '여성들이여, 소리 지르세요. 우린 너무도 많이 참아왔어요. 그렇지 않나요?'라며 당당히 행진한다.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의 외침을 삽입하고, 데스티니스 차일드와 동생 솔란지(Solange Knowles)를 무대로 불러 자매애를 과시한다. 그러고 보니 '비첼라'의 포문을 열었던 마칭 밴드 드러머도 여성이고, 극 중간 비욘세와 함께 아크로바틱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백댄서들 역시 여성들이다. 

 

비욘세의 투쟁은 공적인 연설을 거쳐 진솔한 삶의 경험으로 이어진다. 휘황찬란한 '비첼라' 아래에는 육아와 임신, 출산을 병행하는 워킹맘이 있다. 몸무게가 90kg까지 늘어나고 임신중독에 괴로워하며, 긴박한 제왕절개의 순간을 겪으며 쌍둥이를 출산하는 한 여성이 있다. 생명을 잉태하는 여성의 숭고한 삶과 일상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자체로 <홈커밍>은 한 층 더 묵직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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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의 역사는 섬광처럼 번득이는 '창조적 순간'으로 기억된다. 1964년 2월 7일 미국 뉴욕 JFK 국제공항에 내리는 비틀스 네 멤버들,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하던 지미 헨드릭스, 1983년 모타운 25에서 최초의 문워크 댄스를 선보인 마이클 잭슨, 1985년 거대한 라이브 에이드를 통째로 훔친 퀸과 프레디 머큐리, 1990년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로 분한 마돈나, 2007년 수퍼볼 하프 타임 쇼를 지배한 프린스가 대중의 기억 속 선명히 남아있다.

 

'비첼라'는 이런 최고의 순간들 속에 흑인과 여성의 언어를 추가하는 순간이다. 이제 HBCU 학생들과 흑인 지성인, 흑인 여성들은 흑인 여성 최초의 페스티벌 헤드라이너 비욘세의 무대를 그들의 자랑스러운 순간으로 당당히 꼽을 수 있다. 2018년 최고의 무대, 2010년대 최고의 무대를 펼친 아티스트가 누구인가? 텍사스 휴스턴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 세 아이의 엄마,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일원이자 세계 최고의 솔로 가수 중 한 명, 비욘세다. 창조의 순간을 영민하게 담아내는 <홈커밍>은 향후 21세기를 상징할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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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가 정태춘, 박은옥의 곡을 듣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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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에게 정태춘과 박은옥의 세계는 멀다. <시인의 마을>으로 등장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92년 장마, 종로에서' 속의 1992년도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한 부부의 목소리와 멜로디, 투쟁은 일견 기성의 음악으로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거리감은 1984년 서정적인 '사랑하는 이에게' 와 1993년의 응시 '아, 대한민국…' 두 곡으로 빠르게 좁혀진다. 세상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고, 그래서 비극이다.정태춘 박은옥의 데뷔 40주년을 맞아 이즘의 젊은 필자들이 이 부부의 기억해야 할 13곡을 꼽았다. 그들의 치열한 탐구와 응시, 투쟁의 기록을 깊이 새기며, 우리는 더 나은 내일을 그려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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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에서 (1978)

 

단 두 가지로 잔잔한 바다를 선명히 그린다. 바이브레이션을 머금은 낮은 목소리, 일렁이는 파도 같은 입체적 소리의 어쿠스틱 기타가 시청각 효과를 발휘한다. 목가적인 멜로디는 노을이 진 후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서해 바다 어딘가를 연상케 한다. '서해에서'는 1집 <시인의 마을>의 타이틀곡은 아니었으나 1980년대 중반 운동권에 참여한 시위 학생들이 잡혀간 동료를 위해 현장에서 외친 노래로 역사 한편에 자리 잡았다.음악의 일회성이 강조되는 스트리밍 시대 속 직설적인 가사에 익숙한 우리에게 '서해에서'는 시적 언어의 나열로 한번 더 듣게 하면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다. 소외감과 허무함을 떠오르게 하는 그의 가사는 방황하는 청춘들의 마음을 파고들어 공감을 자아낸다. 역설적이지만 이 곡과 '시인의 마을'처럼 혼란한 내면을 담은 노래를 통해 정태춘은 자신이 걷고자 하는 길의 주춧돌을 세웠다. (임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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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상 (1978)

 

슴을 파고드는 뱃고동의 깊은 울림이 흐르고, 담담하게 노래하는 박은옥의 목소리는 파도가 밀어내지 못하는 거대한 바위 같다. '회상'은 박은옥 첫 앨범의 대표작이다. 정태춘의 주옥같은 노랫말은 시의 언어를 들려주고 선율은 청자를 고요한 섬마을로 데려가 토속적 정취에 젖게 한다. 그는 1980년대 가요역사의 노래 운동가이자, 음유시인이었다.'회상'은 떠나간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의 감정 혹은 그 이상의 것을 노래한다. '검은 바위 파도가 씻어주고 / 내 가슴 슬픈 사랑 그 누가 씻어주리'라는 서정적인 시어는 낯설다. 하지만 처절함을 극대화하는 연주와 '그리워'라고 흐느끼며 외치는 것 이상의 애절함을 안긴다. '날 것'의 소리와 수수한 표현, 그리고 박은옥의 담담한 감정선이 끌어낸 덕이다. 그의 잔잔한 노래 속엔 지난 사랑의 응어리를 움틀거리게 만드는 강한 힘이 실려있다. 정태춘의 절제된 가사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인물은 박은옥뿐이었다.  (박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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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마을 (1978)

 

어른이자 청년의 가사 말이 맴돈다. 눈에 그려지는 향토적인 비유와 어쩐지 가슴으로 와 닿는 '시인의 마을'이란 작명은 그 어느 시절, 어느 공간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누가 내게 따뜻한 사랑 건네주리오 / 누가 내게 생명의 장단을 쳐주리오' 노래하는 이 곡에는 내 마음을 꼭 닮은 외로움이, 고독함이 담겨 있다. 방황을 다뤘다는 이유로 번민의 시인이 사색의 시인으로, 고행의 방랑자가 고행의 수도승이 되어 발매됐다. 본격적인 사회 운동을 펼치기 전이자 가수로서 발표한 첫 음반 <시인의 마을>의 동명 수록곡으로 어느 때보다 정태춘 내면에 오롯한 중점을 둔다. 쓸쓸함을 부각하는 하모니카, 중심 멜로디에 맞춰 가미되는 건반과 기타 사운드가 황량한 감성에 한층 무게를 더한다. 1979년 MBC 신인 가수상을 안겼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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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1979)

 

우리는 인스턴트 문화를 즐기고, 빠른 템포의 팝과 랩/힙합이 유행을 선도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이러한 풍조 속에 점점 빨라지는 노랫말은 기성세대와 현세대의 음악을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세대 간의 장벽이 되었다. 당시 중요한 요소로 여겨지던 가사는 점차 가벼워지고 길어졌고, 철저히 부수적인 재료의 역할에 그치고 만다. 정태춘의 '촛불'은 진중하고 느린 옛 음악이다. 노래도 서정적인 기타 선율 위의 단 가사 몇 줄만이 반복될 뿐이다. 다만 지니는 결 자체가 다르다. 천천히 되뇌며 겹겹이 덤덤하게 쌓아 올리는 애처로움은 범접할 수 없는 깊이를 드러내며, 사랑을 전하는 데 있어 화려한 미사여구와 수사적 표현들이 꼭 필요한지 묻는 듯 절제되고 투박하게 쓰인 가사는 한 편의 시와 같다. 지금 들어도 소름이 돋는다. 어쩌면 '촛불'은 묵직하게 세대를 관통하는 음악일지도 모르겠다. (장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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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발승의 새벽 노래 (1980)

 

정태춘, 박은옥은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공연예술위원회의 검열에 반기를 들고 심의 철폐 운동을 추진했으며 모순으로 가득 찬 한국 사회의 부조리를 언어로 그려낸 혁명가 말이다. 정태춘의 '삐딱한' 저항정신으로부터 탄생한 '92년 장마, 종로에서', '아, 대한민국…'은 촛불시위를 경험한 우리 세대의 분노를 다시금 일깨운다. 그 때문에 고요한 소용돌이처럼 다가오는 날카로운 메시지가 이들 음악의 전부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더랬다.'탁발승의 새벽노래(산사의 아침)'는 화로 가득 찬 투사의 외침이 아닌 음유시인의 잔잔한 노랫말이다. "'아저씨' 하고 부를 듯하여 얼른 마시고 돌아서면 뒷전에 있던 동자승이 눈부비며 인사하고 / 한수야 부르는 맑은 목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해탈 스님의 은은한 미소가 법당 마루에 빛나네" 한 탁발승이 아침을 맞이하며 그리는 산사의 풍경은 일상적인 표현으로 가득 차 있어 생생한 데다가 재미있기까지 하다. 제목만 보고는 제도권에 순응하지 못한 채 떠도는 탁발승의 한숨 섞인 고백일 줄 알았건만, 차분한 기타와 쓸쓸한 하모니카 연주에 밝고 생기있는 가사가 예상을 깼던 것. 철저히 개인의 감정에 충실한 지금의 가요와 달리 언어로 그림을 그리는 시각적 묘사가 나에게는 마냥 새로운, 그런 시(詩)이자 노래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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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가는 배 (1984)

 

뮤지션인 동시에 사회운동가이기도 했던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는 단순히 사랑을 노래하는 이별가는 아니다. 평화로운 땅을 향해 떠난 화자가 탄 '배'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사회를 바라본 그의 생각을 반영한다. 가사는 물론이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처연한 연주, 후주에 들려오는 기타와 피아노의 무아지경은 수동적인 현대인에 선사하는 따끔한 일침으로 들릴 정도다. 기약 없는 기다림은 애달프기도 하련만 정작 떠나가는 배는 미련이 없다. 출렁이는 배에 몸을 싣고 초연하게 떠나가는 그의 행선지는 어디일까. 욕망과 범죄가 난무하는 이 세상의 반대편일지 모른다. 지금 이 시대의 노래보다 마음을 울리는 낱말의 연속이 낯설고도 친숙하다. 1980년대의 모습을 담고 있는 가사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다르기에 더욱더 애처롭다.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선율이 아픈 여정을 재촉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무욕의 땅으로. (조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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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1984)

 

담한 음악이 때로는 가장 큰 울림을 선사한다. 단출한 구성에 감정의 과잉 없이 호흡하는 '우리는' 역시 그렇다. 침잠하듯 내려앉은 기타 반주 위에 박은옥이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절창하는 이 노래는 어둡고 잔잔한 악기와 지독하게 꾸밈없고 진실한 그의 보컬이 만나 깊은 감동을 전한다. 별다른 소리의 충돌 없이 최소한의 것을 바탕으로 우뚝 솟아 나온 힘 있는 목소리와 많은 생각거리를 던지는 압축된 가사. 여기에는 쉬이 흘려보낼 수 없는 감정이 담겨있다. '소리도 없이 스치는 바람 속에서 우리는 무얼 듣나 / 저녁 하늘에 번지는 노을 속에서 우리는 무얼 느끼나'. 알 수 없는 비극과 해결할 수 없는 길 잃음이 연속되는 삶의 한복판에서, '우리는'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질문을 던진다. '삶은 무슨 의미인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가장 원론적인 물음을 말이다. 발매 후 35년이 지난 지금도 젊은이들에게 이 메시지는 유효하다. 모든 게 처음이라 항상 고달플 작금의 청춘들에게는 이런 자문자답, 더 많은 독백이 필요하다. 시대의 흐름으로부터 자유로운 묵직한 노랫말이 여기에 살아있다. (이홍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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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에게 (1984)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늘 떨리는 일이다. 연애 시절,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함께 이겨낸 두 사람의 곡은 그래서 더 애절하게 느껴진다. 눈앞에 놓인 젊은 시절의 성공보다 사랑을 택한 이들의 노랫말에는 온 마음으로 상대방을 그리워하는, 계산되지 않은 순수함이 담겨있다. 현실을 거침없이 노래로 풀어낸 정태춘이 사랑 앞에서 참 다정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한다. 오늘날 청춘에게 이 노래는 두 사람의 첫인상으로 기억된다.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한 장의 편지에는 소박한 꽃내음, 통기타의 울림 사이로 전해지는 정태춘의 담담한 보컬과 청아한 박은옥의 음색이 녹아있다. 노랫말 역시 요즘의 '고막 남친', '고막 여친'이 주는 친숙함과는 또 다른 모양으로 공감대를 형성한다. 시대를 관통하는 보편적 끌림, 즉 진실한 사랑이 주는 감동은 '사랑하는 이에게'를 지금 여기의 곡으로 만든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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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강에서 (1984)

 

안개 자욱한 가을의 새벽, 고고히 흐르는 북한강 가 앞 홀로서 있는 사내는 고독하다.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이름과 또 당신 이름과 그 텅 빈 거리를' 생각하며 찬물에 얼굴을 씻고, '산과 산들이 얘기하는 나무와 새들이 얘기하는 그 신비한 소리'를 찾는다. 지구 레코드에서 발매된 마지막 앨범 <북한강에서>와 동명의 이 곡에서 정태춘은 뿌연 안개 너머 아른거리는 강 건너 반대편을 갈망한다. 그것은 기성의 문법과 서정적인 지난 모습과의 단절이자 새 출발에의 염원이다.본격적인 투쟁의 길로 들어서기 전 정태춘의 대표곡 중 하나인 '북한강에서'는 현실과 이상의 경계 속 사색하는 아티스트의 모습이 있다. 운 좋게도 10대가 되기 전 어린 나이에 '떠나가는 배'와 '탁발승의 새벽 노래'의 서정미를 사랑했던 아버지의 카 오디오로 이 노래의 존재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대한민국과 민주화, 저항과 고독의 단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그 시절을 '서울이라는 아주 낯선' 도시에서 반추한다. 정태춘은 너른 바다만 익숙하던 어린 시절에 고고한 강의 세계를 알려준 인물이었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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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한민국… (1991)

 

이 곡에는 시대가 있다. 자그마치 5분 30초 동안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과 하루 밤 향락으로 일천만원씩 뿌려대는 누군가에 대하여, 시위 현장의 억압된 울분과 독재의 시퍼런 칼침을 냉철하고 냉혈하게 그리고 비판하며, 발 딛고 선 대한민국의 현실을 짚어낸다. 주저함 없이 거칠게 쏟아낸 노랫말에 역시나 가해진 가사 규제를 전면 거부하고 대학가와 공연장을 중심으로 비공식 음반을 유통했다.빼곡히 써내려간 가사가 세상을 집약했다면 노래 자체는 변화를 움켜쥐었다. 이 곡을 시작으로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는 엄중한 경고를 담은 '92년 장마, 종로에서'가 또 다시 심의 판정에 걸리게 되면서 사전 심의제 철폐를 향한 그의 길고 긴 싸움이 시작됐다. 결국 예술과 대중에게 의도적 억누름을 행한 사전 심의제는 폐지된다. 정태춘, 박은옥이 촉발하고 서태지의 <시대유감>이 끌어 온 젊은 세대의 획일화 정책에 개혁에 불꽃을 쏘았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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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년 장마, 종로에서 (1993) 

 

최루탄의 안개가 걷히고 나타난 풍경은 비에 젖은 웬디스 햄버거 간판과 그를 무력하게 바라보는 비둘기였다. 수많은 피로 얻어낸 민주화는 군부독재 잔당을 첫 대통령으로 뽑았고, 민주화운동의 거산은 그들과 손을 잡았다. 울분에 찬 대학생들이 스스로를 불로 태웠지만 세상은 햄버거가 들어올 만큼 잘만 돌아갔다. 어떤 이들의 마음속엔 짙은 장마가 내렸다.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고 억눌린 목소리로 노래한 정태춘도 그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어떻게든 이를 악물었다. 쓸쓸히 읊조리던 전반부를 지나 "절망으로 무너진 가슴들 / 이제 다시 일어서고 있구나"라며 희망을 꿈꿨다. 그 끈질긴 의지야말로 이 '불법 앨범'이 사전심의제를 끌어내린 힘이었고, 2016년 겨울 광화문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이 노래를 다시 호출한 이유였다. 한 해 전 백남기가 물대포에 쓰러진 그곳에서 정태춘은 "물대포에 쓰러지지도 말자"고 울분을 섞어 노래했다. 그러나 그날의 장마는, 아직 그치지 않았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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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진 3. (2002) 

 

2002년에 나온 10집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의 '정동진 3.'은 '아, 대한민국…'과 비슷한 인상으로 당시 사회를 고발적이고 직접적으로 담아냈지만, 지금과 비교해봐도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다. 오히려 멕시코와 미국을 대조한 가사는 근래에 미국이 놓은 장벽을 보여주듯 생생하다. 이는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시대 고찰의 노래가 어떻게 영원한 생명력을 얻는지 잘 보여준다.20세기 검열의 시기를 지나 21세기 케이팝은 여전히 사랑 얘기로 가득하다. 잘못됐다기보다 2017년 관객 수가 칠백만을 넘은 <1987>처럼 영화에서는 강한 호응을 보내면서 왜 올해 40주년을 맞이하는 정태춘에게는 이리도 반응이 없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여전히 대립이 넘치는 파도 속 가르침이 없는 사회에서 음악으로 현실을 마주하기보다 도피처로 여기는 것일까, 혹시 무관심한 것은 아닐까.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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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가는 시내버스(2012)

 

'왜 하필 시내버스가 바다로 가는 걸까요?' 정태춘 토크 콘서트 취재 이후 어떤 네티즌으로부터 받은 질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2012년 <바다로 가는 시내버스>를 처음 들었을 때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주제였다. 강도 있고, 92년 비 내리는 종로의 거리도 있는데, 왜 정태춘과 박은옥은 10년 만에 발표한 정규 앨범의 행선지를 바다로 정했을까. '모든 시계들이 깊은 잠에 빠져도 / 네 먼 바다는 아직 일렁이고 있겠지'라는 박은옥의 떨리는 목소리만으로 감상을 제한할 수밖에 없던 2012년이었다.4월 30일부터 5월 7일까지 열린 <정태춘 박은옥 40주년 전국투어 콘서트 '날자, 오리배'> 현장에서 박은옥은 정태춘으로부터 이 곡을 받고 너무도 많이 눈물을 흘렸노라 고백했다. 그것은 음악으로 투쟁하고 고독했던 지난날을 향해 가는 시내버스와의 재회일수도, 앨범 전체를 총괄하는 '물'과 깊은 심해, 일렁이는 바다와 같은 우리 사회의 흐름에 함께한다는 감격일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박은옥은 이날 공연에서 모두의 아픈 기억인 2014년 4월 16일을 언급했다. 뜬구름처럼 느껴지던 바다가 비로소 눈 앞에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우리는 외롭고, 부끄럽고도 고독하지만 그 너른 바다를 똑바로 응시하지 못한다. 고개를 넘어가는 수도승처럼, 일렁이는 바다를 향해 시내버스에 몸을 맡겨야 한다. 설령 대양에 닿지 못할지라도.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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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가 음악사에 새긴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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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 음악사에서 페미니즘을 논할 때 가장 대중적이고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뮤지션은 마돈나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숨죽이지 않고 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한 순간도 이질적인, 양면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983년 1집 <Madonna>로 데뷔한 이래 얼마 후 발매를 앞둔 정규 14집 <Madame X>까지 그는 볼륨을 줄이지 않고 신념을 전파했다. 여성, 종교, 인종, 빈곤, 환경, 정치색에 이르기까지 마돈나의 행보는 거침없이 진보적이며 망설임 없어 획기적이다.

 

그가 걸어온 길을 정리한다. 마돈나가 음악사에 아로새긴 가치는 무엇인지 그 빛나는 순간들에 주목했다. 다소 개괄적 요약이 될 가능성이 크지만 바란다면 그를 다시금 마주하고 풀이하는 한 개의 안내서가 되었으면 좋겠다. 역사의 방향성은, 변화를 향한 움직임과 이동은 어느 정도 나아갔을까. 그 운신의 폭을 되짚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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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페미니즘에 새 방향을 심다

 

마돈나가 등장한 1980년대 미국은 푸석거렸다. 정치적으로는 보수당 출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정권을 잡아 경제 호황을 이끌었으나 내면의 억압은 여전했다. 어른들은 착한 여자를 원했고 사회 내 평등을 울부짖으며 퍼졌던 2차 페미니즘 운동은 옅은 미풍 속,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쌓인 성 고착관념을 반론과 시위 등 정공법을 통해 개선하려했던 당시 흐름에 사고의 전환을 꾀할 강렬함은 없었다.

 

바로 이즈음 마돈나가 등장한다. 데뷔 초 수려한 미모에 화려한 춤사위로 주목받은 그는 이후 파격적인 제목의 소포모어 <Like a Virgin>으로 구설수에 오른다. 짜릿한 새로움. 성을 파는 가벼운 음악가. 이 양극단을 오가며 크고 작은 논란에 선 그는 1984년 9월 14일 드디어 그간의 균열을 종식할 기념비적인 무대를 꾸린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이란 청취 구조의 변환을 일군 MTV의 창립 이래 첫 공식 시상식에서 마돈나는 매니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Like a virgin'을 열창했다. 서슴없이 취해보인 성적 제스처는 그 날의 핵심이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시대의 분기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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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정복할 거예요” 한 인터뷰에서 가볍게 웃으며 흘린 마돈나의 본심은 말 그대로 현실이 된다. 젊은 여성들은 Boy toy(나이든 사람과 관계 맺는 어린 소년)란 벨트를 차고 기성세대의 마른 입을 짝 벌어지게 만든 그에게 열광했고 세대를 선도한 그의 패션은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매김한다. 팬덤을 품에 안은 뒤 행진은 더욱 거세졌다. 'Material Girl'을 통해 만남의 필요조건은 돈이며 자신은 속물적인 여성임을 노래했고, 'Papa don't preach'는 뮤직비디오 속 짧은 머리와 겸해 스스로 미혼모를 택하는 가사로 기존 제도권 교육에 반한 행보를 이어간다.

 

지난 37년 동안 그의 목소리는 꺼지지 않았다. 페미니즘의 본래 기치에 맞게 여성에 한정지은 발화가 아닌 그 너머의 인권 수호를 외친 마돈나는 기존 평등 운동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그건 사회가 금기한 행위를 직접 선보이는 것이었다. 이전까지의 페미니즘이 '거부'와 '반대' 팻말을 드는 것에 불과했다면 마돈나로 촉발된 페미니즘은 안 되는 걸 행하는 두잇(Do it)형의 적극적 나아감을 품었다. 뿐만 아니다. 그는 남성과 그룹으로 한정된 스타 신드롬을 최초로 여자 솔로 뮤지션 쪽으로 옮겨왔다. 거리에는 마돈나가 넘쳐났다. 가죽 캡 모자, 십자가가 달린 목걸이. 질끈 묶은 머리엔 커다란 리본이 달려 있었고 팔목엔 여러 겹의 팔찌가 메여 있었다. 세상이 전에 없던 모습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단 한명의 여성을 통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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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퍼포먼스에 사회를 심다.

 

이렇듯 거침없는 성적 발화로 그가 확립시킨 건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었다. 2016년 빌보드 우먼 인 뮤직 시상식에서 올해의 여성상 수상자로 무대로 오른 마돈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수년간 창녀나 마녀로 불렸다. 성적 대상화를 했단 이유로 페미니즘이 후퇴됐단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왜 여성은 섹시하면 안 되는 것인가? 나는 억압을 비판한다. 난 나쁜 페미니스트다.” 그는 세간의 평가를 정확히 인식하였고 그럼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허리 숙이지 않은 강성 논조는 독보적 퍼포먼스와 맞닿아 새 흐름을 농도 짙은 영향력을 만들어냈다.

 

1989년 4번째 정규 음반 <Like a Prayer>는 상업적 성과와 비평의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비난도 만만찮았다. 동명 타이틀 'Like a prayer'의 뮤직 비디오에서 십자가는 불탔으며 예수는 흑인이었다. 성추행 범에게서 여성을 구해준 흑인은 피부가 검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이 되어 잡혀가고 오 분이 넘는 러닝 타임 속 노래는 흑인 차별과 기존 기독교 체계의 원론을 뒤엎을 저격을 계속한다. 전작 <True Blue>로 선보인 약간의 사회성과 댄스 팝으로 비롯한 스타성. 그 안전노선을 따르지 않고 내비친 한 층 파격적인 서사는 옛 것에 갇힌 고정관념을 깨부순 기폭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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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하지 말고 자신을 표현해라”는 그의 목소리는 더 많은 소녀와 소수자에게 해방감을 안겼다. 익히 알려진 1990년 <Blond Ambition> 투어 공연에서 트레이드마크인 콘브라 의상을 입고 자위행위를 퍼포먼스로 선보였으며 같은 년도에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까지 오른 곡 'Vogue'는 게이 문화였던 보깅 댄스를 음지에서 양지로, 마이너에서 주류로 끌어올렸다. 체제 저항적 디스코그래피에 제약은 날카로웠다. 9.11 테러의 응수로 전쟁을 선포한 정부에 일갈을 날린 뮤직비디오 'American life'는 철회되었고 2009년 월드 투어로 찾은 러시아에서는 공산주의 혁명가 플레이를 요구 받았다. 맞대응은 시원했다. 그는 무대에 섰다.

 

이 외에도 특별한 발자국은 많다. 편견 없이 성의 모든 것을 다룬 누드집 <SEX>을 출간하고 가시관을 쓴 채 십자가 위에 올라 에이즈의 심각성에 대해 알렸다. 동시에 수많은 잡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가장 높은 판매고를 올린 여자 가수이기도 하다. 그가 갈고 닦은 길목에는 전위적이고 힘이 센 여성이 있었으며 그 주위에는 평등과 차이, 차별의 극복을 향한 열망들이 녹아있다. 마돈나가 게시한 앞날은 훗날 핑크, 비욘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브리트니 스피어스, 케샤의 현재가 된다. 레이디 가가가 기괴한 의상으로 기존의 여성 캐릭터를 해체하며 'Born this way' 등을 통해 또 한 명의 페미니즘 혁명가가 될 수 있었던 건 탄탄한 윗 선배 마돈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주는 건 간단하다. 그는 전에 없던 여성의 태도를 음악과 사회에 심었으며 여기서 나아가 대중의 앉은 자리를 무대 아래에서 위로 이동시켰다. 반항과 저항으로 피어낸 평등의 목소리는 기존의 것이 더 이상 정답이 아님을 설파했다. 마돈나는 세상을 봤고 움직였으며 문화를 바꾸고 연대했다. <롤링스톤>이 마돈나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뮤지션 중 하나로 명명한 건 <빌보드>가 뽑은 가장 상업적 성과 좋은 뮤지션 2위로 선정 된 건 그의 손끝에서 피어난 가치의 전복 덕택이다. 이처럼 그는 음악으로 통념을 분해했다. 마돈나는 마돈나가 됐다.

 


박수진 (muziki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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