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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무브먼트를 위한 16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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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미국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미 전역에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됐다. 미국은 물론 세계 전 지역에서 소식을 맞아들이며 6월의 퀴어문화축제들에 열기를 더했고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9일 제16회 퀴어문화축제가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최됐다. 사회 각 영역에서 성 소수자들의 권리에 대한 큰 목소리가 다시금 뚫고 나오는 요즘이다. 특히 최근 몇 년 간 이들의 권리 옹호와 응원이 높아지는 음악계에도 이번 결정은 더욱 뜻깊다. 깊은 이야기가 오고 가는 많은 곡 가운데, 이번 동성 결혼 합법화 판정을 그 누구보다도 기뻐할 아티스트들의 열여섯 작품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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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GaGa - Born this way

 

2012년 레이디 가가의 첫 내한 공연 당시, 한 종교단체의 반발이 거셌다. 이들은 '레이디 가가가 동성애자이고 동성애옹호론자여서 동성애 확산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공연을 반대한다'고 발표했다. 분명 이는 사실무근은 아니다. 「Born this way」에서 그녀는 자신의 소신을 강력하게 공표한다.

 

'Cause baby you were born this way / No matter gay, straight, or bi,
/ Lesbian, transgendered life / I'm on the right track baby'
(왜냐면 너는 이렇게 태어났으니까
게이이든, 이성애자든, 양성애자든, 레즈비언이든, 트랜스젠더이든,
잘 걸어가고 옳은 길로 가고 있다구)


그녀가 전하고자 한 메시지는 명료하다. '신께서는 우리를 완벽하게 만드셨다. 그러니까 다른 누구가 될 필요 없이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사랑하자'는 것이다. 동명인 앨범< Born This Way >에는 양성애자라 왕따를 당하고 결국 자살한 소년 '제이미 로드마이어'를 추모한 「Hair」가 함께 수록되어 그녀의 신념에 쐐기를 박는다.

 

'난 그냥 나이고 싶어, 그리고 난 네가 진정한 내 모습을 사랑해주었으면 해' 라고(「Hair」 중에서)

 

2015/07 김반야(10_ban@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wV1FrqwZy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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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ha - We r who we r

 

오랫동안 동성애자와 동성애 혐오주의자 간에 갈등을 겪어온 미국은 2010년, 동성애자 청소년들에 대한 집단 따돌림과 자살이라는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직면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성애 청소년의 수가 점점 늘어나자 케샤는 이들을 위한 노래를 제작했다. 묵직한 비트와 강렬한 전자음에 오토튠을 점철시켰고 '우리는 모두 슈퍼스타,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이라는 메시지로 동성애자들을 독려했다. 「We r who we r」는 강한 중독성과 성 소수자들의 전폭 지지로 발매 직후 차트 1위를 차지했고, 400만 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하며 그의 솔로 곡 중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싱글이라는 영예까지 얻었다.


2015/07 정민재(minjaej92@gmail.com)


https://www.youtube.com/watch?v=mXvmSaE0JXA

 


Adam Lambert - Whataya want from me

 

< American Idol > 여덟 번째 시즌의 준우승자인 아담 램버트(Adam Lambert)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출연 이력만큼이나 성 소수자라는 특이사항도 두드러지는 뮤지션이다. 스스로가 게이라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뿐만 아니라 성 소수자의 평등이나 인권문제에 있어 항상 발 벗고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에게 본격적인 성공가도를 열어준 싱글 「Whataya want from me」의 경우 아담 램버트 본인의 성 정체성을 암시하는 듯한 뮤직비디오로 화제가 되었다. 아담 램버트를 단독으로 잡는 카메라 샷이 상대와 직접 대화하는 연인의 시선처럼 느껴져 그의 성 정체성을 묘하게 연상시키는 연출을 보여준다.


2015/07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GsQBZFWJT6s

 


Frank Ocean - Bad religion

 

프랭크 오션이 여러 방면으로 훌륭하기에 대단한 작사가라는 것을 대부분 간과한다. 「Bad religion」은 그 절정 중 하나다. 교회 혹은 성당을 떠오르게 하는 오르간 반주, 그는 택시기사에게 정신 상담을 부탁한다. 이어지는 대화는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가 게이인 것을 아는 이들은 「Bad religion」에 동성애가 죄악시되는 종교를 대입하여 감상할 수 있고, 마지막 흐느낌에 집중한다면 성립할 수 없는 짝사랑 상대를 대입하여 음미할 수도 있다. 절망적인 노래다. 여기에 가슴 아리는 프레이징과 적재적소의 팔세토 코러스가 작용하여 완벽한 PBR&B 넘버를 만들었다.


2015/07 전민석(lego93@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xzvxsiIpep8

 


Sara Bareilles - Brave

 

'긍정의 힘'을 노래한 사라 바렐리스의 「Brave」는 친구의 커밍아웃 스토리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동성애를 직접 언급하는 대신, 개념을 확장하여 서로 다른 모든 이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용감히 세상 앞에 나설 것을 주장한다.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 당신의 용감함을 보고 싶다'는 응원의 메시지는 경쾌한 피아노 터치와 힘 있는 목소리로 기분 좋은 공감을 부른다. 사라 바렐리스는 이 곡을 통해 사회의식을 갖춘 성숙한 싱어송라이터로서 대중에게 이름을 깊이 남겼을 뿐만 아니라 빌보드 싱글차트 23위의 상업적 성공까지 맛보았다. 성 소수자 매거진 < 더 아드보카트 (The Advocate) >조차도 이 곡에 대해 '현세대 LGBT들을 위한 송가로 운명 되었다'며 극찬했다.

 

2015/07 김도헌(zener1218@gmail.com)


https://www.youtube.com/watch?v=yNd_YXJXZ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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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klemore & Ryan Lewis - Same love

 

이 주제에 연상되는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다. 2014 그래미 어워즈에서 공연될 때, 동성애 커플을 포함한 33쌍의 '실제' 결혼식 퍼포먼스 또한 언급되어있으리라, 예상했을 것이다. 직접적이고 논리적인 가사, 진취적인 장면으로 이러한 글들에 클리셰처럼 사용될 것이다. 그렇게 뻔해지겠으나 그동안 없었던 것은 힙합의 성격 때문이다. 힙합은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남성성이 극대화된 장르인 만큼 남을 조롱하는 가사에 Faggot 혹은 Gay가 쓰였다. 동성애자를 혐오하지 않는 래퍼들도 단순한 비하의 수단으로 사용할 만큼 뿌리박혀있었다. 맥클모어가 설득했고 사회적인 분위기와 함께 그러한 태도가 줄어들었다.

 

'Our culture founded from oppression
Yet we don't have acceptance for 'em'

 

2015/07 전민석(lego93@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yVb9mG_Gf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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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ade Fire - We Exist

 

한 남자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민다. 이윽고 브래지어를 차고, 금발의 가발을 쓰고, 짙은 화장을 한 그는 이제 더는 '그'가 아닌 '그녀'다. 여성이 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술집에서의 희롱과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는 남자들의 폭행이다. 절망의 절정에서 그가 빚어내는 춤사위는 애처롭고도 고통스러운 자아 탐구의 과정이다. 트랜스젠더 아들의 아버지를 향한 절절한 고백과 앤드류 가필드의 열연을 담은 뮤직비디오로 「We exist」는 2014년의 거대한 울림이 되었다.

 

2015/07 김도헌(zener1218@gmail.com)


https://www.youtube.com/watch?v=hRXc_-c_9X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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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 Smith - Lay me down

 

영국출신 뮤지션 샘 스미스(Sam Smith)는 앨범< In The Lonely Hour >발표 이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아왔었고, 실제로 앨범은 발매 이후 그래미 시상식 여러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등 내적으로 외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특이한 것은 음반 발매 당시 샘 스미스의 발언이었는데 대중에게 스스로 성 소수자임을 커밍아웃한 것이 그것이었다.

「Lay me down」이 그런 그의 성향을 잘 드러내 주는 곡으로 꼽히는 이유는 다름 아닌 올해 공개된 뮤직비디오 때문이다. 샘 스미스는 동성결혼식을 올리는 커플으로 직접 분하여 자신의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한다. 동성애자 이성애자 트렌스젠더 그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어디서나 합법적으로 연을 맺을 수 있길 바라는 그의 소망이 적어도 미국 땅에서는 이뤄질 수 있게 되었다.

 

2015/07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HaMq2nn5a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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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zier - Take me to church

 

'너희는 여자와 함께 눕듯이 남자와 함께 눕지 마라. 그것은 문란한 죄이다.' (레위기 18:22)

 

기독교의 잣대, 성경 안에선 동성행위를 '번식을 목적으로 한 성행위'가 아닌 '쾌락만을 위한 성행위'로 보며 수간, 근친상간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 큰 죄악으로 명시되어 있다. 또한 기독교는 동성애적 성향을 선천적인 본성이 아닌 질병으로 치부하며, 치료로 개선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일랜드 출신의 싱어송라이터 호지어(Hozier)의 「Take me to church」는 이러한 기독교가 대표하는, 동성애를 죄로 여기는 집단에 대한 비난적인 태도를 가진 곡이다. 가사엔 개인의 특수한 사랑을 위해 개인의 신념조차 포기해야 하는 절망적인 상황에 관해 서술되어 있다. 이는 마치 폭력집단처럼 묘사되어있는 반 동성애 집단들이 게이 커플이 숨겨놓은 나무상자(성 정체성)를 제거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에서도 잘 표현되어 있다.

 

2015/07 이택용(naiveplanted@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PVjiKRfKp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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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 You are my best friend

 

명반< A Night At The Opera >의 분위기를 주조하는 「You are my best friend」는 베이스 주자 존 디콘이 부인이게 바치는 송가였지만 'Friend'의 의미는 대중에게 다르게 해석되었다. 단순한 멜로디와 가사지만 최고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가 부를 때 팬들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남다르다. LGBT 뮤지션의 상징이었던 그는 1991년 재능을 시기한 신에 부름에 하늘로 돌아갔지만, 무수히 많은 이들의 심장에 아직 최고의 '싱어'이자 '퍼포머', 나아가 록의 세계로 손을 잡아 이끈 진짜 '친구'로 영원히 남아있다.


2015/07 이기찬(geechanlee@gmail.com)


https://www.youtube.com/watch?v=pknlFm-gxLc

 


Elton John - We all fall in love sometimes

 

가장 유명한 동성애자 중 하나이자 숱한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는 엘튼 존의 감성적인 넘버.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 속에서 울려 퍼지는 엘튼 존의 목소리는 가히 매력적이다. 엘튼 존 특유의 수려한 멜로디 메이킹과 탁월한 가창력은 항상 청자를 어루만진다. 약 50년간을 함께 해온 그의 음악적 동반자인 작사가, 버니 토핀(Bernie Taupin)의 노랫말 또한 사랑의 아련함을 여실히 표현해낸다.


2015/07 윤석민(mikaelopeth@hotmail.com)


https://www.youtube.com/watch?v=YQBWYfsCeC4

 


ABBA - Knowing me, knowing you

 

아바는 모든 이에게 인기 있지만, 특히 동성애자들에게 사랑받는 뮤지션이다. 게이 커뮤니티에서는 디스코를 즐겨듣는 문화가 있었고,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아바의 댄스곡은 더욱 활발히 공유되었다. 덕분에 「Dancing queen」은 지금까지 퀴어 축제의 플래쉬몹 곡으로 사용되며, 반짝이 무대 의상과 퍼포먼스까지 관심을 받았다.

 

육아와 일에 대한 다툼으로, 아바의 두 부부가 이혼한 사연은 게이 집단 사이에서 화제였다.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노래 속 가사가 당시 멤버들의 지친 마음을 담고 있다. 노래를 발매한 뒤 네 사람 모두 파경에 이르렀지만, LGBT 사이에서는 서로를 알아가자는 이해의 메시지로 활용된다.

 

2015/07 정유나(enter_cruise@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x25WSOn6MSQ

 


Erasure - A little respect

 

약간의 존중. 갖기에는 실로 어려운 것이지마는 이 약간의 존중은 문제의 해결로 닿는 가장 빠른 길을 제공한다. 이레이저의 「A Little resspect」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내게 팔을 열어주길 청하는 노래의 가사를 좁게는 구애의 한 마디로, 넓게는 존중을 바라는 부탁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디페시 모드와 야주, 어셈블리를 거쳐 온 빈스 클라크와 보컬리스트 앤디 벨이 결성한 이레이저는 깊이 있는 텍스트와 근사한 신스 팝 사운드를 섞어 1988년에 이 곡을 내보였다. 가릴 것 없이 너른 사랑을 받은 「A little respect」는 그해 영국 싱글 차트 4위, 미국 빌보드 차트 14위라는 성적을 획득했다. 멤버 앤디 벨은 일찍이 스스로 동성애자임을 밝혀 성소수자 사회에서의 팝 아이콘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2015/07 이수호(howard19@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x34icYC8z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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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donna - Vogue

 

패션잡지 < Vogue >에서 이름을 딴 댄스 '보깅'은 1980년대 뉴욕의 게이 클럽에서 유행하던 춤의 종류였다. 마돈나는 패션모델들이 포즈를 취하듯 우아하고 관능적인 선의 미학을 강조한 보깅에 강하게 매료되었다. 영화< Dick Tracy >의 삽입곡으로 사용된 「Vogue」는 디스코의 영향을 받은 세련된 하우스 댄스 넘버로, 제목부터 안무, 가사(“Strike a pose”)까지 보깅을 위해 만들어진 곡이었다.

 

데이비드 핀쳐 감독이 제작한 뮤직비디오는 보깅을 추는 마돈나와 댄서들을 감각적인 흑백 필름에 담아 노래의 인기에 힘을 보탰고, 곧이어 전 세계 각국의 차트 1위를 수성하며 음지의 게이 문화였던 보깅을 메인스트림으로 진출시켰다. 이 후 보깅은 세계 댄스의 한 갈래로 가치를 인정받았고, 국내에서도 최근 신화가 「This love」의 안무로 활용하는 등 가장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동성애자들의 컨텐츠 중 하나가 되었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아름다움'이라는 희망적 가사와 섬세한 사운드의 이 곡이 게이들의 앤썸(anthem)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2015/07 정민재(minjaej92@gmail.com)


https://www.youtube.com/watch?v=GuJQSAiOD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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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ichi Sakamoto & David Sylvian - Forbidden Colours

 

'Here am I, a lifetime away from you / The blood of Christ, or the beat of my heart
My love wears forbidden colours. / My life believes in You once again'
(내가 있는 곳, 당신과 떨어진 삶 / 그리스도의 선혈, 혹은 심장의 울림
나의 사랑은 금지된 색채를 입었다네 / 나의 삶은 또 한 번 당신을 믿는다네)


제목은 낯설지 모르지만 멜로디는 분명히 친숙할 것이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대표곡 「Merry Christmas, Mr. Lawrence」을 샘플링했고 재팬(Japan)의 보컬 데이비드 실비안(David Sylvian)이 보컬을 맡았다. 「Merry Christmas, Mr. Lawrence」는 데이비드 보위가 주연한<전장의 크리스마스>의 주제곡이며, 영화 내용 자체가 동성애와 깊은 관련이 있다. '금지된 색체'라는 비유로 자신의 사랑을 고뇌하는 노래는 아찔할 정도로 탐미적이다. 아름답고 몽환적인 데이비드 실비안의 목소리는 연기처럼 흩날리며 긴 여운을 남긴다.

 

2015/07 김반야(10_ban@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x1YkHJJi-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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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ina Aguilera - Beautiful

 

'I'm beautiful / No matter what you say'

 

타자(他者)로 규정된 수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세상이다. '일반'으로 불리지 못하는 존재들을 향해 음악가는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보낸다. 그는 뮤직비디오를 통해 동성애자, 드랙 퀸, 거식증 환자 등 사회에서 쉽게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들에 대한 지지를 직접 드러내었다. 거울을 깨는 행위는 자기파괴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다. 시든 채로 아래쪽을 향하고 있던 해바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점점 고개를 드는 장면에서 고음역의 애드리브가 더해지면서 절정을 이룩하고 해방을 선사한다. 2002년에 발표된 < Stripped >의 수록곡인 이 곡은 그해의 빌보드 핫 100에서 16위를 차지했으며,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대표곡이자 LGBT 커뮤니티의 송가로 사랑받고 있다.


2015/07 홍은솔 (kyrie1750@naver.com)


https://www.youtube.com/watch?v=-USUDzycRvM

 

 

[관련 기사]

- 지하에서 우주로, 비틀즈 〈Across the universe〉
- 사랑에 빠지고 싶을 때
- 드레스덴 축제의 매혹적인 단조
- 래칫 뮤직(Ratchet music)
- 데이비드 레터맨 쇼 베스트 라이브 12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예정된 '쇼 미 더 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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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했던 개판 5분 전은 결국 개판으로 나타났다. < 쇼미더머니 >는 지난 7월 10일 방송에서 참가자들이 사이퍼(cypher, 힙합에서의 프리스타일 랩 배틀)를 치르는 모습을 예고했다. 귀띔한 영상에서 참가자들은 서로 자기의 랩을 보여 주기 위해 난잡하게 마이크 쟁탈전을 벌였다. 예고한 대로 7월 17일 4회 방송에서 사이퍼가 펼쳐졌고, 전파를 탄 그 화면처럼 시청자들은 참가자들의 우악스러운 생존경쟁을 볼 수 있었다. 도저히 좋게 포장할 수 없는 진정한 개판이었다.

 

문제의 예고 영상 때문에 이미 인터넷에서는 '힙합 문화에 대한 모욕', '부끄러운 쇼' 등의 비판 의견이 수없이 일었다. 방송 덕분에 힙합은 존중과 배려 없는 자기과시 놀음으로 비쳐졌으며, 방송 덕분에 경연에 참가한 래퍼들은 성공을 위해 아귀다툼을 서슴지 않는 인물로 보이게 됐다. 서바이벌을 위한 너저분한 몸부림이란 이런 것임을 말하는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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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같은 안 좋은 그림을 완성한 주역은 < 쇼미더머니 >에 참가한 래퍼들이다. 자의로 컴피티션에 참가했으며, 프로그램이 설정한 룰에 동의한 이들이다. 모두 이름을 더 널리 알리기 위해, 또는 더 괜찮은 활동을 위해 우승을 노린다. 그러니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규칙 안에서 사력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

 

< 쇼미더머니 >는 이러한 상황과 권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수성을 이용해 방송을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연출했다. 어차피 경쟁하기로 마음먹은 사람들, 재미있게 놀려나 보자고 사이퍼 시퀀스를 기획한 것이다. 래퍼들은 자극적인 화면으로 관심을 끌려는 프로그램의 소비재로 충실히 이용됐다.

 

애초부터 사이퍼는 참가자들의 과열 경쟁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는 미션이었다. 일반적인 대중음악의 버스(verse)처럼 하나의 래핑은 대체로 열여섯 마디가 기본이 된다. 보통 BPM이 90에서 100 사이의 비트는 열여섯 마디가 진행되는 데 40초 정도 걸리고 120가량 될 때 30초 초반대의 시간이 소요된다. (120BPM은 무척 빠른 편이다) 사이퍼에 참가한 래퍼는 스물여덟 명, 이들이 저마다 30초의 비트를 소화한다고 가정했을 때 순수하게 필요한 시간은 14분이다. 그것도 1초의 틈도 없을 때 가능한 이야기다. 그러나 제작진은 제한시간 10분을 줬으니 참가자들의 마이크 소유욕이 폭발할 수밖에 없었다. 사이퍼를 시작하기 전에라도 여덟 마디 이하로 랩을 하라고 고지를 했다면 저런 꼴불견은 어느 정도 방지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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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은 상식적으로 불충분한 시간이다. 결국 랩을 행하지 못한 참가자들이 생겼고 프로듀서들은 추가 시간 5분을 줬다. 사이퍼가 마무리되자 프로듀서 션은 추가 시간 5분에 랩을 한 사람들에게는 페널티를 적용하겠다고 말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15분을 줬다고 해도 모든 래퍼가 안정적으로 랩을 선보이기는 어렵다. 때문에 션의 말은 이 게임에 참여한 이상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마이크를 잡았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경쟁을 부추기고 성공만 한다면 모든 과정이 정당화되는 한국 사회의 비참하고 상스러운 단면을 < 쇼미더머니 >에서 또 한 번 경험한다.

 

세밀하지 못한 조건, 무한 경쟁을 종용하는 틀과 더불어 노이즈 마케팅으로 일관하는 태도도 문제다. 예고편이 그렇게 시청자들의 원성을 샀는데도 < 쇼미더머니 >는 녹화된 사이퍼 장면을 아랑곳하지 않고 내보냈다. 이 모습에서 자극을 우선 가치로 두는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시청률 제일주의의 천박한 본성이 이번 화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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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퍼가 시작되기 전 제작진은 "논란을 일으켜 정말 죄송합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예고편에서 보인 사이퍼에서의 래퍼들의 추한 경쟁, 이에 대한 대중의 열띤 비판을 인식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사과는 마지못해 하는 말로만 느껴진다. 진정한 사과의 기본은 잘못한 점을 명확히 언급하는 것이다. 무엇에 의해 야기된 논란인지 확실히 말하지 않는 것은 어영부영 대충 넘어가겠다는 뜻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 자막에 이어 프로그램은 "Show & Prove 한국 힙합의 발전에 보탬이 되는 < 쇼미더머니 >가 되겠습니다"라는 말을 전달했다. 그러나 < 쇼미더머니 >가 한국 힙합의 발전에 보탬이 되겠다는 포부에 부합하는 훌륭한 모습을 과연 보여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자극을 중요시하는 연출, 경쟁을 비상식적으로 부추기는 포맷, 프로듀서들은 물론 제작진조차 객관적으로 엄정하게 확립하지 못한 룰 등 엉망의 연속인데? 심지어 이 부정적인 부분들을 검수하려는 노력도 행하지 않았다. '쇼 미 더 개판'은 예정된 일이었다.

 

2015/07 한동윤(bionic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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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포르노 배우로 전락한 걸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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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은 어루만져야 제맛이다. 자기 손을 이용하든 남의 손을 빌리든 반드시 쓰다듬어야 한다. 양다리를 붙인 채 무릎을 살짝 구부려 골반을 돌리는 것도 기본이다. 여기에 다리를 어깨너비보다 약간 넓게 벌리고 뒤돌아서 엉덩이를 흔드는 것도 꼭 포함된다. 이때 손은 둔부나 하체 중요한 부위를 살살 두드려 준다. 다리를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벌리고 앉아서 골반을 위아래, 또는 양옆으로 움직이는 동작 역시 필수다. 이와 같은 몸짓은 오늘날 걸 그룹 안무의 으뜸 강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련의 몸놀림은 모두 섹스를 의미한다. 굳이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많은 이가 이것이 애무와 자위행위, 본격적인 성교 등을 흉내 낸 것임을 인지할 듯하다. 가수들이 이런 춤을 출 때 연신 발사하는 뇌쇄적인 눈빛은 섹스에의 함의를 친절히 부연한다. 한국 주류 대중음악에서 성행위를 무용으로 치환해 선보이는 일은 어느덧 범사가 됐다. 입에 담기가 껄끄럽지만 그야말로 '섹스촌'이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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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성에 대한 은유는 최근 뮤직비디오를 통해서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일 출시된 스텔라의 신곡 「떨려요」 뮤직비디오는 집요하게 여성의 음부를 묘사한다. 핸드백 지퍼를 여는 장면, 블라인드를 들추는 컷은 모두 음부가 열리는 것을 표현한다. 깍지를 낀 채 자신의 다리를 벌리는 모습이나 입술을 살며시 떼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뮤직비디오는 이들 모션을 통해 노래 제목의 운(韻)에 맞춰 '열려요', '벌려요' 같은 언어유희까지 암묵적으로 즐기고 있다.

 

영상은 한편으로 첫 경험에 대해 집중적으로 암시한다. 인형과 선인장에 피를 연상시키는 빨간 액체를 끼얹는 신이 그를 대표한다. 흰색 핸드백과 멤버들의 흰색 드레스는 순결을 내포하며, 이는 빨간색 세트, 소품, 의상과 대비돼 더욱 노골적으로 서술된다. 수박이 깨져서 내용물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은 뮤직비디오가 품은 메시지에 방점을 찍는다. 첫 경험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일이지만 색욕을 건드리는 요소들이 다소 폭력적으로 나타나는 탓에 훌륭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작정하고 만든 포르노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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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여름 「로켓걸」로 데뷔한 스텔라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14년 「마리오네트」를 발표하면서 화제가 됐다. 레오타드와 스타킹만을 입는 파격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의 관심을 이끌어 내긴 했지만 부정적인 피드백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마스크」와 「멍청이」 두 편의 싱글을 더 출시했으나 「마리오네트」 때만큼 눈길을 끌지 못했다. 스텔라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섹시 콘셉트로 나와야 주목을 받을 수 있다"며 자신들이 이런 퍼포먼스나 뮤직비디오를 보여 주는 것을 부득이한 최선의 결정처럼 얘기했다. 뜨기 위해서는 노출과 선정성이 답이라고 여기고 있어 안타깝다.

 

스텔라는 지난 「멍청이」 활동 때에도 충분히 야한 모습을 보여 줬다. 핫팬츠나 몸에 착 달라붙는 의상으로 몸매를 강조했고, 걸 그룹 안무의 슬로건과도 같은 골반 흔들기, 음부 근처 두드리기 등의 동작으로 섹스어필을 전달했다. 뮤직비디오 중 발레를 연습하는 장면에서는 음부에 카메라 앵글을 고정한 채 다리를 벌리는 동작을 행했으며 엉덩이, 가슴 등을 클로즈업해서 내보냈다. 멤버들이 밝은 표정을 지으며 쥔 분홍색 바나나는 남성의 성기에 대한 비유다. 노래의 템포가 느릴 뿐, 곳곳에 드러낸 것은 다름 아닌 욕정의 부추김과 섹스였다. 따라서 이때 섹시 콘셉트가 아니라서 이목을 잡지 못했다는 변명은 말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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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번 「떨려요」는 상당히 괜찮다. 현악기와 관악기가 공존하는 뉴 디스코풍의 반주는 날렵하고 경쾌하며, 코러스는 바로 인식될 만큼 선명한 멜로디를 뽐낸다. 템포와 리듬을 함께 전환하는 브리지는 응집력과 신선함을 겸비했다. 보컬과 잡스러운 가사 말고 다른 부분들은 무척 만족스럽다. 그럼에도 히트로 연결되지 않는 것은 노래가 지닌 마니아 성향, 소녀시대, 씨스타, AOA를 위시한 걸 그룹들의 복귀 집중, MBC < 무한도전 > 출연으로 힘을 입은 혁오의 폭발적 인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더불어 정작 노래보다는 뮤직비디오의 노골적인 표현에만 대중의 관심이 쏠린 탓도 있다. 스텔라는 벗고 만지는 콘셉트의 유무에 의해서만 히트가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걸 그룹은 대개 남성의 지지를 먹고 산다. 섹스어필은 남자들의 본능적 판타지를 건드린다. 제작자는 성공을 위해 선정적인 행위를 지시하고 가수(를 빙자한 연예인)의 꿈을 꾸는 여자들은 뜨기 위해 이를 감수한다. 방송과 언론은 언제나 화제가 되거나 될 만한 인물을 찾는다. 더 큰 자극을 야기하는 걸 그룹들의 치열한 생존경쟁은 급기야 많은 여성을 포르노를 방불케 하는 퍼포먼스와 뮤직비디오의 눈요기 재화로 내몰고 있다. 좋은 그림이 결코 아니다. 이런 형국이 쉽사리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더욱 절망적이다.

 

2015/07 한동윤(bionicsoul@naver.com)

 

 


[관련 기사]

- 지하에서 우주로, 비틀즈 〈Across the universe〉
- 사랑에 빠지고 싶을 때
- 드레스덴 축제의 매혹적인 단조
- 래칫 뮤직(Ratchet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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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Surfin' U.S.A.부터 Love And Mercy까지, 비치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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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선장,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의 생애를 주제로 한 영화 < 러브 앤 머시(Love And Mercy) >가 개봉했다. 브라이언 윌슨과 비치 보이스의 여러 이야기를 담은 만큼 밴드의 여러 명곡들이 등장해 작품을 빛낸다. 이와 관련해 이즘에서 브라이언 윌슨과 비치 보이스의 역사를 만든 수많은 노래들 중 19개의 대표작을 꼽았다. 이미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에게는 더 큰 감동을, 영화를 볼 예정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열을 선사할 곡들이다. 발매 연도순으로 순서를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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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fin' U.S.A.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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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 뮤직의 클래식이자 여름철 베스트셀러. 영미권은 당연하고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에서도 더위의 시작과 함께 자주 울려 퍼진다. 척 베리(Chuck Berry)의 곡 「Sweet little sixteen」의 멜로디를 기반으로 두고, 맨하탄 비치(Manhattan Beach), 트레슬스(Trestles), 벤츄라 카운티 라인(Ventura County Line) 등 캘리포니아의 온갖 서핑 명소를 언급하는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의 가사와 찰랑거리는 칼 윌슨(Carl Wilson)의 기타 연주를 더해 만들어진 이 신나는 섬머 시즌 송은 그 해 빌보드 차트의 3위로 올라 밴드에게 큰 성공을 안겨주었다. (이수호)

 


Surfer girl (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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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당시 19살이었던 브라이언 윌슨이 태어나 처음으로 만든 이 노래는 1963년 동명의 앨범에 수록되어 싱글로 발매됐다. AABA의 쉽고 직관적 구조와 단순하지만 중독적인 멜로디는 금세 사람들을 매료시켰고, 이내 각 도시의 라디오 스테이션을 강타했다. 「Surfer girl」은 빌보드 차트 7위까지 오르며 큰 사랑을 받았고, 지금까지도 서프 뮤직의 대표 곡으로 회자되며 꾸준히 리퀘스트 되고 있다. (정민재)

 


Fun, fun, fun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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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작 < Shut Down Volume 2 >에 수록된 곡이다. 제대로 상쾌한 서프 뮤직을 선보이며 캘리포니아 출신임을 확실하게 드러낸다. 가사의 주제는 아빠의 썬더버드(1955년 출시된 포드사의 스포츠카)를 타고 놀러 다니는 여자아이. 블루스를 기반으로 한 기타와 함께, 리드 보컬을 받쳐주는 4성부 코러스가 청량감을 최상으로 끌어올린다.

 

서주의 기타 리프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점프 블루스 아티스트 루이스 조던의 「Ain't that just like a woman」(1946)에서 가져왔다. 같은 리프를 비치 보이스 이전에 로큰롤의 전설적인 기타리스트 척 베리가 「Johnny B. Goode」(1958)에서 인용하기도 했다. 시대를 따라 루이스 조던, 척 베리, 비치 보이스 순으로 들어보는 것도 감상하는 재미를 더할 것이다. (홍은솔)

 


I get around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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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초 이들은 경쾌한 서프 뮤직으로 전성기를 맞는다. 1964년 비틀즈를 비롯한 영국 밴드들의 미국 공략에도, 빌보드 정상에서 2주간 머물렀다. 이 곡은 비치보이스에게 처음으로 차트 넘버원을 선물한 노래이자, 브리티쉬 인베이전 중에서도 미국 밴드의 영역을 지켜낸 곡으로 기억된다. 록의 폭발력과는 성격을 달리하지만, 무더운 날씨와 해변을 마주했던 서부 젊은이들에게는 가장 가까웠던 음악이다. (정유나)

 


Don't worry baby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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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여성으로부터 '모든 것이 잘 될 테니 걱정 말라'는 따뜻한 위로를 받는다는 가사를 누구나 쉽게 흥얼거릴만한 매력적 멜로디에 담았다. 브라이언 윌슨의 팔세토와 코러스의 블렌딩, 특유의 흥겨운 캘리포니아 사운드는 서프 뮤직의 인기를 이어나가기 충분했다. 빌보드 차트 24위에 오른 「Don't worry baby」는 훗날 롤링 스톤, 피치포크 등 각종 음악지가 꼽은 명곡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서프 뮤직 플레이리스트의 단골 레파토리가 됐다. (정민재)

 


Help me, rhonda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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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get around」 이후 비치 보이스의 두 번째 빌보드 싱글차트 넘버 원. 비틀스의 「Ticket to ride」를 꺾고 올라선 쾌거라 그 의미가 더 깊다. 윌슨 형제가 아닌 멤버 알 자딘(Al Jardin)이 처음으로 리드 보컬을 맡은 이 곡은, 본래 싱글 발매 계획이 없었으나 지역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인기를 얻으며 「Help me, rhonda」라는 새 버전으로 정상까지 올랐다. 비치 보이스 특유의 아름다운 화음과 우리에게 익숙한 밝은 멜로디가 건강한 흥겨움을 선사한다.

 

이 노래가 수록된 1965년의 < The Beach Boys Today! >< Pet Sounds >로 진입하기 전 최후의 서프 팝 비치 보이스를 담고 있는 앨범으로, 「Do you wanna dance?」와 「When I grow up」 등 신나는 웨스트코스트 로큰롤의 앞면과 후속 프로그레시브 팝의 효시가 되는 비사이드(B-side)의 발라드가 공존하는 명반이다. (김도헌)

 


Barbara Ann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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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보이스가 받은 음악적 양분을 알 수 있는 곡. 두왑의 전형을 따르는 이 곡은 발표하기 4년 전인 1961년, 뉴욕의 5인조 보컬 그룹 더 리젠츠(The Regents)의 목소리를 타고 빌보드 상단에 올랐다. 사운드 구성도 대체로 동일하다. 풍부하게 쌓인 배킹 보컬과 전면에 자리한 브라이언 윌슨, 게스트로 참여한 잰 앤 딘(Jan And Dean)의 딘 토렌스(Dean Torrence)의 리드 보컬이 노래를 이끌어간다. 여기에 비치 보이스는 박수 소리를 더해 흥겨움을 더했다. (이수호)

 


Caroline, no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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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워홀이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lvet Underground)에게 바나나 그림을 선물하기 1년 전,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은 자신의 '반려견'인 바나나와 루이의 음성(?)을 곡에 담는다. 서프 뮤직 그룹이라는 이미지를 벗어던지고 1966년에 발표한 명반 < Pet Sounds >, 그 중 마지막 트랙인 「Caroline, no」의 이야기다.

 

선법적인 멜로디와 코드들이 부딪치고 뒤섞여 불안정한 풍경이 그려진다. 드럼, 기타, 베이스의 기본적인 밴드 구성뿐 아니라 비브라폰, 하프시코드, 테너 색소폰 등 흔치 않은 재료들이 더해져 실험적이다. 특히 후주에서 베이스 플루트가 메인 선율을 노래할 때 은근하게 풍기는 빅밴드의 향기가 깊은 인상을 남긴다. 악기들의 향연이 페이드아웃으로 사라진 후에는 기차 소리와 함께 바로 그 '개 짖는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2분 50초짜리 「Caroline, no」가 완성되기 전까지의 데모 격인 음원들도 여럿 존재하니, 다양한 방법으로 이 사이키델릭 명곡을 즐기면 되겠다. (홍은솔)

 


Sloop John B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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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B. 선박에서 선원들이 싸움을 일으켜 여행을 망쳤다는 내용이다. 뱃사람들 사이에서 장난스럽게 활용되다, 킹스턴 트리오(Kingston Trio), 지미 로저스(Jimmie Rodgers) 등 가수들이 불러 미국 서부의 민속 노래로 자리 잡았다. 민요를 좋아했던 멤버, 알 자딘은 브라이언 윌슨에게 이 곡을 제안했고, 새롭게 다듬어 1966년 비치보이스 버전이 나왔다. 수록된 앨범 < Pet Sounds >의 성격상, 이 싱글 역시 종소리나 화음 등의 입체감 있는 소리가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전석환의 건전가요 '그리운 고향'으로 익숙하다. (정유나)

 


I'm Waiting For The Day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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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에 웬 팀파니야?' < 러브 앤 머시 >중, 「I'm waiting for the day」를 녹음하는 장면에 등장한 대사이다. 이 또한 브라이언 윌슨의 의외성을 나타낸다. 드럼 대신 사용된 팀파니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멜로디 라인을 잡는 플롯과 6현 베이스 기타 또한 곡의 정적인 분위기와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잔잔함과 힘참을 오가는 곡의 흐름은 후반부에 로킹한 사운드로 변하는데, 이는< Pet Sounds > 중 가장 다이내믹한 순간으로 꼽힌다. (이택용)

 


Pet Sounds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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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 리스트의 후반부에서 곡은 < Pet Sounds >의 콘셉트를 완성시킨다. 봉고와 구이로(Guiro) 같은 퍼커션들을 이용한 리듬 라인과 브라스와 기타가 풀어내는 멜로디를 통해 이국적인 컬러를 만들어내고 이들을 한 데 뒤섞어 브라이언 윌슨 식의 사이키델리아를 멋지게 완성시켰다. 온갖 사운드를 이끌어내고자 했던 브라이언 윌슨은 심지어 타악기 대열에 코카 콜라 캔을 집어넣기도 했다. 음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이 시기의 브라이언 윌슨은 단순히 뮤지션이라는 말만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실험가의 면모를 보였다. (이수호)

 


God Only Knows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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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 보이스의 전설은 이 노래에서 시작되었다. 명반< Pet Sounds >의 수록곡이며 영화 < 러브 앤 머시 >에도 이 노래를 아버지에게 들려주는 장면이 나온다. 비치 보이스의 매니저였던 아버지 머리 윌슨(Murry Wilson; 그는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태도로 결국 해고를 당한다.)은 이 노래에는 “비치 보이스의 색깔이 없다”고 단언하지만 브라이언 윌슨의 고집으로 세상에 없던 아름다운 음악이 탄생했다.

 

아코디언, 프렌치 호른, 클라리넷, 색소폰, 첼로 등 20명 이상의 세션들과 함께 했다. 빼어난 화음이 없었다면 많은 악기를 이토록 자랑스럽게 나열하지 못할 것이다. 당시 비치 보이스와 경쟁구도에 서있던 비틀즈의 폴 매카트니도 이 곡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반야)

 


Wouldn't It Be Nice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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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명반 < Pet Sounds >의 첫 번째 트랙. 이전의 서프 뮤직을 벗어난 비치 보이스의 음악적인 지향점이 잘 드러난다. 필 스펙터(Phil Spector)가 고안한 '월 오브 사운드'를 적극 차용하고 만돌린부터 트럼펫까지 다양한 악기를 등장시켜 풍부한 소리를 구현했다. 이전의 로큰롤에선 볼 수 없었던 반음계적 전조 또한 브라이언 윌슨의 실험정신의 산물이다. 결혼의 환상에 대한 사랑스러운 가사와 아름다운 멜로디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여럿 로맨스 영화들과 광고에 삽입되어 가장 친숙하게 다가오는 곡이 되었다. (이택용)

 


Good vibrations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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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면서도 은혜로운 팔세토가 짧게 끝나고, 후렴이 나온다. 첼로를 비롯한 저음역대를 기둥삼아 코러스는 빵빵하다. 밴드가 아니다. 작은 오케스트라 규모에 희귀한 악기, 타네린까지 사용하면서 최대치를 뽑아 놓았다. 혁신적인 레코딩 기술 뿐 아니라, 멜로디와 구성 뭐 하나 빠지지 않는다. 롤링 스톤지 선정 위대한 앨범 2위에 수록된 위대한 노래 6위, 빌보드와 UK 싱글 차트에선 모두 1위를 했었다. 무거운 명예에 비해 곡 자체는 유머러스하다. (전민석)

 


Heroes and villains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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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더 길었다. 반 다이크 파크스(Van Dyke Parks)와의 합작을 통해 서사의 양식을 담은 프로그레시브 팝 트랙으로 < Smile >에 수록될 예정이었으나, < Smile >의 제작이 붕괴됨에 따라 3분 30초가량의 팝송으로 양식을 줄여< Smiley Smile >의 첫머리에 실렸다. 목소리를 쌓아 올려가며 뽑아낸 환상적인 보컬 하모니와 오르간 리프, 이들이 울리는 아련한 멜로디가 해당 버전의 전체를 이룬다면, 본래의 버전에서는 더 나아가, 희곡 식으로 접근해 만든 주요한 구간이 허리에 자리하고 있다. (이수호)

 


Surf's up (1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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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et Sounds >보다 웅장한 앨범'이 될 것이라던 < Smile >, 그 중심에는 「Surf's up」이 있었다. 1966년 앨범 발매 직후부터 설계된 이 거대한 팝-교향곡은 언뜻 과거 비치 보이스의 행적 같은 제목을 가졌지만, 실은 영험한 존재로부터 정신적 교화를 이루는 한 남자의 대 서사시를 담고 있다. 초반 2분의 피아노 연주를 타고 흐르는 맑은 목소리, 이후 점차 몸집을 불려나가며 영적인 세계로의 진입을 시도하는 일련의 흐름은 가히 경이로울 지경이다.

 

곡은 최초 가이드라인 버전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으나 걸작에의 불타는 집착에 사로잡혀있던 브라이언 윌슨에게는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웠기에 세상의 빛을 보는 데는 4년이 더 걸렸다. 동생 칼 윌슨의 주도로 제작된 동명의 앨범 < Surf's Up >과 함께 공개된 노래는 비록 온전치 못했으나 전설의 반열에 올랐고, 팬들은 완성본을 듣기 위해 그로부터 33년을 기다려야 했다. (김도헌)

 


Kokomo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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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Surfin' U.S.A.」 다음으로 유명한 비치 보이스의 노래다. 당시 < 탑 건(Top Gun) >으로 핫하던 탐 크루즈의 다다음 영화, < 칵테일(Cocktail) >에 쓰이면서 인기를 누렸다. 빌보드 정상 찍고, 골든 글로브와 그래미 후보로 오르기까지 했었다.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은 명곡은 아직까지 라디오 신청이 잦다. 특히 요즘 날씨에는 더. 늘어지는데도 시원한 파도 같다. (전민석)

 


Love & Mercy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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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치보이스가 브라이언 윌슨 없이도 「Kokomo」로 차트 넘버원 히트를 거둔 1988년, 그는 오로지 자신의 이름만으로 솔로 앨범을 발표한다. 오롯이 브라이언 윌슨의 이름을 건 노래. 그가 진실로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바로 '사랑과 자비'였다. 역사적으로는 '흥행 참패'라는 기록으로 남을지 모르지만 그 스스로는 이 곡이 '영적인 노래'라는 의미를 담는다. 그의 전기 영화의 제목이 왜 「Love & mercy」인지는 영화 마지막 장면의 '라이브'가 해답을 주지 않을까. 험난한 파도가 우리 삶을 덮치더라도... 부디 'Love and mercy to you and your friends tonight' (김반야)

 


Mrs. O'Leary's cow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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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못 채울 거대한 욕망을 안고서는 만족을 원했다. 광기로 뒤덮인 실험가의 저주받은 걸작이라 알려진 < Smile >의 한복판에 이 곡이 있다. 긴장감 가득한 멜로디와 오케스트레이션을 동반한 사운드 구성을 가지고 환각 경험을 근사하게 구체화하려 했으나 그 어느 녹음 결과물도 브라이언 윌슨의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무수한 작업 끝에도 욕망에 근접하는 답을 얻지 못한 아티스트는 완성을 포기했고 < Smile > 앨범 역시 빛을 보지 못하게 됐다.

 

음반에 오를 예정이었던 여러 트랙들이 수정, 이전 작업을 거쳐 다른 작품들에 실렸던 것처럼 곡 역시 축소 편곡돼 < Smiley Smile >에 「Falls breaks and back to winter」라는 이름으로 실렸다. 그리고 이후 2004년 < Brian Wilson Presents Smile >을 통해 완성된 모습으로 세상에 등장했다. 1966년과 1967년, 그 무렵의 상상이 현실이 됐다면 이 곡에는 「The elements: fire」라는 제목이 붙었을 테다. (이수호)

 

2015/08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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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걸 그룹 뮤직비디오의 답습과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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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봐도 심상은 한결같다. 파스텔톤 혹은 형광색의 화려하고 고운 색감, 동화나 만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예쁘장한 세트, 멤버들끼리 웃고 즐기는 모습이 공통되게 나타난다. 여기에 가끔 영어로 된 의성어와 의태어 CG, 외국 만화에서 볼 수 있는 말풍선이 옵션으로 들어가 또 다른 유사점을 만든다. 요즘 걸 그룹 뮤직비디오들은 이와 같은 공식을 복사해 전시한다. 덕분에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다는 조상님들의 말씀을 매일매일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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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소나무, 베스티, 씨스타, 라붐, 씨엘씨, 밍스 뮤직비디오 캡처

 

주류 걸 그룹이 내세울 수 있는 콘셉트는 이른바 '삼(三)시'로 한정된다. 섹시, 후까시, 배시시. 과한 노출과 농염한 행동으로 관능미를 연출하거나 거칠고 파워풀한 노래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일, 내내 밝게 웃음으로써 순진함과 발랄함, 깜찍함을 어필하는 것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첫 번째 스타일은 선정성, 노이즈 마케팅에 따른 부정적 인식 때문에 신인은 꺼리는 편이다. 두 번째 아이템은 이블의 「우린 좀 달라」, 와썹(Wa$$up)의 「Wa$$up」, 소나무의 「Deja Vu」 등이 대중 선호도가 떨어짐을 증명했다. 따라서 많은 걸 그룹이 위험부담이 적고 다수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명랑-깜찍의 노선을 택한다.

 

답답한 것은 배시시 계통의 수많은 뮤직비디오가 죄다 거기서 거기라는 점이다. 전형적인 행동의 점철, 예쁜 그림의 나열이 물결을 이룬다. 미용을 받고, 파티를 즐기며, 음식물을 입가에 묻히면서 먹는 장면은 감초다. 여기에 디자인을 강조한 인테리어와 생활용품, (타자기, 다이얼식 전화기, 구형 CRT 텔레비전 등) 지금은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빈티지 소품 전시가 획일화의 중요한 부분을 장식한다. 쏟아지는 양은 많으나 특정 이미지에만 집착하는 뮤직비디오의 범람으로 오히려 따분함이 가중된다.

 

산뜻한 광경에의 완고한 추구는 동일한 장소 헌팅으로 이르기도 한다. 걸스데이의 「나를 잊지마요」, 라붐의 「어떡할래」, 레드벨벳의 「Be Natural」, 플레이백의 「Playback」, 앤화이트의 「천국」, 헬로비너스의 「난 예술이야」 등의 일부 장면은 같은 공간에서 촬영됐다. 써니힐의 「그해 여름」, 에이핑크의 「LUV」,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 (Me gustas tu)」처럼 먼저 언급한 작품들의 공통 배경과 유사한 조건인 넓은 창, 높은 천장, 하얀 벽을 만족하는 세트에서 찍은 뮤직비디오들도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참신한 연출을 위한 상상력이 부족하면 새로운 것을 찾고 만들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텐데 그마저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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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 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걸스데이, 라붐, 플레이백, 헬로비너스, 앤화이트, 레드벨벳 뮤직비디오 캡처

 

고만고만한 영상의 행렬은 첫째 디지페디, 룸펜스, 주희선, 홍원기 등 업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감독에게 일이 집중되는 관행에 기인한다. 이들이 걸 그룹 외에도 많은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다 보니 이미 했던 방식과 표현을 답습하는 듯한 현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음 요인으로는 어떤 것이 인기를 끈다 싶으면 우르르 그것을 따라 하는 대한민국의 고질적인 생리를 들 수 있다. 줏대 없이 경향에 복종하는 태도에 의해 시종여일한 뮤직비디오가 발생하는 풍습이 강화된다.

 

이 외에도 여러 요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정서상으로는 사랑의 설렘이, 외적으로는 쾌활함이 제일의 슬로건이 되는 걸 그룹의 선천적 한계, 아이돌 시장의 지나친 팽창, 가수 제작자와 뮤직비디오 감독의 암묵적 이해관계 성립 등이 복합적으로 연결돼 엇비슷한 포맷의 보편화에 일조한다. 여간해서는 끊어지지 않을 뫼비우스의 띠다.

 

어차피 뮤직비디오는 형상과 장면에 의존하며 이것들을 부각하는 소산이다. 더욱이 가수와 노래를 홍보하는 브로슈어나 마찬가지니 대중의 눈을 빠르게 사로잡을 그림을 강조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뮤직비디오는 작가의 개성 어린 숨결이 들어가는 예술 작품이기도 하다. 익숙한 성분과 틀을 내보이는 영상이 즐비한 상황이 그래서 씁쓸하다.

 

2015/08 한동윤(bionic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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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M의 대중스타, 엘리 굴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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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언더그라운드에서 암약한 전자 음악을 주류로 끌어 올려 대중화를 꾀한 선두주자들은 주로 여성 팝스타들이었다. 전자 음악은 주로 화려하고 댄서블한 이미지의 음악과 퍼포먼스를 무기로 하는 팝 디바들에게 자양분으로 활용되었다. 조르조 모로더의 뮤즈로서 디스코 열풍을 주도한 도나 섬머(「Love to love you baby」, 「Hot stuff」), 90년대 인더스트리얼과 트립 합을 시도했던 자넷 잭슨(「Velvet rope」)과 마돈나(「Frozen」)가 그 대표 주자였다. 특히 마돈나는 셰어(「Believe」)와 함께 20세기 말 테크노 붐을 일으키며 일렉트로니카의 선구자다운 위용을 보이기도 했다.

 

21세기에도 대표적 디즈니 스타였던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시작으로 힐러리 더프, 마일리 사이러스에 이르기까지 아이돌 스타의 극적 이미지 변신을 위한 수단으로 전자 음악이 동원됐다. 특히 2011년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덥스텝 사용은(「Hold it against me」) 팝계에 덥스텝 열풍을 불러오며 포스트 마돈나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중에게 생소하고 어색한 전자 음악을 팝의 요소로 견인해 일렉트로닉을 친숙하게 하고 대중적 수용 범위를 확대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 날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의 새로운 뮤즈로 떠오른 엘리 굴딩은 이들과 차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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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 굴딩은 「Lights」, 「Burn」, 「Love me like you do」 등 다수의 EDM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지만, 사실 특정 장르에 국한되는 가수는 아니다. 데뷔 앨범 < Lights >에는 인디 록과 80년대 신스 팝, 뉴웨이브적 음악을 담았고, 소포모어 앨범 < Halcyon >은 전작의 기조를 이어가면서도 더 깊고 어두워진 감성을 음반에 유려하게 배치했다. 그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미래보다는 복고 지향적이었고, 이를 현대적으로 재현해내는 것에 초점을 두었다.

 

레트로에 쏠려있던 엘리 굴딩 사운드는 캘빈 해리스와의 공동 작업으로 전기를 맞았다. 트렌디한 EDM 「I need your love」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한 그는, 자신의 몽환적 음색이 미래지향적 일렉트로닉 사운드와도 좋은 합을 이룬다는 것을 실증했다. 각국 인기 차트에서 거둔 준수한 글로벌 성과는 그의 성취를 한층 드높였다.

 

뒤이어 2집의 리패키지 싱글로 발매된 「Burn」은 음악적 진화에 속도를 더했다. 캐치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를 강한 비트와 세련된 신시사이저로 감싼 이 노래는 영국 차트 1위를 포함, 유럽 전역과 전미 차트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능숙한 보컬의 강약 조절과 희망적 가사는 히트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이 후 그는 EDM 트렌드를 십분 반영한 「Goodness Gracious」, 「Beating heart」를 싱글로 발매하고 DJ 프레시(Fresh)와 「Flashlight」, 캘빈 해리스와 「Outside」를 발표하는 등 이전과 등급이 달라진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올 초,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의 주제가로 사용된 「Love me like you do」는 영화 속 섹시, 몽환적 무드를 환상적 EDM으로 재현해내며 「Burn」, 「Outside」로 이어진 변화된 행보에 정점을 찍었다. 히트곡 제조기 맥스 마틴이 가세해 아름다운 멜로디와 중독적인 훅으로 무장한 노래는 영국을 포함 20개국 이상의 차트에서 1위에 오르며 엘리 굴딩 최대 히트곡이 됐다. 맥스 마틴의 존재는 엘리 굴딩이 정통 EDM 뮤지션보다는 팝스타임을 증명해주는 단서이며, 긍정적으로는 상기한대로 그가 EDM의 주류 부상을 이끄는 데 기여한 인물이라는 것을 시사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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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에는 디플로가 중심이 되어 만든 일렉트로닉 뮤직 그룹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와 함께 싱글 「Powerful」을 발매하며 여전히 EDM 전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과거 전자 음악을 잘 활용했던 팝 디바들과 엘리 굴딩이 갖는 가장 큰 차이는 전자 음악에 대한 접근법이다. 마돈나가 사운드와 노래의 구조 등 전자 음악의 요소를 차용해 가수 주체의 팝 음악을 만들었다면, 엘리 굴딩은 캐치한 멜로디, 청량한 보컬 등 팝 음악의 요소를 전자 음악에 대입했다는 것. 탁월한 표현력과 일렉트로니카에 최적화된 음색은 캘빈 해리스, 디플로 등 스타 DJ들을 매료시켰고, 건전하고 희망적인 가사와 추문 없는 사생활은 10대 소녀 팬들을 운집시켰다.

 

2000년대 말 혜성처럼 등장한 엘리 굴딩은 복고풍 뉴웨이브에서 출발해 최첨단의 EDM까지, 전자음악의 많은 부분을 섭렵하며 EDM의 새 뮤즈로 떠올랐다. 일렉트로닉 팝을 하는 여자 가수들이 대부분 퍼포먼스에 주력하는 것을 생각 할 때, 시각적 자극이 아닌 오직 가창과 사운드만으로 자신만의 일렉트로니카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 그의 포지션은 각별하다. 최근 그는 영국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새 앨범 발매가 임박했음을 알렸다. 그의 EDM 헌신이 어느 수준에 도달 할 것인가가 신작에 대한 팬들 관심의 초점이다.

 

2015/09 정민재(minjaej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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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리 뉴만, 신스팝과 인더스트리얼의 개막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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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차 없이 뮤직비디오를 평가하는 'MTV의 한량' 비비스와 벗헤드는 개리 뉴만의 「Cars」를 보고 한 마디 내뱉는다. “데이비드 보위야?”

 

두 소년은 외모를 의미했지만 「Cars」는 데이비드 보위의 모습뿐 아니라 음악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았다. 검게 칠한 스모키 화장과 로봇처럼 무표정한 얼굴은 이 영국 출신 싱어 송라이터에게 글램록과 고딕의 이미지를 심어주었고 신시사이저를 통한 전자 사운드는 1970년대 후반 독일에서 활동하던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으로부터 채무를 지고 있다.

 

미래를 지향하던 1970년대의 대중예술가들은 도전 정신과 난해함을 담보로 커다란 실험을 시도했지만 1979년에 발표된 「Cars」의 멜로디는 다행히 어렵지 않다. 베이스 기타로 기초 공사를 다진 이 노래에서 우주를 유영하듯 곡 전체를 떠다니는 무그신시사이저 사운드는 곡의 음침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파열음을 내는 신시사이저 비트와 일그러진 기타 리프는 훗날 인더스트리얼의 롤모델로 승화했다. 개리 뉴만은 크라프트베르크와 노이 등 초기 일렉트로닉 음악의 선구자가 놓친 대중성을 포획하며 1980년대 신스팝 뮤지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도로에서 다른 운전자와 트러블이 생겼는데 그들은 날 때리려고 문밖으로 끌어내려고 했죠. 나는 차 문을 잠군 후에 도로를 달려 도망쳤습니다. 이 사건으로 현대인들이 차 안에서 얼마나 안전함을 느끼는지 깨달았습니다. 자동차는 마치 바퀴가 네 개 달린 내 왕국 같아요.”

 

개리 뉴만의 이 경험은 「Cars」의 탄생 배경이 됐다. 그리고 '차 안이 제일 안전해 / 난 모든 문을 다 잠굴 수 있지'라는 유명한 가사가 만들어졌다. 자동차로 대표되는 현대의 물질문명과 그로 인한 인간의 소외와 단절을 표현한 이 노랫말은 전자 건반을 통해 효과가 극대화됐으며 아이러니컬하게도 현대문명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광고음악으로 쓰였다. 개인의 이상과 기업의 이익이 어울리지 않는 어울림이었다.

 

불친절하고 냉소적인 음색으로 기계적인 분위기를 살린 개리 뉴만의 「Cars」는 M의 「Pop muzik」과 함께 디스코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던 1979년에 일렉트로니카 음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미국에선 9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영국과 캐나다에서는 정상을 차지하며 신스팝과 인더스트리얼의 개막을 알렸다. 홀과 피어 팩토리, 프랭크 자파, 나인 인치 네일스 같은 육중한 뮤지션들이 「Cars」를 커버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2015/09 소승근(gicsuc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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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보는 언프리티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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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다. 한 고비 넘기고 숨 좀 돌리려고 하면 이내 또 다른 난관이 찾아온다. 입시라는 큰 산을 정복한 뒤에는 더 사납고 힘겨운 취업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 피 튀기는 경쟁을 뚫고 취업에 성공했다고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본격적인 각축은 사실 지금부터다. 직장이라는 전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동료보다 나은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낙하산도 경계해야 한다. 인생이 서스펜스의 연속이다.

 

엠넷의 < 언프리티 랩스타 > 두 번째 시즌은 인생의 모진 순간을 압축해 나타낸다. 지난 9월 25일에 방송된 3회에서 11명의 참가자들은 영구 탈락을 놓고 일대일 랩 대결을 펼쳤다. 이 경기를 통해 안수민과 애쉬비(Ash-B)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게 됐다. 올여름< 쇼 미 더 머니 >에서 블랙넛의 구애 행위 덕분에 주목을 받은 안수민도, 지난해 첫 EP < Who Here >를 출시하며 힙합 신에 발을 내디딘 애쉬비도 모두 우승을 목표로 했지만 이에 근접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반드시 패자가 되는 냉혹한 룰은 그들의 이상을 가볍게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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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하지 않았다고 해서 섣불리 마음의 탕개를 풀 수는 없다. 승자가 되기 위해 나머지 라이벌들과 계속해서 경합을 벌이기 때문이다. 최후의 1인이 되지 못하더라도 음악 제작자, 방송 관계자, 대중에게 어필하려면 최대한 오래 버텨야 한다. 게다가 예술적으로 훌륭하지 않은 노래도 나왔다 하면 프로그램의 인기 덕에 음원 사이트 상위권에 오르니 이 좋은 구름판을 길게 영위하고 싶은 욕심이 드는 것이 당연하다. 성공을 염원하는 래퍼에게 < 언프리티 랩스타 >는 꿈의 연수원이나 마찬가지다. 생존한 뒤에도 긴장은 이어진다.

 

가뜩이나 정신적인 압박이 큰데 뜬금없이 또 다른 경쟁자가 등장하기까지 한다. 4회에서는 포미닛의 전지윤이 새롭게 합류했다. 프로그램이 정식으로 전파를 타기 전에 출연 사실이 보도되긴 했지만 그 어떤 대결도 치르지 않고 적수 몇 명을 밀어낸 상태에서 들어오는 것이기에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참여는 첫 번째 시즌에서 갑작스럽고도 아주 편안하게 전장에 들어선 제이스를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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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스와 전지윤을 보면 '빽'의 힘이 실감된다. 각각 소속사가 브랜뉴뮤직과 큐브엔터테인먼트로, 힘 들이지 않고 경기 중반에 참가한 것은 잘나가는 회사 덕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거나 인지도 낮은 인디 레이블에서 나온 래퍼가 얼마만큼 진행된 쇼에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하다. 든든한 배후를 두면 남들보다 수월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음을 이 프로그램으로 깨닫는다. 더욱이 전지윤은 데뷔 6년차 프로페셔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형편없는 래핑을 보여 줬다. 1회에 탈락 미션이 있었다면 바로 하차했을 허름한 실력이었다. 낙하산이 이래서 대단하고 한편으로 덧없다.

 

9일 방송되는 5회에서는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엑시(Exy)가 출전한다고 한다. 지난 9월 크루셜스타와 「쓸어 버려」라는 비공식 데뷔 싱글을 발표한 신인이다. 이런 무명의 새내기가 프로그램에 끼는 것은 유력 기획사의 로비, 레이블과 방송국 간의 이해관계에서 성립된 짬짜미의 결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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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하고 싶다면 격한 경쟁에 뛰어들어야 하며, 백이 있으면 원하는 위치에 쉽게 올라설 수 있다고 프로그램은 이야기한다. 또한 5회는 디스 배틀도 예고했다. 그냥 배틀도 아니고 '디스(Diss)' 배틀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남을 헐뜯고 비난하는 일도 필요함을 < 언프리티 랩스타 >는 암묵적으로 강조한다. 이러한 요소와 장면은 젊은이들을 경합의 극단으로 내모는 우리 사회를 연상시킨다. 이 방송을 즐겨 보는 이들이 출연자와 비슷한 나이 또래, 다른 양상의 경쟁을 치르는 입장에 놓인 청춘들이라는 사실이 서글픔을 키운다. 인생살이도, 방송도 언프리티하다.


2015/10 한동윤(bionic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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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영화로 기억되는 노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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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범주 안에서 자장면과 단무지, 라면과 김치와 같이, 떼려야 뗄 수가 없는 찰떡궁합 콤비가 있다면 역시 영화와 음악이다. 영화의 청각적인 요소를 책임지는 음악들. 그 중에서도, 영화의 알맞은 위치에 적절하게, 혹은 절묘하게 삽입되어 천 번의 대사보다 깊은 인상을 준 '영화로 기억되는 노래들'을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 두 편으로 나누어 소개해본다.

 

(영화를 목적으로 창작된 노래가 아닌, 기존에 있던 곡들을 사용한 경우를 기준으로 선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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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속 > / 사라 본(Sarah Vaughan) - A lover's concerto

 

많은 라디오 피디들은 영화 < 접속 >이 라디오 프로듀서를 잘못 묘사한 대표적인 영화라고 얘기하지만 마지막 장면에 흐른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에 대해서만큼은 완벽한 선곡이라고 찬사를 보낸다.

 

감독 장윤현은 1990년대 후반, PC 통신을 통한 신세대의 새로운 사랑 방식을 차분한 대사와 아름다운 영상으로 담아냈다. 푸른 모니터를 통해서만 존재를 확인하던 두 주인공이 엇갈린 기회를 극복하고 마침내 대면할 때 흐르던 사라 본의 「A lover's concerto」는 두 주인공이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고 다시 찾은 환희와 기쁨을 증폭한다.

 

이 비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비는 부드럽게 들판으로 떨어지네
새들은 저 높이 나무위에 있고 꽃들은 그들의 음색으로 세레나데를 들려주네
저 언덕을 봐
무지개의 밝은 색깔들, 하늘의 마법은 오늘 우리를 사랑에 빠뜨렸어

 

「A lover's concerto」의 가사는 영화 < 접속 >을 함축한다. 이 완벽한 매치를 찾아낸 조영옥의 음악 선곡이 빛을 발한 이 작품은 국내 영화 사운드트랙의 모범이 되었고, 이젠 볼 수 없는 피카다리 극장과 그 앞에 있던 배우들의 핸드프린트는 지난 추억에 대한 현재의 보너스다.

(소승근)

 


< 쉬리 > / 캐롤 키드(Carol Kidd) - When I dream

 

예민한 선곡감각을 가진 라디오 프로듀서 중에는 1979년 당시 컨트리 음악 슈퍼우먼 크리스탈 게일이 발표한 이 곡의 잠재력에 주목했지만 애청 레퍼토리로 승격되진 못했다. 하지만 한참 나중 45년생의 나이든 스코틀랜드 재즈가수 캐럴 키드가 불렀을 때는 그 의미와 대중적 파괴력이 전혀 다르게 나타났다.

 

모든 게 1999년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로 대대적으로 선전되고<타이타닉>을 넘는 흥행 대성공을 창출한 <쉬리> 덕이었다. 지금도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의 감동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이 원 펀치로 캐럴 키드는 내한무대를 갖을 만큼 인지도의 폭발적 상승을 수확했다.

 

2년 전<접속>과 이 영화 이후 영화종사자들은 사운드트랙의 힘을 인식하기 시작했고 음악 쪽은 홍보의 새 플랫폼으로 우뚝 선 영화를 부지런히 찾아야 했다.

(임진모)

 


< 공동경비구역 JSA > / 김광석 - 이등병의 편지

 

“근데 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죽었다니? 야, 야! 광석이를 위해서 딱 한 잔만 하자.”
< 공동경비구역 JSA >속 오경필 중사(송강호)는 이렇게 읊조린다. 바로 「이등병의 편지」를 들으면서. 글을 적는 시점으로부터 며칠 전에 방송된 한 다큐멘터리에서 밝혀졌듯 맨 처음 윤도현을 거쳐 전인권에게 그 마이크가 돌아갔건만, 저 장면 하나로 인해 '이 노래는 김광석의 것'이라는 암묵적인 동의가 이루어졌다. 단순한 청춘찬가를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헤어짐에 대한 의미를 곱씹게 만든 것, 바로 남북 병사들의 이별을 앞두고 흘러나온 이 노래였다.

 

세상을 뜬지도 어느덧 17년이 지났건만 '김광석 열풍'은 사그라지기는커녕 더 거세지는 느낌이다. 그가 부른 많은 노래들은 어느덧 삶의 나침반으로 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여러 뮤지컬에 삽입되어 갖가지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BGM으로서의 역할 또한 마다하지 않고 있다. 그 중 「이등병의 편지」는 '군대'라는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을 법한 매개체로 하여금 김광석이란 순수한 음악적 자아가 가장 보편적인 정서로 환원되어 압축된 곡이다. 그리고 < 공동경비구역 JSA >는 이 노래가 가진 공감대의 해방을 도왔다. 서로간의 공생에 의한 재발굴, 앞으로도 이만한 영화와 음악의 파트너십을 찾기란 어렵지 않을까.

(황선업)

 


< 친구 > / 로버트 파머(Robert Palmer) - Bad case of loving you

 

1980년대 디스코텍에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야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이 곡을 연상하겠지만, 이후 세대의 절대다수는 영화 < 친구 >의 '달리는' 장면을 통해 「Bad case of loving you」를 기억한다.

 

사실 명장면이랄 것도 없었다. 배우들은 달렸고, 다만 음악이 삽입되었을 뿐이니까. 가사가 영화 줄거리와 맞지도 않았지만, 질주의 모습과 곡의 분위기가 묘하게 어울렸다는 점이 이 신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잊히지 않는 순간으로 만들었다. 음악이 가지는 분위기의 승리였다.

(여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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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이키키 브라더스 > / 오지혜 - 사랑밖에 난 몰라(원곡 심수봉)

 

고단한 세션맨들의 삶을 다룬 영화 < 와이키키 브라더스 >는 성우(이얼), 정석(박원상), 인희(오지혜)가 밤무대에서 「사랑밖에 난 몰라」를 부르며 끝이 난다. 영화의 가장 큰 의미는 성우의 과거와 현재가 비교되는 과정에 있다. 열정과 꿈을 가지고 음악을 해오던 성우에게 현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신념 자체를 굴레로 만든다. 그렇게 성우는 과거의 추억을 잊어야 하고 사람을 잃어야 하는 쓸쓸한 단상으로 남는다.

 

성우가 한 때 연정을 품던 인희는 현재의 성우에게 활기를 부여해주는 인물이다. 결국 성우는 인희와 같이 밴드를 이루어 또 다시 음악의 업으로 뛰어든다. 오지혜가 부르는 「사랑밖에 난 몰라」는 그 자체로도 애처로워 등장인물들의 그림자를 한껏 부각하는 동시에 다시 재기하는 성우에게 한 줄기 희망을 불어 넣는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성우가 계속 음악을 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이기선)

 


< 오아시스 > / 문소리 - 내가 만일(원곡 안치환)

 

뺑소니로 교도소에서 형을 살고 나온 종두(설경구)와 중증뇌성마비 장애인 공주(문소리)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 오아시스 >는 한 마디로 마이너들의 사랑이다. 사회는 이들을 걱정 어리고 한심한 시선으로 볼 뿐만 아니라 이 둘 사이의 진솔한 감정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한 편견의 반작용이기라도 한 듯 공주는 극중에서 종종 정상인이 된 자신을 상상하고는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장난도 치고 화도 내는 사소한 행동들이 하고픈 공주의 안타까운 바람이 투영된 장면이다. 공주는 뇌성마비에 걸려서 노래방에서 종두가 건네주는 마이크에도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 못한다. 그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공주는 막차가 끊겨 아무도 없는 역에서 정상인이 되어 종두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상상을 한다. 그 상상 속에서 불러주는 노래가 바로 「내가 만일」이다. 내가 만일이라는 주제 아래에 불러지는 가사들은 종두와 공주가 세상의 시선에 대응하는 작은 바람들이다. 그런 안타까움이 영화에서 가장 가슴 먹먹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이기선)

 


< 광복절 특사 > / 송윤아 - 분홍립스틱 (원곡 강애리자)

 

극중에서 강애리자의 곡 「분홍립스틱」은 꽤나 중요한 장치로 사용된다. 한경순(송윤아)에게 있어 「분홍립스틱」은 그야말로 '내 인생의 노래'다. 노래방에서 곡을 부르던 도중 사기꾼 유재필(설경구)에게 청혼을 받기도 하고 짭새(유해진)가 삘 가득한 보컬로 곡을 부르는 모습에 반해 결혼을 약속하기도 하며 영화 말미의 야유회 자리에서 최무석(차승원)이 어수룩하게 이 노래를 선곡하자 금세 새로운 사랑에 빠져버린다. 재필이 무석의 탈옥에 동참해 우여곡절을 겪은 연유도 애인 경순의 변심에 있었다.

 

쌈마이(?) 느낌 가득한 노래방 반주에 어설프지만 발랄하게 부르는 송윤아 판 「분홍립스틱」은 곡이 사용된 장면들 중 단연 백미. 활기 가득한 그 모습에 우리나라 남자들, 많이 반했다.

(이수호)

 

 

< 클래식 > / 자전거 탄 풍경 - 너에게 난 나에게 넌

 

< 클래식 >에 삽입되어 단번에 사랑노래의 '클래식'이 되었고, 덤으로 당시 신인이던 포크그룹 자전거 탄 풍경에게 단번에 유명세를 안겨주었다. 초록 덩굴 가득한 연세대학교 교정을 뒤덮는 빗줄기를 시원스레 뛰어가는 조인성과 손예진, 그 풋풋한 사랑스러움에 딱 들어맞는다.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푸른 날의 햇살, 영원토록 빛나는 별이 되고 싶은 마음이 아로 담겨있는 삽입곡.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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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의 추억 >유재하 - 우울한 편지

 

영화의 소재는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일대에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일어난 총 10건의 부녀자 연쇄살인사건이다. 무거운 주제의 미스터리 극으로 흐를 수 있는 시나리오였다. 적절하게 접목된 코믹요소는 살인 사건이라는 스토리의 심각성을 여과시키며 다수 관객이 느낄 거부감을 걸러냈다. 송강호(박두만), 김상경(서태윤)이라는 배우들의 능란한 연기는 빈틈을 찾아볼 수가 없다. 특히, 두 형사의 대립과 갈등은 범인이라 지목되었던 박해일(박현규)을 검거하는데 발목을 잡는데서 영화의 재미가 더해진다.

 

살인을 암시하는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는 영화의 극적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치로 사용되었다. 라디오에서 '그' 노래가 흘러나오면 누군가는 죽는다. 생각만 해도 소름 돋지 않는가?

(신현태)

 


< 주홍글씨 > / 이은주 - Only when I sleep (원곡 The Corrs)

 

벌써 10년이다. 앞날이 창창하던 여배우는 충격과 안타까움으로 우리 곁에 남았다. 이제는 유작이 되어버린 영화< 주홍글씨 > 보다 그의 노래가 선명하게 들린다. 영화의 내용이나 캐릭터 '가희'와는 별개로 이은주의 마지막 '숨'을 담아 더욱 소중한 가치를 지닌다. 우연인지 운명인지 몰라도,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Up to the sky where angels fly I'll never die(천사들이 날아다니는 하늘 위에서, 나는 결코 죽지 않으리)"

(김반야)

 


< 어린 신부 > / 문근영 - 난 아직 사랑을 몰라 (원곡 이지연)

 

문근영을 '국민 여동생'으로 등극시켰을 뿐 아니라, 그 수식어를 만든 장면이다. 교복위에 군복을 걸치고, 열심히 율동까지 넣어가며 생목으로 부른다. 노래 가사도 줄거리와 캐릭터에 잘 붙어 웃음 짓게 만든다. 참 어리고 사랑스러웠다. 귀엽기만 하던 그 문근영이 내년에 서른이란다.

(전민석)

 


< 홀리데이 > / 비지스(Bee Gees) - Holiday

 

"유전무죄! 무전유죄!" 영화 < 홀리데이 >의 클라이막스에서 차분하게 멜로디를 내뱉는 깁 형제의 보컬이 등장한다. 1988년 10월에 벌어진 지강헌 탈주사건의 마지막 장인 인질농성 현장에서 해당 노래가 울려퍼지던 모습을 반영한 연출이다. 유리창을 깨가며 울분을 토해내는 이성재의 열연, 피사체의 심리상태를 담아낸 역동적인 카메라 워킹과 잔잔한 「Holiday」의 사운드가 이루는 대조가 작품의 한 순간에 비장미를 선사한다. 이 장면으로 인해 비지스의 「Holiday」는 국내 대중에게 1999년의 영화< 인정사정 볼것없다 >와 더불어 필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팝송으로 자리하게 됐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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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열한 거리 > / 조인성 - 땡벌 (원곡 강진)

 

< 비열한 거리 >와 「땡벌」은 알면서도 '비열한 거리'에 「땡벌」이 나오는지 혹은 어느 장면에서 나오는지 기억 못하는 사람들은 많다. 영화에서 「땡벌」은 총 세 번 나온다. 차에서 한번, 산에서 한번, 룸에서 한번. 부르는 노래와 사람은 같지만 제각기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 중 노래와 잘 어우러졌던 장면이 병두(조인성)가 수금한 돈을 가지고 차에서 따라 부르는 장면이다. 영화 초반부터 촉촉한 눈으로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부른다. 살짝 찡그린 인상의 호소력 속에 애환과 코믹이 공존한다. 트로트의 매력을 한껏 살린 노래 그 자체만의 매력 뿐 아니라 영화의 내용과 함께 와 닿는다. 후에 전개되는 주인공의 고달픈 인생을 닮은 가사, 영화 속 투박하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 같은 멜로디, 흠이 없는 선곡이다. 때문에 똑같이 세 번 나온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보다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전민석)

 


< 라디오 스타 > / 조용필 -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나 조용필 만들어 준다면서!” 집 나간 아빠를 찾는 아이와 같은 표정으로 돌아오라며 울먹이는 그에게서 더 이상 스타로서의 허세와 자존심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이 곡을 발화점으로,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정서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 진짜 스타 조용필의 음성으로 “사랑의 그림자 되어 그 곁에 살리라”라는 가사가 흘러나올 때, 긴 세월을 함께한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결코 허물어지지 않을 것임을 알 수 있다. 같은 마음은 같은 색깔로 빛난다.

(홍은솔)

 


< 밀양 > / 김추자 - 거짓말이야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한소절의 노래가 더 강렬하다. 영화< 밀양 >에서 주인공 역의 전도연이 교회의 야외집회에 훼방을 놓는 장면 역시 그렇다. 아들을 잃고, 신에게조차 큰 상처를 입은 신애는 목사가 설교를 하는 중에 방송 스피커로 노래 한 곡을 크게 틀어놓는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이내 아수라장이 된 기도회를 등 뒤로 현장을 유유히 빠져나오는 신애는 어떤 말도 표정도 없지만, 노래는 생의 부조리 앞에 선 그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대신 폭발시켜 주었다. 다 거짓말이라는 거듭된 외침은 세상의 위선, 허울만 좋은 말들, 그 무용성과 무의미를 향한 일침이자 믿고 싶지 않은 현실에 대한 처절한 저항과 같았다.

 

1971년 신중현이 쓰고 김추자가 부른 「거짓말이야」는 오랜 시간 대중에게 신애의 항변과 같은 음악이 되어 주었다. 쓰라린 삶에 대한 부정과 불신의 에너지가 필요할 때 사람들은 ' 사랑도 거짓말, 웃음도 거짓말'을 이어 부르며 제 사연을 삼켰다. 영화에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이 노래는 언제나 말보다 절묘했다.

(윤은지)


< 국가대표 > / 러브홀릭스 - Butterfly

 

스키점프 국가대표팀이 겪은 실화를 모티브로 800만 관객을 웃고 울린 영화< 국가대표 >의 또 다른 흥행 공신은 영화에 사용된 러브홀릭스의 「Butterfly」다. 열악한 여건에서 올림픽에 나가기까지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과 하늘을 가로지르는 스키점프의 짜릿한 비행에 < 미녀는 괴로워 >의 음악 감독 이재학이 제작한 「Butterfly」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감동을 배가시켰다. 드라마틱한 진행과 선율, 희망찬 가사로 사랑받은 노래는 이후 스포츠 대표 팀의 감격스런 순간 등에 빠지지 않는 배경 음악으로 지금까지 애용되고 있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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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아내의 모든 것 > / 류승룡 - 매일 그대와 (원곡 들국화)

 

< 내 아내의 모든 것 >은 권태기를 겪는 남편(이선균)이 신물난 아내(임수정)를 전설의 카사노바 (류승룡)에게 유혹해달라고 하면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다. 의뢰가 아닌 진짜 임수정을 사랑하게 된 류승룡은 '다시는 연락을 하지 않겠다'는 마지막 인사를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로 대신한다.

 

음악의 힘은 여기에 있다. 열마디의 말, 구구절절한 글로도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이 떨리는 목소리와 선율로 그대로 전달된다. '매일 그대와 함께 하고 싶다'는 노랫말은 '매일 그대와 함께 할 수 없는' 현실을 더욱 안타깝고 간절하게 만든다. 달콤한 원곡을 캐릭터와 상황만으로 역전시켜 버린 건 영화의 파워겠지.

(김반야)

 


< 건축학개론 > / 전람회 - 기억의 습작

 

음악은 쉬이 사랑의 매개가 된다. 극중 서연(수지)이 승민(이제훈)에게 건네준 이어폰에서 “이젠...”이 흘러나오는 순간, 두 마음에는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자국이 생겨버렸다. 시간이 지나 결국 “쓰러져가는 너의 기억이 다시 찾아”오게 되었을 때, 먼지 쌓인 시디플레이어는 먼지 쌓인 나날들로 다가온다. 기억의 시작이었던 그 노래가 끝내 기억으로부터의 출구가 된 엔딩이 참 아프다.

(홍은솔)

 

 

< 범죄와의 전쟁 > / 함중아와 양키스 - 풍문으로 들었소

 

느와르 물임에도 '살아있네'라는 유행어가 알려주듯 이례적인 성공을 거둔 작품.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 선포시기까지의 한국 사회의 모습을 부산의 한 조직 폭력배 사회를 통해 상징적으로 풀어낸 탄탄한 스토리라인과 최민식, 하정우 등 베테랑 배우들의 열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부패한 공무원인 최익현(최민식)이 조직폭력배의 리더 최형배(하정우)의 대부님으로서 행차하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 지점이다. 평범한 세관 공무원에서 조직의 큰 손으로 변모한 최민식의 걸음과 함께, 70년대를 풍미했던 형제그룹 함중아와 양키스의 노래가 절묘하게 울려 퍼진다. 부정할 수 없는, 어쩌면 지금까지도 계속되는지도 모르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나쁜 놈들 전성시대'였다.

(김도헌)


< 수상한 그녀 > / 심은경 - 하얀 나비 (원곡 김정호)

'하루아침에 노인에서 20대 청춘으로 변한 할머니'라는 소재로 전국 700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수상한 그녀 >에는 채은옥의 「빗물」, 세샘 트리오의 「나성에 가면」 등 새로 편곡된 추억의 가요가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되어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그 중 20대로 변한 할머니 오말순이 남편의 파독과 뒤이은 사망, 그로 인해 그와 어린 아들에게 닥쳤던 기구한 젊은 시절을 반추하며 부르는 김정호의 「하얀 나비」는 극 중 인물들은 물론 극장 안 관객들의 눈물을 훔쳤다. 원곡의 진한 감성을 유지하면서 세련을 보탠 편곡과 그에 어울리는 심은경의 담백한 가창이 명곡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정민재)

2015/10 IZ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시작부터 가시밭길, '아티스트 아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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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로엔엔터테인먼트

 

'아이유 제제 논란'은 '아이유 시대에 대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단일 아티스트의 노랫말을 두고 문학계와 예술계, 평론계와 대중 모두 서로가 의견을 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행보 하나하나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현재의 0순위 대세를 입증한 셈이다.

 

지금은 아이유 세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5년 전 「좋은 날」의 삼단 고음의 소녀는 순식간에 몇 안 되는 국민 여동생의 칭호를 누렸고, 내로라하는 작곡진이 앨범 크레딧을 채웠다. 그 칭호를 잃게 된 스캔들은 오히려 아티스트로의 전환 계기가 되어, < Modern Times >로 새로운 뮤즈의 등장을 알리더니 < 꽃갈피 >로 흘러간 옛 가요의 아련한 서정성까지 확보했다. 「좋은 날」부터 「스물셋」까지 이어지는 히트곡 행진은 당연하고 울랄라세션, 윤현상, 하이포에게는 목소리만 빌려줬음에도 사랑받았다.

 

여기서 핵심은 '아티스트로의 발전'이다. 현재 가요계에서 아티스트라는 칭호는 범람하는 아이돌을 넘어서는, 거장들과 발맞출 수 있는 자랑스러운 훈장과 같다. 동화 속 판타지 속 소녀였던 아이유가 스캔들 이후 앨범 커버를 회색으로 칠하고, 최백호와 양희은 등 거장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빠르게 이미지를 구축한 데는 '몇 없는 20대 초반 싱어송라이터'의 선명한 목표가 있었다. 이미 유명세 전에도 어쿠스틱 라이브를 통해 특수한 아우라를 형성한 터였고, 이름을 알리고 나니 협업은 더 쉬웠다. 김창완과 서태지의 간택에서 보듯이, 아이유는 청년층과 장년층을 이어주는 유일한 고리로 독보적인 아우라를 확보했다.

 

이 모든 준비 활동의 본격적인 시작이 바로 처음으로 작곡, 작사, 프로듀싱 전면에 선 < Chat-Shire >다. 그러나 걸작에 대한 찬사로 가득했던 첫 반응은 샘플 클리어와 가사 논쟁으로 얼룩져 사라졌다. 전자의 경우 가요계에 뿌리깊은 악습으로 제작 과정의 무책임을 탓할 수 있다. 그러나 뜨거운 후자는 이야기가 다르다. 이토록 거센 비판을 받는 것은 그만큼 아이유에 대한 대중의 기대가 크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밑에 숨겨진 반감 또한 상당함을 의미한다.

 

사실 「Zeze」의 가사는 소설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아이유 본연의 감상과 평가를 새로운 캐릭터로 담아낸 노래이지 직접적인 성적 대상으로의 희화화로 보기는 어렵다. 결정적 행위나 페도필리아적 성향도 선명하지 않다. 물론 '더럽다', '교활하다'는 표현과 앨범 표지, 콘셉트를 연관 지어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느끼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이 감상을 강요할 수는 없다. 출판사의 개입과 로리타 논란, 음원 폐기 운동, 소아 성애까지의 확장은 과도하다고 본다.

 

정작 핵심은 아티스트 아이유가 써내려간 가사와 프로듀싱의 작품성이지만, 이에 대한 이야기는 찾기 어렵다. 아이유가 간과한 것은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 비틀기는 자유지만, 대중의 공감을 얻는 매끄러운 표현 방식이었다. 「Zeze」에 가렸지만 혼란스러운 표현의 「스물셋」도 불편할 구석이 있는 등, 느낀대로 솔직하게 쓰는 것만이 미덕은 아니다. 본연의 마음을 표현하기에 아직은 초보자의 티가 느껴진다.

 

그러나 이런 미숙함이 인격으로까지 연결되는 작금의 설전은 분명 과하다. 짧은 몇 년간 쌓아온 이미지와 커리어는 분명 대단하지만, 아이유가 본격적으로 창작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2015년 올해가 처음이다. 흔한 팝 스타로부터 아티스트로 도약하는 과정에서의 홍역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높은 기대치로 인해 조금의 흠집도 크게 드러나며, 아티스트에 걸맞는 태도나 인성 문제까지 비화되어 엄청난 비난이 쏟아진다. 아이유의 잘못이 있다면 절대 다수에게 각인된 이미지를 미숙하게 비틀었다는 것 뿐이다. 게다가 평소에는 침묵하면서 이슈가 되니 불처럼 들고 일어나는 여론 또한 긍정적으로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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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아이유 <스물셋> 뮤직비디오

 

이제까지 대중이 누려온 '아이유 세계'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은 한 소녀의 재능 발산 스토리였다. 그리고 아티스트로의 영역에 진입하는 순간, 그 문턱은 높아졌고 규제는 까다로워졌다. 아티스트 이름에 대한 싸늘한 시선과 엄격한 기준은 몇 년 간의 노력으로도 쉽사리 통과하기 어려웠고, 「Zeze」라는 꼬투리가 잡히자마자 그 간의 모든 활동은 롤리타 콤플렉스의 상징으로 부정당하고 있다.

 

마냥 오빠가 좋았던 아이유 1세대, 금요일을 기다리는 복고 소녀의 아이유 2세대에 비해 본격적으로 막을 연 '수수께끼' 스물 세살 3세대는 시작부터 순탄치가 않다. 단순한 성장통일지, 공고한 체제의 흔들림일지. 결정은 오직 아이유에게만 달려있다.


2015/11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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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올드 스쿨의 잘못된 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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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드 슬랙스가 유행하더니 어느덧 청바지도 통이 넓은 제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최근 1년 사이에 볼캡(baseball cap, 야구모자)이 인기 아이템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예전 힙합 패션의 복귀 현상이 나타났다. 더불어 당시 발목까지 내려오는 것을 덕목으로 했던 기다란 우븐벨트까지 다시 출현해 1990년대 중반에 일어났던 길거리 패션을 재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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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조선 '볼캡으로 연출하는 올드스쿨룩!' 기사 사진

 

많은 이가 이런 패션을 '올드 스쿨 룩(old school look)'이라고 표현한다. 올드 스쿨이 힙합 음악에서 시기를 규정할 때 사용되는 명칭이라서 이런 힙합(스러운) 의류와 액세서리를 일컫는 데 어울린다고 생각해서일 것이다. 또한 구식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형용사이기도 해서 올드 스쿨이라는 호칭이 쉽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올드 스쿨 룩은 옳은 이름이 아니다. 힙합에서 올드 스쿨은 랩 음반이 공식적으로 출시되던 1970년대 후반부터 드럼머신의 활용, 록 음악 성분의 추가 등으로 스타일의 전환을 맞이하기 전인 1984년 정도를 가리킨다. 저 시기 래퍼들은 오히려 몸에 딱 붙는 검정색 청바지, 가죽재킷 등을 즐겨 입었다.

 

현재 한국에서 말하는 저런 깔끔하고도 적당히 헐렁한 옷이 힙합 패션으로 자리 잡은 시기는 90년대 초반 몹 톱 크루(Mop Top Crew), 미스피츠(Misfits) 같은 뉴욕의 댄서들이 힙합 댄스의 트렌드를 주도했을 때다. 이때 이들은 게스(Guess), 리바이스(Levi's) 같은 청바지의 루즈한 모델을 착용하거나 큰 치수를 입어 여유로운 맵시를 연출했다. 또한 토미 힐피거(Tommy Hilfiger), 폴로 랠프 로런(Polo Ralph Lauren) 같은 브랜드들이 출시한 스포츠 의류 라인도 힙합 댄서들이 즐겨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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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년대 미국 뉴욕의 힙합 댄서들

 

이 패션이 얼마 후 일본 댄서들 사이에서 유행했고, 이를 90년대 중반 우리나라의 댄서,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따라 하면서 국내에 힙합 패션이 정착하게 된다. 당시 한국에서는 이런 패션을 '세미 힙합'이라고 불렀다. 그 반대로 큰 사이즈의 옷을 입는 것은 '리얼 힙합'이라고 불렀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어이없는 작명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0여 년 전에 일어났던 경향이니 올드 스쿨이라는 단어는 맞다. 하지만 힙합에서는 90년대를 올드 스쿨로 규정하지 않는다. 저 패션을 선도했던 댄서들의 춤은 뉴 스타일 힙합 댄스로 불린다. 만약 매체에서 이 패션에 대한 기사를 쓴다면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감안해 올드 스쿨 룩이라는 명칭을 쓰는 일을 지양해야 할 것이다. 이름 붙이기를 좋아하지만 늘 엉터리인 한국 대중문화의 유감스러운 단면을 패션 경향으로 또 읽는다.

 

몇몇 래퍼도 용어를 잘못 인식하고 있어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새내기 래퍼 트루디는 < 언프리티 랩스타 >의 두 번째 시즌에 출연하면서 "한국에 올드 스쿨을 부활시키고 싶어서 나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나 그녀의 래핑 스타일은 올드 스쿨이 아니다. 굳이 어떤 파트에 귀속해야 한다면 90년대 초, 중반의 동부 하드코어 힙합풍이라 해야 할 듯하다. 트루디 역시 단순히 그 시절이 지금과 비교해 오래됐기에 그런 음악을 올드 스쿨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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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엠넷 < 언프리티 랩스타 > 트루디 인터뷰 사진 캡처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길미도 무지함을 드러냈다. 5회에 펼쳐진 트루디와의 배틀에서 그녀는 "올드 스쿨의 부활? 올드 스쿨 알긴 알아?"라며 운을 떼더니 N.W.A, 퍼블릭 에너미(Public Enemy), 런 디엠시(Run-D.M.C.) 등을 열거했다. 이들도 올드 스쿨 뮤지션이 아니다. 이처럼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을 이르는 힙합 황금기를 올드 스쿨이라고 잘못 이해하는 뮤지션들이 이들 외에도 많지 않을까 싶다.

 

복고 현상이 연이어 나타나고 힙합이 인기 문화로 자리 잡은 탓에 올드 스쿨이라는 명칭이 부쩍 가까워졌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남발되는 편이라 안타깝다. 일련의 경향은 잘못된 정보를 쉽게 퍼뜨린다. 매체든, 방송에 나오는 사람이든 제대로 알고 써야 한다.


2015/11 한동윤(bionic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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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 곡으로 영생을 얻은 가수, 조 퍼블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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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사이에 랩은 메인스트림에 접근했지만 흥을 돋우는 파티랩이 대부분이었다. 힙합의 저항 정신과 사회적 자각은 흐릿해졌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랩을 단순한 댄스음악으로 치부했다. 이것은 부조리를 폭로하고 사회적인 의미망을 강조한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에릭 비 & 라킴, 어레스트 디벨로프먼트 같은 힙합 뮤지션들의 등장을 만든 중요한 시대적 바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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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결성된 조 퍼블릭은 당시 유행하던 뉴잭스윙의 유행을 따랐지만 자신들의 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4인조 밴드였다. 이들이 보이즈 투 멩과 샤니스, 크리스 크로스가 텔레비전 무대에 섰을 때 백밴드를 맡았다는 것만으로 조 퍼블릭의 실력이 가볍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펑크(Funk)의 선각자 슬라이 & 더 패밀리 스톤의 「Sing a simple song」과 제임스 브라운의 「The grunt」, 「Get up, get into it, Get involved」 소울 칠드런의 「I don't know what this world is coming to」, 팔러멘트의 「All your goodies are gone」 그리고 백인 퓨전 재즈 록 밴드 스틸리 댄의 「Peg」를 가멸차게 짜깁기한 「Live and learn」은 외설과 폭력의 소재에서 벗어나 정신 차리고 자신의 삶을 설계하라고 설파한다. 


'살면서 배워야 해

직접 경험해 봐야 해

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말해주는 사람이 되기 싫어'


1992년 빌보드 싱글차트 4위까지 오른 「Live and learn」으로 조 퍼블릭은 세간의 주목을 받으며 어레스티드 디벨로프먼트와 함께 음악성을 인정받았으나 두 번째 싱글 「I miss you」가 55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하면서 더 이상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Live and learn」은 1990년대 우리나라의 댄스뮤직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고, 조 퍼블릭은 이 한 곡으로 영생을 얻었다. 


2015/11 소승근(gicsucks@hanmail.net)




2015 올해의 가요 앨범과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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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올해의 가요 앨범 >

 

싱글 중심의 호흡 가쁜 시스템 속에서도 여전히 음반의 미학은 살아 숨 쉰다.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서 등장한, 오랜 기다림을 겪고 나타난, 그리고 창작자의 고난과 고통을 안고 탄생한 숱한 앨범이 올해도 많은 음악 팬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 가운데서 2015년 한 해를 특히 빛낸 10 장의 앨범을 이즘이 간추렸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딥플로우 - < 양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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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시대에 앨범의 미를 과시한 역작. 전체적인 그림이 탄탄하다. 딥플로우가 원한다면 뮤지컬로도 만들 수 있다.

 

제목 < 양화 >에 걸맞게 양화대교를 중심으로 두 이야기(兩話)를 펼친다. 전반부는 홍대를 위시한 한국 힙합에 대한 애증, 묵직한 「잘 어울려」와 굿판 「작두」가 화려하다. 다리를 건너 영등포에 다다르면 아들 류상구의 마음이 안쓰럽다. 잘해왔음에도 가장은 가족에게 미안하다. 폭넓은 감정의 요동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노련한 프로듀싱보다 한 남자의 인생이 설득력을 제공했다. '내 얘기' 하는 본토 힙합의 본질을 모범적으로 안착시켰다. 앨범 자체뿐 아니라 이후의 영향까지 빛날 명반이다. (전민석)

 

두 번째 달 - < 그동안 뭐하고 지냈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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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폴로가 돌아왔다. 벌써 10년 차, 이제는 초보 여행자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안정적인 필체를 구사한다.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밴드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구성원들 스스로 소통의 노하우를 체득하게 되었다. 아이리시, 국악 크로스오버, 모던 재즈 등의 다양한 양식과 낯선 국적의 악기들을 혼합했음에도 산만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곡을 이끌어가는 주선율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두 번째 달이 지향하는 음악은 서로 균형을 맞춰가는 악단 형이다.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하나의 방향성과 전통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바탕으로 팀은 월드 뮤직이라는 이국적 외형 안에 '우리'라는 친근한 이미지를 꽃피웠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작품이다. (홍은솔)

 

이센스 - < The Anecdo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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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적인 발매 과정은 앨범 감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 덕을 봤다기보다, 둘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일련의 사건이었다. 음악에 녹인 인생 농도가 짙다. 이센스의 방황이 < The Anecdote >로 설명된다.

 

이 진솔함을 구현한 짐승 같은 랩은 2007, 8년부터 기대 받아왔다. 찬란해야만 했던 구속의 시기를 지나 홀로서면서, 이국의 붐뱁을 만나면서 날개 달았다. 작품은 정수를 건드린다. 90년대 힙합 명작들이 주던 고유의 매력을 정갈하게 담아냈다. 유기적인 흐름도 놓치지 않는다. 그중 「The anecdote」에서 「Back in time」으로 뒤집히는 정서가 놀랍다. 새벽 공기처럼 명징하다. 이외에 「Writer's block」은 물론이고, 수록되지 못한 「비행」과 「Sleep tight」마저 독했다. 비참한 예술. 자조적이고 혼란스럽던 그의 삶이 이토록 매혹적이다. (전민석)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 < 썬파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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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이라는 오랜 산고 끝에 나온 앨범이다. 김나언(키보드), 박태식(드럼)이 합류해, 조웅(보컬) - 임병학(베이스)의 2인 체제를 완전히 해체시켰다. 전반적인 톤부터, 제작 방식까지 달라지면서 귓가를 맴돌며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던 목욕탕 사운드는 조화로운 무지갯빛 화음으로 변했다.

 

시스템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질주는 여전히 날카롭고 긴장감 넘친다. 이는 무작정 빠르게 달리는 폭주가 아니라 원숙한 속도 조절로 짜릿한 쾌감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기어를 바꾸듯 돌연 템포를 바꾸는 변주는 지루할 틈 없이 '이완'과 '활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 썬파워 >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온기'와 '건강미'까지 두루 갖췄다. 카랑카랑하고 밝아진 기타톤과 보컬, '성숙'을 담은 가사는 밴드의 새로운 전환기로 질주한다. (김반야)

 

라이프 앤 타임 - < L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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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Life)과 시간(Time)은 모두 '흐른다'는 속성을 가진다. 유려하고 거침없이 그들의 음악도 '흘러간다'. 기계처럼 반복적이거나 패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리 자체가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자유롭게 살아 파닥거린다. 이는 세 멤버의 숙련된 내공과 휘몰아치는 캐미가 뻔한 '정형성'은 모두 부숴버린 덕분이다.

 

이들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노래한다.< LAND >로 들어가면 「빛」이 있고 「꽃」이 피며 「숲」이 나타난다. 그리고 가끔은 「급류」에 휩쓸리기도 하고 번잡한 'city'에 머물기도 한다. 내면의 깊은 곳을 파고 또 파는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그래서 위대한 '세상'을 그려냈다. 앨범 자체가 소리로 만들어진 하나의 정교한 세계이며, 세계관이다. 그렇다보니 마치 여행자처럼 눈 앞에 펼쳐진 사운드스케이프를 경외감과 설렘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김반야)

 

이승열 - < SY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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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모습들끼리 충돌하고 뒤섞여 새로운 형상을 만든다. 그 진화의 경로가 마치 정반합의 구조와도 같다. < SYX >에는 그 위력이 극점에 달한 < Why We Fail >에서의 흡입력 높은 멜로디도 존재하고, 난해함이 극단으로 치닫는< V >에서의 실험적인 사운드도 살아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전자음악의 갖은 요소를 덧대, 앞선 결과물들로만은 유추할 수 없는 또 다른 양상을 이끌어냈다. 단순한 구조와 격정으로 치닫는 전개가 묘하게 공존하는 일렉트로니카-록 「Asunder」서부터 이국적인 이미지를 담은 얼터너티브 록 「Ave」, 헤비한 블루스 「To build a fire」, 앰비언트 식 구성을 가진 「노래1」에 이르는 여정 속에서 이승열은 이제 평범한 팝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갖은 창의력으로 중무장한 과학자의 모습을 보인다. (이수호)

 

보아 - < Kiss My Lip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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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곡을 프로듀싱한 보아를 통해, 이제 K-pop의 선례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앨범을 균형 있게 만들 만큼 성장함을 알 수 있다. 직접 쓴 멜로디와 여성스러운 보컬에는 'K팝 뮤즈'로서의 품격과 단단함이 녹아있다. 댄스부터 어쿠스틱까지 다양한 색채를 지닌 곡에, 드럼비트와 신스를 집어넣어 퍼포먼스의 개입을 열어놓은 점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때문에 절제와 성숙을 지향하고 있어도, 댄스가수로서의 보아가 공존하며 모든 수록곡이 그의 느낌 아래 정돈된다. 송라이터라는 새로운 역할에 자신의 무드를 은은하게 녹여내고 경력에 맞는 우아함을 찾아가고 있어, 이전과는 다른 대견함이 들게 하는 보아다. (정유나)


이스턴 사이드 킥 - < 굴절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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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동하는 에너지가 꿈틀댄다. 광포한 포스트 펑크-그런지의 통쾌함은 록 씬에 거세된 '파워'를 되찾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3년 만의 컴백 < 굴절률 >은 밴드의 진화를 표상하는 작품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거칠어진 사운드를 담아내며 깔끔한 멜로디 전개로 높은 흡인력을 지녔다. 여기에 순우리말로 핵심만을 찌르는 가사, 영미권과 다른 특유의 사운드로 '우리의 것'을 찾아나가는 정신까지 탁월하다. (김도헌)

 

한돌 - < 한돌타래 571 가면 갈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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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571은 한글 창제 이후 571년에 발표된 앨범이라는 뜻이고 한돌타래는 한돌음악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 한돌타래가 5년 만에 돌아왔다. 모처럼 듣는 찡한 이 땅에 대한 사랑, 우리말 한글 사랑이 전편에 가득하다. '꽃길 따라서 구만리/ 꿈길 따라서 구만리/ 참 아름다운 내 나라/ 내 꿈이 걷는다, 걷는다..'(「내 꿈이 걷는다」) '넝쿨이 너의 몸을 칭칭 감았구나/ 얼마나 아프더냐 얼마나 서럽더냐..'(「슬픈 한글날」)

 

우리 시대의 감각, 언어와 전혀 다른 우리 고유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거기에 우리 삶의 상흔(傷痕)을 자기반성과 연민을 겸해 풀어놓은 게 감동이다. '뒷산에 도라지꽃 어른거리네/ 이 바다가 마르면 가게 되겠지..' 이 노래 '도라지꽃'의 부제는 '일본군 위안부로 살았던 세월'이다. 우리의 감성, 취향, 말 그리고 음악이 얼마나 미국화, 영국화 되었는가를 역으로 말해주는 앨범. 낯설지만 뭉클하다. (임진모)

 

더 모노톤스 - < Into The Nigh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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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먹 쥐게 하는 강력 '에너지'도 있고 귀를 편히 감는 '멜로디'도 있다. 펑크와 개러지에다 1990년대와 그 이후 로큰롤 경향을 전투적으로 내걸지만 「Blow up」, 「The beat goes on」, 「Brown eyed girl」과 같은 곡들이 말해주듯 비틀스, 비치 보이스, 롤링 스톤스 등의 요소가 병치, 혼합되어 청취 친화력을 놓치지 않는다.

 

'곁'을 두르는 큰 사운드와 '속'의 친근한 느낌이라는 두 스타일의 대치를 단색(單色) 즉 모노톤으로 엮어낸 건 경이로운 컨버전스다. 이건 트렌드를 타는 센스가 아닌, 차승우와 멤버들이 쌓은 오랜 내공의 폭발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레트로의 수렴을 통해 지극히 모던하게 사운드 쾌도난마를 빚어낸 것이다. 연말에 나온 늦깎이 '올해의 앨범'!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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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올해의 가요 싱글 >

 

각축전을 벌여 경쟁작들을 밀어내고 히트곡으로 차트의 정상에 서는 싱글이 있는가하면 차트로부터 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청취자만의 의미를 부여받고 플레이리스트의 첫 순위를 담당하는 싱글도 있다. 한 해를 대표하는 싱글을 갈무리하는 작업이 그래서 어렵다. 대중의 관심과 순위 싸움에서의 성적은 물론이고 작품으로서 곡만이 갖고 있는 의의와 중요성을 다 같이 고려해야하기 때문이다. 각양의 가치를 지닌 수많은 곡들이 올 한 해를 빛냈다. 그중에서 10 곡의 싱글을 간추려 이즘이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박진영 - 「어머님이 누구니 (Feat.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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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이기에 가능했던 것이 많았다. 몸매를 찬양하는 이야기에 어머님이 누구니라는 노랫말로 생동감을 더하고, 이처럼 흥겹게 소화할 줄 아는 이도 그뿐이다. 인성과 바름을 강조하는 사람이라 이런 노골성이 딴따라의 틀 안에서만 지향됨을 잘 알기에, 성적인 뉘앙스보다 신나는 댄스곡으로 더 받아들여졌다. 주인공에 밀리지 않는 개성을 가진 제시와, 소울과 전자음악 이후 브라스 재즈피아노로 이어지는 매끄러운 곡의 구성 역시 흥을 높여준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영역에서 JYP로서의 엣지를 보여줬고, 사장님의 호기는 올 한해 회사 전체로 확산되어 좋은 성과로 이어졌다. 이미 많은 히트곡을 가진 박진영이지만 앞으로도 그의 대표곡으로 기억될 노래다. (정유나)

 

딥플로우 - 「작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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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산한 굿 판의 외침 후, 세 명의 MC들은 작두 타는 내림 굿의 무당이 된다. 초현실적인 태평소 소리와 어두운 비트 위에서 딥플로우는 무거운 카리스마를, 넉살은 씐듯한 광기를, 허클베리 피는 귀신 그 자체를 자청하며 각양각색 재능의 최대치를 뿜어낸다. 딥플로우의 이 새로운 앤섬(Anthem)은 웰메이드 앨범 < 양화 >의 화룡점정일 뿐만 아니라, 2015년의 킬링 트랙이었다. (김도헌)

 

술탄 오브 더 디스코 - 「S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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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스코 왕자 술탄이 한 손에는 기존 주 무기이던 토요일 밤 디스코텍의 열기(Saturday Night Fever), 다른 손에 새로이 장착한 금요일 밤 클럽의 시크를 함께 들고 세계를 호령하려는 포부를 밝힌다. 이를 위해 IQ, EQ와는 비교 불가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성적 지수 SQ(Sexual Quotient), 기존 한국 대중음악에 금기시되던 소재를 풍성함 가득한 세션에 얹히는 재미난 가사로 접근하고 있다. 진중함의 부재라는 문제의식은 이름부터 고급진 토니 마세라티(Tony Maserati)라는 거장 프로듀서의 동행으로 걷어내는데 성공. 작업과정에서도 프로그레시브의 핑크 플로이드, 펑크(Funk)의 제임스 브라운이라는 얼핏 봐도 이질성이 느껴지는 대부들을 레퍼런스로 삼았지만 결과물은 결코 어색하지 않다. 기존 밴드 이미지와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고 천명한다는 지점에서 싱글은 큰 의미를 가진다. 대한민국에도 이런 음악이 있다. (이기찬)

 

빅뱅 - 「Bae 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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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가장 파격적인 빅뱅의 곡이다. '성행위'를 상징하는 소재들과 뮤직비디오가 노골적이고 직접적이라 더욱 흥미롭다. 사운드 자체가 몽롱하고 비트마저 찰진 노래는 빅뱅에 대한 성인인증을, 그리고 기존 아이돌과 과감하게 선을 긋는 하나의 자신감이다.

 

5월부터 시작된 빅뱅의 '쪼개내기' 전략은 상당히 성공적이다. 올해 음원 순위에서 자신의 싱글을 줄줄이 상위권에 올려두고 다른 가수는 2,3주면 끝날 활동기간도 자연스럽게 연장시켰다. 무난한 '대중지향적인 곡'과 시도를 더한 '실험작'들을 묶어 내며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했다. 「Bae bae」는 이런 대중성과 실험성이 '완전 착착 감기고', '궁합이 찹쌀떡'인 이례적인 노래다. (김반야)


전인권 - 「너와 나 (Feat. 자이언티, t윤미래, 타이거JK, 강승원, 서울전자음악단, 갤럭시 익스프레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그레이프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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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의 레전드 전인권과 후배 아티스트들의 합(合)이 곡의 속을 관통하는 메시지 전달을 위한 음악적 조건이고, 그 중요한 전제를 갖추면서 말끔한 산출물이 되어 나왔다. 전인권 특유의 표현방식과 포효에 각 아티스트의 개성들이 토핑 되어 세월 호 참사를 향한 추모 합창이 장대하게 울려 퍼진다. '아름다운 세상, 아름다운 친구, 아름다운 그대, 아름다운 우리'의 코러스는 노래가 예술적 주조물에 그치지 않고 사회를 향한 울림임을 다시금 일러준다. 2015년의 메시지 송. (임진모)

 

혁오 - 「Ho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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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오열풍의 시작점은 「위잉위잉」과 「와리가리」였지만, 진짜 그들의 매력을 제대로 담아낸 것은 바로 이 곡이 아니었나 싶다. 소리의 여백을 떠다니는 허밍, 동양적 색채의 기타 프레이즈가 맞물리며 생겨나는 묘한 화학작용은 밴드의 활동반경이 훨씬 넓고 대담한 성질의 것임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여기에 인간관계에 대한 소회를 담은 진득한 보컬은 결정타. 특히 귀찮다는 듯 툭툭 내뱉다가 힘을 줘 한번씩 질러내는 후렴구의 가창은 밴드가 가지고 있는 '시크함' 그 자체처럼 느껴진다. 레퍼런스에 대한 다소간의 논란에도 그 관심이 시들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만만치 않은 오리지널리티가 그들이 파생시킨 힙(Hip)의 기저에 깔려있기 때문일 터. 이처럼 좋은 곡을 만들 줄 아는 팀의 재능을 보아하니, “나 요즘 혁오 들어”라는 말의 유효기간은 자연스레 내년으로 연장되지 않을까 싶다. (황선업)

 

레드벨벳 - 「Ice Cream C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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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했던 데뷔 초반 온도를 단숨에 끓어올린 것은 정교한 짜임새의 완성도 높은 팝이었다. 앙증맞은 뮤직박스, 난폭하게 쏟아지는 전자음의 대비는 리드미컬한 비트와 근사한 시너지를 만들며 대중을 중독시켰고, 빼어난 멜로디라인과 강력한 훅은 최고의 흡인력을 자랑했다. 신인으로는 적잖은 위험 부담이 따르는 멤버 충원에도, 평범한 아이돌 팝과는 격이 다른 '힙'한 일렉트로니카로 힙스터들까지 매료시키며 팀의 브랜드를 확실하게 아로새겼다. SM의 송라이팅 캠프는 올해도 쉴 틈이 없었지만, 제 1의 수작은 명백히 「Ice cream cake」다. (정민재)

 

자이언티 - 「꺼내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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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재기로 싸인 알앤비, 소울 사운드가 2년 전, 메인스트림에서의 훌륭한 출발을 알리는 데 일조했다면, 오늘의 잔잔하고 부드러운 팝 사운드는 대중들의 지지를 공고히 하는 데 큰 힘을 보탠다. 위로를 필요로 하는 대다수의 현대인들에게 「꺼내먹어요」의 차분한 사운드, 편히 즐기기 좋은 멜로디, 공감을 이끌어내는 텍스트는 힐링을 위한 최적의 요소로 다가왔다. 음원 차트부터 텔레비전 방송까지, 조그마한 이어폰부터 길거리 매장 스피커까지 곡은 빠르게, 그리고 바쁘게 오가며 많은 이들을 보듬었다. 이전의 여러 곡들에 비해 번뜩이는 재능은 많이 감지되지 않으나, 온갖 사람들과 함께 호흡했다는 점에서 올해의 싱글로 꼽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수호)

 

솔루션스 - 「S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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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신스 록 유행에 있어 솔루션스는 질적인 면으로 보나 감성적인 면으로 보나 씬에서 단연 눈에 띄는 팀이다. 머뭇거림 없이 매끈한 연주력, 귀에 쏙쏙 박히는 멜로디 라인은 음악팬들을 매료하기에 충분했다. 그중에서도 무대에 대한 애정을 노래한 곡 「Stage」는 솔루션스의 청량한 이미지와 꼭 어울린다. 특히 멤버 나루의 감각적인 사운드 디자인이 전체적인 그림을 완성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고명도의 소리 톤과 설렘 가득한 가사가 돋보이는 곡이다. 재능 있는 청춘들이 음악의 옷을 입고 비상한다. "무대를 멈춰서는 안 돼(We should never give up the stage)!" (홍은솔)

 

칵스 - 「E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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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라는 물리적인 휴지기를 거치면서 그들은 '제자리 걸음'이 아니라 '한 발 앞으로'를 택했다. 2집의 사운드는 거침없이 팽창했으며 압도될 정도로 웅장하다. 복잡하고 화려한 스킬과 리프가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가운데, 명료한 멜로디는 비틀거리지 않는다. 특히 앨범에서 가장 이질적인 질감을 가진 타이틀 「Echo」는 이런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극대화시켰다. 외형은 심플해보이는데 이는 고압축 방식으로 응집시킨 노력의 결과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 다듬고 다듬어 정수만을 남긴 것이다. 이런 수고스러운 과정은 이들의 음악을 오랫동안, 그리고 더 뜨겁게 산화시킬 것이다. (김반야)


2015/12 IZM

 

 

[관련 기사]

- 한 곡으로 영생을 얻은 가수, 조 퍼블릭
- Surfin' U.S.A.부터 Love And Mercy까지, 비치 보이스
- 드레스덴 축제의 매혹적인 단조
- 걸 그룹 뮤직비디오의 답습과 반복
- 예정된 '쇼 미 더 개판'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2015 올해의 팝 앨범과 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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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작과 대작, 명작은 정말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어떤 모양으로 터져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각양의 작품들이 올 한 해를 빛냈다. 그중에서 추린 열 장의 음반을 이즘이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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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올해의 팝 앨범 > 
 
회의를 거쳐 결론에 다다른 열 장의 음반을 늘어놓고 보니 결과가 제법 다양하다. 이력으로 따져보면 간만에 모습을 드러낸 거장, 훌륭히 커리어를 이어가는 다년 차, 멋지게 첫 정규 음반을 내놓은 신인이 있고, 장르와 스타일로 구분해보면 록, 포크, 신스팝, 힙합 등이 포진돼있으며, 출신지로 나눠보면 미국, 영국, 호주 등으로 퍼져 있다. 수작과 대작, 명작은 정말 어디에서, 누구에게서, 어떤 모양으로 터져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각양의 작품들이 올 한 해를 빛냈다. 그중에서 추린 열 장의 음반을 이즘이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 < To Pimp A Butterf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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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진부한 선택이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곳에서 이미 이 음반이 지닌 가치에 대해 지겹게 들었을 테지만, 다시 한 번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올해의 앨범. 이미 전작에서 검증된 바 있는, 내러티브와 서사를 이용하여 메시지를 노래로 담아내는 켄드릭 라마의 비범한 능력과 역량이 십분 발휘되고, 정점에 오른 랩 스킬과 펑크, 재즈, 블루스 등 다채로운 장르들을 아우르는 프로듀싱이 이를 뒷받침한다. 
 
참 무자비하다. 켄드릭 라마는 < good kid m.A.A.d city >< To Pimp A Butterfly >, 두 장의 클래식으로 다른 래퍼들을 전부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이변이 없는 한, 한동안 '누가 가장 랩을 잘하나?'의 정답은 켄드릭 라마가 될 것이고, '누가 가장 앨범을 잘 만드나?'의 정답 또한 켄드릭 라마가 될 것이다. (이택용)
 
  
테임 임팔라(Tame Impala) - < Curr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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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슬 퍼런 만년설에 용솟음으로 분출된 용암이 끼얹혔을 때 파동과 급류의 방향성을 짐작할 수 있을까. 이미 2장의 앨범만으로 6~70년대 사이키델리아 현재화의 방점을 찍었지만, 신작으로 원시와 현대가 공존하던 80년대의 여러 장르를 아우른다. 시대를 흐르려는 문제의식에 기초해 다방면으로 시각화한 사운드를 기저에 놓아 신스팝, 디스코, 소울, 펑크(Funk), 리듬 앤 블루스 등 자칫 고루해지는 소재는 시의성마저 획득해냈다. 이렇게 만들어진 소리의 색채는 망각의 도시를 한가로이 배회하듯 분주하지 않게 부유하며 짜릿한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그들이 방출한 급변하는 난류에 몸을 맡기기에 50분이라는 시간은 너무 짧다. (이기찬)

 

제이미 엑스엑스(Jamie XX) - < In Colou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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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분야에 미친 듯이 열중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오타쿠'라고 부르는데, 앞으로 이 단어를 비꼬는 어조로 사용하면 안 되겠다. 어릴 적부터 전자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제이미 엑스엑스는 그동안 축적해놓았던 모든 지식을< In Colour >에 방출시킨다. 이 훌륭한 오타쿠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이르는 역사의 여러 성분을 재배치시켰음에도 전혀 난해하지 않은 뛰어난 접근성의 앨범을 창조했다. 미니멀리즘에 기초한 트랙들은 단순한 청음 행위가 체험이 될 만큼 매우 시각적이고 공간감 있는 감상을 제공하고,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최루성 앰비언트 사운드는 한동안 주를 이루었던 요란한 EDM이 한껏 발기시켜 놓은 신경들을 완화시킨다. 귀를 안마한다면 분명 이런 느낌일 것. (이택용)

 

뉴 오더(New Order) - < Music Comple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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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 < Lost Sirens >< Waiting For The Sirens' Call >에서 누락된 미수록곡 모음집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온전한 신보로는 10년 만의 귀환이었다. 번뜩이는 창작력이 절정에 달했던 80년대 후반의 팀을 생각하면< Music Complete >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복고풍이 가미된 첨단 신스팝이 각광받는 작금에서는 오히려 신선했다.
 
뉴웨이브와 포스트 펑크, 신스팝 등 밴드의 에센스를 빈틈없이 완벽한 구성에 채웠다. 완성도로만 보면 < Low-Life>, < Brotherhood>등 그 시절 명반에 견주어도 손색없는 수준이다. 수록곡 대다수의 러닝타임이 5분이 넘는 긴 호흡에도 정돈된 톤의 고밀도 사운드와 유기적 흐름으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혁신이 배제된 전설의 귀환은 자칫 미지근한 재탕이 될 위험이 크지만, 밴드는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자신 있게 선보이며 또 하나의 역작을 만들었다. (정민재)
 

 

처치스(CHVRCHES) - < Every Open Ey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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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을 재생시킴과 동시에 「Never ending circles」의 공격적인 루프가 온몸의 신경세포를 깨운다. 2년 전 혜성처럼 등장했던 신스팝 신예의 소포모어 작은, 자신들의 장점을 대중의 기호에 맞게 제련하는 과정에서 나온 최적의 결과물이다. 간단명료해진 신스 사운드, 한결 쉬워진 멜로디를 통한 직관적인 매력이 작품의 중추를 이루고 있다. 긴박한 16비트 리듬과 캐치한 선율이 맞물려 팝으로서의 진화를 엿보게 하는 「Make them gold」, 「Back to the 80's」의 기조 아래 자신들의 색깔을 이질감 없이 조화시킨 「High enough to carry you over」, 훅의 효과적인 활용을 통해 탄생시킨 앤섬 「Bury it」 등.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것이 데뷔작이었다면, 처치스 음악의 완성이 이 음반에 담겨있다. 성공적인 레트로 사례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신스 팝의 수작. (황선업)
 

 

제스 글린(Jess Glynne) - < I Cry When I Laug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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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도 브리티시 인베이전은 유효하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아델에 이어 올해 첫 정규 앨범과 함께 등장한 제스 글린의 이름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영국발 소울 폭격에 강력한 한 방을 보탠다. 신인이라는 호칭이 무색할 정도로 깊고 넓은 장르 소화력과 특유의 보컬 센스, 게다가 자전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송라이팅 능력까지.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나타난 이 순간 그의 음악에 반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서유럽의 회색 하늘이 라디오헤드를 만들었다면, 그 하늘 틈 사이로 흘러나온 한 줄기 햇살로서 제스 글린은 자라났다. 그가 선사하는 금빛 희망은 찢긴 심장을 품고 정상에 오른다. 여기, 판도라의 리듬을 보라. (홍은솔)

 

 

Father John Misty(파더 존 미스티) - < I love you honeybea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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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쉬 틸먼은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다. 듣기 좋은 멜로디를 계속해 주조해낼 줄도 알고, 다채로운 컬러를 뽑아낼 줄도 알며 음악 곳곳에 실험을 통해 기발함을 더할 줄도 안다. 이러한 각양의 역량이 열 번째 정규 음반이자 파더 존 미스티라는 이름을 통해 낸 두 번째 음반에 하나의 모자람 없이 들어 있다. 팝 멜로디를 품은 포크, 컨트리, 블루스 사운드와 풍성한 편곡이 만드는 사이키델릭 컬러, 자전적인 텍스트가 뒤섞여 음반에 비장함과 우아함과 익살스러움을 선사한다. 아득하게 울리는 「I love you, honeybear」서부터 푸근한 「Chateau lobby #4 (in C for two virgins)」, 일렉트로니카를 섞은 「True affection」, 한껏 들뜬 「The ideal husband」, 조소로 무장한 「Bored in the USA」에 이르기까지 앨범에는 아쉬울 순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수호)
 

 

인터넷(The Internet) - < Ego Deat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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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 오드 퓨쳐(Odd Future)의 퓨전 네오 소울 / R&B 밴드 인터넷이 또 다른 재능을 뽐냈다. 1990년대 자미로콰이를 연상케 하는 재즈적 접근에 소울을 섞어낸 이들은 몽환적인 사운드 스케이핑 속의 아기자기한 구성과 깊은 멜로디라인으로 마법 같은 소리의 향연을 펼쳐낸다. 가녀리면서도 깊어진 보컬 시드 다 키드(Syd tha kid)의 보컬과 일관된 앨범의 색채는 50분 내내 짙은 여운을 안긴다. 간결함 속의 깊은 울림을 원한다면 놓칠 수 없다. (김도헌)
 

 

커트니 바넷(Courtney Barnett) -< Sometimes I Sit And Think, And Sometimes I Just Si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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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읊조리기도 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도 하고. 느긋하게 노래를 풀어내기도 하고 누군가를 쫓아가듯 사운드를 쏟아내기도 하고. 기타 줄들을 나른하게 쓸어내리기도 하고 파워 코드를 잡아 맹렬하게 내려치기도 하고. 발랄하게 톡톡 튀어 다니기도 하고 음울에 젖어 한없이 가라앉기도 하고. '때로는 앉아서 생각하기도 하고 때때로는 그냥 앉아 있기도 한다'는 작품의 제목처럼 커트니 바넷의 음반에는 이렇다 할 계산도 엄청난 설계도 없어 보인다. 그저 본능에 따라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양새인데, 아, 그 움직임이 정말 매력적이다. 정제 과정을 크게 거치지 않은 로 파이 사운드서부터 그런지 스타일의 리프, 한순간도 귀를 뗄 수 없게 하는 캐치한 멜로디, 슬그머니 웃음을 자극하는 가사까지 다 멋지다. 음반에 담긴 온갖 요소들이 흡입력을 강하게 발휘한다. (이수호)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 - < Carrie & Lowe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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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구절절 늘어놓아 부유하는 언어의 조각들이 과연 진심을 표현할 수 있을까? 가끔은 개인적 심미성 혹은 탐미성을 내려놓아야 할 시기가 존재한다. 장르를 넘나들며 천재성을 뽐내고 있는 미국 싱어송라이터 수프얀 스티븐스는 아버지 캐리(Carrie)와 어머니 로웰(Lowell)로 대표되는 일가 서사에 엮인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담아내기 위해 플루트, 브라스로 대표되는 그가 가진 무기들을 덜어내는 작법을 선택했다.
 
어린아이 시절부터 자기를 떠나있었지만 몇 해 전 세상을 영영 등져버린 조현병 환자 어머니를 보낸 씁쓸함과 상념이 앨범의 중심축이다. 존엄사를 뜻하는 아련함 가득한 첫 곡 「Death with dignity」로부터 존 레논의 명곡 「Mother」처럼 어머니를 갈구하지만 결국 용서하는 가사를 담아낸다. 이후 반조, 기타, 피아노 최소한의 반주로 울림을 선사하는 「Should have known better」, 태어나면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 모티프를 전달하는 「Fourth of July」로 자아 성찰이라는 해묵은 주제를 과감히 풀어냈다. 진심은 전달되기 마련이다.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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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올해의 팝 싱글 >
 
싱글 포맷에 유리한 방향으로 산업이 이루어지는 요즘이다. 수많은 곡들이 번갈아가며 MP3와 핸드폰 화면에, 음원사이트와 차트의 메인 페이지에, 포털사이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한 칸에 등장했다가 사라진다. 그 때마다 노래들은 찰나의 승부를 벌인다. 그렇기에 싱글은 순간을 대표하고 상징한다. '이 날에 등장했던 곡', '이 때에 차트 정상을 차지했던 곡', '이 즈음에 좋은 인상을 남겼던 곡'으로 사람들은 싱글들을 기억한다. 2015년 팝 신에서도 역시나 많은 노래들이 나왔다. 그 중에서 올해를 대표할 곡들을 이즘이 꼽았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엘리 골딩(Ellie Goulding) - 「Love me like you 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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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스와 페티시즘에 관한 적나라한 묘사로 유명세를 얻은 소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의 영화화는 개봉 전 공개된 고품격 사운드트랙들로 더욱 기대를 모았다. 환상적인 신시사이저와 강한 타격감의 퍼커션은 영화에 어울리는 오묘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탁월한 강약조절로 매력적 음색을 극대화한 엘리 골딩의 보컬은 화룡점정이었다. 매끈한 만듦새와 단순하면서도 유려한 멜로디는 히트메이커 맥스 마틴의 공이었다. 영화의 참패와 무관하게 세계 각 국에서 호성적을 거두며 애청된 노래는 많은 영화 시상식에서 최고의 주제가 후보에 오르며 그 가치를 증명했다. 2015년을 가장 근사하게 빛낸 웰메이드 팝송. (정민재)

 

 

위켄드(The Weeknd) - 「Can't feel my 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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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보드 차트에서의 거물 작곡가 맥스 마틴을 초청해 팝적인 접근을 더하더니 성적이 끝없이 치솟았다. 어지럽고 몽롱하며 다소 난해하기까지 했던 기존 PBR&B 스타일의 성질을 사운드 전반에 녹아있는 공간감 정도에만 한정시키고, 멜로디와 리듬을 좀 더 대중 친화적으로 가져갔다. 댄서블한 펑크(funk)-디스코 리듬에 접근성 높은 선율, 강한 소구력의 훅 라인이 러닝 타임 내내 큰 위력을 발휘한다. 싱글은 순식간에 빌보드 싱글 차트를 포함, 여러 차트의 정상을 점령했으며 또 다른 히트 싱글 「The hills」와 함께 위켄드를 올해의 뮤지션에 등극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이수호)

 

드레이크(Drake) - 「Hotline B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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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드레이크는 허슬했다. 연초부터 < If You're Reading This It's Too Late >를 갑작스럽게 발매하여, 모두를 지각시킨 뒤 「Energy」로 사랑받았다. 여름엔 대필 의혹을 제기한 믹 밀과의 디스전이 화제였다. 드레이크는 확실하게 두 곡으로 응수했고, 「Back to back」은 디스곡임에도 흔치 않게 그래미 후보로 올랐다. 가을엔 퓨처와 합작 앨범까지 냈다. 10월 말 공개된 「Hotline bling」 뮤직 비디오는 부지런했던 2015년 완결판이자 유종의 미, 정점 혹은 자축의 춤이다.
 
노래만 들어도 수많은 패러디 영상이 떠올라 웃기다. 퇴색되었으나 이국적인 까딱거림에 얹힌 드레이크 특유의 알앤비가 분위기 있다. 전처럼 감성적이면서도 이건 춤을 출 수가 있다. 새롭다. 투박하게 힙합하는 동안, 캐치한 멜로디 짜는 능력은 어디 안 갔다. 빌보드 2위, 자연스럽고 새삼스럽게 드레이크는 또 대박을 쳤다. (전민석)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Deep s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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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해진 주류 록의 연성, 경량화 경향에도 '교주' 마릴린 맨슨은 완고했다. 한창때의 쇼크록은 포스트 펑크의 골조로 변모했지만, 댄스 그루브를 만드는 드럼과 직선적인 기타 리프, 특유의 아이코닉한 보컬에는 여전히 짜릿한 '쇼크'가 꿈틀거렸다. 제우스와 나르시스, 이카루스의 날개 등 그리스 신화의 요소를 차용해 써 내려간 중의적 가사 역시 상당했다. 기존의 중량감을 덜어내고 선명하게 잘 들리는 선율과 부담없는 사운드로 밴드 사상 최고의 싱글 차트 성적을 기록하며 판도를 넓혔다. 시대의 흐름을 놓치지 않는 동시에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유연하게 고수한 관록의 일격. (정민재)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 「King kun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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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튼(Compton) 출신의 왕은 성공을 자축하며 행진한다. 쿤타 킨테(소설 속 흑인 노예)와 King 을 조합한 '킹 쿤타'는 과거와 지금의 위치를 대비한 캐릭터이고, 거칠게 달려가는 펑크(Funk)는 트랩, 래칫과는 다른 멋이 있다. 마이클 잭슨 「Smooth criminal」 속 가사(Annie are you ok)와 구절을 반복하는 여성의 더블링은 곡의 온도를 높여준다. 후끈한 분위기 그 자체를 즐겨도 좋지만, 블랙 커뮤니티에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은유들도 노랫말 겹겹이 녹아있다. 켄드릭은 We want the funk!를 외치며 사회성과 음악적 완성도 두 깃발을 잡아냈고, 그런 그를 올 한 해 모두가 인정했다. (정유나)
 

 

앨라배마 셰익스(Alabama Shakes) - 「Gimme all your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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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광적인 색채로 인지되는 혼란에 귀를 자른 반 고흐라는 인물도 있지만, 평범한 대다수에게는 거리가 먼 이야기일 것이다. 국내에서 애플 아이패드 광고 삽입곡인 「Sound and color」로 알려진 앨라배마 셰익스는 소포모어작을 통해 이러한 측면에서 대중의 눈을 열어 올해 세상을 조금 더 윤택하게 만들었다.
 
앨범 두 번째 싱글인 「Gimme all your love」는 마음의 기저에서부터 '네 온 사랑을 선사해 줘'라는 울림을 담아 예측 불가능하게 전환되는 템포에 맞춰 전달한다. A-B-A 액자구조와 닮아 시작과 끝이 맞닿아있는 사랑의 속성처럼, A파트 늘어지는 오르간에 얹히듯 털어놓는 좌절감과 B파트 으르렁거리는 기타로 토로되는 불안함은 연결되어 있다. 소울, 블루스, 펑크(Funk)가 한 데 섞여 뭉그러지는 소리의 벽이 조금 더 명확해짐은 새로이 추가한 키보드 멤버 덕도 있을 테다. 최우수 신인밴드가 이룩해낸 아티스트로의 발돋움. (이기찬)

 

잭 유(Jack U) - 「Where are you now (Feat. Justin Bie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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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비버가 악동이어도 음색 좋은 건 어쩔 수 없다. 감미롭게 신난다. 팝과 EDM의 경계를 영리하게 누볐다. 최정상급 DJ 둘다운 프로듀싱도 큰 역할을 했다. EDM의 어느 정도 뻔한 구성 안에서 소소한 장치들로 차별화한다. 피치 조작한 코러스라든지, 사운드의 공간감, 덜 부담스러운 드롭이 빛났다. 모든 게 끈끈하게 어울린다. 비버가 올해 앨범 내면서 여러 좋은 싱글들을 발표했지만 디플로, 스크릴렉스와의 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전민석)

 

에밀 헤이니(Emile Haynie) - 「Falling apart (feat. Andrew Wyatt & Brian Wil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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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윌슨을 모셔다 두고 에밀 헤이니는 2010년대의 새로운 브라이언 윌슨이 탄생했음을 알린다. 재능 있는 프로듀서의 첫 솔로 프로젝트를 알리는 「Falling apart」에는 반세기 전 비치 보이스의 선장이 항해해 지나갔던 서프 팝과 바로크 팝, 사이키델릭 팝의 물결이 멋지게 흐른다. 풍성한 오케스트레이션과 코러스, 흥겨운 마칭 드럼, 공간감 그득한 사운드, 부드러운 팝 선율이 이루는 아름다움이 상당하다. 여기에 자신의 유산에 목소리를 얹는 브라이언 윌슨과 동료의 곡에 매력적인 보컬을 더하는 앤드루 와이트와 함께하는 호흡도 또한 좋다. 오랫동안 누군가의 프로듀서, 작곡가, 연주자로 활동해온 아티스트의 훌륭한 솔로 데뷔다. (이수호)

 

플로렌스 더 머신(Florence The Machine) - 「Ship to wr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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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침몰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난파된 배처럼 이곳저곳 감정의 벽이 갈라지고, 슬픔으로 침수되다가 소중한 추억들이 물살에 의해 산산히 부서진다. 「Ship to wreck」은 이런 심리적 파탄과 그 과정을 담는다. 최근 가장 개성 있는 뮤지션으로 꼽히는 그는 이번에도 심하게 몸살을 앓는다. 연주와 목소리에 극단이 흘러넘친다. 날뛰고 흐느끼고 울부짖는다. 분노가 폭발한다. 피가 튈 정도로 난도질한다. 바닥에 닿을 때까지 절망한다. 자신을 소진하며 거침없이 쏟아 붓는 노래는 선홍색 감정들이 팔딱팔딱 살아 움직인다. 이성으로 중무장한 현대인들에게 이런 광경은 낯설지만 한 켠으론 짜릿하다. 노래는 말라비틀어진 '만감'에 참 간단히도 불을 붙인다. 그야말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마녀의 주문이다. 당신은 이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김반야)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 「Only one (Feat. Paul McCart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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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그 어떤 곡이 가장 핫했는지는 몰라도, 가장 뜨거운 감상의 곡은 「Only one」일 것이다. 이 곡의 의미가 그저 60년대의 비틀스와 새 천년의 카니예 웨스트의 시대를 뛰어넘은 만남으로만 해석될 수 있겠지만, 진짜 핵심은 노랫말로 전해지는 '딸 바보' 카니예의 진심이다. 목소리를 왜곡하는 장치가 이렇게 따스할 수가 없다. 어머니의 온화한 메시지를 전한 카니예가 퇴장하고, 바로 펼쳐지는 폴 매카트니의 건반 연주는 먹먹하기까지 하다. 말썽꾸러기도 딸아이 앞에선 이렇게 진지하다. 그러나 솔직히, 대통령은 좀 오버다. (이택용)

 

 

[관련 기사]

- 한 곡으로 영생을 얻은 가수, 조 퍼블릭
- Surfin' U.S.A.부터 Love And Mercy까지, 비치 보이스
- 드레스덴 축제의 매혹적인 단조
- 걸 그룹 뮤직비디오의 답습과 반복
- 2015 올해의 가요 앨범과 싱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데이비드 보위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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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는 늘 순간을 만들어냈다. 쉴 새 없이 다채롭게 변신을 했고 수많은 명곡과 명작을 낳았다. 아티스트의 시선이 머무른, 손길이 닿은, 발걸음이 지나간 시공간은 모두 로큰롤 실록의 중요한 페이지가 되어 결국엔 모먼트의 자격을 획득했다. 비단 팝 역사서에서만이었으랴. 사람들의 머릿속에다가도 데이비드 보위는 매번 인상적인 획을 그었다. 천재가 남긴 아름다움들은 인상이 되고 기억이 되고 추억이 되어 오랫동안 팬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이즘 에디터들에게 순간으로 남은 데이비드 보위의 열다섯 곡으로 리스트를 꾸렸다. 조금은 개인적인 필자들의 소회를 담은 특집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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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oddity (1969)

 

영화계에 <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가 있다면, 음악계에는< Space Oddity >가 있었다. 인류는 우주 시대가 열리기도 전에 '톰 소령'의 손에 이끌려 신비로운 우주의 공허함과 모종의 공포를 맛봤다. 세대를 초월해 우주 마니아들을 응집, 열광시키며 많은 영감의 원천이 된 불멸의 클래식은 급기야 2013년 실제 우주비행사에 의해 우주에서 울려 퍼지며 그 생명력을 입증했다.

 

몇 해 전, “우주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은 없다.”라고 말하던 친구가 있었다. 별을 사랑해 우주여행을 꿈꾸던 그가 'Space oddity'에 이끌린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멋진 커버 영상을 찾으면 감상을 공유하며 그 시절 보위의 상상력과 천재성에 함께 감탄하곤 했다. 며칠 전 '톰 소령'이 영영 우주로 돌아가 버렸다는 소식에 문득 그의 소식이 궁금해졌다. 분명 그 또한 무척이나 슬퍼했을 테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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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n who sold the world (1970)

 

'도대체 데이비드 보위가 누구야?'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에 심취되어 있었던 고등학생 때의 나는 너바나가 커버한 '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듣고 난관에 봉착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적만 있었던 그 이름. 'That was a David Bowie song'. 아무것도 모르던 나에게 처음으로 데이비드 보위를 소개해 준 것은 커트 코베인이었다. 호기심이 가득했던 나는 데이비드 보위의 < The Man Who Sold The World >앨범을 사러 음반점으로 향했다.

 

두 번째 난관이 찾아왔다. 앨범 커버엔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긴 머리의 사람이 여성 드레스를 입고 S라인을 뽐내며 요염하게 누워있었기 때문이다. 당황스러웠다. 거장의 근엄함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여장한 일개 개그맨처럼 저렴해 보였다. '이것이 커트 코베인이 커버한, 그 데이비드 보위가 맞나?' 앨범의 여기저기를 살펴보던 나는 커버에 '데이비드 보위'라고 크게 박혀있는 것을 확인하고 앨범을 제자리에 둔 다음 집으로 향했다. 나와 데이비드 보위의 잊을 수 없는 첫 만남은 이러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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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on Mars? (1971)

 

1960년대 말, 인류는 달 착륙에 성공했고 세상의 화두는 지구 밖의 어딘가로 초점을 모았다. 우주 시대의 열기가 정점에 달한 그 시절, 그리고 데이비드 보위의 우주 공상도 구체화돼 여러 노래로 우리 앞에 등장했다. 내 데이비드 보위는 미지의 세계에 대해 노랫말을 쓰고 멜로디를 붙여 만든 아티스트의 곡들로부터 시작됐다. 아폴로 11호와 함께 우주선을 쏘아 올린 'Space oddity'에서 출발해 이어지는 'Life on Mars?', 급기야 자기 스스로 외계인이 돼버렸던 지기 앨범에서의 'Starman', 'Ziggy Stardust'와 같은 넘버들이 어렸을 적의 내 CD 플레이어와 MP3 플레이어를 차지했다.

'Life on Mars'를 들으며 느꼈던 기묘함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득하게 울려 퍼지는 릭 웨이크만의 피아노, 풍성한 사운드로 곡을 뒷받침하는 스트링, 절제미가 엿보이는 믹 론슨의 기타 솔로, 드라마틱한 보컬 퍼포먼스로 좀처럼 알 수 없는 가사를 내뱉는 데이비드 보위의 가창, 이 모든 파트들에 서려 있는 서정적인 멜로디. 이들이 주는 신비감에 사로잡혀 아티스트와 함께 'Is there life on Mars?'를 읊조리고, 우주를 상상하고, 그 후 지기 스타더스트까지 따르게 되었던 것 같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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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iggy stardust (1972)

 

'지기 스타더스트'라는 가상 인물을 담은 이 노래로, 데이비드 보위는 글램 록의 아이콘이 된다. 징글거리는 기타 연주와 보컬은 기묘하면서도 매혹적이다. 전성기의 그를 동경하고 즐겨들었던 이들에겐 대표곡으로 거론된다.

 

이 곡은 내가 보위를 처음 접했던, 그 첫인상을 온전히 담고 있어 각별하다. 많은 사람들 역시 독특한 의상과 오렌지색 머리, 진한 화장으로 그를 기억한다. 데이비드 보위는 독보적인 스타일을 가진 뮤지션이자 퍼포머였다. 음악뿐만 아니라 비주얼 영역까지 확장했고 지금의 음악과 패션, 예술계 곳곳에 영향이 묻어있다. 화려하게 반짝였던 그를 추억한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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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addin Sane (1973)

 

우리 인생은 짧고, 비참하다. 그리고 그다음은 죽는 것뿐이다.
- 영화 < 트레인스포팅(Trainspotting) >(대니 보일, 1996) 중에서

 

미니멀리즘과 무질서가 공존하는 곳. 날것의 애정으로 메우는 소음의 방. 혼란스러운 순간에 듣는 'Aladdin Sane'은 더할 나위 없이 찬란하다. '사랑이 다른 사랑으로 잊혀 지'듯, 고통을 고통으로써 갚아나가는 것이다. 위로가 된다. 놀랍게도.

 

이 곡의 백미는 역시 마이크 가슨의 전위적인 피아노 연주다. 원테이크로 녹음한 만큼 우연성과 직관이 만들어낸 순간의 폭발적인 음향이 담겨 있다. 동시대에 발표된 딥 퍼플의 'Highway star'와는 또 다른 의미의 짜릿한 플레이다.

한때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가 공감이라는 코드로 사랑했던 곡이다. 라자루스가 된 포도나무께 경배를.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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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bel rebel (1974)

 

단숨에 귀에 감기는 기타 리프와 멜로디, 어딘지 모르게 반항적인 분위기까지. 라디오에서 처음 접했던 데이비드 보위는 내게 '지기 스타더스트'이기 전에 '핼러윈 잭'이었다. 뜻도 모르면서 신나게 '레블 레블'을 흥얼거렸다. 비록 형인 듯 누나인 듯 화려한 모습에 적잖이 놀랐지만, 금세 그의 음악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보위의 힘은 이 지점에 있었다. 페르소나와 콘셉트가 어떠하든, 완성도 높은 음악만으로도 강한 파괴력을 발휘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었던 그의 부고 이후 가장 많이 들은 곡도 'Rebel rebel'이었다. 이 곡으로 보위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이 노래로 그를 잃은 슬픔을 달랬다. 마돈나에게 선수를 뺏겼지만, 나 역시 이 노래의 가사를 인용하며 그에게 감사와 작별을 전하고 싶다. “Hot tramp, I love you so!”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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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e (With John Lennon, 1975)

 

어려웠다. 그의 이름을 알게 된 1975년, 당시 고교 1학년생으로서는 재래식 멜로디 패턴의 일반 팝송과는 확연히 다른 이 거무튀튀하고 까칠한 곡을 쉬 당긴다는 것은 무리였다. 신고식은 호됐다. 이후 3-4년이 더 지나 청각의 확산을 기할 때까지 데이비드 보위는 솔직히 '가끔씩' '허세를 보충해야 할' 순간에나 듣는 '장롱' 음악이었다. 게다가 이런 변칙적이고 변태적인 음악이 빌보드 차트(그에게는 첫) 1위에 올랐다는 정보에 더욱 이리저리 심란했다 (난 수준이 낮다!!)

 

많은 세월이 지나서야 그의 음악 세계에 가까스로 진입했다. 대중적 친화력은 몰라도 매혹의 측면에서는 압권이었다. 그 무렵 매니지먼트 문제로 심적으로 매우 불편한 환경에서 이런 결과물을 냈다는 것도 놀랍다. 이 곡을 넘버원으로 등극시켜준 본고장 음악 인구가 마침내 이해되었다. 녹음실에서 만나 친교를 맺었다는 존 레논은 후반 코러스에서 존재감이 나타나지만 전적으로 보위 재능의 산물이다. 이 곡 이후 40년이 지난 지금까지 난 무조건 보위를 '천재'로 부른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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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 years (1976)

 

라디오에서 간혹 접하다가 처음으로 돈 내고 구입한 보위의 앨범(백판)은 베스트 앨범인 < Changes'one'bowie >였고 그해 좀 더 일찍 나온 그의 통산 10집 < Station To Station >이었다. 아마 고2 때인 1976년 11월 혹은 12월이었을 것이다. 실은 어쩌다 들은 'Golden years' 때문이었는데 나와 맞든 안 맞든 무조건 앨범을 사야 한다는 게 그때의 심정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보위가 파고든 소울과 펑크(Funk) 노선에 닿아있지만 이후 독일 전자음악의 영향 아래 신시사이저 기반의 음악으로 달려가기 때문에 이런 풍은 거의 마지막이라는 점에서 기념비적이다. 기존 록 라인업에 콩가와 퍼커션을 이용한 리듬워크를 강조하고 음산하면서도 독창적인 코러스에다 살짝 휘파람까지 입히는 장난과 재치는 역시 비범하다. 아프로(afro) 비트가 물씬한데도 어찌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외계적인 느낌이 드는 걸까. 그게 개성일 것이다. 그것도 아주 가혹한 개성!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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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 my wife (1977)

 

데이비드 보위는 늘 갑작스럽게, 그리고 회전각 크게 변화를 감행했다. 급격한 아티스트의 변신은 당대의 대중들에게도 그랬던 것처럼, 디스코그래피를 따라 (뒷북으로) 정주행 하던 내게도 적잖은 충격을 줬다. 베를린 3부작이라 칭하는 < Low >와 < “Heroes” >, < Lodger >에서의 크라우트록 사운드도 내게 충격을 선사한 또 하나의 지점이었다. < Young Americans >, < Station To Station >에서의 소울, 펑크(funk)가 준 낯섦이 채 가시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리고 글램 록의 화신이자 화성에서 온 록 스타 버전의 데이비드 보위에 더 익숙한 상태에서 그 지점에 손을 뻗어 아티스트의 큰 변이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데이비드 보위는 결코 사람을 밀어내는 실험을 하지 않았다. 독특하게 사운드를 바꿔오면서도 대중을 자기편으로 만들었고 변혁을 결국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완급을 조절해가며 다채로운 컬러를 주조해내 위화감과 친숙함을 동시에 자아내는 멋진 실험가의 면모를 아티스트는 매번 보였다. < Low >에 같이 수록된 'Speed of life'나 'Warszawa', 'Art decade', 'Weeping wall' 등에 비해 'Be my wife'는 보다 쉽고 대중적인 싱글이다. 멜로디의 형태가 분명하고 그루비한 베이스 라인이 캐치하며 음반 전반에 녹아있는 노이! 식의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덜하다. 앨범의 맥락을 고려해보면 'Be my wife'는 조금 튀는 곡이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베를린 3부작에 어렵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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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oes" (1977)

 

매일 샤워를 할 때마다 음악을 틀어 놓아야 하는 이상한 강박감이 있다. 음악이 없는 불완전한 샤워는 왠지 중요 부위가 덜 씻긴 듯한 찝찝함으로 끝나버리기 일쑤였다. '샤워 송'에도 조건이 있었다. 길어야 하고, 시원시원한 사운드에, 멜로디는 따라 부르기 쉬워야 한다.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을 거쳐 선정된 샤워 송 플레이리스트의 처음은 항상 '"Heroes"'이었다. 위의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완벽한 샤워 송이다. 특히 피치가 높아지는 중반부, 스트레이트 하게 내지르는 'I, I will be king'은 항상 따라 외쳐야 속이 시원했다. 아마 우리 집 화장실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아닐까.

 

‘지금부터 내가 어디로 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지루하진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데이비드 보위는 10분 남짓한, 그 짧은 시간에도 날 즐겁게 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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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der pressure (With Queen, 1981)

 

데이비드 보위는 모를 수 있더라도 원곡이든 CM송이든 가리지 않고 흘러나오는 이 노래를 들어보지 않은 한국인은 없을 테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베이스라인이 흘러나올 때부터 평상시 느리게 뛰는 내 심장은 자연스레 그 주파수에 공명한다. 이후 위대함이라는 미사여구조차 수식하기 힘든 거장 듀오는 억압 하에 살아가는 사람, '그 사랑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줄 순 없을까?'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 내 삶 속에 자의식을 환기해주었다.

 

치열한 경쟁에 사교육으로 점철되는 대한민국 교육제도에 울분을 토하던 '수레바퀴 아래서' 해방구는 음악이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처음으로 가사를 통째로 외웠으며 아직도 종이와 펜이 있으면 습관처럼 적어 내려가는 팝송. 그들의 생은 짧았지만 예술은 영원할 것임을 믿는다.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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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dance (1983)

 

우리나라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곡이라면 고민 없이 이 곡을 꼽을 수 있다. 디스코 열풍이 가득했던 1983년, 마이클 잭슨의 'Beat it'을 밀어내고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에 오른 곡이다. 시크(CHIC)의 리더 나일 로저스(Nile Rodgers)가 공동으로 프로듀서를 맡았고,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이 기타 솔로를 녹음했다. 끊임없이 변신을 원했던 그는 동시대의 트렌드를 받아들여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했고, 대중들은 이를 열렬히 환영했다.

 

어딘가 도시적이고 향락적인 노래에 비해 뮤직비디오의 메시지는 경건하다. 호주를 배경으로 원주민 남녀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자연과 도시를 대비시키며 타락한 자본주의를 경고한다. 짜인 군무가 아니라 자유롭게 음악에 몸을 맡기는 사람들, 아찔한 절벽 위에서 춤추는 남녀의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결국 그가 추자고 했던 '춤'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유혹의 몸짓도 과시의 수단도 아니었다. 즐거움의 발현이자 행복을 위해 버둥거리는 아름다운 몸부림! “Let's dance, for fear tonight is all” (춤을 추자, 오늘 밤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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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ing in the street (With Mick Jagger, 1985)

 

'틈'이 느껴지는 일탈의 곡이다. 멋지고 신비롭게만 보이는 그가 이 노래에 맞춰서 아이처럼 계단에서 뛰어내리고 경박하게 몸을 흔든다. 한때 염문설(?!)의 주인공이기도 했던 믹 재거(Mick Jagger)와 장난꾸러기같이 해맑은 표정으로 춤을 춘다. 취지 또한 하나의 이벤트로 시작됐다. 1985년 'Live Aid' 자선 콘서트를 위해 마사 앤 더 반델라스 (Martha & The Vandellas)의 곡을 리메이크해서 내놓았다. 이 노래는 미국 흑인들 사이에는 인권 운동가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두 로커는 이를 에티오피아 난민의 기아 문제를 위해 힘을 보태기 위해 불렀다. 특히 뮤직비디오가 흥미롭다. 뭔가 어설프고 재밌다. 노래도 스텝이 착착 맞기보다는 흥에 겨워 목청을 돋워 내지르고 춤도 나오는 대로 막 흐느적거린다. 그 모습이 얼마나 신나고 즐거운지 지켜보는 사람도 낄낄대며 웃게 한다. 그에 대한 기억을 넘기며 가장 인간적이고 즐거워보였던 순간. 그 감정과 숨결이 담겨 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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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wonder (1997)

 

1990년대 데이비드 보위를 대표하는 < Earthling > 속 1번 트랙 'Little wonder'다. 독특하게도 이 곡을 드럼 앤 베이스라는 장르를 공부하다 접했다. 브레이크 비트가 달리며 만들어내는 긴박함은 으스스한 뮤직비디오와 감상하면 더욱 강렬히 느낄 수 있다. 당시는 유행을 좇는다는 이유로 좋은 평을 받지 못했지만, 글램 록 외의 다양한 영역으로 자신을 알록달록 덧입혔기에 지금 더 특별하게 기억된다.

 

노래와 함께, 유니언 잭 코트를 멋지게 소화해낸 보위의 앨범 표지도 찾아보시길. 개인적으로 꼽는 그의 베스트 패션 중 하나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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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ursday's child (1999)

 

한 남자가 거울을 바라본다. 꿈과 현실은 겹쳐지고 이어 펼쳐지는 상상의 나래. 지쳐가는 중년은 바스러지어 찬란했던 그 시절로 돌아왔고 일생의 동반자 역시 그 옛날 피앙세로서 곁에 서 있다. 하지만 이는 단지 호접몽에 지나지 않을 뿐. 결국 우리가 살아갈 곳은 현실이며 의지할 사람은 당신 바로 옆 그 사람일 테다.

 

데이비드 보위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아끼는 곡. 나 역시 영국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는 '슬픈 숙명을 타고난 목요일의 아이'기에 동질감을 느꼈다. 과거를 놓아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는 바로 구태의연한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당신이지 싶다. 그 당신이 누군지, 이미 떠나버린 건 아닌지 이제는 알 수 없더라도.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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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독수리처럼 날아간 글렌 프라이(Glenn Fr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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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쌀한 바람만큼 슬픈 소식이 많았던 1월이다. 얼마 전 데이비드 보위에 이어, 이글스의 기타리스트이자 보컬인 글렌 프라이(Glenn Frey)도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부고라 마음이 더 저릿하다.

 

이글스 명곡의 상당수는 그를 거쳐 탄생했다. 「Take it easy」로 처음 주목받게 했고, 돈 헨리와 공동 작곡ㆍ작사하며 팀 음악의 양축을 담당했다. 국내 1970년대 팝 팬들은 음악다방에서 「Hotel California」, 「Lyin’ eyes」 등으로 이글스의 전성기를 함께 했다. 그를 회상하며, 그룹 시절 부른 노래부터 해체 후 들려준 솔로 곡까지 11곡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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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it easy (1972)

 

공전의 화제를 뿌렸던 1994년 재결합 MTV 공연에서 글렌 프라이가 “이 곡으로 모든 게 시작되었다!”고 말했듯 이글스의 출현과 동시에 그룹의 정체성 구축을 확증하는 데뷔 시그널. 그 정체성은 ‘버팔로 스프링필드’와 ‘포코’가 씨를 뿌려 1960년대 말 개화한 이른바 컨트리 록(country rock)이란 것이었고 이글스는 이 곡과 함께 그 ’로큰롤과 컨트리의 밀월’을 대중적으로 견인, 완성한 주체로 떠올랐다. 후반에 인상적으로 배치된 멤버 버니 리든의 밴조 연주가 말해준다.

 

버니 리든이 다분히 미국적인 컨트리에 수절했고 나중 콤비가 된 돈 헨리가 유니버설 로큰롤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면 글렌 프라이는 그 중간지대에서 양자의 케미를 주도했고 그 산물이 컨트리 록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글로벌과 로컬의 동행, 이른바 글로컬 노선은 이후 「Already gone」, 「Tequila sunrise」, 「Lyin’ eyes」, 「New kid in town」, 「Heartache tonight」으로 이어진다. 이글스의 대표작은 세계적으로는 「Hotel California」이겠지만 미국 백인에게는 「Take it easy」가 결정적이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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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ful easy feeling (1972)

 

돈 펠더와 조 월시를 차례로 들이며 하드 록 식 터치를 덧대기 전, 부드러운 컨트리/포크 록 컬러를 자주 선보였던 초창기의 이글스에서 글렌 프라이의 매력이 더욱 잘 부각됐다. 잭슨 브라운과 함께 「Take it easy」를, 밴드의 작곡 파트너 돈 헨리와 함께 「Tequila sunrise」 등을 써내며 소프트한 사운드와 멜로디를 뽑아내는 데에도 두각을 드러냈으며, 특유의 온화한 목소리와 보컬로 푸근한 곡들의 공기와의 좋은 조합을 보이기도 했다.

 

비록 글렌 프라이 스스로가 아닌,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잭 템프친(Jack Tempchin)이 곡을 썼으나, 「Peaceful easy feeling」 역시 아티스트의 이력을 대표하기에 충분하다. 가벼운 기타 반주가 전하는 포크-컨트리 사운드 위에서 따스한 보컬을 선사하는 글렌 프라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곡은 빌보드 차트 22위에 오르기도 해, 초기 이글스의 비상에 큰 힘을 싣기도 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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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quila sunrise (1973)

 

성공적인 데뷔 이후 작곡 콤비였던 돈 헨리와 글렌 프라이는 더욱 환상적인 창작력을 빛낸다. 소포모어 작인 <Desperado>(1973)의 첫 번째 싱글 「Tequila sunrise」는 컨트리 록의 전형적인 편성과 진행을 대표하는 명곡이다. 비록 빌보드 싱글 64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글렌 프라이의 시그니처 송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상투적인 음악으로 치부해 스스로 평가절하하며 부정적인 생각의 골이 깊어지던 프라이에게 작곡 파트너 헨리는 이렇게 말을 건넸다고 한다. 농담으로 주고받은 이야기일 테지만 서로 마시기도 엄청나게 마셨나 보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 없어. 평소처럼 데킬라를 스트레이트로 밤새워 마시다 보면 태양은 다시 뜰 거야. 이 곡은 그냥 그렇게 너를 표현하는 노래야.”

 

1993년 컨트리 싱어 알란 잭슨(Alan Jackson)의 목소리로 커버되며 컨트리 싱글차트 64위에 오르기도 했고, 1994년 14년 만에 재결합한 <헬 프리지스 오버(Hell Freezes Over)> 라이브에서도 연주되었다. (신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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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Dean(1974)

 

<Desperado> 이후, 글렌 프라이와 돈 헨리는 새로운 시도를 감행한다. 슬라이드 기타에 조예가 깊었던 돈 펠더(Don Felder)을 새로 영입하고, 작업 도중 프로듀서를 교체하는 등 컨트리 록이 아닌 로큰롤 앨범을 만들고자 한 이글스는<On The Border>라는 역작을 내놓는다. 하드 록 스타일뿐만 아니라 기존의 컨트리 록 또한 함께 아우르는 앨범엔 처음으로 밴드를 빌보드 차트 정상에 올려놓은 「The best of my love」가 수록되어있다. 그러나 노선의 변화를 시도한 앨범의 본질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는 트랙은 「James Dean」이다. 글렌 프라이의 거친 음성과 빠른 리듬은 하드 록의 정수를 표방하고 있으며, 곳곳에 배치된 버니 리든의 기타 솔로는 곡의 백미로써 작용한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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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in’ eyes (1975)

 

나이가 많고 뚱뚱한 남자 옆에 젊고 아름다운 여인이 있다면 무슨 생각이 들까? “저 여자 좀 봐! 눈빛이 진실하지 않아! (Look at her, she can’t even hide those lyin eyes)”. 바에서 실제로 이 상황을 본 글렌 프라이가 내뱉은 말이다. 이 말을 들은 드러머 돈 헨리는 글렌 프라이와 함께 넵킨에 새로운 노래에 대한 브레인스토밍을 시작했고, 이 명곡은 이틀 만에 완성됐다.

 

1975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기록한 「Lyin’ eyes」의 분위기는 여유롭고 느긋하다. 투명한 어쿠스틱 기타와 낭랑한 만돌린 소리는 편치 않은 가사를 잊게 할 만큼 포근하고 아늑하며 주요 멜로디 부분에서 터지는 멤버들의 화음은 전형적인 웨스트코스트 사운드의 낭만을 주입한다. 여기에 글렌 프라이의 과잉하지 않는 보컬은 1970년대 컨트리 음악에 대한 우리의 수용방식이 너그러웠음을 의미한다. 글렌 프라이가 리드 보컬을 맡은 이글스의 노래 중 베스트 트랙이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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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kid in town (1976)

 

스스로들 ‘오 마이 갓!’을 연발케 한 희대의 걸작 「Hotel California」를 만들어놓고 행여 너무 앞서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글스 멤버들은 「Hotel California」를 첫 싱글로 발표하기를 망설인다. 대안은 글렌 프라이가 주도한 바로 이 노래였다. 이 점만으로도 당시 미국에서 글렌 프라이의 스탠스가 대중적 안도감과 균형 쪽임을 알 수 있다. 여유로운 톤 조절을 통한 프라이의 능숙한 보컬은 자신의 음악 이력의 정점을 찍으며 거기에 금상첨화로 이글스의 특장이라 할 유니 코러스를 더해 예술성을 확보했다.

 

출범 때부터 이어온, 비록 서툴지는 몰라도 이 무렵 쇠락과 회의의 늪에 빠진 「아메리칸 드림」에 천착하면서 그룹의 메시지 지향을 획득했다는 것도 중요하다. 「Hotel California」, 「Life in the fast lane」, 「The last resort」가 그렇고 「New kid in town」 역시 더 나은 새로운 남자에게 가버리는 여인을 통해 삶과 사랑의 얄팍함, 비록 지금은 최고지만 곧 신인에게 자리를 내줘야 하는 음악 산업의 비정을 주제화한다. 따라서 이 곡은 일각의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 같은 뉴 페이스 찬가 혹은 신입사원 사기진작 비지엠은 될 수 없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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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rtache tonight (1979)

 

<Hotel California>로 절정을 맞이한 밴드는 후속작의 첫 싱글로 댄서블한 리듬과 중독적 후렴을 갖춘 「Heartache tonight」을 발표했다. 존 데이비드 사우더(J. D. Souther)와 글렌 프라이가 일렉트릭 기타로 잼을 하면서 골격을 세운 노래는 발매 후 빠르게 인기를 모으며 두 달 만에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100만 장 이상의 판매를 기록한 싱글은 재결성 전 마지막 앨범이었던<The Long Run>의 인기를 견인했고, 이듬해 그래미 시상식에서 신설된 ‘베스트 록 퍼포먼스 듀오 또는 그룹’ 상을 수상했다.

 

단순한 구조, 코드 진행의 경쾌한 로큰롤은 유려한 멜로디를 갖춘 전형적인 이글스식 컨트리 록이었다. 리드 보컬 글렌 프라이와 멤버들의 하모니가 빛났고 인상적인 워킹 베이스와 기타 선율은 매력적이었다. 197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이글스는 마지막 1위 곡 「Heartache tonight」가 수록된 <The Long Run>을 끝으로, 1994년 극적 재결성까지 14년간 긴 침묵에 돌입했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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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ne you love (1982)

 

이글스의 폭풍 같던 전성기를 뒤로 하고 마주한 1980년대. 첫 번째 솔로 앨범 <No Fun Aloud>가 낳은 결과는 그 명성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The one you love」는 바로 이 음반의 리드 싱글이다. 선택의 길목에 선 이에게 프라이는 관조적인 시선을 담아 질문한다. "당신은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남을 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사랑하는 이에게 돌아갈 건가요?" 사랑이 주는 고민은 세상 가장 지독한 것. 그러나 아티스트는 화려한 수사대신 담백한 어조를 선택했다. 쉬운 단어로 이루어진 노랫말이기에 듣는 이들의 마음 안에 직접 가 닿게 되었다.

 

어니 와츠(Ernie Watts)와 짐 혼(Jim Horn)의 테너 색소폰 연주는 인트로부터 깊은 맛을 낸다. 단순한 라인의 모티브가 곡 내내 반복되지만, 관악기만의 날카로우면서도 따듯한 색깔을 입어 꽤 무겁게 중심을 잡아준다. 리듬도 마찬가지. 「Mo’ better blues」 식의 4박자 박절감으로 유연하게 이어가는 진행은 부드러운 재즈 사운드와 접합돼 편안하면서도 진한 여운을 남긴다. 기타리스트이자 키보디스트, 보컬, 창작까지 다방면에 재능을 보였던 록 밴드 멤버의 이력이 관록을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그는 독보적인 감성을 지닌 멀티 플레이어였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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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t is on (1984)

 

글렌 프라이의 솔로곡 중 가장 유명한 노래다. 영화 <비버리 힐스 캅>(1984)이 성공을 거두면서 오프닝에 쓰인 이 곡 역시 사랑받았다. 곡은 사운드트랙을 담당한 헤롤드 폴트마이어(Harold Faltermeyer)가 썼다. 작곡 시절 도나 섬머를 비롯한 댄스 가수들의 음악을 작업한 경험이 있어서인지, 노래에서 아주 흥겨운 1980년대 댄스 팝을 들려준다. 글렌 프라이도 「The one you love」 속 신사적인 분위기는 던져버리고 뉴웨이브 풍의 로큰롤을 매끄럽게 소화한다.

 

탁월한 멜로디와 톡 쏘는 보컬은 히트로 이어졌다. 「The heat is on」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에 올라 그의 솔로 활동을 장식하는 곡이 되고, 영화 수록곡 음반 역시 앨범 차트 1위를 기록한다. 배우로 활동하며 작품 OST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겠지만, 이러한 성공은 이후 글렌 프라이가<마이애미 바이스>, <델마와 루이스> 등 배경음악 활동을 높이는데 영향을 주었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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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uggler’s blues (1984)

 

‘밀수업자’라는 제목과 가사는 노래의 출신 성분(?!)을 대변한다. 사실 이 곡은 미국 TV 범죄 드라마<마이애미 바이스>의 사운드 트랙으로 사랑을 받았다. 영화를 방불케 하는 뮤직비디오는 MTV 어워드에서 베스트 컨셉 비디오(1985)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노래의 주요 키워드는 모두 이 뮤직비디오 안에 담겨있다. 해안이 아름다운 ‘마이애미’는 카랑카랑한 기타 톤과 잘 어울리고 ‘마약’을 거래하는 ‘밀수업자’에 대한 이야기는 환각과 몽롱한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반전과 주인공의 최후는 마초성 짙은 누아르 영화처럼 비장하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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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belong to the city (1985)

 

1984년 시작해 6년간 선풍적 인기를 끈 TV 영화 시리즈 <마이애미 바이스>메인 테마로 제작되어 빌보드 싱글차트 2위를 선사한 솔로 커리어 대표곡. 현장감이 두드러지는 색소폰 솔로에 유행하던 디스코 풍 베이스 리프를 얹으며 선 굵은 수사물에 어울릴만한 숨죽이는 분위기를 주조해냈다. 이후 자연스레 반주를 뚫고 나오며 고조되는 처량한 가사를 담은 보컬은 네온사인 하나둘 꺼지는 뉴욕 밤거리를 정처 없이 배회하는 그 서글픈 숙명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아무도 네게 관심이 없으며 자신조차도 어느 곳을 향하는지 모르는 이 도시에서, 당신은 그저 대중에 속한 하나의 얼굴일 뿐’. 외로움 가득한 인생을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는 따뜻한 위로보다 상념 어린 차가운 고찰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은가.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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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광석 20주기, 나의 노래는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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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다. 그가 추억이 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거리는 그의 노래로 메워지기도 하며, TV나 라디오도 그의 흐느낌과 외침을 옮겨내고 있다. 생전의 그가 자주 공연을 벌이던 대학로엔 수많은 후배 가수들이 그를 추모하는 공연을 벌이기도 하고, 통기타를 메고 있는 그의 모습과 함께 노랫말이 적힌 비석이 세워지기도 했다. 심지어 그가 살아있었던 나날들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그를 기억하며 추억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0년이 지난 지금, 소중한 그의 노래들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자는 바람에 스무 곡을 선정해 리스트를 마련했다.

 


슬픈 우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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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각별한 노래들이 많기에, 그의 데뷔작은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다. 1집 수록곡이자 자작곡이기도 한 '슬픈 우연'은 그렇게 조용히 알려졌다. 동물원 시절 부른 '거리에서'와 닮은 구슬픈 보컬, 블루지한 반주는 이후 포크적인 히트곡들에서 들을 수 없는 특이점이다.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을 '슬픈 우연'이었다고 표현하며, 시작부터 헤어짐의 과정을 관조한다. 절절하게 울려 퍼지는 가창은 이별 후의 고독함을 파고들고, 징글 거리는 기타와 반복되는 신시사이저 소리도 외로운 분위기를 고조한다. 처량하고 쓸쓸한 순간, 어느 곡보다 거칠게 감정을 가르고 들어와 소주 한 잔과도 같은 노래가 되어줄 것이다. (정유나)

 

 

기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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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과 동물원 활동으로 대학가를 비롯한 대중들에게 잔잔한 울림을 전한 김광석은 그만의 방식으로 새로이 노래에 전념하고자 솔로를 택했다. '기다려줘'는 80년대를 마무리하는 동시에 음유시인 김광석 시대를 여는 1집(1989년)의 수록곡으로, B면에서도 두 번째에 자리하고 있지만 타이틀 '너에게' 이상으로 깊이 사랑받아온 작품이라 하겠다. 동물원에서 동고동락했던 김창기가 곡과 가사를 썼으며, 쓸쓸한 독백의 마지막에 쏟아내는 한마디 외침은 언제 들어도 애달프다. (조아름)

 

 

사랑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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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곡이지만 그의 색깔이 가장 연한 노래기도 하다. 그는 '사랑했지만'에서 유려한 보컬과 절창의 발라드를 들려준다. '김광석' 하면 떠오르는 포크적인 요소는 없다. 다만 애절한 멜로디와 절절한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 곡을 작곡 작사한 한동준은 김광석이 노래의 가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랑했지만 그저 이렇게 멀리서 바라볼 뿐 다가설 수 없어'라는 수동적인 자세를 답답해했단다.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김광석의 성격과 스타일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그가 3집에서 성향이 바뀐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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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가수가 탄생하고 소멸한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노래만이 불멸의 존재로 우리 가슴 속에 남는다. 김광석이 그러하다. 그의 '무엇'이 대중들의 공감을 자아낼까? 쓸쓸함, 그것이다. 투박하면서도 절절한 그의 감성은 우리의 마음 한편을 파고들어 울린다. 정규 2집의 두 번째 곡 '꽃'은 그의 정서를 대표한다.

 

도입부의 피아노 반주는 우울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느려진 반주에 읊조리는 가사는 듣는 이를 집중시킨다. 겨울을 견디고 봄이 다시 찾아와 꽃은 피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는다. 단조를 머금은 관악기의 선율이 슬픔을 고조시킨다. 폐부 속 마지막 한 줌의 숨까지 토해 자아낸 그의 진동음(vibrato)은 귓속까지 파고들어 애달픈 여운을 남긴다. (현민형)

 

 

사랑이라는 이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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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김광석 2집>에 수록된 '사랑이라는 이유로'는 피아노 선율 중심에 풍성한 사운드를 장식한 세련된 팝 발라드였다. 90년대 초반 김형석의 작법이 그대로 묻어난 곡을 한층 특별하게 만든 것은 역시 목소리였다. 담백하게 말하듯이 소리를 내뱉어도 진한 감성이 배어 나와 순식간에 청중을 집중시키던 그 보컬. 비록 음반의 타이틀곡은 아니었으나, '사랑했지만'의 처절한 아픔만큼 '사랑이라는 이유로'의 담담한 저릿함에 상당수가 응답했다.

 

1993년 <다시 부르기 1>에서는 포근한 오케스트레이션을 더해 시린 마음을 좀 더 따뜻하게 감쌌다. 더욱 깊고 짙어진 그의 음색은 새로운 편곡과 어우러져 원곡을 능가하는 아우라를 형성했다. 보편적 공감을 자아낸 가사, 시대를 타지 않는 세련된 멜로디가 김광석을 만나 영원한 생명력을 얻었다. “사랑이라는 이유로 하얗게 새운 많은 밤”을 보낸 모든 이들 가슴에서 이 노래는 여전히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다. (정민재)

 

 

그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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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기 작사/작곡으로 1991년 <김광석 2집>, 1993년 <다시 부르기 I>에 수록되었다. 음악 예능이 범람하는 현재 후배 가수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도 '김광석' 하면 떠오르는 곡 중 하나일 테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펼쳐지는 사건에 고인의 노래를 담아내 재탄생한 창작 뮤지컬 <그날들>의 제목으로도 쓰이고 있다.

 

최소한의 반주에 잔잔한 독백처럼 얹히며 시작해 고조되는 감정선에 취하며 점진할 때, 울부짖듯 그대를 목 놓아 부름은 사랑의 속성과 닿아있다. 말은 쉬워도 정말 어렵지 않은가. 내가 당신을 잊는 것도, 당신에게 내가 잊히는 것도. (이기찬)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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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직후 상실감은 생활 전반에 스며든다. 그저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을 뿐인데 혼자 하는 모든 일이 왜 이리도 낯설고 헛헛한 건지. 시간조차 더디게 흐른다. 이쯤 되면 믿지도 않는 신이 원망스럽다. '거기서 비웃고 계신 거, 맞죠?'

 

나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와 문을 닫는 순간, 허전함은 파도가 되어 나를 덮친다. 정신을 차려 뭔가를 해보려 해도 통 되지를 않고 하루 종일 휴대전화만 열었다 닫을 뿐이다. 기운은 없고 온종일 멍하다.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생의 감각이다. '어제보다 커진 내 방 안에'라는 가사는 사람의 자리가 빠져 생긴 물리적 공간을 포함한 그 모든 감각을 아울러 말함이리라.

 

이런 노래를 자주 들을 수는 없다. 매번 이 감성에 이입하다가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니까. 때문에 곡이 제힘을 발휘하는 순간은 역시 연인과의 이별 직후일 거다. 이별의 응어리가 남았다면 이 노래와 함께 하룻밤 한숨으로, 눈물로 모조리 토해버리자. 남은 감정을 다 쥐어짜 낼 수 있도록, 김광석 아저씨의 나지막한 읊조림이 도와줄 거다. (여인협)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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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김광석의 음악은 '나무'같다고 생각했다. 이 곡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목소리에 서린 삶에 대한 응축된 집념과 의지는 폭풍우가 몰아쳐도 꼿꼿하게 자기중심을 지켜내는 나무의 강한 생명력과 닮은 면이 있었다. 자신이 선 곳에 단단히 뿌리내리고서 흔들림 없는 부동의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시간의 흐름에 맞춰 필요한 변화를 일구는 불변과 가변의 조화도 그랬다. 그의 음악은 고고한 자태로 우뚝 솟아있으면서도, 언제나 곁에 있었다. 우리가 걸어가는 생의 길목마다 나란히, 다정히, 말없이 그저 놓여서 지치고 외로워진 마음을 기댈 자리를 언제든 내어주었다.

 

김윤성 시인의 시에 한동헌이 멜로디를 붙인 3집 수록곡 '나무'는 이러한 개인적 견해와 인상이 지나친 것이 아니라고 믿게 한다. 곡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고조되는 사운드는 박자마다 침착하고, 나무와 혼연일체 된 김광석의 목소리는 욕심 없이 뜨겁다.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 없이 나는 나에게 황홀을 느낄 뿐이오'를 지나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하오'에 다다를 때마다 나는 전율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악기들의 웅장한 하모니! 그가 펼쳐놓은 무성한 가지와 그늘에 마음을 누이며 또 한 번 그를 느낀다. (윤은지)

 

 

이등병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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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가 특정한 사람들을 묶은 것처럼 입대를 앞둔 청년들은 집단적으로 일시적이나마 이 곡에 자진 포박당한다. 특수한 상황 변화에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파고드는 이런 공감 파워는 대한민국 대중가수 사상 거의 그만이 갖는 특전이다. 그룹 '종이연'에서 윤도현이 먼저 불렀고 원작자인 김현성, 전인권 등 다수가 음반을 발표했지만 1993년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다시 부르기 1>과 함께 비로소 노래 주인을 찾았다.

 

처연하게 노랫말을 읊조리는 김광석 특유의 보컬 톤은 휴먼터치로는 역대 최고급이다. 2000년 박찬욱의 영화 <공동구역 JSA>에 삽입, 김광석 사후 부활을 기폭 하면서 그에 대한 대중 동의는 더 깊어졌다. 그 때문에도 김광석 전설 구축에 가장 다대한 정서 지분을 갖는 곡. 2009년 12월, 입대를 며칠 앞둔 아들이 묻는다. “아버지, '이등병의 편지'라는 노래 아세요? 오늘 친구들과 처음 들었는데 가슴에 와 닿던데요.” “어떤 대목이 좋든?”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여기요!” (임진모)

 

 

일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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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에게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앨범이자, 본인이 가장 좋아했던 앨범인<김광석 네번째 >의 첫 곡 '일어나'는 위안이 되는 가사뿐만 아니라, 선율을 적어내는 재능과 조동익의 완전한 편곡이 빛나는 곡이다.

인생은 부초처럼 떠다니다가 물과 함께 썩어가는 것이라고, 아름다운 꽃일수록 빨리 시들어 간다고, 그는 삶에 대한 비탄을 애수 맺힌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에도 일어나라고 한다. 어떠한 다른 말도 없이, 봄의 새싹들처럼 다시 한 번 일어나라고 위로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그 날부터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 외침은 우리들 마음속에서 끝없이 사랑받고 소비되고 있다. (이택용)

 

 

바람이 불어오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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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 퍼커션 라인이 시작을 알린다. 가벼운 기타 리프가 그 뒤를 잇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동감 있는 보컬 멜로디를 품은 김광석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여기에 새로운 꿈들을 위해 바람이 불어오는 곳으로, 햇살이 눈 부신 곳으로 가자는 가사는 여행을 연상시켜 산뜻하기도 하고 새로운 꿈을 얘기해 희망적이기도 하다. 1994년의 네 번째 정규 음반<김광석 네번째>에 수록된 이 곡은 김광석 표의 밝은 노래를 얘기하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김광석의 음악 인생을 대표하는 곡 중 하나다. 노래뿐만이 아니라 곡은 2012년, 아티스트의 생애를 다룬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제목으로도 쓰여 전 세대의 사람들이 찾는 애청곡이 됐다. (이수호)

 

 

너무 깊이 생각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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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생의 동료 김창기가 끼적여놓은 한 편의 시는 김광석의 한없이 서그러운 목소리로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생명력을 얻었다. 그래서인지 1996년 2월 23일, 49재를 맞아 30팀의 동료들이 연세대 대강당에 모여 추모곡을 늘어놓았을 때 김창기의 선택은 역시나 이 곡이었나 보다.

맞다. 인간 본성에 끌어 나오는 숙명적인 외로움은 어떠한 노래나 서신, 심지어는 벌거벗은 여인의 사진으로도 갈무리될 수 없을 테다. 단지 여유를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며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같은 평범함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기, 그렇게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을 때 그에 대한 그리움마저도 차근히 씻기지 않을까. (이기찬)

 

 

회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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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로 돌아감, 그것이 회귀다. '젊은 날 빛을 뿜던 친구들'은 마치 '목련'처럼, 하얗게 '피고 흙으로' 돌아간다. '회귀'는 김지하의 시에 작곡가 황란주가 음률을 입힌, 김광석의 발라드곡이다. 그는 기타 대신 피아노의 유려한 선율에 맞춰 담담한 어조로 지는 젊음을 읊조리고, 응축된 감정은 점점 고조되어 노래의 절정에 달해 곡소리처럼 터져 나온다. 소중한 이를 떠나보내는 슬픔, 그리고 죽음에 대한 성찰은 감정의 완급조절을 통해 호소력 짙게 다가온다.

 

김광석은 4집 <김광석 네번째>에서 한층 넓어진 주제의식을 보여준다. '회귀'를 비롯해, 주체적인 삶과 연대를 희망하는 '일어나'와 '끊어진 길', 존재의 존엄성과 자유를 외치는 '자유롭게'까지, 그는 사랑과 이별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으로 제재를 확장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회귀'는 '타는 목마름으로'와, '노래를 찾는 사람들' 시절 '녹두꽃'을 부르던 청년을 떠올리게 해 민중 가수로서의 김광석을 다시 한 번 상기 시킨다. 우리네 인생과 희로애락을 노래하던 김광석은 낙화(落花)가 되어 흙으로 '회귀'했다. (정연경)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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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등병의 편지'나 '서른 즈음에'처럼 인생의 고비에서 부른 노래이다. 그대를 멀리 보내고 홀로 술잔 앞에서 눈물을 삭히는 사랑의 '고통'을 노래한다. '지울 수 있을까'하며 괴로워하다가 가만히 자신을 달래고 나무란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제목 자체가 하나의 명문이다. 한참을 울다가 결국 잠겨버린 것 같은 목소리로 애써 '사랑이 아니었다'고 결론을 낸다. 하모니카와 기타마저 흐느끼는 노래를 들으며 어찌 함께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음악 그 자체가 하나의 울음이다. (김반야)

 

 

서른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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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잡을 수 없는 시간이 어느새 청춘을 매듭짓고, 왠지 모를 섭섭함이 피어오를 때쯤 떠오르는 '서른 즈음에'는 세대를 위로해 왔다. 떠나간 시간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쉬움은 멜로디에 베어 들어 가슴을 울리고, 쉬이 터놓지 못한 외로움은 노랫말 뒤로 묻어두었다.

 

소박했던 그와 닮은 연주는 기교 없이 수수하다. 오래된 통기타 위로 퍼지는 목소리는 뜨거운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잊힌 추억을 상기시킨다. '내가 떠나보낸 것도, 떠나온 것도 아닌데' 아득한 청춘처럼 멀어진 순수하게 노래하던 모습이 그리워진다. (박지현)

 

 

그녀가 처음 울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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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노래 중에는 빠른 곡이 드물고 특히 빠르고 힘찬 사랑의 노래는 이 곡뿐이다. 전반적으로 느리고 사색적인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이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애창하는 노래다. 이 곡 역시 김광석이 한국의 과거 대표적인 포크음악가들의 곡을 재해석했던 1995년 <김광석 다시 부르기 2>에 수록했던 곡이다.

 

이 곡은 1970년대에 포크 음악을 시작해서 2000년대 초반까지 창작을 이어갔던 이정선이 1985년 그의 7번째 음반 <30대>에 수록되었다. 이 음반을 통해 이정선은 순수한 자연의 세계에 자신의 이상을 투영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 지극히 개인적인 심정을 블루스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사운드로 표현함으로써 성인 음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이런 배경을 고려해볼 때 <김광석 다시 부르기 2>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선곡이다. 이정선의 원곡은 숨 쉴 틈 없이 휘몰아치는 기타의 피치카토 주법이 듣는 재미와 연주하는 재미를 안겨준다. 별다른 연주의 매력도 없이 이 곡을 수록한 이유는 빠른 템포의 사랑의 노래라는 점을 빼고는 설명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아쉬운 곡이다. (김형찬)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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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이 과거 한국 포크의 중요 곡들을 재해석함으로써 자신이 한국 포크 음악의 적자임을 드러냈던 1995년 <김광석 다시 부르기 2>에 수록했던 곡이다. 이 곡은 1960년대 미국의 모던 포크를 대표했던 음악인 Bob Dylan이 1963년 <Freewheelin' Bob Dylan >에서 'Don't Think Twice It's Alright'라는 제목으로 최초로 발표했다. 변화와 개혁의 시대 1960년대를 살았던 미국 젊은이들의 심정을 대변한 명곡이었다.

이 곡의 두 번째 계보는 한국으로 이어졌다. 1974년 양병집이 그의 첫 번째 음반 <넋두리 >에서 '역'(逆)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시대 상황을 풍자하는 가사로 바꾸어내어 그가 한국에서 프로테스트 포크를 제대로 이해한 음악인임을 증명했다.

 

김광석은 이 곡에서 3절의 가사를 다시 슬쩍 바꿔 부름으로써 현실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만약 김광석이 살아서 흙수저와 헬조선으로 조롱되는 한국의 현실을 목격했다면 과연 어떤 노래를 했을지 무척 궁금해진다. (김형찬)

 

 

불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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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곡은 포크 가수 김의철의 '저 하늘에 구름 따라'다. 유신 정권이 가했던 문화 폭력으로 예술계가 신음하던 1974년, 이 곡 또한 제목마저 손상된 채 세상에 나왔다(원제는 '불행아'). 김광석이 다시 부른 '불행아'는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가위질이 닿기 이전 원형을 최대한 살린 버전이다.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일원이었던 그가 애달픈 운명을 가진 노래에 관심을 가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운 부모 형제 다정한 옛 친구 / 그러나 갈 수 없는 신세

 

'이등병의 편지'나 '서른 즈음에',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와는 달리, '불행아'라는 노래가 한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은 세대를 불문한다. 홀로 왔다가 홀로 떠나는 보통 사람의 얘기. 그러나 그 어떤 자극보다도 강렬하게 와 닿는, 우리 시대의 묘사화(?)다. (홍은솔)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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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소울가수 오티스 레딩의 곡 '리스펙트(Respect)'를 아레사 프랭클린이 가져갔듯 '한국 블루스의 명인' 김목경도 의도치 않게 이 회심작의 소유권을 김광석에게 이전 당하게 된다. 그만큼 김광석이 1993년, 1995년 연속으로 발표한<다시 부르기>앨범은 상당수의 리메이크를 김광석의 원곡으로 오인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것은 한편으로 뛰어난 재해석이 낳은 산물이며 사모와 사부의 애틋한 감성을 부르는 이 곡은 그것을 단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사례일 것이다.

 

감동과 회한의 내러티브는 후반부로 가면서 끝내는 눈물샘을 자극하며 최루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부모와 가정을 가진 모든 이들이 공감하는 가사도 가사지만 거기에 생물 같은 느낌을 부여해 나지막하나 꿈틀거리는 김광석의 스토리텔링은 너무나 절절하고 슬프다. 어떤 낭만적 공상 혹은 관념의 언어도 그의 입을 통하면 삶에 맞닿는 '사실의 언어'가 된다는 점에서 김광석은 위대하다. (임진모)

 

 

나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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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노래 중에 이만큼 흥겨운 도입부를 지닌 곡이 또 있을까. 드럼 사운드가 시동을 걸고, 이내 코러스의 '랄랄라'가 신명에 이르는 속도를 충분히 끌어올리고 나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가 애달픈 양식'이 되더라도 그리 초라하거나 허름하지 않다. 한동헌이 작사 작곡한 3집 타이틀곡 '나의 노래'는 김광석의 몸을 뚫고 나오면서 온전한 김광석의 외침이 된다. '나의 노래'를 부르는 김광석은 시종일관 힘차다. 가난한 마음을 노래하겠다는 그의 치열한 음악적 소명의식에 젖어들고 있노라면 '흔들리고 넘어져도 이 세상 속에서' 그를 꺾을 수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을 것만 같다.

 

원래는 한동헌이 소속돼 있던 서울대학교 노래패 '메아리'의 1집에 '노래'라는 제목으로 실렸던 작품이었다. 이후 김광석이 부르게 되면서 '나의 노래'로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1992년에 발매되어, 그해 가요계를 평정한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돌풍에도 휩쓸려가지 않고 살아남아 사랑받았다. 그리고서 노래는 세대를 거쳐 오랜 기간 가난한 청춘들과 동행해왔다. 역시 그의 노래는 그의 힘이고, 또 우리의 힘임이 분명하다. (윤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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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스, AC/DC, 그리고 호주의 NEW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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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이 사람들이 호주 출신이었어?”라는 말이 쉽게 나올 만큼 호주의 팝 사운드는 알게 모르게 우리 주변에 아주 가까이 닿아있다. 수많은 팬을 보유한 삼형제 팝 그룹 비지스(Bee Gees)와 이제는 그 자체로 로큰롤이 되어버린 AC/DC, 뉴웨이브와 펑크(funk), 팝, 댄스 음악을 활발히 오간 인엑시스(INXS), 국내에서도 많은 인기를 보유한 새비지 가든, 2000년대 초 개러지 리바이벌 흐름을 같이 한 제트(Jet) 등의 음악은 전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절대 낯설지 않다.

 

호주 음악의 침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역사와 전통이 쌓인 덕분에 침투의 세기가 훨씬 강해졌고 범위가 보다 넓어졌으며, 심도가 더욱 깊어졌다. 여기 그들의 선배만큼이나 뛰어난 재능을 선보이며 빛나는 성공과 반짝이는 장래를 획득한 열하나의 아티스트/밴드가 있다. 이들이 곧 호주 음악의 현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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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페이커(Chet Faker)

 

너른 음악 세계를 자랑한다. 이름에서 능히 예상할 수 있듯 호주의 이 신인은 쳇 베이커에게서도 영감을 얻었고 집안에서 모친이 좋아하던 모타운 사운드에서도 색을 가져왔으며 부친이 갖고 있던 이비자의 칠-아웃 음반들에서도 터치를 꺼내왔다. 다운템포, 트립 합 등의 몽환적인 전자음악서부터 재즈와 R&B, 소울, 힙합에 이르는 다양한 사운드의 컬러를 쳇 페이커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다. 본격적으로 아티스트의 이름을 퍼뜨린 블랙스트리트 원곡의 'No diggity' 커버 버전은 여러 음악으로부터 받은 영향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2012년의 <Thinking in Textures>와 2013년의 <Lockjaw EP>와 같은 EP 앨범을 통해 속력을 내기 시작하더니 2014년의 <Built On Glass>로 쳇 페이커는 마침내 세기를 최대로 올린 출력을 선보였다. 갖은 사운드를 근사하게 혼합하는 재능은 재지한 트립 합 넘버 「Talk is cheap」와 미니멀한 일렉트로니카 「Cigarettes & loneliness」, 다운템포 튠의 「Gold」 등으로 꾸린 근사한 첫 정규 앨범을 만들어냈고, 더 나아가 그에게 호주 내 인디 차트에서의 좋은 성적표와 베스트 남성 아티스트, 베스트 인디펜던트 릴리즈 등 여러 부문의 아리아(ARIA) 어워즈 트로피를 선물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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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디 심슨(Cody Simpson)

 

혜성처럼 등장한 호주 출신 꽃미남 아티스트. 국내에선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 한 영상으로 유명하다. 플로 라이다와 함께한 첫 싱글 iYiYi는 소년의 앳된 목소리로 사랑하는 연인과의 이별을 희망적으로 그려냈다. EP <Coast To Coast>를 통해 R&B 성향이 강한 'Good as it gets', 'Not just you'를 선보이며 코디 심슨은 자신의 보컬리스트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저스틴 비버의 매니저인 스쿠터 브라운과 계약하며 본격적으로 팝스타의 반열에 오르기 시작한 그는 1집 <Paradise>와 다음 해 2집 <Surfers Paradise>를 연이어 발매하게 된다.

 

사실 코디 심슨의 등장은 예견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제이슨 므라즈와 잭슨파이브의 곡을 연주하던 영상 속 미소년에 열광했고, 그렇게 제2의 저스틴 비버가 만들어질 '뻔'했다. 기타를 잡던 소년은 거대 자본 하에 양산된 틴팝, 팝록의 과도기적 사운드를 거쳐 2014년 독립을 선언한다. 이후 그는 자신의 레이블 Coast House을 세워 3집 <Free>를 발표한다. 프로듀서 시스코 애들러의 터치가 담긴 이 앨범은 어쿠스틱 록 넘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자유'라는 타이틀과 어울리는 곡의 분위기, 한층 여유로워진 코디의 보컬은 그의 심경을 대변하는 듯 하다. 아이돌을 넘어 아티스트로 성장한 코디 심슨,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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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니 바넷(Courtney Barnett)

 

호주 뮤지션 중, 아니 록 신에서 작년 한 해 동안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인물을 꼽으라면 당연 커트니 바넷이다. 2006년 데뷔 이후, 두 장의 EP <I've Got A Friend Called Emily Ferris>와 <The Double EP: A Sea Split Peas>로 내공을 쌓아오던 그는 익숙한 신선함으로 다가왔던 첫 정규 작 <Sometimes I Sit And Think, And Sometimes I Just Sit>로 급부상하였다.

 

「Pedestrian at best」와 「Dead fox」 등, 얼터너티브 록이 활개 치던 90년대의 향수를 머금은 디스토션 기타와 밥 딜런이 연상되는, 무심한 듯 툭툭 내뱉는 보컬로 완성된 트랙들은 다수의 록 마니아를 매료시켰다. 음반이 지닌 거친 활력과 특수성은 그를 그래미 신인상 후보에 올려놓았고, 제임스 베이나 메간 트레이너 등 다른 팝 아티스트 못지않은 경쟁력을 가진 후보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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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어 오브 더 선(Empire of the Sun)

 

작열하는 태양 아래 숨 막히는 더위를 속 시원하게 날려버리고 싶다면?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듯이 댄스플로어 하나 차려놓고 이들의 노래에 몸을 맡겨보아도 좋을 테다. 엠파이어 오브 더 선(Empire of the Sun)은 2007년 시드니에서 결성한 듀오. 태양의 제국이라는 팀 이름답게 분장은 과장되어 어딘가 불타오르는 듯 '태양의 서커스'를 연상시키지만 곡 스타일은 수려한 신스 멜로디 위에 찰랑이는 보컬이 또렷이 들려 청량한 소다가 떠오른다.

 

프랑스 밴드 피닉스(Phoenix)가 연상되는 댄서블 일렉트로닉 팝을 주무기로 삼지만 기저에 남반구 대륙 특유의 활기가 살아있다. 대놓고 부끄럼 없이 촌스러운 친구들을 볼 때면 부러워질 때가 있지 않은가. 이들이 그렇다. 대표곡이자 UK차트에서 호성적을 거둔 「We are the people」, 캘빈 해리스가 리믹스해 인기를 끈 'DNA', 동양적 터치를 살며시 입힌 「Alive」를 들어본다면 고개를 살며시 끄덕일 것을 자신한다.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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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세컨즈 오브 썸머(5 Seconds of Summer)

 

유튜브에 커버 영상을 올리며 입소문을 모으던 호주의 10대 소년들은 2013년 원디렉션 월드투어의 오프닝 공연을 장식하며 이름을 알렸다. 1년간 활동 기반을 구축한 이들은 마침내 2014년 2월, 시원한 팝 펑크 「She looks so perfect」로 메인스트림 시장을 강타했다. 밴드는 모국인 호주는 물론, 영국과 아일랜드 등에서 차트 1위를 수성하며 성공적 행보를 만들었고, 이윽고 미국에서도 적잖은 인기를 형성했다. 각국의 차트 정상을 차지한 첫 앨범 <5 Seconds of Summer>는 빌보드 차트에서도 1위에 오르며 뜨거운 반응을 입증했다.

 

인기 비결을 잘생긴 외모에 한정하기엔 음악적 기반 또한 만만치 않다. 밴드는 「She's kinda hot」, 「Money」 등 멜로딕한 팝 펑크는 물론, 「Amnesia」, 「Invisible」 등의 서정적 팝 록도 퍽 근사하게 소화해낸다. 수록곡 대부분을 멤버들이 직접 만든다는 점도 특기할 사항이다. 귀에 잘 들어오는 선율, 뛰어난 연주와 보컬로 대중을 사로잡은 이들의 나이는 이제 20대 초반. 소포모어 징크스까지 가뿐히 피해간 밴드의 질주는 거침이 없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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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티에(Gotye)

 

호주의 한 신문은 그를 “가장 영향력 있는 호주 예술인 50인”으로 뽑았다. 이는 그의 대표곡 「Somebody That I used to know」가 호주 음악 역사상 가장 성공한 노래 중 하나가 되었기 때문이다. 2011년에 발표한 이 곡은 빌보드차트에서 8주 연속으로 1위를 차지했고 55회 그래미 시상식에서 'Record Of The Year'를 받는 영광을 누렸다. 미국의 유명 뮤지컬 드라마 '글리 시즌3'에도 삽입되어 다시 한 번 노래의 성공과 위상을 확인시키기도 했다.

 

「Somebody That I used to know」는 남녀가 헤어진 후 씁쓸한 속내를 담은 가사, 그리고 독특한 뮤직비디오로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렸다. 최근 비미국 출신의 뮤지션들에게 뮤직비디오는 탁월한 홍보 전략인데, 그는 자신의 몸에 그림과 색을 채워 넣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앨범의 반수가 넘는 곡들을 완성도 높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고 있는 뚝심도 탄복할만하다. 그의 유튜브에는 핑크플로이드나 뷔욕의 뮤직비디오처럼 전위적인 실험과 상상력, 사상과 메시지가 가득하다.

 

세계 전역에서 잭팟을 터트린 <Making Mirrors>앨범은 부모님의 허름한 헛간에서 녹음되었다. 인생의 아이러니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가 억세게 운 좋은 반짝스타가 아니라는 것은 그의 음악이 증명한다. 뉴욕타임스는 '몽환적이면서도 무섭게 지적이다'라는 찬사를 날리기도 했는데 그가 발표한 앨범들은 탄탄한 완성도와 탁월한 감각으로 가득하다. 오늘의 트렌드와 어제의 역사가 혼재하고 일렉트로닉, 레게, 소울 등 다채로운 장르를 자신만의 스타일로 오리고 붙여 자신만의 환상의 세계를 펼쳐나간다. 그의 성공은 예술도 예능만큼 파급력이 있을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자, 증거기도 하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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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아터스 카이요테(Hiatus Kaiyote)

 

강렬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앨범 재킷은 그들의 음악 세계를 내비친다. 재즈, 일렉트로닉, 소울 등 다양한 장르가 뒤섞인 퓨쳐소울을 지향하는 호주 멜버른 출신 4인조 밴드 하이아터스 카이요테(Hiatus kaiyote)의 첫인상은 독특하다. 다양한 질감의 사운드와 앰비언트 소스들의 혼용은 대중적인 것과 거리를 두지만, 기본적으론 알앤비와 소울을 바탕으로 새로운 요소들을 접목했다.

 

실험적이라는 장벽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Nacamarra」는 불규칙적으로 배치된 건반과 드럼 사운드에 부드럽게 다듬어진 멜로디로 상이함을 줄여냈다. 여러 장르의 콜라주적인 작법은 색다름으로 탈바꿈 되었고 밴드의 주축이 되는 보컬 네이팜(Nai Palm)의 음색이 이질적인 음들을 하모니로 녹여낸다. 훌륭한 연주기량이 만든 진보적인 밴드 사운드의 발현이다.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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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 아젤리아(Iggy Azalea)

 

백인 여성 래퍼라는 특징으로 주목받았지만 2014년 「Fancy」로 빌보드 1위를 탈환, 그다음은 아리아나 그란데 「Problem」의 지원군으로 존재감을 터트렸다. 어느새 자국(自國) 색깔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팝 시장에 적응했다. 투팍과 미시 엘리엇으로부터 미국 남부 힙합의 영향을 받아, 타이트하고 자신감 넘치는 랩이 특징이다.

 

관심을 얻은 만큼 탈도 많았다. 비슷한 스타일인 니키 미나즈와 자주 비교되어 경쟁 구도가 생겨났고, 메인스트림 래퍼를 두고 다투는 둘의 신경전은 익히 알려져 있다. 성과가 주춤해진 상황에서 SNS 발언과 가사 대필 의혹으로 몸살을 겪기도 했다. 이미 많은 이들에게 박혀버린 비호감 이미지, 곧 들려줄 2집으로 이 판도를 뒤집을 수 있을지.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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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틀러 트리오(John Butler Trio)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존 버틀러(John Butler)를 중심으로 섀넌 버찰(Shannon Birchall, 베이스, 더블 베이스)과 마이클 바커(Michael Barker, 드럼, 퍼커션)로 구성된 트리오 밴드이다. 화려한 라이브 연주를 선보이는 잼 밴드(Jam band)로, 어쿠스틱 악기 연주 활용을 통하여 호주 밴드 특유의 색채를 표현한다.

 

'Funky tonight'은 컨트리(country)하면서도 펑키(funky)한 그들의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존 버틀러의 화려한 기타 연주와 더불어 중독성 있는 스트링 사운드가 매력적인 'Zebra'는 2004년도 'APRA(Australasian Performing Right Association) Music Awards'에서 '올해의 노래(Song of the Year)'를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하였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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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Sia)

 

1997년 첫 스튜디오 앨범 <OnlySee>를 발매하며 본격적인 싱어송라이터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영미권 밖이라는 지역적 특징과 미디어에 쉽게 노출되기를 거부하는 성향이 초반 인지도 상승을 저해하였다. 그는 얼굴 대신 노란 가발만으로 세상과 대면했다. 신비주의는 단순한 상업적 이미지 메이킹이 아닌, 시아 풀러라는 한 개인이 살아온 삶에 의한 필연적 선택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소극적 자세는 오히려 눈에 띄는 프로모션이 되어 팝 팬들 사이에서 유행을 만들어냈다.

 

2009년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를 시작으로 연이은 유명 뮤지션들과의 협업이 호응을 얻었다. 데이비드 게타의 'Titanium', 리아나의 'Diamonds' 등으로 '작곡가'로서의 위치가 먼저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그는 신스를 기반으로 한 댄스 팝에 재능을 보였고, 2014년 'Chandelier'로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린다. 일렉트로닉으로 빚은 강렬한 무드에 대중은 환호했다. 이 곡이 히트하며 시아는 작곡가로서뿐만 아니라 뛰어난 보컬리스트로서도 알려지게 된다. 2002년생의 어린 무용수 매디 지글러(Maddie Ziegler)가 등장해 아름답고도 괴기한 몸짓을 보여준 'Chandelier'의 뮤직 비디오는 현재까지 유튜브 11억 뷰를 기록했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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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임 임팔라(Tame Impala)

 

밴드 사운드의 몽환성은 국지성을 넘어 어느덧 세계적이다. 자국의 2015년 최고 아티스트(ARIA)의 영예에 이어 브릿 어워드의 '인터내셔널 팝 밴드'부문을 수상했고 미국의 평단과 대중 그리고 최근 이 밴드의 케빈 파커와 연합한 마크 론슨 등 아티스트들도 이들의 음악에 주목하고 있다. 테임 임팔라의 광팬이라는 리아나가 새 앨범의 <Anti>에 'New person. same ol' mistakes' 리메이크 곡을 수록한 것은 대세를 쥔 이들의 현 존재감이 읽히는 뚜렷한 사례가 될 것이다.

 

펑크, 소울, 신스팝 등 갖가지 음악적 요소를 묶어 그들만의 사이키델릭 틀로 빚어낸 그들 음악의 독자성은 밴드의 '힙' 사운드를 구하려는 음악인구에게는 일종의 구원이다. 느슨한 듯 강렬하며 유려한 쉼과 몰아침의 반복 속에서도 묘하게 글로벌 흡수력이 나타난다. 이러한 프로그레시브 사이키델릭 음악이 대중친화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게 놀랍다. 그러면서도 핑크 플로이드 레퍼토리가 아닌 '호주의 여신' 카일리 미노그의 'Confide in me'를 리메이크하는 걸 보면 '호주성'도 포기하지 않는다. 구미를 난타한지 50년이 넘어가는 음악 강국 호주의 자긍이 여기 있다. (임진모)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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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하고 아름다운 추억
- 김광석 20주기, 나의 노래는 나의 힘
- 봄밤의 추억 앓이
- 우수의 신호등이 켜질 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봄이 오면 들어야 할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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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포근했던 겨울이 지나가고 어느새 거리엔 봄꽃이 만발했다. 음악계에도 어김없이 봄볕이 들고 있다. 계절 특수를 노린 신곡이 쏟아지는가 하면, 「벚꽃엔딩」을 비롯한 봄의 애청곡들이 실시간 음원 순위에 재등장했다. 라디오 DJ의 플레이리스트에도 봄 향기가 가득하다.

 

시기에 맞춰 이즘에서는 올봄의 선곡을 도울 19곡을 선정했다. 발매된 시대와 장르는 저마다 다르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특히 사랑받았던 노래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여기에는 봄의 설렘과 활기부터 은근한 절망과 아릿한 마음까지 다양한 정서가 담겨있다. 순서는 발매 연도에 따라 구성했다.

 

 

백설희 「봄날은 간다」 (195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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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히트 콤비 손로원(작사)과 박시춘(작곡)이 남긴 시대의 명곡 중 하나로 그 시절 곡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세련된 감성의 노랫말과 수려한 멜로디가 압권이다. 트로트를 부르지 않던 한영애가 2003년 트로트 재해석 앨범 <Behind Time>을 만들 때 그랬듯 많은 가수가 너도나도 이 곡을 리메이크 레퍼토리로 삼은 이유는 이런 드높은 예술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봄날의 긍정성과는 작별한, 여인네의 비애와 절망감을 격조 있게 다듬은 노랫말은 후대에도 너무나 익숙하다. 고 황해의 아내, 전영록의 어머니, 티아라 보람의 조모인 백설희(2010년 작고)는 한(恨)을 내재화해 음절을 곱씹는 탁월한 표현력을 역사에 새겨놓았다. (임진모)

 


박재란 「산 너머 남촌에는」 (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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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알리는 선곡 표에 박재란의 「산 너머 남촌에는」이 빠질 수 없다. 파인(巴人) 김동환 시인의 시에 작곡가 김동현이 음을 붙인 노래는 1965년 발표된 이래 오랫동안 시적인 봄 노래의 대명사로 사랑받았다. 향토적인 봄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노랫말과 구성진 선율, 특유의 맑은 음색 덕에 「꾀꼬리」라고 불렸던 박재란의 목소리가 50년이 지나도 질리지 않는 명곡을 만들었다. 봄꽃으로 ‘벚꽃’보다 ‘진달래’가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잊지 못할 영원한 봄의 찬가. (정민재)

 

 

김정미 「봄」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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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느낌은 갖가지이다. 밝거나 화사하고 어딘가는 울렁거리고 아찔하다. 이 노래가 그렇다. 화려하거나 따뜻하지는 않지만 봄에 취한 듯 어질어질하다. 한국에서 사이키델릭을 처음으로 내놓은 신중현이 작곡하고 김정미가 노래했다. 창법은 가사처럼 원색적이다. 김정미의 꺾기는 크게 튀고 도드라진다. 안타깝게도 그 창법이 저속하다며 앨범 자체가 금지되기도 했다. 설렘을 노래하는 가사와 달리 노래 자체는 시대를 잘못 만난 비운의 작품이다. 연주가 돋보이는 신중현 버전과 레게풍의 한영애 버전도 비교해서 들으면 색다른 매력이 있다. (김반야)

 


박인수 「봄비」 (197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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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록 음악의 대부 신중현의 개척지는 록의 인접 장르  ‘소울’로도 뻗어간다. 그 산물이 원래는 ‘신중현 사단’ 1호 가수 이정화를 위해 썼으나 박인수에게 가서 제대로 주인을 만난 이 걸작이다. ‘한없이 적시는 내 눈 위에는/ 빗방울 떨어져 눈물이 되었나/ 한없이 흐르네/ 봄비!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나(내)리려나…’라는 절규의 노랫말이 전하듯 봄날의 싱그러운 햇살 혹은 설렘의 정서와는 대척에 위치한 절절한 울부짖음이 전체를 관통한다. 비탄의 봄날을 맞이한 사람들을 위한 처절한 비가(悲歌)인 동시에 ‘한국 소울’의 완성본이라는 예술적 영예도 수확한다. 올해 흥행 영화  <내부자들>에서 이병헌이 차 안에서 흥얼거리는 트로트풍 「봄비」 (이은하 노래)는 1979년 동명의 MBC 드라마의 주제곡으로 전혀 다른 곡이다. (임진모)

 

 

박인희 「봄이 오는 길」 (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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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노래 목록에서 빠질 수 없는 스테디셀러다. 산들산들한 휘파람과 따뜻한 화음이 어우러지며 봄의 아름다움을 소리로 숨 틔운다. 1970년대 포크송의 정점에 서 있던 박인희의 대표곡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혼성 포크 듀오 「뚜와에무와」로 활동했고 라디오 프로그램 DJ로 사랑받기도 했다. 올해는 더욱이 청아한 그의 목소리를 35년 만에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갑자기 은퇴 선언을 해 사망설까지 나돌던 그가 다시 컴백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봄이 오는 소식만큼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김반야)

 


장미화 「봄이 오면」 (19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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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추웠던 겨울은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내 님도 나를 찾겠지…’ 도입 가사처럼 「안녕하세요」로 대표되는 1970년대의 인기 가수 장미화는 ‘님의 계절’ 봄을 허스키하나 시원시원하게 노래한다. 얼마 전 TV에서 장미화 미니 특집을 할 때 내건 제목도 바로 「꽃 피는 봄이 오면」이었다. 기성세대가 봄이 되면 이 노래를 떠올리듯 시즌 송은 「벚꽃 엔딩」 훨씬 오래전에 존재했음을 말해준다. 어른들이 더 뚜렷이 기억하는 부분은 ‘헬로아 헬로아 봄날은/ 헬로아 헬로아 우리들에게/ 흠마 흠마 흠마 흠마 흠마’ 하는 경쾌한 코러스 대목. 조금은 요상하게 언어를 배열한 것은 여대영 작곡으로 알려진 이 곡이 실은 네덜란드의 혼성 듀오 ‘마우스 앤 맥 닐’의 노래 「헬로아(Hello-A)」를 번안, 원곡 코러스를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임진모)

 


시인과 촌장 「진달래」 (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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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4월 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재해석한 시인이 마주한 봄꽃 노래는 참 슬프다. 하덕규 특유의 한음 한음 절제된 여린 음성과, 그 여백을 타고 흐르는 함춘호의 담담한 기타와 한송연의 다채로운 건반 연주는 이 노래의 감성을 극대화한다. 4월의 화사한 봄에 역설적으로 서늘하고 쓸쓸한 늦가을이 느껴진다.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이 서정적 엘레지의 후렴처럼 채 피지 못하고 사그라진 4월의 꽃들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슬픈 가슴에 희망의 꽃이 다시 피어날 수 있기를.... (윤영훈)

 


김현철 「봄이 와」 (Feat. 롤러코스터)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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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와 퍼커션이 찰랑거리는 모양새가 리드미컬하면서도 아기자기하다. 기분 좋게 힘을 내 움직이지마는 어딘가 찌뿌드드한, 나른하게 활기가 피어나는 봄의 장면을 사운드가 바로 그려낸다. 무거운 눈꺼풀에 눈 뜰 수가 없다는 가사도 계절의 순간을 알맞게 묘사하기는 마찬가지. 가볍고 간편한 구성으로 계절감을 잘 포착해낸 덕분에 노래는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더 나아가 아티스트의 대표곡이라는 위치에까지 올랐다. 봄의 기운을 사로잡기엔 이 곡만으로도 충분하나 노래의 운치를 좀 더 길게 느끼고 싶다면 앨범 트랙리스트 상에서의 다음 순서에 있는 연주곡 「봄이 와」를 연속해 듣는 것도 좋다. (이수호)

 


임현정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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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근한 봄비가 내릴 때 떠오르는 곡. 만남과 헤어짐을 서로 다른 계절 비에 빗대어 매년 이즈음 찾아 듣게 했다. 순종적이고 애달픈 노랫말은 봄날에 설렘의 싹을 틔우고, 추운 겨울날 주인으로부터 버려진 화분을 연상하게 한다. 가수 임현정은 이를 덤덤히 불러내 이별에 순응한 듯 슬픈 느낌을 준다.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한 그는 캔커피 CF에 쓰인 「첫사랑」으로 인기를 끈 이후 2003년 이 곡으로 히트를 친다. (정유나)

 

 

김윤아 「봄이 오면」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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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의 봄 노래하면 단연 「봄이 오면」이 아닐까 싶다. 밝은 기조를 띠며 봄을 찬양하는 여타 다른 곡들과 달리, 「봄이 오면」은 단조로 전개되어 한 층 톤 다운된 분위기가 특징적이다. 사실 이 노래는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는 겨울에 어울린다. ‘나룻배에 가는 겨울 오는 봄 싣고’ ‘봄이 오면 봄바람 부는 연못으로 당신과 노 저으러 가야지’ 앙금을 묻고 봄을 기다리는 자세는 기타와 피아노의 어쿠스틱 편곡과 김윤아의 담담한 목소리로 진중함을 더한다. 영화 「봄날은 간다」 OST로도 유명한 동명의 곡 「봄날은 간다」와 함께 즐길 수 있는 희망적인 가사의 노래. (정연경)

 

 

이소라 「봄」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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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에겐 봄마저 고통이다. 벚꽃도, 달콤한 설렘도 없다. 그저 떠나간 ‘그대’를 원망하며 온종일 생각할 뿐이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도, 겨울이 가고 봄이 또 와도 기다리겠다며, 그리 쉽게 잊지 않겠노라고 나직하게 노래하는 목소리가 더없이 애달프다. 봄이 와도 여전히 마음 시린 당신에게 건네는 이소라식 위로. (정민재)

 


BMK 「꽃피는 봄이 오면」 (200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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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뚝 선 나무조차 빨간 볼 봄 처녀로 분하게 만드는 꽃이 만개해 마음과 하늘이 핑크빛 물들 때에도, 누군가는 시련과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간다. 찬란하지만 찰나 같은 봄날의 속성은 사랑의 그것과 역설적으로 맞닿어있다는 소울 대모 BMK의 혼신을 담은 메시지는 그렇기에 상처받고 어쩌면 가슴에 패인 자국마저 잊어버린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것이 아닐까. 봄은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그런 계절이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큰 상념으로 남아 있기에. (이기찬)

 


에피톤 프로젝트 「봄날, 벚꽃, 그리고 너」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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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하기에 비교적 쉬운 피아노곡을 찾아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제목일 것이다. 이 곡은 단순하지만 명료한 멜로디로 오랜 시간 사랑받아왔다. 왈츠 리듬이 품고 있는 밝은 성격은 봄의 시작을 묘사하기에 제격이다. 그렇게 왼손의 3박자에 맞춰 재잘대던 봄의 소리는 마이너의 전조로 인해 분위기 변화를 깨운다. 겨울, 그리고 또다시 봄. 순환이다. 그러나 곡 내내 지속되던 동적인 음형은 다시 돌아온 계절에서 다른 음역의 다른 음향과 함께 이전과 다른 성질로 변한다. 그때의 봄과 지금의 봄이 같을 수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 "봄날, 벚꽃, 그리고 너"는 깊은 감정선과 섬세한 터치로 채색된 에피톤 프로젝트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깨끗한 감성을 보여준다. 벚꽃이 왔다, 가는 풍경이 보인다. (홍은솔)

 

 

루시드 폴 「봄눈」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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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봄은 연인들을 위한 계절이고 「봄눈」은 그중에서도 오래된 연인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처음과 같은 설렘은 덜 하지만, 여러 계절을 함께 겪으면서 서로에 대한 진심을 확인한다. 편안함은 사랑의 또 다른 말. 떨어지는 벚꽃잎을 ‘봄눈’으로 비유하여, 봄의 따듯한 감성에 ‘눈’의 포근함이 더해진다. 기교 하나 없는 목소리와 단조로운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에 잠시 눈을 감고 귀의 안락함을 즐긴다. (현민형)

 


어반자카파 「봄을 그리다」 (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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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사로운 볕이 드는 계절에 듣기엔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어반자카파 첫 번째 정규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꽃 냄새가 향기로운 계절이 누구에게나 따뜻하지 않음을 이야기한다. 봄과 상반된 이미지를 담은 멜로디는 설렘보단 그리움을 불러오고, 차분하게 연주되는 피아노 반주가 감성 짙은 보컬에 힘을 싣는다. 만발한 벚꽃이 도리어 슬퍼지는 아이러니를 불러일으킨다. 우울함을 가득 머금은 봄이 지나간 사랑을 위로하는 곡. (박지현)

 


버스커버스커 「벚꽃엔딩」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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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왔다 가고 추위가 왔다 가면 노래는 차트 위에서 조용히 일어난다. 음악의 유통기한이 짧다는 요즘의 시장에서 죽지도 않고 3, 4월만 되면 살아난다고 해 곡은 심지어 벚꽃 좀비라고까지 불린다. 봄의 사령술사 장봄준이 만든 이 말랑말랑한 어쿠스틱 팝은 단연 2010년대 가요계의 베스트 시즌송이다. 많은 사람이 모인 거리 변 카페의 스피커, 흩날리는 벚꽃 잎들 아래서 왼쪽과 오른쪽을 나눠 낀 커플의 이어폰, 휘날리는 봄바람을 뚫고 혼자 걸어가는 솔로의 헤드폰, 그 누구를 가리지 않고 「벚꽃엔딩」은 이맘때 모든 이들의 귀 바로 앞에 등장한다. 내년 봄에도, 내후년 봄에도 곡은 널리 울려 퍼질 테다. 만일 드라마 <응답하라 2012>가 제작된다면 첫 번째 삽입곡은 바로 이 노래다. (이수호)

 


브로콜리 너마저 「봄이 오면」 (2008)/ 「잔인한 사월」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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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잔인한 달이다.” T. S. 엘리엇의 시(詩)에서도 딥퍼플의 노래에서도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 와서 이 말의 의미가 봄의 생기를 잠식하며 서늘하게 다가온다. 2008년 1집에서 단순한 멜로디와 뽕끼 가득한 로파이 사운드를 타고 계피는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듯 그렇게 가슴은 설레고, 흩날리는 새하얀 꽃잎 속에 다시 너를 기다리네’라며 절망 너머 희망을 노래했건만, 몇 년 뒤 덕원은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듯 가슴 설레기엔 나이를 먹은 아이들에겐 갈 곳이 없어’라며 길 잃은 청춘들의 잔인한 4월을 무덤덤하게 읊조린다. ‘약속된 시간이 끝난 뒤엔’ 열심히 했으니까 ‘뭔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갈 곳이 없는 청춘들에게 이 노래는 「벚꽃엔딩」의 낭만보다 더 가슴을 후벼 파는 공감이 서려 있다. 2016년 우리들의 4월은 분명 잔인한 계절이다. (윤영훈)

 


HIGH4, 아이유 「봄 사랑 벚꽃 말고」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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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발매 당시 아이유를 등에 업은 신인그룹 하이포의 데뷔곡은 음원 차트를 점령하며 단숨에 봄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어쿠스틱 기타가 주를 이루는 단출한 구성이지만 예쁜 멜로디와 아기자기한 노랫말은 봄꽃 그 자체다. 봄바람이 불어오는 이맘때쯤 생각나는 「벚꽃엔딩」의 대항마로 꾸준히 언급되는 곡은 군더더기 없는 구성에 산뜻한 아이유 음색의 조화가 핑크빛 계절을 감싼다.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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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프린스(Prince), 세계가 허락한 단 한 명의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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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많은 왕이 있다. 하지만 왕자는 단 한 명만 존재한다.” 프린스가 헌액된 2004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앨리샤 키스는 이 말로 헌사의 첫 운을 떼었다. 팝 세계가 허락한 단 한 명의 왕자, 프린스는 수많은 명작으로 많은 이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했다. 5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남겼던 작품들 가운데서 스무 곡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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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na be your lover (1979, Prince수록)

 

프린스의 이름을 처음으로 알린 노래. 펑크(funk)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이 노래에서 그는 비지스의 영향을 받아 가성으로 곡을 애무하고 위무한다. 'Forget me knots'로 유명한 흑인 여가수 패트리스 루센을 위해 작곡했지만 거절당한 'I wanna be your lover'는 당시 미국의 클럽에서 먼저 인정을 받아 프로펠러를 달고 1979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11위를 기록했고 알앤비 차트에선 정상을 차지했다. 프린스가 광기를 드러내지 않은 비교적 평범한 디스코 펑크(funk) 곡이지만 그의 위대한 역사가 시작된 것임을 알린 명곡이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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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feel for you (1979, Prince수록)

 

소울 여가수 샤카 칸이 1984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3위를 차지한 'I feel for you'가 그래미에서 최우수 알앤비 노래 부문을 수상했을 때 그 트로피의 주인공은 바로 프린스였다. 그가 1979년에 발표한 원곡을 샤카 칸이 멋들어지게 리메이크했기 때문. 프린스의 오리지널은 디스코와 펑크의 중간 접점에서 중용의 미덕을 발휘한 흙속의 진주였다. 이 노래의 진가를 알아본 많은 가수들, 매리 웰스와 마이클 잭슨의 누나 레비 잭슨 그리고 포인터 시스터스 등 여러 아티스트가 리메이크했지만 래퍼 멜르 멜과 스티비 원더가 하모니카로 조력을 보탠 샤카칸의 버전으로 드디어 빛을 보았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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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rty mind (1980, Dirty Mind 수록)

 

1980년도에 발매된 세 번째 정규앨범의 타이틀이다. 펑크(funk)와 알앤비 장르를 바탕으로 그의 독특한 정신세계를 가감없이 표현한 곡으로 빌보드 알앤비 싱글차트에서 65위를 차지했다. 음란한 마음을 뜻하는 'Dirty mind'라는 제목과 '우리가 어디에 있던 누가 우리 주변에 있던 상관없어,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난 그저 네가 아래에 눕길 바랄 뿐이야' 라는 가사내용은 본능에 충실한 그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보컬과 사운드의 연합은 그러한 메시지를 한층 강화한다. 리듬을 타며 반복되는 신디사이저의 멜로디,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여성이 부르는 듯한 매혹적인 미성은 외설스러움을 더욱 강조하고 있다. 중반부를 지나면서 노래는 절정에 이른다. 보컬의 부르짖음과 동시에 커지는 기타리프의 확장은 인간 본연의 쾌감을 자아낸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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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you were mine (1980, Dirty Mind 수록)

 

<Dirty mind>의 수록곡으로 한때 신디 로퍼가 커버하기도 했던 'When you were mine'. 노골적인 첫 번째 트랙 'Dirty mind'의 거침없던 프린스는 어디 갔을까. 뒤이어 등장하는 남자는 180도 변했다. 돈이든 옷이든 모든 것을 헌신했던 연인의 외도에 쿨하게 'I don't care'로 받아치다가도 돌연 순애보로 돌변해 고백한다. 요동치는 마음을 표현할 길은 음악뿐 중반부를 넘어 설쯤 두서없이 연주되는 신시사이저는 마치 요란한 감정을 그려낸 듯 자유분방하다. 베이스와 드럼으로 만든 리듬 위에 신스사운드를 맛깔나게 곁들인 곡은 사차원 아니 그 이상의 세계관을 가진 뮤지션의 흔적이 짙게 베었다. 가끔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괴기했지만 그래서 더 특별했던 그는 보라색 빗속으로 사라졌다.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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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 me, baby (1981, Controversy수록)

 

며칠 전만 해도 그는 지구상에 존재한 가장 섹시한 남자였다. 영국의 가디언(The Guardian)지는 '프린스는 섹스 그 자체였다'라며 그를 회고했고, 심지어는 유명 포르노 사이트 폰허브(Pornhub)는 '하늘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남자를 데리고 갔다'라며 Porn의 P를 프린스를 상징하는 보라색 마크로 교체하며 애도를 표했다. 157cm의 왜소한 체구와 우람한 근육 하나 없는 그가 세계적인 섹스 심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는 여성을, 섹스를 다룰 줄 아는 뮤지션이었기 때문이다. <Controversy>에 수록된 'Do me, baby'에서 그는 부드럽게 들이미는 신시사이저와 피아노 위에 전혀 야하지 않은 단어와 문장들로 야한 말을 쏟아내는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감미롭고 고급질 수 있을까. '프린스는 지구상의 모든 여자를 꼬실 수 있다.'라는 말은 과장 섞인 허풍이 아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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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1982, 1999 수록)

 

<Purple Rain>으로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기 전인 1982년에 발표한 앨범 <1999>의 타이틀곡이다. 'California dreamin''으로 유명한 포크 그룹 더 마마스 & 더 파파스의 넘버원 싱글 'Monday Monday'의 도입부에서 힌트를 얻은 신시사이저 건반 리프가 유명한 '1999'는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경쟁에 대한 공포를 세기말 분위기에 투영했지만 프린스가 주조한 펑키(funky)한 분위기에 그런 진지함은 희석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사람들은 '1999'를 좋아했고 필 콜린스 역시 자신의 히트곡 'Sussudio'에서 '1999'의 건반 연주를 따라하며 프린스의 팬임을 드러냈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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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le red Corvette (1983 수록)

 

팝의 영원한 왕자님이 데뷔 때부터 마냥 잘나갔던 것은 아니다. 1979년 'I wanna be your lover'로 처음 성공을 맛본 뒤 프린스는 3년 넘게 차트에서 침묵했다. 짧지 않은 정적은 1983년 'Little red Corvette'가 빌보드 싱글 차트 6위에 오름으로써 비로소 깨졌다. 노래는 프린스 최초의 빌보드 톱10 싱글이었으며 이후 프린스가 대중음악계의 슈퍼스타로 성장하는 디딤판이 됐다.

 

노래의 포인트는 후렴이다. 읊조리듯 낮게 부르는 버스(verse)를 지나 후렴에서 목소리가 커진다. 이 부분의 멜로디는 단번에 인식될 만큼 명쾌하다. 신시사이저도 선명하게 톤을 드러낸다. 간주와 세 번째 후렴에서 선두에 서는 일렉트릭 기타 연주는 곡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한다. 마지막에 자리하는 아득한 스캣 애드리브는 노래에 관능미와 간절한 뉘앙스를 부여했다.

 

선율과 편곡이 대중의 입맛에 맞았지만 'Dirty mind', 'Head' 등 이전에 발표한 노래들보다 표현이 덜 노골적이어서 많은 이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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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doves cry (1984, Purple Rain 수록)

 

<1999>로 대중에 성큼 다가간 프린스는 자전적 영화 <Purple Rain>과 동명의 앨범으로 최전성기를 맞았다. 결정타는 영화감독의 요청으로 뒤늦게 만들어진 'When doves cry'였다. 명쾌한 구성과 중독적 비트가 댄스 본능을 자극했고, 낭랑한 신시사이저는 시종일관 귀를 간질였다. 특히 평범함을 거부하며 과감히 베이스 라인을 제거한 구조가 혁명적이었다. 베이스 없이 만들어낸 근사한 댄스 리듬에 대중은 환호했다. 차트 폭발력 또한 상당했다. 노래는 프린스의 첫 번째 빌보드 차트 1위 곡이자 그해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됐고, 이후 많은 매체의 서로 다른 '가장 위대한 노래' 리스트에도 빠짐없이 이름을 올렸다. 타고난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한 시대의 명곡.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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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lamorous life (1984, 쉴라 이(Sheila E.) 곡, The Glamorous Life 수록)

 

프린스는 다른 가수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기부(?)했다. 뱅글스의 'Manic Monday', 시나 이스턴의 'Sugar walls', 마티카의 'Love... thy will be done', 알리샤 키스의 'How come you don't call me', 쉴라 이(Sheila E.)의 'The glamorous life' 모두 그가 만들어준 곡이다. 여름에도 밍크코트를 입고 다니며 돈 많은 남자를 꼬시려는 여자를 소재로 한 이 노래는 자연스런 멜로디와 리듬을 극대화한 쉴라 이의 퍼커션 연주가 찰떡궁합을 과시한 댄스 명곡이다. 재즈와 라틴 음악도 호흡하는 'Glamorous life'는 9분짜리 앨범 버전을 들어야만 프로듀서로서의 진가를 발휘한 프린스의 다재다능함을 확인할 수 있다. 프린스, 그는 존경받아야 한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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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ling Nikki (1984, Purple Rain 수록)

 

'난 니키라는 여자를 알았지/ 섹스 프렌드라고 할 수 있어/ 난 그녀를 호텔 로비에서 만났지/ 잡지를 보면서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었어...' <Purple Rain> LP의 A면 마지막 곡에는 프린스 하면 떠오르는 '외설'의 딱지가 붙었고, 이 노래를 비롯한 몇몇 퇴폐적인 노래들 때문에 티퍼 고어 여사 주도의 대중가요감시단 설립(PMRC) 법안이 통과됐다. 1980년대 대중문화 논쟁에서 거의 생필품처럼 취급된 '섹스'와 '섹슈얼리티' 소재와 관련해 빠지지 않던 곡이다.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비판도 가해지지만 프린스가 이러한 관능적 성을 노골화하고 심지어 행동으로 옮긴 것은 보수적 성적 의식에 대한 도발이라는 해석이 더 설득력을 지닌다. 이 시기부터 팝 담론을 주도하는 의제는 섹스였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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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go crazy (1984, Purple Rain 수록)

 

프린스하면 'Purple rain'이지만 같은 앨범에 히트곡 'Let's go crazy'도 자리한다. 발랄한 건반과 원초적인 보컬은 듣는 이를 미러볼 조명이 반짝이는 댄스홀로 데려 간다. 무엇보다 곡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준 것은 백밴드 더 레볼루션(The Revolution)과 함께 한 기타다. 기존 소울음악에 일렉 기타를 섞어 특별함을 높였고, 록을 선호하는 백인들까지 그의 보랏빛 음악 안에 끌어들였다.

 

화려한 에너지와 마지막에 폭발하는 구성은 프린스의 빠른 곡에서 등장하는 특징들이다. 용솟음치는 기타 연주는 후대 일렉트로 펑크(funk)에 영향을 주며 그를 많은 가수들이 존경하는 이로 기억되게 한다. 자극적인 제목과 가사로 국내에서 금지곡으로 지정되기도 했지만, 프린스의 넘버원 싱글 5곡 중 하나로 꼽힌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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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ple Rain (1984, Purple Rain 수록)

 

당대에 흑인 뮤지션들 가운데 왜 유독 그에게만 록 팬들의 편애가 잉태했는지를 생생히 말해주는 8분45초짜리의 중후한 록 대작이자 걸작이다. 앞의 싱글 'When doves cry'와 'Let's go crazy'이 모두 넘버원에 등극하면서 앨범이 한참 물이 올랐을 때 3번째 싱글로 나와 전미차트 2위에 오르는 예상 밖 기염을 토했다. 이 노래가 록 팬 베이스를 구축하면서 마이클 잭슨과는 달리 록 쪽의 성원이라는 특전이 프린스에게는 주어진 것이다. 칼 같은 프린스의 기타와 입체적인 느낌의 스네어 드럼을 시작으로 시종일관 록의 사나운 공습이 무자비하게 펼쳐진다. 흑인 알앤비와 펑크 뮤지션이 하는 곡으로 보기는 어렵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 잔혹한 반복은 거의 우기기 수준이다. “이렇게 하는데도 안 좋아할 거야?” 프린스의 매력은 이와 같은 대중모독 수준의 생고집이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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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would die 4 u (1984, Purple Rain 수록)

 

실험적인 사운드와 매력적인 멜로디로 가득한 명작 <Purple Rain>의 트랙 리스트에는 버릴 곡이 하나 없다. 'I would die 4 u' 역시 그러한 작품이다. 잘게 쪼개 놓은 심벌 비트, 뉴웨이브/신스팝 식 신시사이저 라인, 프린스는 미니멀한 베이스로 근사한 일렉트로 펑크(funk) 사운드를 구축하고, 사랑이나 신념 혹은 구도의 메시지처럼 보이는 가사에 팝 멜로디를 엮어 훌륭한 노래를 완성했다. 수록곡 라인업의 후반부에 등장해 프린스의 천재성을 확인시키는 'I would die 4 u'는 빌보드 싱글 차트 8위에 오르기도 했다. 곡의 사운드를 다음 트랙에 위치한 'Baby I'm a star'의 도입부가 이어받는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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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 life (1985, Around the World In A Day 수록)

 

'세기의 예술가 프린스'를 대표하는 상징과도 같았던 명작 <Purple Rain>이후,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그는 일곱 번째 스튜디오 앨범 <Around the World In A Day>(1985)를 세상에 내놓았다. 음반의 중심부에 위치한 'Pop life'는 너무 쉬워서 오히려 어려운 곡이다. 도입부부터 명료한 베이스 라인과 피아노 코드 워크가 규칙적으로 등장하고, 그것이 끝까지 유지되면서 외형으로는 크게 발전되지 않는 듯하다. 제목과 동명의 가사가 후렴구에서 훅(hook)을 만들지만 썩 공격적이지도 않다. 그런데도 곡에는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못 견디게 할 펑크(funk)의 호르몬이 뿜어져나온다. 기술 아닌 기술, 그만이 할 수 있는 작법일 테다. 귀를 때리는 데시벨과 끝 모르고 상승하는 전자음은 필요치 않다. '댄스 천재' 프린스는 준비 동작 하나 없이, "Dig it" 한 마디로 세계를 '팝'하게 만들었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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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 (1986, Parade수록)

 

줬다 뺏은 경우라 할까. 그의 천부적인 창작력은 수많은 다른 뮤지션에게 은총이 되기도 하였지만 'Kiss'는 이런 훈훈한 경우와는 다르다. <Around The World In A Day>가 발매되기 직전, 프린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탄생한 펑크(Funk) 밴드 마자라티(Mazarati)는 프린스에게 곡 하나를 부탁했고, 이 자비로운 스승은 그날 바로 어쿠스틱 데모를 만들어주었다. 밴드와 프로듀서 데이비드 리브킨(David Z)은 밤을 새가며 데모 버전을 완전한 악곡으로 개조하였고, 탈바꿈한 곡을 들은 스승은 자신이 만든 곡에 숨겨져 있던 잠재력에 깜짝 놀라며 결국 다시 빼앗아갔다. 이러한 웃지 못 할 탄생 비화가 숨어있는 'Kiss'는 후에 <Parade>에 수록되었고, 그의 세 번째 빌보드 넘버원 싱글이 된다. 매끈하게 정제된 앨범의 버전도 물론 좋지만, 거친 맛이 살아있는 7분짜리 Extended Version을 추천한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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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n 'o' the times (1987, Sign 'O' The Times 수록)

 

프린스는 사회참여적인 아티스트이기도 했다. 조금은 블루지한 이 펑크(funk) 넘버에는 에이즈와 약물 중독, 갱, 로켓 발사, 핵 전쟁과 같은 당대의 위험 징후(sign of the times)에 대해 관조적으로 써내린 텍스트가 담겨 있다. 묵직한 베이스, 그루비한 펑크 기타, 신시사이저로 만든 효과음으로 멋진 사운드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가사까지 함께 만들어낸 셈이다. 프린스의 방대한 디스코그래피 가운데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씨디 두 장짜리 마스터피스, <Sign O The Times>의 포문을 이 뛰어난 싱글이 연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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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f I was your girlfriend (1987, Sign 'O' The Times 수록)

 

레드와 블루를 섞은 퍼플처럼. 여성과 남성을 뒤섞은 '양성 젠더'는 프린스에게 가장 두드러지는 색깔이다. 줄곧 '러브 심볼'이나 파격적인 외모를 선보여왔던 그지만 이 노래는 아예 여성 자체가 되어버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옷을 입혀주고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지극히 여성스러운 가사를 고음과 교성으로 노래 한다. 사실 외향의 성(性)을 바꾸는 것 보다 보컬의 색을 바꾸는 것이 더 어려울 것이다. 그는 전자적인 장치로 자신의 성대의 성을 완전히 바꿔버렸고 덕분에 이 노래에서는 독특한 야릇함과 교태가 가득하다. 이 노래를 정말 여자가 불렀으면 어땠을까. 이런 궁금증은 1994년 TLC가 2집 <CrazySexyCool>에서 풀어준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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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 got the look (1987, Sign 'O' The Times 수록)

 

롤링 스톤 선정 역대 최고의 앨범 500선 중 93위에 오른 <Sign 'O' The Times>의 두 번째 장을 열며 싱글 차트에서 가장 선전한 전형적 미니애폴리스 사운드 곡. 기계적 드럼머신에 대비되는 인간적 퍼커셔니스트 쉴라 이, 곡을 함께 영롱하게 이끌어나가는 보컬리스트 쉬나 이스턴(Sheena Easton) 둘 다 프린스와 한 때 염문설을 뿌린 여성들이다. 음악적 천재성을 내면에 잠식시키지 않고 맑은 하늘에 뜬 무지개처럼 항시 주위에 흩뿌린 그이기에 맑은 날이든 보랏빛 비 내리는 날이든 불쑥 떠오를 것 같다. 편히 쉬시길.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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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1992, Love Symbol 수록)

 

이름대로 산다고 했던가. 제목처럼 이 노래는 1993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7위를 기록했다. 1960년대 소울 가수 오티스 레딩과 칼라 토마스의 듀엣곡 'Tramp'를 샘플링한 '7'은 신곡이었지만 마치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은 멜로디로 대중을 포섭했다. 그의 다른 노래들처럼 범상치 않은 코드워크를 가지고 있지만 친숙하게 다가가는 그만의 작곡, 편곡 문법은 '7'에서도 고스란히 꿈틀댄다. 프린스의 음악은 살아있는 생명체이며 깨어있는 소울이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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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 (1994, The Gold Experience 수록)

 

1993년 어느 날 팝의 황제는 뺨에 'SLAVE'를 적고 대중 앞에 나타난다. 그는 거대 음반사와 법정공방을 다투며 자신을 노예로 표현했다. “워너 브라더스는 내 이름을 빼앗아 갔다. 그들은 '프린스'를 이용해 돈벌기 바빴고, 난 그들의 돈줄이나 다름없었다.” 아티스트의 독립성과 자유를 외치던 그는 자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음할 수 없는 기호'로 이름을 바꾼다. 여성기호와 남성기호를 합친 듯한 이 상징('러브 심볼'이라고도 불린다.) 하에 발매된 첫 싱글이 바로 'The most beautiful girl in the world'이며 이 곡은 빌보드 싱글차트 3위의 쾌거를 이뤄낸다.

 

느린 템포와 서정적 가사, 그리고 듣기 좋은 멜로디는 완벽한 발라드의 공식이 아닐까. 기타와 건반 위를 유려하게 훑는 팔세토 창법은 물론, 곡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저음 보컬은 가사에 진중함을 더하며 매력을 배가한다. 사실 아름다운 상대를 찬양하는 이 노래는 프린스가 사랑한 댄서 메이트 가르시아를 향한 세레나데지만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드러내고, 매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여성들을 뮤직비디오에 등장시키며 감동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도 했다. 외적 아름다움이 아닌, 여성 그 자체를 사랑한 프린스의 희망적인 러브송.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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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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