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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과 소리에 대한 다각적 음미 〈웨더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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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쯤 음악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매일 기계적으로 신보를 모니터링해야 하는 일상은 잠시라도 음악을 배제하고 싶은 욕망을 품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노래라도 평론을 작성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몇 번이고 들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음악이 물리는 순간이 부정기적이지만 반드시 당도하곤 한다. 직업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이 부족하며 사치스럽고 맹랑한 발상이란 것을 안다. 이처럼 나름대로 반성을 하긴 해도 음악에서 격리되고자 하는 마음은 늘 좀스럽게 꿈틀댄다. 직업 탓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계속되는 청취에 진력나 투덜거리면서도 기분 전환을 위해 항시 또 다른 청취를 갈구한다는 것이다. 이때 위로를 구하려는 대상은 음악이 아닌 소리다. '머리를 맑게 해 주는', '힐링', '휴식' 같은 표현을 타이틀로 소유한 '자연의 소리' 음반을 찾는다. 창작자의 예술적 만족감이나 감상자들의 기호 등을 감안한 가공된 퍼포먼스, 체구를 키우고 일정한 높이로 마스터링된 음악보다 오히려 계산되지 않은 소리에서 모종의 해방감을 느끼곤 하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을 받는 것도 직업 탓일 테다. 또한 자연에 나가 있다는 생각도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연의 소리는 그야말로 쉼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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믹스클라우드의 <웨더 리포트> 1회 페이지. 방송은 총 13회까지 진행됐다.

 

작년 8월부터 12월까지 진행된 뮤지션 김지연의 방송 <웨더 리포트(Weather Report)>(아카이브 페이지)는 반가움과 쉼을 모두 만족했다. 김지연은 2014년 3월 '십일(11)'이라는 예명으로 데뷔 EP<11>을 발표한 바 있다. 이 앨범에서 노랫말과 편곡으로 화자의 심정이나 어떠한 정경을 부각했던 그녀가 이번에는 특정 지역의 소리를 전하는 스트리밍 방송으로 자연의 풍경을 전달했다. 이 방송은 청각 체증을 호소하며 산천초목의 배경음악을 탐내는 음악 평론가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화제가 됐다.

 

그녀의 방송은 매주 금요일 새벽 다섯 시에 송출됐다. 하지만 부지런함이 생방송 시간에 상응하지 못하는지라 밤, 정확히는 자정을 넘기고 잠들기 전에 지난 방송의 녹음본을 듣곤 했다. 청취 형태는 음원사이트에 등록된 '자연의 소리'를 취침용 BGM으로 틀어 놓을 때와 동일한 셈이었다. 고즈넉한 가운데 울리는 새소리, 풀벌레들 울음소리, 빗방울이 지면과 잎사귀에 떨어지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등은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전경을 선사한다. 때문에 도시 한복판에 있다가 한순간에 한산한 곳으로 이동한 듯한 기분이 든다. <웨더 리포트>가 담아내는 자연 속 소리는 안락함을 형성했다.

 

모든 방송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먼저 받아들인 정보가 감각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듯 6회 'Graveyard at dawn'은 송출 위치를 묘지 앞으로 잡았다는 사항 때문에 벌레들이 내는 소리가 평소와 달리 스산하게 느껴졌다. 7회 'Wind by window'에서 불규칙하게 나타나는 바람 소리는 적막함을 공유하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는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의 영화에서 접할 법한 불길한 사운드를 연상시켰다. 12회 'Urban hiss: Interval ear training'에서 밀물과 썰물처럼 들어섰다 빠지기를 반복하는 기차 소리는 도시의 차가움, 동일한 모습을 반복하는 현대사회의 무미건조함 같은 인상을 머릿속에 들어서게 한다. <웨더 리포트>가 채록한 일련의 소리들을 통해 우리가 듣는 음(音)은 지역, 정보, 개인의 경험 등과 연관을 맺으면서 깊고 다변화되는 감상을 유도한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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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은 방송을 준비하면서 쓴 글과 촬영한 사진들을 엮어 소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자연, 혹은 일상에서 들리는 소리의 그런 기능 및 효과는 대중음악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푸른하늘의 '겨울 바다' 도입부에 자리한 바람 소리는 청취자에게 겨울 바다의 차가운 공기를 전달해 주며, 여행스케치의 '별이 진다네'에 시종 깔리는 개구리,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지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을 증대한다. 동물원의 '시청 앞 지하철역에서'에 흐르는 기차 소리는 노래 속 남녀 주인공들의 만남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결국 서로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사정을 암시한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Money'와 'Time'은 각각 금전출납기를 열고 닫는 소리와 괘종시계, 초침 소리를 통해서 노래의 주제를 압축해 표현했다. 이렇듯 주변의 소리는 음악의 운치를 더하거나 노래가 지닌 논점, 심상을 선명하게 연출하는 역할을 한다.

 

여기에서 이런저런 물음이 든다. 그렇다면 동물이나 곤충, 기후, 생활에 존재하는 크고 작은 물체들이 내는 소리는 음악에서 부대 장치로서의 임무만 수행할 뿐인가? 소리가 주체가 되는 음악은 나올 수 없는 것일까? 이런 소리들이 서로 어울림으로써 우연적으로 멜로디, 화성, 리듬을 만든다면, 또는 이에 준하는 요건을 충족한다면 음악으로 규정할 수 있을지 하는 의문이 피어오른다. 개인적으로 현재로서는 확답을 내리기가 어렵다. 이 질문들에 대해서는 더 지켜보고 고민해 봐야 할 듯하다. <웨더 리포트> 같은 필드 레코딩 작업이 현재보다 더 많아지고 사람들의 관심도 증가한다면 새로운 인식이 차츰 생겨날 것이다.

 

김지연의 방송은 통상적인 음악 규범에서 벗어난 색다른 음의 행렬이며, 주변 환경의 소리를 특별하게 마주하는 청각 체험관이었다. 더불어 어떠한 공간을 간접 경험하는 매개, 특정 지역의 풍광을 연상하게끔 하는 색다른 형태의 앰비언트 작품으로서도 독자성을 띤다. 실시간으로 제작물을 선보이는 방식은 작품 활동의 대안적 포맷으로도 가치를 갖는다. 많은 이에게 생소한 사운드아트의 전파자로서도 <웨더 리포트>는 분명 흥미로운 공작이었다.

 

2016/05 한동윤(bionicsou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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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재즈페스티벌 - 5월의 어느 밤, 별을 보고 별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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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캡, 선글라스를 관통하듯 작렬하는 태양을 원망하며 2시경 주 무대인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May Forest)에 느지막이 도착하니, 이미 소위 말하는 돗자리 명당은 가득 차있었다. 그 무렵 시작한 밴드 혁오의 무대, 특유의 어눌하고 수줍음 가득한 무대 매너는 어디 가지 않았으나 관객들의 환대는 기대 이상이었다. 「와리가리」, 「위잉위잉」, 「공드리」, 「멋진 헛간」 등 유명곡들은 재즈 페스티벌과는 약간의 간극마저 느껴졌지만 나름 환희로운 ‘떼창’을 유도해냈다. 곧 발표할 신보에 수록될 탄탄하고 다양한 사운드의 곡들까지 소개하며 쌓아온 연차를 증명한 그들은 어느새 페스티벌에 제격인 밴드로 성장해있었다. 다만 무대 중간중간 “너무 덥지 않나요”라며 더위에 지친 듯 보인 프론트맨 오혁의 모습에 되레 미안해지는 관객들. 최소한 무대에라도 예방책을 마련해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피어나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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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에 걸친 혁오 공연이 끝나고 재빨리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이달 신보<12>를 발표한 핫 가이 빈지노가 소속된 재지팩트의 공연이 체조경기장(Sparkling Dome)에서 이미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인지도가 높은 거물급 아티스트들로 수놓아진 공연들을 하루에 담아냈기에 시간이 겹침은 어쩔 수 없었다. 실내 공연장에 들어서니 놀랍게도 스탠딩을 비롯해 객석은 거진 꽉 들어서 있었는데 무더위를 피하면서 공연을 볼 수 있는 일석이조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빈지노는 밴드 사운드마저 뚫고 나오는 돌출적 래핑과 보컬로 특유의 에너지를 관객에 여실히 전달해냈다. 「Up all night」, 「Boogie on & on」 등 재지한 면모를 가지고 있던 곡들에 록 터치를 가해 편곡해온 그의 역량은 공연장을 흡사 빈지노 콘서트를 떠올리게 하듯 떼창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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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주 무대로 돌아와 진행된 재즈 보컬리스트 커트 엘링(Kurt Elling)의 쿼르텟 무대. 「Nature boy「등 정통 재즈 넘버부터 자코 파스토리우스(Jaco Pastorious)가 작곡한 펑키(Funky)한 곡들, 작년 발표한 본인의 앨범 <Passion World>의 수록곡까지 어우르며 이번 페스티벌 중 가장 「정통 재즈 공연「에 가까웠다는 감상을 수반했다. 초반부 합을 많이 맞춰보지 않은 듯 박자 궤도를 이탈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보여주었으나, 점점 무대에 적응하며 두왑 (Doo-wop), 비밥(Bebop) 등 그의 목소리를 충분히 느끼는 시점에서 장점들이 드러났다. 드러머가 즉흥적으로 주조해낸 다양한 리듬, 선율을 그대로 재연해내던 커트 엘링의 스캣(Scat)이 공연의 하이라이트. 그는 말 그대로 음표 위를 자유로이 유영하며 무대를 즐기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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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LA 출신 밴드 빈티지 트러블(Vintage Trouble)은 비교적 선선하게 느껴졌던 실내 체조경기장 기온을 적어도 LA 해변가의 그것으로 대체할 만큼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밴드는 작년 여름 발표한 <1 Hopeful Rd.> 앨범 수록곡 위주로 세트리스트를 구성해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펑카델릭(Funkadelic),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Earth, Wind & Fire) 등이 스쳐 지나갈 만큼 무대를 압도하는 월드 클래스 급 장악력을 보여주었다. 흡사 대형 집회를 주도하는 교주인 양 관객들을 들었다 놓기를 반복하던 프론트맨 타이 타일러(Ty Taylor)의 회색빛 슈트가 땀 범벅이 되어갈 때, 관객들은은 밴드가 선사하는 리듬에 심장을 공명시키며 함께 호흡해나갔다. 공연이 절정으로 나아가며 경호원들의 제지를 뚫고 관객 속으로 다이빙하던 그의 모습은 ‘록스타’라는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감동을 선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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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드 스테이지 핸드볼 경기장(Pink Avenue)에서 진행된 공연들은 잔잔한 샹들리에 조명 아래 펼쳐지며 여심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차세정의 솔로 유닛 에피톤 프로젝트는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 앞에서 특유의 살얼음판 같은 감정선을 차분히 걸어나가는 보컬로 울림을 선사했다. 페스티벌에 맞게 템포를 높인 그는 「선인장」, 「유채꽃」, 「새벽녘」 등의 대표곡을 목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살뜰히 전달해내 박수를 유발했다. 이어 등장한 뉴욕 출신 포크 록 싱어송라이터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 세션을 대동하지 않고 피아노, 통기타 단출한 반주에 맞춰 대표곡 「Hallelujah」 등을 부른 그는 한국 관객의 열기에 놀라 연신 환호를 반복했다. 이미 10대 후반에 커밍아웃한 그는 “한국 ‘남자’들은 정말 섹시하다.”고 말하는 등 공연에 소소한 재미를 더했다. 공연 후반부 소환된 절친한 마크 론슨(Mark Ronson)의 피아노 반주에 맞춘 대표곡 「Out of the game」이 하이라이트. 자연스레 관객의 환호를 이끄는 멋스러운 베테랑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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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볼 경기장을 뒤로하고 다시 찾은 주 무대, 수식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재즈 기타 거장 팻 매스니의 무대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재작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진행된 팻 메스니 유니티 그룹(Pat Metheny Unity Group)의 <Kin (<-->)> 앨범 발매 투어 이후 1년 반만의 내한 공연. 비록 유니티 그룹 멤버 중에서는 작년 영화 <버드 맨>음악감독으로 활약한 드러머 안토니오 산체스(Antonio Sanchez)만 대동했지만 피아니스트 그윌림 심콕( Gwilym Simcock), 베이시스트 린다 오(Linda Oh) 등 새로운 얼굴이 합류해 걱정을 덜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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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제작한 피카소 기타를 들고 나온 팻 메스니의 솔로 무대 어쿠스틱 세트로 시작한 공연은 세션과 합을 맞추는 히트곡 「So may it secretly begin」, 「Last train home」, 「Minuano」 등이 이어지면서 절정으로 치달았다. 시간은 꿈결 같이 지나갔고 앙코르곡 「Are you going with me?」가 연주되는 시점에서, 가까이 스탠딩 석에서 감미로운 선율과 입 맞추던 관객이든, 맑은 여름밤 속삭이듯 반짝이는 별 아래 누워 멜로디를 한 가득 음미하던 관객이든 그 순간만큼은 평등히 행복했을 테다.

 

우리나라 페스티벌 중 유일하게 흑자 수익구조를 영위하고 있는 서울재즈페스티벌, 조금은 과도하게 느껴지던 여러 수익형 부스들의 범람과 종종 시작이 지연되던 공연들, 주 무대를 제대로 뒤덮지 못했던 사운드 등 문제점은 머릿속에 맴돌았으나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도심형, 가족형 페스티벌을 지향하며 무엇보다 ‘편리함’에 기반해 양질의 무대를 제공하는 페스티벌, 관객들이 제대로 즐겼다면 비교적 비싸다고 소문난 티켓 가격이 아깝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좋은 음악은 사람들을 움직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사진 제공 : Private Curve

2016/06 이기찬(geechan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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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UMF), 올해도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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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20여 개 국가에서 개최되고 있는 최대 규모의 일렉트로닉 뮤직 페스티벌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Ultra Music Festival)>이 금년 한국에서 5주년을 맞이했다. 여타 비슷한 갈래의 페스티벌들과는 차별화되는 막강한 라인업으로 국내 일렉트로닉 뮤직 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속칭 <UMF>는 올해도 그 기대에 걸맞은 아티스트들을 초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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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송파구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울트라 뮤직 페스티벌 코리아 2016>은 이전 2일 동안 진행되었던 것과는 달리 총 3일간 펼쳐졌다. 후덥지근한 햇빛과 비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1년을 기다린 관객들은 축제를 즐기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잠실에 도착했다. 6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약 100여 개 팀의 DJ와 15만여 명의 관중이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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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는 '울트라 메인 스테이지', '라이브 스테이지', '언더그라운드 스테이지', '매직 비치 스테이지' 총 4개의 스테이지로 구성되었다. 공연 첫날, '매직 비치 스테이지'의 공연이 장비 문제로 인해 약 세 시간 동안 중단되는 사고와 더불어 음향 문제로 인해 메인 스테이지의 피날레를 장식하던 마틴 게릭스가 마지막 곡을 끝마치지 못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주최 측에 대한 비난이 일었으나 다행히도 남은 이틀은 별다른 음향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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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아티스트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DJ로는 G-Park, DJ KOO, KINGMCK 등이 참석하였고 밴드 The Koxx와 힙합 뮤지션 가리온, 팔로알토, 자이언티 등이 무대를 빛내주었다. YG엔터테인먼트가 이번 해부터 UMF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얼마 전 SM엔터테인먼트가 10월 대규모 댄스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일렉트로닉 뮤직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은 점점 증가하고 있기에 일렉트로닉 뮤직 페스티벌 사업의 장래는 밝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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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로잭, 마틴 게릭스, 나이프 파티, 악스웰 앤 인그로소, 아민 반 뷰렌, 아비치 등 세계적인 DJ들의 라이브에 드넓은 올림픽 주경기장 무대가 가득 찼다. 현장에서 느끼는 거대한 우퍼의 울림은 평소 잠들어있던 인간 본연의 흥을 자극한다. 한국을 찾은 그들은 UMF의 엠블럼을 본뜬 태극기로 호응을 유도하고 빅뱅의 「Fantastic baby」, 싸이의 「강남스타일」, 키스 에이프의 「잊지마」 등의 국내 곡들을 믹싱하여 플레이하는 팬서비스를 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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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아민 반 뷰렌과 아비치의 무대였다. 5주년 기념 스페셜 아티스트로 뒤늦게 합류한 아민 반 뷰렌은 다섯 차례 DJ MAG 랭킹 1위에 빛나는 능수능란한 선곡과 디제잉을 뽐내었다. 트랜스의 색은 옅어졌지만, 히트곡 「Ping pong」과 더불어 다양한 장르를 보여주면서 최고의 반응을 이끌어냈다. 작년 말에 발매한 「Freefall」을 마지막 곡으로 대한민국을 포옹해주었다. 일차원적인 쾌감을 넘어선 감동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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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마지막으로 잠정적 은퇴를 선언한 아비치가 그야말로 마지막 무대에 섰다. 순서상 아민 반 뷰렌의 다음이라 사운드 임팩트가 비교적 심심한 경향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Waiting for love」, 「Hey brother」, 「The nights」 등 강력한 히트곡들은 관객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Levels'를 끝으로 한 아비치의 눈물과 함께 3일간의 긴 여정이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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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의 전자음을 활용하여 만들어지는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lectronic Dance Music). 술, 마약 등의 키워드와 묶여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하지 않았던가. 오로지 쾌락으로만 점철되어 보이는 이 음악 본연에는 외로움으로 텅 비어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덧칠해줄 쾌감과 더불어 그보다 높은 차원인 감동 또한 존재했다.

 

사진제공: PR GATE
현민형(musikpeople@naver.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뮤지션, 뮤지션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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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첫인상이다. 선율, 리듬보다 한 줄의 타이틀이 먼저 대중을 접선한다. 창작자가 음악을 완성하고도 몇 자 텍스트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다. 그토록 중요한 제목에 다른 뮤지션의 이름을 새긴 20곡의 노래가 있다. 동경하던 선배 가수에 대한 경배와 찬사, 혹은 한 분야와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을 상징적으로 활용한 사례들이다. 세대를 넘어 영향력과 존경심으로 이어지는 아티스트들의 연결고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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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신 - 「Billy」 (2016)

 

「Billy」는 윤종신의 롤모델 빌리 조엘을 칭한다. 「Honesty」, 「Just the way you are」 등 빌리의 대표곡들로 수놓아진 가사를 보자 하니, 어린 시절 턴테이블 위에 빌리 조엘 앨범을 얹고 온몸으로 음악을 느끼는 그의 모습이 그려져 애틋함을 선사한다. 어느덧 성장해 또 다른 「Piano man」으로 분해 단출한 반주 아래서 농익은 보컬을 선사하는 뮤지션 윤종신. 비록 ‘결코 빌리가 될 수 없단걸’ 깨달았더라도 당신은 그 모습 그대로 누군가의 「Hero」일 테다.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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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zer - 「Buddy Holly」 (1994)

 

말쑥한 차림에 안경을 쓰고 스트랫을 연주하며 노래하는 로커들은 많다. 이 모두를 볼 때마다 버디 홀리를 떠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허나 그 경우가 「Buddy Holly」를 부르는 위저의 리버스 쿼모를 볼 때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명료한 팝 멜로디와 캐치한 기타 리프를 따라 ‘난 버디 홀리처럼 보이지’라고 노래하는 이 프론트맨의 모습엔 자연스레 1950년대 로큰롤 영웅의 이미지가 내려앉는다. 게다가 생각해보자. 위저가 내건 파워 팝 장르를 거슬러 올라가면 또한 버디 홀리의 로큰롤이 자리하고 있지 않던가. 버디 홀리의 58번째 생일에 맞춰 내놓은 이 곡에는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의 재기와 젊은 아티스트의 재치 그리고 로큰롤 선구자에 대한 경의가 담겨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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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ke - 「Frank Sinatra」 (1996)

 

1990년대 얼터너티브 록 시대에 등장한 밴드 케이크는 특이했다. 다들 록 정통에 수절하던 시대에 ‘때 아닌’ 트럼펫을 강조한 것을 비롯해 힙합, 펑크(Funk) 외에 멕시코 마리아치, 이란 전통음악을 구사하는 등 사운드 패러다임이 꽤나 방만했다. 스탠더드하고 보수적인 노신사 프랭크 시내트라를 배격하던 시절, 그의 음악이 전하는 올드한 정취를 그려냈으니 딴 길로 새는 느낌은 더했다. ‘프랭크 시내트라가 「Stormy weather」를 노래할 때/ 파리와 거미가 함께 노닐고/ 튀는 오래된 레코드 위로 거미줄이 떨어진다.’

 

1996년 케이크의 2집이자 출세작 <Fashion Nugget>의 문을 여는 이 곡은 본고장 싱글 「The distance」, 글로리아 게이너 명작 디스코를 다시 호출해낸 「I will survive」 그리고 라틴 명작 「Quizas quizas quizas」의 영어 버전인 「Perhaps, perhaps, perhaps」과 함께 꾸준하게 전파를 타면서 애청되었다. 상당수의 국내 팝 마니아들이 속속 상대적으로 낭만적이었던 케이크 음악의 사정권에 들었다. 부지런히 이 앨범을 듣던 1996년과 1997년이 그립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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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2 - 「Elvis Presley & America」 (1984)

 

앨범 <War>의 성공으로 자국 아일랜드에서 바다 건너편의 미국으로 진출하게 된 유투는 다음 음반인 <The Unforgettable Fire>로 두 가지 변모를 꾀한다. 첫째는 록시 뮤직의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다니엘 라노이스(Daniel Lanois)의 조력을 얻어 사운드의 무게감과 정제를 잡아냈다는 점. 둘째는 자국과 그 주변국에서 벗어나, 미국에서 발생한 사건들과 고질적인 문제들을 꼬집어냈다는 것이다. 빌보드 차트 33위까지 올라간 대표적인 트랙 「Pride (In the name of love) 」은 마틴 루터 킹을 향한 헌정곡이고, 독립기념일을 제목으로 쓴 「4th of July」는 미국을 냉소적으로 바라본 곡이다.

 

그중 「Elvis Presley & America」의 가사는 프로듀서이자 작가인 알버트 골드만(Albert Goldman)이 비호의적인 시선으로 엘비스 프레슬리를 조명한 전기 <Elvis>에 대한 보노의 부정적인 견해가 담긴 곡이다. 그 후 보노는 1988년작 「God Part II」으로 존 레논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골드만을 다시 공격하기도 한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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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MT - 「Brian Eno」 (2010)

 

사이키델릭의 정도를 걷고 있는 엠지엠티의 두 번째 정규작 <Congratulations>에 수록되어 있다. 몽환적인 사운드를 추구하는 그들답게 1970년대 전자음악의 선지자 브라이언 이노를 헌정한 곡이다. 그의 위대함과 그로부터 받은 가르침을 속삭이듯 내뱉는다. 음울한 분위기가 마치 지하실에서 비인도적인 실험을 가행하는 <지킬 앤 하이드>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러한 연출이 불쾌할 법도 하지만 스릴 있는 리듬과 반주가 그들의 존경심과 결합하여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킨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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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rlie Puth - 「Marvin Gaye」 (feat. Meghan Trainor) (2015)

 

데뷔 싱글 타이틀에 감히 소울 레전드의 이름을 걸었다. 신인의 당찬 패기는 가사로 이어진다. 섹스 화신이기도 했던 마빈 게이의 이름과 그의 대표곡 「Let’s get it on」을 빌려 맹랑한 작업 멘트를 만들었고, 「Sexual healing」과 「Got to give it up」, 「Mercy, mercy me」 등 거장의 명곡들을 인용해 노랫말로 엮었다. 재치 있는 가사와 잘 들리는 멜로디, 여기에 한창 인기 가도를 달리던 메간 트레이너가 가세해 노래는 각국에서 히트를 기록했다. 마빈 게이만큼 진득한 소울은 아니었으되 나름 그의 이름을 드높이긴 충분했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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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 「When Smokey sings」 (1987)

 

‘스모키가 노래할 때 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어 / 스모키가 노래할 때 난 모든 걸 잊어버려’

 

이만한 헌사가 있을까? 영국의 뉴로맨틱스 그룹 ABC가 1987년에 발표해서 빌보드 싱글 차트 5위를 기록한 「When Smokey sings」의 주인공은 위대한 소울 싱어송라이터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이다. 모타운이 배출한 보컬 그룹 미라클스(Miracles)의 리더였던 그는 출중한 능력과 훌륭한 인간성으로 레이블 제2인자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신스 팝 그룹답게 도입부는 자신들의 1985년도 탑 텐 싱글 「Be near me」와 유사하지만 전체적으로 복고적인 사운드로 채색되며 스모키 로빈슨에 대한 존경을 표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1987년 10월 3일 자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ABC의 「When Smokey sings」는 8위, 스모키 로빈슨의 「One heartbeat」는 10위를 기록했다. ABC에겐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권 안에서 스모키 로빈슨과 함께 경쟁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 영광이었을 것이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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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Bowie - 「Song for Bob Dylan」 (1971)

 

글램 록의 선구자 데이비드 보위의 초기작인 <Hunky Dory>에 수록된 곡이다. 제목에 나타나듯 저항정신을 대표하는 ‘모던 포크의 전설’인 밥 딜런의 본명(로버트 짐머만)을 외치는 것을 시작으로 그의 음색과 노랫말, 정신에 대한 찬사를 풀어놓는다. 일렉트로닉 기타와 어쿠스틱 기타를 적절히 배합하여 원곡의 장르적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목소리 톤과 가사 또한 밥 딜런의 스타일을 창의적으로 본떠 유쾌하게 노래하고 있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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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 Dylan - 「Song to Woody」 (1962)

 

밥 딜런도 동경했던 가수가 있다. 시골 소년 딜런을 포크의 세계로 이끌어준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가 그 주인공. 미국 여러 지역의 민요를 채집해 대중이 향유 가능한 포크를 가다듬었고, 대공황으로 어려운 시기 민중과 노동자의 편에서 위로한 인물이다. 우디의 읊조리는 가창과 진솔한 가사, 저항적 태도는 이후 포크송 시대를 견인하며 딜런에게 영향을 준다.

 

그의 음악을 들으며 만남을 기다려왔던 19살 딜런은 건강이 악화된 거스리의 입원실을 찾아가 노래를 들려준다. 첫 만남 장소, 병원 안에서 번안 곡을 부른 사연 모두 조금 특별하다. 선생의 곡 「1913 Massacre」에 직접 쓴 가사를 붙인 「Song to Woody」는 이후 밥 딜런의 데뷔작에도 실린다. 자신에게 음악의 정체성을 심어준 은사의 쇠약해진 모습을 본 제자는 이렇게 말하며 회복을 기원했다. ‘당신 같은 일을 해낸 이는 많지 않아요.’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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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ylor Swift - 「Tim McGraw」 (2006)

 

지금은 팝의 여신이 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데뷔 앨범 <Taylor Swift>수록 곡. ‘팀 맥그로를 생각할 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을 떠올려 줘.’ 학창시절 남자친구와의 이별을 염두에 두고 쓴 이 곡은 컨트리 싱어 팀 맥그로를 향한 존경심을 매개로 그녀가 당시에 느꼈던 복잡한 감정을 담아내고 있다. 제목 덕분인지, 컨트리 소녀는 자신의 우상과 CMA 페스티벌(컨트리 위주의 음악 페스티벌) 무대에 같이 오르며 곡 작업을 함께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장르적 요소를 편안한 멜로디에 녹여낸 달콤한 팝송은 음반의 리드 싱글로 컷되어 테일러의 음악 지향의 출발을 알렸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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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d Zeppelin - 「Hats off to (Roy) Harper」 (1970)

 

레드 제플린 이전, 세션맨으로 활약하던 지미 페이지는 버트 잰시(Bert Jansch) 등 브리티시 포크에 심취해 있었다. 포크의 서정성을 부각한 로이 하퍼 역시 그에겐 숭앙의 대상이었다. 레드 제플린 결성 후인 1970년 6월, 그는 마침내 동경하던 로이 하퍼와 배스 페스티벌 현장에서 대면했다. 이들의 교류는 그 후로도 계속됐다. 로이 하퍼가 밴드의 매니저 사무실에 놀러 간 어느 날, 지미 페이지로부터 건네받은 신보 3집에서 이 노래의 제목을 발견하고는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지미 페이지의 슬라이드 기타 주법이 돋보이는 노래에선 블루스 고전들의 흔적이 다수 발견된다. 부카 화이트(Bukka White)의 「Shake em’ on down」과 오스카 우즈(Oscar Woods)의 「Lone wolf blues」, 소니 보이 윌리엄슨(Sonny Boy Williamson)이 부른 「Help me」의 노랫말을 일부 인용하면서 블루스 명장들에게 경의를 표했다. 제목에서 가사, 음악에 이르기까지 자신들의 뿌리에 대한 존경을 유감없이 드러낸 수작.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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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anberries - 「I just shot John Lennon」 (1996)

 

1980년 12월 8일 밤 뉴욕 한복판에서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존 레논이 자신의 집 앞에서 극성팬의 총을 맞은 것이다. 노래 제목은 레논을 쏜 마크 채프먼(Mark Chapman)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 살인을 저지른 후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라는 질문에 그는 뻔뻔할 정도로 침착하게 얘기했다. “난 그저 존 레논을 쐈어 (I just shot John Lennon).” 노래는 ‘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깝고 역겨운 광경인가 (What a sad and sorry and sickening sight)’라는 가사를 반복하며 레논을 추모한다. 레전드의 삶과 음악은 많은 뮤지션에게 영감을 준다. 존 레논은 죽음의 현장까지도 하나의 음악으로 남았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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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D Soundsystem - 「Daft Punk is playing at my house」 (2005)

 

펑크 록과 하우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장르에 심취해 있던 프로듀서이자 DJ, 제임스 머피(James Murphy)는 LCD 사운드시스템이란 프로젝트 밴드로 이 둘을 흥미롭게 녹여낸다. 호기로운 제목 그대로 ‘다프트 펑크가 우리 집에서 공연 중’이라는 내용의 곡은 언뜻 보면 평범한 개러지 록처럼 들리지만, 트랙의 곳곳엔 디스코와 펑크(Funk) 리듬이 스며들어있다. 그의 독창성을 대표하는 이 곡엔 댄스 펑크(Dance Punk)라는 생소한 이름의 장르가 붙는다.

 

곡 못지않게 뮤직비디오도 참 재미있다. 다프트 펑크의 「Da punk」와 「Around the world」의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배경과 우스꽝스러운 의상들을 그대로 가져온 영상은 이들을 감독한 스파이크 존즈(Spike Jonze)와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에게 각각 조롱조의 오마주를 표하기도 한다. 그나저나 실제로 다프트 펑크가 우리 집에 와서 공연한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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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ft Punk - 「Giorgio by Moroder」 (Feat. Giorgio Moroder) (2013)

 

단순한 헌정 곡이 아닌, 헌정 대상과의 직접적인 협업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2015년에 신작을 발표했을 만큼 그가 현재 진행형의 뮤지션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하우스 음악 듀오로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다프트 펑크가 1970년대부터 활동한 대가와 함께해, 지난 40년을 주마등처럼 보여준다. 무려 9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동안 모로더는 유년 시절 꿈을 꾸던 소년의 모습부터 뮤지션이 된 다음 신시사이저를 만나기까지의 과정에 대해 조곤조곤 읊어간다.

 

침착한 톤 덕분에 인터뷰 녹음 파일을 청취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와 직접 대화하는 것 같은 느낌도 받을 수 있다. 목소리로만 흘러가던 곡은 점차 비트를 가지고, 코드를 띄고, 오케스트레이션과 스크래치로 발전된 리듬 형상을 보인다. 언제나 미래적인 사운드를 추구하는 진보적 아티스트들의, 서사가 담긴 작업물이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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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sia - 「Astrud」 (1987)

 

「Astrud」는 「The girl from Ipanema」를 부른 보사노바의 전설적 아티스트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Astrud Gilberto)다. 보컬을 맡은 바시아와 대니 화이트(공동 작곡가 겸 프로듀서)가 직접 쓴 가사에는 온통 그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하다. “사랑스러운 소녀”라고 일컫고, 비브라토 없이 깔끔하게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공기와 같이 가볍고", "동화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고 묘사한다. 또한 가사에 등장하는 「Fly me to the moon」과 「Goodbye sadness」는 지우베르투가 실제로 부른 곡이기도 하다.

 

데뷔 앨범 <Time And Tide>에 수록돼있는 「Astrud」는 앨범 내에서 꽤 튀는 곡이다. 다른 곡들은 주로 1980년대의 전형적인 댄스 팝 스타일을 취하는 반면, 이 곡은 도입부터 가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좀 더 부드러운 창법을 동원한다. 폴란드와 브라질 사이의 음악적 접점이 크지 않은 만큼 「Astrud」는 폴란드 재즈 역사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택한 곡으로 기록되었고, 바시아는 자국의 보사노바 뮤지션으로서 상징적인 인물로 자리하게 됐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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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vie Wonder - 「Sir Duke」 (1977)

 

모든 음악가는 누군가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수많은 아티스트들에게 아낌없이 영감을 선사하는 거장, 스티비 원더의 경우라고 아닐 수 있을까. 1977년 빌보드 싱글 차트의 정상을 차지한 흥겨운 펑크(funk), 알앤비 넘버 「Sir Duke」의 제목은 스티비 원더의 우상 듀크 엘링턴을 바로 가리킨다. 곡에는 훌륭한 재즈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재즈 오케스트라 밴드 리더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담겨있다. 잊을 수 없는 음악계의 선구자라 소개하면서. 마음씨 좋은 스티비 원더는 다른 선배들에 대한 사랑도 잊지 않는다. 카운트 베이시와 글렌 밀러, 루이 암스트롱, 엘라 피츠제럴드를 함께 가사에 늘여놓는다. 그러나 노랫말을 잘 보자. 듀크 엘링턴을 언급할 때에는 모든 이의 왕이라는 수식어를 앞에 붙인다. 숱한 옛 아티스트들 가운데서도 듀크 경만이 스티비 원더의 노래 제목 자리를 차지한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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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il Sedaka - 「Oh Carol」 (1959)

 

수려한 외모로 뭇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닐 세다카가 당시 그의 연인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캐롤 킹(Carole King)을 위해 만든 연가라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이야기다. 정작 캐롤은 작사가 제리 고핀(Gerry Goffin)과 결혼했지만 말이다. 연정에 대한 답가로 캐롤은 같은 멜로디에 가사를 바꾼 「Oh, Neil」이라는 노래를 발표하는데, 구애의 표현이 가득한 닐의 곡과 달리 상당히 혹독한(?) 메시지를 전한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닐의 노래를 너무 싫어해서, 닐의 노래를 틀면 죽을 수도 있다는 내용과 함께 곡의 마지막엔 총소리와 할아버지의 목소리까지. 재치 있는 거절이다. 비록 사랑은 깨졌지만 멀리 보면 닐 세다카는 「Oh Carol」의 작사를 맡은 하워드 그린필드(Haward Greenfield)와, 캐롤 킹은 제리 고핀과 각자 콤비를 이뤄 성공했으니 결과적으로 ‘윈윈’인 셈이 아닐까.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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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oon 5 - 「Moves like Jagger」 (2011)

 

빌보드 차트를 비롯해 18개국에서 넘버원을 기록한 슈퍼 싱글. 상쾌한 휘슬과 블루지한 기타를 필두로 하는 도입부가 단번에 귀를 사로잡으며 디스코, 록, 소울, 펑크(Funk) 혼재된 일렉트로 팝 사운드는 대중의 손을 끌고 댄스 플로어로 이끈다. 피처링으로 가세한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보컬이 화룡점정. 마이너해질 수 있는 곡 분위기를 단번에 그녀가 가진 붉은색으로 덧칠해 생동감을 선사해냈다. 롤링 스톤스의 프론트맨 믹 재거처럼 ‘움직이며’ 너를 사로잡아 보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우리 시대 록 스타 애덤 르빈은 부족함이 없었다. 심지어 싱글을 낸 시절에는 유부남도 아니었으니.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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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ric Clapton & B.B. King - 「Riding with the king」 (2000)

 

에릭 클랩튼이 비비 킹에게 선사하는 노래이지만, 사실상 두 거장이 함께 부르고 연주하는 꿈의 콜라보 앨범이다. 관록이 느껴지는 가창과 기타 연주는 물론, 선후배의 진심 어린 예우와 존중이 듣는 이를 따뜻하게 물들인다. 우상과 작업한다는 사실이 행복한 클랩튼, 그가 귀여운 듯한 비비킹의 모습은 뮤직비디오 속에 잘 담겨있다. 미국 내 2백만 장의 판매고, 2001년 그래미 전통 블루스 부문을 수상한 기록은 이 음반이 수작임을 말해준다. 에릭 클랩튼에게 블루스의 왕은 음악적 롤모델이자 기타 스승, 파트너로서 각별했다. 비비킹은 작년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뒷좌석에서 자신의 기타 루실을 튕기며 도로를 가로지르고 있을 것만 같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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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세 - 「내 사랑 심수봉」 (2002)

 

내 사랑 심수봉, 두서없는 사랑 고백이다. 제목으로만 보자면 1970년대 말 「젊은 태양」을 부르며 일약 스타로 떠올랐던 가수를 향한 맹목적인 예찬곡인 것 같지만 이문세에게 심수봉은 과거 그 자체였다. 옛 시절의 노스텔지어를 고스란히 담은 곡은 아이러니하게도 지나간 시절을 그리워하는 노래라기엔 밝고 당차다. 산뜻한 보사노바 풍 리듬에 담아낸 향수는 추억을 그리워하기보단 현실을 다독이고 위로하기 위함이다. 누구나 하나쯤은 듣기만 해도 그때 그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곡들이 있다. 이문세에게 심수봉이 그랬고, 우리도 그렇다. 음악이라는 것이 이렇다. (박지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2016 록 페스티벌, 만날 수 있는 슈퍼스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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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쉽게 볼 수 없었던 해외 아티스트, 밴드를 만날 수 있는 주요 록 페스티벌 시즌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라인업은 일찍이 공개됐다. 전설의 반열에 오른 거물에서부터 앞날에 기대가 모이는 신예까지 한국을 찾는 이들의 면면이 실로 화려하다. 내한 무대가 가장 많이 준비된 세 록 페스티벌 위주로 해외 아티스트들을 살펴봤다. 매회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하는 밸리 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랑하는 R&B, 소울 음악의 향연이 벌어질 서울 소울 페스티벌. 이들이 연달아 열리는 이번 7월과 8월에 이미 많은 팝 음악 팬들의 관심이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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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Hot Chili Peppers(레드 핫 칠리 페퍼스) / 밸리 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2002년의 붉은 물결이 축구 경기장에서만 일었던 건 아니다. 이름부터 매콤한 펑크 록 밴드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14년 만에 한국 땅에 돌아온다. 헤드라이너를 맞이하기 전, 지난 6월에 나온 <The Getaway>의 정주행은 필수다('밸리 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역시 신보 발매 이후 진행 중인 「The Getaway World Tour」에 속한다.) 이번 투어에서 세트리스트의 지분을 많이 차지하는 곡을 살펴보면 예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우선 탄력 있는 베이스 라인이 돋보이는 「Dark Necessities」와 육중한 드럼 사운드의 「We turn red」가 눈에 들어온다.

 

「Can't stop'과 함께, 특유의 발음을 내뱉는 곡 「Give it away」 같은 스테디셀러도 미리 챙겨두는 편이 좋다. 영화 <데스노트>의 엔딩 곡으로 쓰여 우리에게도 익숙한 「Dani California」도 기대해볼 만하다. 반짝반짝한 멜로디와 질주하는 래핑이 공존하는 「By the way」의 경우 곡의 도입부터 떼창 구간이 등장한다. “Standing in line to see the show tonight / and there's a light on heavy glow"란 가사에 걸맞은 페스티벌 풍경에 함께하고 싶다면, 입을 벌릴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할 것. 자, 데뷔 30년을 넘긴 레전드의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를 즐길 시간이다. (홍은솔)

 

제드(Zedd) / 밸리 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6개월 만에 한국을 다시 찾는 그를 그저 잘 나가는 DJ 중 한 명으로 얕본다면 곤란하다. 제드야말로 기존 '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밸리 록 뮤직&아츠 페스티벌'로 교체한 간판에 적격인 아티스트기 때문. 수준급 디제잉으로 주조한 고품격 사운드와, 이에 걸맞은 환상적인 스테이지 구성이 그의 장기다. 찬란한 색감과 조명을 활용한 무대 연출, 음악과 절묘하게 합을 이루는 백드롭 영상이 연신 시선을 잡아끈다. 경탄을 자아내는 무대 효과를 두 배로 즐기기 위해서는 예습이 필수. 「Clarity」, 「Stay the night」, 「True colors」 등 매 공연마다 거대한 '떼창'을 이끌어내는 그의 히트곡들을 충분히 익혔다면, 밸리 록 뮤직&아츠 페스티벌 둘째 날 밤에 펼쳐질 '제드 월드'를 기대해도 좋다. (정민재)

 

SEKAI NO OWARI(세카이 노 오와리) / 밸리 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올해 '지산'행 2일차 티켓을 끊은 관객의 8할은 이들을 보기 위함이라고 하면 과장일까. 동화 같은 콘셉트로 청각과 시각의 판타지를 동시에 충족시켜주는 밴드 세카이 노 오와리의 얘기다. 첫 내한에 한국 팬들의 호응이 뜨겁다. 마법 같은 세트와 색색의 레이저 효과로 환상적인 무대를 펼쳤던 단독 콘서트 <Twilight City>, 그 공연의 후기를 그저 부러운 마음으로 읽기만 했던 과거는 이제 안녕이다. 물론 연출이 전부는 아니다. 여린 듯 묘하게 날카로운 에너지를 내뿜는 보컬, 화사한 음색의 피아노와 기타, 공간을 꽉 채우는 디제이 러브의 사운드 컨트롤은 비주얼을 뛰어넘는 마성으로 두 귀를 찬란하게 해줄 것이다. 「炎と森のカ?ニバル(불꽃과 숲의 카니발)」, 「RPG', 「ムン-ライトステ-ション(Moonlight station)」, 「スノ-マジックファンタジ-(Snow magic fantasy)」, 'Dragon Night」까지는 관람 전 미리 듣기를 권장한다. 추천곡을 길게 소개하긴 했으나, 역시 후카세의 귀여움을 눈앞에서 영접할 수 있다는 것이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홍은솔)

 

트로이 시반(Troye Sivan) / 밸리 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화제의 유투버로 먼저 이름을 알렸지만, 첫 앨범 <Blue Neighbourhood>에서 보여 줬던 감각적인 사운드의 운용은 트로이 시반을 단순한 싱어송라이터에서 팝계의 블루칩으로 떠오르게 했다. 어린 나이에 곱상한 외모로도 주목받고 있는 그는 발매하는 싱글마다 차트를 석권하며 라이징스타의 반열에 올랐고 최근에는 코리아 스페셜 에디션까지 발매하며 다시 한 번 대세를 입증했다. 인기에 힘입어 '2016 밸리 록 뮤직&아츠 페스티벌' 라인업에 합류한 다재다능한 소년은 자칫 과열된 페스티벌의 분위기를 섬세한 감성과 특유의 미성으로 채워 넣은 「Youth」, 「Take me down」 등의 선율로 관객들의 감수성을 자극할 것이다. (박지현)

 

디스클로저(Disclosure) / 밸리 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3살 차이의 형제 듀오인 디스클로저는 2013년, 천재라는 수식어와 함께 말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UK 개러지를 기반으로 딥 하우스, 신스 팝 등 여러 복고적인 장르에 접점을 두는 동시에 상당히 팝적인 접근으로 큰 파장을 일으킨 데뷔작 <Settle>과 보다 넓은 스펙트럼을 포괄한<Caracal>을 통해 일렉트로닉 씬의 정상급 아티스트로 오른 이들이 지산의 두 번째 밤을 책임진다. 요즘 유행하는 EDM, 속칭 '까- 까- 까- 까-'가 아닌 비교적 차분한 스타일의 음악임에다 샘 스미스와 위켄드 등의 스타 피처링 없이 어떻게 관객의 호응을 유도할지 궁금하다. 또한 디제이 셋이 아닌 직접 연주하는 라이브 셋이라니, 올여름 꼭 확인해야 할 무대 중 하나! (이택용)

 

트래비스(Travis) / 밸리 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1990년대 또 한 차례 세계를 정복했던 '브리티쉬 인베이젼'의 명맥을 잇고 있다. 라디오헤드처럼 혁신적인 진보나 오아시스처럼 전설로 산화되진 않았지만 이들의 노래는 한 때의 영광과 짠한 그리움을 품고 있다. 아름다운 멜로디와 입체적인 사운드. 연약하긴 하지만 신경질적이지 않은 목소리는 과거의 시간 저편으로 우리를 이끈다.

 

이들이 한국을 찾는 것만 벌써 6번째다. 신비감은 덜하겠지만 최근에 발매된 8번째 앨범 수록곡과 감동적인 떼창만으로도 이미 공연의 기쁨은 크다. 해가 지는 가파른 골짜기 안에서 「sing」이 울려 퍼지는 것만큼 장관이 있을까. “(떼창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같이 부를 때 함께 모여서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라고 밝힐 정도로 그들도 이미 떼창에 대해 무한한 애정과 기대(?!)를 가지고 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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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저(Weezer)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펜타포트 2일차 헤드라이너 위저. 1994년 데뷔해 벌써 20년 넘게 활동한 색깔 있는 베테랑으로 올해 10번째 정규 앨범을 하얗게 덧칠해 내놓았다. 사실 팬이라면 이미 2009년, 2013년 펼쳐진 내한공연을 즐겼을 확률이 높다지만, 위저라는 이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어떠하던가. 기존 명반으로 수놓아진 디스코그라피에 결코 안주하지 않는, 소위 말하자면 '혁신형' 혹은 '진화형' 밴드이지 않던가. 지루할 걱정일양 접어두어도 좋을 테다.

 

까놓고 말해 세계적으로 이 정도 인지도를 가진 밴드 중 앙코르로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를 선곡해주는 소위 '한국형'이 또 있을까? 이 날만큼은 우리나라 관객들 모두가 위저와 함께 「King of the world」가 된 양 뛰어보자. (이기찬)

 

패닉! 앳 더 디스코(Panic! At The Disco) /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4인조에서 3인조로, 3인조에서 브랜든 유리의 1인조로 멤버 구성 규모는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음악의 스케일과 스펙트럼, 에너지는 계속해서 커지고, 넓어지고, 늘어난다. 댄스 록, 바로크 팝, 뉴웨이브, 리듬 앤 블루스, 소울, 재즈에 이르는 너른 범위의 움직임은 이제 패닉 앳 더 디스코를 그저 단순한 이모 펑크의 한 주자로만 가둬놓지 않는다. 이번 내한에서도 이러한 특성을 만나볼 수 있으리라. 스탠더드 팝, 소울, 재즈 사운드를 덧대며 노선을 다양화한 올해의 신보 <Death Of A Bachelor>의 주요 수록곡들이 최근 패닉 앳 더 디스코의 공연 셋 리스트를 채우고 있다. 큼지막한 사운드 속에서 리듬이 넘실대는 「LA devotee」, 「Death of a bachelor」, 「Victorious」가 이번 내한의 주요한 모먼트가 되지 않을까. 물론 「Nine in the afternoon」, 「The ballad Of Mona Lisa」와 같은 기존의 대표곡들도 쉽게 놓칠 수 없다. (이수호)

 

투 도어 시네마 클럽(Two Door Cinema Club)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독특한 색의 음악으로 일찌감치 많은 우리나라 팬을 보유해놓은 투 도어 시네마 클럽이다. 게다가 앞서 두 차례 우리나라에서 공연을 한 적이 있어 익숙하기도 하다. 이 점만으로도 투 도어 시네마 클럽의 흥행 가능성은 이미 높다. 일렉트로니카와 록, 팝을 섞어 다양한 결과물을 내놓는 이들의 음악은 재밌고 또 흥미롭다. 음악을 따라 공연 역시 활기차고 발랄하다. 많은 팬들을 들썩이게 한 「Sleep alone」, 「What you know」, 「Something good can work」과 같은 대표곡이 다시 한 번 우리나라 무대에서 울릴 예정이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신곡 「Are we ready (wreck)」을 내놓기도 했다. 벌써부터 즐길 거리가 한 가득이다. (이수호)

 

더 백신스(The Vaccines) /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개러지 펑크부터 최근엔 사이키델릭, 댄스 록까지 선보이고 있는 4인조. 아니, 이젠 트리오라 불러야 하나. 어쨌든 「(All afternoon) In love」의 프로그레시브적인 요소까지 포함한다면 정말 로큰롤의 흐름을 모두 레퍼런스 삼았다고 할 만하다. 이제 데뷔 5년 차를 갓 넘긴 밴드는 이미 2012년 슈퍼소닉을 통해 한국을 한 차례 방문한 적이 있는데, <Come of age>의 발매 전 이루어진 공연이라 몇 곡을 제외하곤 전부 1집 수록곡으로 셋 리스트를 채웠다. 따라서 이번 내한을 두 배로 즐기기 위해선 소포모어와 3집 <English Graffiti>를 복습하는 것이 핵심. 피트 로버트슨의 부재가 이들의 라이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도 관전 포인트 중 하나.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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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Maxwell) / 서울 소울 페스티벌

 

맥스웰의 참여 소식은 페스티벌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며 구매 버튼을 누르게 했다. 디안젤로와 함께 1990년대 네오 소울을 대표해온 뮤지션이자, 「Pretty wings」에서 들려주는 대체불가 팔세토가 특징이다. 이번 축제에서는 7년만의 신작 <blackSUMMERS'night>라이브로 접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아시아 첫 공연을 함께 하는 기회이다. 여전히 탐나는 보컬, 관능적인 무드를 같은 공간에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관객석 이곳저곳에서 심취하여 가성을 따라부르는 재미난 상황이 벌어질지도. (정유나)

 

더 스타일리스틱스(The Stylistics) /서울 소울 페스티벌

 

매혹적인 현악기와 풍부한 관악기가 한데 어우러지며 발현되는 그루브와 그 위에서 음이라는 자태를 찬찬히 음미하듯 펼쳐지는 부드러운 팔세토 위주의 보컬. 1970년대 소울의 가장 대표적 형태였던 필리 소울(Philly Soul) 대표주자 스타일리스틱스(The Stylistics)가 구가하는 음악이다. 4인조 보컬로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롤 모델이기도 한 그룹, 1968년 데뷔해 강산은 몇 번이나 변했더라도 매력은 어디가지 않았다.

반백년 가까운 세월 활동했기에 디스코그라피를 챙길 수 없다면 베스트 앨범 정도로 준비해가도 좋을 것. 아마도 귀에 익은 멜로디들이 펼쳐져 생경하지 않을 테다. 생생한 음들로 가득한 그룹의 곡들은 힙합 샘플링에 걸맞아 나스, 제이 지, 노트리어스 B.I.G 등 본토 힙합 뮤지션들에 더해 우리나라에서도 타이거 JK, 브랜드 뮤직 아티스트들에게까지 사랑받아왔다. 어쩌면 서울 소울 페스티벌 스테이지를 가장 흥겨이 만들 주인공은 바로 멋진 스타일의 그들일 수도 있겠다. (이기찬)

 

뮤지크 소울 차일드(Musiq Soulchild) /서울 소울 페스티벌

 

맥스웰의 소울이 끈적하고 섹시하다면, 뮤지끄는 특유의 중저음으로 감미롭게 노래한다. 메리 제이 블라이지와의 듀엣 「Ifuleave」나 「Love」 등은 국내에서 특히 사랑받은 곡이다. 2000년 데뷔 이래 네오소울을 유려하게 중화시키며, 그 음반을 듣고 자란 크러쉬나 박재범 등의 젊은 흑인음악 가수들에게 영향 주었다. 제프 버넷 또한 달달한 알앤비 계의 스승으로 그를 꼽는다. 도시의 야경과 함께하는 뮤지끄의 러브송이 근사한 여름밤이 만들어줄 것이다. (정유나)

 

2016년 지산의 심장, 튠업 스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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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 3일간 9만 명 이상 운집한 관객들의 열정 어린 몸짓들을 뒤로 하고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메인으로서의 위용을 자랑하며 헤드라이너를 품은 빅탑 스테이지, 예술 전반부를 아우르려는 주최 측의 열망을 느낄 수 있던 그린/레드 스테이지. 이 두 무대만 즐겼다면 아쉽게도 그건 반쪽짜리 페스티벌이었을 확률이 높다. 단언컨대, 지산의 심장은 튠업 스테이지에서 가장 빠르게 고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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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튠업 스테이지를 관통한 컨셉은 바로 'R.I.P. Brothers'였다. 작년서부터 대중음악인들에게 아쉬움을 넘어선 비탄을 선사한 거장들의 죽음. 구구절절 설명보다 단순한 나열에도 빛을 발하는 고인들은 바로 데이빗 보위, 프린스, 모터헤드의 레미 킬미스터,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리더 모리스 화이트, 비비 킹, 나탈리 콜 등이다. 아무래도 별이 된 아티스트들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이들일 테다. 그렇기에 밤하늘의 별이 가까이 빛나던 지산 포레스트 밸리에 어렸을 적부터의 '롤 모델'을 상실한 여러 튠업 출신 뮤지션들이 모였다. 7월 22~23일 양일간 헌정으로 수놓아진 분장과 세트리스트로 무대를 준비해온 이들 덕분에 지산에서의 낮은 더위에도 풍요로웠고 밤은 남들보다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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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2일 금요일 오후 4시경, 튠업 8기 해리빅버튼을 반기는 커다란 환호성을 시작으로 튠업 스테이지의 막이 올랐다. 작열하는 태양을 피하기 위해 근처에 준비된 그늘막 아래서 삼삼오오 모여 있던 관객들의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순간이었다. 작년 12월 말 작고한 영국 헤비메탈 대부 모터헤드의 프론트맨 레미 킬미스터(Lemmy Kilmister)를 그리며 「The game」, 「Ace of spades」 등 인기 레퍼토리로 분위기를 띄우고 예나 다름없이 하드록으로 내달리던 그들. 관객들은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듯이 광란적으로 움직이며 심지어 슬램까지 즐기는 모습이었다. 작년 안산M밸리에서 모터헤드와 같은 날 같은 무대에 오른 밴드기에 더욱 뜻 깊이 다가왔던 이 순간을 올해 지산 최고 중 하나로 꼽은 관계자들이 많았다.

 

 

1시간 정도의 소강상태를 가진 후 이어진 무대에 오른 이는 튠업 15기 남메아리 밴드. 전 공연 쉴 새 없는 로킹에 지쳐버린 관객들은 초반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자유로이 잼을 즐기며 건반 위를 뛰놀던 재즈 피아니스트 남메아리의 모습에 반해 일어나 몸을 들썩일 수밖에 없었다. 올해 2월 급작스레 세상을 등진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심장 모리스 화이트(Maurice White)의 명곡 「That's the way of the world」, 「September」 등은 연주만으로도 멜로디를 표현해내는 밴드의 역량에 힘입어 새로운 퓨전 재즈로 거듭났다. 모리스 화이트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익숙한 선곡이었기에 밴드 보컬이 없다는 점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키보드와 숄더키보드(키타)를 바꿔가며 재미난 선율을 주조하는 남메아리 덕에 관객의 자연스런 흥얼거림이 유도되는 장면은 이번 지산 포레스트에서의 아름다운 광경 중 하나로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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튠업 스테이지가 휴식을 취하고 있던 오후, '로다운30-티건 앤 사라(Tegan And Sara)-스테레오포닉스(Stereophonics)-이소라-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로 이어진 페스티벌을 즐기고 온 관객들 피로를 달래준건 바로 두 남녀로 이루어진 밴드 이채언루트, 그리고 휴키이스X박소유였다. 바이올리니스트 강이채와 밴드 솔루션스의 베이시스트 권오경이 만난 튠업 16기 이채언루트, 대중음악 여러 장르를 완벽히 포괄하며 정의하기 힘든 음악을 하는 그들은 작년 마지막 날 거짓말처럼 별이 되어 떠난 나탈리 콜 추모 무대를 꾸몄다. 준비해온 입체적 무대와 아름다운 의상, 그리고 하모니가 삼위일체를 이루던 순간 노래는 또 하나의 별로 하늘 높은 곳으로 솟구쳐 올랐을 테다.

 

짧은 휴식 후 이어진 두 개성파 싱어송라이터가 만나 유려하면서도 혼란 가득한 청춘의 음악을 하는 휴키이스X박소유의 무대. 튠업 4기 고참 격으로서 데뷔 싱글 「Milk tea'에 이어 지난 6월 발표한 두 번째 싱글 「Jasmine hotel」의 작업 모티브가 되어 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기리며 준비했다. 1971년 발표된 그의 대표곡 「Life on Mars」을 지나 영화 <마션>수록곡 「Starman」을 거쳐 2013년 앨범 <The Next Day>의 「Where are we now?」까지, 비교적 너른 세트리스트로 거장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을 표방해 울림을 선사할 수 있었다. 페스티벌 첫 날 밤이 깊어감과 동시에 이번 무대를 마지막으로 입대 예정인 휴 키이스(Hugh Keice)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짙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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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물러나지 않은 2일차 낮 공연의 포문을 알린 건 청춘을 노래하는 튠업 13기 4인조 혼성밴드 후추스. 전날 밤 헤드라이너 레드 핫 칠리 페퍼스와 우연의 일치인 양 밴드 네임이 맞닿아 있는 그들은 비록 무대 규모나 관객 수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최선의 무대를 선보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모리스 화이트를 추모하는 소울/펑크로 공연을 시작해 코러스 라인이 돋보이던 첫 곡 「사춘기'를 지나 위트 있는 가사의 펑크(Punk) 「개나 기를까」와 더위를 식히는 「등목」으로 지쳐있는 관객들의 흥을 돋을 수 있었다.

 

이어진 외양으로나 음악 성향으로나 시애틀에 위치한 지미 헨드릭스 묘역을 박차고 나온듯한 파워 트리오 튠업 16기 블루터틀랜드(Blue Turtle Land)의 무대. 작년 상반기 별세한 블루스의 제왕 비비 킹을 기억하고자 그의 대표곡 「Rock me baby」를 사이키델릭 스타일로 편곡해 준비해왔다. 키보드 기타(키타) 안에 내장된 사운드를 통해 제프 벡(Jeff Beck)을 연상시키듯 여러 톤을 소화하며 「꽃잎을 따라간 고양이」, 「변화의 바람」 등을 연주한 밴드는 무대 말미 키타를 내던지는 일종의 제의(祭儀)로 마무리하는 쇼맨십까지 선보였다. 종합적으로, 그들이 서울전자음악단의 자리를 계승하기에 충분한 역량을 지니고 있음을 공언한 무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들만의 얼터너티브 록/펑크(Punk)를 구가하는 네임텍이 오후 마지막 무대에 올랐다. 불과 몇 달 전 거짓말처럼 이른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뮤지션들의 뮤즈, 팝의 왕자, 유일무이한 천재 프린스(Prince Rogers Nelson)를 추도하는 그들이었다. 몸 전체에 프린스와 관련된 페인팅을 하고 나타난 밴드는 프린스가 1984년 발표한 동명 영화 사운드 트랙 명반 <Purple Rain> 첫 곡 「Let's go crazy」로 무대를 장식했다. 크라잉넛 김인수를 초빙해 함께 하며 페이스 페인팅이 지워질 정도의 악과 깡을 보여준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제 정신이 아닌 정신'의 발로였다. 이어진 네임텍의 곡 「Poison apple」의 치달리는 무대와 백그라운드 영상의 조화, 얌전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무대에서 돌변하는 밴드의 전형을 보여준 무대가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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튠업 스테이지 휴식시간 중 치러진 장기하와 얼굴들-버디(Birdy)-김창완 밴드-세카이 노 오와리(Sekai No Owari)-제드(Zedd)의 무대도 명불허전이었지만,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 가장 빛나던 순간을 꼽자면 늦은 밤 시작한 튠업슈퍼밴드의 무대였다. 튠업 12기 밴드 코어매거진 리더 류정헌의 주도 아래, <R.I.P Brothers>라는 무대 콘셉트 본연에 충실히 모인 서로 다른 장르 12인. 이미 작년 들국화 30주년을 맞아 제작한 헌정 앨범 <들국화 30>으로 함께한 바 있는 아시안체어샷, 마호가니킹, 남메아리에 더해 ABTB, 아홉번째, 네임텍 등의 멤버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뮤지션을 기리는 가장 본질적 방법인 그들의 음악을 부르고 연주하는 것을 택했으며, 추모 대상 거장을 2015-16년에 세상을 등진 아티스트에서 범위를 넓혀 그들의 롤 모델을 전방위적으로 아울러 기리기로 마음먹었다고 전했다.

 

슈퍼밴드는 첫 곡으로 저항의 상징 너바나의 커트코베인을 위하며 록 페스티벌에 제격인 「Come as you are」을 선곡했다. 아홉번째 김한성의 그런지 보컬이 돋보인 이 지점을 지나 밴드는 ABTB 박근홍 위주로 메탈을 선보이기도 했다. 마호가니 킹의 혼성 보컬이 주도해 모든 관객의 떼창을 유도한 프린스의 「Purple Rain」에 도달한 시점에서 이미 록 페스티벌 정신은 모두에게 흩뿌려진 상태였다. 이어 3년 전 갑작스레 스러진 들국화의 주찬권에게 선사하는 「걱정말아요 그대」, 재작년 모두에 가슴에 멍이 된 마왕 신해철을 가슴으로 소환해 함께한 마지막 곡 「그대에게」 등에서는 모든 관객이 어우러져 대형 기차놀이를 거행하는 장관이 연출되었다. 감동의 40분을 뒤로 한 밴드가 끝난 후에도 아쉬움에 바삐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탄성을 자아내기도 한, 쉽사리 보기 힘든 그런 무대였다.

 

페스티벌 내내 24시간 바쁘게 달려온 관객들을 맞이한 건 튠업 헌정 무대 마지막 주자로 나선 혼성 개러지 밴드 24아워즈. 양성을 모두 가진 페르소나 ‘지기 스타더스트' 데이비드 보위처럼, 그들도 성별 불분명하게 글램 가득한 무대를 꾸며왔다. 행복한 에너지를 발산하기 위해 얼굴에 큼지막한 페이스페인팅을 하고 온 밴드는 늦은 밤 자리를 지키는 팬들을 위해 볼륨을 높인 「Get It on」, 「Jane」 등 신나는 세트리스트로 잠을 깨웠다. 이번 튠업 가장 섹시한 무대를 꼽자면 24아워즈로 큰 이견 없이 일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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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페스티벌 빅탑, 그린 스테이지에서 활약한 튠 업 출신 뮤지션들의 일면도 빼놓을 수 없겠다. 한 해 가장 더운 절기 대서(大暑)를 맞은 첫 날 메인 스테이지 불볕더위에 찌든 관객들을 뒤엎어 뜨거운 슬램까지 유도한 튠업 9기 아시안체어샷. 그들이 선사한 조선 록은 말 그대로 의자로 머리를 강타하는 록 스피릿의 계도이자 발로였다. 둘째 날, 메인 스테이지를 활짝 연 밴드는 바로 최근 C9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한 튠업 5기 바이바이배드맨. 작년 발표한 소포모어 앨범 <Authentic> 곡 위주로 구성한 세트리스트를 준비해 페스티벌 공기를 청량한 리프로 물들이다가도 몽환적 사운드로 시야를 뿌옇게 만드는 등 주특기를 과시했다. 대다수 곡의 가사가 영어로 점철되어 있지만 이미 흐느적거리고 있는 관객의 마음에 큰 동요는 없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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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던 하늘이 고맙게도 간간히 비를 흩뿌려주어 더위가 어느 정도 물러난 마지막 날, 빅 탑과 그린 스테이지 각각의 포문을 알린 이들은 누가 보아도 록 음악의 양극점에 위치한 두 밴드 튠업 16기 ABTB(Attraction Between Two Bodies)와 15기 뷰티핸섬이었다. 아직까진 게이트 플라워즈 보컬로 더 유명한 박근홍과 한음파의 베이시스트 장혁조를 중심으로 모인 '홍대 어벤저스' ABTB는 전날 헤드라이너 제드(Zedd)의 EDM 잔향이 배어있던 무대를 단번에 그런지 가득한 시애틀로 탈바꿈시켰다. '록 성골' 관객들을 단번에 매료시킨 밴드의 매력적 세트리스트로 인해 곧 발표될 데뷔작의 기대감은 드높아질 수밖에 없었을 테다. 올해 4월 첫 정규 작 <Destiny>로 부드러이 활동을 개시한 뷰티핸섬이 습기 가득하던 무대에 오르던 그 때, 박제된 심미적 풍경을 조심스레 바라보는 듯 관객들의 비현실적 감각이 꿈틀거렸다. 페스티벌 첫날부터 함께 즐기던 팀의 중추인 보컬 에디 전은 마지막 남은 기력을 모아 감미로운 목소리를 선사해 새로운 '대세'가 되기에 충분함을 증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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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안산 M밸리 록 페스티벌에서 첫 걸음마를 땐 튠업 스테이지. 종합하자면 서울전자음악단, DJ소울스케이프, 동물원의 김창기 등 호화 게스트 군단이 도움을 준 작년의 영광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스테이지 자체도 2년차의 소포모어 징크스 따위는 웃어 넘길만한 역량을 과시했으며 지산으로 자리를 옮겨 새 얼굴을 선보인 무대 외향과 음향도 합격점을 주기에 충분했다. 악기 안에서의 피치를 세밀하게 조율하는 튜닝(Tuning)을 넘어 악기 자체를 개조함으로 성능향상을 꾀하는 튠업(TuneUp). 신인 창작 뮤지션들을 '튠 업'해주며 대중 음악계와의 가교 역할을 도맡은 그들은 오늘도 어두운 곳에서 음악의 끈을 놓지 않는 인디 신의 한 줄기 등불을 밝히는 촛불 하나다.

 


이기찬(Geechanlee@gmail.com)
사진 제공 : 지산 밸리록, CJ문화재단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 백업 싱어들의 숨겨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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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력자로 머무르길 원하는 이는 많지 않다. 본인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믿으며 그 능력을 많은 이에게 인정받는 상황이라면 대부분 독립이라든가 대표로 나서기를 꿈꾼다. 성자가 아닌 이상 사람은 누구나 지금보다 더 잘되거나 나아지고 싶은 최소한의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남들이 출중함을 알아줄 때 자신의 존재를 더 드러내고 싶은 마음을 품는 것은 당연하다.

 

국내에서는 흔히 코러스라고 칭하는 백업(back-up) 싱어들에게 그러한 심리는 일반적일 것이다. 재능이 뛰어나지만 언제나 스타 가수의 보조인 탓이다.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해도 화려한 조명과 관중의 뜨거운 함성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다. 단 한 번이라도 주인공으로서 감격을 맛보고자 하는 일부 백업 가수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음반을 취입하기도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이 데뷔의 새로운 판로가 된 현재, 업계에서는 이미 알아주는 백업 싱어 천단비는 2015년 <슈퍼스타K> 일곱 번째 시즌에 출전하며 얼굴을 알리고 음반 발표의 기회도 잡았다. 하지만 대부분 백업 가수가 솔로로 데뷔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음반을 내더라도 성공하는 경우는 지극히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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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영화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20 Feet From Stardom)>은 백업 가수들의 인생과 서포터로서 체험하는 특유의 애환을 담아낸다. 1960년대 많은 히트곡을 장식한 달린 러브(Darlene Love), 롤링 스톤스(The Rolling Stones)가 1969년에 발표한 「Gimme shelter」의 백업 보컬로 유명한 메리 클레이튼(Merry Clayton), 1989년부터 롤링 스톤스의 투어 공연에 참여하고 있는 리사 피셔(Lisa Fischer), 2009년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디스 이즈 잇(This Is It)> 공연에서 듀엣 파트너로 낙점된 주디스 힐(Judith Hill) 등 대중음악계에서 명성이 높은 보컬리스트들이 경험을 털어놓고 현실을 이야기한다. 흥미로운 음악계 야사, 씁쓸한 현상, 낙관적인 암시가 공존한다.

 

가수들의 삶을 기록한 영화답게 사운드트랙은 우수한 내용을 뽐낸다. 달린 러브가 1963년에 발표한 팝, 소울 넘버 「A fine, fine boy」, 닐 영(Neil Young)의 오리지널을 걸쭉한 소울로 재해석한 메리 클레이튼의 「Southern man」, 백업 가수로서 느끼는 고충을 바탕으로 만든 주디스의 힐의 발라드 「Desperation」 등 연달아 훌륭한 가창을 감상할 수 있다. 주요 출연자들이 함께 부른 빌 위더스(Bill Withers) 원곡의 「Lean on me」는 농익은 기량의 결정이다.

 

영화에서 언급된 다른 뮤지션들의 노래는 듣는 즐거움을 배가한다. 조 카커(Joe Cocker)의 「Space captain」,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Young americans」,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Slippery people」은 백인 뮤지션들이 소울 느낌을 내기 위해 흑인 백업 가수를 섭외한 작품들이다. 뒤에서 받쳐주는 가수가 곡의 특징과 분위기를 명확하게 함을 이 노래들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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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트랙에는 수록되지 않았지만 영화에서 레너드 스키너드의 1974년 싱글 「Sweet home Alabama」가 배경음악으로 잠깐 흐른다. 이 노래는 미국 남부 지방 사람들을 비하한 닐 영의 「Southern man」에 대한 답가로 유명하다. 닐 영의 여러 작품에 참여했으며 「Southern man」을 리메이크하기까지 한 메리 클레이튼은 「Sweet home Alabama」의 백 보컬도 담당했다. 이에 대한 그녀의 소회 또한 잔재미를 제공한다.

 

주변에서는 이들의 역량을 높이 사지만 정작 이들 중 몇몇은 당장의 생계를 걱정할 만큼 경제적인 어려움을 호소한다. 음악 산업은 나날이 성장한다고 해도 트렌드가 급변하며 노래를 제작하는 추이도 많이 달라졌다. 때문에 백업 싱어의 일은 점점 줄어든다. 힙합, 전자음악 같은 1인 프로덕션 장르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으며 장비의 발달 덕에 한 번의 녹음만으로도 많은 이가 부른 것인 양 목소리와 음정을 바꿔 가면서 여러 번 덧입히는 작업이 가능해졌다. 백업 싱어의 필요성은 과거보다 절실하지 않다. <스타로부터 스무 발자국>은 변화로 말미암아 소외되는 직종, 사람에 대한 사색도 부추긴다.

 

한동윤(bionicsoul@naver.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브라질을 대표하는 뮤지션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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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축구는 '삼바축구', 주식은 '삼바주'로 통할 만큼 부럽게도 브라질과 음악인 삼바는 동격이다. 삼바 못지않게 새로운 경향을 의미하는 '보사노바' 또한 라운지음악의 축을 이루는 등 전 세계인들에게 익숙하다. 월드뮤직에서 브라질의 스탠스는 그래서 막강하다. 한마디로 브라질은 음악의 나라다. 리우올림픽을 맞아 브라질을 빛낸 음악가들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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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즈 본파(Luis Bonfa)

 

브라질의 재즈 팝, 이른바 보사노바 분야에서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조앙 질베르토와 같은 크기로 논해야 할 전설 중 전설(1922-2001)이다. 그 이유는 지구촌에 '거의 최초로' 브라질 음악의 정체를 꽂은, 영화 <흑인 올페>(Black Orpheus)의 주제가로 너무나 유명한, 바로 「카니발의 아침(Manha de carnaval, 마냐 지 카르나발)」의 작곡자라는 사실, 다른 것 동원할 필요 없이 이 한방으로 충분하다.

지금 세대에게도 그의 이름은 가깝다. 2012년 글로벌 빅 히트넘버, 고티에와 킴브라의 오세아니아 스매시 「Somebody that I used to know」가 다름 아닌 루이즈 본파의 1967년 곡 「Seville」을 샘플링 했기 때문이다. 아마 고티에도 본파의 음악을 들으면서 세련과 고품격 터치를 훈육 받았는지도 모른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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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Antonio Carlos Jobim)

 

2016 하계올림픽으로 세계가 들썩이는 지금, 인터넷에서는 출전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이 초 단위로 업데이트되고 있다. 관련 기사를 한 번이라도 검색해봤다면 “갈레앙 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라는 문장이 그리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갈레앙 국제공항의 또 다른 명칭이 '안토니우 카를루스 조빙 국제공항'이다. 지구에서 가장 핫한 도시 리우는 자국의 가장 큰 공항에 보사노바 창조주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 위상을 드높였다.

 

언제나 그렇듯 변화는 당장에 환영받지는 못했다. 1950년대 후반, 삼바로부터 태어난 '새로운 흐름(Bossa Nova)'은 쉽게 비판의 표적이 되었다. 이에 대해 조빙은 「Desafinado」(1959)로 우아하게 일침을 가했고, 그 유명한 「Garota de Ipanema(Girl from Ipanema)」 (1962)를 발표하며 세상에서 가장 느긋한 방식으로 대중을 유혹하는 데 성공했다. 수십 년의 세월을 넘어 이제는 브라질 음악의 클래식 격으로 사랑받고 있는 조빙의 작품들. 그는 여유라는 옷을 입고 익숙함을 비틀어 혁신을 이룩한 작곡가였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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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에타누 벨루주 (Caetano Veloso)

 

그가 우리나라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영화 <그녀에게>의 주제곡 「Cucurrucucu paloma」이다. 구슬프고 애상에 젖은 목소리와 달리 그의 철학과 신념은 뜨겁고 폭발적이다. 1968년 질베르토 질(Gilberto Gil) 등과 함께 <Tropicalia: ou panis et circencis>을 발표하며 브라질 문화의 전환기를 찍는 '트로피칼리아(Tropicalia) 운동'을 주도했다. 이는 브라질 팝 음악, 특히 태도적인 면에서 전통보다는 새로운 흐름을 아방가르드하게 융합한 것이었다.

 

당시 브라질을 지배한 것은 우파 브라질 군부였는데, 그는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정부에 맞서 '변화'와 '혁명'에 대한 희망을 음악에 품었다. 단호한 정치색과 이를 스스럼없이 표방하는 작품들 때문에 정권의 눈 밖에 났다. 자주 검열을 받았고 가택 연금, 급기야 추방을 당해 런던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밥 딜런, 밥 말리, 존 레논처럼 음악과 세상을 연결하는 활동가이자, 브라질 대중음악에도 큰 획을 그은 선구자이다. 그래미 어워즈 2개, 라틴 그래미 어워즈 8개를 수상하며 여전히 영향력과 창작력을 유지하고 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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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루드 질베르토(Astrud Gilberto)

 

보사노바의 여왕 아스트루드 질베르토. 보사노바를 듣고 해변과 따스한 햇살이 먼저 생각난다면 그의 「The Girl from Ipanema」 덕분일지도 모른다. 이파네마 해변에 얽힌 소녀의 이야기 말이다. 평범한 여성이었던 그는 남편 주앙 질베르토(Joao Gilberto)와의 짧은 결혼 생활동안 주앙, 스탄 게츠(Stan Getz),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의 협업 음반<Getz/Gilberto>에 참여해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이 매력적인 4인조는 브라질의 보사노바를 하나의 음악적 흐름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게 된다.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가수의 길을 택한 아스트루드는 첫 솔로 앨범<The Astrud Gilberto Album>의 흥행으로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수록곡 「Aqua de Beber」는 화음을 넣는 조빔의 목소리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보사노바가 듣기 편안한 음악이라는 인식은 아마도 기교 없이 부드럽게 내뱉는 아스트루드의 발성에서 기인했을지도. 브라질의 열기에 맞춰, 보사노바의 원조를 감상하며 더위를 기분 좋게 이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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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미르 데오다토(Eumir Deodato)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가 러닝 타임 9분의 재즈 펑크 버전으로 환생했을 때 세계는 열광했다. 유미르 데오다토라는 브라질의 걸출한 연주자, 작곡자, 프로듀서 덕분에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1896년 오푸스는 1973년, 펑키한 리듬을 발판 삼아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의 자리에 뛰어오를 수 있었다.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 등에게 곡을 써주며 1960년대부터 재능을 인정 받은 유미르 데오다토는 1970년대서부터 영미권으로 건너와 프랭크 시나트라, 쿨 앤 더 갱 등과 작업하면서 활동의 범위를 넓혔다. 라틴 음악과 보사노바는 물론 재즈와 펑크에서도 의미 있는 결과물을 많이 남김으로써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영감을 선사하기도 했다. 다음을 예측하기 어려운 아티스트인 비요크도 1995년의 앨범 <Post>와 1997년의 <Telegram>의 편곡 작업에 이 거장을 초청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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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베르토 질(Gilberto Gil)

 

1960년대 후반 브라질 청춘의 카운터 컬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의 브라질 사이키델릭 록을, 그 노래운동을 사람들은 트로피칼리아(혹은 트로피칼리즈모)로 불렀다. 그 없이, 정확히 말하자면 카에타누 벨루주와 그를 빼놓고는 이 브라질의 젊은 리얼리즘 음악은 논의 불가능이다. 트로피칼리아의 저항성을 전면화한 두 사람은 실제로 당시 브라질 군사정부에 의해 억압당했고 추방 전 9개월간 투옥되기도 했다. 가난한 노동자 출신의 좌파 룰라 대통령은 2003년 질베르토 질의 민주화투쟁경력을 코드삼아 그를 문화부장관으로 임명했다. 우리의 김명곤장관은 1년 조금 넘었지만 질 장관은 5년 역임했다.

 

음악적으로는 트로피칼리아의 록이 중심에 서지만 삼바, 보사노바, 아프리카 음악, 레게 등 다양하다. 테너이면서도 바리톤 음역을 구사하고 가성을 자주 섞지만 묵직한 느낌을 놓치지 않는다. 「Palco」, 「Back in Bahia」, 「Andar com fe」, 「Nos barracos da cidade」, 「Expresso 2222」, 「Aquele abraco」 등 대표곡도 많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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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지오 멘데스(Sergio Mendes)

 

보사노바의 제왕이자 브라질 음악 세계화의 선봉장인 건반 주자. 이번 올림픽이 열리는 리우에서 1941년 태어나 약관의 나이에 벌써 미국과 유럽을 오가며 음악적 탤런트를 만개했다. 서구에서 익혀간 새로운 감각의 재즈와 펑크(Funk)를 브라질 토속 음악에 접목. 감각적 멜로디, 세찬 리듬, 로맨틱 하모니가 돋보이는 그만의 스타일로 반백년이 넘는 기간 발표한 정규앨범만 45장에 달한다.

 

작품을 단순히 연주하지 않고 해석해 전달하는 '인터프리터(Interpreter)'를 지향하는 아티스트. 거장이라는 영예를 수여하기 가장 알맞지 않을까. 작년 그가 2일차 헤드라이너로 나선 서울재즈페스티벌 메인스테이지 올림픽 공원 잔디 마당처럼, 세르지오 멘데스와 함께라면 세계 어디서든 활기찬 리우 삼바 카니발의 따스하게 살랑거리는 바람을 맞이할 수 있다.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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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니사우스 지 모라이스(Vinicius De Morase)

 

올림픽 마스코트에 음악인이 반영되었던 적이 있었나 떠올렸다. 하계 축제동안 함께 해줄 노란색 비니시우스는 브라질 보사노바 작사가 비니시우스 지 모라이스를 따서 탄생했다. 아마도 자국 대표 작곡가인 안토니오 조빔을 먼저 생각하고 함께 할 사람을 찾는 과정에서, 두 사람이 만든 「이파네마에서 온 소녀'의 인지도가 선정에 주요했을 것이다. 브라질은 개막식에서도 모델 지젤 번천의 워킹과 함께 이 노래를 틀었다.

 

둘의 작업에서 조빔은 선율을 만들고 비니시우스는 주로 노랫말을 붙였다. 시와 희극 쓰기를 겸했던 그의 가사는 새로웠다. 지적이면서도 애상적인 표현은 잔잔하게 속삭이는 보사노바와 잘 어울렸고, 서구 재즈를 접하며 자국에서도 질 높은 음악을 원했던 중산층들을 빠져들게 했다. 마스코트 투표에서 비니시우스에 표를 준 국민들의 지지는, 이 음악가가 사후에도 여전히 특별하게 기억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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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뇨 다 코스타(Paulinho Da Costa)

 

계란 판을 닮은 슈칼로(Chocalho)나 탬버린 모양의 판데이로(Panderio), 삼바에 주로 사용되는 수르도(Surdo) 등, 브라질의 전통악기들을 포함한 온갖 퍼커션을 능숙히 다루는 천부적인 퍼커셔니스트, 파울리뇨 다 코스타. 1973년 세르지오 멘데스와의 협업으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200개가 넘는 악기들을 소화하며 브라질의 대표적인 멀티플레이어로 자리 잡았다. 데뷔 앨범 <Agora>과 <Happy People> 등의 솔로 커리어보단 유명 팝가수와의 콜라보레이션, <Saturday Night Fever>와 <Triller>, <True Blue>등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수놓은 명반들에 참여한 아티스트로 더욱 유명하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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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베르투 카를로스(Roberto Carlos)

 

어느 분야에서건 왕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는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라틴 음악의 왕'이라 불리는 호베르투 카를로스는 브라질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아티스트로 손꼽히기에 충분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영미권의 로큰롤과 팝을 받아들여 자국에서 큰 유행을 일으켰으며, 자신의 사운드에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 어 등의 다양한 언어를 붙여 라틴 음악의 세계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1960년대 중반, 브라질의 대중음악 MPB의 형성 과정에서도 그의 이름을 확인해볼 수 있다. 전 세계에서 1억 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렸을 뿐 아니라 그래미 라틴 음악 부문에서도 트로피를 수상한, 브라질이 사랑하고 세계가 사랑하는 팝 음악계의 또 다른 왕이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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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코스타 (Gal Costa)

 

브라질의 여성 뮤지션으로 2011년도에 제12회 <라틴 그래미 어워드>에서 특별상 부문인 '라틴 레코딩 아카데미 평생공로상'을 수상하였다. 1945년 출생으로 브라질 음악 대부 카에티누 벨로주(Caetano Velose)와 절친하여 데뷔앨범인 <Domingo>을 벨로주와 공동 작업했다. 수록곡 중 하나인 「방랑자의 심장(Coracao Vagabundo)」이 인기를 얻어 보사노바를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자리잡았다.

 

1968년 당시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청년문화운동 '트로피칼리아(Tropicalia)'에 참여하여 벨로주, 지우베르투 지우 등과 함께 프로젝트 앨범을 발매했다. 1982년 <Fantasia>에 수록된 흥겨운 리듬의 삼바곡 「오지의 축제(Festa Do Interior)」가 크게 히트하며 원로가수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여전히 브라질 국민들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는 그는 최근까지도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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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지 벵 조르(Jorge Ben Jor)

 

“브라질은 조르지 벵 조르가 노래한 것처럼. 신의 은총을 받고 아름다운 자연을 가진 열대국가입니다.” 2011년 3월 30일. 그의 이름은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에 등장한다. 그의 음악은 풍부한 태양과 어우러진 울창한 자연처럼 삼바, 펑크, 록, 그리고 보사노바를 풍요롭게 혼재한다. 특히 그는 록과 삼바를 최초로 접목시킨 삼바록을 만들기도 했다. 부드럽지만 어딘가 애환이 담긴 호소력 높은 목소리. 억압과 속박을 유머와 풍자로 풀어낸 노랫말을 불렀다. 「Mas que nada」가 브라질에서 큰 히트를 쳤고, 이를 Sergio Medes와 Tamba Trio가 리메이크해 전 세계에 알려졌다.

 

이 외의 곡도 많은 이들이 영감을 주어 다양한 샘플링과 리메이크가 되었다. 급기야 로드 스튜어트의 히트곡 「Da ya think I'm sexy?'는 「Taj Mahal」을 표절해 법정까지 가야만 했다. 또한 그의 노래와 축구를 빼놓을 수가 없다. 「Take it easy my brother Charles」 (이 노래는 영화 <웰컴, 삼바>에 삽입되기도 했다), 「Ponta de lanca africano (Umbabarauma)」등은 축구를 소재로 하고 있어 더욱 사랑 받는 노래들이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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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우통 나시멘투(Milton Nascimento)

 

1960년대 후반, 보사노바 등 브라질 전통 음악과 재즈, 로큰롤 등 서구 음악의 만남은 MPB(Musica Popular Brasileira)라는 브라질만의 독특한 대중음악 양식을 발전시켰다. 이러한 MPB의 대중, 세계화에 혁혁한 공을 세운 인물은 단연 미우통 나시멘투. 그는 뛰어난 송라이터인 동시에, 사회ㆍ철학적 노랫말을 쓰는 시인이었다. 가창 또한 상당했다. 특유의 편안한 음색과 완벽한 발성은 어떤 노래도 그만의 색으로 풀어냈고, 「Maria, Maria」, 「Francisco」 등에서 보여준 유니크한 팔세토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1966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이래, 50년간 그가 발매한 음반의 수는 30장이 넘는다. 보다 팝적인 터치로 미국 시장 문을 두드린 <Courage>(1968)에서부터 지난해 두두 리마 트리오(Dudu Lima Trio)와 함께한 <Tamarear>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따뜻한 목소리와 서정적 멜로디는 변함없이 아름답다. 위대한 창작자이자 선구자였던 그는 영원한 브라질 대중음악계의 자랑이요, 별이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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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제 (Tom Ze)

 

(결과는 다르지만) 브라질은 우리와 안타까운 현대사를 공유한 나라다. 1964년에 발생한 군사 쿠데타로 무려 20년에 걸쳐 독재 정권을 겪었고, 1984년 직선제 쟁취를 목표로 한 민주화 운동을 통해 시민들의 국가를 회복했다. 우리에게 김민기의 「아침이슬」이 있었고 민중의 송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있었듯이 브라질에서도 군부에 대항해 예술가들의 움직임이 일어났으니, 바로 트로피칼리아(Tropicalia)다. 전방위 음악가 톰 제는 까에따노 벨로주(Caetano Veloso)와 더불어 그 중심에서 활동하던 인물이다.

 

트로피칼리아 운동의 대표 뮤지션들이 발표한 컴필레이션 <Tropicalia: ou panis et circencis>의 첫 번째 트랙은 'Miserere Nobis(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이다. 이 구절은 교회 미사에서 신께 구원을 바라는 의미로 불린다. 1968년 <Grande Liquidacao>를 시작으로 그는 이러한 시대정신에 사이키델릭한 무드를 더한 작품을 쏟아냈다. 악기의 특수 주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고, 불협화음과 불규칙한 박자 변주, 록 사운드의 도입으로 강렬하고도 혼란스러운 색채를 가미했다. 실험과 진보라는 말이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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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 무탄치스(Os Mutantes)

 

트로피칼리아는 카에타누 벨루주, 질베르토 질, 톰 제(Tom Ze), 갈 코스타(Gal Costa) 등 솔로가 먼저 떠오르지만 밴드로는 우즈 무탄치스를 선두에 놓아야 한다. 당연히 영미의 사이키델릭과 브라질의 전통성을 배합, 트로피칼리아 음악의 전형을 이루면서 국외에도 '가장 유명한 브라질 밴드'로 이름이 퍼졌다. 질베르토 질, 카에타누 벨루주와 짝 지어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면서 유명해졌다.

 

1968년 3회 리우 국제 송 페스티벌에서 카에타누 벨루주와의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음악이 지나치게 실험적이고 너무 복장이 화려하고 성적 이미지를 내세운다는 이유로 카에타누 벨루주와 함께 야유를 받고 쫓겨나기도 했다. 당대에 비지스가 리메이크했고 나중 2008년 맥도날드 광고음악으로 쓰인 곡 「A minha menina」와 「E Proibido Proibir」 등이 대표곡. 멤버가 자주 바뀐 가운데 1970년대 후반 해체했으나 2006년 재결합해 2008년 30년 만에 신곡 「Mutantes depois」를 내놓았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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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ris Albert (모리스 알버트)

 

1973년 기타리스트로 데뷔한 브라질 출신의 모리스 알버트는 데뷔곡 「Feelings」 (1975)가 빌보드 차트에서 32주를 머무르는 기록을 세우며 주목받는 싱어송라이터로 급부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강남 1970>의 OST로 삽입되어 70년대의 향수를 고스란히 불러일으켜 당시 최고의 히트곡이라는 명성을 다시 한 번 되살리기도 했다. 블루스와 재즈 사이를 오가고 우울한 선율이 전반에 짙게 깔린 곡은 한창 올림픽의 환희에 도취해있는 지금과는 어울리지 않는듯하지만 밝음과 어둠이 혼재하듯 승패의 결과에서 오는 씁쓸함, 그 애환을 보듬기엔 충분하지 않을까.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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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듣는 휘파람 명곡 23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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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파람을 불어본 적이 언제인지. 각박한 삶 때문인지 아니면 소음공해로 전락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거리와 골목에 휘파람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막 나온 '블랙핑크'의 「휘파람」이 웅변하듯 음악에서 휘파람은 여전히 주요 악기로 활용된다. 곡조나 리듬과 잘 섞이면 그것은 인공위성(人工偉聲), 사람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소리로 승격한다. 가을과의 어울림도 좋다. 휘파람 소리 하면 떠오르는 팝과 가요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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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 밀러(Mitch Miller) - 「March from the River Kwai - Colonel Bogey」 (1957) - 영화 <콰이강의 다리> OST

 

아마도 휘파람 음악이 갖는 일반 이미지를 결정한 연주곡일 것이다. 1957년 영화<콰이강의 다리(Bridge On The River Kwai)> 속에서 일본인 수용소에서 영국군 포로들이 분 휘파람 소리는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저항적 자세와 희망을 상징하면서 기성세대의 청감(聽感)에 깊숙이 스며들었다.

 

드럼과 오케스트라 사운드와 맞물려 그 소리는 보무당당하고 호쾌하다. 휘파람의 중독성으로 따지면 가히 역대 급! 오죽하면 이런 음악을 인정하지 않았을 록 전문지 <롤링 스톤>이 휘파람 명작 15곡을 선정하면서 “한번 들으면 뇌 안에서 잔인할 정도로 계속 맴돈다”고 '경고'했을까. 오래 전 국내 팬들도 머리가 벌겋게 되도록 이 곡으로 휘파람 배틀을 벌이곤 했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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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스 레딩(Otis Redding) - 「(Sittin' on) The dock of the bay」 (1968)

 

바람처럼 사라져버린 '소울의 왕(King of soul)'의 대표곡. 오티스 레딩은 이 노래를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인 스티브 크로퍼(Steve Cropper)와 함께 작곡을 했다. 대부분 녹음을 마친 상태에서 갑작스러운 비행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홀로 남은 스티브 크로퍼는 임시로 레코딩을 했던 오티스 레딩의 휘파람을 그대로 두었고 그의 마지막 숨결은 영원히 노래 속에 남게 되었다. 전주에 파도와 갈매기 소리를 더해 더욱 애잔함이 묻어난다. 노래는 당시 베트남 전쟁에서 사투를 벌이던 병사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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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레논(John Lennon) - 「Jealous guy」 (1971)

 

존 레논의 역작<Imagine>엔 평화, 반전(反戰), 고찰 그리고 사랑이 담겨있다. "국가, 종교는 없어요. 세계는 하나가 될 거에요."('Imagine’), "군인이 되고 싶지 않아요 엄마, 죽고 싶지 않거든요."('I don't wanna be a soldier mama I don't wanna die'), "고작 yesterday를 만들어냈을 뿐."('How do you sleep?'). 잘난 척과 허례허식을 버리고 자신의 언어로 진실한 이야기를 전하는 존 레논. 그중 「Jealous guy」는 질투와 시기를 반성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러브송이다.

 

전신인 「Child of nature」의 가사를 바꾼 그는 "인도에 있었을 때, 마하리시의 말씀에서 영감을 얻었고, 이 노래는 곧 「Jeaslous guy」가 된다. 노래의 의미는 분명하다. 사랑하는 여자를 가두고 세상과 단절시키며 소유하려는, 그런 질투심 많은 남자를 묘사한 것."이라고 밝혔다. 사랑하는 여자는 필시 오노 요코일 터. 폴 매카트니를 향한 질투라는 설은 폴 자신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니 어느 쪽을 믿던 자유. 현악 세션과 피아노, 어쿠스틱 기타가 만들어 내는 아름다운 합주는 곡을 풍성하게 만들며 반주 속 휘파람은 자기 고백적 가사를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배경이야 어떻든 사랑스러운 곡임은 틀림없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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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조엘(Billy Joel) - 「The stranger」 (1977)

 

휘파람에도 종류가 있다. 흥에 겨워 내는 소리가 있는가 하면, 고독과 쓸쓸함의 결정체도 있다. 빌리 조엘의 명반<The Stranger>의 동명 타이틀곡 속 휘파람은 명백히 후자다. 도합 2분에 달하는 인트로와 아웃트로에서 피아노 선율과 어우러지는 휘파람은 '이방인'의 무드를 제대로 표현해냈다. 노래의 본질은 온전한 로큰롤이었으나, 도입부와 엔딩은 그 자체만으로 또 다른 음악이었다.

 

국내 1970년대 팝 팬들이 잊을 수 없는 이 휘파람 수작에는 재밌는 제작 비화가 전해진다. 노래를 작곡한 빌리 조엘이 전설적인 프로듀서 필 레이먼(Phil Ramone)에게 휘파람 선율을 들려주며 이 멜로디를 연주할만한 악기가 필요하다고 하자 프로듀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니, 악기는 필요치 않아. 그 휘파람, 그게 '이방인'이야.”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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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사이먼(Paul Simon) - 「Me and Julio down by the schoolyard」 (1972)

 

1972년 발표된 시대적 명반<Paul Simon>의 두 번째 싱글. 곡에 'Me and Julio'라는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담았지만 붙잡혀 간 죄목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아 많은 의문을 남겼다. 폴 사이먼 자신은 이를 두고 '불가해한 엉터리 시'를 끼적였을 뿐이라 격하시켰지만 일종의 약물 찬가로 저물어가는 히피 세대를 위한 곡이라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2분 44초 짧은 러닝 타임이지만 삼바 뮤직에 주로 쓰이는 퍼커션 쿠이카(Cuica)의 흥겨운 라인 위에 안정적인 보컬을 얹어 여운을 남긴다. 뉴욕 센트럴 파크 한가운데서 휘파람 흥얼거리던 폴 사이먼의 젊은 시절이 그리워지는 순간.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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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글스(The Bangles) - 「Walk like an Egyptian」 (1986)

 

1980년대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여성 록 밴드 뱅글스의 1987년 히트 넘버. 댄스 그루브를 주조하는 리듬 섹션과 기타 연주를 지나면 귀에 확 꽂히는 휘파람이 등장한다. 캐치한 메인 멜로디를 휘파람으로 짧게 들려주는 구간은 곡의 완급을 조절하며 노래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실은 「Mickey」의 토니 바실(Toni Basil)이 거절하며 빛을 못 볼 뻔했던 곡이지만 뱅글스로 넘어오면서 '대박'이 났다. 그들의 2집 <Different Light>에 실린 노래는 4주간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르며 앨범의 상업적 성공을 견인했고, 밴드의 대표 곡으로 남았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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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 맥퍼린(Bobby McFerrin) - 「Don't worry, be happy」 (1988)

 

바비 맥퍼린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이 곡의 휘파람 도입부를 들었을 때 "어?" 하지 않을 수 없다. 맥퍼린의 대표곡일 뿐만 아니라 '지구인의 히트곡'이니까. 1988년 발표돼 그해 빌보드와 그래미를 휩쓸었으며, 톰 크루즈 주연의 <Cocktail>을 시작으로 여러 영화에 삽입돼 작품의 주요한 순간을 장식했다.

 

마냥 평온하고 낙관적으로 보이는 이 곡에는 그의 엄청난 음악적 재능이 담겨 있다. 맥퍼린은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는 층(layer)을 쌓는 데 능란했다. 음악의 모든 구성 요소를 목소리 하나로 만들어낸 것. 아카펠라를 공부하고 싶다면 이 곡을 교본으로 삼아도 좋다. 코드를 깔아줄 베이스, 휘파람으로부터 시작돼 곡 내내 반복되는 모티브가 발전시키는 보컬의 화음, 프레이즈 중간에 등장하는 효과음 모두 아카펠라의 정석이다. 그는 별다른 도구(악기) 없이도 혼자 무수한 크레디트를 채우며 몇 사람의 몫을 맡았다. 이제는 '바비 맥퍼린'이라는 악기가 나와야 하지 않을까.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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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가일스 밴드(J. Geils Band) - 「Centerfold」 (1981)

 

첫사랑을 성인 잡지(Centerfold)에서 보게 되었다면? 학창시절 순정에 대한 환상은 깨져버렸지만, 어느새 휘몰아치는 호기심에 잡지를 사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힘차게 튀어나오는 클라이맥스의 밴드 연주는 새롭게 뿜어져 나오는 소년의 감정이 담겨있다. 기타 리프만 들어도 대부분에게 익숙한 곡일 테다. 주요 멜로디가 송대관의 「해뜰날」(1967)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역(逆) 표절 시비를 부르기도 했다. 40대들은 이 신스팝 사운드에 맞춰 춤을 췄고, 제이 가일즈 밴드는 처음으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둔다. 얼른 집에 가서 잡지를 봐야겠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휘파람. 그건 솔직한 청춘의 휘파람 아닐까.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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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즈 앤 로지스(Guns N' Roses) - 「Patience」 (1988)

 

1988년 발표한 <G N'R Lies>에 수록된 「Patience」는 보컬 액슬 로즈의 휘파람 소리로 시작된다. 첫 앨범 <Appetite For Destruction>에서 불안한 정서의 결정체를 보여줬던 건즈 앤 로지스의 날카로운 사운드를 기억한다면 새삼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거친 하드록에 금방이라도 앰프를 찢을 듯이 관통하던 일렉 기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어쿠스틱 기타가 자리 잡았다. 특유의 소란스러움을 찾아 볼 수 없이 부드럽게 사포질 된 사운드는 무심히 흐르는 휘파람 소리와 어우러져 그리움을 노래하고, 그 위로 내뱉는 건조한 음색을 듣고 있자면 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이맘때쯤 살며시 고개를 드는 쓸쓸함과 어느새 마주하게 된다.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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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르피언스(Scorpions) - 「Wind of change」 (1991)

 

여기서의 휘파람은 그리움, 고즈넉함, 쓸쓸함과는 거리가 먼 기대에 찬 미래의 희망이 넘실거린다. 휘파람이 갖는 고전적 긍정 정서에 봉사하는 곡이다. 독일 밴드 스코르피언스는 동독과 서독으로 갈려 있던 모국이 베를린장벽과 냉전종식에 의해 마침내 통일되자 '변화의 바람'이라는 타이틀로 그 설렘과 기쁨을 노래했다. 도입부터 흐르는 '룰루랄라' 휘파람 소리는 설령 가사를 몰라도 어떤 내용의 곡인지를 즉각적으로 알게 해준다. 당연히 휘파람을 삽입한 유명 곡 리스트에서 빠지는 일이 없다. 우리들에게는 「Holiday」, 「Still loving you」, 「Always somewhere」 등 많은 골든 애청곡을 보유한 밴드이지만 정작 이들이 미국시장에서 톱10과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곡은 이 싱글이 유일하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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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즌 제인(Citizen Jane) - 「So sad and alone」 (1993)

 

「So sad and alone」은 유럽이다. 이 노래를 듣고 절대 중앙아시아나 북아프리카가 연상되지 않는다. 낙엽으로 총천연색으로 물든 도회적인 유럽의 한 도시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시티즌 제인의 「So sad and alone」은 당시 재즈 붐이 불던 국내 음악팬들의 허세를 채워주는 곡이었다.

 

벨기에의 혼성 트리오 시티즌 제인이 1993년에 발표한 데뷔 앨범의 수록곡 「So sad and alone」은 이듬해인 1994년부터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곧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면서 전 국민적인 관심을 받았다. 이들이 들려주는 재즈와 팝의 절충주의는 카페에서 듣기 좋은 라운지 음악 스타일로 탄생했고, 도입부와 중간 간주에 등장하는 휘파람 소리는 쓸쓸함과 외로움을 한 번쯤은 겪어봐도 괜찮을 낭만으로 승화시켰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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벡(Beck) - 「Sissyneck」 (1996)

 

<Odelay>를 제작하며 벡은 그간 자신이 들어온 갖가지 음악들로부터 수많은 샘플 원료를 뽑아냈다. 「Sissy neck」 역시 이 훌륭한 사운드 디자이너의 너른 안목 속에서 태어난 콜라주 중 하나였다. 펑크 밴드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의 「Life」로부터 오르간 라인을 가져왔고 컨트리 록 밴드 컨트리 펑크의 「A part of me'로부터 베이스 파트를 꺼내왔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는지 벡은 재즈 아티스트 딕 하이먼의 「The moog and me」에서 휘파람 소리를 잘라내 왔다. 다른 재료들만큼이나 곡에 자주 출연하지는 않지만 휘파람은 곡에 주의를 집중시키게 하는 '비중 있는' 역할을 수행한다. 장난기 어린 터치에 벡의 비범한 재능이 담겨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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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 - 「Twisted Nerve」 (2003) 킬 빌 OST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킬 빌 - 1부>사운드트랙엔 우리에게 친숙한 몇몇 곡들이 수록되어있다. 예전 휴대전화 광고음악으로 사용된 낸시 시나트라(Nancy Sinatra)의 「Bang bang (My baby shot me down)」을 필두로, 듣자마자 '아! 이거!'하고 '무릎'을 칠만한 토모야수 호테이(Tomoyasu Hotei)의 「Battle without honor or humanity」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도 사용된 곡이자 '빠삐놈' 신드롬으로도 유명한 산타 에스메랄다(Santa Esmeralda)의 「Don't let me be misunderstood」까지. 스타일리시한 영상에 접목된 곡들은 B급 영화뿐만 아니라 팝 음악에도 능통한 타란티노의 탁월한 선곡 센스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중, 「Twisted nerve」는 알프레드 히치콕과의 협업으로 유명한 작곡가 버나드 허먼이 1968년 동명의 영화를 위해 만든 곡.<킬 빌 - 1부>에선 악역인 엘 드라이버가 휘파람을 불며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주인공을 암살하기 위해 서서히 다가가는 장면에 사용되었는데, 곡이 뿜어내는 음산함과 서스펜스가 상당하다. 특유의 서늘함과 쓸쓸함, 그리고 왠지 모를 무게감. 휘파람 소리가 아니었다면 확실히 그 긴장감이 덜했을 것이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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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키스(Black Keys) - 「Tighten up」 (2010)

 

휘파람 라인에는 귀에 잘 감기는 멜로디와 산뜻한 분위기가 담겨있다. 곡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 캐치하면서도 가벼운 휘파람 소리는 댄 아우어바흐의 리드미컬한 블루스 기타와 패트릭 카니의 그루비한 퍼커션 비트가 전할 흥겨운 사운드를 잘 예고한다. 가뜩이나 멋진 곡에 휘파람이라는 매력적인 장치가 덧붙어 모양새가 더 멋지게 됐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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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비욘 앤 존(Peter Bjorn and John) - 「Young folks」 (2006)

 

휘파람은 소리의 굵기에 비해 그 색채가 너무 강렬해서 아주 많은 경우에 곡의 주요 리프로 쓰인다. 없어도 될 양념쯤으로 쓰는 일은 드물다. 스웨덴의 인디 밴드 피터 비욘 앤 존의 세 번째 스튜디오 앨범 <Writer's Block>의 리드 싱글로 발매되었던 이 곡에서도 휘파람은 그 의도에 상관없이 큰 힘을 발휘한다. 리듬을 잘게 쪼개 처음부터 심장 박동을 키운 드럼, 그 위로 담백하게 얹은 베이스, 휘파람 소리가 돋보일 수 있는 조건에서 이들은 오히려 무심하게 하강하는 모티브를 그려낸다. 편견이라면 편견이겠지만, 비교적 추운 스칸디나비아의 기운이 영향을 준 게 아닐까. 언뜻 인상을 죽이는 것 같은 휘파람의 쓰임이 오묘한 매력으로 파고들어온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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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 더 피플(Foster The People) - 「Pumped up kicks」 (2011)

 

이들의 음악은 화려한 전자음이 전경을 꾸미고 기타와 드럼은 철저히 백업을 담당한다. 일렉트로니카와 록의 만남은 댄스 플로어에 적합한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밴드를 탄생시켰고, 그 정체성의 시작은 「Pumped up kicks」. 단순한 드럼 비트, 반복적인 베이스 리프의 뼈대 위에 벌스에 가한 복고적인 보컬 이펙트와 그루비한 기타를 얹혀 약간의 뽕짝을 가미한 이 팝 넘버는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곡의 기조를 이어가기 위해 <Torches>를 발표하게 된다. 「Pumped up kicks」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진 트랙들로 구성된 만큼 댄서블하고 "힙"하다. 여담이지만, 프런트 맨 마크 포스터는 힙스터를 증오한 나머지 우울하고 혼란스러운 10대 시절을 힙한 음악으로 포장해 이들을 춤추게 하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시도했다고. 눈 뜨고 코 베인, 그런 느낌이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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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샤프 앤 마그네틱 제로(Edward Sharpe & the Magnetic Zeros) - 「All wash out」 (2012)

 

바로크 팝의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출신 인디밴드 에드워드 샤프 앤 마그네틱 제로의 트랙이다. 대중적 성공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누렸던 <Here>의 끝자락에 「All wash out」이 자리 잡고 있다.

 

다양한 전통악기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따듯한 선율 위로 타악기 음인지 전자음인지 모를 천둥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이 굉음은 자연의 웅대한 존재감을 드높이며 인간의 실존을 약화시킨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러한 영향력 아래에서 뻗어내는 소리이기에 그들의 평화로운 외침은 의미를 얻는다. 인간 본연의 악기인 휘파람 또한 노래에 합류하여 존재론적 역할을 다한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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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거스 스톤(Angus Stone) - 「Wooden chair」 (2007)

 

'여행을 떠나요'라고 직접 말하지 않아도 무작정 떠나고픈 욕구를 주는 노래들이 있다. 누나 줄리아 스톤과 함께 활동했던 앵거스 앤 줄리아 스톤(Angus & Julia Stone)으로 유명해진 앵거스 스톤의 「Wooden chair」도 그중 하나. 곡은 단순하다. 쉬운 주법의 어쿠스틱 기타와 드럼, 간단한 멜로디, 낮은 톤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간단한 어구들, 이러한 단편적인 요소들 속에서 곡을 특별하게 한 건 바로 코러스에 쓰인 휘파람 소리다. 여유로운 휘파람 멜로디가 가져다주는 낭만적인 안락, 그 하나만으로도 이 노래는 여행 플레이리스트로서의 가치가 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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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룬 파이브(Maroon 5) - 「Moves like Jagger」 (2010)

 

곡 자체도 신났지만, 휘파람을 신스로 대체했다면 이 같은 명랑함은 놓쳤을 것이다. 넘실대는 휘파람이 멋진 슈트를 걸친 신사가 보내오는 구애 신호처럼 머릿속을 맴돈다. 여기에 애덤 리바인의 알싸한 가창이 뒤섞여 톡 쏘는 탄산송을 만들어냈다.

 

마룬 5의 음악은 잘 빠진 젠틀맨과 같다. 친절한 멜로디를 가졌고, 크게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에너지의 역동성은 담아낸다. 마치 사뿐한 셔플 댄스로 클럽 홀을 장악해가는 식이다. 명확하게 꽂히는 보컬과 대중적인 후렴 역시 국내 시장에서 이들의 입지를 굳건하게 했다. 이 곡은 밴드에게 2번째로 넘버원을 선물한 대표 히트곡이자, 이후 음악 색깔이 일렉트로닉 댄스 팝으로 이어지게 하는 전환점이 된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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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성 - 「나락 (奈落)」 (2008)

 

휘성의 여섯 번째 발매작이자 미니앨범인 <With All My Heart And Soul>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트랙이다. 격정적 슬픔과 우울함으로 대표되는 그의 음악적 성향이 제목에서부터 고스라니 드러난다.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극한 상황. 불교 용어로는 '지옥(地獄)'을 뜻하는 「나락(奈落)」은 이별로 인한 극한적 비관을 표현하는 단어로 적절하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로크가 곡을 리드하는 와중 슬며시 얹은 피아노 반주는 가사의 무게감을 더한다. 최소화된 편곡 속에 1절이 끝나고 불안히 떨리는 휘파람 소리가 낮게 깔린 첼로의 음계와 어우러지며 감정의 굴곡을 심화시킨다. 비참할 정도로 애달픈 노랫말과 그에 알맞은 격정적 보컬 활용은 곡의 완성도를 더한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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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래곤(G-Dragon) - 「Missing you」 (2012)

 

휘파람은 인간의 소리 중에 가장 찬바람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리움과 외로움을 노래할 때 이 소리가 유독 잘 어울리는 지도 모르겠다. 「Missing you」도 마찬가지다. 곡의 전반에 사랑의 부재와 허무함이 존재한다. 더욱이 이질적이지만 독보적인 두 존재. 지드래곤과 김윤아가 함께해 더욱 독특한 질감과 깊이를 가진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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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원에이포(B1A4) - 「Solo day」 (2014)

 

옛날의 '홀로'와 '혼자' 노래는 죄다 눈물투성이와 통증이지만 1인 가구 솔로족, 모태솔로, 집콕족이 쏟아져 나오는 우리 시대에 '홀로'는 혼자 사는 즐거움을 아는 '자립의 솔로'가 되어야 한다. 비원에이포의 「솔로 데이」는 과거의 홀로 노래에 담긴 비탄이나 좌절의 심정과는 완전 작별한 채 혼자의 삶을 새로운 표준으로 끌어올린다.

 

'평범한 사람과는 달라/ 혼자만 있는 게 좋아/ 가벼운 맘으로 살아 누가 쳐다본데도/ 헤어지잔 네 말에 쿨하게 임하는 자세...' 혼자 있는 게 한마디로 쿨하다는 거다. '이제는 즐겨야 돼/ 이별을 즐겨야 돼/ 기분 좋은 solo solo day...'라고 못 박는 가사는 거의 솔로 '찬가' 수준이다. 이 대목을 노래하는 부분에서 명랑하고 상쾌한 휘파람을 동원한다. 즐거운 솔로 인생!!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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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핑크(BLACKPINK) - 「휘파람」 (2016)

 

YG의 새 걸그룹 블랙핑크는 데뷔와 동시에 직속 선배 투애니원의 비교 대상이 됐다. 가창과 랩의 질감, 음악적 색채 등 많은 부분이 유사했다. 몰개성의 늪에서 이들을 구한 것은 휘파람이었다. 전주를 비롯, 곡의 전반에 깔린 휘파람 라인은 노래를 감각적으로 감쌌다. 곡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20초의 후주(後奏). 힙합 비트와 휘파람 선율, 리사의 랩이 조화를 이루며 강렬한 피날레를 만들었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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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록 밴드, 내년 페스티벌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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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 록 페스티벌을 관람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반갑게 느껴지는 것은, 바로 일본 팀들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과거에도 엘레가든(Ellegarden)이나 라르크 앙 시엘(L'Arc~en~Ciel) 등이 헤드라이너를 맡은 바 있지만, '대스타 모셔오기'에서 벗어나 다양한 제이록 밴드들이 소개되고 있는 최근의 경향은 제이팝 담당필자로선 신나는 일일 수밖에 없다. 올해만 해도 밸리록에는 세카이 노 오와리(SEKAI NO OWARI), 펜타포트에는 오럴 시가렛츠(Oral Cigarettes)와 크로스페이스(Crossfaith), 스파이에어(Spyair)까지. 양념에서 벗어나 라인업을 관통하는 중요한 부분으로 조금씩 그 지분을 넓히고 있는 중이다.

 

이와 같은 경향은 아무래도 여름 록 페스티벌의 이미지에 걸맞는 열광적인 무대를 펼칠 수 있는 성향의 팀들이 비교적 많은 것에 기인한다. 음악을 알든 모르든 놀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작년의 스완키 덩크(SWANKY DANK)나 올해의 오럴 시가렛츠를 통해 이미 증명된 바 있지 않은가. 그래서,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팀 중 내년에 왔으면 하는 일본의 록 밴드들을 네 팀만 언급해보려 한다. 무엇보다 록 페스티벌에 걸맞는 즐거움과 일체감을 주는 이들을 선별한 리스트임을 알리는 바이다. 관계자 여러분들, 부디 내년 섭외 시 참고해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큐소네코카미(キュウソネコカ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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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필살 유토리 세대'라고 일컬어지는 그들. 혹자는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진 밴드가 인기를 얻는다는 사실로 하여금 옆 나라 록신에 대해 통탄을 금할지도 모르겠다. 초반 1분만 보아도, 연주나 노래실력이 그다지 뛰어나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올 테니까. 이 팀의 장점은 '좋은 밴드'의 척도를 다르게 두어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그것을 적확히 설명하는 현지의 한 음악필자가 쓴 코멘트를 옮겨 적는다.

 

'큐소가 청중에게 제공하고 있는 서비스는, 밴드음악이 아닌, 축제 그 자체다'

 

록 페스티벌에서 관객을 미치게 만들려면 '판'을 깔아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이들은 그 측면에서 굉장한 강점을 가지고 있다. 연주가 노래가 조금 서툴면 어떤가. 보컬의 지시에 이리 휘둘리고 저리 휘둘리는 관객들의 표정은 그 누구보다도 즐겁다. 그리고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친구와 함께 그 라이브의 즐거움을 이야기하며 웃을 수 있다면, 이 역시 밴드의 의무 중 하나를 충실히 이행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빠른 템포의 곡조, 흐름을 이끄는 신시사이저와 콜 앤 리즈폰스가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관객참여 유도형 가사. 현지에서도 이들의 히트를 의아하게 생각하던 시기가 있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지금은 퍼포먼스로 이만큼의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밴드 또한 흔치 않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깨달아 가고 있는 단계. 본인 역시 재작년 보고 왔던 <Sweet Love Shower>에서의 어떤 무대들보다 강하게 각인되어 있는 라이브기도 하다. 단언컨대, 살면서 그 정도로 세상 즐거웠던 적, 정말 얼마 없다. 그만큼 '재미'나 '엔터테인먼트' 측면에서는 가히 압도적인 큐소네코카미의 라이브. 내년 국내 록 페스티벌 섭외를 강력 추천합니다.

 

와니마(WAN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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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크로스오버 성향이 짙어지면서 옛날만큼 머리를 비우고 뛰어놀만한 음악이 사라져가고 있는 작금에, 와니마 같은 순수 펑크 혈통을 가진 밴드의 등장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만하다. 첫 소절을 듣기만 해도 이 밴드 앞에서 가만히 팔짱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을터. 켄 요코하마가 이끄는 인디레이블 명가 <Pizza of Death>에 둥지를 틀고 있는 그들은, 스카펑크를 기반으로 캐치한 멜로디, 적재적소의 코러스 사용을 통해 급성장중인 라이브형 밴드다. 그들의 데뷔 앨범 <Are You Coming?>은 전일본 CD샵 점원들의 투표만으로 수상자가 결정되는 제8회 CD샵 대상의 2등 격인 준대상을 수상하기도. 스피디한 사운드를 타고 마음껏 뛰어놀고 싶다면, 아마 이 밴드가 그 기대에 부응해 줄 것이다.

 


토리코(Tric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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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다른 것 없이 무대에서의 기백만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팀이 있는데, 이 밴드가 그렇다. 드럼을 맡고 있던 고마키의 탈퇴 이후 여성 3인조의 구성을 이어가고 있는 토리코는, 변박자의 잦은 사용을 통한 의외성과 고도의 연주력, 섬세한 보컬 표현의 삼박자를 갖춘 무대로 정평이 나 있는 팀이다.

 

2013년 <Rock in Japan> 관람 당시 접했던 그들의 퍼포먼스는, 어디에서도 목격하지 못했던 폭발력과 응집력을 보여주며 일순간 넋을 잃게 만들었다. 지금이야 경험이 쌓여 훌륭한 무대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날따라 긴장했는지 서투른 모습을 보여주었던 스캔들(SCANDAL)의 다음 순서였던 탓에 더욱 그 잔상이 강하게 남아있기도. 특히 키다 모티포(キダ モティフォ)의 광기어린 기타 플레이는 포효 그 자체로 느껴질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걸치고 있는 독특함이 국경을 넘어 마니아를 형성해, 유럽 및 아시아 투어 개최를 통해 그 응원에 부응하는 중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팬들을 모을 수 있지 않을까.

 


블루 인카운트(Blue En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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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이 가진 열기, 무대에 대한 절실함, 누구보다도 큰 포부. 음악을 향한 애티튜드로 하여금 관객을 불타오르게 하는 열혈밴드다. 2014년 메이저 데뷔 이후 미디어의 급푸시를 받아 승승장구하고 있는 4인조는, 무엇보다 인기 애니메이션 <은혼>의 오프닝을 맡은 바 있어 한국에서도 많은 이들이 친숙하게 느낄 여지가 다분하다. 호소미 타케시(細美 武士)를 떠올리게 만드는 음색의 보컬 겸 기타 타나베 슌이치(田邊駿一)의 스타성과, 빠른 곡조를 무리 없이 끌고 나가는 멤버들의 연주력까지. 열도의 대표 겨울 록페인 <Countdown Japan 15/16>에서는 갑자기 불참하게 된 니코 터치스 더 월(NICO Touches the Wall)을 대신해 메인 무대에 서는 등 그 가능성을 인정받는 신성이다. 그들이 가진 뜨거운 패기는 페스티벌의 분위기 또한 끓는점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리라 생각된다.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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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왕국 아이슬란드 대표 뮤지션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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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는 주지하다시피 대부분의 땅이 빙하로 구성된, 한랭한 기후의 섬나라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또한 정반대 불의 땅이기도 하다. 한반도의 크기의 반 밖에 안 되는 작은 섬에 위치한 활화산들이 종종 불을 뿜으며 폭발하고, 간헐천(열수와 수증기, 기타 가스를 분출하는 온천)이 곳곳에서 끓고 있어 대부분의 국민들은 난방 걱정 없이 생활한다고 한다.

 

얼음과 불의 공존, 게다가 밤하늘의 오로라까지. 웬만한 판타지 소설의 설정 뺨치는 지역특성 때문인지 아이슬란드는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 그 신비함이 고스란히 내재된 아이슬란드의 음악, 그중 12명의 뮤지션을 꼽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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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게일(Asgeir)

 

아이슬란드 여행은 많은 이들의 소망이기도 하다. 아우스게일의 앨범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얼음 세계의 풍광이 녹아있다. 새벽 공기를 닮은 고요한 어쿠스틱부터, 겨울 산을 활강하는 듯한 록 넘버까지. 특히 힘 있게 달려 나가는 대곡들은 해가 뜨면 그 위용을 서서히 드러내는 하얀색 자연과도 닮았다. <꽃보다 청춘> 아이슬란드 편에 쓰인 'Nyfallio regn'은 위의 설명에 잘 부합하는 곡이다.

 

청년의 첫 음반은 입소문을 타고, 자국에서 가장 빠르게 판매된 데뷔작이 되었다. 이 기록 덕분에 시인 아버지가 써준 특별한 노랫말이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에 알려졌다. 2015년 현대카드 공연으로 내한한 뒤 신보를 기다리는 소소한 지지층도 생겼다. 투명한 보컬에는 어린 시절 생활한 시골마을의 평온함이 스며있다. 그에게 영향을 준 나라, 실재하지만 사진으로 담아낼 수 없는 겨울왕국을 경험하고 싶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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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요크(Bjork)

 

만약 그가 영어가 아닌 모국어로 가사를 썼다면 서점에서 아이슬란드어 학습서를 발견하는 일이 지금보다는 쉬웠을 것이다. 신비한 사람 비요크는 20세기의 끝자락에 발음부터 난해한 이름으로 데뷔했다. 테크노를 가미한 비트와 함께 감정 기복이 심한 듯한 목소리로 이전까지의 전형을 갈기갈기 찢은 공식 첫 앨범 <Debut>부터 충격이었다. 뒤이어 명곡 'Army of me'가 수록된 <Post>, <Biophillia>의 미니멀한 타격감과 자전적인 비애감을 투하한 <Vulnicura>까지 아홉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거치는 동안 그의 행보는 언제나 실험을 동반했다. 물론 거기에는 1집의 'Human Behavior'부터 함께한 뮤직비디오 감독 미셸 공드리의 기괴한 영상도 한몫했을 테다.

 

특이함으로만 승부를 걸지는 않았다. 재즈 스탠다드인 'Like someone in love'를 부를 때는 섬세하고도 황홀한 보컬 운용을 선보였고, 'It's oh so quiet'에서는 음폭과 음역의 극을 오가며 빅밴드에게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파워풀하다. 비요크에게 부여된 가장 대표적인 수식이 “아이 같기도 하고 마녀 같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 요상한 음악가가 대중을 홀리고, 지구 곳곳에는 그가 태어난 곳에 대한 동경 어린 호기심이 발아했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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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밀리아나 토리니(Emiliana Torrini)

 

아이슬란드인 어머니와 이탈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탄생한 그는 '에밀리아나 토리니'라는 이탈리아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차갑고 섬세한 그의 음성은 아이슬란드의 정서와 닮아있다. 아이슬란드 그룹인 거스거스(GusGus)의 멤버였던 그는 <반지의 제왕>의 두 번째 시리즈에 수록된 'Gollum's song'과 카일리 미노그(Kylie Minogue)의 'Slow'와 'Someday' 등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으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사랑에 빠져 두근거리는 가슴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한 'Jungle drum'과 따스한 어쿠스틱 기타 소리가 매력적인 'Sunny road' 등 솔로 커리어도 매력적이다. 특히 5번째 앨범인 <Fisherman's Woman>은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역량이 정점에 오른 수작, 강력 추천!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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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스거스(GusGus)

 

레이캬비크의 록 신 대표가 비요크와 슈가큐브스였다면 클럽 신 대표는 바로 거스 거스(Gus Gus)다. 영화 한 편을 만들고자 시작한 모임은 몸집을 불려 음악에도 손을 대기 시작해 아이슬란드를 넘어 유럽 EDM 시장의 거물이 되었다. 활동을 시작한 95년부터 멤버 구성이 계속해서 바뀌어왔는데, 가장 최근 앨범인 <Mexico>엔 원년 멤버 다니엘 아우구스트 해럴드손(Daniel Agust Haraldsson), 비거 포래린슨(Birgir porarinsson), 테판 스테펜센(Stephan Stephensen)와 새 멤버 허그니 에일손(Hogni Egilsson)의 참여로 탄생했다.

 

워낙 많은 장르를 시도하기 때문에 일렉트로닉 밴드라고 하는 것이 효율적일지 모르겠지만 주로 하우스, 테크노 기반의 전자 음악 중심으로 앨범을 채운다. 아이슬란드 특유의 차가운 감성을 비트가 아닌 무겁게 가라앉는 전자음으로 표현하는 밴드. 트랜스의 어원처럼 무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Over'부터 누 재즈('Very important people', 'Polyesterday'), 글램 록('Ladyshave')까지 스펙트럼이 무지막지하다. 특히 'Very important human'은 2001년도에 발매된 곡이지만 요즘 라운지에서 틀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 밴드의 정규 1집 <Polydistortion>은 평단에서 극찬한 앨범이니 한 번쯤 들어보길 권한다. 진입 장벽이 높다면 'Why'부터!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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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레오(Kaleo)

 

아일랜드 호지어(Hozier)가 말해주듯 블루스 음악이 주류시장에서 돌기(突起)를 거듭해도 대체로 성공적인 싱글의 경우는 'Take me to church'처럼 팝이라는 이름의 당분을 입힌다. 하지만 힙합과 EDM 판에서 블루스를 전문으로 내거는 바로 그 '위험성' 때문에 역으로 돋보일 수 있다. 거기에다 아이슬란드 출신이라는 태그가 붙으면 화제 수확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블루스는 또한 대중음악과 록의 출발, 기본 아닌가.

 

'Way down we go', 'No good'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영미에 알려준 'All the pretty girls' 등 울림통을 사용한 각별한 사운드로 블루스 정통에 닿아간다. 'All the pretty girls'과 고국 아이슬란드의 2013년 데뷔 싱글로 마치 'Before the dawn'을 듣는 듯 처연함의 극으로 솟는 'Vor i vaglaskogi'는 그들이 국적 정체성을 버리지 않음을 말해준다. 2016년 7-8월에 이들을 듣는 기쁨으로 잔혹했던 폭염을 견뎠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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뭄(mum)

 

뭄의 디스코그래피는 글리치(컴퓨터 등의 전자기기의 오류로부터 얻은 소리들을 활용하는 기법) 사운드를 적극 활용한 < Yesterday Was Dramatic - Today Is OK >와 < Finally We Are No One > 등, 일렉트로니카로 점철할 수 있는 초기작들과 기타 중심의 밴드 구성으로의 변신을 선보인 <Sing Along to Songs You Don't Know>과 같은 후기작으로 분류할 수 있다. 공통분모라 할 수 있는 부유하는 보컬 멜로디와 전위적인 구성은 이들의 실험성을 대표한다. 낯선 차가움과 모호한 포근함이 공존하는 뭄의 음악엔 저 멀리 섬나라, 아이슬란드의 서정이 깊게 배어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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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브 몬스터즈 앤드 멘(Of Monsters And Men)

 

미국 음악전문지 <롤링 스톤>으로부터 '새로운 아케이드 파이어'라는 칭호를 받은 이 아이슬란드 5인조 밴드는 스스로를 '포크 팝송을 만드는 몽상가들'이라 자처하며 그들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했다. 2010년도 아이슬란드 밴드 경연 대회 <Musiktilraunir>에서 우승을 거머쥔 이들은 2011년 데뷔작인 <My Head Is An Animal>을 발매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대표곡인 'Little talks'를 살펴보면 이 밴드의 매력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어쿠스틱 기타와 브라스가 이끌어나가는 사운드, 남녀 보컬이 제창하는 노랫말은 북유럽 특유의 향취를 한껏 뿜어낸다. 더불어 뮤직비디오 속 동서양 문화의 소구를 접목시킨 아트워크는 보고 듣는 재미를 배가한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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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퍼 아르날즈(Olafur Arnalds)

 

차갑고 황량하다. 프레데리크 프랑수아 쇼팽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는 그의 음악은 재생과 동시에 주변 공기를 서늘하게 바꿔 놓는다. 피아노와 현악기로 그린 밑바탕에 앰비언스와 일렉트로닉 소스를 자연스럽게 흩뿌리는 작법이 그의 특기. 클래식과 전자음악의 경계를 오가는 음악으로 빠르게 마니아를 모았고, 2008년에는 아이슬란드를 대표하는 밴드 시규어 로스와 함께 투어를 진행할 정도로 실력과 개성을 인정받았다.

매혹적인 활동 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 <헝거 게임>(2012)과 연극 <렛 미 인>은 그의 음악을 극 중에 삽입했고, 영국의 TV 드라마 <브로드처치 (2015)는 아예 첫 번째 시즌을 위한 사운드트랙 전량을 그에게 의뢰했다. 지난해에는 일본계 독일인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Alice Sara Ott)와 함께 쇼팽의 작품을 재해석한<The Chopin Project>를 발매하는 등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에도 적극적이다. 이미 세 차례나 내한 공연을 가졌을 만큼 국내 청취자들의 지지도 적지 않다. 청각만으로 신비의 땅 아이슬란드를 간접 체험하기에 올라퍼 아르날즈는 안성맞춤이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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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규어 로스(Sigur Ros)

 

포스트 록 시대가 도래하면서 '아이슬란드 하면 떠오르는 아티스트 1순위'의 수식어는 비요크에서 시규어 로스로 넘어갔다. 팝과 록의 여러 경계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갖은 아트 록, 드림 팝, 포스트 록의 사운드를 들려준 이들은 2000년대, 2010년대의 음악 신 속에서 가장 실험적인 밴드 중 하나로 부상했다. 서사를 품고 자유자재로 횡행하는 사운드에 감탄한 많은 사람들은 두 번째 정규 앨범 <Agaetis byrjun>부터의 모든 시규어 로스 정규음반들을 작금을 대표하는 명반의 지위에 올렸다. 곡 명명이나 앨범 커버 이미지 제작, 공연 등에 자국의 이미지를 꾸준하게 담는 것으로도 밴드는 잘 알려져 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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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스타피어(Solstafir)

 

아이슬란드에는 수만년 동안 간헐적으로 물을 뿜어내는 '게이시르'라는 곳이 있다.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물줄기, 위대한 자연의 신비에 물이 튀어오를 때마다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곤 한다. 그들의 음악은 이 '게이시르'가 떠오른다. 초현실적인 사운드에 곧고 시원한 파괴력을 갖췄다. 이들은 1995년에 결성된 중견밴드로 메탈이나 포스터록, 프로그래시브 등 한가지로만 장르를 한정짓기에는 사운드 스케이프가 매우 광활하다. 연주만큼 좋은 멜로디는 난해함을 희석시킨다. 서사적인 구조가 뛰어난 'Fjara'부터 최근 이들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otta'까지. 이들은 여전히 자신의 역량을 솟아내고 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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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가큐브스(The Sugarcubes)

 

아이슬란드의 초창기 밴드 슈가큐브스를 설명하기엔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싱어송라이터 비요크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3장의 앨범을 발매하고 해체되었지만 비요크의 명성으로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지는 펑크에 푹 빠져있던 밴드는 1986년 발매한 첫 앨범<Life's Too Good>으로 데뷔해 아이슬란드 출신 밴드로는 최초로 전례 없는 국제적인 명성을 이루었다. 특히 꽤나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수록곡 'Birthday'는 둥둥거리는 베이스 사운드와 함께 비요크 특유의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음색이 더해져 당시 아이슬란드표 음악의 대표곡으로 꼽히며 새로운 전환점을 선사했다.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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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캐러반(Vintage Caravan)

 

2006년 결성해 유럽에 빈티지함을 흩날리고 있는 전통파 3인조 밴드. 1년 내내 추운 얼음의 땅에도 이렇게 뜨거운 음악이 있다. 클래식한 하드록에 그치지 않고 프로그레시브, 사이키델릭 풍의 세련된 멜로디를 곳곳에 산재시키는 재주를 뽐낸다. 어딘가 들어본 양 익숙하고 단순 명료해 뇌리에 남는 기타 리프도 딥 퍼플, 러쉬를 연상시키며 편히 듣기에 돋보인다. 국내에도 정식 발매된 2011년 작 3집 <Arrival>가 밴드 종합선물세트 격. 'Babylon', 'Carousel' 곡명에서부터 짜릿함이 느껴지는 곡들로 입문하면 좋겠다.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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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킹 온 노벨스 도어, 밥 딜런의 베스트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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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밥 딜런에 대한 관심과 논쟁이 쏟아지고 있다. 노랫말이 문학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계속 되고 있지만, 그가 미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1959년 이래로 밥 딜런이 써 내려간 문장들은 음악과 시대를 바꾸었다. 그는 음표에 사상과 철학을 부여한 최초의 인물이다.

 

사실 밥 딜런의 가사는 중의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 많다. 괴팍하기로 소문난 그는 인터뷰에서도 모호하게 답해 사람들을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우리나라 말이 아니다 보니 오역의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노래와 기록들을 뒤져, 심드렁하고 무뚝뚝한 사내의 자취를 따라 가보려고 한다. 그의 뒤를 좇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그가 남긴 발자국이 록이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록의 궤적이 된 25곡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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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in' in the wind (1963)

 

밥 딜런의 시작이자 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가 품은 새로운 가치의 선언적 울림! 미국 민주주의 토대인 자유, 평등, 평화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밥 딜런의 모던 포크 출반선인 이 곡이 대변했다. 그게 반전(anti-war)과 인권(civil rights) 운동과 맞물리면서 밥 딜런은 단숨에 세대의식과 시대정신의 총아로 솟아올랐다. 지구촌 곳곳에 청년문화와 저항(protest)의 기수들이 속출했다.

 

브라질에는 카에타노 벨루주와 질베르토 질이, 쿠바에는 실비오 로드리게즈가, 세네갈에는 이스마엘 로가 출현했다. 빅토르 하라는 칠레의 딜런, 도노반은 영국의 딜런, 김민기는 한국의 딜런이었고 1990년대에 벡(Beck)은 최신판 딜런으로 분했다. 1999년 <디테일> 잡지의 표현에 따르면 '거대한 짐머만(딜런 본명)의 글로벌 저항 빌리지' 구축!

 

그들은 노랫말로 전에 한 번도 접하지 못해본 언어들이 경이롭게 전개, 배치된 것에 일제히 넋을 잃었고 “대중음악의 노랫말로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라는 집단 영감 세례를 받았다. 사랑과 이별이 전부이던 대중가요는 이후로 사회적, 사색적, 성찰적, 철학적 메시지로 심화를 거듭했다. 시대를 갈랐던 1970년대 초반 '영 포크', '청통맥' 등 '메이드 인 코리아 청년문화'의 출발 총성도 이곡이었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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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think twice, it's alright (1963)

 

1962년 녹음해서 이듬해 <The Freewheelin' Bob Dylan>에 실어 발표한 밥 딜런 초기 명곡 중 하나. 그 해,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y) 커버 버전이 빌보드 싱글 차트 9위까지 올라 초기 유명세를 다지는데 이바지했고, 우리나라에서는 포크가수 양병집이 창의적인 가사의 '역(逆)'으로 개사한 버전을 다시 김광석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제목만 바꿔 발표해 인기를 끌었다.

 

음악의 역사와 그 선상의 진화 과정이 잘 드러난다. 미국 전통 민요 「Who's gonna buy you chickens when i'm gone」의 멜로디를 포크 가수 폴 클레이튼(Paul Clayton)이 1960년 차용했고, 그 선율과 가사 일부가 밥 딜런에게 옮겨가 영감이 되었다. 딜런 자신이 핑거스타일로 주조해낸 찬찬히 흘러가는 기타 리듬 또한 하나의 고전으로 남아 수많은 리메이크 버전을 탄생시켰다.'괜찮으니, 두 번씩이나 고민하지마'라는 가사로 1960년 그 시절뿐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도 숨고를 시간을 부여하는 아름다운 곡.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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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imes they are a-changin' (1964)

1960년대에 들어서며 미국의 청년들은 변화를 꿈꿨다. 희망과 달리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흑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계속됐고 베트남 전쟁의 공포는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설상가상, 패기에 찬 젊은 리더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암살됐다. 답답한 실상을 견디다 못해 여기저기서 자유와 평등, 평화를 향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격동의 한가운데에 이 노래가 있었다.

 

'지금 정상에 선 자들은 훗날 끝자락이 되리라.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노래 제목 중 '변화(changin')'에 고전적 강조법인 'a-'를 붙인 것만으로도 이 곡이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다. 딜런은 간단명료한 구절들로 명징한 메시지를 제시하는 대곡(大曲)을 원했다. 창작 의도는 시대 상황과 적확히 들어맞았다. 그는 시종 매서운 어조로 '바뀌어야 함'을 역설한다. 사람들, 작가와 비평가들, 국회의원과 정치인들, 세상 모든 부모들, 지금 정상에 선 자들이 모두 경고의 대상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흐름에 발맞추지 않는다면 이내 가라앉고 패자가 될 것임을 일갈한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낸 노래는 당대 쇄신의 찬가(anthem)가 되었다. 노래는 「Blowin' in the wind」 등과 함께 전 세계 대중음악의 가사 풍토를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다른 명곡들처럼 이 노래 역시 수많은 후배 가수들에 의해 재해석 되었다. 피터, 폴 앤 매리(Peter, Paul and Mary), 사이먼 앤 가펑클, 비치 보이스, 셰어(Cher) 등 그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기 벅찰 정도다. 여전히 대표적인 저항 송가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노래는 변화하는 시대에 가속 페달을 가한 역사적 유산이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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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terranean homesick blues (1965)

 

초기 포크(Folk) 진영에 자리 잡고 있던 딜런은 비틀스(Beatles)의 로큰롤 스타일에 영향을 받아 크나큰 스타일의 변혁을 가한다. 기존 포크송에 강렬한 일렉트로닉 기타 사운드를 가미한 싱글 곡 「Subterranean homesick blues」은 포크 록의 시작을 알렸다. 〈Bringing It All Back Home〉의 대표곡으로써 빌보드 차트 39위에 오르며 그에게 첫 대중적 히트를 안겨주었다.

 

노래는 여러 아티스트의 창작물로부터 영감을 받아 구성되었다.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와 피트 시거(Pete Seeger)의 「Taking it easy」 가사 일부분을 인용하고, 척 베리(Chuck Berry)의 「Too much monkey business」 멜로디와 스타일을 참조했으며, 소설 『The Subterraneans』에서 제목을 따왔다. 계급 갈등에 대한 은유와 사회 풍자, 희화화로 가득 채운 노랫말은 당시의 부조리를 공개 석상 위로 올린다.

 

투어 다큐멘터리 <Don't Look Back>의 오프닝 영상으로 쓰인 이 싱글의 뮤직비디오는 딜런이 직접 단어 카드를 넘기면서 키워드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화제가 되어 많은 패러디를 생성시키기도 하였다. 의도적으로 틀리게 적은 스펠링과 의미에 따라 다르게 꾸민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가사의 위트를 더욱 맛깔나게 덧칠한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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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a rolling stone (1965)

 

'Rolling Stone'은 밴드명이나 잡지를 떠나 록의 가장 큰 상징물이다. 이 노래 덕분에 1965년은 밥 딜런에게 가장 큰 변화기이자 전성기가 펼쳐진다. 그의 앨범 중 최고로 꼽히는<Highway 61 Revisited>에 수록되어 발매 당시에도 큰 사랑을 받았다.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2위, 영국 차트 4위에 올라 밥 딜런의 노래 중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곡이다.

 

이 노래는 결코 달콤한 러브송이 아니다. 오히려 어둡고 냉소적이다. 사실 이런 가사를 가진 노래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명문학교를 나와 상류층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여인의 추락을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때 세상을 발밑에 둔 것 같았던 여인은 한순간에 모든 걸 잃어버린다. 뼈아픈 교훈이지만 손에 쥔 것이 없을때 온전한 자유를 얻는다는 깨달음도 내포되어 있다.

 

다른 노래들과 마찬가지로 특정인을 겨냥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장 물망에 오른 것은 앤디 워홀(Andy Warhol)과 그의 뮤즈였던 에디 세즈윅(Edie Sedgwig)이다. 혹자는 진보가 패스트 패션처럼 가벼워져 버린 미국 사회를 저격했다는 설도 제기했다. 하지만 밥 딜런은 “내 노래 속에 등장하는 그(he)와 그것(it), 그리고 그들(they)은 대부분 나를 얘기한 거다”라며 화살을 본인에게 돌린다.

 

전설은 해가 갈수록 더욱 공고해졌다. 「Like a rolling stone」은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1위(2010), <피치포크>에서 1960년대 최고의 노래 4위(2006)에 선정되면서 여전히 후대에도 회자되고 있다. 노래 자체의 멜로디나 구성이 매력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명곡으로 추앙되기 힘들다. 새로운 장르의 시발점. 그러니까 포크가 아닌 록의 편성으로 만들어져, 한 장르의 포문을 열었기에 이토록 뜨거운 환대를 계속 받고 있다.

 

당시에는 포크 히어로였던 그가 통기타가 아닌 일렉트로닉 기타를 쥐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곡이 뜨기 직전인 1965년 5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그가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했다는 이유만으로 관객들에게 계란과 '유다'라는 야유 세례를 받는다. 포크 팬들에게 전기를 사용하는 기타는 '물질주의'와 '배신'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공연은 흥분과 박수가 아니라 증오와 질책으로 가득했다. 음악평론가 데이브 마시(Dave Marsh)는 “이것은 공연이 아니었다. 이건 전쟁이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도전과 반목을 겪은 후, 공연은 록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순간으로 기록된다.

 

이후 평론가들은 포크와 록을 뒤섞은 새로운 노래에 '포크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런 '포크록'은 프랭크 자파 등 동시대 뮤지션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폴 매카트니는 “그는 음악이 더 새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Like a rolling stone」의 탄생은 한 장르의 출발일 뿐 아니라, 세상에 없던 소리를 만들어낸 새로운 발명이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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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ad of a thin man (1965)

 

가사에 등장하는 'Mr. 존슨'에 대한 추리는 어렵지 않다. 노래는 계속 주류 문화와 기성세대의 보수성과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가사에 '연필을 들고 있는'이라는 표현이 있고, <아임 낫 데어>에서 이 노래가 나올 때 언론인이 등장하기 때문에 '존슨'은 '언론'을 상징한다는 추측이 많다. 반면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슨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설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밥 딜런은 “당신은 그를 알고 있지만 그 이름으로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끝내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았다.

 

Mr. 존슨'의 정체는 묘연할지 몰라도 그의 행태와 태도는 분명하다. 연줄이 많고 소득공제가 되는 자선 단체에서 교수들과 함께 지내는 사람.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자리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하지만 딜런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부서질듯 내리치는 건반은 분노를 대신하고 낮게 반복하는 후렴구가 의미심장하다. '여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존슨씨?' 노래 안에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 비록 비주류의 독설이지만 노랫말은 뾰족한 송곳이 되어 세상의 'Mr. 존슨'들을 관통한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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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day women #12 & 35 (1966)

 

<Blonde on Blonde>의 포문을 알리는 곡이자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밥 딜런의 빌보드 차트 최고 히트 싱글(2위). 「Everybody must get stoned」라는 코러스 라인 구절이 노래 중간 웃음을 터뜨리는 자유분방함에 더해 마약을 찬미하는 암시라 논란을 낳았으나, 그는 '절대 약물 노래(Drug song)는 가까이하지 않는다.'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마칭 밴드 혹은 구세군을 연상시키는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관악기 세션을 풍성히 초청해 일종의 빅 밴드를 구성했고, 실제로 의도된 혼돈 가운데 녹음되어 초기 포크-사이키델리아 곡이 탄생했다. 마지막으로, 의아함으로 가득한 곡 제목의 의미는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레코딩 도중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선 두 여성, 그 모녀의 나이가 어렴풋이 12세, 35세였다는 것.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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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you (1966)

 

하모니카의 경쾌한 음색, 백 비트, 보헤미안의 솔직한 사랑과 컨트리풍 음악, 패티 스미스 창법의 원류가 된 독특한 싱잉이 만난 작품 「I want you」, 이 곡은 올해 50주년을 맞은 그의 대표작 <Blonde on Blonde>에 수록되어 있다. 평론가 로버트 쉘튼은 이 곡뿐만이 아니라 밥 딜런의 7집 전체가 사라 딜런(셜리 마를린 노츠니스키, 사라 로운즈)과의 '웨딩 앨범'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딜런에게 배우자의 존재는 축복이었다.

 

그러나 '당신을 원해요'는 시간이 지나 처음의 뜻을 보존할 수 없게 된다. 1966년 당시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는 문장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이후 두 사람이 이혼을 하며 더 이상 예쁘기만 한 텍스트로 남을 수 없었다. 바쁜 톱스타 남편의 뒤에서 홀로 가정을 돌봐야 했던 사라 딜런에게 결혼 생활은 밥 딜런이 추억하는 것만큼 아름답진 않았다고 한다. 딜런을 다룬 영화 <아임 낫 데어>(그곳에 나는 없다)의 타이틀이 또 한 번 설득력을 얻는 순간이다.

 

물론 음악가의 개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관점으로도 「I want you」의 가사는 쉽게 웨딩 송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평범하지 않은 단어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죄 많은 장의사는 한숨을 쉬고, 외로운 악사는 눈물을 흘리고, 은빛 색소폰은 당신을 거부하라 말한다' 식의 오묘한 문법은 동시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비틀스나 비치 보이스와는 또 다른 형태였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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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 (1966)

 

2007년 영화 <아임 낫 데어>의 시작을 알리는, 미들 템포의 리듬 감 넘치는 이 곡을(사실 딴 곡도 다 그랬지만)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솔직한 생각. “아니, 이렇게 절(節)마다 완전 다른 가사를 밥 딜런은 외우기나 할까, 한 번 해놓고 다음엔 까먹는 거 아냐?” 시간이 더 흐르면서 감탄이 하나 더 붙었다. 가사도 가사지만, 그게 아무리 빼어나도 곡조와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 짓! 밥 딜런을 노랫말 술사에만 초점을 둘 게 아니라 '곡 메이킹'의 천재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거기서 거기 같은 포크'의 범주에 속한 딜런의 앨범이 왜 무더기로 20세기 명반에 꼽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록의 구세주(Rock's messiah)라는 호칭을 얻은 이유가 이거다. 뒷얘기지만 밥 딜런도 곡과 가사를 입에 맞추느라 재 편곡 등 녹음 작업에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올해로 50년 된 역사적 더블 LP <Blonde on Blonde>의 한 곡. 정확한 의미도 몰랐지만 그럼에도 이 곡을 듣는 게 축복임은 젊었을 때, 그때 이미 알았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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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ard-skin pill-box hat (1966)

 

포크의 대명사 혹은 대부로 알려진 딜런은 뛰어난 블루스 싱어이자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어릴 적부터 포크와 함께 전통 블루스에 심취한 그는 데뷔작 <Bob Dylan>부터 음반마다 한두 곡의 블루스를 수록해왔다. 그의 어깨에 전기 기타가 메어진 후에 제작된 <Blonde on Blonde>의 수록곡 「Leopard-skin pill-box hat」 또한 전기 기타로 연주한 일렉트릭 블루스이다. 곡은 후에 벡(Beck)과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에 의해 재탄생되기도 했다.

 

「Just like a woman」와 마찬가지로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에게 영감을 받은 곡이다. 노래는 연인에게 퇴짜 맞은 이가 느끼는 불쾌감을 서술하는 동시에, 1960년대 초반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가 유행시킨 패션인 '표범 무늬의 모자'를 고급 패션의 상징으로써 사용하여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했던 당시의 세태를 풍자한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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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like a woman (1966)

 

여성(woman)이 누구인지 불명확하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의 핀업 걸이자 당시 연인이었던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이란 소문이 가장 유력하지만, '나는 굶주렸고, 세상은 너의 것이었어'라는 가사 때문에 당시 딜런보다 조금 더 인기 있었던 동료 가수, 존 바에즈(Joan Baez)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난데없이 마리화나를 뜻하는 속어인 퀸 메리(Queen Mary)가 2절의 첫 부분에 등장한다. 때문에 해석은 또 다른 애매모호함 속으로 접어든다. 안개(Fog)와 암페타민(Amphetamine), 그리고 진주(Pearl)의 특성을 모두 갖춘 'Woman'이 마리화나, 즉 약물을 빗댄 단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혹은 'woman'이 그저 단순한 섹스를 뜻한다는 풀이도 있다. 이는 1절과 중간 마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비(Rain)가 당시 딜런의 성욕이 최고조에 도달했음을 뜻하는 단어라는 추측과 함께 동반되는 해석이다.

애매모호함(Ambiguity). 딜런이 쓴 가사들의 상당수는 난해하고 실험적이다. 그저 들으면 사랑스럽게 혹은 애절하게 느껴지는 「Just like a woman」의 가사는 딜런의 특성을 대표한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에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딜런의 가사가 갖추고 있는 문학적 성질은 이러한 애매모호함뿐이 아니다. 1절의 가사를 살펴보자.

 

'Nobody feels any ①pain
Tonight as I stand inside the ①rain
Everybody ②knows
That Baby's got new ②clothes
But lately I see her ribbons and her ②bows
Have fallen from her ②curls'

 

'pain'과 'rain', 'knows'와 'clothes' 등 딜런은 단순한 단어들을 배치하여 시적 압운(Rhyme)을 만들어낸다. 종이에 옮겨지지 않았을 뿐, 한 편의 시와 다를 바 없다. 이 정도면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반박 거리가 되지 않을까.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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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 eyed lady of the lowlands (1966)

 

사람들은 '숨은 인물 찾기'를 좋아한다. 이 노래 역시 'Lady'가 누구인지가 뜨거운 화두였다. 존 바에즈가 리메이크를 했었고, 두 사람의 특수한(?!) 인연, 그리고 그녀의 유독 슬퍼 보이는 눈빛 때문에 존 바에즈가 'Lady'라는 설도 많았다. 하지만 이 노래만은 사라 로운즈(Sara Lowndes)를 위한 곡이라는 증거가 명백하다. 가사를 살펴보면 '그냥 떠나버렸던 너의 잡지사 기자 남편'이란 대목이 있는데 실제로 사라 로운즈의 전 남편은 기자였다. 게다가 제목 자체도 '사라 로운즈'의 스펠링을 변형시켜 만들었다. 결정적으로는 그의 노래 「Sara」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러고보니 이 노래 제목은 더욱 노골적이다.) '첼시 호텔에 머무는 동안 널 위해 'Sad eyed lady of the lowlands'를 만들었다' 가사나 분위기가 밝은 노래는 아니지만 곳곳에 애절한 마음이 묻어난다. 이상하게도 사랑이란 건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심란해지는 법이니까.

 

당시는 라디오가 가장 힘있는 매체였고, 라디오의 특성상 노래가 길게 나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3분 이하의 밝은 노래가 많았고 실제로 인기도 있었다. 이 노래는 무려 11분 19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만들고, 자기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 그의 고집은 이 '장대한 길이'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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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long the watchtower (1967)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본 사람이라면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 버전이 더 익숙할 테다. U2, 폴 웰러, 닐 영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리메이크했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곡을 검색하면 지미 헨드릭스 버전이 가장 상위에 노출될 정도니 원작을 넘어선 인기는 실로 대단하다. 둥둥거리는 베이스와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 스킬로 지루할 틈 없는 곡은 싱글 차트 20위까지 올랐고 딜런조차 헨드릭스 편곡으로 공연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곡이다.

 

원곡은 굉장히 심플하다. 기타와 하모니카로만 사운드를 꾸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세 개의 코드로 곡이 진행된다. <Blonde on Blonde>,<Highway 61 Revisited>, <Bringing It All Black Home>을 통해 포크록을 탄생시키며 로커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그가 오토바이 사고 이후 종적을 감춘 뒤 발매한 <John Wesley Harding>에서 다시 통기타로 돌아왔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사고 이후 밥 딜런의 공백기에 사이키델릭이 융성하며 환락적이고 쾌락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딜런은 이에 편승하지 않고 다른 방향을 모색하며 미국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고 결국 컨트리의 고장 내슈빌에서 앨범을 완성하게 된다. 때문에 음반엔 「All along the watchtower」을 비롯해 「Drifter's escape」, 「I'll be your baby tonight」과 같은 컨트리 넘버들이 가득하다. 노래에서 어쩐지 시골 분위기가 느껴졌다면 제대로 들었다는 증거. 그는 로커빌리의 전설 자니 캐쉬와 「Girl from the north country」를 함께 부르며 확실히 대세와는 다른 노선을 걸었고, 포크록에 이어 컨트리 록의 탄생에 기여한다.

 

전작보다 사운드의 규모가 작아지고 단순해졌지만 가사의 의미는 너무나도 방대하다. 조커와 도둑의 대화문으로 시작하는 1절, 2절은 3절에서 외부 묘사로 바뀐다. 문학에서 내러티브가 먼저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딜런의 곡에선 순서가 역전된다. 일차적으로 조커는 상인과 농부가 자기 소유의 무언가를 탐하고 있다며 도둑에게 탈출을 제안한다. (“There must be some way out of here", “Businessmen, they drink my wine, Plowmen dig my earth”) 그러자 도둑은 침착한 말투로 (탈출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며 시간 또한 많이 지체되었으니 탈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No reason to get excited", “And this is not our fate”, “The hour is getting late”) 이어지는 3절에선 계속 감시탑에서 밖을 지켜보는 지배자와 두 명의 말 탄 자들이 등장한다. (“All along the watchtower princes kept the view”, “Two riders were approaching”)

 

이에 대해 기독교적 해석, 그에게 익숙한 묵시록적 해석도 등장했고 바빌론 멸망의 과정 자체를 풀어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 외에 시기적으로 가사가 베트남 전쟁의 내용을 암시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커는 국민, 도둑은 미국 정부로, 혼란스러워하는 국민에게 그만둘 이유가 없다고 설득하는 정부와 감시탑에 올라가 베트남을 주시하는 프랑스라는 해석이지만 어느 것이든 정답일 순 없다. 밥 딜런이 기독교 신자임을 밝힌 <Slow Train Coming>의 행보를 생각해 본다면 기독교적 풀이가 나름 합당하다는 견해가 있지만 그것도 '일각에서는...'으로 끝나고 만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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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 lady lay (1969)

 

써 내려간 문장의 가치가 반짝였을 때 딜런은 세상을 뒤로하고 내면으로 파고든다. 오토바이 사고 후 회복을 위한 휴식이었지만, 저항운동 때문에 소란한 밖으로부터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전자 기타와 록 비트를 내려놓고 조용한 내슈빌에서 쉼을 택한다. 마음의 안정에서 나온 소박하고 여유로운 소리는 컨트리 록 앨범 <Nashville Skyline>으로 이어진다.

 

「Lay lady lay'는 아내 사라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곡이다. '침대에 몸을 뉘어 나의 곁에 머물러줘요.' 노랫말만큼 부드러운 저음의 보컬, 스틸 기타가 구애송을 젠틀하고 중후하게 꾸며놓는다. 이 시점의 딜런은 사회적 메시지를 넘어 보다 많은 이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영역으로 옮겨간다. 분석이 필요했던 가사는 공감을 지향했고 선율의 힘이 더해져 이 곡은 1969년 싱글 차트 7위에 안착한다. 태동의 시기 젊은이들이 듣기에는 점점 차분해졌지만, 컨트리 록의 새싹은 1970년대 무성히 자라 이글스, 잭슨 브라운 같은 대표 가수들에게 영향을 준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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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ckin' on heaven's door (1973)

 

대중적으로 (특히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밥 딜런 곡이다. “이게 밥 딜런 노래였어?”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이 노래의 제목과 멜로디는 대부분 기억한다. 어쩌면 이 곡은 밥 딜런의 명성과 구별된 자체적 지분 속에 팝 역사의 명곡으로 기억되고 있는지도. 빌보드 싱글 차트 12위까지 올랐고, 밥 딜런은 이 노래로 1973년 그래미상 최우수 남성 록 보컬 퍼포먼스 후보에 선정되었다. 에릭 클랩튼(레게 풍)과 건스 앤 로지스(하드록)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다채롭게 리메이크했지만 원곡의 처연한 감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건스 앤 로지스 버전은 미국 한 매체에서 역대 최악의 리메이크로 선정되기도 했다.)

 

곡이 시작되면 심플한 기타와 오르간, 그리고 노래 전반에 깔리는 허밍과 코러스 가운데 딜런의 무심한 보이스가 시작된다. 단 4개의 코드 속에 전개되는 단순한 멜로디, 반복된 가사, 2분 30초 남짓한 미니멀한 구성이지만 이 노래는 듣는 이의 귀와 가슴을 파고드는 멜랑콜릭한 신비로움이 있다. 가스펠적 느낌과 제목으로, 또한 이후 그의 종교적 회심으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이 노래를 종교적 노래로 오해하기도 한다.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Pat Garrett & Billy the Kid>의 주제곡이지만, 2절 가사에서 '어머니 이 총을 땅에 내려놓게 해주세요. 나는 더 이상 아무도 쏠 수 없어요'에서 느껴지듯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해 죽어가는 군인의 심정을 노래한 대표적인 반전 가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 편으로는 당시 저물어가는 1960년대 히피 문화와 저항정신에 대한 씁쓸한 엘레지(elegy)로, 또는 밥 딜런 자신의 황폐해진 내면세계의 자화상으로도 느껴진다. (윤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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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led up in blue (1975)

 

밥 딜런은 말했다. “「Tangled up in blue」를 완성하는 데, 사는 것 10년, 곡 쓰는 데 2년 걸렸다.” 대게 좋은 곡은 힘들 때, 밝고 행복할 때보다 우울함을 가득 품고 심연의 늪을 헤엄칠 때 나온다. 이 곡이 그런 것처럼 또 그가 말했었던 것처럼 「Tangled up in blue」의 가사에서 느껴지는 생체기 난 마음은 고통의 시간과 비례했다.

 

사라 로운즈와의 결혼 생활이 그 끝에 다다랐을 때 밥 딜런은 「Tangled up in blue」의 첫 구절을 적었다. 앨범 명부터 심리적인 고통의 길을 걷고 있었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Blood on The Tracks>의 첫 트랙을 담당하고 있는 이 곡은 앨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부분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콜라주처럼 시점들이 뒤얽혀 있는 가사는 항상 외로웠던 남자와 그를 떠난 한 여자의 스토리를 뒤죽박죽 붙여놨다.

 

이해하려고 두세 번 곱씹어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는 가사에 난감하다가도 당시 곡을 써 내려갔던 그의 심경을 가늠한다면 해석은 필요치 않다. 그저 아픔과 추억의 흐름을 따라 펜을 움직였을 테다.

 

'모든 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길 위에 있다.'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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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twist of fate (1975)

 

'피에 젖은 노래들'. 비록 그 자신은 부정했다지만, 노래가 수록된 앨범  <Blood on The Tracks>(1975)의 면면은 분명 자전적이다. 당시 부인 사라 로운즈와 불화를 겪고 있던 정서가 음반 곳곳에 배어있다. 그러나 이 곡만큼은 예외다. 노래에는 당초 '4th Street affair'라는 부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4번가는 바로 뉴욕 정착 초기에 사귀었던 연인 수즈 로톨로(Suze Rotolo)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가 있던 길. 수즈 로톨로는 <The Freewheelin' Bob Dylan>표지 속 딜런과 팔짱 낀 여인이다.

 

퍼즐을 맞추다 보면 언뜻 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노래의 대부분은 한 남성에게 일어난 하룻밤의 '단순한 운명의 장난'을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데 주력한다. 반전은 말미에 드러난다. 화자의 시점이 1인칭으로 바뀌자, 그는 잃어버린 그녀가 여전히 자신의 반쪽이라 믿는다며 떠나간 연인을 그린다. 그리고는 결국 '단순한 운명의 장난'을 탓한다. 정황상 10여 년 전 연인이었던 수즈 로톨로를 모델로 한 것으로 의심되나, 이번에도 원작자는 적극 부인했다. 이렇듯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복잡한 연애사를 간직한 노래 속 명문(明文)은 단연 이것. '운명의 단순한 장난을 탓하는 수밖에'.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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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iot wind (1975)

 

앨범 제목 <Blood on The Tracks>처럼 당시 딜런의 상황은 가혹했다. 아내와의 이혼, 음악적으로도 잘 풀리지 않았던 시기. 음반에는 고통의 날이 서있다. 「Idiot wind」는 그때의 쓰라림을 담아내듯 수록곡 중 가장 목 놓아 부른다.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은 멍청이(Idiot)라는 단어에 담겼다. 마음속에 딱딱하게 응고된 상처와 외로움이 냉소적인 노랫말로 표현된다.

 

행복으로 가득 찬 결혼 앨범 <Blonde on Blonde>와 반대로 이별의 음반은 밟혀 부서진 가을 낙엽처럼 황량하다. 이 시기의 문구는 가장 힘들었던 삶의 바닥에서, 숨길 수 없는 애수 속에서 피어났다. 자기 고백적인 가사를 따라 음악 스타일 또한 초창기 어쿠스틱 포크로 되돌아간다. 대중은 록에서 포크음악으로 귀가한 밥 딜런을 열렬히 환영했다. 뛰어난 창작은 다양한 굴곡으로부터 발현되었고, 그를 다룬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에서는 밥 딜런 역에 6명의 배우가 등장해 각각의 순간을 연기한다. 거장의 삶을 다층적으로 다루어준, 명곡을 다시 듣는 기쁨이 담긴 영화였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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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ricane part I (1976)

 

미국의 프로 복서로서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 덕에 허리케인(Hurricane)이라는 별명으로 명성을 날리던 루빈 카터(Rubin Carter)는 1966년 뉴저지의 한 식당에서 백인 세 명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루빈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복역 중 자서전을 출간하는데, 이를 읽고 감명 받은 딜런은 교도소로 직접 찾아가 그를 면회하고 싱글 「Hurricane」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루빈이 겪어야만 했던 비극은 8분여간의 러닝타임을 통해 온전히 전개된다.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대사와 스토리텔링은 당시의 현장감을 그대로 전한다. 백인의 부당을 고발하는 딜런의 어투는 조소를 머금고 있다. 빠른 템포 아래 리듬감을 형성하는 어쿠스틱 기타와 스트링 사운드의 긴박함이 사건의 무게감을 밀도 높게 채운다. 기결(起結)에 자리 잡고 있는 절(節)은 이야기의 운율을 형성한다. '이것은 허리케인에 대한 이야기예요.'

 

노래는 대중들에게 루빈의 사연을 알리는데 일조하였고, 1985년 산고 끝에 그는 누명을 벗고 석방된다. 이 곡은 후에 그의 사연을 다룬 영화 <허리케인 카터>의 OST로도 활용되기도 한다. 실질적인 현실의 사태를 음악으로 녹여내어 문제 해결의 원동력이 되었음에 단순한 예술 이상의 투쟁가(鬪爭歌)로써 가치를 형성한다. 순수 노랫말이 만들어내는 메시지의 시적 표현력 또한 문학적인 의미 생성의 주요 원천으로 작용한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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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more cup of coffee (1976)

 

1976년에 발표한 앨범 <Desire>에 수록한 곡으로 국내에서는 선망과 핫의 대상인 커피가 들어간 덕에 줄기차게 전파를 타면서 애청되었다. 라디오 프로에선 커피 사연을 받으면 어김없이 선곡했다. 딴 곡 다 제치고 이러한 멜로딕하고 처연한 노래만이 우리 팝팬들의 편애를 받나 싶었지만 밥 딜런의 자아를 영화화한 <아임 낫 데어>에 '뜻밖에' 이 노래가 깔리면서 괜히 다행이다,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걔네들도 이 곡을 좋아하는구나!'

 

노랫말은 역시 풀이가 쉽지 않다. 집시 방랑자 집안의 소녀와 '아래 계곡'으로 떠나는 자의 얘기인데 그 관계는 버림, 관계의 종말인 동시에 재(再) 도래 등등 온기와 습기의 은유들로 엉켜있다. 매력적인 부분은 역시 하모니를 이루는 여성 보컬로 주인공은 당대 '여성 컨트리 록의 다크호스'였던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다. 남녀가 호흡을 맞췄다는 것도 국내 팬들의 꾸준한 청취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많은 남자들이 흠모하는 여성에게 커피와 이 곡을 묶어 애정을 실어 날랐다. '내가 저 아래 계곡으로 길 떠나기 전에 커피 한 잔 더 부탁해요!'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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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ing of the guards (1978)

 

'명색이 대학생인데 매달리면 해석을 왜 못하겠어? 아무리 밥 딜런이라지만 그래봤자 팝송 아냐?' 어렵사리 가사를 구했다. '근데 이게 뭐지?' '하지만 에덴은 불타고/ 그러니 마음 다잡고 제거하든가/ 아니면 경비를 바꿀 용기를 가져야 할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안 되다 보니 자위가 필요했다. 나중 들었지만 존 레논도 '밥 딜런은 언제나 가사의 의미가 불분명하다'고 살짝 투덜거렸다는데 나야 당연한 거 아닌가.

 

서구의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했다. 누군가는 16년간의 음악 여정, 결혼, 종교성 등에 대한 심도의 묘사라고 누군가는 묵시록적 견해라고 했다. 딜런 자신도 “부를 때마다 의미가 달라진다. 「Changing of the guards」는 천년 묵은 노래다!”라고 했다 한다. 사정이 이런데 오래 붙잡고 있다고 해결이 되겠는가. 결론. “포기하자. 노랫말 의미 파악을. 모른다고 음악의 감동이 줄어드는가. 이럴 때는 포기가 상책이다!”

 

히트곡 모음집에 실리지 않다가 1994년 발매한 세 번째 히트곡집(Greatest Hits Volume 3)에 수록되었을 때 정말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뭔지 모른 채 (1978년 나왔으니) 40년 가까이 듣고 있는 의리와 수절을. 그리고 곡은 잘 고른 것 아니냐는 걸, 가끔 들러 자리에 앉으면 잠시 후 무조건 이 곡을 매번 그리고 10년간 틀어주시는 홍대 롤링홀 근처의 카페 '별이 빛나는 밤에' 사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올린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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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tta serve somebody (1979)

 

“이상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사람에게 수여해라”라는 유언에 따라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이 선정되었다. '음악인 최초 노벨문학상', '포크 록의 전설'이라는 다양한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밥 딜런의 이번 수상에 대중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그는 시적인 가사 외에 새로운 장르를 빗어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수상에 의미를 더한다.

 

포크록을 창시했던 것처럼 「Gotta serve somebody」를 통해 CCM의 기원을 만들었다. 1970년대 후반 기독교에 빠지며 눈에 띄게 짙어진 밥 딜런의 신앙심은 <Slow Train Coming>, <Saved>, <Shot of Love>등 여러 앨범을 낳았고 그중 CCM의 시초가 된 이 곡은 교회에서 불리는 종교적 의식이 가득한 가스펠에 대중음악적 요소를 접목해 탄생했다.

 

'신인지 악마인지는 몰라도
그래도 누군가를 섬겨야만 해.'

 

기독교에 심취해 있던 당시 그는 가사에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을 써 내려갔다. 어떤 사회적 위치나 상황에 있든지 주를 받들고 섬겨야 한다고 말하는 밥 딜런은 아이러니하게도 포크록으로 청년들을 저항의 띠로 엮었던 것과는 반대로 가스펠을 대중이라는 영역에 옮겨 놓으며 크리스천들을 신앙의 힘으로 단합하게 했다. 그렇게 그는 기독교에 전도자 적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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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dark yet (1997)

 

밥 딜런은 딱히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 중반까지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한다. <Under The Red Sky> 이후 7년간 그저 과거의 작품들을 연주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에게 새로움이란 없었고 밥 딜런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대중의 머릿속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1997년 딜런은 <Oh Mercy>의 다니엘 라노이스(Daniel Lanois)와 다시 한 번 팀을 꾸려<Time Out of Mind>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당시 그의 나이는 56세. 몸 상태도 악화되었던 딜런은 결코 좋지 않은 환경에서 그의 수작을 탄생시켰다. 음반은  <Blood on The Tracks>의 독백적, 성찰적 메시지와 신앙 또는 신화를 컨트리 블루스에 녹여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대중은 노장의 돌아온 음악적 감각에 환호했고 앨범은 차트 10위라는 상업적 성공과 그래미 수상의 영예를 모두 거머쥐게 된다.

 

「Not dark yet」은 앨범 내에서 가장 차분한 곡이다. 화자는 죽음을 몸으로 느끼고 머리로 사색한다. 해가 지고 있지만 잠이 오지 않고, 시간은 흘러만 간다. 자신의 영혼은 죽어가고 있다. (“It's too hot to sleep and time is running away”, “Feel like my soul has turned into steel”) 남아있는 인간미는 아름다움을 뒤로 한 채 희미해지고 (“My sense of humanity has gone down the drain”, “Behind every beautiful thing there's been some kind of pain”)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거짓으로 가득 찬 세계의 끝에 도달했다. (“I've been down on the bottom of a world full of lies”)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은 다가온다. (“I was born here, and I'll die here against my will”) 감각이 점점 흐려지고 죽음이 다가온다. (“Every nerve in my body is so vacant and numb”, “Don't even hear a murmur of a prayer”)

 

딜런은 죽음을 둘러싼 생각을 의식의 흐름과 감각 작용을 통한 묘사로 서술했고, 그가 존 키츠의 '나이팅게일에 부치는 노래(Ode to a Nightingale)'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이를 근거로 한다. 시의 1절 1구와 3구를 살펴보면 '내 가슴은 저리고, 졸리는 듯한 마비가 내 감각에 고통을 주는구나.', '혹은 어떤 감각을 둔하게 하는 아편의 찌꺼기까지 들이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 흐릿해지는 감각과 그 묘사를 빌려왔다는 것이다.

 

노래는 딜런이 생사의 고비를 겪기 전 완성되었지만 가사는 흡사 죽음의 순간을 예견한 모양새다. 혹은 항상 죽음을 가까이하고 있던 것은 아닐지. 순례자가 행진하는 분위기와 단순한 리듬은 성스러운 감정마저 촉발한다. 해는 저물고 그림자는 드리워진다. 그러나 아직 어둡지 않다. 온몸의 신경이 숨을 죽여가지만, 그래도 아직 어둡지 않다. 죽음의 순간에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절망의 끝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아직 어둡지 않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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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you feel my love (1997)

 

'비바람이 그대 얼굴을 적시고 온 세상이 당신을 버겁게 할 때,
내가 그대를 따뜻하게 안아줄게요. 당신이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거장의 창작력은 1990년대에도 빛났다. 사회 참여적, 자기 성찰적 가사뿐 아니라 로맨틱한 글짓기에도 능했던 그는 지천명이 지난 나이에 세기의 러브 송을 남겼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언제고 무엇이든 하겠단 달콤한 고백은 아름다운 선율에 실려 힘을 발휘했다. 비록 젊은 시절의 미성은 간데없이 까끌까끌한 목소리였지만, 또 다른 매력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사실 노래는 빌리 조엘의 세 번째 베스트앨범<Greatest Hits Volume III>를 통해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간발의 차이로 밥 딜런 오리지널 버전이 그의 30번째 정규 앨범 <Time Out of Mind>에 실려 공개됐고, 곧이어 노래의 진가를 알아본 후배들에 의해 커버가 이어졌다. 특히 요즘 청취자들은 이 노래를 아델의 버전으로 기억한다. 그는 데뷔 앨범 <19>(2008)에서 곡을 취입했는데, 해당 음반에서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도 밝힌 바 있다.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멜로디 메이커인 딜런의 내공이 유감없이 발휘된 명곡.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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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have changed (2006)

 

특유의 파동이 큰 스네어 드럼으로 곡이 시작되고, 마이너 스케일의 가라앉은 공기 안에서 딜런은 대화하듯 가사를 읊는다. 여기서 그의 보컬은 거칠면서도 은근히 세련되었다. 타코 버전의 「Putting on the ritz」를 듣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지면서도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무심하게. 영화감독 커티스 핸슨의 팬심(?)으로 성사된 작업에서 딜런은 기존의 곡을 삽입하는 대신 영화 <원더 보이즈>만을 위한 새 노래를 작곡했다. 이 곡으로 딜런은 2001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두 곳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그의 노래가 영화에서 흘러나온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는 1966년 <Blonde on Blonde>앨범에 수록된 「Rainy day women #12 & 35」가 삽입되었고, 좀 더 늦게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2001년 작 <로얄 테넌바움>, 여기엔 딜런의<Self Portrait>(1970) 앨범에 수록된 「wigwam」이 있다.

 

우리는 종종 현재진행형의 전설을 체험한다. 데뷔 직후부터 음악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된 밥 딜런은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식지 않은 창작열을 보여주었다. 발전하는 클래식 아이콘. (홍은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브로드웨이는 ‘뉴 베네치아’, 뮤지컬 대표곡 2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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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의상, 환상적이면서 때로는 인간미가 묻어나는 이야기, 그리고 매혹적인 음악. 온갖 감각의 향연으로 뮤지컬은 대중의 눈과 귀를 채워 왔다. 기원은 16세기 후반, 이탈리아에서 오페라가 등장하고 몇백 년 동안 유럽을 중심으로 오페라와 무대예술이라는 말은 거의 동급의 의미로 쓰였다. 그러다가 1900년대 초, 조지 거쉰, 제롬 컨 등 미국 작곡가들이 오페라와는 구분되는 과도기 작품을 연이어 발표했다. 이제 브로드웨이가 ‘뉴 베네치아’다! 이즘에서는 이미 고전의 칭호를 얻은 <오페라의 유령>부터 2014년에 만들어진 <해밀턴>까지 중요한 넘버 스무 곡을 꼽았다. 다만, 주크박스 뮤지컬은 잠시 미뤄두고, 오리지널 창작극을 위해 새로이 만들어진 노래로만 리스트를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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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The Music of the Night (오페라의 유령)

 

‘음악 천사’ 팬텀을 따라 지하의 비밀 공간으로 내려오는 크리스틴. 그에게 바치는 황홀한 노래가 밤을 채우고, 내내 환청처럼 들렸던 천사의 음성은 마침내 달콤한 현실이 된다. 아주 오랫동안 가면 뒤 세계에 갇혀 있던 남자에게 이제 어둠은 사랑스럽다.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거장 앤드류 로이드 웨버에 의해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팬텀 역의 정수로는 초연 멤버였던 마이클 크로포드를 꼽으며, 라민 카림루 또한 크로포드의 섬세함에 강렬함을 더한 연기로 호평을 받았다. 「The music of the night」은 극중 남자 주인공인 팬텀의 가장 유명한 넘버로, 우아한 밤의 찬가이자, 프리마 돈나 크리스틴을 향한 고백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곡은 클래식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오페라 아리아의 성향이 짙다. 특히 날카로운 톤으로 속삭일 때 그에 맞춰 반음씩 움직이며 위태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오케스트라가 환상적이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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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Memory (캣츠)

 

앤드류 로이드 웨버를 ‘로드(Lord) 로이드 웨버’ 그리고 ‘뮤지컬의 마법사’로 만든 것은 당연 음악이다. 뮤지컬 <캣츠>의 관객들은 과거의 화양연화를 지나 이제 늙수그레해진 창녀 ‘그리자벨라’의 인간적 넋두리에 동정과 연민을, 거기에다 극을 지배하는 강렬한 발라드 선율에 무한 흡수를 경험한다. 이 드라마의 클라이맥스일 뿐 아니라 어쩌면 앤드류 로이드 웨버 아니면 뮤지컬 전체 역사의 정점일지도 모른다.

 

영국 웨스트엔드 초연 때의 엘레인 페이지(Elaine Page) 버전이 1981년 싱글차트에 올라 6위에 오른 대중적 히트가 그 흡수력을 실증한다. 주요 시점의 <캣츠> 공연에 이 노래를 부른 여가수는 사라 브라이트먼을 비롯해 대체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팝 버전으로는 배리 매닐로우가 빌보드 순위는 높지만 대중의 기억은 무결점 소프라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버전에 몰린다. 과장하면 별칭 그대로 로드, ‘신(神))의 멜로디’!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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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easons of love (렌트)

 

예술과 가난은 오랜 숙명적 관계인걸까. 18세기에도 현실이라는 시궁창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성장하는 청년의 이야기가 존재한다. 바로 푸치니가 만든 오페라 <라 보엠>이다. 파리의 라탱의 이야기를 뉴욕 이스트 빌리지로 옮기고 이야기를 현대화 시킨 뮤지컬이 <렌트>다. 음악 스타일도 아리아가 아닌 록과 R&B로 바뀌었다. 이 중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은 2막을 여는 가스펠 합창곡 「Seasons of love」. 인생을 사랑으로 채우라는 노랫말이 뭉클하다. 게다가 작사, 작곡, 극본을 맡은 조나단 라슨의 극적인 죽음도 렌트의 성공에 한몫했다. 그는 오프 브로드웨이 무대인 뉴욕 시어터 워크숍에서 <렌트>의 드레스 리허설을 마친 다음 36세의 젊은 나이로 급사했다. 그의 죽음은 젊은 예술가들의 비극을 담은 뮤지컬과 너무 닮아 더 안타깝게 기억된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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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Defying gravity (위키드)

 

단지 피부색이 초록이라는 이유로 태어날 때부터 차별과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엘파바. 게다가 자신이 깊이 동경하던 이가 실은 보잘것 없는데다가 비겁하기까지 한 존재라는 걸 깨닫고 배신감으로 분노한다. 그러나 웨스트라이프의 「You raise me up」을 연상시키는 「Defying gravity」의 가슴 벅찬 멜로디가 이 멋진 약자에게 절망이 내리도록 마냥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고전 <오즈의 마법사>를 비틀어 선악을 전복시킨 작품 <위키드>는 아웃사이더의 삶을 메인으로 가져와 조명한다. 곡이 절정으로 흐르며 엘파바는 정말로 비상한다(몸이 하늘 위로 떠오르며 엄청난 부피의 로브 자락이 펼쳐진다.) 편견을 뚫고 날아오르는 청춘에게 이보다 솔직하고 당찬 희망가가 또 있을까.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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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One night in bangkok (체스)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대를 소재로 만들어진 뮤지컬 <체스>는 1984년에 초연되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흥행과 평가 모두 실패했지만 이 작품이 주목받은 이유는 아바의 두 남성 멤버 배니 안데르손과 비요른 울바에우스 그리고 유명한 뮤지컬 작사가 팀 라이스가 음악을 맡았기 때문이었다. 여기 삽입된 「One night in Bangkok」은 베니와 비요른이 작곡하고 팀 라이스가 가사를 썼다.

 

1985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3위, 영국차트 12위를 차지했지만 유럽과 호주에서는 정상을 차지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우리나라 라디오에서도 환영받았다. 당시 국내에서 사랑받은 유로 댄스의 선율과 리듬 속에 동양적인 요소를 이식해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고 뮤지컬 배우 머레이 헤드의 랩 같지 않은 읊조림은 어울리지 않는 어울림을 선사하며 서구인들에게 색다르게 다가갔다. 하지만 노래의 배경이 된 태국에서는 석가모니에 기대고, 술집은 사원처럼 되어 있고, 금으로 만들어진 사원에서 신을 만나고, 운이 좋으면 여장 남자도 만날 수 있다는 내용이 태국을 비하하고 부처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금지곡 판정을 받았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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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I still believe (미스 사이공)

 

레아 살롱가를 뮤지컬 무대 위로 올린 최초의 곡. 최악의 상황에서도 비참한 심경을 억누른 채 주인공 킴은 단호한 어조로 ‘믿음’을 내뱉는다. 거기에는 짧았지만 소중했던 인연의 조각, 그리고 내가 지켜야 할 대상을 위한 의지가 담겨 있다.

 

라이따이한과 코피노 이슈로 시끄러운 요즘에 보기에 미스 사이공의 비극은 쓸쓸함이나 안타까움보다는 불편함과 분노로 다가오기 쉽다. 실제로 이 작품은 서양 우월주의 사상에 기반해 패전국인 미국을 미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도 꾸준히 비판받고 있다. 심지어 주인공 킴 역할을 맡은 레아 살롱가는 미국에 50년 가까이 식민 지배를 받았던 필리핀 출신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그리고 이 곡이 사랑받는 이유는 한 인간의 맹목적인 헌신에 담긴 숭고함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기 때문일 테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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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Don’t cry for me Argentina (에비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팀 라이스의 역사적 콜라보는 대중적 명작으로 자동 연결되곤 하지만 그 가운데 아마도 발표시점의 시장과 차트 장악력에 관한 한 이 곡을 따를 수는 없다. 1976년 먼저 앨범이 나오고, 1978년 뮤지컬로 공개되면서 팝과 쇼 무대를 동시 평정하는 대 기염을 토했다. 아르헨티나 ‘민중의 여신’ 에바 페론(에비타)의 삶을 그린 웅대한 드라마(라이스)와 귀를 휘감는 화성과 멜로디(웨버)의 유니버설 파워일 것이다. 가끔 표절 혐의에 오르는 것도 튠스미스(tunesmith) 웨버가 이처럼 언제나 대중노선을 타기 때문이지 않을까.

 

영국 차트 1위에 오른 줄리 코빙턴(Julie Covington) 버전이 전파에선 우월했지만 엘레인 페이지, 카렌 카펜터, 올리비아 뉴튼 존, 시네드 오코너, <글리 시즌6>의 레아 미셀 등 여가수라면 한번 불러봐야 할 스탠더드 넘버로 남았다. 마돈나가 이를 영화로 만들어 스스로 에비타로 분해 노래한 1996년 버전은 새로운 세대에게 이 곡의 시공초월 보편성을 알리는데 기여했다. 가히 20세기의 문화유산!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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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Les temps des Cathedrales (노트르담 드 파리)

 

가장 단순하고도 강렬한 뮤지컬 인트로. <노트르담 드 파리>의 문을 여는 역할로, 극의 비극성과 웅대한 이미지를 한 곡으로 예비한다. ‘대성당’이라는 말에 어울리도록 멜로디에 워드 페인팅 기법을 도입한 게 특징. 몇 개의 계단을 거치며 2옥타브 가량 높이 상승하는 선율과 무대 위 첨탑 같은 상징물이 압도적이다. 음유시인 그랑그와르의 독창으로 진행되는 이 곡은 프랑스어의 둥글둥글한 발음과 엄숙하고도 폭발적인 가창이 합쳐져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접하는 듯 묘한 인상을 준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는 빅토르 위고의 작품에 기반해 있으며, 1998년 초연 이후 지금까지 무대에 활발히 올라가는 스테디셀러이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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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Do-Re-Mi (사운드 오브 뮤직)

 

언제 들어도 가슴 한켠이 밝아지는 힘을 지녔다. 독일과의 합병을 피해 자유를 찾아 떠나는 한 가족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사운드 오브 뮤직의 대표곡이자 테마곡 「Do-Re-Mi」(도레미)는 1959년 첫 막을 올린 뮤지컬 무대에서 처음 불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뮤지컬보다 후에 제작된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휩쓸면서 유명해졌다. 경쾌하고 산뜻한 멜로디에 마리아 수녀와 일곱 남매의 아름다운 하모니를 담고 있는 곡은 그 인기만큼 오랜 세월을 막론하고 지금까지 전 세계 사람들의 애정을 독차지하고 있다.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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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예수가 록을 한다면 어떤 모습일까.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앤드류 로이드 웨버(Andrew Lloyd Webber)의 발칙한 상상이 무대 위에 구현된 뮤지컬이다. 신성화된 예수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예수와 그런 그에게 푹 빠져버린 마리아 막달레나의 내면적 갈등을 노래한 이 곡은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헬렌 레디 버전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로 잔잔한 반주에 사랑에 빠진 자신에게 느끼는 당혹감을 읊조리다 클라이맥스에선 코러스와 웅장한 현악 사운드로 감정을 폭발시키는 그 표현력은 들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덕분에 노래는 빌보드 차트 13위까지 오르며 지지부진했던 헬렌에게 상업적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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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Origin of love (헤드윅)

 

헤드윅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 ‘정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옛 연인의 곡을 베껴 록스타가 된 ‘토미 노시스’, 성전환 수술에 실패해 자신의 몸에 앵그리 인치를 남기게 된 ‘헤드윅’, 자유롭게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그의 남편이자 아내인 ‘이츠학’ 몸 혹은 마음 어딘가가 상처 투성이인 불완전한 인간들이다. 그들에게 ‘사랑이란 무엇인가?’ ‘과연 사랑은 있는가?’ 라는 어려운 질문을 이 곡 하나로 답한다. 신화로 풀어낸 가사도 좋지만 애니메이션으로 이미지를 설명하는 무대 장치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뮤지컬의 극본과 연출, 주연을 맡은 존 캐머런 밋첼이 동명의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조승우, 조정석, 변요한 등 우리나라에서 연기 잘한다는 배우들은 꼭 한 번 거치는 뮤지컬 관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헤드윅은 독특하고 매력적인 캐릭터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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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My strongest suit (아이다)

 

작품을 본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이다와 라다메스의 비극적인 사랑에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그러나 잠깐. 암네리스의 입장에서 <아이다>를 살펴보자. 그는 파라오의 딸이자 한 나라의 공주. 막대한 부는 물론이고, 남부럽지 않은 권력까지 갖춘 그는 완벽한 남자 라다메스와 결혼을 약속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아이다가 등장하기 전까지. 난데없이 등장한 패전국의 포로가 수년간 짝사랑해온 남자와 사랑에 빠지다니. 심지어 이 포로는 ‘나의 가장 완벽한 드레스’를 만들어 줄 하녀인데. 이 얼마나 비참한가.

 

디즈니가 제작한 뮤지컬 <아이다>엔 「My strongest suit」를 제외하고도 「Written in the stars」, 「Every story is a love story」, 「I know the truth」 등 멋진 넘버들이 등장한다. 엘튼 존이 음악을 맡고 팀 라이스(Tim Rice)가 작사를 한 <아이다>의 음악들은 토니 어워드(Tony Award)와 그래미 어워드에서 최우수 뮤지컬 음반상을 수상했다. 또한 스팅, 티나 터너, 자넷 잭슨, 제임스 테일러 등 유명가수들이 재해석한 음반도 발매되었다. 그러나 스파이스 걸스 버전의 「My strongest suit」은? 음. 글쎄.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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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I dreamed a dream (레미제라블)

 

레미제라블의 감동은 극 초반 앤 해서웨이로부터 시작됐다. 버둥거릴수록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지는 미혼모 판틴의 삶은 등장인물 중 가장 슬프고 가엾다. 클로드 미셸 쇤베르는 이 곡을 작곡할 때 대본을 수없이 읽으며 인물의 비참하고 나약한 상황을 노래 속에 녹이고자 했다. 한 때 사랑받았을 여성이, 빛이 보이지 않는 심연(深淵)에서 절규하는 모습은 많은 관객의 가슴 깊이 박혔다.

 

화면은 한곳에 고정되어있고 오롯이 앤 해서웨이의 노래가 공간을 채운다. 가늘었던 목소리는 감정이 고조됨에 따라 분노나 절망으로 바뀌어간다. 선율 자체도 아름다웠지만, 완전히 몰두된 눈빛과 톤, 몸의 움직임이 처연한 감성을 일렁였다. 흐르는 눈물, 격정적인 표정은 스크린 가득 클로즈업되여 뮤지컬 무대가 잡아낼 수 없는 순간을 전달했다. 그렇게 레미제라블은 불행한 사람들의 ‘노래하는 얼굴’을 정면으로 담아내며 여운을 남겼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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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Cell block tango (시카고)

 

극을 대표하는 또 다른 명곡 「All that Jazz」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한다면, 「Cell block tango」는 주요 등장인물 여섯 명을 차례로 조명한다. ‘펑’, ‘여섯’, ‘우지끈(squish)’, ‘어-어(Uh-uh)’, ‘시세로(Cicero)’, ‘립시츠(Lipschitz)’. 각자 다른 이유로 애인을 살해하고(혹은, 누명을 쓰고) 쿡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된 여섯 여인은 사건의 경위를 키워드로 설명한다. 노래에 맞춰 조명과 소품, 아찔한 의상이 연출하는 섹시한 긴장감은 무대에서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 할 순간.

 

시각 요소를 제외해도 듣는 재미는 상당하다. 리드미컬하게 쪼갠 멜로디와 대사로 전하는 사건 전말, 경쾌한 제창(unison) 후렴구까지, 6분 남짓한 구성에 빈틈이 없다. 각기 다른 개성의 보컬을 유연하게 묶는 탱고의 매력은 또 어떤가. 음악은 가사의 내러티브를 따라 완급을 조절하며 흡인력을 유지한다. 뮤지컬 넘버로써 관객의 눈과 귀를 동시에 움켜쥘 수 있는 곡만큼 탁월한 것이 있을까. 「Cell block tango」는 그런 측면에서 만점에 가깝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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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Alexander Hamilton (해밀턴)

 

뮤지컬 역사를 통틀어 <Hamilton>만큼 단기간 만에 폭발적 반응을 이끌어낸 작품은 많지 않다. 지난해 초연된 작품은 상연과 동시에 화제의 중심에 섰다. 10달러 지폐 앞면의 주인공이자 미국 최초의 재무부 장관, 미합중국 건국의 아버지인 알렉산더 해밀턴의 일대기를 다뤘기 때문만은 아니다. 19세기를 전후로 살았던 인물을 무대에 불러오기 위해 선택한 음악은 다름 아닌 힙합. 랩의 뮤지컬 넘버화가 최초는 아니었으나, 완성도와 대중 감화력은 확실히 남달랐다.

 

그중에서도 「Alexander Hamilton」은 극의 첫머리에 등장한다. 곡은 주인공 알렉산더 해밀턴, 실제 역사 속에서 그의 정적(政敵)이었던 애런 버(Aaron Burr), 토머스 제퍼슨과 조지 워싱턴 등 극 중 모든 캐스트가 무대에 올라 함께 부르는 프롤로그 성격을 띤다. 알렉산더의 출생과 성장, 뉴욕에 오게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랩과 노래에 압축해 관객들에 전하는 것. 오늘날의 래퍼 드레이크를 보는 듯 랩과 노래를 여유 있게 오가는 래핑, 매끈한 가사의 압운과 플로우, 잘 들리는 멜로디 파트를 고루 갖췄다. 뛰어난 음악 덕분에 특별한 연출 없이도, 그 스케일만으로 무대는 압도적이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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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lectricity (빌리 엘리어트)

 

탄광촌 소년 빌리는 발레리노를 꿈꾼다. 아버지와 형의 거센 반대도 소용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왕립 발레 학교. 그토록 바랐던 오디션을 망친 빌리에게 한 심사위원이 물었다.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 빌리? 너는 춤을 출 때 어떤 기분이니?” 소년은 말했다. “뭐라 설명하기 힘들지만…마치 제 안에 전기(Electricity)가 통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자유로워져요. 자유를 느낀다구요!”

 

동명의 영화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Billy Elliot>은 영국의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 엘튼 존의 음악으로 탄생했다. 「The stars look down」, 「Deep into the ground」 등 주옥같은 넘버들 중에서도 압권은 「Electricity」. 발레리노를 향한 소년의 열망이 작곡가 특유의 유려한 선율에 담겨 많은 관객을 울렸다. 격정적으로 노래하던 빌리가 곡 중간에 펼치는 독무 역시 뛰어난 볼거리다. 아, 이 무대만 보면 왜 이리도 눈물이 나는지.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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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42nd street (브로드웨이 42번가)

 

뮤지컬을 사랑하는 이들에겐 성지로 통하는 뉴욕의 브로드웨이(Broadway)를 상징적으로 노래한 곡이다. 소설 원작으로 시작된 <브로드웨이 42번가>는 원작 출시 이후 무려 반세기의 세월을 거쳐 1980년 뮤지컬로 초연돼, 현재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웰메이드 작품이다.

 

극 중 히로인인 페기 소여(Peggy Sawyer)가 모든 역경을 딛고 주인공으로 발탁되어 무대의 피날레를 장식한다. 브로드웨이 42번가에 대한 달콤쌉싸름한 찬미는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응시했기에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작품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탭댄스와 화려한 의상, 소품 등은 공연의 맛을 더한다. 뮤지컬에 대해 이야기하는 뮤지컬이기에 그 의미가 배가된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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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This is the Moment (지킬 앤 하이드)

 

1990년 초연한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의 1막 후반부를 아련하게 닫는 곡. 국내에서는 조승우가 부른 버전이 인기를 모았다. 장엄하고 절실한 멜로디에 얹히는 ‘내게 확신만 있을 뿐’이라는 희망적인 가사가 대중에게 긍정적인 분위기로 다가왔지만, 정작 곡이 끝난 후에 지킬 박사는 실험 실패로 하이드로 변모한다. 세계 여기저기서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달려가는 이들을 응원하기에, 이만한 곡은 없다.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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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Rebecca (레베카)

 

핵심 인물 ‘레베카’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한평생 아가씨를 모셔온 ‘댄버스 부인’이 자리를 지키며 그 이름을 되부른다. 어두운 단조 멜로디, ‘레베카~ 나의 레베카’ 같은 집착 담긴 노랫말이 인물과 꼭 닮았다. 곡을 작곡한 실베스터 르베이는 전작 <모차르트>에서도 괴팍하고 모난 캐릭터에 음악으로 생을 불어넣었다. 댄버스 부인은 이 곡으로 검은 마녀처럼 음습한 기운을 뿜어내며 극을 장악한다.

 

레베카에는 뮤지컬 <시카고> 같은 역동성, <캣츠>의 화려한 의상을 찾기 어렵다. 배경 또한 저택에 한정되어 있다. 대신 미스터리한 대저택 곳곳과 거친 파도가 일렁이는 바다 모두 레베카의 어둡고 검붉은 느낌을 표현하는데 집중한다. 시각적 연출은 소설 레베카를 영화로 제작한 스릴러 거장 히치콕 감독의 흔적이다. 음악과 무대가 정성스레 빚어낸 이미지는 실재하지 않는 레베카 대신, 그를 그리워하는 댄버스 부인에 투영되어 존재감을 몰아준다. 사랑받을 수 없을 거라 생각되던 캐릭터는 커튼콜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는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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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Any dream will do (조셉 앤 더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

 

약관에 채 도달하지도 않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와 스무 살로부터 겨우 두 해를 더 넘긴 팀 라이스는 천부적인 재기를 가득 담아 뮤지컬 <조셉 앤 더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를 함께 만든다. 후일 그들이 써내릴 여러 대작들에 비하면 다소 엉성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상상을 기반으로 한 연출과 성서 창세기 속 요셉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제작으로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받았다. 「Any dream will do」는 뮤지컬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곡이다. 몽환적인 사운드 톤과 아기자기한 리듬 위에서 요셉과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노래하는 이 노래에 작품 <조셉 앤 더 어메이징 테크니컬러 드림코트>의 주제와 내용, 구성과 색감이 녹아있다. 1991년 런던 팔라디움에서 상연될 당시 요셉 역을 맡았던 제이슨 도노반의 버전이 큰 인기를 끌었고 그외에도 대니 오스먼드, 리 미드, 코니 탤벗 등 여러 아티스트들의 버전도 널리 알려졌다. (이수호)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자국민을 냉대하는 케이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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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을 슥슥 넘기다 우연히 이규탁 교수님의 기사('K팝과 J팝', 조선일보 [일사일언], 2016년 11월 3일)를 보았다. 평소 그 식견에 감탄하며 재미있게 봐오던 칼럼이었는데, 오늘따라 내 의식에서 튕겨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 대중문화가 아시아 전역에서 폭넓게 사랑받는 지역 문화(regional culture)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요지였는데, 그 전개과정은 다소 납득하기 힘들었다. 물론 동아시아 문화의 구심점 중 하나가 한류라는 사실엔 반박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비교 대상으로 '과거의 영광을 잃은 제이팝'을 거론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선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히 있다가 괜히 뒤통수를 얻어맞은 제이팝이 억울해 할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제이팝과 케이팝이란 명칭의 생성 배경이다. 제이팝이 1980년대 후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매스미디어 지향의 음악을 일컫던 것을 시작으로 그 외연을 넓혀간 용어라면, 케이팝은 동방신기와 소녀시대, 카라 이후 기획사에 의해 주도된 수출 상품을 상징하는 말에 가깝다. 이처럼 의미 자체가 다르기에 동일선상에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다.


일본음악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붐을 일으켰던 것은 부수적인 결과였을 뿐 거기엔 어떤 큰 의도가 없었다. 반면 케이팝은 해외에 큰 비중을 두고 진행되는 상품이다. 글에서 언급되는 케이팝 붐이 '일본의 음악이 전보다 세련되지 않아서' 라던가 '한국의 음악이 발전해서' 라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냥 누가 더 국경 밖으로 눈을 돌리고 있느냐의 차이인 것이다.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케이팝이 물론 자랑스러울 수 있지만, 지금 시점에서 개인적으로 우려하는 것은 케이팝이 보여주는 자국민에 대한 냉대이다. <誰も?えてくれなかった本?のポップミュ?ジック論(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진짜 팝 뮤직 론)>의 저서 이치카와 테츠시(市川 哲史)는 최근 한국의 음악과 일본의 음악의 가장 큰 차이가 가사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인 즉, 일본시장의 기반은 내수이기에 노랫말에 많은 신경을 쓴다는 것이다. 원체 책을 많이 읽고 표현 또한 풍부한 나라다. 어느 콘서트에 가 저 아티스트가 왜 좋으냐고 물어보면 열에 일곱은 '독특한 가사의 세계관이 좋아서' 라거나 '노랫말로 힘을 얻을 수 있어서'라고 대답한다. 음악 자체가 삶에 맞닿아 있기에 이를 대하는 에너지 또한 굉장하다.


물론 우리나라 가요에도 좋은 노랫말이 많지만 케이팝만 한정해서 본다면 양상은 달라진다. 애초에 외국인들을 타깃으로 하기 때문에 의미는 중요치 않다.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쉽게 반응할 수 있는 발음과 액센트를 만드는 데에 중점을 둔다. 슈퍼주니어의 'Sorry sorry', 샤이니의 'Ring ding dong' 등이 나온것은 그런 배경에서다. 그런 흐름에서 정작 한국의 음악 애호가들은 조금씩 배제되어 간다.


이러한 감상의 측면 외에도, 케이팝은 그 문화로부터 최우선으로 여겨져야 할 자국민에게 점점 박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지금의 방탄소년단과 같이 국외에 집중된 활동 패턴으로 국내 인지도에 비해 해외에서 훨씬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룹이 생겨나고 있는가 하면, 빅뱅은 해외 활동을 하느라 우리나라에서 통 얼굴 보기가 힘들 정도다. 그 탓에 국내에서 콘서트라도 열라치면 '빅뱅이 내한했다'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이것과 별개로 케이팝 이외의 다양한 장르들이 활발히 움직여 시장을 형성한다면 굳이 이런 현상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90% 이상의 자본이 한류 시스템에 투자되는 형국이다. 일방향적인 흐름에 대중들의 선택권 또한 한정되어질 수밖에 없다. 자국의 대중들이 소외되는 음악을 과연 케이팝이라 명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그냥 한국 국적을 가진 이들이 하는 일종의 팝이지 않을까. 그래서 케이팝이라 부르는 지도.


고스로리와 메탈의 독특한 조합으로 로컬문화의 특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던 베비메탈(BABYMETAL)은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 단독공연을 포함한 월드투어를 성공리에 끝마쳤고, 지난 9월 도쿄돔 2DAYS로 10만명의 관객을 모으며 멋지게 귀환했다. 국악과 메탈의 크로스오버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고 있는 잠비나이가 해외 투어를 끝내고 돌아왔을 때, 국내에서 과연 그 10분의 1만큼이라도 환영을 받을 수 있을까.


한류를 통한 국위선양도 좋지만, 우선적으로 우리가 삶의 지표로 삼을 수 있는 노랫말, 나라의 특색을 알릴 수 있는 음악의 존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의 케이팝은 가까이서 보면 전세계의 팬을 사로잡은 멋진 콘텐츠다. 하지만 멀리서 봤을 땐 그저 잘 가공된 무국적 트렌디 상품에 가깝다. 그 상업논리엔 10대의 꿈과 노력이 필수 공물이라는 사실 또한 반갑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자국을 기반으로 대중문화가 발전해 나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선 (순siri가 개입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평창올림픽과 도쿄올림픽 홍보영상의 퀄리티 차이가 이미 말해준 바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의 폐막식은 싱어송라이터 시이나 링고(椎名 林檎)가 총연출과 음악을, 퍼퓸(Perfume)의 댄스를 담당하는 미키코가 안무를 도맡았다. 모두 제이팝 신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다. 마찬가지로 한국 문화의 기수에 서있는, 그렇게 자랑스러워하던 케이팝의 정체성은 평창올림픽 홍보영상 속에서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지는가. 그리고 과연 어느 누가, 한류라는 트렌드가 지나간 자리에 어떤 가치 있는 것이 남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가. 케이팝이라는 모래성의 공허함, 의외로 빨리 느끼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레너드 코헨의 노래 2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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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뮤지션이 떠났다. 밥 딜런의 노벨상 수상으로, 그와 함께 문학적인 노랫말로 주목 받았던 캐나다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헨이다. 올해도 음악 활동을 이어오며 건재함을 알렸기에 노장의 죽음은 아프게 다가왔다. 얼마 전 발매된 <You Want It Darker>은 그렇게 마지막 앨범으로 남았다.

 

영화 <슈렉>에 삽입된 「할렐루야」(Hallelujah)처럼 그의 음악은 느릿하고 종교적인 성격을 가졌다. 때문에 대중적인 열광을 견인하지 못했지만, 오래도록 간직되며 엘튼 존, 돈 헨리 등의 후배 가수들에게 불러졌다. 국내에서는 라디오와 TV 전파를 타고 그의 목소리가 종종 소개되었다. 밥 딜런과 함께 가사의 품격을 높여준 그를 추억하며 대표곡 20곡을 꼽았다. (아래 레너드 코헨의 20곡은  멜론 플레이리스트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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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zanne (1967, Songs Of Leonard Cohen 수록)

 

시대의 위대한 음유시인은 그 출발부터 범상치 않았다. 1956년 첫 시집을 발간하고 시인으로서 궤적을 그리던 그는 1966년 시집 『천국의 기생충들(Parasites of Heaven)』을 발표했다. 그중 시집에 수록된 「수잔이 그대를 이끄네(Suzanne takes you down)」는 그의 데뷔 싱글 「Suzanne」의 밑바탕이 됐다. 가수 이력의 시작점 자체가 한 편의 시인 셈. 노래는 시집이 발간되던 해에 발표된 포크 가수 주디 콜린스(Judy Collins)의 버전으로 먼저 알려졌고, 코헨의 오리지널은 이듬해 세상의 빛을 봤다.

 

노래에 등장하는 「Suzanne」은 1960년대 초반 그와 깊은 정신적 교감을 나눴던 미모의 무용수 수잔 베르달(Suzanne Verdal)이다. 가사에는 수잔과의 추억, 그를 향한 은근한 연정과 함께 종교적 사유까지 차분하게 담겨있다. 노랫말의 섬세한 압운과 서정적 선율, 담백한 음성의 조화는 이후 펼쳐질 60년 음악 여정의 서막이었다. 아름다운 이야기를 그린 가사와 달리, 노래가 발표된 후 수잔은 그를 단 두 번밖에 보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부고가 들려온 날, 그와 한 시절을 공유한 그녀 또한 어디선가 눈물을 훔쳤으리라.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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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long Marianne (1967, Songs Of Leonard Cohen 수록)

 

레너드 코헨이 가장 사랑한 뮤즈는 수잔도, 레베카 드 모네이(Rebecca De Mornay)도 아닌 마리앤 일렌(Marianne Ihlen)이 아닐까. 데뷔작 <Songs Of Leonard Cohen>에는 수잔과 마리앤, 두 여성이 모두 등장하지만 곡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경건한 수행자의 분위기를 풍기는 「Suzanne」과 달리 「So long, Marianne」은 마리앤을 사랑하면서도 이별해야 하는 아쉬움을 문학적으로 비유한 러브송이다. “마치 내가 십자가인 것처럼 당신은 내게 매달렸어요. 절벽 끝에 서있는 날 당신의 거미줄로 감아 (떨어지지 않도록) 돌에 묶어주는군요.” 낮은 목소리만이 읊조리던 외로운 심사는 노래의 후반에 여성 코러스와 화음을 이루며 고조된다. “이제는 때가 왔어요. 마리앤.”

 

마리앤을 만난 이드라섬에서 시집 『Flowers For Hitler』를 발간하고 그녀에게 바친 레너드 코헨. 지독하게 사랑했던 과거의 연인이 먼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항상 당신의 아름다움과 현명함을 사모했다는 것은 잘 아실 테니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저 당신의 편안한 여정을 바라는 바입니다.” 편지의 내용은 노래의 가사와 맞물려 진한 여운을 남긴다. “잘가요. 나의 오랜 벗.”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비로소 두 사람의 이야기가 마무리된 듯하다. So long, Marianne, So long, Leonard.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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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ters of mercy (1967, Songs Of Leonard Cohen 수록)

 

유대교 사제 집안 출신인 코헨에게 종교는 빼놓을 수 없는 인생의 화두였다. 신성과 속세를 분리될 수 없는 합일된 세계로 본 그는 세속적인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적 모티프를 이용했다. 평생에 걸쳐 음악으로 그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가 눈보라로 고립된 어느 호텔에서 만난 두 여인에게 바치는, 1967년 말 데뷔음반 <Songs Of Leonard Cohen>의 수록곡 「Sisters of mercy」 역시 경건한 어조로 그 통속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곡이다.

 

3박자의 담백한 어쿠스틱 기타 반주 위에 멜로디가 편안하게 깔린다. 이어 등장하는 아코디언은 보컬 라인을 따르기도, 반주로서 받쳐주기도 하며 부드러운 색깔을 칠한다. 귀를 자극하지 않는 차분한 사운드가 종교단체 ‘자비의 수녀회’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노랫말과 어우러져 자비로운 성녀의 품 안에서 편안한 잠에 빠져드는 느낌을 준다. 여인의 아름다움을 종교적으로 은유하는 이 발칙한 상상력이 신성모독으로 느껴지지 않는 건, 일상에서 엿본 경건함을 진지하게 풀어나가는 그의 독창적 표현력 덕분이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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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ems so long ago Nancy (1969, Songs From A Room 수록)

 

‘낸시는 노란 스타킹을 신었고 모든 이와 잠을 잤지/ 그녀는 외로웠지만 우리를 기다리지는 않았다고 말했어/..우린 그녀가 아름답다고 자유롭다고 말했지만/ 이 미스터리 집에서 누구도 그녀를 만나지 않은 거야…’


전달 메시지가 불명확한 이 곡에 대해 코헨은 “다음 세대가 가질 어떤 특정 유형의 인물 이야기”라며 주인공은 20년 후에는 ‘힙’할 수 있으나 그때는 말할 건덕지가 없는 불행한 운명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지저분한 인간욕망과 허식에 대한 힐난인가, 한 창녀에 대한 연민인가. 이를 놓고 동정도 분노도 하지 않는 은폐의 기술을 동원하지만 인간 본성과 그들이 축조한 형식의 탑이 얼마나 잔혹한가에 자동적으로 고개 떨구게 하는 전달력을 발휘한다. 흐릿하고 경계선에 위치한 이 모호함이 문학예술의 영토, 음유시인의 거처 아닌가. 코헨 음악의 크기가 여기서 나온다.

 

대표작 「Bird on the wire」가 있는 1969년의 2집 <Songs From A Room>에 수록된 당대 국내 최고의 애청 넘버. 방에서 나온 노래? 역시 ‘홀로의 공간’인 방은 그에게 (또 방안의 혁명가를 꿈꾼 어린 내게도) 창의의 혁명공간이다. 하지만 유신시대 검열의 방은 창녀 운운하며 금지딱지를 붙여 우리는 무려 13년 이상 이 곡을 들을 수 없었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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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rd on the wire (1969, Songs From A Room 수록)

 

그리스의 히드라(Hydra) 섬에서 동거 중이었던 애인이자 음악적 영감이 되었던 뮤즈, 마리앤은 레너드 코헨의 우울증 치료를 위해 계속하여 그에게 기타 연주를 권유했다. 그러던 와중, 창문을 통해 전선 위에 앉아있는 새를 본 코헨은 그 자리에서 이 곡을 썼다고 한다. 곡의 이름은 멜 깁슨과 골디 혼이 주연한 1990년의 영화가 빌려 쓰기도 했을 만큼 대중에게 깊이 저장되었다. 「Hallelujah」와 「Suzanne」과 함께 그의 시그니처 송 가운데 하나!

 

자유에 대한 노래이지만 1960년대의 포크 뮤지션들이 노래했던 자유에 대한 맹목적 찬가와는 결이 다르다. 하늘을 날고 있는 새는 자유의 상징이나, 그러나 날아가지 못하고 전선 위에 앉은 새는 더 이상 자유의 상징성을 가지지 못한다. 그는 자유를 쫓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한, 혹은 불가피하게 자유를 포기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노래한다. 그래서 따스한 중저음이 냉소와 비관이 섞인 탄식의 신음으로 들리기도 한다. 자유는 숭고한 것이며 쉽게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탄원의 메시지는 더욱 자유를 ‘꿀 발라놓은 떡’처럼 쉽게 여기는 딴 곡들보다 더욱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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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mous blue raincoat (1971, Songs Of Love And Hate 수록)

 

묵직하고도 간결한 레너드 코헨의 노래는 영역의 어떤 뿌리에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의 가사는 노래의 시작이라 할 시(詩)와 동체이고, 그 시는 누군가에게 전해지기 위해 존재한다. 그의 세 번째 앨범 <Songs Of Love And Hate>에 실린 「Famous blue raincoat」는 처음부터 명시적으로 편지 형식의 가사를 취한다. ‘지금은 12월의 끝자락, 새벽 4시야. 그저 네가 좋아졌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쓴다.’

 

최소한의 높낮이로 음과 어절을 전달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조금의 습기도 없다. 이 건조한 보컬에 미묘하게 애상을 부여하는 것은, 엘튼 존 노래의 편곡을 맡기도 했던 폴 벅마스터(Paul John Buckmaster)가 세심하게 빚어낸 현악 연주다. 「My brother, my killer」에게 보내는 이 음울한 송가(頌歌)는 그와 함께한 연주자들을 일찍이 매혹시켰고, 당연히 손꼽히는 명작으로 남았다. 그의 작품과 공연에 한동안 동료로 호흡을 맞춘 제니퍼 원스(Jennifer Warnes)의 음반 타이틀이 되기도 했다.

 

한 여자를 둔 삼각관계 속에서 다른 남성에게 보내는 노래라고는 하지만, 간결하되 모호한 코헨의 시적 언어는 이 편지의 수신자에 대한 열린 상상을 가능케 한다. 중년 시절에 나온 곡임에도 가사에서는 어떤 쇠(衰)함의 냄새가 나고, 40년도 더 지났지만 최근작과 비교해도 세월의 경과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저음의 보컬은 시간을 뛰어넘는 체험을 선사한다. 짙은 상실의 정서 속에 마지막의 「Sincerely, L. Cohen」이라는 읊조림이 유독 긴 자국을 남긴다. 오래 살아온 노인이 내뱉는 숨인 듯, 모든 스러져가는 것들을 향한 장송곡인 듯. (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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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an of arc (1971, Songs Of Love And Hate 수록)

 

초기 3부작 중 마지막 작품인 1971년 작 <Songs Of Love And Hate>에 수록된 곡으로, 1431년 마녀란 누명이 씌어 화형에 처한 잔 다르크(Joan of Arc)가 그를 태우고 있는 불과 나누는 대화를 가사로 옮겼다. 코헨은 6분이 넘는 대곡을 통해 자신에게 내린 신의 계시를 부정하지 않고 형을 받아들인 잔 다르크의 기독교에 대한 헌신과 신념을 노래한다. 불에 타며 ‘이젠 전쟁에 지쳤다’고 말하는 잔 다르크의 형상과 함께 코헨 특유의 정적인 음성이 요동하는 후렴구는 쓸쓸한 뒷맛을 남긴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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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lsea Hotel #2 (1974, New Skin For The Old Ceremony 수록)

 

뉴욕 맨해튼에 있는 첼시 호텔은 딜런 토마스(Dylan Thomas), 밥 딜런, 지미 헨드릭스 외에도 수많은 예술가의 족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411호에 있었던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과 424호에 머무른 코헨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둘이 나눈 하룻밤의 단상은 (코헨은 초창기 라이브를 하면서 이 노래의 주인공이 조플린임을 밝히고 다녔다.) 「Chelsea hotel #2」로 떠오르게 된다. 클래식 기타와 묵직한 저음만 있는 단조로움의 미학은 그들의 회고록 안으로 스며들게 한다.
 
시간이 흘러 1994년 BBC 방송에 나가게 된 그는 자신의 경솔함에 대해 반성하며 “그녀의 영혼에 사과할 방법이 있다면 당장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조플린과의 관계를 연상하는 일이 그의 의도일 리 없다. 비록 영원을 읊조리는 사랑 노래는 아니지만, 그들이 나눈 대화가 담긴 이 곡은 ‘상관없어, 우린 못생겼지만, 우리에겐 음악이 있잖아.’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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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by fire (1974, New Skin For The Old Ceremony 수록)

 

캐나다의 유대인 가정 아래 태어난 코헨은 어린 시절부터 유대인 회당에서 공부했다. 혈통을 반영한 그의 글에는 당연히 성경적 모티브가 담겨있는 경우가 많다. 그 내면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바이블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기도 한다. 「Who by fire」는 그러한 음악적 결과물 중 하나로, 이스라엘의 종교 축제일인 속죄일(Day of Atonement)의 기도문이 영감이었다고 한다.
 
‘누가 햇빛 속에 있게 될까? 누가 어둠 속에 있게 될까?’ 유대인에게 새해 첫날에서 속죄일까지는 무척 중요하다. 신의 심판으로 의인은 생명의 책에 기록되고, 악인은 기록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완벽히 의롭지도, 악하지도 않은 사람들은 회개와 선행의 시간을 가지며 그 기간을 보낸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햇빛, 어둠과 같은 단어의 나열은 신의 심판에 따른 두 결과로 볼 수 있다. 그의 작품 세계관을 파악하는 데 필요한 곡 중 하나. 짧지만 여운은 길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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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elujah (1984, Various Positions 수록)

 

1979년 <Recent Songs>이후 5년, 기나긴 칩거를 마치고 돌아온 코헨의 음악은 한층 단단해져 있었다. <Various Positions>에서 그의 목소리는 더 낮아지고 울림은 깊어졌다. 신시사이저의 적극적인 도입으로 풍성해진 사운드가 뒤를 받쳐줬다. 어쿠스틱 기타로 노래하던 포크 가수였던 그에게 신시사이저와의 만남은 음악적 표현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다. 결과는 영원한 팝 스테디셀러의 탄생!

 

귀를 감싸는 스트링과 감정의 흐름을 이끄는 코드 진행은 경건한 세계로 인도한다. 벌스(verse)의 낮게 가라앉는 목소리는 성가대의 합창을 연상시키는 후렴구와 대비되며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성서적 은유는 가사의 호소력을 높여 준다. 80개가 넘는 초안을 썼을 정도로 고심한 끝에 완성한 가사는 ‘절망한 다윗 왕’의 입을 빌려 좌절과 구원을 노래한다. 반복되는 후렴 「할렐루야」는 다윗의 절망을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해방된 감정의 환희를 대변하기도 하며 곡의 정서를 이끌어간다.

 

처절하게 구원을 열망하는 다윗의 이야기는 종교적 의미를 뛰어넘는다. 신성한 은유로 그려낸 상실과 환희의 감정에 공명한 수많은 뮤지션들은 나름의 재해석으로 화답하기 시작했다. 상업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발매를 반대했던 레코드사의 우려와는 달리 곡 자체가 가진 강력한 흡입력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밥 딜런, 존 케일(John Cale), 루퍼스 웨인라이트(Rufus Wainwright)부터 본 조비, 펜타토닉스에 이르기까지 끝없는 재해석의 유행을 거치며 「Hallelujah」는 클래식적 생명력을 얻었다.

 

그가 1988년 라이브에서 새로 추가한 가사는 이 곡이 에로틱한 코드의 사랑 노래가 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이를 정확하게 읽어낸 제프 버클리(Jeff Buckley)는 할렐루야를 경이가 아닌 ‘오르가즘’으로 해석함으로써 음악에 새로운 색채를 불어넣었다. 그에게 이 곡은 상실의 정서가 가득 담긴 이별 노래였다. 1994년 <Grace>에서 그는 불안정한 느낌을 주는 기타 인트로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여린 목소리로 ‘차갑고 부서진 할렐루야’(‘It’s a cold and it’s a broken hallelujah’)를 노래한다. 가스펠적인 신성함에 녹아든 관능의 미학, 그 화학적 결합은 곡을 팝의 전당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으로 새겨놓았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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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ce me to the end of the love (1984, Various Positions 수록)

 

같은 앨범의 B면에 위치한 「Hallelujah」와 비교해보자. 우선 「Hallelujah」의 백킹 코러스가 느릿하고 강렬한 가스펠 방식이라면, 이 곡에서는 메인 보컬인 레너드 코헨과 제니퍼 원스 두 사람과는 멀찍이 떨어져 커튼처럼 살랑이기만 한다. 또한 전자가 3박자를 내재한 4박 리듬으로 고전적이고 성스러운 미를 살렸다면, 후자는 경쾌하고 명료한 8비트라는 차이도 존재한다.

 

둘 다 다른 가수들에 의해 자주 다시 불리기도 했는데, 「Dance me to the end of love」의 경우 재즈 보컬리스트 마들렌 페이루(Madeleine Peyroux)의 버전이 대표적이고, 한국에서는 「벙어리 바이올린」이라는 이름으로 윤설하가 번안해 부르기도 했다. 길고 긴 그의 음악 여정 안에서도 여러모로 얘기할 거리가 많은 두 곡이 레코드판 앞뒷면의 1번 트랙에 각각 자리하고 있다.

 

코헨은 2차 대전이 발발하기 직전인 1934년 유대계 집안에서 태어났다. 「Dance me to the end of love」는 낭만적으로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나치가 자행한 홀로코스트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진 곡이다. 무덤이 될 곳을 향해 밟는 마지막 스텝은 진중하고 무겁다.

 

그러나 마냥 어둡지는 않다. 음울한 민요풍의 선율을 노래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밝은 기운이 서려 있다. 라스 폰 트리에의 <안티크라이스트>를 비롯해 서양의 수많은 예술 작품에서 그랬듯 이 곡 또한 ‘춤’과 ‘끝’이라는 단어를 병치해 성과 죽음을 동시에 다룬다. 여성 가수 제니퍼 원스와의 듀엣이 곡에 달콤한 향을 가미하는 동시에 위태로움을 자아내는 이유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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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your man (1988, I’m Your Man 수록)

 

코헨은 1980년대를 들어서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포크음악으로 일관하던 그는 자신을 포함한 4명의 프로듀서와 함께 신시사이저, 드럼 머신, 부주키(그리스에서 생겨난 기타와 비슷한 현악기) 등 다양한 악기들을 적극 사용하며, 1988년 <I’m Your Man>에서 신스팝을 선보인다. 그리고 이 앨범은 비평과 상업성을 모두 잡으며, 1991년 헌정앨범이 발표되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 음반은 수많은 명곡들을 낳았다. 「Everybody knows」, 「Tower of song」, 「First we take Manhattan」 등을 포함하며, 그 중 앨범과 동명인 「I’m your man」은 간드러지는 신시사이저와 중저음 보컬의 멋진 어울림을 보여준다. 가사는 한마디로 ‘당신을 향한 헌신’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단순한 멜로디와 문장 끝에 비슷한 운을 맞춘 표현은 곡의 부담을 덜어주고, 그의 비애감 짙은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간주에서 흐르는 신시사이저의 솔로는 ‘헌신’을 ‘처절’로 빠지지 않게 정화한다.

 

<I’m Your Man>은 해외에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수록곡 「I’m your man」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선 레너드 코헨 애청곡 영순위! 다들 1988-89년을 이 곡을 들으며 보냈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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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body knows (1988, I’m Your Man 수록)

 

사랑하는 여자에게 헌신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 「I’m your man」과 상반된 가사의 곡은, 첫 번째 앨범에 나란히 수록되었지만 극명한 온도차를 가진다. 코헨은 사랑하는 여자에게 당신의 남자로서 열정을 다하겠다는 달콤한 감정을 써내려갔던 음유시인임과 동시에 뼈아픈 사회 부조리에 대해 목소리를 높일 줄 아는 유대인이었다.

 

사회와 종교적 문제,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의 병든 현실에 일침을 가한 「Everybody knows」는 ‘모두 알아 주사위가 던져 졌어’, ‘모두 알아 배는 물이 새고 있어’와 같은 비유적인 가사로 그의 곡 중 가장 비관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설마가 진실이 되고 있는 요즘 냉혹한 현실을 노래하는 그의 묵직한 목소리가 더 슬프게 다가온다.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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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st we take Manhattan (1988, I’m Your Man 수록)

 

코헨은 도입부에서 “사람들은 나에게 따분한 20년(twenty years of boredom)을 선고했어.”라고 말한다. 데뷔 앨범 이후로 정확히 20년이 지난 뒤 발매된 앨범 <I’m Your Man>에서 이 곡이 첫 곡을 장식하고 있다는 건 지나친 우연일까. 가사 곳곳에 장치된 다중적 암시들은 감상하는 데 더 많은 흥미를 돋운다. 가까운 음악적 동료이자 이 곡을 먼저 부른 제니퍼 원스에 따르면, 코헨은 9?11 테러가 일어나기 전부터 이 곡을 가리켜 ‘테러리스트의 노래’라 칭했다고 한다.

 

그 말대로 가사를 살펴보면 ‘먼저 우린 맨해튼부터 접수하고, 다음엔 베를린을 접수할거야’(First we take Manhattan, then we take Berlin)라는 노래의 메시지 역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다. 그의 예언자적 스탠스는 가사에 그치지 않고 사운드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신시사이저의 강렬한 소리는 다분히 미래지향적이며 잘게 나눠진 드럼 비트는 곡에 긴장감을, 여성 백업 보컬들은 감칠맛을 더한다. 그러나 사족이 되겠지만 이것들보다 결정적 ‘신의 한 수’는 뒤에 도사린 채 곡을 완전히 지배하는 코헨의 중저음 목소리다. (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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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wer of song (1988, I’m Your Man 수록)

 

빌보드 차트에 단 한 곡도 오르지 않았음에도 서구 후배 뮤지션들은 그에게 헌정 앨범을 두 번이나 바쳤다. 이게 레너드 코헨의 무한 위용이며 진정한 아티스트, 살아있는 레전드라는 사실의 증빙자료다. 이 곡은 그의 무수한 골든 레퍼토리에 속하지도 않고 낮은 인지도에 애청도 되지 않은 노래지만 그 두 장의 트리뷰트와 관련해 각별한 가치를 행사한다.

 

먼저 존 케일(John Cale), R.E.M 등이 참여한 1991년 발표작 <I’m Your Man>에 실린 18곡의 수록곡 가운데 「Tower of song」은 각각 닉 케이브(Nick Cave) 그리고 로버트 포스터(Robert Forster)의 버전으로 두 번이나 음반의 자리를 채운다. 뒤이어 이글스의 돈 헨리, 유투의 보노, 엘튼 존, 빌리 조엘, 스팅 등 팝의 쟁쟁한 거물들이 너도나도 자진해 참여한 1995년 트리뷰트 앨범은 제목이 아예 <Tower Of Song>이다. 그들은 코헨이 제목처럼 ‘곡의 거탑(巨塔)’임을 가슴 깊이 인정했을 것이다.

 

이 곡은 신시사이저의 적극적 활용으로 그 시점 평단과 대중에게 잊혀 가고 있던 코헨의 건재와 건승을 알린 1988년 앨범 <I’m Your Man>의 끝 곡이다. 건조하게 떨어지는 베이스음과 안개 같이 자욱한 서스테인(sustain) 사운드를 배경 삼아 낮게 읊조리는 보컬은 매력적이다. 여기에 동료 제니퍼 원스의 부드러운 코러스는 곡의 맛을 진하게 우려낸다. 한 작품의 엔딩으로 이만한 곡은 없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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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n’t no cure for love (1988, I’m Your Man 수록)

 

방송에서 남성의 마초성을 다룰 때 「I’m your man」과 「Everybody knows」가 자주 흘러나오는 데는, 그만큼 코헨의 바리톤이 중후한 멋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테다. 특유의 묵직한 저음은 그를 대표하는 상징이다. 이 곡에서는 자신의 목소리와 대비되는 여성의 백보컬과 신디사이저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앞선 노래들보다 포근하고 밝은 소리를 들려준다.

 

<I’m Your Man>의 잔잔한 성공에는 ‘사랑’이라는 공감하기 쉬운 주제가 자리한다. 코헨은 보편적인 일상의 소재 또한 특별하게 사유(思惟)했다. 의사들이 밤낮으로 일하지만 아직 사랑의 치료제는 없다는 곡의 가사처럼, 문인 출신의 음악가가 뿜어내는 낭만적 표현은 본 앨범에서 최고조를 이룬다. 그는 섬세한 노랫말과 굵은 가창으로 중년 남성들이 동경하는 고백송을 만들어냈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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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uture (1992, The Future 수록)

 

코헨의 정치사회적 측면에 대한 관여를 엿볼 수 있는 곡이다. 동명의 앨범 타이틀곡이기도 「The futrue」는 음반 전체의 중심소재인 민주주의에 대한 화두를 제시한다. 노래는 1992년 발매 당시의 사상적 경향을 보여줌과 동시에 시대적 양상을 꼬집고 있다.

 

독일의 베를린 장벽, 구 소비에트 연방을 대표하던 스탈린 등 당시 민주주의를 전격적으로 배격한 상징들의 언급을 통해 과거의 잔혹을 강조하지만, 그러한 체제의 붕괴가 곧 민주주의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역설적으로 표현한다. 사회주의의 여실한 실패와는 별개로, 우리에겐 여전히 인종 혹은 성 범주에 걸친 차별문제가 존재함에 그러한 과도기적 방심을 나긋이 경고한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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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ing for the miracle (1992, The Future 수록)

 

가장 어두운 때는 해가 뜨기 직전이다. 기적이 절실할 때도 가장 견디기 힘든 극한의 시간일 것이다. 화자는 "2차 세계 대전 이후로 행복한 적이 없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처지를 고백한다. 그럼에도 ‘낮과 밤을 다해, 삶의 반을 기적을 기다려왔다’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나아가 ‘너도 기적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하라’(You just say you’re out there waiting for the miracle)며 이야기를 마친다.

 

건반, 바이올린, 플루트 등 여러 악기가 모여 신비로운 사이키델릭 사운드를 만들었다. 낮게 읊조리는 저음은 여성 코러스와 묘하게 대비되어 이 세상의 목소리가 아닌 듯 천천히 부유한다. 안개처럼 사방에 존재하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노래. 기다림은 세월과 고독을 먼지처럼 쌓아 올려, 외롭고 슬픈 독야(獨夜)를 만들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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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 secret life (2001, Ten New Songs 수록)

 

종말론과 허무주의로 점철된 세기말이 지나고 세상의 기대와 환희를 안고 새천년이 도래했다.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언제 그랬냐는 듯 아랑곳없이 너도나도 앞 다투어 새로움을 말하고 미래의 비전에 대해 역설했다. 레너드 코헨은 이 무렵 선불교 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그것을 바탕으로 그의 작품세계의 근간이 되는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Kabbalah)」에 더해 실존주의적 해석을 더욱 강화했다. 그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아우르는 자서전의 서문과도 같은 곡.

 

「In my secret life」는 <The Future>로 이후 9년 만에 발표한 밀레니엄 앨범<Ten New Songs>의 첫 번째 트랙이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샤론 로빈슨(Sharon Robinson)의 코러스와 코헨의 낮은 목소리가 어우러져 전반적으로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스스로 겪은 은자(隱者)의 삶에서 얻은 고뇌와 깨달음을 노래한다. ‘그러나 나는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옳은지도 안다. 그리고 나의 은밀한 삶에서 진리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도 있다.’  이젠 영원한 잠에서 마음껏 진리를 꿈꿀 그는 여전히 초연할 것만 같다. (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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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Want It Darker (2016, You Want It Darker 수록)

 

14집이자 그의 마지막이 된 <You Want It Darker>의 타이틀 곡. 일생의 지상 과제이던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고찰과 나름의 해답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져 마지막까지 살아가는 큰 영감으로 작동한다. 이제 갈 준비가 되었다(“I’m ready, my lord”)는 단호하고도 세련된 그의 메시지는 단출한 반주에 얹히며 우리에게 울림을 선사한다. 영국 BBC 인기 갱스터 드라마 <피키 블라인더스(Peaky Blinders)>에 쓰이며 이보다 어울리는 곡이 없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2013년 월드 투어를 마치고 찾아온 척추 다중 골절은 도리어 LA에 위치한 자택 방에 틀어박혀 작업에 열중하는 계기로 남았다. 아픔으로 인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아들 아담 코헨(Adam Cohen)의 프로듀싱 도움을 받아 뜻 깊은 명곡이 탄생한 것. 80대가 만든 작품으로 믿을 수 없는 완성도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제사장’이 남긴 마지막 선물일 테다. 곡명처럼 세상 이들은 그에게 더욱 더 어두워지길 원했지만, 이미 그는 빛이나 색상으로 재단할 수 없는, 폭발을 앞둔 ‘초신성’ 그 자체였기에.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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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올해의 가요 앨범&싱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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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아무리 싱글의 시대라 해도, 좋은 앨범 한 장이 주는 감정의 울림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막강하다. 여전히 많은 음악 팬들이 음반 단위의 결과물에 박수를 보내는 이유다. 장르와 경력을 막론하고, 올해도 여러 장의 앨범들이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했다. 그중에서도 2016년에 이름을 아로새긴 10장의 앨범을 선정해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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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신 - <I Am A Dreamer>

 

인고를 겪은 뮤지션은 훈장처럼 빛나는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았다. 시련과 풍파는 혹독했지만 그의 정체성과 보이스는 한결 날렵해졌다. 가장 큰 변화는 깨끗하고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보컬이다. '소몰이'의 풀체스트 기법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면서도 그를 가두는 울타리였다. 「눈의 꽃」부터 시작된 창법의 진화는 불안해 보이던 5, 6집을 지나 완전히 정착했다. 두텁고 허스키한 톤을 분쇄하자 다채롭고 고운 입자가 그 자리에 남았다. 뮤지컬을 하면서 정확한 발음과 발성을 익혀 목소리는 더욱 세밀하고 정교하게 손질되기도 했다.

 

박효신은 데뷔 18년 만에서야 자신의 꿈과 내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가사에 담긴 의미와 음악의 방향 모두 높게 비상한다. 직접 프로듀싱, 작사, 작곡에 참여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자유롭게 활강한다. 도전과 자신을 넘어서는 노력은 더 넓은 활로를 개척한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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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 -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가장 멋진 장얼의 로큰롤은 바로 이 음반에서 탄생한다. 유머러스한 가사와 캐치한 멜로디, 재미있는 보컬 코러스, 다채로운 트랙 구성과 같은 기존의 강점에 미니멀한 사운드 디자인과 더욱 펑키해진 리듬 등의 특색을 더해 정말로 근사한 앨범을 만들어냈다. 레게 풍 리듬과 장난스런 텍스트를 조합해 큰 소구를 발휘한 「ㅋ」에서부터, 장얼 식 서정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한 「괜찮아요」와  「가장 아름다운 노래」, 고전적인 보컬 코러스를 배치해낸 「가나다」, 토킹 헤즈 풍의 펑키한 뉴웨이브를 적절히 변용한 「내 사랑에 노련한 사람이 어딨나요」, 「빠지기는 빠지더라」에 이르기까지, 앨범에는 좀처럼 빠지는 노래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피식하는 웃음과 울림 큰 감탄이 공존하는 작품. 올해 한국 록 신에서 등장한 가장 매력적인 음반이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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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백 - <너의 손>

 

방준석, 백현진, 두 이름을 두고 우리가 예상했던 것과는 결이 달랐다. '그 유명한'이라는 수식이 주는 족쇄를 부서트린 건 강력한 자의식도, 고집도 아닌, 타인에 대한 이해와 포용이었다. 음반은 서영도, 신석철, 윤석철 등 그 분야에서는 이미 한 세계를 구축한 연주자들과의 멋진 단합이 몇 년에 걸쳐 쌓이고 쌓인 결과물이다. 실로 따스한 '인디'의 자세다.
 
지극히 인간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음악에 인간애를 담뿍 녹여낸 이야기를 담았다. 무엇보다 고마운 건 그 위로의 방식이 자기계발서처럼 오만하지 않다는 데 있다. 어덜트 컨템포러리로 분류된다지만, 특정한 세대 타깃도 없었다. 직관은 종종 '만들어진 성(城)'의 틈을 파고든다. 거기에는 공식이 없어, 무방비 상태의 마음은 빛나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감동 당하기 마련이다. 김광석의 음악이 그랬듯, 여기 살아가는 누구든지 삶의 어느 순간에 방백의<너의 손>이 필요하게 될 테다. '쓸모 있는' 작품이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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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노 - <12>

 

음반이 발매되었을 때의 미적지근했던 차트의 반응을 기억한다.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 24 : 26 >의 수록곡들, 「Nike shoes」를 비롯하여 「Boogie on & on」, 「Aqua man」이 아직까지도 유흥가의 곳곳에서 들려오는 반면, 「Time travel」이나 「토요일의 끝에서」를 재생하는 곳은 드물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빈지노는 전작의 곡들이 벌써부터 질려버린 듯하다.

 

<12>는 '나', 혹은 '창작자', 곧 '빈지노'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다는 지점에 대한 일방적인 찬사와 어울리지 않는다. 과감한 자기복제와 반복을 통해 그저 '훅쟁이'로만 남을 수 있었던 그가, 늘 새로움을 도색하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이상적인 래퍼임을 「I don't mind」, 「Break」, 「We are going to」 등의 돌발적인 트랙들이 강력히 피력한다. 물론 전작에서의 남다른 훅메이킹의 감각 또한 여전히 살아있다. 신선함에 대한 광적인 집착, '외모'와 '서울대' 앞에 달릴 빈지노의 새로운 해시태그!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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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지 - <ZISSOU>

 

허세, 무기력, 성공욕(慾), 집착, 무질서 그리고 과(過)개인주의 등 이 시대를 사는 네트, 밀레니얼 세대를 향한 화지 그만의 엄하고 날선 그러나 지혜롭고 여유로운 랩 장편서사. 죄 꼬이고 잘 못되어 있는 판에 모처럼의 경각과 수긍을 부른다. 우리는 솔직히 그 말마따나 '죽음보다 낙오를 두려워하며' '다들 센 거 찾느라 여기저기 북새통이며' '아직 죽지 않은 죽은 사람' 아닌가. 냉소 무질서 무정부 같지만 반사회 반문화 반과학 비트닉은 아닌, '21세기의 히피'의 호소와 주문이다.

 

무개념으로 찌든 지금은 '들어 세울 상아탑이 필요한 세상'이란 비아냥이 절대 건성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어짐이 빼어나고 강과 약, 살기(殺氣)와 온기가 동시에 배인 그의 랩 플로우를 빛나게 하는 건 테크닉 아닌 그러한 통쾌한 언어들이다. 2014년의 <EAT>를 잇는 연발(連發)강공이며 인상적 소포모어, 2016년 힙합 수작으로 손색이 없다. 수록곡 「꺼져」의 '그니까 나는 안 들려 니 불평 혹은 불만/ 넌 필요 없고 빌려줘 니 불만..' 대목의 가사는 지금도 귓전을 때린다. 성공지수와 눈치에 눈먼 상업적 힙합 시류에 대한 이만치 신랄한 한방은 없다. 랩은 이래야 한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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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민 - <Press It>

 

보다 높은 완성도를 목표로 한 SM과 그 힘을 흡수한 소년이 "아이돌의 완성형"을 향해 달려 나간다. 마주한 결과는 빈틈을 주지 않을 정도로 정제된 사운드와 댄스, 초국적인 K팝의 현재다. 촘촘한 구성에 압도된 마음을 다독여주는 태민의 여린 보컬도 훌륭하다.

 

많은 이들이 솔로 활동을 위해 남자다운 성장에 초점을 두었다면, 그는 가장 찬란할 '지금의 순간'을 발현한다. 솟구치는 리듬감은 가느다란 가창과 팔다리를 통해 더욱 심미적이고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곡의 속도감부터 퍼포먼스까지 태민이기에 더 어울렸고, 그 아름다움은 때때로 날카롭고 단단하게 파고들어 꼭 태민이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낸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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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 <나무가 되어>

 

20년 만이다.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거목이 다시 잎을 틔우기까지 꼬박 20년이 걸렸다. 마음속 심연을 비추는 특유의 낮은 음색, 삶을 다각도로 성찰케 하는 노랫말, 나지막이 스며드는 선율. 지나간 나날이 무색할 만큼 그는 변함이 없다. 마치 언제 그렇게 시간이 갔냐는 듯, 익숙한 그 자리에서 시간과 추억, '우리'와 '그대'를 노래한다.

 

음반의 지위를 높이는 것은 고유의 무게감뿐만이 아니다. 오랜 파트너 조동익이 수놓은 풍부한 엠비언스는 이전의 앨범과 <나무가 되어>를 구분 짓는 중요한 질료다. 포크 사운드와 엠비언스, 신시사이저와 스트링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울려 거장의 음악적 전진을 도왔다. 섬세한 시적 언어와 소리 풍경, 무심히 깔리는 목소리가 얼었던 마음을 무너트렸다. 어쩌면 우린 지난 세월 동안 이런 위로가 절실했는지도.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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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 - <다 큰 여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정새난슬은 어머니, 아니 여성으로서 한바탕 풍파를 겪은 이후 그에 대한 소회를 음악으로 풀어냈다. 한 인격이 마주한 산후우울증, 자살기도, 이혼 등의 고초는 노래의 원료가 되어 <다 큰 여자>의 페미니즘적 메시지로 승화하였다. 어긋난 사회통념과 투쟁한다는 점에서 그와 일맥상통하는 포크투사 정태춘의 편곡 기여는 사운드의 저항성을 강화한다. 이미지를 형상화하는 듯한 표현방식은 동양풍 색채를 머금은 보컬과 만나 지긋한 현실감을 뿜어낸다. 특유의 한(恨)의 정서를 가감 없이 드러낸 정새난슬의 서사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서 '여성'의 심정을 대표하기에 이른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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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나비 - <Monkey Hotel>

 

20대 중반만이 만들 수 있는 앨범. 힘든 세상의 구심력마저 초월해내는 패기와 열정, 그 안에 담겨있는 비탄과 짠 내 나는 설움들이 곳곳에 묻어 있다. 추구하고픈 이미지, 전달하려는 메시지, 표현해내는 작법들은 조심스레 한 데 엮여 <Monkey Hotel>이라는 일종의 콘셉트 앨범으로 승화되었다. 이 호텔, 분명 럭셔리, 부티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나 관광객들에게 꼭 추천해주고픈 '한국 맞춤형'에 가까워 보인다.

 

어지러운 작금의 세태, 혼란스러운 우리나라 젊은이들에게 '북쪽 극지(極地) 원숭이들' 같은 힙한 그룹보다 위안을 주는 건 그 이름마저도 평범한 '잔나비'였다. 어찌 보면 들쭉날쭉해 보이는 여러 장르들도 '잘 들리는 멜로디'라는 기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헷갈리지 않는다. '이지 리스닝'은 쉽게 쓰인 것이 아니라 화려하고 장렬한 고민 끝에 만들어진 숭고한 결과물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어렵게 쌓아 올린 밴드의 정체성, 그 특별한 모노리스를 잃지 않았으면.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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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범선과 양반들 - <혁명가>

 

담배 대신 곰방대를 물고 아쟁 대신 기타를 든 이 청년들에게 어찌 매료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조선'과 '록'.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 않은 두 단어가 서로 경합하고 화합하며 생생하게 재연된다. 묵직한 하드록의 주형 속에 퓨전과 아이디어가 뜨겁게 녹아 흐른다. 그것도 본질적인 미학 - 해학과 풍자까지 고스란히 품은 채 말이다. 그야말로 재미도 감동도 있는 판타지한 앨범이다.

 

어째서 몇 백 년 전의 조선시대와 지금의 대한민국의 상황이 변하지 않은 기분이 드는 걸까. 더욱이 혁명가는 올해 반드시 필요한 노래가 아닌가. 시국마저 이들의 노래에 힘을 보탠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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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은 긴 호흡으로 가치를 풀어내는 음반과 다르다. 3분 남짓한 짧은 시간 안에 가수의 역량과 매력, 메시지까지 집약해야 한다. 와중에 '유효타'를 만들기란 더욱 쉽지 않다. 그럼에도 시류를 정확히 읽고 한 발 앞서 유행을 이끌거나, 자신만의 개성과 음악성을 유감없이 발휘한 노래들은 분명 존재했다. 그중에서도 2016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싱글 10곡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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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걸스  「Why so lonely」

 

놀라웠던 건 단순히 손에 악기를 들어서만은 아니다. 직접 작곡한 노래는 생각보다 더 독특하고 시니컬했다. 살랑대며 휘감는 선율, 무심한 분위기조차 잘 어우러진 것은 음악에 대한 수없는 “자발적 고민”이 있었기 때문일 테다. 밴드라는 새로운 포맷과 박진영의 둥지를 벗어난 호기로움까지 이들은 변화 앞에서 용감했고 진보적이었다. 어느새 숙녀가 된 멤버들의 우아하고 당찬 매력으로, 그 모든 것들을 원더걸스란 이름 안에 녹여내며 그룹을 재견인했다. 댄스와 EDM이 강세인 여름 원더걸스가 내민 레게팝은 그렇게 차트를 매혹시켰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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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무엘 - 「B L U E」

 

2014년은 「양화대교」의 자이언 티, 2015년은 「Oasis」의 크러쉬, 2016년은 「D (Half moon)」의 딘(DEAN). 힙합과 일렉트로니카란 돌파구를 찾은 알앤비 씬은 근 몇 년간 스타를 배출해내며 부흥을 달성했다. 그러나 비교적 암암리에 음악적 탐구와 진화를 거듭해 온 서사무엘의 「B L U E」는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킨다. 복고로 뻗어나간 그는 세련된 레트로 사운드로 한 발짝 더 진보했다. 자아의 확장(EGO EXPAND)뿐만 아니라 음악적인 확장도 이루어낸 독자적 아티스트의 성취, 「B L U E」는 과연 올해의 발견이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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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무 - 「넌 is 뭔들」

 

먼저 주의를 끄는 건 여성의 목소리가 갖는 호방함('Come on 거기 미스터, Come on 이리 와봐..')과 속삭임('우리 둘 사이 딱 한 뼘 사이..')의 특징적 병렬 배치다. 풍요로움과 가녀린 느낌의 콘트래스트! 이렇듯 체급이 다른 발성과 그루브를 지금껏 걸 그룹에서 들은 바 없다. 보컬대첩!! 이것만으로도 2016 최고의 아이돌 송이다. 힙합과 알앤비에 더해진 펑크(funk)적 돌출 또한 음악적 스탠스를 위로 끌어올린다.

 

네티즌 언어를 잽싸게 주운 제목은 그들 세대에게는 상투적일 수 있으나 어른들을 젊음의 감각과 소통하게 하는 연결고리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세대동행의 기능성이랄까. 무시할 수 없는 '세대소통 효능감'의 가치를 전리품으로 획득한 것이다. 겨우 의미를 알아차린 적지 않은 부모 세대가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그들의 아들과 딸에게 'is 뭔들'을 카톡으로 보내곤 했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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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모노톤즈 - 「여름의 끝」

 

6분 25초 동안 지루하지 않다. 이 곡의 가치를 증명하는 단서들이 여기에 모인다. 데뷔작을 명작 반열에 올려놓은 이들은 단번에 인디 신 대표로 독수리처럼 비상해 여유롭게 관망하는 와중 호랑이 같은 우직함을 놓지 않았다. 속 시원한 멜로디와 다채로운 코드 전개, 켜켜이 쌓아올린 소리의 벽, 익숙해질 무렵 급작스레 핸들을 꺾는 구성마저 더해질 때 '단조로움'이라 해석되는 밴드명은 분명 반어적, 역설적 표현에 가까워진다.

 

진정 지옥 불반도에 가까웠던 이번 여름의 끝자락에 나온 곡, 모두가 탈진했지만 가을이라는 희망을 점화한 것도 결국 음악이었다. 이 '현대철학 전공 고고학자'들이 이끄는 잠수함에 오른다면, 196-70년대로 침잠해 가면서도 최신 잠망경을 통해 트렌드에 발맞출 수 있을 테다. 첫 싱글의 자격으로 부여할 합격점을 넘어 모두에게 시사점을 던지는 곡.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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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일 - 「Plastic (feat. BewhY)」

 

생의 빛을 잃은 듯 건조하게 처리한 사운드 스케이프는 우울하다 못해 침잠하고 있었고, 모르는 게 나을 법했던 진실을 깨닫게 된 이는 한없이 절망했지만, 그럼에도 그는 나락의 문 앞에서 안간힘을 쓰며 버텼다. 기도하는 손과 목소리는 숭고하다.
 
낯설었다. 하지만 반가웠다. 1990년대의 후계자라는 수식으로 선배 아티스트들의 칭찬이 자자했을 때 이뤄낸 깜찍한 변화였다. 충분히 설득력 있었고, 어울렸다. 2011년에 발표한 곡 '안아줘'가 오직 노래의 힘으로 5년 만에 역주행하면서 올해 정준일은 “나라는 사람이 내 음악보다 먼저 유명해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소망을 지켜냈다. 'Plastic'은 그의 작품 중 가장 하위의 정서를 그렸지만, 뮤지션 정준일이 가장 높이 상승하는 순간을 목도한 곡이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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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 「사랑이 아니라 말하지 말아요」

 

김동률의 말을 빌리면 이 노래는 “먼 길을 돌아 주인을 만난 것 같은, 애초부터 이소라씨의 곡이었던 것 같은” 곡이라고 한다. 전주가 시작되자 들리는 건반의 코드워크는 김동률 특유의 터치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스트링 등 다채로운 악기 사용은 이소라의 목소리를 한껏 우아하고 편안하게 만든다.

 

2집의 「너무 다른 널 보면서' 이후로 20년 만에 두 사람의 협업이다. 이소라의 감성을 좋아하는 이에게도, 김동률의 섬세한 편곡를 좋아하는 이에게도 만족감을 줄 실패 없는 합병이다. 베테랑답게 두 사람의 색이 동시에 나타나면서도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이는 전작의 <8>에서 쇼크를 받은 대중을 안심시킬 강력한 안정제기도 하다. 신곡이 수록될 앨범은 제목부터 < 그녀풍의 9집 >이다. 선공개된 싱글의 폭발적인 반응은 그녀의 '풍'에 확신을 더한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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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와이(BewhY)  「Day day (Feat. 박재범)」

 

래퍼들의 돈자랑이 슬슬 지겨워질 때쯤, 종교적 신념을 자기개념(自己槪念)으로 삼는 중고신인 비와이(BewhY)가 혜성처럼 가요계 중심가로 파고들었다. <쇼미더머니 4> 출연 이후 발생한 「The time goes on」의 음원차트 역주행은 그의 성공을 예견하는 듯 했고 그러한 예견을 <쇼미더머니 5>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통해 보란 듯이 현실화했다.

 

「Day day」는 「Waltz」, 「Forever」 등 곡들을 통해 보여준 기존 비와이의 정서를 전격으로 배격한다. 프로듀서 그레이(GRAY)가 탄생시킨 이 유쾌한 혁명은 그의 음악적 지반을 지탱하고 있던 단조 중심의 음침한 분위기를 뒤엎고 펑키(Funky)의 흥겨움을 선사해주었다. 정확한 발음을 바탕으로 머신건처럼 쉴 새 없이 음절을 쏘아대는 그의 랩 스타일은 대체 불가능한 지점을 차지한 지 오래이다. 준비된 실력, 긍정적인 태도로 일관해온 메시지, 메시지에 공력을 싣는 프로듀싱이 삼위일체(三位一體)를 이룬 셈이다. 광기(狂氣)에 가까운 노력으로 얻은 결과이기에 다음 목표는 그래미라는 터무니없는 포부에 기꺼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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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봄이 오는 소리」

 

우리는 막연히 생각한다. '아, 봄이다.' 날씨가 풀리기 시작하고 썸과 연애로 점철된 가사의 노래가 하나 둘씩 등장하면 옷장에서 얇은 코트를 꺼내 입고는 연애할 준비를 한다. 잊혀진 봄은 그렇게 사랑으로 대체된다. 그럼 봄이 뭐길래. '생명이 움'트는, '어둠의 끝엔 빛이 있듯이 아픔이 지나가 버리는' 계절. 결핍의 상태를 비정상으로 간주하며 “모두 연애하라” 따위의 슬로건을 외치는 “폭력”이 아닌, 결핍과 상처를 품고 아픈 겨울을 견뎌온 자들을 위로해주는 '아침의 천사', 그것이 진보가 말하는 봄이다.

 

그에게 봄은 생명력을 갖는 따듯한 인격체다. 글로켄슈필과 타악 소리는 봄비를 맞으며 돋아나는 새싹을 청각적으로 묘사하고, 화려한 관현악 사운드는 새 계절의 도래를 축하한다. 이런 봄을 맞는 화자의 심장소리는 뉴 잭 스윙의 작위적인 비트처럼 쿵쿵대는 듯하다. 오롯이 귀로만 들리던 것들은 어느 샌가 오감을 만족시킨다. 다시 찾아올 '너'의 노래를 기다리며 올 겨울을 견딘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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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리케이 - 「콜센터 (feat. 우효)」

 

“매일 아침 투구를 쓰듯 쓰는 헤드셋 / 모니터 옆에 둔 작은 거울을 보며 맹세
오늘은 기죽지 말자 / 누가 욱하게 해도 초보처럼 굴지 말자”

 

화자는 콜센터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이다. 하지만 이를 노골적으로 묘사하거나 설명하진 않는다. 앨범 이미지나 비트에만 집중한다면 진짜 이야기는 듣지 못하고 지나쳐 버릴 지도 모르겠다. 담담해서 더욱 쓰린 목소리를 듣다보면 이게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제리케이는 줄곧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진짜 세계를 노래했다. 얼마나 자신이 잘났는지, 동료 랩퍼가 얼마나 찌질한지에 핏대를 세우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마이크에 실었다. 실제 대한민국은 어떤 환상도, 낙관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오랜 시간 그의 음악은 휘황찬란하거나 반짝거리지 않았다. 반면 이 노래는 소재에 대한 신선함과 자연스러운 훅메이킹, 그리고 무엇보다 이를 구성하고 풀어나가는 연출력이 탁월하다. 무심한 듯 차갑지 않은 우효의 섭외도 적절했다. 그동안 힙합과 인디의 콜라보레이션은 많았지만 「콜센터」는 노래의 세계관과 방식부터 다르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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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TB - 「Artificial」

 

'한 가닥'씩 하던 내공의 음악인들이 모여 '강펀치'를 날렸다. 기본에 충실한 밀도 높은 사운드가 쉴 새 없이 귀를 때린다. 소리의 중심에서 뻗어나가는 기타, 드럼과 베이스의 능숙한 완급 조절, 꿈틀대는 날 것 그대로의 보컬이 퍽 근사했다. 사납게 질주하는 와중에도 잘 들리는 친절한 멜로디를 놓치지 않은 것이 노래의 강점. 유려함을 추구하는 근래의 경향을 보란 듯이 거스르며, 이들만의 방식으로 통쾌하게 깨부쉈다. 막힌 가슴을 시원하게 폭파하는 강렬한 한 방! (정민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2016년 결산, BEST 팝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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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s still matter' 올해 작고한 프린스가 한 시상식에서 했던 말이다. 그렇다. 주로 싱글 단위로 소모되고 있는 현 음악시장의 흐름에도 음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다. 올해도 어김없이 많은 뮤지션들이 좋은 음반을 통해 우리의 귀를 풍성하게 했다. 그중에서도 2016년의 팝 음악을 수식할 열 장의 음반들을 소개한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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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Blackstar>

 

반세기에 가까운 음악 여정 내내 그는 낡지 않았다. 잠시 휴식을 취할지언정, 진부한 모습으로 대중을 만난 적은 없다. 통산 스물다섯 번째였던 <Blackstar>역시 그랬다. 록의 골격에 일렉트로니카와 재즈의 색채를 입혀 전위적 소리 탑을 쌓은 동시에, 수려한 멜로디 전개로 대중과의 접점을 이뤘다. 음반은 아방가르드 재즈와 아트 록의 매력적 공존이었고, '전설' 데이비드 보위는 명백히 '현재 진행형'이었다.

 

“여기 위를 올려다봐요. 나는 천국에 있어요.” - 「Lazarus」

 

삶의 끝으로 향하는 터널 안에서도 거장의 창작력은 밝게 빛났다. 앨범은 오랜 세월이 빚어낸 관록의 산물이면서, 하나의 숭엄한 작별 인사였다. 끊임없이 가면을 바꿔가며 다양한 목소리를 구사했던 아티스트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음악을 통해 징명한 울림을 선사했다. 지극히 그 다운 피날레였기에 '블랙스타'의 폭발은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다. 1969년 톰 소령(「Space oddity」)으로 시작된 이야기는 2016년 나사로(「Lazarus」)가 되어 끝났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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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  <Coloring Book>

 

멀티태스킹의 장기가 빛난다. 찬스 더 래퍼는 전에 해 왔던 대로 여기에서도 랩을 하듯 싱잉을 선보이며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랩을 한다. 능숙하게, 한편으로는 능청스럽게 두 스타일을 소화하는 퍼포먼스는 노래들에 굴곡을 만든다. 둥그스름함과 뾰족함이 적당한 위치에 나타나는 잘빠진 모양새가 감상 저항을 줄인다.

 

여러 형식을 아우른 구성도 재미를 더해 준다. 힙합은 기본에 R&B, 가스펠, 재즈, 일렉트로니카, 아카펠라 등 많은 장르가 각각 따로 출현하거나 연합해 호화로움을 완성한다. 다양한 스타일을 떠안고 있음에도 어수선하지는 않다. 힙합과 가스펠을 큰 줄기로 삼은 기획에 의해 번잡함은 자동으로 정리된다.

 

가스펠을 들려주지만 고리타분하지 않다. 메시지가 포교보다는 자신의 소극적인 신앙 고백에 머물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느 래퍼와 다름없이 욕과 거친 표현을 간간이 씀으로써 힙합 키드들이 무의식적으로 환호하는 '거리의 멋'도 빼먹지 않는다. 영악한 반승반속(半僧半俗) 앨범이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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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리카(Metallica)  <Hardwired... To Self-Destruct>

 

쉴 틈 없이 질주하는 광폭함과 패기는 조금도 녹슬지 않았는데, 여기에 33년차 메탈 거목(巨木)의 묵직한 노련미까지 더해지다니. 이 정도면 건재함을 증명하는 차원을 넘어 가히 '새로운 탄생'이다. 1983년 데뷔앨범 <Kill Em' All>부터 달려온 메탈 기관차가 다시 한 번 내뿜는 거대한 굉음! 연료가 바닥날 걱정은 당분간 집어치워도 되겠다.

 

밴드가 지나온 여정이 앨범 구석구석에 녹아 있다. 「Hardwired」와 「Spit out the bone」의 비타협적 폭주 일변도, 「Atlas, rise! 」와 「Moth into flame」의 '스래쉬 심포니'는 전 세계가 열광했던 그들 전성기의 사운드를 빼닮았다. 「Now that we're dead」의 절묘한 완급조절과 묵직함 속에 멜로디를 강조한 「Dream no more」, 메탈리카식 발라드의 계보를 잇는 「Halo on fire」는 대중성을 가미했던 1991년 <Metallica>의 대성공 이후 오랜 방황과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은 소중한 노하우다. 이 초거대 프로젝트의 일등공신은 드러머 라스 울리히(Lars Ulrich)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밴드의 합(合). 묵직한 배킹 위에 제임스 헷필드(James Hetfield)의 중후한 보컬이 사자의 포효로 거듭난 순간, 메탈 음악의 쇠락에 상심한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단비가 내렸으리라.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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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베어(Bon Iver) - <22, A Million>

 

한 마디로 '패턴 디자이너'의 자세였다. 가까이는 2010년, 가장 멀리는 1950년대에까지 이르는 지나간 음악의 샘플링 파편을 가져와 정교하게 이어 붙였다. 조직적이고 정돈된 방식의 소리 콜라주, 그리고 모자이크. 덕분에, 변화무쌍한 음색이 줄곧 나열되더라도 귀가 어지럽지 않다. 오토튠과 보코더, 글리치 어법으로 자행된 온갖 왜곡 속에서 엄숙한 질서와 조형미를 쟁취하는 것이 바로 저스틴 버논, 이 '21세기 소년'의 당찬 매력이다. 소포모어 이상으로 아티스트의 진가가 드러난다는 세 번째 순간, 밴드는 과거를 동원해 오히려 동시대 서정성을 대변했다. 미래의 어떤 날보다도, 지금 들어야 한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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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1975  <I Like It When You Sleep, For You Are So Beautiful Yet So Unaware Of It>

 

EDM에 권좌를 넘겨주고는 눈에 띄는 성과 없이 지지부진했던 록 신이었기에 1975의 등장이 더욱 반갑다. 올 상반기를 책임졌던 밴드의 소포모어는 전작의 감성은 유지한 채 좀 더 섬세한 사운드로 채워졌고, 트랙 사이에 존재하는 앰비언트 곡들은 다소 과하게 느껴지는 부피의 음반에 유기성을 부여한다. 따듯한 멜로디와 조금은 기괴한 연출은 낯설고도 익숙하다. 마치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그저 인물의 흔적을 롱 테이크로 담아내는 일본 영화처럼. 그렇게 잔잔하게 흘러 들어온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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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욘세(Beyonce)  <Lemonade>

 

샘 쿡이 '언젠가는 변화가 올 것'이라고 노래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 흑인 사회의 변화에 대한 물음에 트레이본 마틴(Trayvon Martin)의 죽음이 답했다. 유독 검은색만 보면 흥분하는 일부 경관들의 무자비한 총성은 자유와 평등을 내세운 거대한 국가의 참담한 실상을 낱낱이 까발렸고, 피부색 가릴 것 없이 거리에 모인 사람들은 'Black lives matter'를 외쳤다. 이 외침에 문화계가 반응했다. 영화계는 '경찰 x까라'던 N.W.A를 부활시켰고, 흑인 노예를 끄집어냈으며, 마틴 루터 킹에 대한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뿐일까, 켄드릭 라마와 커먼, 존 레전드, 프린스 등의 뮤지션들이 그들만의 인권 운동을 펼쳤다.

 

<Lemonade>는 그중 당연, 가장 거대했던 외침이었다. 비욘세는 수많은 대중들이 보는 앞에서 '잭슨 파이브 코를 닮은 흑인 코가 마음에 든다.'며 당당히 흑인으로 태어난 자부심을 드러냈고, 직설적으로 '우릴 쏘지 말라'며 공권력에 으름장을 놓았다. 흑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비추는 노래들은 소외된 이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물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역량과 음악적 완성도가 담보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저 잘 만든 팝 음반의 수준을 넘어, 역사가 기록할 파급력을 지닌 명반이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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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헤드 (Radiohead)  <A Moon Shaped Pool>

 

새로울 것은 없다. 톰 요크의 일렉트로니카와 조니 그린우드의 오케스트레이션, 파편화된 채로 횡행하는 노트, 앰비언트 식으로 공간과 공중을 집어삼키는 사운드 뭉치, 이들의 혼합으로 이뤄진 아트 록이 또 다시 앨범을 구성하니까. 그렇다. <A Moon Shaped Pool>은 평범하다. 그러나 이 평가는 어디까지나 이들의 과거가 기준이 됐을 때에만 유효하다. 판단의 시각을 라디오헤드의 그간 행보로부터 현재의 록 신으로 전환해보자. 사이키델리아와 펑크, 뉴웨이브, 디스코, 신스팝의 재가공물이 유행하고 포스트 록의 잔향이 미약하게 남아있는 요즘의 메이저 록 영역에서 이만큼 혁신적이고 실험적인 앨범이 과연 있었던가. 그리고 이만큼 군더더기 없이 사운드 디자이닝이 잘 이뤄진 앨범이 있었던가.

 

결국 라디오헤드를 평범하게 만든 것은 그 자신이다. 라디오헤드의 사운드를 더 이상 신비롭지 않게 들리게 만든 것은 그 자신의 과거고, 라디오헤드의 앨범을 재차 논해야하는 일을 무의미하게 보이게 만든 것은 그 자신의 대단한 창작력이다. 그렇기에 이 놀라운 밴드에 익숙해지다 못 해 그 세계관에 오랫동안 빠져 살았던 우리는 진정한 '타자'로서 이 수작을 더 주의 깊게 들여다 봐야한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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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란지(Solange)  <A Seat At The Table>

 

21곡이 넘는 앨범이지만 한가지 톤 - 네오 소울과 일렉트로닉 사운드 - 에서 다채로운 색조들이 우아하게 펼쳐진다. 피비알앤비와 펑크(Funk) 등 다양한 장르를 뒤섞어 몽환적이며, 여음을 강조한 창의적인 소리가 탄생했다. 노래의 메시지도 깊다. 중독이나 흑인으로서 나아가야할 방향,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소울의 장인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이 프로듀서를 맡아 실험적이지만 명상음악처럼 편안하고, 유연하고 부드럽지만 결코 가볍게 들뜨지 않는 독특한 감촉을 제시한다.

 

올해는 노울스 (Knowles) 자매에게 특별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같은 해에 앨범을 내고, 차트 정상을 차지했으며 여러 매체의 평가에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패션 스타일만큼 둘의 음악은 완전히 다르다. 비욘세가 파워풀하고 팝적인 지향이라면 솔란지는 감각적인 힙스터다. 3집을 통해 그녀는 '비욘세의 동생'이 아닌 아티스트로 자신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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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길 심슨(Sturgill Simpson)  <A Sailor's Guide To Earth>

 

노곤하고 '아재'스러운 컨트리 음악을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두 장의 인디 음반을 거쳐 메이저 신으로 본격 데뷔한 스터길 심슨(Sturgill Simpson)은 경이로운 구성의 콘셉트 앨범을 통해 그의 가치관을 고한다. <A Sailor's Guide To Earth>의 서사 자체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전하는, 전기(傳記) 형태의 잔소리(?)이지만 진짜는 모두가 알아보는 법. 애정 가득한 삶의 격언과 더불어 시대를 꿰뚫는 올곧은 정신은 대중의 가치체계 안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스트링, 신시사이저, 브라스 등의 혼합은 컨트리를 넘어서 소울, 펑크(Funk)의 영역까지 도달하며 입체적인 사운드의 향연을 이룬다. 미국 해군 근무 경험을 토대로 한 그의 '지구 상 지침'은 풍성한 음향을 통해 공감각적 역동성을 얻었다. 러닝타임 내내 폭풍우치는 바다 한가운데 갑판에서 노래하는 듯한 통쾌함을 선사한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미군을 겨냥한 반전(反戰) 메시지. 굵직한 그의 목소리만큼이나 무게감 있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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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시반 (Troye Sivan)  <Blue Neighbourhood>

 

팝계의 변방 호주 출신인 20대 초반의 꽃미남 가수가 반반한 외모로 소녀 팬들의 지갑을 노린 음반으로 예상했다. 초상화로 꾸려진 초라한 앨범 재킷 역시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Blue Neighbourhood>의 첫인상은 호감이 아니었다.

 

건방진 예측은 틀렸다. 전자 음원을 저류에 배치한 수록 곡들의 스타일이 비슷하다는 단점은 세련된 편곡과 과욕을 부리지 않은 트로이 시반의 보컬, 정제되고 신비로운 사운드 조율을 거쳐 앨범의 통일성으로 승화되었고 단순하게 보였던 음반 표지는 멋진 음악을 말없이 드러내는 훌륭한 조연으로서의 제 역할을 한다.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간사해질 수 있는지를 증명한 2016년의 팝 앨범.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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꼽아놓은 리스트를 보니 전자음악의 강세가 뚜렷이 드러난다. 해가 지날수록 더욱 거세지는 일렉트로니카의 파급력은 차트뿐 아니라 여러 장르의 곳곳에서도 스며들었다. 그러나 트렌드의 간섭을 피해간, 자주적이고 쿨한 음악을 선사한 아티스트도 있었기에 한층 더 풍성한 리스트가 탄생할 수 있었다. 비교하며 들어보면 더욱 재밌는 리스트가 되지 않을까.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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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Sia)  'The greatest (feat. Kendrick Lamar)'

 

물론 올해 「Cheap thrills」로 빌보드 정상에 올랐으나, 시아의 2016년은 이 노래가 있어 더욱 찬란했다. '포기하지 마, 난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테야. 나는 위대한 사람이 될 자유가 있어, 난 살아있으니까.' 용기를 북돋우며 당당하고 자신 있는 자아의 발현을 독려하는 가사와 이를 담고 있는 매끈한 음악이 감동을 안겼다. 여기에 이제는 한 명의 아이콘으로서도 손색이 없는 켄드릭 라마가 메시지에 힘을 실었다. 지난 6월 벌어진 올랜도 총기 난사 사건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뮤직비디오를 논외로 해도, 노래는 그 자체로 훌륭했다. 울분을 깨트리는 목소리와 노랫말로 상처를 어루만진 올해의 '힐링'이자 '사이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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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룸(Flume)  'Never be like you (feat. Kai)'

 

데뷔 앨범 <Flume>부터 자국 차트에서 선전, 영국 밴드 디스클로저(Disclosure)와의 협업 「You & Me (Flume Remix)」로 유명세를 탄 이 호주의 젊은 프로듀서는 올해에도 꾸준히 준수한 결과물을 선보였다. 소포모어 징크스는 내다 버린 듯, 두 번째 정규작 <Skin>에서 그는 EDM과 팝의 경계를 유연하게 누비며 줄타기를 해냈다. 그 중에서도 「Never Be Like You (feat. Kai)」는 팝의 에너지를 적극적으로, 또 성공적으로 끌어들인다. 차임벨을 연상시키는 선명한 도입부도 매력적이지만, 변칙적인 트랩, 퓨처 베이스 사운드가 이어지면서 곡의 진가가 발휘된다. 캐나다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카이(Kai)의 높은 보컬 톤이 어우러지며 중독성에 대중성까지 동시에 담보한다. 매끈하고 영민한 일렉트로닉-팝 조합물이다. (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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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케이 코츠(Parquet Courts)  'Dust'

 

오묘한 조합이 깔려있는 싱글이다. 4분에 몇 초 못 미치는 러닝 타임 동안 로 파이의 텍스쳐로 지저분함을 표시하기도 하고 노이즈와 자동차 경적소리로 너저분함을 표현하기도 하며 약간의 리버브 톤으로 어지러움을 표출해내기도 하나 'Dust'의 최종 목적지는 단순함에 닿아있다. 진행 시간만 길게 늘였을 뿐 전개 구조는 미니멀하기 그지없는 데다 개러지 록과 펑크 식 기타 리프, 모던 러버스(Modern Lovers)의 「Roadrunner」 식으로 운용되는 키보드 라인은 더 없이 단출하고, 텍스트는 결국 무(無)로 귀결된다. 펑크와 아트 펑크, 노이즈 록의 갖은 요소를 뉴욕의 파케이 코츠는 최소주의의 미학으로 엮어 독특한 결과물로 산출해냈다. 그래서 「Dust」는 복잡하다 못 해 난해하게 보이기도 하고 단조로움을 넘어서 짐짓 무성의해보이기도 한다. 그 상반되는 매력이 압권.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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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CAN'T STOP THE FEELING!'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의 「Happy」가 그랬듯, 뮤직비디오의 장면이 바뀔 때마다 사람들은 연신 춤을 춘다. 여름의 시작에 불현듯 나타나 더위를 물리치며 지구촌 곳곳의 싱글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애니메이션 영화 <트롤(Trolls)>에 삽입된 노래는 높은 예매율을 견인하며 홍보 역할도 완수했다.

흥겨운 신시사이저와 하이햇으로 가볍게 시작해서 기타와 베이스가 나오면 본격적으로 어깨가 들썩인다. 펑키한 기타, 베이스와 섹시한 보컬이 유독 귀에 꽂힌다. 특히 보컬과 악기들의 밸런스는 곡의 진행을 더욱 다이내믹하게 한다. 음악을 듣는 순간 리듬을 타고 주체하기 힘든 흥이 꿈틀대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럴 때는 'So just dance dance dance'.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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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런트(Gallant)  'Weight in gold'

 

1992년생의 섬세한 감수성 앞에 모두가 '무장해제'를 선언했다. 첫 정규 앨범 <Ology>의 타이틀곡이자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듬뿍 받은 그의 대표곡은 차가운 얼터너티브 알앤비 신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그렇다고 해서 호기로운 혁신을 주도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통의 흐름과 트렌드를 함께 반영해 기존 장르에서 기대할법한 익숙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갤런트는 여기에 '여백의 미'를 더해 차별을 꾀했다. 유연한 리듬의 틈 사이로 내리찍는 전자음은 곡의 매력을 배가한다. 절정의 순간에는 소름끼치는 팔세토 창법을 내뿜으며 심연으로 사라진다. 음울하면서도 몽롱한 느낌의 사운드는 내면의 불안, 삶의 무게를 다룬 가사와 어우러진다. 바로 여기서 음악에 색을 우려내는 노련함이 엿보인다. 올해, 우리는 이 매혹적인 신예 아티스트의 접수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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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 - 'Dangerous woman'

 

바짝 올린 포니테일, 깜빡이는 큰 눈. 아직은 그 모습으로 더 익숙한 아리나아 그란데가 '위험한 여성'임을 선포한다. 성숙의 변화는 위켄드와 함께 한 「Love me harder」에서도 비춰졌다. 강해지고자 시도한 방향 전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명징한 보컬은 여전하고 록 기타가 견인하는 미묘한 긴장감도 좋다. 무엇보다 과하지 않은 속도가 R&B에 기초한 아리아나의 리듬감을, 유려한 음색에 온전히 집중하게 한다. 댄스 팝을 넘어 이런 끈적한 노래조차 잘 만드는 마이다스의 손 맥스 마틴과 함께 도약! 통통 튀던 하이틴 공주의 모습을 지워내고 팝 디바의 자리에 한층 다가가는 순간이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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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83(M83)  'Do it, try it'

 

연일 트렌드의 꼬리표를 달고 쏟아져 나오는 EDM 홍수 속, M83은 시류를 따르지 않고 과거로의 회귀를 선택했다. 물론 밴드의 음악적 영감이 언제나 '노스탤지어'의 돛을 달긴 했지만 이번 곡은 다르다. 더 가볍고, 경쾌하다! 전작의 드림팝, 슈게이징, 일렉트로니카의 요소가 뒤섞인 묵직한 꿈의 사운드를 기대한 팬들은 아쉬웠을 수 있다. 그러나 실망은 금물. 스피커를 타고 넘실대는 사운드엔 지극히 M83다운 터치가 일격의 카운트펀치를 날린다.

 

4/4 정박으로 리듬을 주조하는 킥 드럼은 유행에서 멀어진 디스코의 향취를 가지지만 이는 매력적인 건반과 터져 나오는 신시사이저를 통해 멋스럽게 유화된다. 여기에 종잡을 수 없는 곡의 흐름과 빌드업 후 몰아치는 광란의 사운드는 음악적 경계를 허물며 M83식 발칙함을 내보인다. 거침없는 음악적 행보와 맞물린 음악성. 엇비슷한 전자음악의 풍년 속 이 곡이 단연 돋보이는 이유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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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Zayn) - 'Pillowtalk'

 

올 한해 가장 섹시했던 곡. 덕분에 데뷔 싱글로 빌보드 차트 정점에 오른 첫 영국 아티스트로 남게 되었다. 자극과 본능의 수위를 줄타기하며 욕망을 표출하는 모습이 놀라웠던 가사와 그 분위기를 놓칠 수 없겠다. 그 와중 올 한해 케케묵은 소재가 되어버린 'Sex'라는 담론을 어느 정도 지적으로 풀어내 관능미를 동시에 손에 움켜쥐었다. 버블검을 불며 '한길'로 걷던 소년이 겪어야 할 일종의 성장통, 훌쩍 커버린 외양에 대중들은 열광했다.

 

일반적인 R&B 보다 전반적으로 템포가 다운된 팝 록에 가깝다. 하이라이트라는 방점이 찍히지 않고 평이하게 흘러가지만 그 안정감과 유려함이 선사하는 '귀르가즘'은 무시할 수 없는 정도다. 이 청년이 보여주는 리비도가 우왕좌왕 돌출하지 않고, 성적 측면에만 국한되지 않음은 앞으로도 음악계의 축복이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청소년은 되도록이면 듣지 않았으면.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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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블릭 액세스 TV(Public Access TV)  'In love and alone'

 

팝으로, 뉴웨이브로, 아트 펑크로 나아가는 스트록스에게서는 이제 찾아보기 힘든 단순성과 복고성을 퍼블릭 엑세스 TV는 갖고 있다. 뉴욕 펑크의 또 다른 상속자인 퍼블릭 엑세스 TV는 폭풍처럼 왔다가 순식간에 사그라든 개러지 록 리바이벌의 명맥을 이어간다. 더 카스 풍의 파워 팝 사운드에 기초해 직선적인 기타 리프와 미니멀한 구성, 간편하면서도 캐치한 멜로디를 내세워 만든 복고식 개러지 록, 펑크가 실로 매력적이다. 「In love and alone」은 이러한 밴드의 스타일이 매우 잘 드러나는 좋은 싱글. 낯선 음악은 분명 아니나 밴드가 표출하는 날 것의 이미지가 신선함을 다시금 충분하게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 있어 「In love and alone」는 의미 있는 결과물이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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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Justice) - 'Safe and sound'

 

성가대의 합창을 닮은 인트로부터 심상치 않다. 이내 비장한 스트링 선율이 '강림'하고, 거친 디스토션 사운드를 덜어낸 벌판 위를 슬랩 베이스가 야생마처럼 질주한다. 세 번째 앨범 <Woman>의 선공개 수록곡인 이 곡은 2011년 <Audio, Video, Disco.>부터 사운드의 밀도를 서서히 줄여 온 음악적 변화의 연장선이다. '거칠고 꽉 찬' 데뷔앨범 <†>(2007)의 음압이 사라진 자리에 허전함을 느낄 법도 한데, 비트와 리듬을 다루는 이들의 실력은 쉴 틈 없이 어깨를 몰아치며 다른 방식의 감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완벽에 가까운 드라마틱한 구성은 덤. 아티스트의 변신이 언제나 무죄는 아니지만, 이 정도 결과물이라면 뿌듯한 마음으로 '혐의 없음'을 선언하겠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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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다시 돌아봤으면 하는 인디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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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급부상했던 밴드가 '혁오'였다면 2016년의 스타는 '볼빨간 사춘기'였다. 이들은 귀여운 보컬과 말랑말랑한 기타팝으로 아이돌과 드라마 OST를 누르고 음원차트를 호령했다. 이들 뿐 아니라 '십센치'를 비롯한 '어반자카파', '스탠딩 에그' 같은 소위 '인디팝'으로 명명되고 있는 그룹들의 선전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이런 팀들의 상업적 성공은 '과연 이들을 인디라고 할 수 있는가?'하는 근원적인 의문을 제기시키고 있다. 사실 '인디'와 '팝'은 얼마나 이질적인 단어인가.

 

사전적으로만 보자면 인디 음악은 '음반의 제작, 유통, 홍보를 타인의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의 자본과 힘으로 제작, 유통, 홍보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말한다. 하지만 2016년의 인디란 자신의 손으로 곡을 만드는 싱어송라이터에게 붙이는 정체성이고, 록에 기반한 장르적 특성이기도 하다. 종종 메인스트림과 대비되는 언더그라운드를 일컫기도 한다. 과연 인디의 경계선은 어디까지인가. 그리고 경계선은 필요한가. 결국 모든 쟁점은 '인디란 무엇인가?'로 귀결된다.

 

물론 우리 인디의 역사가 길지 않다 보니 그 답을 찾기는 쉽지가 않다. 그렇다면 포크팝의 인기가 인디의 확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지금까지 상황을 보면 '인디팝'의 성공은 '인디'에 대한 개념을 변화시키고 있음은 분명하다. 대중에게 인디란 달달하고 귀여운 어쿠스틱 음악이라는 인식이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인디와 관련된 페이스북 페이지나 음원사이트를 들여다 보면 컨텐츠 자체가 이런 인디팝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다. 홍대 거리의 버스킹이 발라드나 댄스 배틀로 대체되는 것도 눈에 띄는 현상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 거리는 메이저로 나가기 위한 거대한 오디션이 돼버렸다. 인디음악은 밴드의 수 만큼 다채로운 정체성을 가진 게 미학이었다. 하지만 이는 머지않아 자본에 의해 비슷한 색으로만 채워지게 될지도 모른다.

 

차트 순위에는 없지만 2016년에도 수많은 인디 음악들이 탄생했다. 음악도 시간을 타다보니 발매 시기가 지나면 3주도 지나지 않아 잊혀 버리기 일쑤다. 그런 면에서 결산은 노래를 한 번 더 세상에 끄집어낼 수 있는 도구다. 꼭 다시 돌아봤으면 하는 음반 10개를 추리고 모았다. 더 많은 앨범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이즘이 선정한 '올해의 가요'와는 겹치지 않도록 조정했다. 앨범을 모두 펼쳐 놓고 보니 사소하면 사소할 수 있는 교집합들이 발견된다. 읽는 재미가 하나라도 더 생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들을 엮고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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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사랑이 세상을 구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존재일지라도 24시간 사랑 타령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악마와 신을 노래하고 독재자에게 당당하게 죽음을 외친다. 독특한 세계관과 작가의 철학을 빼곡히 담은 음악들.

 

김태춘 < 악마의 씨앗 >


“우울하고 험한 시대를 어떻게 따뜻하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포장할 수 있겠는가.” 독한 가사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 김태춘이 한 말이다. 그는 악마가 우리에게 건네준 씨앗을 '자본주의'라고 칭한다. 방송국은 폭파해야 할 대상이고, 좀비처럼 끝없는 욕망을 가진 서울 사람들은 불쌍한 인간들이다. 시신을 맨 상여가에 맞춰 '독재자에게 죽음을' 노래하고 펑크 껍데기만 걸쳐 입은 뮤지션들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김태춘은 이미 폭언에 가까운 신랄한 가사로 유명하다. 이 정도면 우리의 민낯이 아니라 피부 안까지 헤집어 놓는다. 2집에서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가사에 조금 더 싱크로율이 높은 사운드 메이킹을 했다는 것이다. 직설적인 메시지가 더욱 극적으로 들려온다.

 

이랑 < 신의 놀이 >


이랑은 한가지만으로도 벅찬 ? 뮤지션과 영화 감독, 그리고 그림을 그리는 ? 재주가 많은 아티스트이다. 짜여 있지 않은 듯 무심하고 시크한 연출이 그녀의 가장 큰 매력이다. 패션으로 말하자면 '내츄럴한 놈코어 스타일'의 노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1년 만에 나온 2집은 음원과 책이 초판 매진될 정도로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녀의 가사는 혼잣말과 비슷하다. 어떤 주제에 대해 자신의 시선과 생각을 그대로 담았다. 1인칭의 독백을 듣고 있으면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도 든다. 특히 이번 앨범은 일상적이고 소소한 트랜드에 반기를 들어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랑은 '우리의 삶은 무겁고 죽음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가벼운 시대에 가장 무거운 음반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한다. 게다가 유리로 둘러싸인 스튜디오가 아니라 자신의 방식대로 평소에 좋아하던 커피점에서 녹음을 했다. 녹음의 결이 다른 것은 선결의 '김경모'가 프로듀싱을 한 공이 크다. 사운드의 진보도 눈부시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자신의 가장 큰 적은 자신이었다. 자신의 틀을 부수고 세상에 나온 뮤지션들. 두 작품 모두 자신의 이름으로 발매되는 정규 1집이다.

 

구텐버즈 < Things what may happen on your planet >


고통을 많이 겪은 사람은 다른 이의 고통을 품어줄 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한다. 보컬 '모호'의 목소리에는 정말로 이런 능력이 있다. 이것은 온화하거나 다정함과는 다르다. 까칠하고 예민하지만 그래서 함께할 수 있을 것 같은 동질감. 아마도 그것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정규 데뷔반은 전작과 전혀 다르다. 보컬보다 리버브를 잔뜩 건 기타 사운드가 더 많이 등장한다. 노랫말도 형이상학적인 곳, 저 먼 우주로 향해있다. 보기 좋게 뒤통수를 맞았지만 그 얼얼함이 짜릿하다.

 

이민휘 < 빌린 입 >


비릿한 정육점의 풍경. 고기를 해체하고 있는 남자. 강렬한 앨범 이미지에 '빌린 입'이라는 시적인 제목이 겹친다. 그는 항상 의문을 꺼내 들게 만들었다. “벌레”를 괴성처럼 외치던 무키무키만만수 시절부터 언제나 의문이 존재했다. 어쩌면 이 물음표는 쇼크를 주어서 무엇인가를 강렬하게 느끼게 하는 강력요법일지도 모르겠다. 전작에서 사운드를 하나의 반죽처럼 치대고 두드려 이리저리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내던 그가 음악의 형태 안에서 스토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여러 목소리를 빌려 더블링하고 신스, 알토 플롯, 트럼펫, 실로폰, 현악 3중주 같은 악기들을 사이키델릭하게 중첩했다. 가사는 초현실적인 미래파 시처럼 해석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최소한의 질서 속에서 비전형적인 아름다움으로 활짝 피어난다.


연주자들의 고군분투가 차곡차곡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물론 지금도 척박하기 그지없지만 장르의 충돌과 접점으로 점점 벽이 허물어진다. 악기들은 입이 없지만 새로운 소리를 만들고 있다.

 

블랙 스트링(Black String) < Mask Dance >


올해만 해도 잠비나이, 타니모션 같은 한국 전통음악에 기반을 둔 음악들이 꽤 발매되었다. 블랙 스트링은 그중에서도 가장 생소한 이름이지만 메이저 레이블 ACT에서 정규 다섯 장을 계약한 인정 받은 팀이다. < Mask Dance >는 처용 가면을 쓰고 잡귀를 쫓는다는 처용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국악의 현대적인 해석은 제목뿐 아니라 연주에서도 발견된다. 한국 전통음악에 재즈를 접목한 4인조 그룹은 서양에는 없는 악기, 국악에는 없는 기법으로 혼돈과 불협화음을 만든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다른 성질의 악기들의 극렬한 대립과 활극이 펼쳐진다.

 

강이채 < Radical Paradise >


클래식한 악기인 바이올린을 가장 힙한 사운드로 만들어내는 연주자 아니 싱어송라이터. 강이채는 자신만의 뚜렷한 색체를 가진 뮤지션이다. 클래식을 공부를 하다가 집시 재즈 음악에 심취해 미국에서 유학을 했다는 그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체화한다. 바이올린과 신디사이저의 운용, 사운드의 편곡은 뉴욕 브루클린의 클럽에서 목격할 수 있는 최신의 스타일이기도 하다. 바이올린의 줄을 튕기고 뭉개뜨리며 만들어내는 새로운 주법뿐만 아니라 작곡가, 싱어로서도 자신만이 낼 수 있는 견고한 소리에 도전한다.


어쩌면 앰비언트는 '수련'의 또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풍진 세상을 초월한 듯한 명상 사운드와 범상치 않은 기운. 올해 조동진, 방백 등 음악 경력이 쌓인 뮤지션들은 점차 차원이 다른 사운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못지않게 두 뮤지션에게도 특별한 기운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딘가로 흘러들어가 무언가를 어루만진다.

 

태히언 < ☆히言 >


레게 뮤지션 태히언이 10년 동안의 작업을 모아 앨범, 그리고 카세트테이프를 발매했다. 그러니까 이것은 그의 1집이 되어야 할 앨범이다. 그의 초기 음악들을 주로 담아 영어로 쓰인 유학 시절의 곡도 있고, 레게 이전의 포크 음악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프랑스부터 제주도까지 옮겨 가며 살아온 그의 흔적과 고비도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소박한 가사와 간간히 들리는 이름도 어려운 악기 - 디져리두, 무창구, 카림바, 반디르 -가 귀를 살며시 두드린다. 전자음이나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있는 그대로의 소리.

 

사비나 앤 드론즈 < 우리의 시간은 여기에 흐른다 (Our Time Lies Within) >


사비나 앤 드론즈의 첫 앨범은 감정을 그대로 토해낸 그래서 원초적이고 신비로운 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이는 어딘가 어둡고 고독이 자욱했던 것도 사실이다. 2집에서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니라 여러 동료와 함께 밴드가 되어 돌아왔다. 주술 같은 노랫말은 어느새 아름다운 노랫말이 되었다. 연기 같은 사운드는 여전하지만 이는 어지럽거나 습습한 잔향이 아니라 포근하고 상쾌한 안개처럼 존재한다. 외향은 비슷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감정의 습도나 온도가 전혀 다르다.


음악을 듣고 단번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이 있다. 첫인상이 너무 뚜렷해서 계속해서 기억에 남는 목소리들. 적은 곡수라서 아쉬움이 큰 강렬한 보컬들이다.

 

스테레오타입< COME BACK JAMES >


누군가는 영국 타입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북유럽 타입이라고 했다. 결론적으로는 한국에는 없는 사운드라는 것이 명백하다. 김영의 목소리는 얼음 입자들이 박혀있지만 그만큼 투명하게 반짝인다. 영어로 된 가사는 신비로움과 이국적인 느낌을 더한다. 귀에 잘 들어오는 멜로디와 정교한 플레이, 박진감 넘치는 비트가 마음을 훔쳐 멀리 달아난다.

 

O.O.O < HOME >


가성현의 목소리는 연약하고도 허무하다. 기침을 하듯 툭툭 내뱉는 가사는 마르고 창백한 어느 시인을 떠올리게 한다. 6곡의 EP지만 깨질 듯이 불안하고 모호하기만 청춘이 그대로 스며있다. 'O.O.O'라 쓰고 '오오오'라 읽는다. 팀명이'Out Of Office'의 약자라지만, 보컬에 슬며시 '오오오'하고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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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이클, 시대를 풍미한 섹시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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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고 야속한 2016년의 끝자락에 또 한 명의 뮤지션이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53세. 조지 마이클은 '공인' 천재 작곡가인 동시에 흑인감성을 품은 빼어난 가수로서 인기차트와 시장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린 팝 스타였으며, 시대를 풍미한 섹시 아이콘이었다. 그가 남긴 멜로디 명작과 보컬 수작은 많다. 이즘이 선정한 스무 곡으로 그의 음악세계를 개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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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ke me up before you go-go
(1984, <Make It Big>수록)

 

소녀의 마음을 제일 먼저 훔친 건 MTV 영상 속 듀오 왬!(Wham!)의 멋진 외모였다. (짧은 반바지와 손가락 뚫린 노란 장갑이 상징이었다.) 둘째로는 부정할 수 없는 리듬과 멜로디.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고!' 흑인 소울을 발랄한 선율로 터트린 이 곡은 영국과 빌보드 정상을 단숨에 점령했다. 조지 마이클과 대중의 첫 접선! 이 곡의 빅히트 충격은 음악적 견해 차이로 쪼개져 활동하던 두란 두란(Duran Duran)의 재결합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노래는 가볍고 신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순수하리만큼 열정적이었던 1980년대 댄스 팝의 특징을 간직한다. 시원하게 미끄러지는 보컬과 쨍하게 울려 퍼지는 색소폰은 12월이 되면 더욱 반짝이는 서구 코믹 영화들과 닮았다. 그곳이 댄스홀이든 라디오만 덩그러니 놓인 방이든 이 곡을 틀면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다. 왬!은 찬란했던 팝의 황금기를 기억하게 해주는 소중한 듀오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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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less Whisper
(1984, <Make It Big>수록)

 

'Wake me up before you go-go'에 이은 두 번째 넘버 원 싱글이자 월드와이드 히트곡. 재즈 컬러가 짙게 들어간 왬!의 대표적인 블루 아이드 소울, 소프트 록 넘버로 널리 사랑 받았다. 왬! 시절의 곡이지만 조지 마이클 이름으로 발표(Wham! featuring George Michael)되어 그가 언젠가 필시 솔로로 활동할 것임을 미리부터 암시했다.

 

그루비한 리듬 기타와 부드러운 팝 선율, 공간감 있는 드럼 비트, 깔끔한 사운드 마감 등 매력적인 요소들로 세련미를 자랑한다. 그 가운데서도 곡의 상징, 그룹의 상징, 아티스트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 유명한 도입부의 재지한 색소폰 라인은 단연 이 싱글의 백미. 이 인상적인 연주만으로도 곡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조명되어 왔다. 'Last Christmas'와 더불어 조지 마이클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노래.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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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she wants
(1984, <Make It Big>수록)

 

앨범에 수록 된 다른 빌보드 넘버원 곡들에 비해('Wake me up before you go-go', 'Careless whisper') 'Everything she wants'는 상대적으로 한국에 덜 알려진 곡이다. 그럼에도 곡에는 왬! 활동 당시 조지마이클이 선보인 지극히 그다운 사운드로 가득 차 있다. 뽕뽕거리는 신시사이저와 합을 맞춘 통통거리는 베이스라인. 경쾌하게 귓전을 때리는 타악기가 빚어내는 그루브와 비성과 미성을 매력적이게 오가는 보컬라인까지! 원조 아이돌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가사에는 가난한 소년의 구구절절한 사랑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절정의 인기를 안겨준 앨범엔 1980년대 당시의 모든 사조가 담겼다. 그건 뉴웨이브에 따른 신시사이저의 적극 활용이었으며 MTV 등장에 따른 '보이는 음악'의 태동이었다. 말할 필요 없이 그 중심엔 왬!의 핵이자 얼마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떠난 조지 마이클이 있었다. 시대의 상징적 존재가 되어 누군가의 청춘을 빛나게 한 그는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를 통해 우리의 삶은 '언제나 크리스마스'('Lasting' Christmas)처럼 즐겁고 달콤하게 지속될 것이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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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Christmas
(1986,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수록)

 

그가 12월 25일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앞으로 이 곡의 'Last'는 '지난'이 아닌 '마지막'의 의미로 불리게 될 것이다. 솔로 활동 이전 앤드류 리즐리와 함께 왬!의 이름으로 발표한 싱글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빌보드의 홀리데이 차트 상위권에 머물러 있는 노래다. 국내 인기도 꾸준히 높아 연령대가 낮은 이들에게도 친숙하다. 종소리를 닮은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은은하게 울리고, 리듬은 잔잔한 듯 경쾌하다. 여기에 조지 마이클 특유의 깨끗한 음성을 더했다.

 

영화 <러브스토리>(1970)처럼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도 하얀 눈밭과 따뜻한 눈빛의 연인이 등장한다. 1980년대 특유의 풍성한 웨이브 머리를 한 왬!의 멤버 두 사람을 만나볼 수 있다. 이제는 마이클이 세상을 떠났기에, 북적거리는 파티 장면조차 왠지 섭섭하다. 소녀의 마지막 순간에 어스름히 타오르던 성냥 불빛, 루벤스의 성화(聖?) 아래 잠든 소년, 그리고 그의 다정한 개. 동화 속 기일이 같은 이들에게 노래를 부쳐본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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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your man
(1986,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수록)

 

빌보드 3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음반 안에서도 특유의 유쾌한 에너지로 독보적 위치를 점하는 곡이다. 가사는 직설적이고, 보컬과 연주는 절제하지 않는다. 악기들이 시종 댄서블한 리듬으로 얽히는 가운데 색소폰과 베이스 솔로가 다채로움을 더한다. 'I don't need you to care, I don't need you to understand(난 네가 신경 쓰든 말든, 이해하든 말든 상관없어)'라며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작업'은 조지 마이클의 노련한 보컬로 멋지게 포장된다. 사실 더 따질 것 없이, 일단 '신난다'. 이 곡을 온전히 즐기는 데에 복잡한 고민은 필요치 않다.

 

이러한 직관적 정서표현은 당시 젊은이들의 취향을 '저격'했고 팀으로 하여금 숱한 팬들을 거느리게 했으나, 동시에 그에게 더 진중하고 성숙한 음악에의 갈증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룹의 정체성이 도리어 그가 솔로작업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단초가 된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왬!이 지녔던 쿨함, 트렌디함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려지는 모두가 즐거움에 취한 댄스 플로어, 그 앞에서 함께 흥분한 채 노래하는 플레이보이 두 명은 분명 시대가 사랑했던 팝 스타의 모습 그대로이기에. (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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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ifferent corner
(1986,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수록)

 

조지 마이클이 19살 때 작곡한 'A different corner'는 성숙한 고품격 발라드다. 미세하게 떨리는 심장박동 같은 건반, 호숫가에 드리워진 수줍은 새벽안개처럼 신비로운 신시사이저, 그 정적인 분위기에 악센트를 주는 동적인 어쿠스틱 기타, 그 위에 자연스럽게 감정 곡선을 타는 조지 마이클의 보컬은 'A different corner'를 티끌 하나 없는 순백처럼 아름다운 노래로 승격시켰다.

 

1986년에 영국 차트 1위와 빌보드 싱글차트 7위를 기록한 'A different corner'는 조지 마이클이 작사, 작곡, 편곡, 연주, 프로듀싱까지 매만진 그의 첫 번째 솔로 히트곡이다. 이 노래를 들은 조지 마이클의 오랜 친구는 '불쌍하고 청승맞지만 아름다운 곡'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평가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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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Knew you were waiting(for me)
(1986, 아레사 프랭클린의 <Aretha>수록)

 

작곡과 보컬에서 기세등등했던 1987년 조지 마이클은 평생의 우상과 노래호흡을 맞추고 싶었다. 듀엣 파트너는 영원한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무거워도 너무 무거운 존재였다. 아무리 차트를 누비는 핫 스타라고 해도 저 한없이 높은 체급의 레전드와 묶이는 것은 저울추가 기운 배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으며 누가 봐도 무모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조지 마이클의 자연스럽고 굽이치는 보이스는 조금도 여왕에게 밀리지 않았으며 솔직히 비등했다. 청출어람이란 표현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지 가창력의 개가였으며 노래에만 에너지를 집중하려 했던지 드물게 그답지 않게 남이 쓴 곡을 노래했다. 작곡자는 80년대 영국의 신스팝 듀오 '클라이미 피셔' 출신으로 2006년 이래 에릭 클랩튼 앨범의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바로 그 사이먼 클라이미(Simon Climie)다. 나중 왬!의 라이벌이었던 펫 샵 보이즈도 이 신구 콜라보 전략에 뒤질세라 영국 소울의 전설 더스티 스피링필드를 섭외했다. 이 곡으로 조지 마이클은 굳혔다. 아이돌을 뛰어넘는 뮤지션쉽과 존재감을, 그리고 '곡 잘 쓰고 노래도 잘하는 음악천재'의 위상을!!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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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your sex
(1987, <Faith> 수록)

 

제목부터 도발적인 이 노래로 조지 마이클은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들썩이는 리듬과 브라스의 그루브가 주는 음악적 흡입력으로 곡은 BBC의 방송 금지 처분을 비웃기라도 하듯 차트 상위권을 석권했다. 그는 원래 이 곡을 '리듬'이라는 기준으로 여러 파트로 나누어 발표했는데, 솔로 데뷔앨범 <Faith>에는 'Rhythm one: lust'와 'Rhythm two: brass in love'를 한 곡으로 믹스해 수록했다. 9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리듬감으로 그의 음악적 재능이 보컬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음을 증명하는 댄스 명작. 영화 <버버리 힐즈 캅 2>의 사운드트랙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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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1987, <Faith>수록)

 

왬! 해체 이후 솔로로 전향한 조지 마이클. 그를 단번에 전 세계적인 팝 스타로 발돋움하게 해준 슈퍼 싱글이다. 통산 2000만 장을 팔아치운 동명 앨범 <Faith>의 타이틀곡으로 사랑에 대한 신념을 쉬우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전달한다. 마초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곡 소구력은 10대 아이돌과도 같았던 왬! 때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20-30대 성인 대상의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전초 왬!의 'Freedom' 일부를 오르간으로 인용하여 듀엣 시절 향취를 불러일으킨 그는, 분위기를 차근히 고조시키는 펑키(funky)한 리듬 아래 개구진 보컬로 그루브를 속삭인다. 단연 돋보이는 캐치포인트는 간주에 등장하는 스트링 연주와 스캣. 곡의 대중친화적인 속성에 더해진 컨트리 사운드 탓인지 1988년도 빌보드 싱글 차트를 석권하며 미국 시장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뮤직비디오에서의 카우보이 복장도 메가 히트에 한몫했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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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more try
(1987, <Faith>수록)

 

짧지만 화려했던 왬! 이후 홀로서기에 나선 조지 마이클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여기엔 화려한 외적 요소도 큰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폭발적 센세이션의 근간은 음악적 완성도였다. 단단한 미성의 블루 아이드 소울, 직접 써 내려간 매끈한 선율은 강렬한 장악력을 행사했다. 그중에서도 최소한의 재료로 빼어난 가창을 부각한 'One more try'는 단연 조지 마이클 표 알앤비 발라드의 진수다.

 

먼저 목소리가 너무 근사했다. 노련하고 섬세한 강약 조절, 표현력이 소박한 음악을 풍성히 꾸몄다. 트레이드마크인 서정적 멜로디의 힘 역시 상당했다. 그 결과, 노래는 빌보드 종합 싱글 차트는 물론 알앤비 차트,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올킬'의 영예를 누렸다. 장르와 세대를 넘어선 진정한 대중스타로 지평을 끌어올렸다. 또한 디바인(Divine), 아이언 앤 와인(Iron & Wine), 머라이어 캐리 등 많은 가수들이 꾸준히 다시 부르며 곡의 가치를 증명했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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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her figure
(1987, <Faith>수록)

 

푸근한 온기를 뿜어내는 신시사이저의 운용이 어린 시절 작곡한 'A different corner'와 묘하게 닮아 있다. 그러나 더욱 자극적이고 도발적이다. 친근한 남동생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젖힌 그는 섹스 아이콘이란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해낸다. '너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나 '널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싶어' 등, 조지 마이클식 작업용 가사는 이성에게 강력한 성적호감을 자극한다.

 

시종일관 꿈틀대는 그의 섹시함에 소울 풍의 코러스를 덧대어 풍성함을 더했다. 코러스의 명작이기도 하다. 'Faith', 'One more try'와 마찬가지로 빌보드 싱글 차트의 정상에 오른 곡은 후대 뮤지션들에게 음악적 영감과 재료가 되어 코러스 파트는 엘엘 쿨 제이(LL Cool J)의 'Father'로, 매끈한 질감의 사운드는 데스티니 차일드(Destiny's Child)의 'Winter Paradise'로 재탄생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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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key
(1987, <Faith>수록)

 

음악은 경쾌하다. 그러나 화자의 사정은 반주와 사뭇 다르다. 제목으로 쓰였으며 가사에서 자주 나오는 원숭이는 마약을 가리킨다. 연인이 마약에 빠지면서 주인공은 그(녀)의 관심에서 밀려난 상태다. 주인공은 원숭이를 사랑하지 말고 자신을 선택하라며 하소연한다. 똥줄이 활활 탄다.

 

데뷔 앨범의 다섯 번째 싱글로 출시된 'Monkey'는 'Faith', 'Father figure', 'One more try'에 이어 앨범의 네 번째 빌보드 넘버원 싱글이 됐다. 댄스 팝과 록을 살며시 버무린 밝은 반주가 히트에 주효했다. 더불어 마약중독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연적으로 치환한 것도 곡을 대중에게 가볍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의 남다른 표현 감각을 실감하게 된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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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ing a fool
(1987, <Faith>수록)

 

그를 그저 그런 가벼운 팝 싱어로 치부해버리는 음악팬도 생각 외로 많다. 왬!으로 대표되는 이력 탓이다.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주변에 그와 같은 친구가 있다면 이 노래를 플레이해 들려주어라. 조지 마이클을 보다 성인 취향의 가수로 인정받게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곡이기 때문이다. <Faith>가 전체적올 팝-록적인 성향을 가진 앨범이었기에, 재즈적 접근의 이 노래는 앨범 내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이후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가 이 곡을 리메이크한 것도 노래에 녹아든 스탠다드적인 매력을 캐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왬! 시절의 댄스 팝부터 솔로 시절의 어덜트 컨템포러리 넘버까지, 커리어를 쌓으며 자연스레 다양한 영역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모두에 조지 마이클 만의 농밀함을 최대치로 담아냈다. 이 노래로 다시 한 번 느낀다. '그가 다재다능한 가수였음을, 무엇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진성' 아티스트였다'는 것을!!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야속한 이유다. (여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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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 '90
(1990,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수록)

 

곡 제목에 굳이 '90'으로 친절히 발표년도를 붙인 것은 왬! 시절의 곡 'Freedom'과 구별 짓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왬! 이미지와의 음악적 작별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왬! 때의 성공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잊고 앞으로 자신을 새 사람으로 인식해달라는 당부를 담았다. '자유'라는 곡목에 레코드사에 짓눌린 과거의 노예가수에서 이제부터는 음악적 자유를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흐른다.

 

일반적인 남녀 간 사랑 얘기를 떠나 상기한 창작적 자유를 향해 속에 담아둔 진심을 드러낸 일종의 자아독립선언이다. 차후의 커밍아웃을 시사(示唆)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도 한 단계 점프했다. 베이스 중심에 메시지를 강조하려 보컬에 겹겹이 쌓은 딜레이, 돌림 노래 같은 레이어, 후렴의 합창 등 그의 재기를 맘껏 드러내며 싱어송라이터는 물론 '프로듀서'로도 크기를 키웠다. 조지 마이클의 팬들이 가장 음악적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곡 가운데 하나.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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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ing for that day
(1990,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수록)

 

유례없는 흥행을 기록한 <Faith>를 뒤로하고 3년 만에 새로 내놓은 앨범은 전작과 비교하여 상반된 분위기가 멋쩍은 탓인지 흥행에서는 다소 부진했다. 호평 일색에서도 판매량이 따라주지 않으니 소속 레이블과의 트러블은 당연한 절차였다. 한창 정력적인 모습을 보여줬어야 할 시기에 벌어진 내부 갈등은 결국 기나긴 휴식의 전주이자 향후 활동 방향의 전환점이 됐다.

 

'Waiting for that day'의 공동 작곡가에 조지 마이클을 포함하여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함께했다. 군데군데 밴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롤링 스톤스)의 잔향은 유사한 코드 진행과 리듬 그리고 페이드 아웃으로 끝나는 부분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청량한 목소리 가운데 서린 개인 성향은 가사 속 은유를 통해 일찍이 곳곳에 존재했다. 편견 없이 듣길 바랐던 곡들, 기다렸던 그 날을 올해 6월의 끝자락에서 맞이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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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ing for time
(1990,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수록)

 

<Faith>이후 거대해진 관심에 부응해 그는 뮤지션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길 바랐다. 이런 목표 의식과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3년 만인 1990년 발표된 후속작은 더욱 진중한 분위기로 채색됐다. 'Praying for time'은 그가 야심 차게 내 놓은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의 첫 싱글이다. 조지 마이클은 이 곡에서 복잡미묘 혹은 이해타산 적인 인간 관계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설파했다.

 

나긋한 톤과 상반되게 그는 내적 선함과 달리 조건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형질, 여기에 미디어의 왜곡된 프레임으로 벌어진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절절히 노래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인류의 노력과 지켜보는 초조함을 넘어 "지금이라도 주위를 둘러보라"는 심플한 메시지를 우리 앞에 내놓았다. 올곧은 뚝심이 소속사와의 프로모션 문제로 방향성을 잃은 것이 아쉽다. 특히 연작으로 출시 예정이던 < Vol. 2 >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성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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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1991, <Duets> 수록, 엘튼 존 곡)

 

사실 이 곡을 세상에 선보인 이는 따로 있다. 바로 엘튼 존과 버니 토핀(Bernie Taupin), 환상적인 파트너십을 선보이며 1970년대 팝 신을 주름잡던 이들이다. 이 곡은 발매 당시인 1974년에도 미국 차트 2위를 석권하며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다시 급부상한건 순전 1991년 조지 마이클이란 이름을 통해서다. 당시 진행 중이던 라이브 투어 <Cover to Cover>에서 원작자 엘튼 존과 함께 불렀던 것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라이브 버전으로 발매된 것이다.

 

원곡을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한다. 기존의 음악적, 서정적 요소를 계승함과 동시에 자신의 매끈한 이미지를 녹여 존재감을 드러내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흡인력 있는 선율과 연인이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뱉는 “내게서 해가 지지 않게 해줘요”라는 애틋한 호소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맞물려 더욱 빠르게 스며든다. 음악적 우상인 엘튼 존을 향한 오마주가 아닌,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덧칠해 '또 다른 곡으로' 재탄생시킨 것 또한 천재성이다. (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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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 funky
(1992, <Red Hot Dance> 수록)

 

꽃미남 2인조 왬!의 해체 이후 섹스 심벌로서 성공적인 솔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그는 소니와 계약해 <Red Hot Dance>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Red Hot Blue>에 이어 에이즈 환자를 위한 두 번째 자선 앨범을 통해 발표된 신곡 중 'Too funky'는 싱글 커트 되어 차트 10위권에 올라 앨범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뉴 잭 스윙 비트에 맞춰 상대를 유혹하는 직설적인 가사는 그의 리비도를 여과 없이 표출한다. 관능적인 목소리로 “네 벗은 모습이 좋아”라고 속삭이며 여성 팬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조지 마이클이 커밍아웃을 하기 몇 년 전의 일.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건반은 상대에게 다가갈수록 점점 좁혀지는 거리처럼 긴장감을 부여하고, 신음과 앤 밴크로프트(Anne Bancroft)의 대사는 그를 만인의 연인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가질 수 없는 '오빠'이기에 더욱 가슴에 남는, 그만의 섹스어필.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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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to a child
(1996, <Older>수록)

 

공백의 터널을 지나 새로운 둥지에서 발매한 <Older>의 수록곡 중 첫 번째로 공개된 싱글. 보사노바풍의 리듬을 띤 이 곡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가슴 절절한 사연처럼 들린다. 허나 당시만 해도 누구를 위한 노래인지 그 의견이 분분했었다. 애인을 남자인 예수에 비유한 부분이 의문을 야기했다. 그러던 1998년, 언론을 통해 동성애자임이 밝혀졌고 모호하기만 하던 이야기의 조각이 맞춰지게 됐다.

 

대상은 바로 브라질 출신의 남성 패션디자이너 안젤모 펠레파(Anselmo Feleppa)였다. 조지 마이클과 연인 관계였던 그는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Jesus to a child'는 그를 위한 추모곡이었던 것. 가사에는 '예수가 아이에게 짓는 미소'같이 온화하고 따뜻한 존재였음이 묻어나고, 차분하게 퍼지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노랫말에 무게를 더해준다. 성가 곡은 아니되 분위기는 지극히 '스피리추얼'하다. 정확히 20년이 지나 그는 펠레파 뒤를 따라갔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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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tlove
(1996, <Older>수록)

 

왬!과 성공 적인 솔로 활동 뒤, 6년 만에 나온 <Older>의 대표 싱글곡이다. 그는 1992년부터 활동을 중단해가며 소니(Sony)와의 긴 전쟁에 돌입하게 되는데, 치열한 전투 끝에 세상에 나온 앨범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다소 밋밋한 결과물에 대중의 반응은 갈렸지만, 영국 잡지 <큐>는 “주류의 팝 음악에서 진실과 아름다움을 혼합시키는” 앨범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1996년은 뮤직비디오가 한창 빛을 발하던 시기였다.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올해의 관객상을 수상한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당시에는 충격적이었을 가상현실과 성을 그렸다. 침대와 특수 의자를 중심으로 사랑의 행위들이 탐닉적으로 등장한다. 'Sony'를 겨냥하듯 중간에 나오는 'Fony'라는 글자는 진흙탕 싸움 끝에 획득한 전리품이기도 하다. 십대 소녀나 대중이 아닌 자신을 향해 노래를 시작한 그는 더욱 솔직하고 당당하게 'Love'를 속삭인다. 천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랑과 섹스에 대한 집착과 몸부림. 그것이 조지 마이클의 삶, 그리고 노래의 전부였다. (김반야)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일렉트로닉 핫 듀오, 체인스모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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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20년 이상 차트를 장악하고 있는 힙합과 달리, EDM의 흥행사는 길지 않다. 물론 뉴웨이브와 신스 팝, 유로 댄스 등 일렉트로닉을 함유한 댄스 팝은 이전에도 상당한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러나 현시점의 EDM은 이들과 분명히 구별된다. DJ 문화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클럽 재생에 특화된 음악. 앞선 일렉트로닉 팝과 목적성부터 그 궤를 달리하는 EDM은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메인스트림에 떠올랐다. 데이비드 게타, 블랙 아이드 피스 등은 ‘밤의 문화’였던 EDM에 불을 붙인 주역이다.

 

그 이후는 잘 알려진 대로 EDM의 황금기다.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Swedish House Mafia), 하드웰(Hardwell), 알레소(Alesso) 등 실력과 개성을 갖춘 DJ들이 대거 등장, 시장의 부피를 빠르게 키웠다. 그중 스크릴렉스(Skrillex), 아비치(Avicii),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제드(Zedd) 등은 남다른 팝 감각으로 적극적인 차트 공략에 나서기도 했다. 클럽에서 즐기던 마니아의 음악이 대형 페스티벌과 차트의 강자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 남짓. 그간 각양의 DJ들이 서로 다른 강점으로 신을 풍족하게 채웠으나, 오늘의 주인공인 이들처럼 시작부터 대놓고 인기 차트를 노린 DJ는 많지 않다. 물론 그 뜻을 관철시켜 실제로 차트를 정복한 사례는 더욱 드물다. 중독성 강한 선율과 후렴을 앞세워 현재 일렉트로닉 신은 물론 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DJ 듀오,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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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류 태거트(왼쪽), 알렉스 폴(오른쪽)


2008년, 알렉스 폴(Alex Pall)과 레트 빅슬러(Rhett Bixler)의 의기투합으로 출발한 팀은 2012년이 되어서야 빅슬러의 탈퇴, 드류 태거트(Drew Taggart)의 합류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대다수의 신인 DJ가 그렇듯, 이들 역시 음원 공유 사이트 사운드클라우드에 작업물을 올리며 내실을 다졌다.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듀오의 운명은 「#Selfie」 한 곡으로 뒤바뀐다. 2013년 12월, 사운드클라우드에 무료로 공개했던 노래는 한 달여 만에 하우스 뮤지션 스티브 아오키(Steve Aoki)의 딤 막 레코즈(Dim Mak Records)를 통해 정식 발매된다. 언뜻 운 좋은 무명 뮤지션의 일화처럼 들리기도 하나, 「#Selfie」 는 히트를 위한 치밀한 계산으로 탄생한 곡이다.

 

보편적인 EDM의 구조를 따르는 노래에는 당시의 사회, 문화적인 트렌드가 다량 녹아있다. 아이폰을 위시한 스마트폰의 폭발적 수요와 인스타그램, 스냅챗 등 사진을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의 유행은 ‘셀피(셀카)’와 ‘해시태그’ 문화를 낳았다. 뿐만 아니라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투브 등 스마트폰 기반의 플랫폼은 유행 형성의 방식과 소요 시간을 변화시켰다. 매우 강한 전파력을 바탕으로 언어의 특수성과 관계없는 보편적, 직관적 콘텐츠가 전 세계에 빠르게 퍼지기 시작한 것. 2011년 엘엠에프에이오(LMFAO)와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2013년 바우어(Baauer)의 「Harlem shake」 등이 그 예다.

 

「#Selfie」 는 이러한 유행의 콤비네이션이었다. 곡에는 선율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단출한 비트와 전자음, 파티에 간 젊은 여성의 독백, ‘까까까’류 빌드업과 “셀카 한 장 찍자.”(Let me take a selfie)란 말과 함께 몰아치는 드롭이 전부다. 음악적으로는 멜버른 바운스의 전형인 셈. 그러나 노래는 인스타그램 필터를 고르는 모습 등 신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포착한 내레이션과 해시태그(#Letmetakeaselfie)를 통해 응모 받은 사진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최신 트렌드를 영리하게 조합했다. 제2의 「Harlem shake」 를 꿈꿨다던 이들의 바람대로, 「#Selfie」 는 각국 차트 10위권에 안착하며 또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트렌드에 편승한 전략, 얻어걸린 성공이란 비판도 팀의 순항을 막을 수 없었다. 「Kanye」 와 「Let you go」 두 장의 싱글 후 내놓은 「Roses」 가 또 한 번 차트를 강타했다. 눈에 띄는 것은 작법의 변화였다. 이전의 빠른 비트를 내려놓은 이들은 여성 보컬 로지스(Rozes)의 입을 빌려 잘 들리는 멜로디를 전개했다. 악기의 질감, 노래의 구성은 분명 최신 퓨처 베이스(Future bass)의 형색인 반면, 코드 진행은 1980년대의 신스 팝을 연상케 했다. 「#Selfie」 의 안일한 프로덕션과는 차원이 다른 고품질 일렉트로니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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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스믹스(Eurythmics)


여기서 잠시, 시계추를 1980년대로 돌려보자. 격동의 펑크(Punk), 포스트 펑크(Post punk) 시대 후 음악팬들을 맞이한 것은 뉴 웨이브(New wave)였다. 펑크의 이념은 견지하면서, 당시 상용화된 신시사이저를 음악의 주 재료로 활용한 ‘새로운 경향’은 시대정신과 접근법에 따라 뉴 로맨틱스, 신스 팝 등으로 나뉘었다. 디페시 모드(Depeche Mode), 아하(A-ha), 소프트 셀(Soft Cell), 유리스믹스(Eurythmics),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 듀란 듀란(Duran Duran), 휴먼 리그(Human League), 컬처 클럽(Culture Club)... 당대를 수놓은 팀들은 최신 악기였던 신시사이저를 활용, 댄서블한 음악을 주조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무엇보다 이들의 강점은 멜로디에 있었다. 그중 유리스믹스, 펫 샵 보이즈 등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활용한 댄스 팝, 보컬 EDM의 조상 격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체인스모커스는 바로 이들의 특성에 맞닿아있다. 2000년대 후반 EDM의 황금기를 견인한 DJ들이 운집한 군중을 위한 음악을 지향했다면, 이들은 방 안에서 혼자 듣는 ‘감상용 EDM’의 지평을 끌어올렸다는 의의를 가진다. 매끄러운 멜로디 전개와 선명한 후렴, 듣기 편한 음역대 안에서 이루어지는 중독적 댄스 브레이크가 듀오의 주 무기. 물론 이 지점에서 캘빈 해리스, 아비치 등 앞선 DJ들의 공로가 적지 않으나, 체인스모커스는 속칭 ‘쌈마이’(혹은 ‘뽕’), 전문 용어로 ‘팝’과 작금의 EDM을 근사하게 결합시킨 대표 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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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Roses」 와 첫 EP <Bouquet>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들은 이듬해 마침내 자신들의 해를 만들었다. 신인 여가수 데이야(Daya)와 함께한 「Don’t let me down」 이 빌보드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른 데 이어, 또 다른 신인 여가수 할시(Halsey)와의 합작 「Closer」 가 미국과 영국, 호주와 캐나다 등 10개국 이상에서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 특히 「Closer」 는 12주 연속 빌보드 정상을 지키며 대세 자리를 굳혔다. 거부할 수 없는 캐치한 진행과 좋은 멜로디, 부담 없지만 허술하지 않은 사운드로 빚어낸 승리였다. 비록 「Closer」 가 더 프레이(The Fray)의 「Over my head (Cable car)」를 표절한 것으로 밝혀져 커리어의 오점이 되었지만, 노래가 팀을 인기 대열에 확실히 올려놓은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이들 앞엔 여전히 청신호가 반짝인다. 후보에만 올라도 자랑거리가 된다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신인상, 베스트 팝/듀오 퍼포먼스(「Closer」), 베스트 댄스 레코딩(「Don’t let me down」) 등 3개 부문 후보에 팀의 이름을 올렸다. 연타석 히트를 노린 새 싱글 「Paris」 는 발매 직후 실시간 판매 차트 정상에 등극했고,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 대부분에서 주간 순위 톱 10에 들었다. 이번에도 밀도 높은 비트 구성과 감수성을 자극하는 선율이 핵심이다. 전작의 성공 패턴을 무난하게 이어가는 EDM이지만, 아직까지 작법의 파괴력은 유효하다.

 

「#Selfie」 로 얕잡아 봤던 체인스모커스가 2년도 채 되기 전에 ‘냈다 하면 1위’가 되었다. 트렌드를 읽어내는 눈과 함께 음악적 내실 다지기에도 공을 들인 덕이다. 유독 일렉트로닉 계열에는 ‘명품’ 남성 듀오가 많았다. 「Video killed a radio star」 의 버글스(The Buggles)부터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 펫 샵 보이즈, 다프트 펑크(Daft Punk), 저스티스(Jus†ice) 등. 현재도 허츠(Hurts), 디스클로저(Disclosure), 나이프 파티(The Knife Party) 등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EDM을 좋아하는 뉴욕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이들은, 어느새 일렉트로닉 듀오 계보에 도전하는 ‘핫 루키’로 성장했다. 과연 그 전통에 체인스모커스가 족적을 남길 수 있을까. 첫 정규 앨범 발매를 예고한 팀의 앞날에 대중의 관심이 쏠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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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재(minjaej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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