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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심초, 차분한 여운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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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새 앨범 발매를 앞두고 유시형과 유의형의 친형제 듀오 유심초를 만났다. 둘은 학생 시절부터 백영규, 이춘근 등과 함께 고향 부평에 터를 잡고 노래 활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부평을 외국 문물을 일찍이 접하고 낭만적이고 평화로운 '문화지대'로 기억했다. 1980년대 초중반 유심초의 본격 활동은 비록 짧았지만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사랑이여'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라는 스매시 '원투 펀치'로 당대 음악 팬들에게 강렬한 추억을 남겼다.

지금 들어도 눈물 날 것 같은 소슬하면서도 아린 감성 그리고 시적(詩的)인 가사는 어떤 음악으로부터도 찾을 수 없을 만큼 느낌이 각별했다. '세련됐다', '클래시컬하다', '딴 음악하고는 달랐다'는 칭송이 잇따랐다. 상기한 두 곡 외에도 그 이전 '너와의 석별' '이것 참 야단났네' 그리고 그 이후 '사랑하는 그대에게'도 잊을 수 없는 유심초의 골든 레퍼토리들이다. 오래 활동하지 않았어도 히트넘버가 말해주듯 굵직한 궤적을 남긴 셈이다.

두 형제는 2000년대 통기타 붐에 의해 소환되어 다시 한번 분주한 시절을 재현했다. 한창 뛰던 젊은 시절 대중가수로 올인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방황을 뒤로 넘기고 지금은 음악의 진정한 행복과 즐거움을 누린다고 털어놓았다. 떠들썩한 매체 활동보다는 '우리는 그냥 조용히 노래만 남기자는 생각'으로 임한다고도 했다. 둘은 10월의 어느 멋진 날, 경기 서현역 부근 한 카페에서 유심초의 과거 현재 미래 이야기로 신나게 내달렸다.


 

데뷔 당시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유시형: 데뷔는 '너와의 석별'과 '너'라는 곡이었다. 이종용이 불러서 히트했지만 사실 우리가 오리지널이다. 원래 이종용이 자기가 앞면, 우리가 뒷면 이런 식으로 앨범을 같이 내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내가 군대 마지막 휴가 때 녹음을 하고 다시 들어갔는데, 이종용이 욕심이 나섰는지 내가 녹음한 반주에 그대로 자기 목소리를 입혀 타이틀로 걸어 발매했다. 제대 4개월 남겨 놓은 상태에서 그 노래가 방송에서 막 터져 나오는데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그게 1975년 일이다.

데뷔 시기에 백영규 선생님과 음악 인연이 있지요?

유시형: 백영규는 우리가 정식 앨범 나오기 전 아마추어 시절에 외대 다니면서 같이 음악 동아리 활동을 했었다. 당시 멤버는 학생 신분으로 나, 백영규, 숙대생 이춘근이었고 전석환 씨가 진행한 KBS 라디오 공개 방송 < 삼천만의 합창 > 등 라디오 프로에 나가곤 했었다. 그런데 나랑 백영규가 군대 가고 팀이 깨지니 의형이랑 이춘근이 혼성 듀엣으로 활동을 이어나간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날 이대 메이퀸이 스토커에게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지면서 숙대생인 이춘근이 더 이상 활동을 할 수 없게 됐다.

'물레방아'는 어떻게 생긴 팀인지 알려주세요.

유시형: 1975년 제가 제대할 무렵에 이종용의 권유로 공동 앨범을 발매하게 돼서 동생이랑 유심초가 탄생했고, 백영규가 저보다 늦게 군 제대를 하고 이춘근도 졸업을 하고 활동이 가능해지니 둘이 만나서 결성한 팀이 물레방아다. 그렇게 나온 데뷔 노래가 '순이 생각'.

1978년 나온 곡 '이것 참 야단났네'는 인상적이었습니다. 킹스턴 트리오(The Kingston Trio)의 'Greenback dollar'를 가사를 완전히 색다르게 번안했는데, 누가 개사한 건가요?

유의형: 내가 했는데 이름은 형으로 올라가 있을 거다. 신고하는 사람이 착각해서 유시형으로 올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사람들은 형 유시형, 동생 유의형을 헷갈려한다고 말했다)

1975년 '너와의 석별'로 준수하게 데뷔를 했지만 이름을 알리는 수준이었고 결정타는 1980년 '사랑이여'였다. '너와의 석별'과 '사랑이여' 사이에 공백이 꽤 긴데요…

유의형:'사랑한다 말해주세요'라는 노래가 중간에 있다. 1976년도 발표했는데, 그것도 꽤 알려진 편이다. 그 노래가 한창 방송에서 반응을 얻을 즈음에 내가 군대를 갔다. 그리고 1978년 제대하고 발표한 게 상기한 번안곡 '이것 참 야단났네'다. 제대한 후에는 또 집에서 음악을 반대해서 1~2년 동안 못했다.

집안에서는 왜 반대를 했나요?

유의형: 왜냐하면 아버지는 “전공을 살리지 왜 가수를 하려고 하느냐”는 거였다. 사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대학 졸업하기 전까지만 한다고 말했다.

유시형: 부모님이 학생 시절 아마추어로서 음악을 하는 건 인정을 했다.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하니까 아버지뿐 아니라 집안의 형들도 말리고 나섰다. 그런데 그 무렵에 최용식이란 친구가 우리 집에 찾아왔다. '사랑이여'를 포함해 노래 15~20곡 정도를 만들어서 왔었다.



최용식 작곡가는 누군가요?

유시형: 아마추어 작곡가였다. 그 친구가 군대에 있을 때 '너와의 석별'을 듣고는 그게 너무 마음에 와닿아서 꼭 유심초에게 곡을 주고 싶었다고 그러면서 왔는데, 알고 보니 중학교 동문이었다. 그 노래들을 받아놓고 처음에는 한 2~3년 정도를 묵어놨었다. 그러다가 1980년도에 다시 앨범을 내고 싶어 곡 정리를 하는데 '사랑이여'가 굉장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노래의 곡과 가사를 약간 수정해서 발표하게 되었다.

같은 앨범에 수록된 노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같은 작곡가인가요?

유시형:그건 다른 친구가 썼다. 앨범에서 아마 최용식 곡은 '사랑이여' 하나일 거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이세문이라고 이춘근 동생인데 그 친구가 썼다.

집에서 반대가 있었다고 했는데 어떻게 음악을 다시 하게 된 건가요?

유의형: 1980년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실 무렵 아버지께서 형이랑 내 손을 잡고 '그래, 너희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씀하셨다. 돌아가시기 전 마침내 허락을 해주신 거다. 그 말을 듣고 우리가 '사랑이여'랑 다른 곡들 작업을 시작했다.

한참 '사랑이여'가 매체를 화려하게 수놓고 있을 때 누군가가 “유심초 쟤들은 배운 애들이라서 음악도 왠지 모르게 지적(知的)”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그는 유심초의 학력을 알고 있었나 봅니다. (형 유시형은 외대 말레이어과와 국제통상학과를 전공했고 동생 유의형은 한양대 공대를 다녔다. 둘 모두 명문대 출신이다)

유의형: 나는 원래 의사가 되려고 했었다. 그때 한양대가 의대 건물을 산에 막 짓던 무렵이라 공대도 같이 지원을 했는데 그게 붙었다. 그런데 나는 의대를 가고 싶어서 재수를 하려 했지만 위에 형들이 반대했다. 재수까지 하고 의대 다니면 7년이라고. 결국 형 덕분에 유심초로 잘 되긴 했지만 의대를 못 간 게 '약간' 한으로 남아 있다. (웃음) 사실 내가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는 고교 동창들이 그랬다. 쟤가 왜 노래를 하는 거야, 뭐가 부족해 가수 짓을 하냐고. 그 시절은 연예인을 딴따라로 비하하고 비아냥대던 시절이었다.

유시형: 우리는 학교 다니면서 주로 방송 위주로 활동을 했지만 그 당시에 다른 많은 가수들은 생맥줏집이나 음악 감상실 같은 데서 무명으로 활동을 하며 경력을 쌓았다. 그런데 우리는 대학생 프로그램과 음반사에 연결돼서 앨범이 나오고 운 좋게 반응을 얻었던 터라 어떻게 보면 당대 연예계의 '쓴맛'은 별로 못 봤던 게 사실이다.

1981년을 장식한 '사랑이여'로 모든 영예를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당시 기분을 듣고 싶습니다.

유시형: 우리가 '사랑이여'로 방송국에서 대상 타던 순간, 옆에 매니저들이 수상 무대 올라가서 울라고 그랬다. 그런데 사실 진짜로 울고 싶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우리가 성공하는 걸 못 보고 돌아가셨으니까. 걱정도 많이 하고 그러셨는데. 그래서 정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는데 우리는 그게 쇼하는 것 같아서 참았다. 그냥 의연하게 수상 소감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쇼맨십도 필요한 거 아니었나 싶고. (웃음)



세월이 조금 지나서 1985년에 '사랑하는 그대에게'가 반응을 얻었다. 이때도 전처럼 시차가 존재했는데 이때는 왜 공백기가 생겼나요?

유시형: '사랑이여'와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가 터지고 나서 또 '나는 홀로 있어도'라는 곡도 조금 떴다. 그런데 방송국에서 우리를 부르면 항상 '사랑이여'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만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른 노래를 부를 틈이 없었다. 새 곡을 내놔도 거기에 미치지를 못하니까. 그때는 순진해서 방송국에서 요구하는 대로만 했다. 다른 곡들은 고개를 못 든 셈이다.

유의형:사실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사랑이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 버금가는 곡을 내놔야겠다는 압박을 많이 받았다. 세월이 조금 흐르다가 '사랑하는 그대에게'를 만났다. 이 정도면 되겠다 싶어서 내놨던 거다.

그런데 그 뒤로는 왜 갑자기 사라지신 건가요?

유시형: '사랑하는 그대에게'가 나오고 방송가에서 이건 제2의 '사랑이여'다 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심리적 압박감이 심했다. 아마추어로서 할 때는 즐기는 맛에 했으니 부담이 없었는데, 프로가 되고 탑 순위에 오르니 스스로 굉장히 부족한 걸 느꼈다. 가수로서, 연예인으로서 이걸 잘 하고 있는 건가. 그런 갈등이 생기면서 1987년인가 활동중단을 선언했다.

유의형:그리고 사실 형이나 나나 성격이 연예계랑 잘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게다가 형제이다 보니 형은 나보다 어깨가 더 무거웠을 거다. 동생까지 끌고 가는 거니깐. 나는 형한테 기대면 되지만, 주위에서 보기에는 형이 동생까지 같이 데리고 다니면서 노래하는 거니 형이 더 부담이 컸을 거다.

그 뒤의 행보와 다시 돌아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유시형: 나는 1990년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13년 동안 거기서 살았고 동생은 한국에서 다른 일을 하면서 지냈다. 그러다가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 7080과 통기타 붐이 일었다. 미사리부터 해서 전국적인 붐이었다. 그런 열풍이 일어나니 많은 통기타 가수들이 무대에 나갔다. 동생이 혼자 무대에 나가서 '사랑하는 그대에게'를 불렀다. '홀로 가는 길'로 활동한 가수이기도 한 남화용이 만든 이 노래는 '밑에서' 꽤 알려져서 우리가 없을 때도 김세환, 유익종, 박강성 같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해 부르곤 했다. 동생이 이 노래를 부르면서 리퀘스트가 엄청 들어왔다고 한다. 유심초 오리지널 멤버 뭉쳐달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와 2003년에 2년 계약을 맺고 활동을 재개한 것이다.

유심초 음악을 정의하신다면..

유시형: 의미를 한마디로 말하지는 못해도 음악의 특징을 이야기하자면, 일단 멜로디는 서정적이고 가사는 시적이는 말을 많이 듣는다. 음악에 그런 게 있지 않나. 빠른 음악은 사람을 흥분시키지만, 사람을 차분하게 만드는 음악도 있다. 우리 노래는 듣는 순간 큰 박수는 안 나와도 끝나고 나갈 때는 어떤 여운을 남겨주는 그런 음악이 아닐까 싶다.



솔직히 대중에게 임팩트는 있었지만 활동 기간은 짧았다.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요?

유의형:그때는 스스로 방황을 많이 했다. 그래서 차라리 아예 대학을 안 다니고 다운타운에서 노래를 했으면 죽기 살기로 했을 거다. 그러면 보다 더 많은 곡도 남겼을 거고. 그리고 형이나 나나 우리가 노래를 마음먹고 쓰면 굉장히 많이 썼을 거다. 그런데 뭔가 속으로는 흔들렸다. '내가 대중가수를 진짜로 해?'. 그런 정체성 혼란으로 활동을 빨리 접었고 돌이켜 보면 아쉬운 일이다.

유시형: 2003년에 한국에 들어온 후에는 방송도 많이 나간다. 젊은 시절에는 미래불안으로 동생이 말한 그런 스트레스도 있었지만 이제는 무대에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지금에서는 그게 너무 행복하다. 어디 공연에 가서 '사랑이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사랑하는 그대에게'를 부르면 팬들이 앙코르를 외쳐주고. 지금 이 나이에 이런 행복을 어떻게 누리나 싶다.

유심초는 전성기 시절에 텔레비전 출연할 때 항상 양복을 입고 나오셨는데.. 어른들한테 이미지가 좋게 작용하지 않았을까요?

유의형: 이미지 이야기를 하니 말인데 그동안 사생활을 다루는 많은 대담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왔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출연하는 걸 거절했다. 편집하는 사람이나 제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뭔가 시청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려고 하는 것 같다. 또 반전이 있어야 재미있지 않나. 우리는 그냥 조용히 노래만 남기자는 생각이다.

유시형: 많은 팬들이 우리에 대해 좋은 이미지, 어떤 신비감이나 꿈같은 걸 가지고 있다. 나는 팬들이 가지고 있는 우리에 대한 그런 이미지를 지켜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늙으면서 이것저것 변하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최소한 방송에 나가서 일일이 뭐 하다가 망했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건 자기 팬들에 대한 의무를 저버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부평이 고향이고 음악 활동도 부평에서 시작하셨는데 부평을 어떻게 기억하시는지요?

유시형:내가 어릴 적에는 미군 에스캄(ASCOM)이 있었다. 거기 조그만 동산에 올라가 보면 큰 잔디밭에서 미국 사람들이 야구를 하는 것도 보고 그랬다. 또 부평이 미군이 주둔하다 보니 외국 문물이 빨리 들어온다. 그래서 옛날에는 트위스트 김 같은 분들이 와서 춤도 배워갔다는 얘기도 들었다. 여기가 그런 외국 문화가 바깥으로 나가는 큰 창구였던 셈이다. 낭만도 있었고, 평화롭고…

에스캄이 두 분의 음악 활동에 어떠한 영향이 있었다고 보시는지.

유시형: 그렇다. 왜냐하면 음악다방 같은 데 가면 거기서 흘러나오는 오리지널 앨범들로 팝송도 소개가 됐고. 또 선배들한테서도 여러 음악 정보나 우리가 접할 수 없는 음반들도 접했다. 외국 판 구하기 힘든데 형들 방에 가면 팝 샹송 칸초네 앨범들로 가득했다. 그때 'La novia'라는 노래를 막 한글로 적으면서 듣곤 했는데, 지금도 그게 제일 좋아하는 노래다.

유의형: 미군 부대가 있다 보니 원판 같은 게 나온다. 그 영향에 무엇보다 음악다방에 가서 팝송 듣는 게 좋았다. '키 다방' 그리고 신신 카바레 건물 1층에 있던 '신신 다방'은 아주 유명했다.

부평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했는데 유심초로 유명해지고도 부평에 사셨나요?

유시형:'사랑이여'로 크게 성공했을 때도 계속 부평에 살면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부평에 초등학교 출신들 친목회도 많이 했다.

출신 학교를 알려주신다면.

유시형: 부평동 초등학교에 다녔고 중학교는 동산 중학교, 고등학교는 동산 고등학교를 나왔다. 동산 중고 출신이다.

유의형: 나도 똑같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한 백영규를 비롯해 '너'를 작곡한 서새건, 작사한 심진구도 다 동산 중학교 고등학교 출신이다.

유심초 노래 베스트와 개인적으로 덜 알려져서 아쉬운 노래를 꼽자면.

유시형: 일단 베스트는 '사랑이여',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나는 홀로 있어도', '사랑하는 그대에게', '너와의 석별', 그리고 '이것 참 야단났네'. 잘 알려진 곡들이니까 아무래도 그게 베스트가 아닐까. 그리고 덜 알려져서 아쉬운 곡은 '그님만을'. (유시형 작사/작곡)

앨범을 한 번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첫 음반은 분명 '너와의 석별'이라 봐야죠?

유시형: 그렇다. 그다음에 '이것 참 야단났네'가 나왔고, '사랑한다 말해주세요'도 있었다. 그리고 1980년에 '사랑이여'가 수록된 앨범을 발매했는데 이게 우리가 제대로 된 음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실상의 1집이다.

유의형: 왜 우리가 앨범다운 앨범으로 '사랑이여'를 꼽는 것이냐면 그전에는 제작자가 따로 있었다. 녹음, 편곡이 다 그 사람들에 의해 이뤄졌는데, '사랑이여'는 우리가 직접 제작을 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편곡에 관여하게 되고, 편곡자에게 여러 요구도 하고 그래서 제대로 우리의 음악을 표현할 수 있었다.

유시형: 정리하자면 '너와의 석별'로 데뷔를 했고, '이것 참 야단났네', '사랑한다 말해주세요'가 중간에 있고 그다음에 '사랑이여'가 제대로 된 앨범으로 사실상의 1집이다. 거기에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함께 있다. 그리고 '나는 홀로 있어도'가 타이틀 곡으로 나온 것이 2집이다. 그다음 3집이 '사랑하는 그대에게'고. 모처럼 음반 얘기를 하니까 과거가 살아 돌아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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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계의 미국, 아시안 아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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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흑인들이 겪는 차별에 대한 논의에서 흔히 마주할 수 있는 반응이 '동양인도 차별을 겪는다'는 말이다. 그 자체로는 틀린 말이 아니지만,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는 않다는 취지로 미국에 사는 동양인들 사이에서는 'Asians For Black Lives' 운동이 전개되기도 했다. 반대로 얘기하면 그런 운동이 벌어져야 할 만큼 흑인들의 입장에 공감하지 않는 동양인들도 많았다는 뜻이다. 이 미묘한 갈등을 이해하는 실마리는 동양계 뮤지션들이 미국에서 차지해온 입지에서 찾을 수 있다.

흑인이나 동양인이나 유색인종으로 미국 사회에서 배제된다는 사실은 같지만 그 방식은 다르다. 동양인은 흑인들처럼 제도적인 폭력으로 목숨을 위협받기보다는 아예 담론에서 제외된다. 그리고 오래도록 만인의 사랑을 받아온 흑인들의 문화와는 다르게 동양 문화는 특이한 것, 타자의 것으로 여겨지는 경향이 더 강하다. 대중문화 속에서 동양인의 얼굴을 찾는 것 자체가 어렵고, 그나마 관심을 받는 경우에도 '모범 소수민족'(Model Minority)의 전형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명예 백인과 광대의 이분법은 동양인을 옥죈다. 음악으로 예를 들어보자. 요요마(Yo-Yo Ma)와 싸이 모두 미국에서 사랑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전자는 별다른 논란을 일으키지 않고 모범생처럼 묵묵히 노력해 주류사회에 성공적으로 편입한 신화로 소비되고, 후자는 '모범생'을 온몸으로 거부하고 광대의 역할을 자처한 것처럼 비친다. '강남스타일' 속 물질만능주의를 풍자하는 뉘앙스는 지워진 채 '광대'의 이미지만 남아 세계로 퍼져나갔다.



미국에 살고있는 동양인들의 음악은 이분법을 벗어나 온전한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한 여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그 방식은 직설보다는 행동이다. 자신을 받아들여달라고 말로 항의하는 대신,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공론장으로 밀어 넣는다. 대표적으로 2018년 <Be The Cowboy>로 평단의 화제를 받은 미츠키(Mitski)가 있다. 서양에서 그려놓은 순종적인 동양인 여성의 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시니컬한 표정으로 강렬한 록 사운드를 앞세워 일본어로 '가슴이 터질 것 같다'며 노래한다. 그 누구도 이 모습을 보고 모범생이나 광대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로 활동하는 미셸 조너(Michelle Zauner)의 노래 역시 동일 선상에 있다. 그의 음악은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아래서 자란 특수한 가족관계에서 비롯되는 감정을 노래한다. 동양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버리는 대신, 다른 문화권 사람들이 알 수 없는 특수한 경험에서 보편성을 얻어내는 과정이다. 한국말을 잘하지 못하는 그가 한국인 어머니와 함께 동양 식료품 마트에 가서 느낀 복잡한 심경은 잡지 뉴요커에 수필 형태로 실리며 수많은 경계인(境界人)들의 공감을 샀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미국 내의 동양인으로서 갖게 되는 타자성을 '특이한 매력'으로 치환해 무기로 삼는 뮤지션들도 있다. 인디밴드 슈퍼올가니즘(Superorganism)이 한국어로 '무엇인가 정신에 집어넣으세요'라고 노래하거나, 뉴욕의 디제이 예지(Yaeji)가 메이크업 튜토리얼 스타일의 뮤직비디오에서 창피했던 기억을 '내후년 옆에 도포'하라고 읊조리는 모습은 한국어를 못하는 사람들은 물론 모국어가 한국어인 사람들이 보기에도 어딘가 조금 어긋나 있다. 이들이 공략하는 것은 공감보다는 참신함이다. 주류사회에게 존재를 긍정 받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다.

미국 내 '동양인'의 입지에 관해서 이야기한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언급된 뮤지션은 모두 동북아시아계 사람들이다. 아시아를 동북아시아로 국한해서 인식하는 기조는 미국 내 '아시안'에 대한 담론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작은 혁명을 일으킨 것이 88라이징(88Rising)이다. 동양의 것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이 크루의 얼굴은 인도네시아 출신의 래퍼 리치 브라이언(Rich Brian)이다. 아시아 문화 전체를 아우르겠다는 포부는 필연적으로 그 실현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구현한, 너무 진지하거나 교조적이지 않으면서도 멋진 아시안의 이미지는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아시안 아메리카'의 새로운 문화적 구심점이 됐다.



아시안 아메리카는 그 존재를 긍정 받기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 고향에서는 '교포' 취급을 받고, 미국에서도 타자의 입장인 제3문화의 아이(Third Culture Kid)로 여겨지지만, 있는 그대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한 명이라도 더 목소리를 내고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언뜻 부당하게 감옥으로 몰리고 죽임을 당하는 흑인들의 싸움과는 결이 달라 보이고, 이 때문에 동양계 뮤지션의 음악과 흑인 뮤지션의 음악이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코리아타운의 시장'으로 불리는 래퍼 덤파운데드(Dumbfoundead)가 괜히 앤더슨 팩의 'Lockdown' 뮤직비디오에 출연하며 연대한 게 아니다. 한 소수자 집단이 살아남지 못하는 사회는 다른 소수자 집단들에게도 가혹한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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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음악이 가진, 스페인어 이상의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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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기 전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지만, 연초에 2020년을 정복할 듯 포문을 열었던 건 라틴 음악이었다. 2월 마이애미에서 개최된 슈퍼볼 하프타임 쇼는 1990년대 라틴 팝 열풍의 주역 샤키라와 제니퍼 로페즈가 헤드라인 하며 '라틴 프라이드'를 내세웠다. 함께 등장한 가수 제이 발빈(J Balvin)과 래퍼 배드 버니(Bad bunny)역시 201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레게톤의 선풍적인 유행을 이끈 인물들이다. 라틴계는 미국 유색인종 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라틴 음악은 이미 한국의 대중음악에도 깊숙이 침투해 우리에게도 익숙하다. 그럴수록 그 맥락과 저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라틴 아메리카는 미국의 시작부터 함께했다. 남서부 영토의 대부분은 멕시코에게서 갈취했고, 샤키라의 출생지 푸에르토리코는 지금까지도 미국의 식민지로 남아있다. 애초에 미국에서 영어 다음으로 사용자가 많은 언어가 스페인어다. 미국의 인종주의와 자본주의는 수많은 중남미 출신 이민자들을 사회의 최하층으로 밀어 넣어,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아무도 하기 싫어하는 3D업종을 맡겼다. 이들 없이는 사회가 돌아가지 않지만 그렇다고 두 팔 벌려 환영하지는 않는 이중성이다.



라틴 음악은 이런 태도와는 별개로 대중에게 사랑받아왔다. 쿠바 이민자 출신 글로리아에스테판 &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Gloria Estefan & Miami Sound Machine)이 'Conga'로 빌보드 싱글차트 10위에 올랐던 1986년은 미국이 공산국가 쿠바와 대립하던 냉전 시절이다. 리키 마틴과 산타나가 인기를 끌고, 라틴 그래미까지 따로 개최되기 시작한 2000년대 초반에는 미 정부가 멕시코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벌였다. 카밀라 카베요의 'Havana'나,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양키의 'Despacito'가 대히트를 친 2010년대 후반은 트럼프가 당선돼 이민자 혐오를 부추기고 그 일환으로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라틴'이라는 단어의 모호함은 이 애증과 뿌리를 공유한다. 막상 '라틴 음악' 하면 스페인어와 더불어 어딘지 모르게 고혹적이고 이국적인 분위기를 연상하게 되지만, 그 이상으로 일관적인 설명을 덧붙이기 힘들다. '라틴'이 아우르는 지역과 역사가 너무 넓기 때문이다. '라틴 음악'은 악기나 곡의 구성 같은 음악적 특성 대신 창작 주체의 국적이나 가사의 언어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케이팝'만큼이나 두리뭉실한 단어다.

스패니시 기타를 앞세운 정열적인 발라드도, 멕시코의 민요에 현악기와 브라스가 추가된 흥겨운 마리아치도, 피아노를 타악기 쓰듯 사용하는 빠른 리듬의 아프로-라틴 재즈도, 강렬한 비트가 특징인 푸에르토리코의 레게톤도 모두 '라틴'이다. 이 음악들이 고리타분한 주류에 대한 '대안 음악'으로서 받게 된 사랑의 이면에는 디테일들을 뭉뚱그려 '이국의 것'으로 취급하는 일반화의 시선이 있다.



같은 맥락에서 누가, 혹은 무엇이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도 뜨겁다. 중남미, 혹은 이베리아반도 출신이라고 해서 한가지 인종의 사람들이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의 식민활동으로 끌려온 흑인들은 물론이고, 19세기 무렵부터는 많은 아시아 출신 막노동꾼들도 정착해 '쿨리'(coolie)로 경멸받으며 살기 시작했으니, 비교적 피부가 하얀 편인 제니퍼 로페즈나 샤키라가 아무리 '라틴 프라이드'를 외쳐봤자 얼마나 대표성이 있느냐는 논리다.

게다가 흑인 차별 반대를 위해 경기 시작 전 국가 제창 시간에 무릎을 꿇으며 시위했던 선수 콜린 케이퍼닉(Colin Kaepernick)을 리그에서 퇴출하다시피 한 NFL의 행태 때문에,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출연해 이들의 수익 창출을 도운 샤키라와 제니퍼 로페즈는 아프로-라티노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이렇듯 '라틴'이 뭔지 한마디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라틴계 사람들이 미국에 살면서 공유하는 경험이나 정서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 중 자신의 뿌리를 사랑하지만 그곳의 붕괴하는 정치, 사회, 또는 경제를 보며 갖게 되는 감정이나, 미국 경제의 최하층으로 편입된 이민자의 입장을 간접적으로나마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음악에서 마냥 정열과 흥, '이국적인 분위기'만 읽어내기엔 그 이면에 너무 많은 맥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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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IDE: 팝 음악 속 ‘퀴어 코드’의 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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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음악은 현재 대중음악의 주요 문법이다. 딥하우스나 디스코처럼 클럽 문화에서 탄생한 비트들에 기반한 음악이 인기를 끄는 흐름은, 비주류의 문화가 주류사회로 흘러나오는 흐름이기도 하다. 혐오를 피해 언더그라운드에서 모일 수밖에 없었던 퀴어 커뮤니티는 이 맥락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사회정의(social justice)가 갈수록 큰 화두로 작용하면서 많은 퀴어 뮤지션들의 목소리가 주목받고 있고, '퀴어 코드'는 이제 유행의 한 요소로 작용하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이 현상들은 어느 날 갑자기 발현된 것이 아니다. 퀴어 커뮤니티의 문화는 알게 모르게 오랫동안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퀴어 문화의 요소를 읽어내려면 그 기저에 깔린 정서를 알아야 한다. 그 출발점은 미스핏(misfit)의 입장이다. 성 소수자는 성 정체성이나 역할에 대한 사회의 통념 속에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이런 '부적응자'들, 특히 성 소수자들을 향해서는 노골적으로 혐오와 폭력을 휘두른다. 그렇기에 많은 성 소수자들은 생존을 위해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고, 다른 자아를 연기한다. 일상이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다. 자아를 억누르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열망은 퀴어 예술의 중요한 테마다.

하우스와 디스코에 맞춰 보그를 추며 잠시나마 자신을 내려놓던 퀴어 커뮤니티의 문화는 주류사회의 외면 속에서 피어났지만, 그 정서는 대중음악 깊숙이 침투해있다. 아바의 'Dancing queen'이나 글로리아 게이너의 'I will survive' 등 1970년대 디스코곡들로 대표되는 퀴어 찬가(anthem)의 계보는 마돈나의 'Vogue', 레이디 가가의 'Born this way'를 거쳐 두아 리파의 'Physical'까지 내려온다. 모두 화려한 조명과 반짝이는 의상이 어울리는, '글램'(glam)이 있는 음악이다. 이런 강렬한 비주얼은 오직 클럽에서만 '정상' 취급받는다는 점에서 퀴어 커뮤니티와 입장을 같이한다.



맥락이나 정서와 별개로, 퀴어 문화를 사용하는 것 자체가 '힙'해진 세상이 왔다. 퀴어 커뮤니티가 주류 담론에서 낼 수 있는 목소리가 커지기도 했고, 언더그라운드의 문화는 언제나 주류의 문화보다 한발 앞서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 소수자의 문화를 전유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이 문화를 '제대로' 대표하고 전파하는 게 뭔지에 대한 논란도 보다 크게 불거진다.

케이티 페리의 2008년 싱글 'I kissed a girl'을 보자. 빌보드에서 7주 연속 1위 했던 이 곡은 얼핏 보면 동성애를 지지하는 노래 같지만, 막상 성 소수자들은 자신을 대상화하는 시선이라며 반발했다. 케이티 페리 본인이 퀴어 커뮤니티에 기여한 맥락이 없는데 갑자기 이런 노래를 냈고, 가사 내용에서도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행보나 발언에 비추어 봤을 때 이 노래는 그저 '여성끼리 키스하면 섹시하다'라는 일차원적인 사고로 읽힌다는 것이다. 실제로 케이티 페리는 곡이 나온 10년 뒤, 가사 내용이 부적절했음을 인정하고 곡을 지금 냈다면 '일부 수정'했을 것이라고 인터뷰했다. 실제로 곡을 다시 내지는 않았다.



반면 공개적으로 커밍아웃했고, 성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음악에 꾸준하게 담아온 프랭크 오션도 문화 전유에 대한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는 1980년대의 HIV 패닉을 화두로 삼아, '만일 퀴어 커뮤니티와 그 문화가 사회적으로 내몰리지 않았다면'을 상상하는 클럽 파티 프렙(PrEP )을 2019년 개최했다. 그러나 소수의 인원에게만 초대장이 주어졌고, 그 구성원들도 대다수가 백인에 성 소수자도 아니었다고 전해져 파티는 실패로 평가된다. 힙스터 무리에 매몰되어 막상 성 소수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는 '안전한 공간'(safe space)은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저 경제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성 소수자의 문화를 다루는 퀴어 베이팅(queer-baiting)과, 실제로 커뮤니티를 지지하기 위한 협력자(ally)로서의 노력은 한 끗 차이다. 이를 구분해낼 때 중요한 것은 무대의 중심을 어떤 캐릭터와 서사가 차지하고 있는지다. 정답은 없고 오답은 많은 영역이지만, 소수자들이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사회 전반으로 확대하려면 필요한 시행착오다. '퀴어 코드' 역시 한순간의 유행이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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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 놀이 유행과 걱정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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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연예계에 '부캐' 만들기 바람이 크게 일고 있다. '부(副) 캐릭터'의 준말인 부캐는 본래 사용하던 캐릭터 대신 새로 만든 캐릭터를 일컫는 게임 용어다. 이에 착안해 여러 연예인이 실제와는 다른 이름, 성격, 이력을 부여해 자신을 새롭게 가공하는 활동을 벌이는 중이다. 특히 가수가 아닌 이들이 부캐를 설정해 노래를 내는 사례가 증가하는 추세다. 부캐 놀이의 확산 덕에 가요계는 일단 양적으로 더욱 풍성해질 듯하다.

작금의 흐름을 조성한 핵심 인물은 단연 유재석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가 출연하는 MBC 예능 <놀면 뭐하니?>가 부캐 유행을 일으켰다. 이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드러머 유고스타, 트로트 가수 유산슬, 라면 요리사 유라섹, 하프 연주자 유르페우스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했다. 이 중 '합정역 5번 출구', '사랑의 재개발' 등으로 인기를 얻은 유산슬은 부캐의 가수 데뷔에 본보기가 됐다. 이후 정범균(유산균), 김신영(둘째이모 김다비), 허경환과 이상훈(억G&조G), 신봉선(캡사이신) 등이 본인과는 다른 사람으로 분해 음원을 발표했다.

부캐 유행을 선도한 주역은 <놀면 뭐하니?>와 유재석이지만 부캐 개발의 시초는 래퍼 마미손이다. 2018년 방영된 Mnet <쇼미더머니> 일곱 번째 시즌에 출연한 그는 분홍색 복면을 착용해 자신의 정체를 꽁꽁 숨겼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음악 팬들은 대강의 생김새와 목소리, 래핑 스타일로 마미손이 매드클라운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마미손과 매드클라운은 서로 동일인이 아니라고 계속 부인했다. 이 뻔뻔한 모습이 우스워서 대중은 그들의 주장을 그냥 인정해 주는 상태다.

마미손과 매드클라운의 경우는 단순히 재미만 제공하지 않는다. 마미손은 부캐의 장점을 일러 주는 대표적 예시다. 매드클라운은 '착해 빠졌어', '화', '거짓말' 등 사랑을 소재로 한 노래를 많이 불러왔다. 반면에 마미손의 노래들은 대체로 코믹함을 띤다. 부캐를 만듦으로써 전과 확연히 다른 노선을 개척한 것이다. 이처럼 부캐는 참신함을 나타내기에 좋으며, 수월하게 작품 세계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한다. 기존 팬들의 부정적인 반응이 걱정돼서 변화를 망설였던 음악인들은 실험적인 이벤트로 활용해 볼 만하다.



뮤지션들에게 이로운 방편이지만 부캐를 생성하는 이는 아직 얼마 없다. 콕스빌리라는 캐릭터로 음악 스타일과 분위기를 확 바꾼 래퍼 제이켠과 10월 트로트 가수 성원이로 데뷔한 래퍼 슬리피 정도만 눈에 띈다. 가수들보다 오히려 코미디언들이 음반을 취입할 때 부캐를 앞세우는 일이 더 잦다. 부캐를 제작하면 평소와는 다른 외양과 행동으로 대중의 이목을 끌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우스꽝스러운 가상의 프로필은 대중에게 편안하게 다가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

홍보에 효율적이고, 신선함과 유쾌함을 아우른다는 점 때문에 부캐 유행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Mnet은 9월 연예인들의 부캐 음반을 제작하고 활동을 관리하는 부캐 전문 매니지먼트 회사 '페르소나유니버스'를 설립했다. 10월 마미손과 둘째이모 김다비가 듀엣으로 발표한 '숟가락 행진곡'이 이 레이블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 게다가 페르소나유니버스는 10월부터 송해, 아이돌 그룹 유키스의 수현, 인터넷 방송인 꽈뚜룹 등이 출연하는 웹 예능 <부캐 선발대회>를 유튜브로 내보내고 있다. <부캐 선발대회>는 11월 Mnet을 통해서도 방송되며, 이후 계속해서 시리즈로 제작된다고 한다. Mnet이 부캐 컨베이어 벨트를 열심히 돌리는 중이다.



이처럼 부캐의 양산이 예정돼 있다 보니 부캐로 가요계에 진출하는 희극인들에게는 독자성과 음악성을 확보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금까지 나온 부캐들의 노래를 보면 댄스 트로트, 산만한 댄스음악, 코미디 랩 정도에 국한된다. 이는 부캐라는 신조어가 생기기 이전에도 개그맨들이 발표한 노래에서 흔하게 목격됐던 장르들이다. 뻔한 양식을 답습하고, 재미만 추구하는 부캐가 난립하게 되면 대중은 피로감만 느낄 공산이 크다.

작금의 부캐 유행은 코미디언들에게는 활동에 분명히 호재로 작용한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희소한 상황에서 부캐는 자신이 고안한 캐릭터 연기를 펼치는 열린 기회가 돼 준다. 음원을 내면 레퍼토리의 증가 덕에 예능이나 행사에 불릴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다만 생존과 수입의 가치에 몰입한 나머지 음악이라는 알맹이는 무시한, 허접한 작품이 늘어나는 광경이 걱정스럽다. 부캐 잔치가 달갑잖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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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돌아보는 2020년 가요계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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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정상 방탄소년단, 보통명사가 된 케이팝

더 오를 곳이 없다. 적어도 차트 성적에서는 그렇다. 방탄소년단이 세계 정상을 정복했다. 'Dynamite' 이전 네 개의 노래를 빌보드 싱글 차트 톱 10에 진입시키고 네 장의 음반을 앨범 차트 1위에 올려놓은 데에 이어 빌보드의 왕관이라 할 수 있는 싱글 차트 고지에 깃발을 꽂았다. 영어 가사가 가진 범용성의 이점과 코로나 19 팬데믹에 지친 사람들이 쉽게 위로받을 수 있는 밝고 경쾌한 디스코 리듬을 주무기로 'Dynamite'는 2주 연속 왕좌를 굳건히 지켰다. 그 이후에도 조시 685(Jawsh 685), 제이슨 데룰로(Jason Derulo)와 꾸민 'Savage love' 리믹스와 한국어 가사의 'Life goes on'를 같은 성적에 안착시키며 멈출 줄 모르는 고공행진을 이어갔다.

케이팝의 세계화를 이끈 그룹은 방탄소년단뿐만이 아니다. YG의 블랙핑크는 올해 정규 음반으로 미국 시장에 확실한 출사표를 내던지고 셀레나 고메즈(Selena Gomez)와 함께한 'Ice cream'으로 싱글 차트 13위에 이름을 새겼으며, SM의 슈퍼엠과 엔시티 127 역시 각각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와 5위에 올랐다. 더욱 많은 뮤지션이 세계에서 입지를 다지며 케이팝은 도약에 도약을 거듭, 글로벌 시장에서 확실한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중이다.



올해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케이팝이 발휘하는 영향력의 확장이다. 2020년 해외 케이팝 팬들은 미국 사회에 관여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Black Lives Matter' 캠페인과 관련한 조직적인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방탄소년단과 빅히트 엔터테인먼트가 해당 캠페인에 대한 지지 의사로 100만 달러(한화 약 12억원)를 기부했는데, 그것을 본 팀의 팬덤 아미(A.R.M.Y)가 그들과 똑같은 금액을 모금, 쾌척하며 흑인 인권 운동을 지원했다. 또한 BLM을 비꼬기 위해 탄생한 백인 우월주의 집단의 'White Lives Matter' 인스타그램 해시 태그를 좋아하는 케이팝 뮤지션의 사진으로 도배해 범람시키는 등 인종 갈등이 심화한 미국에 다양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냈다.

케이팝 팬들이 국제 사회적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활동 범위가 넓어졌음을 시사한다. 이와 관련해 < 뉴욕 타임스 >는 이들이 감행하는 이러한 정치적 움직임을 '팬덤 문화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일종의 노력'이라 진단했다. 진보적이고 비교적 소수의 인종이 모여 있으며, 해외 문화에 개방적인 이들이 기존 아이돌 문화가 가지고 있던 '성숙하지 못한 어린 아이들의 문화'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시대에 의미 있는 바람을 불러일으키려는 행동이라는 분석이다. 케이팝의 도약은 음악 자체뿐만 아니라 그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에서 살펴봤을 때 더욱더 유의미하다.



완벽한 과거 시제, 가뭄 속의 실험

올해도 대중음악은 끊임없이 과거를 탐색했다. 팝 시장의 주축이었던 디스코 음악에 위켄드(The Weeknd)와 두아 리파(Dua Lipa), 방탄소년단 등이 발맞췄고, 최근 새로 개정한 < 롤링스톤 500대 명반 >은 마빈 게이와 스티비 원더 등 지금의 대중음악에 중심으로 녹아들어 있는 흑인 음악을 대거 재조명했다. 계속되는 레트로 유행에 이제는 옛 것이 옛날만의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가요계도 완벽한 과거 시제를 지향했다. 작년이 시티팝의 해였다면 올해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단연 트로트. TV 조선의 < 미스터트롯 >이 임영웅, 영탁 등의 스타를 낳으며 지난 해 < 미스트롯 >으로 '트롯 바람'이 난 대중에게 성인가요의 인기를 더욱 불어넣었다. 마찬가지로 텔레비전 전파를 타며 부캐 열풍을 일으킨 < 놀면 뭐하니? >의 프로젝트 그룹 싹쓰리의 '다시 여기 바닷가', 쿨의 원곡을 리메이크한 < 슬기로운 의사생활 > OST 조정석의 '아로하' 역시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댄스, 발라드를 재현한 복고의 영역이다.



트로트와 댄스, 발라드는 비교적 대중에게 친숙한 소재다. 그러나 언더그라운드 신에서는 더욱 화끈한 복고 바람이 불었는데, 국악이 그 주인공이다. 소위 '굿 음악'이라 불리는 무가(巫樂)를 재즈, 펑크(Funk), 레게의 요소로 재탄생시킨 추다혜차지스와 '국악계 이단아'로 불리며 전통 음악의 정격을 깨부순 오방신과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돋보였다.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 수궁가 >를 현대적 댄스 리듬으로 재해석한 이날치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올해의 인물. 이들의 음악은 한국관광공사가 제작한 한국 홍보 공익 광고 시리즈 '필 더 리듬 오브 더 코리아(Feel The Rhythm of Korea)로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세계 네티즌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켜 현재 도합 2억 3천만 회가 넘는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대중이 가장 쉽게 그 갈증을 해소하는 방법이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다. 그동안 홀대했던 옛것 중 좋은 것을 발굴해 새 흐름으로 재창조하는 것은 독창적인 창작에 목마른 현 음악계에 가뭄 속의 실험과도 같다.



코로나 여파, 멈춰버린 인디 공연

거리가 텅 비었다. 번화가의 화려한 불빛도, 클럽가를 메운 북적이는 음악 소리도 없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차가운 말 앞에 공연이 줄줄이 무산됐고 음악가들은 팬들과 한 발자국 떨어져 다음 만날 날을 기약했다. 코로나 19가 가져온 2020년 대중음악계 모습이다.

사태의 장기화는 누구보다 인디 뮤지션과 공연 관계자에게 직격탄이 됐다. 인디 뮤지션들에게 공연은 단순 수익의 매개체를 넘어 자신이 새로 쓴 노래와 준비한 기획을 선보이는 거의 유일한 창구다. 온라인 공연 등을 열면 언제든 홍보를 통해 이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대형기획사와 달리 작은 레이블 아티스트나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음악인에게는 그럴 방법이 한정적이다. 유흥업소를 제한한 정부의 지침에 비해 이들을 향한 실질적인 지원은 병행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5월 이태원발(發) 코로나는 결정적이었다. 이태원 클럽을 시작으로 확산한 2차 대유행은 이태원 클럽을 향한 인식 악화를 낳았고, 그 화살은 고스란히 그 일대를 무대 삼아 활동하던 디제이들과 관계자들에게 돌아갔다. 이를 극복하고자 이태원 공동체는 서로 뭉쳐 연대했다. 6월 소프가 이끈 '서포트 이태원(Support Itaewon)' 프로젝트와 클럽 케이크샵이 주도한 '리플라이 이태원(Reply, Itaewon)' 커뮤니티 기획은 혼돈의 시기에도 이들이 끈끈한 연결고리를 지탱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홍대와 이태원 등 개성 강한 뮤지션과 여러 장르가 집결하는 소규모 커뮤니티는 가요계의 다양화를 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역동적인 활기로 가득하던 그들의 모습이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린다.



언택트 시대의 대안, 온라인 콘서트

한숨이 깊어지는 공연 업계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온라인 콘서트였다. '방방콘 더 라이브'로 무산된 월드투어를 대체한 방탄소년단, SM 엔터테인먼트가 네이버와 손잡고 진행한 '비욘드 라이브' 시리즈. 그리고 지난 8월에는 JYP와 SM이 '비욘드 라이브'(Beyond LIVE)를 위한 전문 회사 '비욘드 라이브 코퍼레이션'(Beyond LIVE Corporation·BLC)을 설립하며 양 소속사가 이례적인 협업을 펼치기도 했다. 그 밖에도 CJ ENM이 기획한 한류 축제 '케이콘택트 2020 서머' 등도 성공리에 막을 올리며 사태와 장기간 공생해야 하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인 만큼 대형 기획사들이 앞으로의 공연 문화를 앞장서 주도했다.

케이팝 온라인 공연은 다양한 IT 기술을 동반한다. 증강현실(AR) 기술을 활용한 3인칭의 화려한 시각 연출을 자아내고, 다중 화상 연결 시스템으로 팬들과 서로 얼굴을 맞대고 그들의 댓글을 읽으며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단순 오프라인 공연 실황 비디오와는 구분되는, 비대면 공연만의 대안적인 차별화를 더한 '새 시대의 쇼'다.

물론 아직 부족한 점도 많다. 온라인 콘서트는 관객과 떨어져 진행되는 만큼 생생한 열기를 실현하기 어렵다. 또한 조명과 연출 등에 많은 돈이 드는 데에 비해 티켓 가격은 오프라인보다 훨씬 낮게 책정되기 때문에 수익성이 저조한 것 역시 풀어야 할 과제다. 수용 인원에 제한이 없어 언뜻 무한한 수익을 올릴 수 있어 보이지만, 모두가 방탄소년단의 '방방콘'처럼 75.6만 명의 관객을 모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비교적 팬덤 규모가 작은 아이돌이나 아티스트에게는 진입 장벽이 높고, 오히려 적자가 날 수 있는 장사다.

코로나 19가 끝나도 온라인 공연이 우리 생활 속에 녹아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새 시대의 공연 문화로 부상한 만큼 그에 걸맞은 적합한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산업에 대한 대중음악계 전체의 면밀한 고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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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있는 목소리 ‘We, Do It Toge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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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SNS에 심심찮게 공유되는 포스트가 있었다.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드는 연대의 목소리가 그 키워드였다.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 <We, Do It Together>.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을 통해 앨범 제작을 위한 자금을 모았고 이는 이들이 쏘아 올린 에너지만큼이나 금방 뭉쳐졌다. 진즉에 애초 목표 금액인 4백만 원을 달성했다. 지난 11월 16일, 이들의 프로젝트는 최종적으로 216%인 8백 6십여만 원의 성금을 모았다. 그만큼 많은 지지가 쏟아졌다.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이라고 소개하긴 했지만 12팀의 인디 뮤지션들이 만든 12곡은 록에 한정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음악가부터 활동 기간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아티스트들까지 고루 모였다. 인디 씬의 태동부터 선 굵은 이미지를 남긴 '황보령', 국악인 이자람이 주축이 되어 만든 '아마도 이자람밴드'를 비롯하여 지난해 첫 정규 음반을 발매한 '천미지', 문소문이란 그룹으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카코포니', 다국적 밴드 '티어파크' 등 다양한 색채의 뮤지션들이 한뜻 아래 손을 잡았다.

시작은 에고펑션에러의 보컬 김민정이 가진 의문 덕이었다. '일본에는 여성 록 컴필레이션 음반이 많은데 왜 국내에는 없을까?' 작은 의문은 이내 행동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필연적 사건들을 만난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이후 우후죽순 터진 인디 씬 내의 여러 성 관련 문제들을 마주했다. 그는 “홍대에 탈덕 유발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마음먹는다. 여성 인권 신장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고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여성 음악가를 더욱 널리 크게 알리자는 목표 또한 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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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라디오 PD들의 ‘내 인생의 음악 10곡’ - #1 정일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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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 보면 나의 학창 시절과 청춘은 대체로 어두웠던 것 같다. 누구나 겪는 성장통이었으련만, 그때는 내게 그것이 퍽이나 가혹해서 매 순간 버거웠었다. 진심으로 라디오와 음악이 있어 그 시절을 통과해올 수 있었다. 내가 라디오 PD가 되어야겠다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하다. 인간의 감정 중에 가장 깊고도 진실한 마음은 '슬픔'이 아닐까 한다. 슬플 때마다, 힘들 때마다 음악이 곁에 있었다. 그때 이 음악들이 나의 위로였고, 나의 구원이었다.



어떤날  너무 아쉬워하지 마 / 1986

그때 내가 살던 동네인 방배동 골목 작은 음반가게에서 우연히 마주친 이 음반 1장이 내 인생에 미친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음반을 통째로 마르고 닳도록 들었지만, 그중 제일은 LP B면의 첫 곡으로 슬며시 앉아있던 이 곡이다. 그들이 한사코 그러지 말라고 노래하던 모든 것들이 한없이 아쉽고 슬펐더랬다.




톰 웨이츠(Tom Waits) / Ol'55 / 1973

어쩌면 가장 큰 위로는 “너만 그런 게 아니야”, “모두가 다 그래”라고 말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일상의 고단함이 엄습해 올 때 이 노래는 그것을 일깨워준다. 원, 투, 쓰리, 포(카운트 다운).. 짧은 피아노 인트로 뒤로 밀려오는 그의 메마른 목소리는 그 어떤 미성보다도 신산한 삶을 위무하는 힘이 있다.




보즈 스캑스(Boz Scaggs) / We're all alone / 1976

마이클 잭슨이 아무리 'You are not alone'이라고 노래해도 우리는 모두 근원적으로 외로운 존재다. 보즈 스캑스가 만든 노래로 프랭키 발리가 제일 먼저 불렀고 후에 리타 쿨리지의 노래로 가장 크게 히트했지만, 역시 원작자인 보즈 스캑스의 노래를 앞설 수는 없다. 더구나 뒤에는 곧 토토의 멤버가 될 이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으니 그 또한 믿음직스럽다.




동물원 / 잊혀지는 것 / 1988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동물원은 모든 것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담담히 노래한다. 무심히 흐르는 시간에게 용서란 없다. 사랑도 꿈도 끝내는 잊히고, 우리는 서로의 타인이 되고야 만다. '그 모두는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들어간다'. 김광석이 아무리 절창이어도, 그의 다시 부르기마저도 동물원의 원곡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뉴 트롤스(New Trolls) / Adagio(Shadows) / 1971

클래식과 칸초네의 유구한 전통을 간직한 이태리 프로그레시브 록의 색채는 영국 밴드들의 그것과는 분명히 다른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 대표 그룹 뉴 트롤스의 이 노래는 처음 바이올린 소리가 흐르는 순간부터 도무지 헤어나올 수가 없다. 지금도 내가 라디오에서 슬픈 노래를 틀어야 할 때 언제나 맨 처음 떠올리는 노래이다.




카멜(Camel) / Stationary traveller / 1984

입대를 앞두고 마음이 황량하던 시절 지금은 사라진 부천의 음악다방 <수목>에서 듣고 또 들었던 음악이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슬피 우는 기타 소리. 처음에는 조용히 눈물을 훔치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목 놓아 운다. 앤드류 레이티머의 기타를 뒷받침하는 건반의 주인공은 톤 셔펜질, 카약의 창단 주역인 그는 이때 잠깐 카멜로 이적했었다.




이문세 / 옛사랑 / 1992

마치 연극의 종막에서 암전 후 배우의 목소리만 남은 것처럼 악기들이 모두 빠지고 리버브를 잔뜩 머금은 목소리만이 아련히 사라져가는 이 노래의 엔딩을 듣고 있으면 나는 항상 비지스의 <First of May>를 떠올린다. 그러고 보니 두 노래의 계절적 배경도 똑같이 겨울이다. 마음이 차갑다. 그런데 노래에서 눈은 내리지 않고 자꾸 올라간다. 이영훈은 탁월하다.




라디오헤드(Radiohead) / Exit music / 1997

이제는 난수표 같은 음악 속으로 숨어버린 라디오헤드가 그 옛날 남긴 역작이다. 누군가는 세상에는 라디오헤드류와 아닌 류의 두 가지 음악밖에 없다고 했을 만큼 그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 라디오헤드류의 정체가 무엇이던가? 바로 극한의 멜랑콜리, 극단의 우울이 아니던가? 그들이 온 세상 곳곳에 우울의 씨앗을 마구마구 흩뿌리던 시절이었다.




카리 브렘네스(Kari Bremnes) / Waltz / 2003

그해 여름 출장지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만난 어느 평론가는 북구의 음악이 왜 슬픈가라는 어찌 보면 유치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대지는 넓은데 사람이 많지 않으니 근본적인 외로움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그 출장 도중 그곳에서 이 노래를 처음 만났다. 노래 안에 외로움이 산다는 말에 진심으로 동의했다.




브로콜리 너마저 / 보편적인 노래 / 2008

솔직히 고백하거니와 브로콜리 너마저는 내가 대놓고 편애하는 밴드이지만, 그중에서도 최애곡은 이 노래다. 이 대체 불가의 정서를 지닌 밴드가 포착해 낸 보편적인 슬픔은 정말 너무나 보편적이서, 그래서 너무나 동감이 되어서 눈물을 자아내고야 만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하던 일을 멈춘 채로 한동안 멍했었다.




*정일서 PD

1995년부터 지금까지 26년째 KBS에서 라디오 PD로 일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던 귀에서 헤드폰을 빼는 일이 거의 없는 방송국에서도 소문난 음악광으로 예나 지금이나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음악 듣는 데 쓴다.
그동안 연출한 프로그램으로는 <황정민의 FM대행진>, <이금희의 가요산책>, <김광한의 골든팝스>, <전영혁의 음악세계>, <이상은의 사랑해요 FM>, <신화 이민우의 자유선언>,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이소라(강수지)의 메모리즈>, <장윤주의 옥탑방 라디오> 등이 있다.
저서로는 『팝 음악사의 라이벌들』, 『더 기타리스트』, 『365일 팝 음악사』,  『그 시절, 우리들의 팝송』, 『KBS FM 월드뮤직: 음악으로 떠나는 세계여행』(공저),  『당신과 하루키와 음악』(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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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세기를 빛낸 명곡 ‘Over the rainbow’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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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트 디즈니(Walt Disney)의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가 놀라운 상업적 성공을 거둠에 따라 MGM 스튜디오 임원인 루이스 메이어(Louis Mayer)는 그에 필적하는 작품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는 즉시 엘. 프랭크 바움(L. Frank Baum)의 소설 『오즈의 위대한 마법사』 (The Wonderful Wizard of Oz, 1900)에 대한 판권을 사들였다. 노엘 랭리, 플로렌스 라이어슨(Noel Langley, Florence Ryerson)과 에드가 앨런 울프(Edgar Allan Woolf)가 각본을 쓰고, 베테랑 감독 빅터 플레밍(Victor Fleming)이 연출을 맡았다.

이제 전설이 된 출연배우에는 도로시(Dorothy) 역에 주디 갈란드(Judy Garland)를 비롯해, 마블 교수 마블/오즈의 마법사 역에 프랭크 모건(Frank Morgan), 허수아비 역에 레이 볼거(Ray Bolger), 양철 나무꾼(Hickory/Tin Man) 역에 잭 헤일리(Jack Haley), 겁쟁이 사자(Zeke/Cowardly Lion) 역에 버트 라(Bert Lahr), 북쪽의 착한 마녀 글린다(Glinda) 역에 빌리 버크(Billie Burke)와 서쪽의 사악한 마녀 알미라 걸치 역에 마가렛 해밀턴(Margaret Hamilton)이 캐스팅되었다.

배역을 정한 영화는 그런데 원작 소설에서 바움이 실제 장소로 구상한 오즈를 꿈의 풍경으로 변모시켰다는 점에서 상호 거리감이 있었다. 각색된 꿈의 세계를 무대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토네이도를 타고 캔자스 집에서 놀라운 오즈 왕국으로 이송된 어린 소녀와 강아지의 마법적이고 환상적인 모험극으로 그려진다. 시골의 현실에서 오즈라는 판타지의 세계로 장소를 옮긴 소녀 도로시는 북부의 착한 마녀 글린다의 도움을 받아 위대한 여정을 시작한다. 충견 토토와 함께 에메랄드 도시에 사는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 집으로 되돌아가게 해달라는 소원을 말하기 위해서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두뇌를 찾는 허수아비, 마음을 찾는 양철 나무꾼, 용기를 찾는 비겁한 사자를 만나 친구가 된다. 서쪽의 사악한 마녀 걸치가 도로시의 소원성취를 방해하지만, 도로시와 친구들은 뜨거운 우정과 눈부신 협력으로 고난과 역경을 헤쳐나간다. 절박한 공존의 필요성 속에서 믿음과 진심으로 각자의 콤플렉스를 극복해내는 주인공들. 여러 모험을 겪은 끝에 마침내 도로시는 신고 있던 루비 구두를 이용해 가족이 있는 캔자스로 돌아올 수 있게 된다.

그렇게 행복한 결말을 맞는 영화 <오즈의 마법사>는 개봉 당시보다 이후 TV를 통해 방영되면서 최다 상영과 최다 관객 동원이라는 기념비적 기록을 세웠고, 영화 예술의 걸작으로 칭송받으며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대중의 반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작품상을 포함해 아카데미상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된 영화는 무엇보다 최우수 음악(Best Music)상 2개 부문 트로피를 모두 석권했다는데 의미가 깊다. “스코어(Original Score)”“원곡/주제가(Original Song)”, 두 부분을 모두 수상함으로써 명실공히 뮤지컬영화 최고의 반열에 오른 것이다. 특히 'Over the rainbow'의 주제가상 수상은 이 영화에 상징적 가치를 더할 뿐만 아니라, 후대에 길이 빛날 시대의 명화가 될 신호탄임을 확증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뮤지컬이 될 것이라는 것이 결정되었다. 그래서 많은 노래를 작곡하기 위해 작곡가 해롤드 알렌(Harold Arlen)과 작사가 입 하부르크(Yip Harburg)로 구성된 신뢰할 수 있는 팀이 고용되었다. 작곡가 허버트 스토다트(Herbert Stothart)는 자신이 쓴 스코어의 패턴 내에서 노래를 조정하고 통합하는 임무를 맡았다. 전체적으로 영화의 등장인물들과 무대가 되는 배경에 맞춰 다양한 라이트모티프(leitmotif)의 연주곡을 단편적으로 사용해 극의 장면 전개를 보강하는 한편, 작곡가 스토다트는 유명한 고전음악을 발췌해 넣기도 하고, 알려진 대중음악도 사용했다.



슈만(Schumann)의 'The Happy Farmer'(행복한 농부)에서 발췌한 부분을 영화의 초반 몇몇 장면에 사용했는데, 도로시와 토토가 걸치 여사를 만난 후 집으로 돌아오는 오프닝 장면과 토토가 그녀에게서 탈출할 때, 그리고 집이 토네이도를 타고 날아갈 때 삽입되었고, 토토가 마녀의 성에서 탈출했을 때는 멘델스존(Mendelssohn)의 'Opus 16, #2'에서 발췌한 곡의 일부가 들어갔다. 또한 도로시,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비겁한 사자가 마녀의 성에서 탈출하려 할 때는 무소르그스키(Mussorgsky)의 'Night on bald mountain'(민둥산의 밤)에서 발췌한 주요 악절을 지시악곡에 결합해내기도 했다.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의 'Waltz of flowers'(꽃의 왈츠)가 도로시, 양철 나무꾼, 허수아비, 비겁한 사자 토토가 양귀비 밭에서 잠들 때 사용된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대목. 도로시와 허수아비가 의인화 된 사과나무를 발견할 때 'In the shade of the old apple tree'(오래된 사과나무의 그늘에서), 마법사가 도로시와 친구들에게 상을 수여할 때 학생찬가로 유명한 'Gaudeamus Igitur'(가우데아무스 이기투어), 캔자스에 있는 도로시의 집에서 폐막하는 장면의 일부에 '즐거운 나의 집'으로 매우 친숙한 'Home! Sweet Home!'이 기성고전가요로 차용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뮤지컬로 제작된 영화는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테마와 그 주제에 얽힌 노래가 풍부하다. 북방의 선한 마녀로서 천상의 특성으로 그녀의 페르소나를 강조하는 글린다(Glinda)의 테마를 위시해 서쪽의 사악한 마녀 걸치(Gulch)의 테마, 장난꾸러기 강아지 '토토의 테마', '마블 교수(Professor Marvel)의 테마', 그리고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 등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 각자에게 특징 있는 주제적 악상을 주고, 그 주제곡들을 변주해 영화 전반에 골고루 배치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메인테마 'Over The Rainbow'는 갈란드(Garland)가 서막에서 부른 노래에서 파생되어 나온다. 영화의 스코어 역사상 가장 숭고한 가사와 멜로디의 조화라고 할 수 있는 이 곡은 도로시의 테마 역할을 하고, 작곡가 스토다트는 오케스트라로 재연해 "꿈은 실현된다."는 이야기의 메시지를 관객에게 계속 상기하게 했다.

이 주제곡은 영화의 개막을 알리는 '메인타이틀'(Main Title) 곡에서부터 연달아 이어지는 여러 테마들과 조화를 이루며 최고의 순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주디 갈란드(Judy Garland)의 가창과 더불어 관객들은 목가적인 것에 대한 그녀의 열망을 듣고, 영화 내러티브의 정서적 핵심을 포착할 수 있다. 도로시 역의 갈란드가 하늘을 향해 독백처럼 노래할 때 그녀의 뛰어난 보컬은 완벽한 영화의 순간을 만든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 저 높이

어떤 나라가 있대, 자장가에 나왔던 곳

무지개 너머 어딘가에 하늘은 푸르고

꿈으로만 꾸던 것들이

이루어지는 곳


언젠가 별에게 소원을 빌 거야.

구름이 내 뒤 저 멀리 있는 곳에서 깰 거야.

걱정거리들이 레몬사탕처럼 녹는 곳

굴뚝 꼭대기보다 더 위

그곳이 네가 날 찾게 될 곳이야

무지개 너머 어딘가 파랑새가 날아다니는 곳,

새들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데

그런데 왜 난 갈 수 없는 걸까?

행복한 작은 파랑새들은 무지개 너머로

날아가는데, 왜, 도대체, 왜 나는 갈 수 없는 걸까?」 -“Over the rainbow”노랫말 중-


입 하부르크(Yip Harburg)의 가사와 해롤드 알렌(Harold Arlen)의 작곡이 탄생시킨 주제가 'Over the Rainbow'가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지금까지 대중들의 기억에 각인되었을지는 미지수다. 그만큼 영화에서 주제가가 주는 파장은 실로 대단하다.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함의를 오롯이 내포한 이 노래는 'AFI(American Film Institute)'의 100년... 100곡과 미국 음반 산업 협회의 “세기의 365곡”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7년 3월, 주디 갈란드가 부른 'Over the Rainbow'는 “문화적, 역사적 또는 예술적으로 중요한”음악으로 선정돼 국회도서관의 “내셔널 레코딩 레지스트리(National Recording Registry)”에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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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2021년 음악을 이해하는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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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의 첫 번째 달도 반 이상이 지나갔다. 여전히 코로나 19의 위협이 개인의 삶을 짓누르고 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했던 2020년과 달리 백신을 개발하고 비대면 시기에 맞는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는 등 희망의 싹을 찾을 수 있는 2021년이다.

음악 산업 역시 글로벌 팬더믹의 가운데 지속적인 적응과 혁신, 신기술 투자로 활로를 개척했다. 동시에 대중과의 소통 활로가 막힌 창작가들과 공연, 페스티벌 업계는 연일 안타까운 소식에 한숨을 내쉬고 있는 아이러니한 광경이다.

남은 345일 동안 우리는 어떻게 음악을 듣게 될까, 그리고 음악은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네 가지 키워드로 2021년 음악 산업을 전망한다.



스포티파이 국내 진출, 치열해질 오디오 시장 경쟁

지난해 12월 18일, 세계 최대의 음악 플랫폼 스포티파이가 올해 상반기 내 국내 서비스 론칭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2019년 3월부터 한국 시장 진출을 준비해온 스포티파이는 약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한국 시장에 발을 디딘다. 6천만 곡 이상 보유곡, 40억 개 이상 플레이리스트, 3억 2천만 명 이상 유저를 보유한 골리앗의 등장이다.

적지 않은 음악 감상자들이 스포티파이의 한국 진출을 고대해왔다. 명성, 풍부한 해외 음원, 타 서비스들과 비교 불가능한 개인화 추천 서비스는 분명한 강점이다. 물론 멜론, 지니, 벅스, 플로, 바이브 등 기존 스트리밍 서비스들과의 경쟁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공격적인 할인 혜택과 통신사 연계를 통해 고정 이용층을 갖춘 토종 서비스들에 밀려 고전한 애플 뮤직(Apple Music)의 전례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하지만 스포티파이의 시선은 그 너머를 향해 있다.



스포티파이는 보도자료를 통해 케이팝의 글로벌 인기를 견인하는 스포티파이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매년 음원 스트리밍 트렌드를 결산하는 스포티파이 플래그십 캠페인 ‘랩드(Wrapped)’ 를 통해 자체 ‘2020년 케이팝 결산’  자료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여기에 스포티파이가 최근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는 팟캐스트다. 2019년 4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여 팟캐스트 업체를 인수한 이래로 스포티파이는 꾸준히 독점 콘텐츠 확보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물론 이 행보에 대한 전망은 해외 시장에서도 찬반 논란을 부르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스포티파이의 국내 진출에 음원 서비스 시장 확장의 목적과 더불어 글로벌 오디오 시장에서의 케이팝 콘텐츠 선제 확보 및 전초기지 건설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2014년 케이팝 허브 플레이리스트를 처음 선보인 이래 스포티파이에서 케이팝은 청취 비중을 2,000% 이상 늘렸고, 1,800억 분 이상 스트리밍 되었으며 1억 2천만 개 이상의 플레이리스트를 확보했다.

스포티파이 한국 서비스는 케이팝 기획사들과의 기민한 협력과 발 빠른 소통을 통해 국내는 물론 세계 시장에 다양한 오리지널 콘텐츠를 소개할 수 있다. 스트리밍 업계는 물론 팟캐스트, 오디오북, 유튜브 및 OTT 서비스들까지 스포티파이의 등장에 귀를 기울이는 이유다.



기업 기획사 합작 플랫폼, 게임과 음악

동시에 2020년은 케이팝 온라인 플랫폼들 간의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 해였다. 상호 간에 양해각서를 체결하며 손을 잡은 SM엔터테인먼트와 네이버는 라이브 스트리밍 서비스 ‘비욘드 라이브’ 를 론칭하며 온라인 콘서트 시장에 발을 디뎠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자체 개발 플랫폼 위버스(Weavers)를 통해 BTS와 산하 아티스트들의 온라인 콘서트, 굿즈, 홍보 및 뉴스를 포괄했다. 한국 아티스트뿐 아니라 영화감독 JJ 에이브럼스의 딸로 유명한 그레이시 에이브럼스, 뉴 호프 클럽, 영블러드 등 신진 해외 아티스트들까지 위버스에 합류했다.

NC소프트의 야심작 ‘유니버스’ 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CJ ENM과의 합작법인 설립 계획을 알리며 본격적인 행보를 알린 유니버스는 인공지능 음성 합성, 모션 캡처 등 다양한 IT 기술 기반의 엔터테인먼트 요소와 콘서트, 현장 투표 등 팬덤 공간으로의 요소를 동시에 갖췄다. 300만 명 이상의 사전 예약자를 확보한 유니버스에는 강다니엘, 몬스타엑스, 아이즈원, 우주소녀, (여자)아이들이 합류 예정이다.



유니버스에 더욱 시선이 가는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음악과 게임의 합작 흐름 덕이다. 소니 뮤직이 2020년 트래비스 스캇의 가상 콘서트로 화제를 모은 인기 게임 포트나이트의 지분을 일부 인수한 데 이어, 워너 뮤직은 지난 12일 1억 5천만 명 이상의 유저를 확보한 게임 플랫폼 로블록스(Roblox)에 대한 5억 2천만 달러 상당의 투자에 참여했다. 릴 나스 엑스, 에이바 맥스 등이 로블록스에서 온라인 콘서트를 가졌다.

현재 NC는 유니버스 사전 등록에 참여한 이들에게 리니지, 아이온, 블레이드 & 소울, 프로야구 H2 등 자사 게임 쿠폰을 제공하며 신규 케이팝 플랫폼과 기존 게임 서비스의 융합을 의도하고 있다. 대규모 자본과 기술의 투자를 확보한 케이팝은 음악을 넘어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콘텐츠 제공 시스템으로의 확장을 꿈꾼다.



사라진 콘서트와 공연장. 코로나 이후 전망은?

분명 빛은 밝다. 하지만 그림자는 더 짙다. 케이팝의 성장은 팬데믹을 기회로 삼은 일부의 경우다. 다수 음악 산업 종사자들은 전례 없는 최악의 시기에 신음하고 있다. 특히 대면 콘서트가 사라지며 전 세계 공연 업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은 가운데, 우리의 삶 속 크고 작은 추억과 기억을 안긴 공연장들 역시 속속 문을 닫고 있다.

2019년 말부터 2020년 초까지 음악 팬들을 설레게 했던 대다수 페스티벌과 내한 공연은 연기를 거듭하다 씁쓸한 취소 소식을 남겼다. 1998년부터 명맥을 이어온 재즈 클럽 ‘원스 인 어 블루 문’ 이 영업을 종료한 데 이어 홍대 앞 상징적인 공연장  ‘브이홀’ 도 코로나 19 여파를 피해 가지 못했다. 퀸라이브홀, 무브홀, 에반스라운지도 문을 닫았다. 이태원의 밤을 책임졌던 소프 서울, 케이크샵 등 다양한 베뉴들도 ‘집합 금지명령’  앞에 차디찬 한 해를 보냈다.



자연히 온라인 콘서트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빅히트, SM, JYP, YG 등 케이팝 기획사들은 가상현실 및 특수효과의 최첨단 기술을 활용하며 온라인 콘서트로 대규모 투어의 아쉬움을 달랬다. 한국 인디 신 역시 잔다리 페스타, 테이프 앤 포스트 등 스트리밍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고자 분투했다. 그러나 오프라인 콘서트보다 더욱 많은 비용을 요구하는 온라인 콘서트가 모두의 대안이 될 수 없음도 분명했다.

세계적으로 대면 공연을 되살리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8월 독일에서는 3회에 걸친 거리두기 정책 하의 실내 공연 테스트를 통해 안전성을 시험했으며, 1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도 1,000명의 지원자가 ‘실험’ 에 참여했다. 영국과 일본은 일찌감치 2021년 자국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공개하는 중이다. 그러나 코로나 19 유행 종식 이후에도 대면 콘서트가 돌아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틱톡과 소셜미디어, 카탈로그와 싱글 시대

현실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가상의 소셜 미디어다. 15초짜리 짧은 숏-폼 영상으로 출발한 틱톡(Tiktok)은 음악 산업의 핵심 서비스. 국제보건기구(WHO)도 코로나 19 확산을 막는 홍보 플랫폼으로 틱톡을 선택했을 정도로 글로벌 시장에서 그 영향력은 거대하다. 우리도 지코의 ‘아무노래’ 를 통해 틱톡의 인기를 체감한 한 해였다.

조쉬 685, 메간 더 스탤리온, 트래비스 스캇, 도자 캣, 로디 리치 등 2020년의 뜨거운 이름은 모두 틱톡으로부터 출발했다. 2021년 첫 메가 히트곡 올리비아 로드리고의 ‘drivers license’  역시 인기 근간에 틱톡이 있다. ‘바이럴’ 은 과거와 현재를 가리지 않는다. 크랜베리 주스를 마시며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청년이 1977년 플리트우드 맥의 ‘Dreams’ 를 2020년 빌보드 싱글 차트 12위까지 견인할 줄 누가 알았으랴.



틱톡과 소셜 미디어, 스트리밍의 유행은 대중음악의 핵심 콘텐츠를 앨범에서 싱글로 되돌리고 있다. 1960년대 비틀스가 앨범의 미학을 확립한 이후 연전연패하던 싱글은 디지털 음원의 등장과 함께 힘을 키워오다 스트리밍 시대 다시금 주류의 문법 중심을 되찾았다. 이제 잘 만든 앨범보다 잘 ‘큐레이션 된’  플레이리스트가 더욱 힘을 얻는 시대다.

따라서 광대한 과거 음악의 바다에서 콘텐츠를 엄선해 현대의 소비자들에게 제공하는 ‘큐레이터’ 들의 역할이 각광받고 있다. 코로나 19로 투어 수입을 기대할 수 없게 된 올드 뮤지션들 (밥 딜런, 닐 영, 플리트우드 맥 등) 이 저작권 회사에 본인의 카탈로그를 판매하는 흐름도, 플레이리스트를 통해 돌아오는 과거의 명곡들도 2020년대의 음악이 ‘창작’ 보다 ‘활용’ , 긴 호흡의 작품보다 단편의 멀티 콘텐츠를 향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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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곡으로 되짚어보는 다프트 펑크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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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22일, 다프트 펑크(Daft Punk) 공식 계정에 '에필로그(Epilogue)'라는 이름의 영상이 게시됐다. 8분 남짓의 길이 속, 자체 제작한 영화 <다프트 펑크의 일렉트로마>(2006)에서 토마스가 자폭을 택하는 후반부 장면과 <Random Access Memories>의 수록곡 'Touch'가 차례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내 의미심장한 문구  ‘1993-2021’ 이 화면에 나타난다.

처음에는 의미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그리고 동시에 그간 고수해온 신비주의만큼이나 다프트 펑크스러운 해체 선언이었다. 1993년 첫 싱글을 시작으로 그래미 어워드 5관왕의 신화를 거머쥐고, 전 세계를 호령하는 뮤지션으로 거듭난 전설적인 프랑스 일렉트로니카 듀오의 28년 행보는 그렇게 조용히 막을 내렸다.

토마스 방갈테르(Thomas Bangalter; 이하 토마스)와 기마누엘 드 오멩 크리스토(Guy-Manuel de Homem-Christo; 이하 기마누엘)로 구성된 다프트 펑크가 거쳐온 음악적 분기점을 짚어본다. 설명을 도울 열 곡도 마련했다. 단순 전자 음악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여러 장르와의 교류를 일궈내고 독특한 페르소나를 제시한 아티스트인 만큼 긴 역사를 추리는데 한없이 부족한 숫자일 수도 있다. 다만 이들을 처음 접하는 이에게는 다소 성기더라도 견고한 틀의 입문서가, 그리고 같은 세대를 겪으며 성장한 이에게는 오랜만에 다시 한번 이어폰을 집어들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펑크(Punk)에서 훵크(Funk)로

‘ Da funk’ , <Homework>, 1995

‘ Around the world’ , <Homework>, 1997

첫 발자국은 록이었다. 파리의 한 중학교에서 만나 친해진 토마스와 기마누엘은 훗날 피닉스(Phoenix)의 멤버 로랑 브랑코위츠(Laurent Brancowitz)와 함께 3인조 록 밴드 달링(Darlin')을 결성하여 본격적인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물론 처음부터 주목받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에게 쏟아진 것은 비판이었다. 당시 이들은 비치 보이스의 커버곡을 전전하던 아마추어에 불과했고, 발표한 데모곡은 설상가상으로 영국의 평론지 <멜로디 메이커>에 의해 ‘멍청한 펑크록(Daft Punky Thrash)’ 이라는 처참한 혹평을 받기도 했다.

널리 알려진 일화지만, 이 발언은 현재의 그룹명인 '다프트 펑크'가 탄생의 계기가 되었다. 부정적 낙인을 되려 전면에 걸어 버리며 돌파를 감행한 셈이다. 로랑을 제외한 둘은 과감히 기타를 내려놓고, 1990년대 중반부터 유럽과 영국을 강타한 테크노 열풍에 힘입어 그것보다 조금 더 앞선 1980년대 하우스(House) 음악으로의 노선을 택한다. 그리고 둔탁한 드럼 머신의 박자감과 신시사이저의 애시드(Acid) 효과를 화려하게 섞은 결정적 싱글  ‘Da funk’ 를 발표하며 전세를 뒤집기 시작한다. 쟝 미셸 자르(Jean Michel Jarre) 이후 프랑스 전자 음악계의 명성을 이을 충격적인 신인의 탄생이었다.

이후 버진(Virgin) 레이블과 계약을 마친 스무 살 초반의 다프트 펑크는 젊은 패기와 넘치는 영감을 날것의 전자음으로 구체화한 첫 정규작 <Homework>(1997)를 발매한다. 그중 두드러진 트랙은 7분짜리 대곡  ‘Around the world’ 다. 몽롱한 음성 변조를 거친 한 구절이 작중 내내 반복되는, 실로 단순한 구조를 지닌 이 곡은 비슷한 패턴이 자아내는 중독성과 그루브로 수많은 클러버를 열광케 했다. 영국 댄스 차트의 정상을 밟았고, 그래미 어워드 댄스 레코딩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는 기염을 토했다. 기이한 분장의 캐릭터가 리듬에 맞춰 원형으로 도는, 미셸 공드리 제작 뮤직비디오의 환락적인 영상미 역시 숱한 화제를 끌었다.



인간을 사랑한 로봇

One more time’ , <Discovery>, 2000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 <Discovery>, 2001

Something about us’ , <Discovery>, 2001

데뷔작이 클럽 신에서의 프렌치 하우스(French House) 부흥을 알렸다면, 그로부터 4년 후 접근성을 가득 머금은 <Discovery>는 이러한 댄서블한 복고의 재현을 지하에서 꺼내 세상에 알린 창구와 같았다. 진가가 '발견(Discovery)'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도나 섬머(Donna Summer)가 활약하던 1970년대의 기억을 '발굴'하여 2000년대에 맞게끔 재가공하는 현대화 작업을 거쳤고, 오토튠 보컬과 명징한 음선으로 청중을 사로잡는 법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이런 노하우의 산물이 바로 ‘One more time’ 이었다. ‘춤을 멈출 수 없다’ 는 노랫말처럼, 빌보드 댄스 차트의 정상으로 도약한 곡의 승승장구는 걷잡을 수 없이 곳곳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에 <은하철도 999>의 작가 ‘마츠모토 메이지’ 가 전 트랙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 <인터스텔라 5555>가 주어지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전폭적인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전성기가 찾아온 것이다.

상업적 성공을 가져온 곡이 ‘One more time’ 이라면, 장기적 관점에서 전지구적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것은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였다. 몇 가지 단어로 이뤄진 짧은 문장으로 얽힌 가사와 이에 톱니처럼 상응하고 현란하게 움직이는 훵크(Funk) 사운드가 자리한 이 곡은 특유의 리듬감과 재치 있는 노랫말로 흥미를 끌며 수많은 패러디 영상을 낳았다. 물론 두 곡과 더불어 앨범의 모든 트랙이 과거 타 아티스트의 곡을 절묘하게 짜깁기한 결과물이라는 사실이 후에 밝혀지면서 큰 논란을 낳기도 했지만, 이를 감안할 만큼의 놀라운 샘플링 실력이 주목받으면서 되레 명반으로 칭송받는 해프닝이 발생하기도 한다. 훗날 2007년, 카니예 웨스트는 이 곡을 다시 한번 샘플링하며, 일렉트로닉과 힙합의 극적 조우를 성사시킨 ‘Stronger’ 를 통해 입지적 성공을 거둔다.

지금이 알맞은 시간이 아닐지 몰라

내가 걸맞은 사람이 아닐 수도 있어

하지만 우리 둘 사이에는 무언가 있어...’  – ‘Something about us’  中

그들은 인간과 기계의 조화를 꿈꿨다. 초기 전자 음악의 시대를 연 독일의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The Man-Machine> 속 의지를 계승했다. <Discovery>가 단순 춤추기 좋은 역동성 외에도, 의도적으로 입력된 쓸쓸함과 애틋함이 존재하는 이유다. 상반된 기조지만 저마다의 사랑을 노래한 ‘Digital love’ 와 ‘Something about us’ 의 경우가 그랬다. 딱딱한 로봇의 금속성 이미지, 그러나 그 안에는 누구보다 부드럽게 파동을 일으키는 아련한 온기가 있었다. 앨범 한켠 조용히 자리한 이 노래가 기억에 남아 지금까지 회자될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이 차가운 신시사이저 조율만이 아닌, 심장 깊숙한 곳에 파고들 줄 아는 곡을 쓸 수 있는 아티스트였기 때문이다.



시도와 실패, 그리고 부활

Technologic’ , <Human After All>, 2005

Television rules the nation / Crescendolls’ , <Alive 2007>, 2007

뼈대만 남은 기괴한 꼭두각시 인형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단조로움 속 반복되는 인간의 삶을 풍자하듯 읊는다. 다소 당혹스러운 ‘Technologic’ 의 그로테스크한 단상이다. 음악적 조명은 여전히 인간과 기계 사이의 ‘관계’ 를 비추고 있었지만, 이번에는 어감이 조금 다른 ‘인류와 기술’ 이 빚어낸 마찰이었다.

2005년 등장한 3집 <Human After All>에는 우주 유영의 몽롱한 낭만과 댄스홀의 찬란한 열기는 없었다. 오직 발전만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의 이면과 그로부터 도래할, 인간미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조지 오웰의 ‘1984’ 가 경고하던 참혹한 미래상이 담겨 있을 뿐이었다. 땀으로 흥건해진 무대로의 진출을 권하던 음악은 어느새 차갑게 식어버린 채 철저한 강압과 지배 어투 아래 놓였고, 능란한 멜로디 라인은 헤비한 기타의 전율과 단선적 파열음으로 둔갑했다. 모두가 깜짝 놀란 과감한 변신이었다.

음반은 출시 한 달 만에 골드 인증을 따내며 승승장구했고, ‘Robot rock’ 은 댄스 차트에서 상위권을 거두었으며, ‘Technologic’ 은 아이팟 광고 음악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신선함이 낳은 주목은 일시적 현상에 그쳤다. 이들이 건설한 디스토피아는 철학 면에서는 비약이었을지 몰라도 조악한 사운드와 부족한 내실로 더 이상의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사람들은 등을 돌려버렸고, 앨범은 잊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혹평을 그룹 이름으로 내건 그룹인 만큼, 다프트 펑크에게는 무서울 정도로 집요한 자존심이 있었다. 대중과 평단의 외면 가운데 절치부심의 자세로 칼을 갈았다. 그리고 라이브 실황을 담은 ‘Alive’  시리즈의 다음 행선지 <Alive 2007>를 증명의 장으로 삼았다. 이들이 택한 방식은 바로 커리어를 전부 한 데 ‘매시업’ 하는 것. 도통 실현조차 어려워 보이던 계획은 천부적인 믹싱 능력 아래 우수하게, 그리고 압도적으로 집행되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다소 저평가 받던 3집을 주축으로 다시 한번 판을 뒤집었다. 완벽한 승리였다. <Alive 2007>이 가져온 라이브 셋은 역사에 남을 최고의 퍼포먼스로 자리 잡았다. 비록 이날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Around the world /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의 몫으로 돌아갔지만, ‘Television rules the nation / Crescendolls’ 는 그 숨 가쁜 현장의 기운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트랙이다. 관객들이 하나둘 따라 부르기 시작하는 순간, 그들이 딛고 일어났다는 실감에 전율이 벅차오를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저장되기 위하여

Get lucky’ , <Random Access Memories>, 2013

Touch’  , <Random Access Memories>, 2013

I feel it coming’ , <Starboy>, 2016

그로부터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그들은 다시 ‘인간성’ 에 주목했다. 정규 4집 <Random Access Memories>(2013)은 과격한 전자음 대신 손때 묻은 아날로그 악기로 디스코의 영위와 황금빛 미러볼에 대한 헌사를 가져온다. 시간의 축적은 영감이 되었고, 경험의 축적은 재산이 되었다. 뉴욕의 리스닝 파티에서 만난 디스코 그룹 쉭(Chic)의 기타리스트 나일 로저스(Nile Rodgers)와 그루브한 창법의 소유자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와 함께 주조한 'Get lucky'는 제2의 전성기를 불러왔다. 그간 디스코와 훵크(Funk)라는 무기를 휘두르는 위치에 있던 그들이, 그 자체로 노스탤지어의 소구체가 되는 경지에 다다른 것이다.

다프트 펑크는 도나 섬머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의 작곡가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를 호출했다. 포스트 펑크 리바이벌 밴드 스트록스의 줄리안 카사블랑카스와 사이키델릭 밴드 애니멀 콜렉티브(Animal Collective) 출신의 판다 베어(Panda Bear), 그리고 소프트 록 뮤지션 폴 윌리엄스(Paul Williams) 등 많은 아티스트가 이 순간을 축복하듯 모여들었다. 그리고 세계 역시 그들을 주목했다. ‘Get lucky'는 빌보드 핫 100의 2위에 랭크되며 밴드 역사상 최고의 영예를 가져다주었다.

<Random Access Memories>는 과거를 빛낸,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도달하고자 했던 영광의 순간을 영원히 담아낼 타임캡슐을 마련했다. 그리고 현재시제에 속한 그래미 어워드 역시 5관왕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어쩌면 해체를 알리는 ‘Epilogue’  영상의 배경으로 ‘Touch’ 를 택한 것이, 인간과 기계의 ‘감촉'을 오가던 그들의 음악을 시사하는 단어이기 때문이며, 명확한 기승전결로 이뤄진 연출이 마치 다프트 펑크가 걸어온 희로애락의 역사를 전부 훑고 쓸어오는 듯한 감정을 주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여러 방면에서도 꾸준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그렇기에 많은 곳에서 그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2010년, 듀오는 게임 프로그램 속 세계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 <트론 : 새로운 시작>의 사운드트랙을 담당하며, 8비트 전자오락의 그리드를 화려하게 독주하는 ‘Derezzed'부터 <블레이드 러너>의 여운을 연상케 하는 ‘End title’의 오케스트라 세션까지의 범주를 거뜬히 소화한다. 또한 카니예 웨스트와 재회하며 2013년에는 실험적인 <Yeezus>의 객원 프로듀서 진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후 2016년 처음으로 그들에게 빌보드 정상의 기록을 안겨준 위켄드(The Weeknd)의 ‘Starboy’ 와 다프트 펑크의 작법이 물씬 풍기는 공전의 히트곡 ‘I feel it coming’ 에 자취를 남기며 건재한 역량을 표하기도 했다.



다프트 펑크가 펼친 음악적 세계는 후세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Homework>가 다진 전초적 발판은 저스티스(Justice)나 모조(Modjo), 브레이크봇(Breackbot)과 같은 신인에게 든든한 등불이 되어 주었고, <Discovery>가 추구한 조화는 전 세계에 전자 음악 기반의 댄스 뮤직 유행의 불씨를 가져왔으며, <Alive 2007>이 남긴 충격적 단상은 스크릴렉스(Skrillex)와 데드마우스(Deadmau5)와 같은 아티스트에게 귀감을 선사했다.

그리고 이제 듀오의 마지막 작품이 된 <Random Access Memories>는 결정적으로 디스코 재림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팬데믹 사태로 고립된 현재에 이르러, 과거 못지않게 성행 중인 디스코, 훵크(Funk)의 전성기는 다프트 펑크의 선지적 태도가 반영된 결과임을 알 수 있다.

현재까지도 정확한 해체 이유조차 공식 석상에서 발표된 바 없기에 이들의 해체가 더욱 아리게 다가온다. 토마스와 기마누엘의 음악이 영면에 이르는 것은 아니어도 이제 더는 ‘다프트 펑크’ 라는 이름으로 역사가 쓰일 일이 없다는 것도 슬픈 사실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들이 남긴 음악만큼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으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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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로운 ‘소울’의 음악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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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Soul)>이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최고 작품은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고의 음악 영화임은 분명하다. 흑인 재즈 피아니스트 조 가드너(제이미 폭스 분), 태어나지 않은 영혼 22(티나 페이 분)의 하루를 그린 이 작품은 반복되는 일상 속 삶의 가치를 다시 묻고, 모든 것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 세계 속 개인을 곱씹게 만든다. 그 핵심 가치의 은유 도구가 음악이다. 영화는 불협화음으로 시작해 영적인 즉흥을 거쳐, 존재 자체로 빛날 수 있는 황홀경을 향해 나아간다.

<인사이드 아웃>에 이어 다시 메가폰을 잡은 감독 피트 닥터는 유년기 음악을 가르쳤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더블 베이스를 연주한 아마추어 재즈 뮤지션이었다. 자연히 재즈의 팬으로 자란 그는 제작 회의 중 우연히 누군가가 언급한 허비 행콕의 온라인 마스터클래스 영상을 시청한 후 주인공 조의 직업을 결정했다. 영상 속에서 허비 행콕은 투어 중 마일스 데이비스와의 합동 공연을 회상하는데, 워낙 큰 무대에 긴장한 나머지 연주 중 그만 음을 틀려버렸음에도 마일스가 곧바로 흐름을 이어 즉흥으로 연주를 진행했다는 일화를 들려준다.

거장의 유연한 대처 일화는 삶의 지향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영화 주제로 이어졌다. 조 가드너는 재즈 뮤지션이었던 아버지를 동경하며 음악가의 길을 걷고자 하나 집안의 반대와 경제적 사정에 부딪쳐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친다. 학교 밴드 아이들과 씨름하면서도 조는 어린 시절 그를 매료시킨 클럽에서 밴드의 일원으로 공연하는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조 가드너의 아이디어, 악기, 연주, 노래가 될 아티스트로 <소울> 제작진은 1986년생 재즈 뮤지션 존 바티스트(Jon Batiste)를 낙점했다. 존은 젊은 나이에도 그래미 어워드 3회 노미네이트 된 실력자이며 현재 '더 애틀랜틱'과 뉴욕 할렘 재즈 박물관의 음악 디렉터, 미국 CBS의 '레이트 쇼 위드 스티븐 콜베어' 쇼 음악 감독을 맡은 대세 뮤지션이다. “영적인 장소에 이르는 과정을 그리며 조화롭고 멜로디가 살아있는, 리듬감 있는 음악”을 생각하며 존은 재즈를 기반으로 한 알앤비, 소울, 클래식 사운드트랙을 자유로이 선보였다.

고전과 현실을 오가는 활기찬 연주가 '누구도 걷다가 멈추지 않는 도시' 뉴욕의 조 가드너를 숨 쉬게 한다. 극 초반부터 화려한 연주로 재즈 클럽에서의 오디션과 들뜬 마음을 표현하더니, 중후반부부터는 '뉴욕 영화'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닐 만큼 도시의 소음과 일상의 사물과 함께 일상의 경이로움을 발굴하는 데 앞장선다.



허비 행콕부터 테리 린 캐링턴, 퀘스트러브 등 신을 이끄는 다양한 뮤지션들이 자문을 더하며 고전에 대한 경의도 잊지 않았다. 데이브 브루벡 쿼텟의 'Blue rondo a la turk', 월터 노리스의 'Space maker', 듀크 피어슨의 'Cristo Redentor' 등 과거의 명곡이 사운드트랙 곳곳에서 변주된다.

“우리 밴드의 음악 연령대는 95세부터 19세까지다!”. 존 바티스트의 자랑스러운 선언대로 <소울>의 음악은 세대 무관이다. 올드 재즈 팬부터 신세대 베드룸 알앤비 싱어송라이터까지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무아지경의 세계 속 자유로이 발걸음을 옮기는 연주의 즐거움과 쾌감이 영화의 주제 의식을 자연스레 옮기는 것은 덤. 1963년 커티스 메이필드가 작곡한 임프레션스의 고전 'It's all right' 역시 존의 손 끝에서 극의 마지막을 잔잔하게 빛낸다. 정말로 '손 끝'이다. 실제로 영화 속 조의 연주 장면은 존의 실황을 촬영해 모션 캡처로 옮긴 결과물이니까.



그토록 바라던 재즈 밴드의 일원이 된 조. 벅찬 감정에 발밑을 제대로 살피지 않다가 그만 하수구에 빠져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가고 만다.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을 닮은 형이상학적 존재 '관리자'들과 무한한 영혼들이 신비로운 풍경을 이루는 이곳에서 음악의 문법도 빠르게 전환된다. 리얼 세션 재즈에서 영롱하고 광활한 앰비언트가 장엄한 소리의 안개를 펼친다.

이 세계의 설계자들이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다. 음악 팬들에게는 나인 인치 네일스로 유명한 이름이다. 1994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에서 온 몸에 진흙을 뒤집어쓰고 인간의 음울과 고통을 절규하듯 토해내던 인더스트리얼 밴드를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던지 이들의 참여 소식은 영화 개봉 전부터 화제였다. 정작 트렌트 레즈너는 “픽사만큼 애니메이션을 잘 만드는 곳은 없다”며 반가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고.

21세기 트렌트 레즈너와 애티커스 로스는 나인 인치 네일스보다 사운드트랙 작곡가로 더욱 유명하다. <소셜 네트워크>, <나를 찾아줘>, <버드 박스>, <맹크>까지 유수의 영화 사운드트랙을 담당했고 특히 2010년 <소셜 네트워크>로는 2010년 아카데미 상을 수상한, 검증된 아티스트다. 그럼에도 <소울>은 듀오의 첫 애니메이션 작업이고 디즈니 픽사 애니메이션과는 꽤 거리가 있는 전자 음악을 선보여왔다.



존 바티스트가 즉흥의 붓질이라면 트렌트와 애티커스는 아티스트의 캔버스 같은 존재다. 장대한 가상공간 곳곳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듀오의 음악은 야심 가득하면서도 포근하며 천진한 디즈니의 성격에 정확히 부합한다.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부터 가상 악기, 사운드 합성을 통해 제작한 소리는 <인사이드 아웃>의 감정, <토이 스토리>의 포근한 무생물 세계와 닮았으면서도 분명히 구분된다. 사후세계 '머나먼 저 세상'부터 어린 영혼들을 교육하는 '유 세미나'까지 유연하게 찰랑이는 청각의 물결이다.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영화처럼 두 '음악 관리자' 들의 연주도 자유로이 교차된다. 하이라이트는 가상 세계 관리자 테리(레이첼 하우스 분)가 존과 22를 뉴욕으로부터 가상 세계로 영혼을 데려갈 때다. 재즈 밴드 연주가 왜곡된 사운드 벽을 거쳐 긴박한 앰비언트 파편으로 제시되는 부분이 긴박하면서도 아름다운 충돌의 순간을 그린다. 친절하게도 트렌트 레즈너는 곧이어 온화한 피아노 뉴에이지로 긴장을 낮추며, 존 바티스트가 바통을 이어 화려한 고전의 세계를 전개한다. 아름다운 앙상블, 화려한 하모니다.



근사한 사운드트랙 덕에 <소울> 은 한 편의 영화임과 동시에 영화의 형태로 비유된 음악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리고 음악은 곧 삶과 동의어다. 하루하루 정신없이 반복되는 일상 속 거대한 '불꽃' 같은 순간을 바라며 삶을 무의미하다 비관할 수 있지만, 관리자 제리(리처드 아이오아이 분)의 말처럼 “불꽃은 삶의 목적이 아니다”.

존재 그 자체로 아름답고 우리에게 하여금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드는 음악, 그 몰입의 과정 속 선물처럼 내려오는 아름다운 순간, 그것이 곧 삶일지니. 훌륭한 작품의 드넓은 저편에 경이로운 음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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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그래미 어워즈 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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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과 공정성이라는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그래미 어워드가 범세계적인 전염병 때문에 행사 날짜까지 옮겼다. 붉은 융단 위에 별들이 쏟아지던 그때 한국은 3월 15일 아침 9시였다.

제63회 그래미 시상식은 무관중인 상태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던 여타의 국내 시상식처럼 익숙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어워드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사회를 맡았던 앨리샤 키스를 대신해 이번에는 언변이 남다른 코미디언 트레버 노아가 마이크를 잡았다. 코로나로 인해 달라진 식순과 돌발상황에 대비함과 동시에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논란의 감정을 내려놓고 축제 자체를 즐기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코로나에 대응하는 방식

매년 특별한 협업 스테이지를 선보이던 그래미가 코로나의 영향으로 그 규모를 줄였다. 대편성의 무대가 압도하던 과거와 달리 대부분의 뮤지션이 간단한 구성으로 자신의 노래를 한 곡씩 부르고 마치며 '2020년'이라는 이름의 플레이리스트를 채웠다. 카메라를 다각도로 활용한 배드 버니와 제이 코르테즈의 'Dakiti', 복고적인 색채와 조명이 잘 묻어난 실크 소닉(앤더슨 팩과 브루노 마스)의 'Leave the door open' 무대가 무관중에 의한 중계의 이점을 적절히 살린 예다.

인상적인 부분은 공연 중간중간 카메라에 잡히는 뮤지션들의 얼굴이다. 관중이 없기에 공연자가 관객이 되고, 관객이 다시 공연자가 되는 이 모습은 마치 아티스트끼리 여는 뒤풀이 파티와 같았다. 자신의 차례가 끝난 뒤 술인지 물인지 모를 잔을 들고 앉아 있는 배드 버니부터 카디 비와 매간 더 스탈리온의 무대를 미친 듯 즐기는 포스트 말론까지 재밌는 장면이 아닐 수가 없다. 관중이 없다고 열기가 식지는 않았다.



코로나 대응 공연보다 대단하고 놀라웠던 점은 따로 있다. 경영난에 처한 내슈빌의 스테이션 인, 뉴욕의 아폴로 시어터 등 총 4곳의 소규모 공연장 직원들이 주요 부문 후보를 소개하며 공연 업계의 실정을 알린 부분이다. 국내에서도 화제인 이 문제에 대해 대중음악의 본토인 미국, 그중에서도 권위 있다는 단체에서는 이를 어떻게 조명하고 고민하는지 엿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올해의 레코드 부문 후보의 인터뷰를 티저로 만들거나, 공연을 녹화본으로 대처하며, 화상으로 시상식에 참여하는 등 세심한 준비가 돋보였다.



역사의 절차를 밟아가는 방탄소년단

한국 가수가 그래미 어워드에서 단독 공연을 할 줄이야. 녹화 중계였지만 여의도 빌딩의 헬리패드까지 올라가서 노래하는 BTS를 전 세계가 지켜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무대 사이즈로만 보면 제63회 그래미 시상식 무대 중에서는 최대 크기였다. 제61회에서는 시상자로, 제62회에서는 릴 나스 엑스와 함께 노래했던 이력을 생각하면 단계적으로 나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퍼포머로 참여한 것뿐만 아니라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에도 'Dynamite'로 이름을 올렸다. 'Rain on me'를 부른 레이디 가가와 아리아나 그란데에게 아쉽게 트로피가 넘어갔지만 후보에 오른 것만으로도 큰 성과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해외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카디 비의 'WAP' 같은 노래와 비교해 '건전' 가요&가수로 불리고 있다니 생각도 못 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논란을 잠시 잠재우다.

인종차별부터 남녀차별까지 매년 습관처럼 욕을 먹던 레코딩 아카데미(레코드 예술 과학 아카데미, NARAS)가 심사위원단을 대폭 개편하면서 제61회 그래미 시상식에서는 본상을 차일디시 감비노에게 2개, 두아 리파와 케이시 머스그레이브스에게 각각 1개씩 수여해 조금은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작년 빌리 아일리시에게 주요 부문 4개를 쓸어주며 '몰아주기' 논란을 다시 가중했다.

빌보드 HOT 100에서 'Blinding lights'로 1년 동안 10위권을 지킨 대기록의 주인공 위켄드가 제 63회 그래미 어워드에서 후보 무관에 그치자 그는 영원한 보이콧을 선언했다. 시상식 전부터 연일 얘깃거리였다. 이러한 여러 문제를 의식한 듯 이번에는 시상식의 주요 부문을 안전하게 '나눠주기'로 결정했다. 올해의 레코드, 앨범, 노래, 그리고 신인상을 빌리 아일리시의 'Everything I wanted', 테일러 스위프트의 <Folklore>, H.E.R의 'I can't breathe', 그리고 메간 더 스탈리온이 수상하며 장내 가장 큰 갈채를 받았다.



후보만 봐도 반 이상이 여성이고 흑인과 백인이 반반이다. 그중 'I can't breathe'는 BLM을 대표하는 노래다. 위켄드 개인과 팬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며, 그의 사건은 분명 레코딩 아카데미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지만, 올해의 본상 결과는 아카데미 위원회도 이제 대중과 사회의 눈치를 보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제63회 그래미 시상식의 주인공

진정한 주연은 따로 있었다. 9개 부문의 후보에 오르고 4개 부문을 수상한 그의 이름 비욘세. 제63회 그래미 어워드 후보와 수상에서 최다를 기록했지만 이는 귀여운 수준이다. 올해 베스트 알앤비 퍼포먼스, 베스트 랩 퍼포먼스, 베스트 랩 송, 베스트 뮤직비디오를 거머쥐면서 그는 역대 총 28개의 그래미상을 따냈다. 여성 최다 수상자임과 동시에 남자를 포함하면 거장 프로듀서 퀸시 존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공동 2등이다.



비욘세에 이어 주인공이 또 있다. 본상을 2년 연속 수상한 빌리 아일리시다. 작년 주요 부문을 싹쓸이한 후 그가 받은 '레코드 오브 더 이어'의 타이기록은 U2와 로버타 플랙만이 가진 진기록이다. 빌리 아일리시에 이어 주인공이 또 있다. <Fearless>, <1989>, 그리고 2020년 포크를 시도하며 예술성을 인정받은 <Folklore>로 '앨범 오브 더 이어'를 3회나 수상한 테일러 스위프트다. 엔지니어를 제외한 뮤지션으로서는 프랭크 시나트라, 스티비 원더 등과 같은 레전드들과 동일한 선상에 섰다. 빌리 아일리시와 테일러 스위프트의 나이를 생각하면 이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음악으로 치유하다

코로나의 영향인지 지난 한 해도 우리의 곁을 떠나간 사람들이 많았다. '로큰롤의 왕' 리틀 리처드, '겜블러' 케니 로저스, 작년 그래미 평생 공로상을 받은 존 프라인, 코로나 위로송 'You'll never walk alone'의 주역 제리 마스던 등 트리뷰트한 뮤지션만 이 정도다. 팬데믹 상황의 힘든 위기 속에서 우리가 그들의 음악으로 치유를 받고, 한데 모여 떠난 이들을 기리는 이런 자리는 그래미 어워드가 아니면 힘들었을 것이다. 집에서만 머무르던 2020년 '음악'은 가장 큰 치료제였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시상식은 성공에 가까웠다. 본상 수상자와 각종 기록을 세운 뮤지션들이 이를 증명한다. 여성 컨트리 뮤지션 미란다 램버트, 마렌 모리스, 그리고 흑인 여성 컨트리 뮤지션인 미키 가이턴의 공연까지 집중 조명하며 형식적인 노력까지 놓치지 않았다. 아시아 가수 BTS도 빼놓을 수 없다.



물론 레코딩 아카데미 심사위원들은 다양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신경 쓰기도 전에, 흑인과 여성 뮤지션으로 대표되는 다양성의 세상이 이미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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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베카 블랙, 최악의 가수를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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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작'은 무엇일까? 뜻을 묻는다면 '잊히게 될 작품'이라 답하겠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쏟아지는 창작물들, 그 와중 준수한 결과물을 움켜쥐려 애쓰다 보면 나머지는 붙잡으려 해도 기억 속에서 떠내려가고 만다. 평범한 것들에도 그럴진대 미진한 완성도에는 더욱 여유를 두기 어렵다.

그런데 어떤 졸작은 상식 이상으로 형편없는 탓에 폭발적인 조롱이 쏠려 망각의 운명을 거부하고 유명해진다. 인터넷 용어로 '밈(Meme)'이 되어 유행 요소로 자리 잡기도 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재평가가 이루어지며 명예를 회복 하기도 한다. 대개 사소한 범작은 변화를 일궈내지 못하지만, 거대한 실패는 정말로 성공의 어머니가 된다.

레베카 블랙(Rebecca Black)은 한때 역사상 최악의 가수였다. 그는 인터넷 역사에 영원히 기록될 졸작 노래 'Friday'의 주인공이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레베카는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로 유튜브에서 가장 많은 '싫어요'를 받은 사람이 됐다. 팝스타 저스틴 비버의 'Baby'의 '싫어요'를 뛰어넘은 120만 개의 '싫어요'였다. 2021년까지 유튜브 조회수는 2억 회에 달한다.

지금은 정상의 자리에서 내려왔지만 여전히 2021년 기준 381만 '싫어요'를 기록하며 유튜브 역사상 가장 많은 '싫어요' 순위에서 20위에 올라있다. 대개 '싫어요'는 많은 '좋아요'가 감당해야 할 세금 같은 것이지만, 'Friday'의 경우 '좋아요'와 '싫어요'의 비율이 1:3에 달한다. 이것도 시간이 흘러 많이 개선된 것으로 한때는 '싫어요' 비율이 88%에 달하기도 했다.

2011년 당시 13세였던 레베카 블랙은 가수가 아니었다. 춤과 보컬 레슨을 받긴 했지만 프로 뮤지션으로의 의식은 희미했다. 'Friday'는 노래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레베카의 부모님이 ARK 뮤직 팩토리(ARK Music Factory)라는 작은 회사에 4천 달러를 지불하고 받은 곡과 뮤직비디오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한 번이라도 'Friday'를 들어보면 잔인한 '싫어요' 수치가 근거 있는 의사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금요일에 들떠 신나는 주말을 보내자는 주제 아래 '어제는 목요일, 오늘은 금요일, 내일은 토요일, 그다음은 일요일', '즐거워 즐거워 즐거워 즐거워' 등 작정하고 쓰기도 어려운 노랫말이 이어진다. 불안한 목소리는 기계 보정으로 해결해 더욱 기이하게 들린다. 여기에 꽤 공을 들여 촬영한 뮤직비디오에서 단 하나의 표정으로 일관하는 레베카 블랙의 어색한 연기가 정점을 찍었다.

'Friday'는 공개와 동시에 유명해졌다. 너무 못 만들었다는 이유로 조회수가 폭주했고 셀 수 없이 많은 패러디 영상이 파생됐다. 그해 빌보드 싱글 차트 58위까지 오른 곡이 되며 상업적으로도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열세 살 소녀에게 세간의 조롱과 혐오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레베카 블랙은 왕따를 당해 학교를 자퇴해야 했으며 세계적으로 달리는 악성 댓글에 우울증을 앓았다. 유튜브 영상을 유료화하려는 ARK와 법정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대부분이 기억하는 레베카 블랙의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팝 음악에 관심이 있다면 이후 팝스타 케이티 페리의 'Last friday night'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레베카의 모습을 기억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가수로 데뷔하게 된 레베카가 이후에도 꾸준히 가수 활동을 이어나갔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드물다.

'Friday' 이후에도 레베카는 꾸준히 싱글을 발표하며 불현듯 찾아온 유명세를 기회로 삼았다. 2013년에는 'Friday'의 후속곡 'Saturday'를 발표하며 즐기는 모습을 들려줬고, 팝스타 마일리 사이러스의 노래를 커버하며 실력도 쌓아나갔다. 2016년 본인의 이름을 걸고 발매한 싱글 'The great divide'는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기계음 가득한 목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준수한 가창력으로 무대를 즐기는 레베카 블랙이 있었다. 올해 초에는 싱글 'Girlfriend'를 발표하며 퀴어 커뮤니티에 대한 응원과 지지 메시지도 밝혔다. 비로소 사람들이 'Friday' 대신 아티스트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레베카 블랙은 'Friday'의 10주년 기념 리믹스 버전을 공개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다. 2010년대 초 인기를 얻은 일렉트로닉 듀오 3OH!3, 베테랑 뮤지션 빅 프리디아와 신진 팝 가수 도리안 일렉트라가 레베카 블랙의 새 출발을 함께했다. '하이퍼 팝'이라 불리는 스타일의 대표 그룹 100 겍스(100 gecs)의 딜런 브래디가 프로듀싱한 곡은 세련된 케이팝처럼 다양하게 변주되고 왜곡된다. 미래 지향적인 옷을 입고 웃음 짓는 뮤직비디오 속 레베카 블랙은 수많은 밈과 함께 스스로를 희화화한다.

리믹스 발표 후 가진 '빌보드'와의 인터뷰에서 레베카 블랙은 10년 전 'Friday'를 이렇게 회고했다. “저는 13살이었어요!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죠. 하지만 그게 13살 아닌가요? 이제 많은 사람들이 이 곡을 사랑하고 있잖아요. 정말 멋져요.”

누구든 실패할 수 있다. 극소수의 천재들만이 처음부터 성공한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비로소 무언가를 만들어내거나 그러지도 못하는 것이 우리의 보편적인 삶이다. 그 과정에서 전 세계인이 '싫어요'를 누르는 최악의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 동시에 운명은 공평하다. 향후 레베카 블랙이 아티스트로 성장할지 'Friday'에 머무를지는 모르지만, 고통스러운 조롱과 시련 속에도 성실했고 '유명한 졸작'의 주인공임을 자랑스레 자청하며 대중의 시선을 바꿨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제 누구도 그를 미진하거나 형편없다고 조롱하지 않는다.

작품은 잊힐지언정 사람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결과물에 대한 평가는 냉철하되 창작가에게는 따스하게 다가서야 하는 이유다. 졸작에도 기회는 있다. 함께 가라앉거나, 실패를 디딤돌 삼아 다음 단계로 성장하거나. 선택은 도전하는 자만이 가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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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만인들의 마음에 음악으로 접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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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9월13일 추석시즌부터 겨울 12월까지 장기상영에 들어가 서울에서만 67만 관객을 동원, 그해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사용된 노래와 연주곡을 묶어낸 OST(오리지널 사운드트랙)앨범이 80만장 이상 판매되며 영화의 흥행기록에 버금가는 명성을 획득했다. 그야말로 쌍끌이 히트, 겹경사였다. 한석규와 전도연, 두 남녀주연배우의 호연이 물론 영화의 흥행에 중대한 견인차 역할을 했지만, 영화음악의 영향력 또한 간과할 수 없는 화제의 명화.

폴라로이드 즉석카메라와 PC통신을 주요 소품으로 활용해 시대상을 반영한 영화 <접속>은 동시대의 낭만적 사랑이야기 속으로 관객을 초대했다. 극에서 차지하는 음악의 지분도 마찬가지, 로맨틱한 무드로 사랑의 감정을 불러내는 노래들이 적재적소에 사용되었다. 그렇게 영화의 장면에 유효 적절히 조응하도록 삽입된 노래들은 연이어 인기를 누리면서 영화팬과 음악애청자들의 취향을 저격했다. 디지털 네트워크를 통한 X세대 남녀의 러브스토리에 음악은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충만했다. 그야말로 시대를 초월해 구관이 명관임을 다시금 인지하게 만든 셈.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과 테크노(Techno) 음악이 최신 유행하던 1990년대 후반, CD가 음반시장을 재편하던 그 대세 안에서 “길보드”차트를 점령할 만큼 그 여파는 실로 대단했다.



사라 본(Sarah Vaughan)의 'A Lover's concerto'와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는 그중에서 가장 큰 사랑을 받은 곡으로, 이후 라디오 신청곡으로도 꾸준히 애청되면서, 영화의 주제가처럼 각인되었다.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피카디리 극장 앞 광장에서의 종영장면과 함께 울려 퍼진 '연인들의 협주곡'과 카페에서 읊조리듯 흘러나온 '연푸른 눈동자'는 우리에게 그렇게 영화음악으로 기억에 새겨졌다.

영화는 한석규가 출연한 라디오 심야프로그램 PD 동현과 전도연이 분한 홈쇼핑 콜센터 상담사 수현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옛사랑을 잊지 못하는 동현과 친구의 애인을 남몰래 짝사랑하는 수현은 각각 “해피엔드”“여인 2”라는 대화명으로 인터넷 PC통신에서 만나 서로에게 점점 빠져든다. 사랑의 아픔을 지닌 둘은 모두 상실과 외로움 속에 사이버 채팅을 통해 마음 속 비밀까지 공유하는 사이로 발전하고, 음악은 두 남과 여의 관계에서 중요한 매개역할로 작용한다.



소소한 일상에서부터 속 깊은 마음 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만큼 인터넷에서 둘은 자유롭게 대화하지만, 실상 현실에서는 모순되게도 서로를 전혀 알아보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가고, 둘의 엇갈림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이 연출되는 장소가 레코드가게 좁은 계단이라는 점도 음악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대목. 신인 감독 장윤현의 섬세한 연출력과 더불어, 영화 장면 속에서 주인공의 심리에 접속해 공감할 수 있게 한 선곡이 특출하다. 우선 영화에 주제곡처럼 쓰였을 뿐만 아니라, 동현과 수현의 만남을 가능케 했던 곡이 바로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의 'Pale blue eyes'다.

동현의 옛 연인 영혜가 즐겨듣던 이 곡을 수현이 방송에서 우연히 듣게 되고, 다음날 “여인 2”라는 아이디로 이 곡을 신청하면서 동현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루 리드(Lou Reed)가 소곤거리듯 낮게 읊조리는 가창이 조용히 가슴에 와 닿는 이 곡은 한석규의 동현을 위한 곡이다. 이 노래로 관객은 떠나간 옛 사랑에 대한 동현의 그리움과 다가오는 새로운 연인을 향한 기다림의 정서를 미리 짐작하게 된다. 특히 영화의 인물설정 상 라디오 음악프로그램 PD인 남자주인공의 이 곡에 대한 애정은 진정한 애호가가 아니면 잘 몰랐던 밴드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대중적으로 알렸다는데 의미가 남다르다.



PC통신으로만 얘기를 나누던 남여주인공이 서로 만나게 되는 엔딩장면에 쓰인 곡은 1966년 재즈 가수 사라 본(Sarah Vaughan)이 다시 불러 히트한 재즈 풍의 노래, 원래 바흐(Johann Sebastian Bach)가 두 번째 아내 안나 막달레나를 위해 작곡한 춤곡(Minuet)을 1965년 흑인 여성 3인조 그룹 토이즈(The Toys)가 노래해 빌보드 핫100차트 2위까지 올려놓은 'A lover's concerto'(연인들의 협주곡)다. 밝고 경쾌하게 박진하는 리듬과 호소력 짙은 그녀의 보컬은 행복한 결말과 함께 빛나면서 이 곡을 최고의 라디오 애청곡 목록에 올려놓았다.

“저는 눈물이 안나요... 정말 바보 같죠.”란 독백에서 전해지는 것처럼 수현의 아픔을 온유하게 보듬어 주는 곡은 'The look of love'(사랑의 모습), 영국이 낳은 위대한 소울 여가수 더스티 스프링필드(Dusty Springfield)가 라틴 룸바 리듬을 실은 재즈 반주에 맞춰 불렀다. 작곡가 버트 바카락(Burt Bacharach)과 작사가 할 데이비드(Hall David) 명콤비가 공작해낸 사랑의 발라드로, 이 노래 역시 많은 팝송 팬들의 심금을 울리며 애청되었다.

이외에도 탐 웨이츠(Tom Waits)의 작별과 회한을 노래한 'Yesterday is here'(어제는 여기에)와 록 밴드인 트록스(Troggs)의 1966년 발표 히트곡 'With a girl like you'(당신 같은 여인과 함께)까지, 다양한 팝의 클래식들이 수현과 동현의 내면을 대변하는 한편, 송지예와 방대식이 두 남녀주인공이 되어 대화하듯 부른 '나보다 더 외로운 사람에게'는 'The look of love'와 유사한 라틴 재즈풍의 곡으로 영화에 일관된 기조의 분위기를 유지해준다.



별도의 사운드트랙앨범으로 발매된 음반에서도 파악할 수 있듯 영화 <접속>의 분위기를 아우르는 음악은 재즈, 엄밀히 퓨전 재즈적 감성으로 충만하다.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 드럼과 베이스를 기본 악기구성으로 '연인들의 협주곡(A lover's concerto)'과 바흐의 클래식원곡의 느낌을 함유한 연주곡 '사랑의 송가'는 그 대표적 증거. 이 곡을 필두로 '거리에서', '해피엔드&여인 2', '방황'로 이어지는 Cucina Acoustica(쿠치나 어쿠스티카)의 연주가 때론 밝게 때론 차분한 사색조로 화면을 채워준다. 이들 곡에서 느껴지는 감성적 터치는 영화 <라스베가스를 떠나며>(Leaving Las Vegas)나 <사랑의 행로>(The Fabulous Baker Boys)의 음악처럼 영화에 대한 시각적 인상을 도회적 세련미로 물들이는 한편, 극적으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안한 로맨스 스토리를 관통한다.

사실 영화의 사운드트랙에 실린 스무드 재즈(Smooth Jazz) 스타일의 반주와 숨은 명곡들을 선정해 결합해낸 음악감독 조영욱의 뛰어난 감각과 노고가 아니었다면 영화 <접속>을 지금까지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영화 색깔에 어울리게 화려하지 않고 단순하면서도 개인적인 느낌을 주는 음악을 고른 것이 젊은 관객들의 감성과 맞아떨어진 것 같다”고 어느 인터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이 영화의 성공의 반은 국내최초 영화음악 프로듀서로 공인된 조영욱의 공이 컸다.

추억에 매달리는 주인공들의 인물됨과 취향에 맞춰 옛 노래이면서도 당시 젊은이들에게는 새롭게 가닿을 수 있는 노래를 주로 선택한 사운드트랙 구성이 주효했던 것이다. 또한 노래에 대한 '저작인접권'이나 원곡 작곡가가 지닌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던 당시, 빈약한 영화음악예산으로 영화의 질과 음악의 상업성을 모두 만족시키려한 노고의 결실이었다. 그렇게 영화 <접속>은 만인들의 마음에 음악으로 접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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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힙합에서 살아남기’ 혹은 ‘힙합으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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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이 음악을 듣다간 깜짝 놀랄 가능성이 크다. 카디 비와 함께한 싱글 'WAP'으로 한 번, 비욘세가 리믹스로 참여해 힘을 실어준 'Savage Remix'로 또 한 번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을 수놓은 메간 더 스탈리온(Megan Thee Stallion)의 곡 'Body'의 이야기다. 무슨 말인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재빨리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재생해보자. 단박에 이유를 알게 될 거다.

여성의 신음이 3분이 채 안 되는 짧은 곡을 가득 채운다. 그야말로 정말 가득 채운다. 잠깐 잠깐의 효과음이 아니라 아예 신음이 사운드 소스가 되고 비트가 됐다. 적나라한 음성에 곡을 멀리하려 해도 이것 참 난감하리만큼 메인 멜로디가 선명하다. '하악 하악'하는 교성 위에 'Body'를 연음으로 연속해 뱉어 '바디야리야리야리'하는 후크 라인을 벗어날 방법이 없다. <청산별곡>의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버금가는 중독성이다.

이게 바로 숨어 듣는 명곡인가 하는 생각을 할 때쯤 짜릿한 해방감이 몰려온다.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말하기 위해 그 지난했던 정숙한 여성 되기의 정반대 이미지를 끌어오다니. 시원하고 강렬한 전유이자 날카로운 전복이다. 대중문화 속에서 오랜 시간 관습적으로 규정해온 여성의 이분화, 즉 '성녀'와 '성녀가 아닌 자'의 프레임을 벗어나 당당히 그 위에 섰다. 그것도 힙합을 통해서.



여성은 언제나 잣대 위에 올랐다. 혹은 일종의 소재나 수단으로 자리했다. 남근의 음악이라 일컬어지는 록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코닉한 로고로 여전한 생명력을 과시 중인 영국 밴드 롤링 스톤스의 대표곡 '(I can't get no) satisfaction'에서 그들이 느낄 수 없고 만족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 로커의 마초성을 증명하기 위해 여성이 소환됐고 때문에 여성 뮤지션들은 남성처럼 노래하거나 오히려 여성성을 감추는 무성(asexual)의 전략을 취했다. 남성을 흉내 내는 전자는 윌슨 자매가 만든 밴드 하트(Heart), 재니스 조플린이 있으며 후자는 트레이시 채프먼, 수잔 베가 등의 포크 뮤지션이 떠오른다.

그중 힙합은 유달리 경직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물론 TLC, 니키 미나즈, 카디 비 등을 경유해 주체적 여성을 손에 쥐고 달린 음악가들의 궤가 있지만 그에 반하는 여성 대상화의 벽은 견고하다. 여전히 많은 래퍼가 '퍽(Fuck)'과 '비치(Bitch)'를 마침표처럼 사용한다. '이것이 힙합의 정신이다', '표현의 자유다'를 넘어서 '진짜 나쁜 여자들을 나쁘다고 말하는데 뭐가 문제냐' 라는 격론이 앞 다퉈 튀어나온다. 힙합은 원래 그렇다는 본질주의적 접근. 설사 그 본질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성 차별적이라면 변해야 한다.

힙합을 즐기려면 검열과 염려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혹시 내가 '비치'는 아닌지, 그들이 말하는 '퍽'이 혹시나 나를 향하는 것은 아닐지. 노래 하나 듣는데 뭐 이렇게까지 정치적 올바름을 꺼내오는가 싶기도 하겠지만 언제고 대상화의 대상이 될 수 있기에 힘주어 철창을 걸어 잠그는 쪽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힙합의 '힙(hip)'함을 따라가기에 장애물이 너무 많다.



'Body'는 그 장애물을 부수고 뒤집는다. 몸은 가장 먼저 사회에 귀속된다. 요새 회자하는 '말하는 몸'이라는 문장은 몸 안에 적힌 역사와 몸에 가해지는 이중, 삼중의 잣대를 잘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스탈리온은 몸을 가져와 말한다.

“Body crazy, curvy, wavy, big titties, lil' waist / 미친 몸매, 매끈, 늘씬, 큰 가슴, 호리호리한 허리”

세상이 원하는 틀에 맞춰 몸을 다져도 이를 부각해서는 안 되는 묘한 엄숙 문화를 뒤틀어 당당하게 자기 어필의 포인트로 삼았다. 힙합에서의 여성이 발화하지 않는 혹은 못 하는 존재였다면 노래 속 그는 다르다. 여성 스테레오 타입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감을 뽐낸다. 일면 무례하고 그래서 불경한 여성이 될 수 있겠지만 꼿꼿한 기지에서 힘 있는 균열이 뻗어 나온다. 남성성을 모방하거나 여성성을 거부하지 않으며 관습적인 여성성의 덫을 피해 나가는 그의 서사에 호쾌한 자기다움이 묻어난다.

유로 댄스로 유럽과 미국을 이어낸 디스코의 여왕 도나 섬머의 'Love to love you baby'에도 신음이 담겨있다. 이는 불세출의 하드록 밴드 건즈 앤 로지스의 'Welcome to the jungle'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이때의 소리는 보컬 액슬 로즈의 작품이긴 하지만 이 연기의 의도만은 다른 곡과 같다. 심지어 그들의 곡 'Rocket queen'은 성관계 중인 여성의 신음을 그대로 녹음해 사운드로 삼았다.



이렇듯 신음이 노래에 포함된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신음이 여성의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로 사용된 경우는 많지 않다. 'Body'의 함의는 이처럼 다채롭다. 그는 은밀한 것으로 치부되던 여성의 신음을 앞세워 자신을 그린다. '힙합에서 살아남기' 위해 몇 번의 빗장을 걸어왔다면 그의 곡은 여성이 '힙합으로 살아남기'에 적합한 새 활로를 개척했다.

'Body'에는 힘센 여성성의 발화가 있다. 그의 존재 앞에 성적 자유인가 혹은 남성의 대상화가 아닌가 하는 물음이 따라붙을 것이며 나아가 예술이냐 외설이냐 하는 철옹성의 논박이 뒤이어 올 것 역시 확실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Body'를 풀어낼 맥락은 많다. 오랜 시간 괄호 쳐지고 억압된 여성의 욕망을 멋들어지고 화려하게 해체했다. 여성이 이렇게도 말할 수 있고 밝힐 수도 있다. 아찔하고 짜릿한, 힙합으로 살아남기. 메간 더 스탈리온의 'Body'가 신선하고 가치 있는 이정표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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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의 화려한 부활 그 아래 불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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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오래된 레코드 가게를 운영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 레이첼 조이스의 소설 『뮤직숍』은 시대의 흐름 속 왜 다시 엘피(LP)가 사랑받는지를 명쾌히 요약한다. (엘피는 음반 규격을 의미하는 용어로 아날로그 음반을 통칭하기 위해서는 '바이닐'이라 지칭하는 것이 맞다.)

"시디(CD)가 여러모로 편리하긴 하지만 엘피판의 그윽하고 멋스러운 느낌을 따라갈 수는 없어. 다들 두고 보면 알겠지만 시디의 유행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거야. 소장 가치가 없으니까."

'뮤직 숍'의 예언대로 바이닐 판은 시디의 권위를 박탈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LP는 2,754만 장이 팔려나가며 1991년 이후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2006년 이후 꾸준한 판매 증가세를 보이더니 1986년 이후 34년 만에 시디 매출을 뛰어넘은 것이다. 피지컬 음반 소비가 나날이 줄어드는 가운데서도 시디 매출이 전년 대비 48%나 감소할 때 LP는 꾸준한 구매 상승률을 보여왔다.

5년 전쯤만 해도 레코드 숍에 들러 바이닐을 구입하는 이들은 이른바 '레트로 마니아'들이었다. 벌집 같은 박스 속 가늠할 수 없는 시간과 수없이 많았을 공간의 이동을 거쳐 도착한 중고 판들 가운데 나만의 보물을 찾아 나서는 '디깅(digging)' 족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관심은 사뭇 다르다. 코로나 19로 한 풀 꺾이기 전 '서울 레코드페어'와 같은 레코드 행사장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지금도 한정반을 구하기 위해 매장 앞에서 줄을 서고 인터넷 예약을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바이닐의 위상 변화를 체감할 수 있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다. 첫째는 감성이다. 바이닐을 통해 음악을 듣는 행위 자체가 MZ세대에게 쿨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민 없이 터치 몇 번이면 평생 들어도 모자랄 수의 노래를 추천 받는 스트리밍 시대의 음악 감상은 익숙하고 건조하다. 바이닐 감상은 다르다. 오래도록 판을 고르고, 턴테이블을 세팅하고, 오디오 시스템을 만든 다음 바늘을 올리기까지의 섬세한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 한번 『뮤직숍』의 한 구절을 가져온다.

"나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음악이 좋아요. 엘피판을 들으려면 제법 번거로운 과정이 있죠. (…) 엘피판은 반드시 손으로 들고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흠집이 나 판이 튀기도 해요. 엘피판은 세심하게 신경 써주어야 깊고 그윽한 음질로 보답하죠. (...) 삶을 축복해 주는 음악을 들으려면 기꺼이 그 정도 수고쯤은 감수해야죠."

과장 좀 보태 신세대 음악 팬들에게 바이닐 감상은 경량화된 형태로만 존재했던 음악 감상을 신성한 의식으로 끌어올리는 새로운 경험이다. 음악을 듣지 않아도 좋다. 세워두기만 하면 인테리어 소품, 인스타그램 계정을 장식할 좋은 도구가 된다. 심미적인 차원에도 타 매체에 앞선다. 제작사들도 이를 파악하여 레코드판에 색을 입힌 컬러 바이닐을 제작하고, 일반 앨범 커버와 다른 감각적인 새로운 디자인을 채택하며 음악 감상 이상의 가치를 부여한다. '어떤 음악을 듣느냐'보다 '어떻게 음악을 듣느냐'가 중요해진 시대에 LP의 강점이다.



두 번째 이유는 래플(raffle)과 리셀 문화다. 복권 혹은 응모권을 의미하던 래플은 선착순 판매 드롭(Drop) 마케팅과 반대되는 추첨식 판매 마케팅이다. 기업들은 고급 운동화 혹은 한정판 패션 아이템 구매의 기회를 응모와 추첨으로 진행하고, 당첨된 소비자들은 제품을 구매한 다음 직접 사용하거나 구매한 물건을 되파는 리셀을 선택한다. 래플 마케팅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신발 시장에서는 신발과 재테크의 합성어인 '슈테크', '스니커 테크'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리셀' 문화가 일반화되어있다. 

최근 레코드판의 소비 유형도 이와 유사한 흐름을 보인다. 바이닐 레코드를 제작하는 공장의 수가 줄어들며 긴 제작 기간과 한정된 수량의 리스크를 감당해야 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품귀 현상'을 불러오며 희소가치를 높였다. 오래전 제작된 데다 보존 상태까지 좋은 제품이 빈티지 숍에서의 상품처럼 비싸게 거래되고, 인기 가수들은 그들의 신보를 한정판으로 제작해 일반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제품임을 강조한다.

일련의 흐름에 힘입어 한국 엘피 시장은 작지만 탄탄한 구매층을 확보하며 저변을 넓히고 있다. 2016년 28만 장에 그쳤던 국내 엘피 판매량은 2019년 60만 장까지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에는 2019년 대비 73.1% 성장세를 보였다. 세월의 흐름에 사라진 공장이 다시 문을 열고, 유명 아티스트들부터 케이팝 아이돌까지 한정반부터 일반반까지 다양한 판을 발매하고 있다. 

2,000장 한정 제작된 백예린의 첫 정규 앨범 <Every letter I sent you.> 한정판이 발매와 동시에 품절됐고, 16년 만에 바이닐 판으로 재발매된 이소라의 <눈썹달> 한정판 3천 장이 예약 판매 1분 만에 매진됐다. 이외에도 듀스의 <Deux Forever>, 이승환의 <Fall To Fly>, 김동률의 <오래된 노래> 등이 레코드판으로 다시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중고 거래도 만만치 않다. 일례로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 담배 연기 디자인의 초반 엘피는 중고 시장에서 1,000만 원에 거래된다. 아이유의 <꽃갈피> 미개봉 한정 LP는 중고가가 무려 200만 원이다.



디지털의 시대 아날로그의 가치가 '뉴 노멀'로 자리 잡아가는 광경은 분명 흥미롭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근의 바이닐 생산 및 소비 시장이 마냥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우선 비용 문제다. '음악에 돈 쓰는 것을 두려워하다니!'라 비판한다면 할 말 없다. 하지만 과거 아날로그 방식으로 제작된 음원을 담은 판이라면 모를까 디지털 방식으로 제작된 음원을 마스터링만 한 최근 생산품의 가격이 5~10만 원 사이에서 형성되는 것은 의아하다. 가격이 높으면 그만큼의 품질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내부 구성이 충실한 것도 아니며 판의 만듦새도 좋지 못하다. 한정판이라는 이름으로 높은 가격을 책정하지만 수요는 넘치고 생산은 제한되어 있으니 질적 검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단적으로 백예린의 <Every letter I sent you.> 일반반과 이소라의 <눈썹달> 한정반의 경우 제작 불량으로 인한 음질 문제가 불거지며 제작사에서 불량판에 대한 교환을 진행해야 했다. 제작 단계부터 마스터링 과정까지의 변수가 상당한데도 가격은 언제나 높다. '뮤직 숍'의 주인공이 말하는 '깊고 그윽한 음질'을 듣기 위해 턴테이블, 스피커, 기타 장비들을 세팅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엘피 가격은 너무 비싸다. 



리셀이 여기서 다시 한번 문제가 된다. 최근 한국 바이닐 시장에는 한정반만 있을 뿐 일반반이 드물다. 신보나 재발 매반의 경우 굳이 '한정'이라는 이름을 붙여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희소성을 강조한다. 물론 바이닐 수요층의 규모가 확실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제한적인 생산 및 판매 방식을 진행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높은 가격과 어려운 구매 과정만큼 품질도 좋아야 하는데 바로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만족스러운 경우가 거의 없다. 심미성을 위해 음질이 떨어지는 컬러 바이닐을 택하고, 몇 가지 추가 구성품을 더한 것으로 높은 가격의 이유를 대신한다. 

그럼에도 대부분 한정반들은 발매와 동시에 품귀 현상을 빚으며 원래 가격의 4~5배 상당으로 중고 거래가 이루어진다. 중고 거래를 위해 판을 구입한 후 비싼 '플미(프리미엄)'을 붙여 판매하는 '리셀러'들의 횡포에 음악을 듣고 싶은 대중은 기회를 놓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중고반을 구입한다. 백예린, 김동률, 이승환 등이 중고 거래의 횡포를 지적하며 '리셀 금지'를 호소했지만 근본적인 마케팅과 생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양심에 호소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유명 레코드 숍 '김밥레코즈'는 지난 26일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청하의 <Querencia> 한정반 엘피 발매 소식에 개인 의견을 전개하며 “일반적인 커팅, 일반적인 프레싱, 그리고 특별할 것 없는 패키지인데 가격만 특별한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라 주장했다. 수요가 늘어난 만큼 한정반뿐 아니라 일반반, 디럭스 등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여 소비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Querencia> 엘피는 기본 가격이 114,900원, 할인가 95,800원이다.)



바이닐 시장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음악이 머천다이즈(MD)화 되는 것을 개탄하는 일부 음악 팬들의 시선도 있지만 음악 감상의 물리적 주 매체를 바이닐로 인식하고 있는 현세대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음악을 '구입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치가 있고, 그 인원의 증가는 늘어나는 판매량과 꺼지지 않는 수요로 증명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의 흐름 속에서 '뮤직 숍'처럼 음악을 소중하게 듣고자 하는 팬들을 위한 자리가 점차 좁아지는 듯한 일말의 불안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바이닐 판을 일부 소수 마니아들의 취향, 시디나 스트리밍과 구분되는 고급 매체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소중히 용돈을 모아 청계천 세운상가에서 소위 '빽판'을 구입해 밤새 턴테이블 위 돌아가는 레코드판을 바라보던 경험의 세대라면, 레트로에 열광하는 신세대에게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할 생각을 하는 대신 음악의 신비로운 경험을 보다 손쉽게 제공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음악의 진입장벽은 낮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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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허무주의의 레퀴엠, 영화 의 음악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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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조커>(Joker)의 오리지널 스코어(Original Score)는 제76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비공식 음악 부문인 “프레미오 사운드트랙 스타즈 어워드(The Premio Soundtrack Stars Award)”를 수상한 데 이어, 영국아카데미영화상(BAFTA)은 물론, 미국의 양대 영화상인 골든 글로브(Golden Globe)와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에서도 최우수상(Best Original Score)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더욱이 2000년부터 드라마와 뮤지컬 코미디 부문을 통합 수여한 오스카와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공히 여성 최초 수상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2019년 최고의 영화음악에 이견의 여지는 없었다. 그야말로 싹쓸이.

트로피를 쓸어 담은 주인공은 힐두르 구드나도티어(Hildur Ingveldardóttir Guðnadóttir), 아이슬란드 출신 여류 작곡가였다. 현악기 첼로와 타악기 퍼커션 연주에도 능통한 그녀는 일찍이 전자악기를 이용해 다양한 실험적 음악을 추구한 영국 펑크밴드 스로빙 그리슬(Throbbing Gristle)과 협연 및 녹음을 했고, 2019년 미국의 “HBO”와 영국의 “SKY”채널에서 방영한 미니시리즈 <체르노빌>(Chernobyl)과 2018년 영화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Scicario: Day Of The Soldado)의 작곡가로 활약하며 이름을 알렸다. 2015년 <시카리오>(Scicario)와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The Revenant), 2016년 <컨택트>(Arrival)의 음악에 첼로 독주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2018년 <막달라 마리아>(Mary Magdalene)에서 <시카리오>와 <컨택트> 이후 동향 작곡가 요한 요한손(Jóhann Jóhannsson)과의 공작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2019년 힐두르는 마침내 영화 <조커>(Joker)를 통해 그간 축적한 자신의 음악경력에 방점을 찍었다. 37세에 그는 음악가로서 최대의 공적 달성과 동시에 후대에 길이 남을 명성을 떨쳤다. 영화감독 토드 필립스(Todd Phillips)와의 운명적인 조우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

필립스 감독으로부터 입수한 <조커>의 대본을 읽은 후의 감정을 바탕으로 영감을 악보에 옮겨낸 그는 영화 자체의 거친 경향과 주인공 아서 플렉(Arthur Fleck)의 우울한 인간적 내면을 결합하는 수단으로 단조로운 선율이 포함된 작곡 샘플을 감독에게 보냈고, 복잡한 화음 없이 주연배우 호아킨 피닉스(Joaquin Phoenix)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오케스트레이션을 확장하는 식으로 스코어를 완성해냈다.

토드 필립스 감독이 스콧 실버(Scott Silver)와 함께 각본을 맡은 <조커>는 그 어떤 영웅적 초능력자도 등장하지 않는 “슈퍼 히어로” 영화다. 매우 현실적인 주제로 내용을 구성했다. 영웅 배트맨과 다른 한편에서 서로 다른 상처를 공유하지만, 영웅에 반하는 캐릭터 조커의 내면을 파고드는 영화는 정신질환에 대한 암울하고 어둡고 폭력적이며 허무주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잭 니컬슨의 희극적인 조커를 생각했다면 큰 오산. 인생의 모든 시점에서 최악의 상황을 겪게 되는 주인공 아서 플렉이 사회적 왕따에서 입장을 바꿔 뒤돌아섰을 때 그의 가슴 아픈 곤경에 진심으로 공감하도록 초대하는 영화다. 사회적으로 고립된 약자 또는 낙오자의 정서로 점철된 주인공 아서가 폭력적 자경주의라는 극단적 상황으로 치달아 결국 조커로 거듭나기까지 그를 위한 최후의 지지자가 될지 말지는 오롯이 관객의 몫으로 남는다.

오스카 남우주연상에 빛나는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튀어나온 갈비뼈, 기묘한 웃음, 불안과 초조의 줄담배 흡연 연기가 그야말로 압권이다. 시각적 관점에서 매우 스타일리시하고, 로렌스 쉐어(Lawrence Sher)의 아름답게 채도가 낮은 영화 촬영법과 마크 프리드버그(Mark Friedberg)의 불편할 정도로 지저분한 프로덕션 디자인을 자랑하지만, 영화의 기술적 측면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서 아이슬란드 작곡가 힐두르 구드나도티어의 음악이 차지하는 비중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TV계 최고의 상인 에미상(Emmy Awards/Television Academy)을 수상한 <체르노빌>의 스코어와 마찬가지로 <조커>에 쓴 구드나도티어의 음악은 보통 고전 클래식에 근거해 작곡된 감성적인 스코어와 결이 다르다. 그녀는 식별 가능한 선율(Melody) 음악보다 전자악기로 내는 음향효과, 즉 윙윙거리는 드론(Drone) 사운드를 단조로운 리듬과 혼합해내는 방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보통 기악편성에 있어 신시사이저와 첼로 독주로 제한된다. 이러한 스코어는 음악의 범위, 맥락에서의 정서적 영향, 직접성과 특이성으로 영화의 주요 문제를 다루는 방식 측면에서 구드나도티어에게 큰 도약의 계기를 제공한다. 여전히 친숙한 첼로 독주와 신시사이저의 조합이 현저하지만, 훨씬 더 큰 관현악 협주 음악과 때로는 합창단을 통합하기 위해 중요한 순간에 오케스트라를 확장하는 방식이 인상적이다.

<체르노빌>이 영화에 수반되는 음악이라기보다 완전히 분리되어 그 자체로 탁월한 음향 효과를 경험하게 해준 것과 달리, 조커는 관객이 영화를 경험하는 방식에 완전히 필수적이며, 호아킨 피닉스의 인물묘사에 생명력과 깊이를 부여한다. 때로는 그에게 영향을 끼치는 외부 힘을 대변하는 외적 변인 역할로 작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의 내면 깊숙이 잠재해있는 혼돈의 자아를 전면에 나타나도록 표출하는 내적 변인 역할을 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구드나도티어는 캐릭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그는 실제로 세상에 기쁨을 가져다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그의 내적 난기류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는 외부 환경 때문에 실제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정말 동정적이었습니다. 매우 비극적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좀 더 부드러운 면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구드나도티어는 본질적으로 캐릭터에 대한 첼로 레퀴엠(Requiem)을 썼고, 영화가 촬영을 시작하기 전에 순전히 각본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을 기반으로 그를 위해 테마를 썼다.

그 초기 첼로 녹음은 실제로 구드나도티어가 개발을 도왔던 홀도로폰(Halldorophone)이라는 전기 첼로 악기로 연주되었다. 이 연주는 'Bathroom dance'라는 제목의 곡으로 아서의 연약한 정신이 마침내 깨지고 광적인 분신으로 변모하는 장면에 사용되었다. 이 음악은 극 중 등장인물의 머릿속에 있는 음악이고, 호아킨 피닉스는 실제로 당시 작곡가의 곡에 맞춰 춤을 추면서 역할에 몰입했다고 한다.



첼로는 조커의 악기로 내면의 목소리인 반면, 음악의 오케스트라 측면은 그의 연약한 마음이 부서질 때까지 너무 세게 압력을 가하는 외부 세력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구드나도티어는 인터뷰에서 또한 “최초의 곡은 거의 첼로만 들리지만, 영화에 더 들어가면 오케스트라가 점점 더 커지고 첼로를 질식시킵니다.

그의 캐릭터에 대한 우리의 공감은 첼로가 이끄는 것과 거의 같고, 그의 어두운 면인 그의 내면의 혼란은 오케스트라입니다. 오케스트라는 거의 들리지 않게 시작하다가 점점 더 들어감에 따라 천천히 이어집니다.”라고 부연해 이 사실을 증명한 바 있다. 악보가 전개됨에 따라 아서의 고립감을 대변하는 첼로와 외부 세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의 불협화음이라는 두 세계가 충돌하여 최종 협연에서 모든 것이 분출된다.

이러한 관현악 편성은 그러나 전적으로 주인공 조커를 표출하기 위한 것으로, 구드나도티어의 음악은 종종 영화 자체만큼이나 암울하고 도전적이며, 첼로에서 나오는 고문의 신음소리와 울부짖음은 주인공의 내면의 생각처럼 의도적으로 왜곡된다. 그러한 캐릭터의 메인 테마는 'Defeated clown', 'Meeting Bruce Wayne', 'Arthur comes to Sophie'와 같은 지시 악곡에서 일종의 신호로 전반과 중앙에서 명확하게 들을 수 있다.

음악은 슬픔에 잠기고, 자기 연민에 휩싸이며, 격노한 감정을 함유해 굽이친다. 이 음악은 고문당한 영혼을 악몽처럼 반영한 것이며 결코 잊지 못하게 한다. 'Hoyt's office', 'Following Sophie', 'Penny in the Hospital', 'Hiding in the fridge', 'A bad comedian'와 'Confession'과 같은 지시 곡도 조커의 첼로 악상을 두드러지게 나타낸다. 어둠이 가득한 드럼 타악, 금속성 강한 리듬, 전자음 분위기로 곡을 구성하는 식이다.

이러한 곡들에서 구드나도티어는 그녀의 첼로 사운드가 매우 강력한 음향과 엄청나게 윙윙거리는 화음을 만들어내게 했다. 이는 곧 불안한 감정을 강렬하게 불러내고 휘저어 주인공 아서와 그를 지켜보는 관객이 상호 동일시하게 유도하는 효과로 작동한다. 때때로 이러한 코드 중 일부는 한스 짐머(Hans Zimmer)의 <인셉션>(Inception)의 'BRAAAM'을 연상하게 한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불협화음이 너무 강하고 생생하여 음악을 듣는 것이 거의 육체적으로 고통에 가깝게 느껴진다.

또 다른 핵심적인 장면에 사용된 지시 악곡 'Subway'는 극중 이야기의 전개에 중요한 계기가 되는 설정에 중대하게 작용한다. 처음으로 금관악기 군을 악보로 가져와 조커 테마를 상쇄하고, 본질적으로 그의 끔찍한 폭력이 발생하는 첫 번째 행동에 두 스타일이 충돌하는 방식과 그 주변에서 전자음이 울부짖는 방식은 실제로 매우 효과적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추적인 'Bathroom dance'는 합창단을 처음으로 믹스로 가져와서 조커 테마의 잔인한 어둠과 직결된 첼로 코드와 맥락에서 엄청나게 강력한 천상의 보컬 요소를 나란히 배치한다. '병원에 데려간 페니'는 또한 강렬하게 맥동하는 대위적 리듬을 생동감 넘치게 활용한 춤곡이다.



아서가 지하철을 빠져나가는 연속장면에 사용된 지시 악곡 'Escape from the train'은 액션 음악으로 두 명의 뉴욕 경찰이 조커를 뒤쫓다 모방용 가면을 쓴 조커 무리들에게 발포 후 집단 린치를 당하는 아비규환의 상황에 빠진 전철 내의 혼란과 광기를 다양한 타악기 리듬과 신음하는 첼로 선율, 그리고 웅대한 금관악기의 오케스트레이션 반주로 강조했다.

종결짓는 'Call me Joker'는 모든 지시 악곡에 쓰인 소리의 질료들을 모집한 총화와 같다. 조커를 위한 첼로 테마, 첼로와 연관해 신음하듯 연주되는 현악의 질감, 맥박처럼 강약을 반복하는 타악기 리듬이 시계 초침 소리와 같은 음향효과나 굉음에 가까운 전자음과 얼개를 이루며 영화의 종막을 고한다. 아서가 조커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의 신랄한 운명을 기막히게 효과적으로 반주하는 종곡.

아서는 편모슬하에서 키워진 자신의 원초적인 충동과 유기된 세상에서 느끼는 불의에 맞서 싸우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이다. 구드나도티어는 어떻게든 그러한 주인공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중간 지점을 찾고자 했다. 한편 그가 자기를 부정하고, 끔찍한 폭력과 잔인함을 표출하는 순간이 임박했음을 예고하는 음악으로 금관악기 군을 통해 메인테마를 강조한 곡의 구성은 피날레로 완벽하다.

<조커>를 위해 구드나도티어가 쓴 스코어는 음악적 관점에서 가장 기술적으로 성취된 성과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오케스트라와 합창의 존재감을 높이는 한편, 기본적으로 자신의 장기인 첼로와 실험적 전자음악을 혼합해낸 방식으로 힐두르 특유의 음악성을 확증했다. 극의 주제에 적합한 테마음악이 선명한 것 또한 스코어의 완성도를 높였다. 대다수의 취향을 고려하면서 꾸준히 연마해 터득한 독자적인 자기 방식에 근거해 예술성까지 확보한 힐두르 구드나도티어, 아이슬란드 최초의 여류 작곡가인 그녀에게 상복이 쏟아진 일대 사건이 그냥 일어난 일이 아님을 입증한 스코어. 음악 속에서 힐두르는 조커 그 자체였다.



※ 영화 외적으로 영화의 장면 전개에 따라 장소의 배경음악이나 스토리텔링의 일부로서 부가적으로 삽입되어 사용된 노래나 연주곡에 대한 해설.

영화 <조커>에는 다수의 기성 가창곡 및 연주곡이 사용되었다. 광대와 미소에 대한 명백한 언급으로 선정된 곡들이다. 이중 최대 히트곡인 'Send in the clowns'는 원래 스티븐 손드하임(Stephen Sondheim)이 자신의 뮤지컬 “A little night music”을 위해 쓴 곡. 영화에서 두 번 나온다.

지하철에서 아서를 공격하는 월스트리트 사업가 3명이 부르고, 후에는 프랭크 시나트라(Frank Sinatra)가 부른 버전으로 종영 인물 자막과 함께 나온다. 노래 자체는 가사에서 어릿광대를 반복해서 부르고 있지만, 사실 내용은 후회에 관한 것이며, 특히 관계가 끝날 때 느꼈던 후회를 의미한다. 아서의 절망을 기막히게 대변하는 노래로 애조 띤 가창과 고전적인 양식의 반주가 진한 감동을 불러낸다.

영화에서 직접 언급된 다른 노래로는 'If you're happy and you know it'이 있다. 아서가 병원의 어린이 병동에서 함께 부르는 곡이다. 프레디 아스테어(Fred Astaire)가 영화 <쉘 위 댄스>(Shall We Dance)에서 공연한 'Slap that bass'는 아서의 아파트 TV에서 나타난다. 잭슨 C. 프랭크(Jackson C. Frank)의 'My name is Carnival'은 아서의 라디오 청취를 통해 공유된다. 카니발은 아서의 광대 캐릭터를 대변하는 이름에 다름 아니다.

영화가 후반으로 향하면서 아서는 스스로를 조커로 완전히 수용하고 음악은 세 가지 대담한 노래 선택으로 그의 변화를 반영한다. 그중 첫 번째는 또 다른 시나트라의 노래 'That's life', 아서가 상징적인 녹색 머리칼로 염색하는 동안과 아캄 정신병원의 내부통로로 달려 도망할 때, 각각 등장한다.



다음은 실제든 영화든 스포츠 경기장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노래 'Rock 'n' roll (Part 2)', 개리 글리터(Gary Glitter)로 유명한 글램 록(Glam Rock) 가수 폴 프랜시스 갯(Paul Francis Gadd) 곡으로 조커로 거듭난 아서가 저녁 TV쇼에 데뷔하러 가는 장면에서 사용되었다. 여러 개의 내리막 계단 위에서 보여주는 조커의 흥겹고도 역동적인 춤동작이 압권.

마지막으로 'White room'은 전설적인 록밴드 크림(Cream)의 명곡으로 경찰차에 실려 압송되는 조커가 충돌사고로 차량이 전복되면서 거리의 조커 숭배자들에게 구출되는 장면을 반주한다. 이상 후반부에 사용된 세 곡의 노래는 전반부와 확연히 다르다. 조커가 된 이후 아서의 변화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더 어둡고 더 도전적인 곡조의 분위기가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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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에픽하이, 순간을 마감하고 다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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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2개월 만의 컴백, 열 번째 정규 앨범. 20년 가까이 활동하고 있는 힙합 트리오 에픽하이의 귀환은 그들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대대적인 조명과 함께 이뤄졌다. 국내 주요 음원 차트 석권은 물론 애플 아이튠즈, 스포티파이 차트에서도 선전하며 여느 케이팝 그룹도 부럽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오랜 팬들을 결집하는 에픽하이의 고유 감성과 문법, 멜로디 등 핵심 요소는 굳건하다. 분명 변했으나 변하지 않은, 우리가 알고 있지만 또 새로운, <Epik High Is Here 上>. 에픽하이가 여기에 있다.

7년 만에 다시 만난 에픽하이는 <신발장> 발매 때보다 더욱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코로나 19로 온 세상이 멈춘 힘든 시기가 앨범에 영향을 주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장난기 어린 대화와 진지한 설명에서는 베테랑의 여유가 느껴졌다. '마침표 같은 쉼표!'. 투컷의 표현처럼 에픽하이의 음악은 순간을 마감한다. 그리고 또 자연스레 다시 시작된다.

우울하면서도 독이 뻗친 듯, 가시가 뻗쳐 있는 앨범처럼 들린다. 전체적으로 톤도 다운되어 있고.

타블로 : 앨범을 만들기 시작한 건 코로나 19 범유행 전이었다. 2020년 전까지는 으쌰 으쌰 하던 게 있었고, 힘찬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도 있었다. 초청받은 코첼라 페스티벌에서 선보이고 싶은 곡들도 많았다. 원래는 더 세고 더 자극적인 작품을 기획 중이었다. 하지만 누가 지금 같은 상황을 상상했겠나. 많은 노래들을 제외했고, 메시지와 가사도 다듬어 고쳤다. 에픽하이처럼 많은 앨범을 낸 팀에겐 '최고의 앨범을 만들자!'는 개념보다는 '맞아, 이런 일들이 있었지.', '그때 코로나 19 팬데믹 상황이 있었지'라며 돌아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자는 생각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결정적으로는 우리가 느끼는 대로 만들어야지 싶었고.

투컷은 이번 앨범을 어떻게 정의하나.

투컷 :마침표 같은 쉼표! 마침표일수도 있지만 쉼표일 수도 있는. 아무래도 정규 10집이라 하면 꽉 찬 앨범처럼 보이지 않나. 작업 중에도 계속 그런 의미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타이틀이 부담되기도 했고. 마침표가 아니라 쉼표였으면 좋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작업에 임했다.

미쓰라는 이 앨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미쓰라는 이모셔널한 사람 아닌가.

미쓰라 : 제가요? (웃음)

타블로 : 처음 듣는 얘긴데 (웃음)

미쓰라 :앞서 멤버들이 이야기한 그대로다. 이런 예상치 못한 어려운 일을 겪은 것은 우리 셋 모두에게도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준비된 음악을 내고도 못 낼 수 있는 세상이 올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많았다. 그래서 최대한 이번 앨범에는 최대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시간을 모두 쓰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것까지 털어놓자는 생각이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타블로가 쓴 앨범 속지가 떠오른다. '매 작품이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 생각하며 모든 것을 바친다. 언젠가는 반드시 마지막 작품이 될 테니까…(I gave my all to every single one of our albums thinking that it will be our last, because one day it inevitably will be.)'.

타블로 : 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 중 하나가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항상 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갖고 있고 불안감도 있다. 특히 '타진요' 사건처럼 하루아침에 강제로 은퇴당한 경험도 있었고. 그래서 음악 하는 데 있어서는 적어도… 우리의 음악을 들어주는 팬들에게 제대로 된 작별 인사를 건네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하고 있다. 너무 부정적인 이야기로만 들어주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언젠가 어떤 작품이 마지막 앨범이 됐을 때 좋은 마무리, 좋은 작별 인사처럼 여겨졌으면 하는 거다.

타블로, 미쓰라, 투컷의 커리어에는 언제나 우울이 깃들어 있다. 물론 그 정서가 팬들에게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유명세를 가진 슈퍼스타에게 보통 이 정도 우울감은 찾기 힘든 감정이기도 한데.

타블로 : 그게 내 정서 같다. 성공하고 돈을 벌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아빠가 된다고 해서 갑자기 그런 게 모두 다 괜찮아지면 불행이라는 게 왜 있겠나. 투컷이 신나고 밝은 노래를 만들어와도 나랑 같이 팀을 하다 보니 내 목소리와 멜로디가 들어가면 우울해진다. 우리 앨범이 우울한 99%는 나 때문이다.

그럼에도 행복한 순간들 역시 음악에 담아내지 않나.

타블로 :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 평소 내 기본 세팅이 어두운 거다. 다행히 노력해서 중간중간 그 좋은 순간이 많이 반복될 수 있도록 구성하고 있다. 내게 의지하는 가족 친구들 사람들까지 우울한 감정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지 않나.

결국 우울함은 에픽하이 음악의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겠다.

타블로 :행복을 느낄 때는 그 순간을 즐기느라 음악으로 만들 생각을 안 한다. 음악 앞에서는 가장 솔직한 나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도 가장 익숙한 내 모습… 어떻게 해도 이렇다면 그게 내 모습 아닐까?

투컷 : 그런 솔직함이 뭘 해도 우울한 정서로 발현되는 것 같다.

다시 앨범 속지 한 구절을 가져와보겠다. '불평과 비난, 반박과 철회, 알리바이와 사과 대신에 노래를 쓴다(I write songs because the alternative is to write complaints and accusations and retorts and retractions and excusses and explanations and alibis and apologies.)'.

타블로 : 문장 그대로다. 내 노래가 우울함의 극치, 부정적인 에너지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런 감정을 세상에 보태지 않으려고 음악으로 만든다. 음악은 참 아름다운 예술 아닌가? 엄청나게 날카롭고 위협적이고 위험한 감정을 가져가도 완성되어 나올 때는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뭔가 아름다운 것으로 변한다. 아무리 분노가 담긴 이야기라도 음악으로 표현하면 누군가에게는 꼭 위로가 된다. 만약 내가 음악을 안 만들었으면 불평만 늘어놓거나, 화만 내거나, 싸움을 걸거나 했겠지.

이런 정서를 표현하는 노래를 꼽아줄 수 있나.

미쓰라 : 에픽하이의 음악에는 항상 그런 감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투컷 :나는 'End of the world'.

타블로 : 'Rosario'다.



'Rosario'는 어떤 의미에서 그런 정서를 담은 곡인가?

미쓰라 : 'Rosario'는 지금 같은 시기에 그냥 뭐… 그런 곡이다. (웃음)

타블로 :그냥 뭐… 그런 곡이지. (웃음)

미쓰라 : 이런 메시지는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모두가 자신에 대한 자존감이 떨어져 있는 시대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레전드가 아니지만 그렇게 믿고 싶다. 우리 모두 레전드가 되고 싶다'라는 독려와 위로의 메시지를 담고자 노력했다.

에픽하이 대부분의 음악의 벌스는 타블로가 시작한다. 이번 앨범의 '수상소감'은 미쓰라의 벌스부터 시작하는 것이 굉장히 신선하고 좋았다. 곡의 완성도를 위한 선정이었겠지만, 특별히 미쓰라의 벌스부터 시작한 이유가 있는지? 곡 작업 시 벌스 선정 기준이 있는지?

타블로 :원래 '수상수감'도 내가 먼저였는데 바꿨다. 미쓰라 랩이 완성되고 나니 이 벌스로 시작하는 게 맞는 것 같더라. 내 벌스로 시작한 게 좀 더 강렬하게 느껴지고, 미쓰라로 출발하는 버전이 더 뭔가 진한 감성으로 느껴지더라. 인간적으로 들렸고.

투컷 : 타블로 말대로 블로 벌스가 앞이었고 미쓰라가 뒤였는데, 바꿔보니 독백처럼 내뱉는 미쓰라의 파트가 앞에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상황에서 만든 곡인가.

타블로 : 투컷의 데모 비트 버전만 있었다. 거기다 가사를 쓰고 랩을 얹은 후 노래로 완성해나가는 단계가 되었는데, 당시만 해도 수상소감이라는 제목은 없었다. 당시 가제는 '안티 히어로'였다. 그런데 그 제목이 너무 직설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수상소감'이라는 제목을 떠올렸다.

새로운 제목 '수상소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달라.

타블로 : 수상소감을 말하는 자리는 대체로 기분 좋은 순간 아닌가. 사람들이 잘했다고 손뼉 쳐주고, 성과를 트로피라는 물리적인 소재로 전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상식이라는 행사에는 굉장히 무서운 이면이 있다. 상을 줬다는 것은 언제든 그걸 빼앗을 수도 있다는 것이기에… 꼭대기 같은 높은 위치의 기분을 한 번 맛보면 그다음 단계로 올라가는 것이 더욱 쉽지 않다. 여담이지만 그런 의미로 시상식에 불참하기 시작했다. 불러주시는 건 정말 감사하지만, 그게 족쇄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화려한 레드카펫 밟고 축하 공연하고, 각자 숙소로 가서 혼자 앉아있으면 그 감정의 편차가 너무 커서 가끔 견디기 힘들 때도 많았다.

이번 그래미 어워드에서 외면받은 위켄드(The Weeknd)가 떠오르는 대답이다.

타블로 : 그런 상황을 상상하며 쓴 곡이라 뉴스를 보고 더욱 공감이 가더라. 위켄드는 지금 정말 자유로울 것이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아야 하고 예쁨 받아야 하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 아니겠나. 타인이 쳐주는 박수, 타인이 주는 것만이 타당한 보상이라고 느끼는 마음은 위험하다. 거기서 벗어나는 순간 어마어마한 자유를 느낄 수 있다.

우울한 'End of the world'의 작업기도 궁금하다.

타블로 :미국에서 만들었다. 즉석에서 기타 리프를 만들었다. 즉흥 잼 하듯이 완성해두고 이 멜로디를 누가 부르면 좋을까 생각하다 지소울에게 연락했다. 어쩌면 이 곡이 가장 오래 작업한 노래일 수도 있다. 가사도 여기저기 바뀌었고 멜로디도 바뀌었다.

이 노래가 에픽하이가 지향하는 작품성의 표현인 것은 아닐까. 우울, 분노…

타블로 : 하지만!(웃음) 세상이 끝날 때까지 날 사랑해달라는 긍정의 표현도 숨겨져 있다. 없는 희망 얘기 못한다. 모든 에픽하이 노래에서도 똑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Fly' 예시를 들어볼까. 노래를 '힘들죠?'로 시작한다. 당신들이 힘들다는 것을 일단 이야기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고 힘을 내보자는 메시지를 담는 것. 이게 에픽하이의 지향이다.

2003년 데뷔 앨범부터 이어져 온 'Lesson' 시리즈도 <Epik High Is Here 上>에서 'Lesson zero'로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새로운 곡을 계획하고 있나.

타블로 : 'Zero'로 돌아가버렸으니 새로운 시작처럼 여겨질 수도 있는데, 'Lesson'이라는 제목으로 곡을 내는 건 그만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고 새로 쓸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노래를 쓰던 'Lesson' 시리즈처럼 쓰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뭔데 누군가에게 가르치나 싶기도 하고… 그런데 또 모르지?

헤이즈가 참여한 '내 얘기 같아'는 특히 독특하다.

투컷 : 앨범에서 가장 많이 공들인 곡이다. 가장 끝까지 갔던 편곡이었기 때문에 새로웠다. 힙합의 요소는 거의 없었다고 본다. 보컬 부분에서 힘들지는 않았다. 특히 헤이즈는 이야기할 때도 편했고 표현도 좋았고 베스트 게스트 중 한 명이다.

에픽하이의 정서가 우울로 수렴하는 데 반해 그들의 발화 방식은 상당히 다채롭다. 이미 힙합이라는 범주를 넘어 대중가요의 영역에 진입했다 봐도 무방하다. 라틴어쿠스틱 기타 리듬으로 출발하는 'Rosario'가 힙합 팬들에게 어필한다면 '내 얘기 같아'는 드럼 없는 오케스트라 구성이 귀를 잡아끈다.

최적의 파트너만 섭외한다는 게스트와의 호흡도 정점이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부터 우원재, 넉살, 창모 등 래퍼까지 섭렵한다. 데뷔 초부터 끊임없이 장르 뮤지션의 덕목을 요구받았던 에픽하이의 도전 정신은 4집 <Remapping The Human Soul> 속 '노 장르, 저스트 뮤직(No Genre, Just Music.)' 문구에 확고히 정립되어있다.

“어떻게 감히 힙합에 EDM을 넣냐, 어떻게 감히 힙합을 120 BPM으로 하냐… 공격을 많이 받았죠. 하지만 지금 모두가 그렇게 음악을 하고 있잖아요. 힙합 한다는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못하면 그게 오히려 힙합이 아니지 않나요?.”. 에픽하이로 데뷔하기 전 록 밴드를 꿈꿨다는 타블로가 웃으며 이야기를 건넸다. 에픽하이의 안정 아래에는 치열한 도전과 고민, 자유로운 창작의 노력과 뚝심이 있었다.



<Epik High Is Here 下>도 다채로운 작품인가?

타블로 : 하편이 더욱 다양하다. 나는 진심으로 우리가 어떤 장르로 느껴지고 이런 논쟁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내일 아침 일어났는데 컨트리 음악이 하고 싶다? 그럼 하는 거다. 왈츠를 하고 싶으면 그냥 한다. '한 번도 해보지 않았지만 해보자'는 생각이다. 물론 실수한 적도 있고 빗나간 적도 있다. 처음 시도하는 장르라 표현하는 데 있어 팬들에게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뭐지' 싶었던 적도 있다. 그렇다고 포기해서 되겠나. '에픽하이가 왜 이런 음악을 해?'라고 한들 꾸준히 계속해야 어느 날 능숙해져서 '에픽이 이런 음악도 해줘서 고맙다' , '언젠가 이런 음악도 해달라' 얘기가 나오는 거다. 처음 해보는 건데 어떻게 잘하나. 완전히 색다른 걸 할 때 응원해줘야 한다.

투컷 : '트로트'도 있지 않나 (웃음). 지금 뒤 컴퓨터에 '하(下)' 편이 있다.

미쓰라 : 안 들려 드릴 거다 (웃음).

이번 앨범을 빛낸 많은 게스트들에 대해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타블로 :'Rosario'의 지코는 입대 열흘 전에 다 해주고 뮤직비디오 촬영도 했다. 촬영장 와서 입대 소식을 알렸다. 쉬고 싶기도 했을 텐데 끝까지 열심히 열정적으로 해주는 모습이 너무 멋졌다. 뮤직비디오 나온 날 가장 먼저 문자 해주고… '정당방위'에서 창모가 마디 수 잘못 세서 여덟 마디 더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경쟁하자는 건 아니지만 많은 래퍼들이 참여하는 곡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마디 수가 같아야 하지 않나. 그런데 창모는 느낌으로 작업을 해서인지 본인도 몇 마디인지를 모르고 우리에게 작업물을 보내줬다. 결과물을 들어보니 우원재, 넉살에게 이야기를 해줘야만 했다. 이렇게 됐다고 (웃음).

전체 커리어에서 가장 좋았던 게스트를 꼽아줄 수 있나.

타블로 :김종완이랑 작업할 때가 정말 잘 맞다. 둘의 감성이 워낙 비슷하니까. 내가 그 친구가 부를 멜로디를 쓸 때는 정말 아무런 어려움 없이 쓴다. 그리고 내가 작곡한 곡을 너무 잘 표현해주고… 그런데 이 친구랑은 음악만 잘 맞다. 감수성이 잘 맞는 케이스. 나얼도 좋았다.

투컷 : 한 명만 뽑기 어려운 것 같은데… 아이유, 윤하, 헤이즈 모두 좋았다.

미쓰라 : 다 좋은데 나는 이하이와의 궁합이 너무 좋았다. 서로 잘 어울리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투컷 : 녹음할 때부터 느낌이 온다. '아 이건 됐다!' 첫 소절 들었을 때 느낌이 안 좋은 곡은 꼭 빠지게 된다. 함께 작업한 모든 사람들이 좋았다.

에픽하이의 행보에서 독특한 것은 홍보 방식의 최신화다. 스포티파이와 더불어 틱톡 챌린지 등 다양한 SNS 홍보 수단을 통해 과거와 또 다른 재미있는 행보 및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타블로 : 테크놀로지에 대해 관심이 많다. 과거 트위터 할 때도 똑같은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남들보다 빨리 하려고 하는 것도 아니고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테크놀로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항상 주의 깊게 바라본다. 아빠가 된 게 가장 결정적이었다. 내 아이가 어른이 되어 살아가야 할 세상은 훨씬 발전해 있을 텐데, 그 미래를 어느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나. 이런 방식으로 한 번 해보는 게 재밌겠다는 생각이었다.

열 장의 정규 앨범을 작업하며 가장 트러블이 적었던 작품은 무엇이었나.

타블로 : <열꽃> 만들었을 때 트러블이 없었다. 혼자서 다 만들면 되니까… 농담이다.

미쓰라 : 안 싸운지는 꽤 됐다. <We've Done Something Wonderful> 때부터 안 싸웠다.

투컷 : <신발장> 때는 미쓰라가 안 좋았지만 개인적인 문제였고, 예전부터 의견 충돌은 있었어도 싸우진 않았다. 그리고 최근 작품들에서는 의견 충돌도 없었다. 이젠 서로를 너무 잘 안다. '저런 작품을 만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싶더라.

마지막으로 에픽하이의 <Epik High Is Here 上>를 듣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전해달라.

타블로 : 모든 관심이 정말 고맙다. 10장의 정규 앨범을 낸 팀이라 관심이 떨어질 수도 있는데 핏대를 세워 누군가는 옹호하고 응원하고 누군가는 비판하는 모습이 행복하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사실이 좋다.

투컷 : 당부하자면 이번 작품으로 앨범이 완성된 게 아니다. <Epik High Is Here 下>를 생각하며 애피타이저처럼 즐겨달라.

미쓰라 :애피타이저는 좀 아닌 것 같은데… (웃음)

타블로 : '에픽하이가 좋아서 음악을 듣는다'라는 반응을 더 이상 바라진 않는다. 우리 음악을 여러분들의 삶에 어떤 용도로 사용했으면 좋겠다. 에너지가 필요할 때, 면접을 앞두고 있을 때 'Rosario'를 듣다가 모든 걸 잊고 싶어 질 때는 '수상소감'이나 '내 얘기 같아' 같은 노래를 듣듯이. 생활에 자연스레 녹아들었으면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곡과 가사를 외워주시는 것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지만… 당신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그런 음악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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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영화 ,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간 러브 테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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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4월 15일 개최된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에서 무려 7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최우수 작품상(Best Picture)을 위시해, 감독상(Best Director), 남우주연상(Best Actor), 여우주연상(Best Actress), 각본상(Best Story and Screenplay), 남우조연상(Best Supporting Actor),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Best Original Score)부문까지, 대중적 흥행은 물론, 전문 비평가들로부터도 걸작 대우를 받은 영화는 명실상부, 불멸의 명화가 되었다.

비록 6개 부문 후보 지명에 그쳤지만, <러브 스토리>는 영화로서도 그 진가를 충분히 입증했다. 장편 소설로 출판돼 1년 이상 베스트셀러의 명성을 이어온 원작의 공신력을 재 확인시켜준 셈. "최우수 오리지널 스코어”부문, 즉 음악상 수상은 그러한 가운데 더욱 빛났다. 이전 골든 글로브(Golden Globe)에 이어 오스카 트로피까지 거머쥔 결과였다. 그 가치는 명불허전(名不虛傳).

오리지널 스코어는 프랑스 작곡가 프랑시스 레(Francis Lai)가 작곡했다. 1966년 클로드 를르슈(Claude Lelouch) 감독의 <남과 여>(A Man and A Woman)에 쓴 음악에 감화된 힐러(Arthur Hiller) 감독의 선택이었다. 힐러 감독은 프랑스어를 쓰지 않았기 때문에 레에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원하는 음악의 종류와 음악이 사용될 위치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서신으로 레에게 전했고, 이러한 접근 방식이 매우 이례적이긴 했지만 레는 최선을 다해 음악으로 화답했다.

그는 그야말로 시대를 빛낸 음악,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주제선율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극 중 음대생 제니가 연주하는 건반악기를 사용했다. 관객이 여주인공과 감정적 일체감을 갖도록 한 것이었다. 레는 피아노가 사랑하는 남녀의 이야기와 그들의 무한한 사랑, 그리고 그녀의 비극적인 죽음에 감정적인 매개체 역할을 하리라고 믿었다. 그는 또한 당시 현대 관객과의 음악적 소통을 위해 영화에 1970년대의 동시대적 사운드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1960~1970년대는 일명 “엘리베이터 뮤직(Elevator Music)”이라고도 불렸던 “무작(Muzak)”이 대중들의 일상 속 생활 음악으로 자리한 시기였음을 감안한 착안이었던 것. 일종의 배경음악으로 호텔, 레스토랑 및 전용 클럽, 소매점, 패션 매장, 항공사 및 공공장소 등에서 진정제 효과를 발휘한 무작은 패츠 웰러(Fats Waller)나 하비에르 쿠거(Xavier Cugot)과 같은 인기 아티스트가 연주한 당시의 인기곡이나 노래들로 구성되었다.

쉽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경음악(Easy Listening)', 클래식, 블루스,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 포함되었고, 클래식의 오케스트라와 대중음악의 세션을 결합한 방식의 합주나 협주 또는 독주나 협연에 의해 구현되었다. 한편, 작곡가 레는 당대 최고의 록 밴드 비틀스(Beatles)를 위시해 포크(Folk), 리듬 앤 블루스(R&B), 재즈(Jazz), 디스코(Disco)와 같은 동시대의 대중적 유행 음악도 아울러 영화음악에 반영했다.

영화의 장면 전개에 맞게 조응하도록 사용된 지시 악곡들은 클래식 명곡들을 포함해 영화가 개봉된 시대의 분위기를 아우른 대중음악의 조화 및 병치가 두드러진다. 주로 두 주인공의 사랑에 초점을 맞춰 영상을 반주하는 테마를 시작으로 기악 편성에 따른 변주와 편곡의 형태로 나타나는 음악은 등장인물들의 동선과 감정에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동화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우선 “Love story theme”(러브 스토리 테마)은 도심 속 공원의 스케이트장에 홀로 앉아 독백하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다가가는 카메라와 영화 제목이 나오는 화면을 반주한다. “그녀는 모차르트, 바흐, 비틀스, 그리고 자기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오닐의 대사 뒤로 다소 격정적인 터치로 매혹적인 화음을 넣는 피아노와 관현악 협주가 깔린다. 제니와 올리버가 처음 만나는 도서관으로 이동하기까지 연속해서 전개되는 장면에 사용된 이 곡은 영화의 주제를 함축한 음악적 스토리텔링이다.

제니와 사별한 올리버의 해설과 패닝으로 들어가는 카메라워크, 레는 거기에 쓰인 'Love theme'(사랑의 테마)를 세 부분으로 나눠 제공한다. 먼저 피아노로 시작하고 기타, 그리고 기타와 오케스트라를 결합해낸 방식이다. 기본적으로 이 세 가지로 나누고 결합한 악기 편성에 따른 반주인 한편, 여기서는 주제음악의 시작 어구만 제공한다.

영화에서 이 부분은 이를테면 세 문장 중 첫 번째 문장만 사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레가 이 영화의 감성적 핵심을 완벽하게 포착한 대목이라고 볼 수 있다. 'Snow frolic(눈싸움)'은 올리버가 눈 속에서 뛰놀며 눈사람을 만들고 그들의 사랑을 축하하는 모습을 반주한다. 레는 “우, 우우우우”를 반복하는 다니엘 리카리(Danielle Licari)의 영적인 허밍 보컬과 클래식 하프시코드, 그리고 부드러운 베이스와 드럼에 의한 록 리듬으로 단순히 장면을 보조할 뿐이다. “Eb-Db-Bb-Eb-Fm-F-Bb-Eb-Bb-Eb-Fm-Bb-Eb-Fm-Bb-Eb-Bb-Eb”를 단조롭게 반복하는 화음이 뇌리에 각인된 이 곡은 이후 애청곡 1순위를 차지, 매해 연말 눈이 오는 크리스마스 축가로 자리매김했다.



'Concerto no. 3 in D-Allegro'에서 제니는 바흐(Johann Sebastian Bach)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3번 라장조”를 연주한다. 극 중 안경을 쓰고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는 제니의 모습을 흐뭇하게 응시하는 올리버의 시선을 통해 법대생과 음대생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조화로운 협주곡의 화음이 교량 역할을 해주는 것과 같다. 'Search for Jenny(제니를 찾아서)'는 제니가 나서서 화해시키려 하지만 단호하게 거부하는 올리버와의 불화를 반주한다. 올리버는 화를 내며 자기 인생에서 빠지라고 소리치고, 그로 인해 제니는 도망친다. 그는 후회하고 곧 그녀를 찾기 위해 달려 나간다.

레는 올리버가 제니를 찾아 거리와 학원을 배회하는 장면에 계속해서 하프시코드의 러브 테마(제니의 모차르트 사랑)와 록 리듬(올리버의 비틀스 사랑)을 결합한 변주를 사용해 기억에 남을 순간을 연출하도록 돕는다. 서로 다른 듯, 결국 사랑이란 주제로 하나 된 남과 여의 운명은 일맥상통한다는 걸 테마음악으로 다시금 강조해 주는 지시 곡.

'The Christmas trees'(크리스마스 트리)는 올리버가 크리스마스트리를 고르고 실어 나르는 장면에 사용된 지시 곡으로, 'Silent night(고요한 밤)'에서 영감받은 레가 전자오르간을 이용해 엄숙한 종교적 색채를 가미하고, 아름다운 관현악 협주로 극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특별한 순간을 포착했다. 영화에서는 'Jingle bell', 'Joy to the world'와 같은 캐럴과 더불어 접속해 이어지면서 성탄절 분위기를 더욱 강조하는 구성요소로 사용되었다.



'Bozo Barrett'(보조 배렛)은 제니와 올리버가 뉴욕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차로 이동하는 동안 미래의 아들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에 쓰일 트랙이었으나 삭제된 곡. 피아노로 러브 테마를 연주하다가, 갑자기 유사 힙합을 연상케 하는 리듬적 하프시코드로 전환된 다음 오르간에 의한 엄숙한 조합으로 전개되고, 그런 다음 레는 다시 펑키한 리듬으로 주제선율을 분해해 마무리한다. 'Skating in central park(센트럴 파크에서 스케이트 타기)'는 제니가 센트럴 파크의 스케이트장 스탠드에 앉아서 올리버의 스케이트 타는 모습을 바라보는 모습을 뒤따라 연주된다. 레는 'Snow frolic'의 주요 멜로디를 되풀이하며 이제 우아하고 고풍스런 3박자 왈츠로 전환해 장면을 수놓는다. 올리버가 얼음 위를 쉽게 미끄러지는 것처럼 음악은 완벽한 감성을 제공한다.

'피아노 소나타 12번 F장조-알레그로(Sonata in F Major-Allegro)'는 제니가 수학하는 음악 대학교 창문을 외곽에서 비추는 장면에 사용되었다. 제니와 올리버가 옥신각신, 미주알고주알 언쟁을 하는 대사만 들릴 뿐, 둘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모차르트를 선호하는 제니의 음악 취향을 나타내는 것이자 빠르고 유쾌하게 이어지는 대사 전개에 적합한 선곡.

'I love you, Phil(사랑해, 필)'은 학교에서 제니가 통화하는 장면의 전후로 배경에 깔린다. 현악과 하프시코드, 그리고 전기 기타와 드럼 등 고전과 현대의 음악 요소를 짝짓고, '라라라라'로 연이어지는 여성 보컬을 결합했다. 음악학교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자, 건반을 연주하고 고전음악을 연구 분석하는 제니와 현대의 록 음악을 선호하는 올리버의 성향을 대변해 조화롭게 구성한 음악.



'The long walk home(집으로 가는 긴 발걸음)'은 제니의 죽음에 정신을 잃고 황폐해진 올리버가 센트럴 파크의 스케이트장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반주한다. 제니와 올리버, 둘의 사랑을 주제로 한 테마음악은 신디사이저와 클래식 기타의 이질적 조합해 의해 시작되고, 도시의 소음과 정신적 혼돈을 효과적으로 대변하는 전자음 구간을 지나 상실의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올리버의 내면을 투영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영화 대미를 장식하는 'Theme from love story-Finale'를 통해 수미쌍관으로 연계되는 주제곡은 쓸쓸하게 홀로 남은 한 남자의 형언할 길 없는 공허와 좌절, 그리고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을 관객이 공감할 수 있게 음악으로 전해준다. 점점 더 풍성하게 벅차오르는 관현악 협주의 물결, 마음을 찢는 것 같은 현악과 때론 소용돌이치듯 때론 위로하듯 감정을 휘젓는 피아노 선율이 주도하는 가운데 오케스트라는 종극으로 치닫는다.

마지막 패닝(Panning)으로 시점이 멀어지는 올리버의 뒷모습이 그렇게 애잔해 보일 수 없는 이유이다. 관객은 이제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저항할 수 없는 슬픔에 잠긴 한 남자, 그리고 둘일 때 행복했던 남과 여의 사랑 이야기의 전말을 음악의 숭고함과 장엄함으로 온전히 느끼게 된다. 사회 계층이 배태한 구조적 모순과 차별에 의해 인정받지 못한 그들의 자유로운 사랑, 하지만 첫눈에 반한 둘이 하나가 된 순간부터 다시 하나로 돌아가기까지 그저 행복한 순간을 맛보고 꿈을 키웠던 남과 여의 <러브 스토리>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증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음악 역사상 가장 감성적이고 감동적인 결말 중 하나이다. 그렇게 불멸의 주제곡으로 우리의 기억을 잠식했다.



프랑시스 레가 작곡한 <러브 스토리>의 주제곡은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하면서 그 시대의 가장 친숙한 영화 속 러브 테마 중 하나가 되었다. 'Theme from love story'는 미국 빌보드차트 31위에 올랐다. <러브 스토리> 사운드트랙 앨범도 영화와 함께 흥행에 날개를 달았다.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올라 6주간 머물렀다. 작사가 칼 시그먼(Carl Sigman)이 작사를 해 넣은 원래의 주제곡에는 'Where do I begin'이라는 제목이 붙었고, 가수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가 가창해 주제가로 제2의 생명력을 얻었다.

노래는 1971년 초 핫 100 싱글 차트에 9위까지 올라 수주 간 순위를 유지했다. 이지 리스닝(Easy Listening) 차트에는 정상에 등극했다. 그 이후로 수많은 다른 가수들이 다시 불렀고, 음반으로 제작되었다. 헨리 맨시니(Henry Mancini)의 연주 버전도 차트에서 선전했다. 가사가 있는 노래로 다시 태어난 <러브 스토리>의 주제곡은 영화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지울 수 없게 만들 만큼 지구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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